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평전 - 시대를 거역한 격정과 파란의 생애
허경진 지음 / 돌베개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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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 6

 

본 작품을 읽고 내가 당초에 작품으로부터 얻으려고 의도했던 결론내지는 의미에 접근

하지 못하는 아쉬운 점이 많이 남아 결말 부분만 세 번 다시 완독했다.

나도 허균 선생이 역적이 아니고 시대의 희생양(?)이자 당파 싸움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열심히 작품을 뒤적여 보았지만 솔직히 뭐라 딱히 역적이다,

아니다라고 선뜻 말하기가 뭐해서 추후 시간을 갖고 더 공부를 해 볼까하는 생각을

굳히는 선에서 작품에 대한 소회를 정리하게 되었다.

 

작품은 허균 선생의 작품과 또 그분의 행적과 관련된 이야기를 중심으로 작품을 전개

하고 있는데, 인간 허균에 대한 객관적 사실과 증거보다는 저자의 주관점 관점이 강하

게 전개 내가 느끼기기에 그렇다는 이야기다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정확한 사실

만을 알고자 했던 나의 기대를 살짝 벗어난 느낌이 든 작품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로,

허균 선생이 역적으로 몰리면서 그분과 관련된 작품 내지는 그분의 행적을 알 수 있는

여러 증거들이 함께 폐기된 관계로 후세에 전해 내려오는 일부 작품과 다른 역사

기록물에 언급된 내용을 근거로 작가의 창의적인 전개가 일반작품보다는 상당히 많은

분량 과거에 읽었던 작품 황진이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 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자의 주장에 선뜻 동의를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허균 선생은 홍길동전을 통해 잘못된 사회구조를 타파하려는 노력을 기우렸다는

것을 강조하는 부분과 허균 선생의 스승과 관련된 이야기와 그분이 저술했다는 호민론

(豪民論)‘, ’유재론(遺才論)‘ 등을 거명하며 서얼 차별철폐를 주장하고 민중봉기를 경고

했다고 하는데 나의 상식으로는 그런 행동이나 글을 함부로 세상을 향해 함부로 밝혔을

경우 당시 사회 구조상 큰 파급력을 줄 수 있어 자칫 극형에 가까운 형벌을 받을 것이

확실함에도 저자의 주장은 소설적인 재미를 더하기 위해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게하고 있다.

어찌되었든 작품만 놓고 보았을 때 그분은 자유주의자였고 민초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꿔온 이상주의자였다는 저자의 주장에 완전하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참고로 허균 선생이 그렇게 타파하고 싶어했던 서얼제도는 태종 때 우대언(右代言)

서선(徐選)‘이라는 인물이 서자에게는 벼슬길을 막자고 아뢰어 서얼금고(庶孽禁錮)

제도화된 뒤부터 서얼의 벼슬이 제한되었다고 한다.

 

작품을 들여다보면 허균은 성리학이 지배하던 유교 사회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자신만

독특한 행동으로 자주 벼슬에서 쫒겨났으나 그때마다 이조판서까지 지낸 큰형(허성)

뒷배경과 아버지 초당과 허균 삼형제의 능력을 인정한 선조를 비롯한 어린시절부터

돈독한 우정을 나눈 친구들의 도움으로 벼슬자리를 쉽게 되찾았다고 한다.

광해군 즉위 직후에 허균은 암행어사 장계에 의해 공주목사에서 파직되었고 천추사로

임명되었다가 사퇴 후 사헌부의 탄핵을 받기도 했고, 과거 시험의 채점관이 되었다가 시험부정 채점의 책임을 지고 귀향가기도 했으며 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큰형

허성이 세상을 떠나고 임금도 자신을 더 이상 신임하지 않음을 알게 되자 그는 정권의

핵심에 의도적으로 접근, 명분이 약했던 대북파 정권에서 자기 같은 문장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빨리 간파하고 당시 정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던 이이첨에게 접근한다.

영창대군이 강화도로 유배되어 위리안치되고, 부원군 김제남이 처형당하자 광해군과

이이첨은 영창대군의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폐비시키는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는데,

인목대비는 광해군의 법적인 어머니였으므로 를 가장 큰 덕목으로 내세우던

당시 상황에서 임금이 앞장서 조선 근간의 윤리원칙에 반하는 여론을 이끌 수 없었기에

이이첨이 후원하는 유생들이 동원하여 집단적으로 폐비를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리도록

조장하나 광해군은 외견상으로는 그들을 무마하는 척한다.

이를 무리없이 진척시키기 위해 설득력 있는 폐비 상소문이 필요했고,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허균이 선조와 이이첨에게는 필요했지만 끝내는 이이첨의 모략과 선조의

신임이 끝나면서 역모로 몰려 죽음에 이르게 된다

 

역모로 인한 죽음의 과정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보면

이이첨은 권모술수에 능해 대북파 정권의 배후 실력자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손녀딸이

세자빈이 되어 광해군 이후까지도 정권이 보장되는 실권자이기는 했지만 사림의 존경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가 인목대비곁에 있는 선조의 적자인 영창대군을 눈에 가시처럼 여겨 온갖

계책으로 그를 죽이려는 계획을 획책할 무렵, 허균에 대한 상소가 기준격에 의해 제기

되자 폐비를 주창하던 허균이 역적으로 몰리면서 그동안 준비해 왔던 폐비론까지 물거품이 될 것을 우려한 선조는 허균을 치죄하기를 주저하게 되는데,

한 때 같은 배를 탓던 이이첨은 허균의 역적 행실이 자신에게까지 미칠 것을 우려해 또

허균의 딸이 자신의 손녀가 동궁빈임에도 후사가 없는 상태에서 새로이 간택되어 세자의 후궁으로 간택되자 성균관의 후배이자 정치적 동맹인 허균의 위상이 높아짐에 위협을 느껴 허균을 제거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심복들을 움직이지만 뚜렷한 계기를 찾지 못한다. 그러던 중 허균의 측근 박응서가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데 이이첨이 주도해

허균가담한 역모로 판을 키우려 하나 제대로 허균을 엮지는 못한다.(계축옥사)

다급함을 느낀 허균이 기획하고 의식을 같이하는 친구들이 실행에 옮긴 별도의 모사사건(경운궁 투서사건, 남대문 벽서사건)의 심복 허인준이 잡혀 들어가 취조를 당하며

허균이 연루된 사건임이 밝혀지게 된다.

 

추국청에서는 주변인들의 진술만 갖고 대질 심문 없이 허균을 처리하자고 하나 광해

군은 역적의 괴수인 허균은 심문하지도 않고 서둘러 죽이려는 이이첨 일당에 대해 불신을 하게 되고 역적 모의 관련자까지 캐보고 싶었으나 이이첨은 허균이 혹시라도 자기를 끌고 들어갈까봐 그런 기회를 원천 봉쇄하는 한편, 감옥에 있던 허균을 찾아가 허균의 입을 막기 위해 조금만 참으면 풀려날 것이다라고 허균을 달래는 등 이중 플레이를 한다.

 

이이첨의 간계로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자신의 역모와 관련된 이의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처형이 집행된다.

처형된 후 신하들이 광해군에게

역적이 일어나면 엄히 국문하여 모든 것을 바로 캐어묻고, 하나도 숨김이 없는 뒤에

결안을 작성하여 형을 집행하는 것이 국가 고금의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허균의 경우는

그렇지가 못해서 몇몇 적들의 입에서 역모의 자백이 나오긴 했지만 허균 본인에겐

한마디도 묻지 않았으며 매 한 대도 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건의 전모를 확인하지도 못했습니다. 이제 남은 무리에게서라도 제대로 역모의 진상을 파악해야 합니다라고 건의하고 있다.

