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 - 밑줄 긋는 여자의 토닥토닥 에세이
성수선 지음 / 알투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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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5

 

작품을 읽으며 불현듯 언젠가 읽고 또 읽었던 류시화 님의 어느 시 제목이 내 머리 속에서 파란

불을 밝히며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시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시로 해당 제목은 작품을 읽는 내내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언제부터 그런 느낌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간혹드는 생각이

'이 세상에 나는 혼자이고, 혼자일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나를 엄습하고는 했었던 기억이 새롭게 났기 때문이다.

나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분이 이런 내 글을 읽고 '당신이 언제나 혼자라구?' 웃으며 반문하거

나 반평생을 같이 살고 있는 와이프가 펄쩍 뛰면서 이 무슨 호랑이 풀 뜯어 먹는 소리냐고 한

소리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언제나 혼자였고 지금도 혼자였었다

 

는 점이다.

제가 얼마 전 읽었던 차동엽 신부님의 '잊혀진 질문'이라는 작품을 읽다 보면 [고독]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 떠 밀려서 당하던 외로움을 이제 좋아서 즐겨 보는 것이다. 고독은 외로움의 변형일 뿐이다.

- 외로움은 '홀로 혼자'이기에 위로와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고독]'더불어 혼자이기

  에 더 이상 위로와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외로움은 타인의 고통을 품지

  못하지만 [고독]은 타인의 고통을 품습니다.

  타인과 어울려 살고 있는 인간들 모두는 혼자가 아닌 듯 살아가고 있지만 내가 볼 때는 모두가

  언제나 늘 혼자였고 앞으로도 혼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이들은 이야기할 것이다.

 

'내가 얼마나 친구가 많으며, 사회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등의 이유를 대면서 자기는 결코 혼자였던 적도 혼자일리 없다는 강한 부정을 하고 살고있다고

 

나도 한 때는 그랬었다.

친구와 또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고독할 시간이 전혀 없는 진짜 인기가

많은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를 둘러 싼 여러 허상이 벗겨

지면서 나는 혼자일 수밖에 없었고, 혼자였다. 절대 [고독] 속에 처한 나 자신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착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나를 항시 따라

다니는 내 '그림자(허상)'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림자(허상)로 인해 나는 항시 혼자가 아닌 듯 착각

을 했었던 것이다. 그림자가 존재할 수 없는 공간으로 가 보라. 고독과 함께 심연 깊은 곳에서

부터 밀려오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느껴 보아라.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 외에 그 어떤 생각

, 사고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서 따라 다니는 '그림자'(허상)로 인해 외로움을,

[고독]을 느끼지 못했음에도 마치 자신이 고독할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인식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 누구도 자기를 대신해 줄 수 없을 때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작가는 자신만의 그런 [고독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허망의 그림자조차도 초대하지 않은 채 스스로를 그런 시간과 장소로 몰고 가고 있었다.

언제부처 인지 나도 그런 순간을 자주 마주하고는 한다.

그런 [고독] 속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낮선 선술집에서 술을 초대했고, 시간을 불렀으며, 사람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그런 시간과 자주 만나게 되면서 나는 스스로를 돌아

볼 시간을 갖게 되었다.

다시 말해 나를 그런 사고 속으로 몰고 간 [고독]의 초대에 응하게 되었다.

혹자들은 이야기 한다.

고독해 봐야 자신의 모습이, 위치가, 관계가 어디에 있고,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이다. 삶에 급급한 현대인들은 물론 나 역시 고독할 시간이 없었다.

살기가 바빴고 또 현실이 급했기 때문이다.

[고독]을 불러들이면서 나를 돌아 볼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고독]과 끊임없는 대화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주인인 내가 초대한 에게 묻는다.

'힘들지?'

초대받은 는 답한다.

'그래, 너무 힘들어. 하지만 희망은 있어

주인인 내가 답하고 또 묻는다.

'네가 갖고 발견한 희망이 뭔지는 몰라도 열심히 뛰어 봐 좋은 날이 오지 않겠어?‘

초대받은 나는

'그래 알았어...열심히 뛸 테니 잘 보고 응원해 줘'

이런 대화가 자주 있다.