 

허균의 동지들은 짧은 기간동안 여러 사람들이 잡혀들어가 심문을 받아 고문 끝에 허위

자백을 한 자도 있으나 대다수는 끝내 자백하지 않고 매 맞고 죽은 자도 많았다고 하며

인조반정이 성공한 뒤에 억울하게 죽은 이들이 모두 누명을 벗었지만 허균에게는 당시

주어졌던 역적이라는 이름이 늘 붙어다니고 있다.

여하튼 허균은 성리학 중심의 조선 사회를 새로운 이념으로 개혁하려고 노력했었던 인물로 지배층에게는 허균이 경박한 패륜아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민중들에게는 모두 함께 어울려 사는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새로운 지도자로 보았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계시다. - 나보다 아는 지식이 더 많은 분이 그렇게 외치니 일단은 수긍할 수 밖에 없다

 

[허균의 시대적 환경]

- 성종은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훈구파를 견제할 목적으로 사림을 등용하려던 시기이며

  또한 여러 사화가 난무하던 시기로 각각의 사화 원인은 달랐지만 비판적인 사람진출

  을 달가워하지 않는 기득권 세력인 훈구파들의 반발이 있었다.

  , 사림의 관점에서 보면 사화는 부패한 특권 보수층에 대한 진보 세력의 끝없는

  도전이자 실패였고 수난의 시대였다.

 

[허균의 성장환경]

- 156911월에 초당 허엽의 막내로 출생, 아버지 초당은 첫 번째 아내와는 아들 하나

  (허성)와 딸 둘을 두었고, 두 번째 아내에게 아들 둘(, )과 딸 하나(난설헌)를 얻음

- 12살에 부친을 여의고 어린 시절은 형들로부터 교육을 받던 중 천재 시인으로 이름난

  손곡(蓀谷) 이달(李達)을 스승을 만난다. 그는 기생의 서얼로 태어난 신분이었지만

  허씨 집안에서 그를 스승으로 받아주었는데 서자도 아닌 그가 홍길동전을 짓게

  된 것은 스승인 이달이 개인적으로 평생 느꼈던 한을 사회 문제화한 것으로 보인다.

- 허균은 어린 나이에 엄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형들의 사랑을 받고 자란 관계로

  버릇이 없었지만 김씨를 아내로 맞으면서부터 마음에 안정을 얻고 글공부에 전념하나

  그 아내를 임진난 통에 잃는다.

-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길에 천주교의 교리와 서적을 들여왔고 성리학이 대세를

  이루던 당시 상황에서 불교를 믿었는데 당시의 기득권들은 그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가는 조선 사회의 근간인 성리학 사상이 무너질 것을 심히 우려했다고 한다.

- 특이한 점은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행동을 했는데 기생들과

  대놓고 놀러 다닌다거나 상중에 음주 가무를 하는 등 당시 통념으로는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자주해 사헌부로부터 탄핵을 받았다고 한다

 

[허 성, 허 봉 형들과 누이 난설헌]

- 형들의 공통점은 국제정세에 밝았던 인물들로 특히, 허 성은 동인이었지만 일본

  통신사 서장관으로 파견되어 당파에 휘둘리지 않고 일본 정세를 정확히 파악해 선조

  에게 보고하는 등 심지가 굳었던 인물이라고 하며,

  작은형 허 봉은 중국통으로 그가 기록한 하곡조천기(荷谷朝天記)‘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행(燕行)일기이며, 선조가 자신의 친할머니(명종 후궁 안빈)의 사당을 대궐에 봉안

  하려 하자 첩의 사당이라는 이유로 이를 반대하였고, 그가 경기도 순무어사로 재직

  당시 군기가 제대로 서지 못한 것을 보고는 관련 부사의 파면과 함께 병조판서 이이를

  탄핵할 것을 상소하는 등 충직한 인물이었지만 이이를 절대 신임하고 있던 선조의

  미움을 받아 관련자들과 유배되는 계미삼찬(癸未三竄)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추후 복권은 되지만 선조의 미움으로 도성으로 들어오지 못 한 채 죽음을 맞는다.

  허균 본인 역시 중국통으로 중국에 다녀올 적마다 중국으로부터 여러 문물을 들여와  

  국내에서 사익을 노렸던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선진 서적과 신문물을 들여오는 등

  선진학문 전파와 국민 편익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 그의 누이 난설헌은 안동 김씨 집안의 김성립과 혼인하지만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버림에 가까운 구박을 받았으며 정을 붙이고 살던 아이들과 뱃속의 아이마저 잃는 등

  기구한 인생을 살다 죽는다.

 

[임진왜란 당시 권력 지도부의 상황]

- 왜란을 피해 북으로 피신한 선조는 아들 임해군순화군을 함경도 쪽으로 파견

  하나 성질이 사나웠고 그의 하인들 역시 성질이 사나워 전쟁 중임에도 백성들의

  재물을 노략질하고 고을 수령들에게 금품을 강요하는 등의 패악질이 심하여 회령부의

  아전인 국경인이 두 왕자와 여러 원로대신 그리고 고을의 부사와 그의 가속들까지

  묶어서 적에게 넘겼음은 물론이고 왜적이 임명하는 벼슬을 받고 적을 위해 성을 지켜

  주는 반역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 허균이 외친 호민론(豪民論)]

- 천하에 두려워할 만한 자는 오직 백성 뿐이다. 평소에 위에서 시티는 대로 따르는

  항민(恒民), 불만을 느끼기는 하지만 힘이 없어서 원망이나 하는 원민(怨民), 다른

  마음을 품고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엿보다가 때를 만나면 자기의 소원을 풀어보려는

  호민(豪民)이 중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호민이다 

- 임금을 위해 백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임금이 있다고 하면서 그러한

  사명을 잊게 되면 나라가 망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경고하였고. 

- 임금이 백성을 기르지 않고 위에 앉아서 자기 욕심이나 채운 나라가 망한 것은 당연

  하며 견휜이나 궁예가 신라를 무너뜨린 호민이었던 것처럼, 조선왕조를 무너뜨릴

  호민으로 홍길동을 내세운 것이다.

  

작품에서 얻은 지식


- 내자시란 : 궁중에서 쓰는 쌀, 국수, , 간장, 기름, , 채소, 과일 등을 맡아보는 곳

- 예문관 : 임금의 칙령이나 교명을 기록하는 곳

- 중시(重試) 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계속 격려하는 뜻에서 특별히 실시하는 시험

- 사예 : 간추려내는 것을 산(, 깍을 산)이라 한다.

- 문장에서 잘못된 글자나 쓸데없는 글자를 깍아내리는 것, 또는 많은 작품 가운데 잘

  된 것만 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 칠비)는 작품의 마감이나 배경을 전체적으로 말한 것이고,

()은 어느 한 구절의 미감을 논하는 것이다.

- 시참(詩讖)이란 우연히 지은 시가 뒷일과 꼭 맞는 일

- 광해군의 처남인 문창대감 유희분은 평판이 아주 안좋았다.

- 승무원 : 외교 문서 담당 

- 중국 최초의 세계 지도는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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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들의 책사 - 조선시대 편
신연우.신영란 지음 / 생각하는백성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권유도 : 3

작품은 13분의 왕과 함께 국사를 논했던(?) 충신 혹은 악인들에 대한 간략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다.

[태조 : 정도전과 정몽주], [태종 : 하륜과 이숙번], [세종 : 황희와 맹사성], [세조 : 한명회

와 신숙주], [성종 : 김종직], [중종 : 조광조], [명종 : 문정왕후와 정난정], [선조 : 이이],

[인조 : 최명길과 소현세자], [영조 : 박문수], [정조 : 홍국영과 채제공], [순조 : 정순왕후]

[고종 :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

작품에서 언급된 개개인에 대한 업적 및 일부 이상한 인간들의 악행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에 정리하게 되면 아마도 개인당 하루 정도의 시간을 주어도 다 정리가 안 될

것이다. 나는 이 중 세 분과 관련된 잘 몰랐던 사실과 이면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작품에 대한 소회를 정리하고자 한다.

 

   1. 두문불출(杜門不出)과 황희정승(黃喜政丞)

 

고려가 무너지고 이씨조선이 건국되는데 고려의 많은 유생들은 이신벌군(以臣伐君,

신하가 임금을 치다)'에 분개하고 불사이군(不事二君, 한사람이 두 임금을 섬길수는

없다)’정절을 내세우며 고향을 등진다.

이들은 경기도 개풍군 광덕산 두문동(杜門洞)에 모여서 일체 외부로 나오지 않고

살았다.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이성계는 인재를 널리 모집하지만 인재다운 인재를

구하지 못하게 되자 그 연유를 확인해 본 결과, 인재라고 여겨지는 인물들 대개가 전부

두문동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이들을 회유하기 위해 많은 대신

들를 보냈으나 끝내 그들이 두문동에서 나오지 않자 태조는 산에 불을 지르고 두문동을 불태워 버린다고 겁박하지만 그들은 내려오길 거부하고 불에 타 숨지고 만다.

그 때 숨진 유생들이 72명이라 하여 "두문동 72"이란 말이 생겨난다.

당시 많은 선비들은 두문동의 인재들처럼 은거함에 따라 '두문동'이라는 이름은

은거의 상징이 되었고 두문동이라 칭하는 곳이 나라 안 여러 곳에 생겨났으며 이후 집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을 일컬어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 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사마천의 사기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이성계는 모든 정성을 다해 회유하고 설득하였으나 끝까지 두문불출한 개성 유생들에게 배신감을 느껴 향후 100년간 개성

유생은 과거를 못보게 하였는데 이때부터 개성 유생들은 생계를 위해 장사를 선택하게

되었으며 이들이 훗날 그 유명한 "개성상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때 황희(黃喜)라는 유생도 고려가 멸망하자 처음에는 두문동에 은둔하며 지냈는데

자신들의 이런 행동을 누군가 살아남아서 후세에 전해야 한다는 내부 논의 끝에 두문동

동료들의 간곡한 설득으로 두문동에서 나왔으며 야인생활을 하던 황희는 동료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벼슬길에 올랐는데 태종때부터 세종, 문종까지

3대에 걸쳐 왕들을 보좌하는 명재상이 된다.

그는 좌천 2, 파직 3, 귀양살이 4년이나 되었던 것을 보면 일반적으로 세상이 알고

있는 것처럼 그저 평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질시 속에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 태종이 등극한 후 형조, 예조, 병조, 이조 의 정랑을

거쳐 도승지의 전신인 지신사가 된 43세경부터 자기 소신을 펼치기 시작 했고 그 후

공조, 병조, 예조, 이조판서를 두루 역임하면서 태종과 함께한 18년 다시 세종과 함께한

27,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18년이나 하면서 <경세육전>,<국조오례>등을

편찬하여 법률과 제도를 정비하고 내치에 힘써 태평성세를 이룩함으로써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등 위업을 달성할수 있게 하였다.

세종 31(1449) 87세에 60여 년간의 관직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영의정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3년 후 90세로 한양의 석정동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세종대왕이 문병왔는데 재상을 20년 넘게 지낸 90세 노인이 초가

삼칸집 멍석자리 위에 누워있어 이를 본 세종대왕이 깜짝 놀라 이럴수가 있느냐고 하자

그는 태연하게

늙은사람 등 긁는 데는 멍석자리가 십상입니다.”

라고 했다고 한다.

 

초등학생 정도에게 들려줄 이야기이지만 오늘을 사는 소위 말하는 리더들은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하는 바이다.

 

   2. 맹사성(孟思誠)

조선 초기의 문신 맹사성은 황희와 함께 조선 최고의 재상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후세인들은 맹고불이라 하면 검은 소 등에 앉아 피리를 불고 있는 노인을 연상할

정도로 친근한 존재였다.

성격이 소탈했던 그는 외출할 때면 소 타기를 즐겼고 손수 악기를 만들어 연주했다.

집에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복장을 갖추고 예의를 다해 맞이했으며, 손님에게는

반드시 상석을 내줄 정도로 겸손했다. 실록에서는 그를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부드러워서 조정의 큰일이나 관직에서 일을 처리할 때 과감하게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 단점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황희는 세종 시대의 수많은 업적이 전해지지만 맹사성은 상대적으로 그 업적이

확실하게 기록되지 않았고, 야사를 통해 청백리로서의 소박한 삶과 진솔한 인품만이

부각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음률에 대한 지식과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 강호사시가통한 문학적 재능은 성군 세종이 그를 왜 중용했는지를 증명해 주고 있다.

 

그는 공민왕 9맹희도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3년 간 시묘살이를 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면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실렸을 정도의 효자라고 한다.

그는 정몽주와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27세의 나이로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쳤지만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고려를 사수하려던 최영의 사돈이었던 그의 집안에 모진 풍파가 몰려왔고 할아버지 맹유는 두문동 72현의 일원으로 은거하다 불타 죽었고, 함께 두문동에 머물던 아버지(맹희도)는 충청도로 도망쳐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그는 곧 세상의 변화를 인정하고 아산에 있는 최영의 집에 금곡서원을 세워

유학전파에 몰두하는 한편 아들 맹사성에게 출사를 종용한다.              

 

그는 원칙주의자인 허조와 일벌레 황희사이에서 원만하게 사안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수많은 인재들이 등장하여 새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과학입국의 미래를 다져

나가던 그 시기에 신료들의 개성과 자율 속에서 드러내기 쉬운 아집과 독선을 조율해주는 따뜻한 존재였다.

세종은 즉위 이후 문치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황희와 맹사성, 윤회 등 세 명의 정승에게

조정의 대소사를 나누어 담당하게 했다. 성격이 분명하고 강직한 황희에게는 주로 인사, 행정, 군사 권한을, 부드럽고 섬세한 맹사성에게는 교육과 제도 정비, 사교성이 뛰어난 윤회에게는 상왕 태종과의 중개자 역할과 외교 활동을 맡겼다. 과거를 통한 인재 등용은 맹사성과 윤회에게 분담시켰다.

맹사성은 악공을 가르치거나, 시험 감독관이 되어 과거 응시자들의 문학적, 학문적

소양을 점검하는 일에 종사했고 평생 임금의 뜻에 따라 조용히 소임을 다했지만 마냥 예스맨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다.

세종이 말년에 소헌왕후와 영응대군 등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궐내에 내불당을 설치하려 하자 조선이 유교 국가임을 내세우며 신료들과 함께 강력하게 반대하지만 세종이

권도를 내세우며 완강하게 내불당 건립을 밀어붙이자 임금의 친위세력이던 집현전

학사들까지 끌어들여 맞섰던 인물이다.

 

세종은 우의정 맹사성에게 예악의 정비를 총괄하게 하여 세종 12년에는 제사 아악보와

조회 아악보를 완성하는 등 각종 악보를 만듦으로써 조선의 공식의례음악을 완성시켰다. 또한 세종은 아악의 정리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정확하게 연주할 우리의 악기 제작을 독려한 결과 1423(세종 5) 정양과 남급의 노력에 힘입어 금, , 대쟁, , 봉소 등의 악기가 만들어졌다.

이듬해에는 화, , 피리, , 지 아쟁, 가야금, 거문고, 향비파도 완성되었다.