[고독]이라는 친구를 불러들이지 않으면 이런 대화를 할 여유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 힐링이 되어 감을 느끼고는 한다.

이런 대화가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종주먹을 들이대거나 허공에 감자를 먹이는

그런 날이 연속될 것이고 끝내는 목숨을 끊거나 도피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좀 더 나은 자신을 위한다면 또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한다면 작품의 제목처럼 '혼자인

내가 혼자일 수밖에 없는 스스로에게 [고독]이라는 친구를 초대해 심연 깊은 곳으로부터 또 다른

나를 불러 냉철한 자기 점검을 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제는 간만에 기도원에 간 마누라 때문에 부부침대에서 혼자 잤다.

예전에는 옆에서 초저녁부터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자는 마누라가 그렇게 미웠는데 어제는 왜

그리 보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해 봐도 나의 변덕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는 회사일이다, 친구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술 먹고 늦게 들어와 기계적인 취침과 기상을

반복하는 일상을 살아오다 모처럼만의 외출로 혼자 있게 돠어 부부 침대에 혼자 누워 있으려니

불현듯 나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다 지쳐서 숱한 날을 홀로 잠들었을 마누라가 생각난다.

무서웠고 심심했을 것이다. 나 역시 마누라가 없는 빈 방에 혼자 누워 있으려니 심심했고 무서웠

. 내가 이럴진대 마누라는 어땠을까? 혼자인 내가 혼자인 내게 물었다.

'혼자 있어 보니 네 옆에서 자는 사람 입장이 생각되냐?"고 말이다.

이전에는 혼자 있는 게 싫었고, [고독]이라는 단어 자체도 싫어했다.

바쁘게 살아도 모자란 판에 [고독]이 무슨 배부른 헛소리인가 하면서 헛웃음만 짓고는 했었던

그 옛날이 나를 비웃는 듯하다.

[고독]이라는 단어는, 혼자라는 단어는 인간관계, 사회적 지위, 경제적 능력과 전혀 별개로

어느 순간 불현듯 각자에게 다가설 수 있는 그런 단어임을 나는 오늘 확실히 확인하였다.

진정한 내가 ''답기 위해서는 혼자인 내가 혼자인 에게 끊임없는 질문과 함께 스스로를 돌아

보는 성찰의 여백을 항시 열어 놓아야 부지불식간에 슬쩍 다가오게 되는 [고독]이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짓누르는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게 됨을 알게 한 그런 날이었다.

그게 바로 혼자인 내가 혼자인 나에게 던져 준 지혜였다고 생각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부담없이 접하게 된 작품을, 부담 없이 기록해 두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았는

, 그런 가벼운 마음은 이내 더 큰 무게로 나를 은근슬쩍 찍어 누른다. 어쨌든 독후감을 대충

쓰려다 [고독]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작품이 던져 주는 문구들

- 행복을 느낄 줄 아는 것도, 그 느낌을 오래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것도 능력

- 여든이 넘어서도 쳐다만 봐도 좋은 여자로 남고 싶고, 성공한 할머니보다는 행복한 할머니,

  존경받는 할머니보다 사랑받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나의 버킷리스트)

- '좋은 사람 콤플렉스'를 과감히 던져 버리고, 제발 좀 뻔뻔스러워져야 한다.

- 인간은 혼자서 세상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혼자인 것이 아닐까?

- 불륜은 괴로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일상이 아닌 비밀이 되어야 하니까.

  일상을 나누는 그런 소소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니까.

- 우리는 언제나 남아 있는 사람들의 슬픔에 대해서만 말하지. 하지만 떠나는 사람의 괴로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일상을 공유하지 못하면, 서로가 서로의 일상이 되지 못하면, 사랑은 끝나고 만다.

  사랑하는 사람의 비밀이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투명 인간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 슬럼프는 '배터리가 10퍼센트 미만입니다'같은 경고 메시지 아닐까?

  위험하니 충전하라는, 스스로 좀 돌봐주라는.

- 뭔가를 선택할 때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으면 그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전히 이해받기를

  원하지만,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은 없다.

  '네 마음 다 알아'라는 말처럼 엄청난 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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