세종대에 여진족으로 인해 국경이 혼란스럽자 맹사성으로 하여금 정벌 작전을 주도적

으로 기획하도록 했다. 최윤덕을 중심으로 한 정벌을 완수한다.

맹사성은 평소 하인이나 노비에는 관대했지만 중요한 직책을 맡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엄격했는데 일찍이 김종서의 자질을 알아본 그는 사소한 잘못도 엄격하게 따져 묻고,

방종을 경계함으로써 북방의 사자로 조련시켰으며 이후 김종서를 병조판서로 천거해

자신의 뒤를 이어받을 정승으로 추천하기까지 했다.

 

76세의 고령으로 조정에서 물러난 맹사성은 향리 온양에서 노후를 보냈다. 청백리답게

말년은 소박했다. 바깥 출입은 언제나처럼 소를 타거나 걸어 다녔고, 식량은 조정에서

지급하는 녹미(祿米)로 만족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람 정승 출신이 아니라 평범한

노인인 줄 알았다고 한다.

 

   3. 최명길

이항복(李恒福) 문하에서 이시백(李時白장유(張維) 등과 함께 수학했으며 병조좌랑으로 국내 정치문제와 관련한 조선인의 명나라 사신 일행과의 접촉 금지를 둘러싼 말썽으로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그 뒤 어버이의 상을 당하여 수 년 간 복상(服喪)한 뒤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는데,

이 무렵은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유폐 등 광해군의 난정이 극심할 때로 인조반정에

가담,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이 되어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에 봉해지며 그후 이조

참판, 홍문관부제학, 사헌부대사헌 등을 거쳤다.

 

1627(인조 5) 정묘호란 때, 국력의 나약함에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후금과의 강화를

역설하여 화의를 성립시키나 후금군이 돌아간 뒤에도 많은 지탄을 받는다.

또 계운궁 신주(神主)의 흥경원(興慶園: 인조의 생부, 뒤에 元宗으로 추존) 합부(合祔:

신주를 한 사당에 모셔 놓고 한 곳에서 제사지냄)에 따른 문제로 옥당(玉堂)의 배척을

받았으나 인조의 배려로 외직인 경기관찰사로 나갔다.

다시 우참찬·부제학·예조판서 등을 거쳐 1632년부터는 이조판서에 양관(兩館: 홍문관과

예문관) 대제학을 겸임할 즈음 후금은 명나라에 대한 공격에 조선이 원병을 보낼 것과

국경개시(國境開市) 등을 요구하지만 조선에서는 절화(絶和: 화의를 단절함)가 높아지는데 그는 당장 후금의 요구에 어느 정도 응하면 몇 년 간은 무사할 수 있으니 원망을

불러 일으켜 병화(兵禍)를 재촉함은 바른 대책이 아님을 지적한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일찍부터 척화론일색의 조정에서 홀로 강화론을 펴 극렬한

비난을 받으나, 난전(亂前)에 이미 적극적인 대책을 펴지 못한다면 현실적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다고 강화론을 계속 펼친다.

이 해 겨울 이조판서가 되어 청군(淸軍)의 침입으로 인조를 따라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주전론 일색 가운데 계속 주화론으로 일관하지만 정세가 결정적으로 기울어져 인조가

직접 나가 청태종에게 항복한다.

이 때 진행 과정에서 김상헌(金尙憲)이 조선측의 강화문서를 찢고 통곡하니, 이를 주워

모으며 조정에 이 문서를 찢어버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또한 나 같은 자도

없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 할 정도로 사리명분이 확실한 인물이었다.

 

청군이 물러간 뒤, 흩어진 정사를 수습하는 데 전력을 기우리며 한편 청나라에 사신으

가서 세폐(歲幣: 매년 공물로서 바치는 폐물)를 줄이고 명나라를 치기 위한 징병

요구를 막지만 임경업(林慶業) 등이 명나라와의 내통하고 조선의 반청적(反淸的)인 움직임이 청나라에 알려져 청나라에 불려가 김상헌 등과 함께 갇혀 곤욕을 치르는 등 책임을 스스로 다하다 1645년에 귀국하여 계속 인조를 보필하다가 죽었다.

 

성리학과 문장에 뛰어나 일가를 이루었으며, 글씨에 있어서도 동기창체(董其昌體)

이름이 있었다. 특히, 한때 양명학(陽明學)을 독수(獨修: 혼자서 은밀히 공부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교우 장유나, 계자(系子) 후량(後亮) 및 손자 석정(錫鼎) 등의 경우에도

양명학을 공부하여 강화학파의 기틀을 이루었다 한다. 저서로 지천집19권과 지천주차(遲川奏箚)2책 등이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내가 후손들이 오늘도 우러러보는 여러 분의 책사들을 작품이 소개했음에도 굳이 세 분만 여기에

옮겼는지 우리의 위정자들께서는 깊이 숙고해 주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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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사람 공부 - 우리 시대의 언어로 다시 공부하는 삶의 의미, 사람의 도리
이황 지음, 이광호 옮김 / 홍익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추천권유도 : 3.

     

속았다!’라는 말로 작품의 소회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작품을 선정한 보람을 절대 찾을 수 없다는 느낌에 하도 억울해서 두 번씩이나 진짜

숙독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 이 산이 아닌가봐!’였다.

작품을 소개한 출판사의 승리라는 것이다.

퇴계선생이 던져준 무게와 작품 제목이 던져주는 기대감으로 인해 아무 조건없이

작품을 선정해 읽었는데.....아무 것도 건진 게 없다.

 

작품은 시종일과 도연명<거처를 옮기며>, <술을 마시며>라는 시를 읽은 뒤

거기에 화답(?)하거나 그 시를 응용해 퇴계선생이 만든 시를 올려놓고 평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퇴계의 시가 어떠하다느니, 내용이 본받을만 하다느니, 이시는 이런 이유로

만들어졌다느니 사람공부와 전혀 관계없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작품으로 저자가 이야기하는 해당 시를 읽어보지도 못한 이들에게 자괴감을 들게하고 있었고 심지어 <시경>

과 퇴계의 <고경중마방>, <도산잡명>, <우산장> 등과 같은 듣도보도 못한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퇴계의 사상이 어떠하다느니 사람보는 안목이 달랐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어이 상실 그 자체다.

  

또 소제목 진리를 기르는 암자에서라는 단원에서 이야기되는 사항은 거의 퇴계

가족사, 고향, 뜬금없는 고려때 은인 이자현에 대한 이야기로 페이지를 메우고 있는데

한마디로 이 작품은 출처모를 시 해설서나 기행문에 가까운 작품집이지 퇴계선생의

관점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사람 공부에 대한 작품은 아니라고 단언하고 싶다.

긴 이야기해봐야 내 손가락만 아플 것 같다.

 

그래도 뭔가 느낀 게 있을 게 아니냐고 묻는다면 학교에 대한 이야기와 임금에게 올리

여섯가지 제언정도 외에는 참고할 만한 내용은 없었다고 본다.

한마디로 짜증나는 시간이었다.

 

재미난 사실은 퇴계의 애제자 중 한 명으로 임진왜란과 관련된 허위보고(?)를 한

김성일이라는 인물이 있다는 것이다.

고매하고 덕망이 높으신 퇴계 선생 밑에서 배운 제자가 허위보고를 하는 인물이

나온 걸 보면 퇴계 선생도 사람보는 안목은 그리 높지 않았던가 아니면 제자를 잘못

길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여하튼 사람공부는 쉽지 않은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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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최고를 이끌어낼 것인가 - 사람을 움직이는 특별하고 비범한 영향력
팀 어윈 지음, 허성심 옮김 / 미래의창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추천권유도 : 9

 

말의 힘이란 것은 정말 무섭다.

그것도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의 말이란 그 어떤 무기나 파괴력보다 힘이 크기 때문에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조심에 조심을 더하는 발언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치분야는 거의 막말 컨테스트 수준을 넘어서 막장

컨테스트 경진대회 수준에 이르고 있어 참으로 한심스럽기 그지 없을 따름이다.

나도 뽑지 않아 별로 마음이 안 가는 통수권자이지만 국민 대다수가 뽑았고 그 분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임기라는 것이 보장해 주었으면 해당기간 동안 춘향인줄 알고

뽑았더니 향단을 뽑는 우를 범해서 해당 인물을 끌어내렸으니 너도 당해 봐라

식으로 어깃장을 놓으려는 일부 몰지각한 인간들은 좀 정신을 차렸으면 한다.

민주주의 국가의 구성원이라면 어찌되었던 간에 국민의 대다수가 선택해 뽑은 이상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지랄하지 말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대응하거나 그것도

저것도 싫으면 그냥 침묵하면 될 것이고 침묵도 싫으면 속세를 끊고 혼자 살던지

해야지 그것도 저것도 아니니 참으로 답답하다.

어찌 되었던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이지만 우리가 뽑은 분의 임기만큼은 믿고,

따르고, 격려하고, 지지해줘서 국정을 잘 이끌도록 마음의 응원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잘잘못을 따져도 따지고 난리를 치던 욕을 할 것이다.

아무리 미워도 할 말과 안 할 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터진 입이라고 나오는대로

욕하고, 나불거리고 있으니 그런 인간들의 인격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그들을 보면 어떻게 최고를 이끌어 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최악을 만들 것인가

라는 생각만하고 있는 듯하다. 좀 자중했으면 한다.

일부 생각없는 무뇌아들은 자신이 막말할 때 자신의 존재감이 UP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러면 내가 진짜 그런 분 세상 사람들이 UP되게 해 드릴 수 있는데.....

한 번 마음 먹고 해 드릴까요?

 

인생에 있어 타인에게 힘이 되는 말 한마디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내포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할 것이다.

특히, 조직을 이끄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타인의 인생에 특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그것도 상대방을 긍정할 때 변화가 더욱 극적이고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이런 원칙에서 출발해 우리 모두는 크게는 회사, 작게는 한 가정의 조직원이다.

그런 조직 속에서 어떻게 하면 조직원들에게 의욕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면 아무래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 아마도 내적 동기를 길러주는 것에서

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내적 동기 유발의 방식건설적 비판을 할 때

보다 긍정할 때 더욱 효과적이고 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는데 전적으로 동감되는 대목이었다.

따라서 작품을 읽은 사람이라면 작품 내용 전체를 몰라도 한 가지만 알면 이 작품을

읽은 효과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바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이것이다.

 

가장 강력한 긍정은 다른 사람이 그가 지닌 장점과 능력을 알아봐 줄 때 일어나며

그 종류를 막론하고 그러한 긍정은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며,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큰 긍정은 우리가 영향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신념을 심어

주고, 신념은 새로움에 도전할 수 있는 기대를 만들어내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실생활에서 발전적인 비난이나 힐난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잘못된 인식에 사로잡혀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안일한 방식으로

격려를 빙자한 비반이나 힐난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작품은 그런 행위는 단기적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성숙하고 자발적인 인재로 특정 개인을 발전시키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작품은 특별하고 비범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리더십이며 특별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리더십은 타인에게 순종을 강요하기보다 스스로 선택하게 할 때

극대화되는 것으로 특별한 영향력을 발휘해 주변 사람에게서 최고의 역량을 끌어내고 싶다면 반드시 긍정의 기술을 습득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직장 생활을 경험해 본 나는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우리의 기업 정서에서는 리더들이 조직원들의 능력을 최고로 이끌어 내려 노력하지

않아도 좋으니 열심히 하고 있는 직원들 기()를 죽이는 발언이나 자제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노자의 말씀 한 구절을 알려주고 싶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몸이 부드럽지만 죽으면 굳어진다. 초목도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말라 버린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자는 죽음에 가깝고 부드럽고

약한 자는 삶에 가깝다고 말이다

 

책으로부터 얻은 이야기들

- 구성원들의 능력이 조직의 운명을 결정한다.(P 19)

- 리더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업 지향적 측면뿐 아니라 구성원의 정서적, 관계적

  측면을 중시하는 데에도 반드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P 30)

- 올바른 지지와 긍정은 거부할 수 없는 욕구를 충족시킨다. 깊은 긍정은 우리의 내적

  자아까지 전달되고, 우리가 열망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P 39)

- 진심 어린 지지와 긍정은 단순히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하는 것과 커다란 차이가 있다.

  칭찬은 본질적으로 깊이가 없는 사교적 의식이며,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하는 사회적 관습에 완벽히 들어맞는 행위다.(P 45)

- 긍정은 특정 조건만 충족된다면 우리를 완전히 달라지게 만든다.(P 46)

- 위대한 리더들은 우리 머릿속에 내재된 부정성 편향을 이용하려 들지 않는다.(P 52)

- 리더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전달하느냐이다(P 69)

- 조직원의 직무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P 77)

   1) 행동 이면에 숨겨진 역량을 긍정하라

   2) 리더는 조직원이 올린 성과가 왜 중요한지 그 맥락을 언급해야 한다

   3) 긍정은 시의적절해야 하고 실시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4) 피드백보다 신뢰가 선행되어야 한다

   5) 피드백을 줄 때는 진심에 우러나온 긍정이 필요하다

- 일과 역량을 긍정하는 것은 개인의 유효성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인생의 말로 그 사람의 코어에 도달해야 한다.

  코어란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는 자아와 인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P 88)

  시간이 흘러 코어에 뿌리내린 신념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P 102)

  코어에서 비롯된 표현을 비난할 경우 이를 들은 사람의 인격은 피폐해진다.

  이는 곧 자아존중감에 영향을 미친다.(P 116)

- 스타일과 역량은 우리를 유효한 존재로 만드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다. 이에 비해

  코어는 우리를 강한 리더로 만드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P 94)

- 인생의 말이 지닌 10가지 핵심가치(P 96)

   1) 진실성   2) 용기  3) 겸손   4) 판단력        5) 진정성

   6) 자기조절 7) 지혜 8) 솔직함 9) 회복탄력성 10) 영향력

- 인생의 말을 건네는 가장 좋은 방법( P 103)

   1) 자신의 코어를 온전히 유지하고 있어야 하고 자신의 코어에서 우러나야 한다.

   2)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3) 신중하게 생각해서 말을 해야 한다.

   4) 알맞은 어휘를 써야 한다.

   5)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6) 사려 깊고 진심에서 우러나오기만 한다면 즉석에서 하든 계획적으로 하든

      상관없다

   7) 말을 할 때는 오롯이 상대방에게 집중해야 한다.

- 인생의 말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앞으로 직면하게 될 중대한 도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P 105)

-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으로부터 비난이나 조롱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말을 듣게

      되면 영혼이 짓밟힐 수 있다.(P 109)

- 중요한 사람에게서 인정받지 못하고 비난을 받으면 자신은 그다지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스스로에게 보낸다따라서 일에 대한 피드백이 아닌 인격에

      대한 비난은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진다.(P 112)

- 가장 유해한 문화 중의 하나가 과거 들추기이며(P 119) 건설적 비판에는 건설적인

  요소가 없다는 것이다.(P 121)

- ‘동맹적 피드백을 적절히 활용하라. 이것은 개인이 신봉하는 가치관과 열망을 조직의

  가치관, 사명, 전략, 목표에 맞추는 방법으로 이를 실행하기 위한 조건은(P 132)

   1) 인간의 뇌는 부정성 편향이 있음을 항상 기억하고 이를 피하도록 해라

   2) 집중력이 필요하다.(준비성과 적절한 타이밍)

   3)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하는 말은 피드백이 아니라 학대이다

      (IPOU : I’m proud of you)

   4) 피드백을 할 때는 반그시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동기가 있다고 생각하라

   5) 피드백을 제공할 때 바라는 것은 상대가 자신의 행동이 자기 열망을 방해하는

       잠재적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6) 동기 부여와 도전 의식을 동시에 제공하는 피드백이 중요하다

   7) 피드백을 제공할 때는 항상 전문가답고 어른스러운 어조를 유지해라

   8) 사람이 아닌 사안을 문제삼아라

- 동맹적 피드백은 개선이 필요한 행동과 피드백을 받는 사람의 희망과 꿈 그리고

  열망을 연결시키는 것이다.(P 250)

- 고통은 성장을 촉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밑거름(p 152)

  사람은 누구나 충분한 시간과 충분한 스트레스가 있어야 본 모습을 드러낸다.(p 157)

- 팀이 좋은 성과를 냈을 때 인생의 말로 우리에 대한 긍정을 강화하는 데는 네가지

  차원의 접근법이 필요하다.(p 183)

   1) 팀 구성원들에 대한 존중 

   2) 모든 팀원들에게는 개방성과 솔직함이 요구된다

   3) 감정적, 정신적 참여가 중요하다 

   4) 팀원 각각에 대해 공감해야 한다.

- 높은 잠재력을 지닌 직원 혹은 리더를 하이포라고 한다이들을 최고의 능력을 발휘

  시키기 위해서 해야 할 특별하고 비범한 영향력?(P 203)

   1) 하이포의 역량과 스타일을 긍정하라

   2) 적극적으로 코어를 형성하고 지킬 수 있도록 격려하라

   3) 하이포에게 지위 권력이 아닌 영향력을 발휘해 다른 사람들을 이끌라고 격려하라

   4) 하이포가 용기를 기를 수 있도록 도와라. 가장 중요하다.

- 유능한 리더가 탈선하는 이유(P 207)

   1) 자기인식 부족    2) 오만함    3) 경고신호 무시    4) 합리화     5) 탈선

- 아이가 특정 나이에 겪을 수 있는 역경을 차단하는 것은 회복력이라는 중대한 자질을

  개발할 기회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P 265)

- 내가 성장시키고 싶은 가족, 친구, 동료 직원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인생의 말을

  해주고 그들을 긍정하는 노력을 기우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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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마지막 공부 - 마음을 지켜낸다는 것 다산의 마지막 시리즈
조윤제 지음 / 청림출판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권유도 : 7

참으로 지난한 시간이었다.

읽어도 읽어도 내려오는 눈거풀과 하품 속에서 도덕은 출장가고 사리사욕만이 보초

서고 있는 이런 시대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글을 읽는 내 자신이 참으로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으나 - 그런 글을 쓰시는 분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 ,

사회의 깨진 유리창으로 존재하지 않기 위해 개인적인 수양을 위해 작품을 선정해 읽게 되었고 지금도 그런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제목만 보면 다산 선생의 공부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작품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사항인 마음‘, 행동거지등과 같은 정신 수양에 대한 내용으로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도리에 대해 성현 말씀 위주로 논어를 비롯한 많은 고전과 경전

에서 차용해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이하고 계시다.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런 복잡다단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정녕 이런 글이 통할까 하는 내가 품었던 의구심에 대해 저자께서도 작품(261)에서 밝히고 계시는데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옛날과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바로 사랑과 배려의 , 정의의 

 義, 질서를 위해 지켜야 할 , 인격의 완성과 바른 판단을 위해 필요한 .

 물론 오늘날에는 이러한 기준을 꼭 지켜야 한다고 강제되지는 않는다.

 그 선택은 개개인에게 달려 있고, 법에서 제한하는 것만 넘지 않는다면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결이 달라지는 순간들이 있다.

 비록 법이 규제하는 범위 안에서라고 해도 이익과 욕망을 취하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삶과 스스로의 양심에 따른 삶은 그 자치와 품격이 다르다]

이 문구를 통해 나는 내 나름대로 이 작품을 선정한 목적을 재차 확인할 수 있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찬찬히 숙독에 임할 수 있었으며 시간이 되면 다시 몇 번이고 읽어볼

요량으로 마음을 다 잡고 읽기 시작했다.

읽으며 혼자 생각해 본다.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내용대로 오늘을 산다면 제대로 살 수 있을까를 말이다.

아주 힘들고 지난한 자신과의 싸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사항,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보니 작품이 던져

주는 내용과 가르침에 대한 이행 의지는 나의 '자유의지'인 이상 더는 저항을 못하겠다는 생각 밖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반 백을 넘게 살고 있는 나 스스로를 철저히 그리고 천천히 돌아보게 하는 문구로 가득했으며 절로 고개가 수그러지고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분도 많았으나 그래도 지금 그 모든 것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스스로 만든 것 같아 그나마 안위를 하고 있다.

솔직한 심정으로 조금만 비겁하고 비딱하게 살면 편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책장을 넘기는 순간순간마다 내 마음을 무겁게하여 가뜩이나 머리나쁜 나를, 심성이 고르지도 못한 나를 아주 힘들게 하였지만 이제부터라도 거듭나고 싶어 읽고 또 읽었으며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살고자 하는 내게 큰 가르침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갖게 한 문구가 작품 서문에 가득히 나열되어 있었다.

- 붙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는다.(공자)

-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고난을 이겨내는 힘이며, 학문의 끝이자 결론.(심경)

- 가난과 고난과 근심 걱정은 그대를 옥처럼 완성한다.(근사록)

- 역경과 곤궁은 호걸을 단련하는 도가니와 망치다.(채근담)

- 세속의 길에서 벗어나 진정한 학문을 할 수 있는 여가(다산)

아래 정리된 문구들은 나의 입장에서 기록된 것이고 작품 전체로부터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작품 전체를 꼼꼼히 곱씹어 읽어봄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짧은 식견과 얕은 성찰로 작품이 전해주려 하는 내용을 왜곡시키고 싶지 않아 있는

그대로 감동한 그대로의 문장을 여기에 정리해 보았다.

 

   [서 문]

-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고난을 이겨내는 힘이며, 학문의 끝이다.

- (근사록) 가난과 고난과 근심 걱정은 사람을 옥처럼 완성한다.

  (채근담) 역경과 곤궁은 호걸을 단련하는 도가니와 망치다.

              ---> 고난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으며 고난을

                     이겨내고 큰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난을 받아들이는 긍정적

                     인 마음이 있어야 한다

- 곤궁에는 운명이 있음을 알고, 형통에는 때가 있음을 알고, 큰 어려움에 처해도 두려

  워하지 않는 것이 성인의 용기다.(공자)

  ---> 자신이 겪는 고난에도 반드시 그 의미가 있음을 알고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 공부는 결국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과정이다. 마음을 잃고 상처를 받는 사람들은

   대개가 다른 사람과 비교된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 마음이란 붙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는다.(조즉존 사즉망, 操則存 舍則亡)(공자)

  

[약동섭천(若冬涉川 : 당당함은 삼가고 반추하는 데에서 나온다)]

 

1. 지도자는 그 무엇보다도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2. 욕심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다.

- 이익을 좇더라도 의()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올바른 것을 따른다면 천리를 따르는

  것, , 도심이 되는 것이다. 도심이란 인심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쓰는 것

3. 인간에게는 중심이 있어야 한다.

- 세상의 근본 도리는 지남침도 미치지 않음도 없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가장

  적절하고 조화로운 상태를 말한다. 중용이 뜻하는 바다.

- 한 걸음 물러서서 남의 일을 관찰하듯 스스로를 객관적이며 합리적으로 볼 수 있다면

  감정에 지배받지 않게 될 것이다

   ※ 바르지 않은 길에서 맘출줄 아는 사람이 바른 길을 갈 수 있다 

4. 자신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어야 한다.

- 하늘의 뜻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修人事待天命)

- 하늘의 뜻을 얻기 위해사는 의()에 기반을 두고 있어야 한다.

-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은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어떤 자리에

  있든지 반드시 지켜야 할 대목이다.

- 스스로를 의심하는 사람은 남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를 믿는 사람은 남을 의심하지

  않는다.                                                                                     (명심보감)

5. 비범한 힘은 평범한 일상에서 축적된다

- 일상을 소홀히 하면서 큰일을 이루는 사람은 없다. 진정한 위대함은 작은 일에 대한

  따뜻한 관심, 소소한 일상에서의 충실함에서 비롯된다.

6. 당당함은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에서 나오며, 지도자는 입이 아닌 등으로 말한다.

- 고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란 단순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상과

  지혜를 모아놓은 철학서와 같았다. 그래서 공자는 시를 모아 놓은 책은 스스로 편찬

  하고 시경, 경전(輕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 공자는 시를 자신의 도와 학문을 완성하는 소중한 도구로 삼았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

  갈 때도 반드시 도움이 되는 공부라고 가르쳤다

- 옥구슬의 흠은 갈아서 없앨 수 있지만 말의 흠은 없앨 수 없다. 가볍게 말하지 말고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 내 혀는 아무도 잡아주지 못하니 해버린 말 쫒아가 잡을 수

  없도다.

- 신독(愼獨),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성찰하기 위해 혼자 있을 때 더욱 삼간다는 뜻.

  진정한 신독이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스스로의 마음을 깨끗하고 신중하게 다듬는 것.

- 감춘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없고, 작은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는 데서 삼간다.(중용)

* 우리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지만, 시대가 나를 휘감고 내가 시대에

  살고 있는 한 삶에서 비겁해질 수 밖에 없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생의 비겁함을 인정

  하고 화해하는 것이다. (정약용의 고해) 

7. ’()‘중용의 핵심적인 개념이다. 그 위대함의 시작은 바로 평상시의 삶이다.

   겉으로는 근신함으로, 속으로는 진실함으로 평상시의 삶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

   하늘의 도인 ()‘을 이루고 보전할 수 있다.

   용()은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일상을 돌아보며 노력했던 소소한 과정이 쌓인

   끝에 태어나는 것이다  

8. 겉과 속을 같게 하기보다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또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공부는

   진정한 공부가 아니다. ()은 사람이 머물러야 할 편안한 집이고, ()는 사람이

   걸어가야 할 바른 길이다. ,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

9. 어른이란 사소한 것에서부터 상식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10. 덜어냄은 과도한 것을 덜어내는 중도를 취하는 것이다. 덜어낼 때에는 반드시 믿음

     과 진실에 기반을 두고 합당한 이치를 따라야 한다.

     덜어냄은 바로 사람의 헛된 욕심을 버리고 본질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또한 덜어냄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를 잘 맞추어야 한다.  

11. 화가 날 때는 어려움을 생각하고, 이득이 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의로운지를

     생각한다.  

12. 인간은 격정에 휘말릴 때가 아니라 잠시 멈췄을 때 오히려 스스로의 존재감을

     똑똑하게 느낄 수 있다  

13. 물극필반(物極必反) 모든 사물은 극에 다다르면 반전이 생긴다는 뜻으로 세상사는

     반드시 차면 기울고 기울면 이윽고 차는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 큰 성공을 거두더라도 교만하지 말라  

14. 타인의 허물을 보면 스스로의 빈 곳부터 점검하라.

     ()으로 옮겨가는 것은 바람처럼 빠르고, 허물을 고치는 것은 우레처럼 맹렬해야

     한다.     

15. 개과천선을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태도는 겸손이다.    

     ()은 도량에 따라 커지고, 도량은 식견에 따라 커진다(채근담)

     ()을 따르기는 산을 오르듯 어렵고, ()을 따르기는 담이 무너지듯 순간이다. 

16. 공자는 자신의 학문롸 철학은 많은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니라 서(, 용서할)

     , 배려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

     ()는 공자 철학의 핵심인 인()을 생활에서 실천하는 강령이며, 공자의 학문을

     하나로 집약하는 이치다.  

17. 인간의 일에서 가장 긴박하고 중요한 때에는 잘못이 벌어진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다  

18. 공자는 네 가지를 절대로 하지 않았다.

     1) 사사로운 뜻을 품지 않았고                     2)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일이 없었다

     3) 고집을 버렸다                                     4) 아집을 버렸다  

19. 지혜로운 자는 자신을 알고 어진 자는 자신을 사랑한다(공자)  

20. 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정리하는 처세의 기술이 아니다. 스스로를 솔직하게 들여다

    볼 줄 아는 마음이다.  

21. 평소에 지낼 때는 공손하고, 일을 할 때는 경건하며, 사람을 대할 때는 진실하게

     행하라.  

22. 마음이란 구걸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먼저 타인에게 마음을 다했을

     때 비로소 남의 마음을 물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23. 하늘이 명한 것을 본성()이라 하고, 본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하며, 도를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고 한다.  

24. 아직 드러나지 않은 평온하고 안정적인 상태를 중()이라 하고, 중은 하늘이 준

     선한 본성이므로 천하의 근본이 되는 것. 그리고 희로애락의 감정이 질서에 맞게

     발현해 조화롭게 되는 것을 화()라고 한다.

     

[거피취차(去彼取此 : 이상에 취하지 말고 일상에 몰두하라)]

1. 군자의 잘못은 예로 막고 소인의 잘못은법률로 막는다.(명심보감) 

2.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은 남이 아니라 자기 양심에 달려 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용납할 수 있어도 자신의 양심에 거리끼다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3. 군자는 움직이지 않아도 공경을 받고, 말하지 않아도 설득된다.

4. 자존심이란 타인이 나를 무시했을 때가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에게 거는 기대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부끄럼움을 느낄 줄 아는 감정이다  

5. 가장 나쁜 거짓은 스스로에게 행하는 거짓이다.

   잠깐 동안 겉을 꾸밀수 있어도 내면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우러나오지 않는 행동은

   계속하기 어렵다.  

6. 우리는 오직 우리의 것인 오늘에 충실해야 한다. 오늘은 어제와 내일을 잇는 다리다.

    따라서 오늘에 성실함을 채워나가야 비로소 과거는 과거가 되고, 미래는 미래가

    된다  

7. 바른 마음을 갖기 위해 피해야 할 네 가지 마음 상태

    1) 분치(忿懥) 분노와 원망                           2) 공구(恐懼) 무서움과 두려움

    3) 호락(好樂) 좋음과 기쁨                           4) 우환(憂患) 근심과 걱정  

8.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되 물들거나 흔들리지 마라  

9.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했을 때 화를 내지만 실상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쉽게

    자존심을 다치게 되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때의 분함을 참으면

    백날의 근심을 면한다. 이 참음의 힘을 주는 것은 수신정심이다.  

10. 주변을 바꾸고 싶다면 자신부터 바꾸고 스스로를 바꾸고 싶다면 마음부터 지켜라  

11.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습관으로 만들어라  

12. 감성이란 축적된 지식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다. 타인을 마치 자신처럼 이해

    하고 받아 들이고자 하는 노력이 쌓여 몸에 새겨져야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13.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공부하며 축적해갔던 사유의

    시간만큼은 머리가 아닌 몸에 새겨진다  

14. 마중지봉(麻中之蓬) 구불구불하게 자나는 쑥도 곧게 자라는 삼밭에 있으면

     곧아진다.  

15.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행동은 바로 나쁜 것들이 마음을 차지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다  

16. 나를 지킨다는 것은 외부의 모든 자극을 막고자 스스로를 비우는 고립이 아니다.

     내부를 좋은 것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17. ()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의 본질이며, ()은 그 도를 추구함에 따라 드러난

     모습

18. 욕망과 타협을 반복하면 습관이 된다. 습관이 오래 되면 천성이 된다.

     따라서 스스로 변화를 원한다면 어제까지의 습관을 오늘부터 단절해야 한다  

19. 견리사의(見利思義) 이익이 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의로운지를 먼저 생각하라.  

20. 반구저기(反求藷己) 일이 잘못되었을 때 다른 사람의 탓을 하거나 변명거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21. 경험에 휘둘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라   

22. 진정한 어른이란 살아온 경험과 겪어온 세월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다  

23. 욕심을 버리기 위해서는 버리겠다는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  

24. 인간은 주변과 서로 물들이고 물드는 존재이다  

25. 배우는 사람은 먼저 마음을 보존해야 한다. 마음이 보존되면 근본이 세워지고

     근본이 세워진 다음에야 배움을 말할 수 있다  

26. 마음을 기르는 데는 욕심을 줄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맹자)  

27. 인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는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28. 인간이 공부하는 이유는 잃어버린 마음을 찾기 위해서이다  

29. 군자는 조화를 이루되 같음을 강요하지 않고, 소인은 같음을 강요하면서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30. 스스로를 보지 못한다면 눈을 감고 걷는 것과 같다.  

31. 누군가의 부족함을 비난하기는 쉽다. 그러나 타인을 비춰 스스로의 부족함을 돌아

     보는 것은 어렵다. 타인의 부족함에 혹독하고 자신에게 너그러운 이야말로 부족한

     사람이다  

32. 자기가 갑자기 죄와 허물에 빠져 부끄럽고 후회스러울 때 점검해 보면 재물이

     아니면 여색 때문이다    

 

   [전미개오(轉迷開悟 : 껍질에 갇히지 말고 스스로의 중심을 세워라)]

 

1. 공부는 얼마나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  

2. 몸의 크고 작음을 나뉘는 차이는 바로 생각하는 능력의 유무에 달려 있다.  

3. 생각을 하면 얻지만 생각이 없으면 얻지 못한다.(맹자)  

4. 내 마음이 삐뚤어지면 세상도 어그러진다. 생각하지 않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5.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어지고, 생각만 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위태롭다.  

6. 책을 읽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당나귀가 책을 잔뜩지고 가는 것과 같다.

                                                                                                 (탈무드)  

7. 어른은 많이 아는 이가 아니다. 배운 것을 깊이 고민함으로써 작은 욕망과 새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8. 부유함에 빠진 사람은 교만하게 되고, 가난한 사람은 비굴해진다  

9. 자기기만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지나치게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때문이다  

10. 욕심 자체가 치명적이기도 하지만, 더 극한으로 치닫게 되는 까닭은 다름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 때문이다  

11. 부꾸러울 ()‘는 귀 ()‘와 마음 ()‘으로 만들어진 글자다. 부끄러운

     마음은 내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어보는 것이다.  

12. 인간의 완성은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시작한다  

13. ’()‘은 지극히 선한 것이고, ’()‘은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지극히 선하면서 오래 지속할 수 있으면 중용이다.  

14. 제자 가로가 공자에게 완성된 사람에 대해 묻자

    이익을 보면 의로운가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운 것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

     오래된 약속일지라도 평소에 했던 말처럼 잊지 않는다면, 또한 완성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고 답하였다.  

15. 스스로를 완성해나간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그러나 공허한 말이라고 여기고 쉽게 포기한다면 스스로를 지킬 수조차 없게 될

     것이다.  

16. 의로움은 일상에서부터 실천해야 한다. 세상의 어려운 일은 모두 쉬운 일에서

     비롯되고, 세상의 큰 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17. 깊이 성찰하는 기회없이 그저 정보를 효율적으로 정리하는 데에만 치중했던 사람은

     설사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남을 위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  

18. 마음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르는 것이다  

19. 자신의 선한 마음을 다 드러내는 자는 자신의 선한 본성을 안다. 자신의 선한

     본성을 알면하늘을 아는 것이다. 선한 마음을 보존하고 선한 본성을 기르는 것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  

20. 내 안의 선한 본성은 원래 내게 있던 것이므로 구하는 대로 얻을 수 있고, 그 얻음은

     유익하다. 하지만 나의 밖에 있는 것을 구하는 욕심은 구한다고 해도 얻을 수 있다

     는 보장이 없고 설사 얻는다고 해도 무익할 뿐이다  

21. 욕망을 없앨 수는 없으나 이록(利祿, 재물과 벼슬)을 좇는 탐욕만은 없애야 한다.  

22. 하늘은 한 사람을 부요케 하여 사람들의 가난을 구제케 했으나, 세상은 제 부요함에

     취해가난한 사람을 능멸한다.(채근담  

23. 아무리 훌륭한 책, 권위가 있는 책이라고 해도 그 책의 냐용을 무조건 맹신해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좋은 공부의 자세가 아니다.

24. 진실함은 가르침과 배움으로 얻을 수 있는 사람의 도로서 현인의 덕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진실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본성에 있는 밝음,

     즉 선함으로 말미암아야 한다  

25. 평단지기(平旦之氣)란 이른 새벽에 얻을 수 있는 맑고 신선한 기운이다  

26. 마음의 평안과 안정을 얻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마지막까지 추구해야 할 것은

     도덕적 탁월함이다. 도덕적 탁월함으로 가기 위한 첫걸음은 마로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27. 정자의 학문 인생의 삼불행소년등과(少年登科, 어린 나이에 출세하는 것)‘,

    ’석부형제지세(席父兄第之勢, 권세 있는 부모형제를 만나는 것)‘, ’유고재능문장(有高

    才能文章, 재능과 문장이 뛰어난 것)‘ 이라고 했다.  

28. 사람은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서 마음이 달라진다, 그 반대로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보는 것이 달라지기도 한다.

29. 말이란 추기(樞機), 곧 모든 일의 중추이므로 반드시 신중하게 해야 한다.(장자)  

30. 먼 길을 앞당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치지 않는 것이다. 당장 끓어오르는

     두려움과 욕심을 버리고 쉬엄쉬엄 가다 보면, 어느덧 도착지가 보인다  

31. 마음과 생각과 가치관이 우리의 말이 되고 행동이 된다. 이런 말과 행동들이 점차

     쌓여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천성이 된다  

32. 공부란 단순히 지식만을 취해서는 진정한 내 것이 될 수 없다. 내 삶과 일에 쓸 수

     있는 지식이 되려면 반드시 생각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내 몸에 체득해야 한다  

33.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못지 않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34. 모든 큰 일은 작은 일을 소홀히 함으로써 일어나기에 큰일을 하고 싶다면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35. 문 밖에 나가 사람을 대할 때 귀중한 손님을 대하듯 하고, 일을 행할 때는 큰 제사를

     받들 듯 경건히하라  

36. 진정 위대한 경지는 남다른 것이 아니라 본질에 충실한 것이다.

     도를 얻기 위해 산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 하루의 삶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오늘 하루를 겪으며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근본에 충실할 때 도를 이룰 수 있다.

     이것이 본립도생(本立道生)이다  

37.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38. 나의 마음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모든 것의 시작은 결국 나 자신의 마음에서

     부터다.

 

이런 글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는 나는 한심한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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