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땅콩문고
이원석 지음 / 유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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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9

 

저자께서 작품에서 줄 곧 주장하시고 계시는 독서의 완성은 서평쓰기라고 외치며

살아온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내가 독서에 몰입해 독후감혹은 서평을 쓴 뒤 자비로 그것을 모은 책자를 발간해

나를 아는 지인들에게 돌리며 나의 이런 행동에 스스로 행복에 겨워하던 때가 있었는데

몇 년 있다가 장정일이라는 분이 독서일기라는 타이틀로 나와 비슷한 작업을 해서

작품으로 만들어 서점에서 판매하는 것을 보고 나는

 

유명인이 나의 것을 표절했다

 

라고 외치며 속으로 웃었던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책 읽기를 멀리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나 혼자 생각해

책을 멀리하는 이유는,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잊어버려 누군가 책의 내용에 대해

물었을 때 생각이 제대로 안 나는 당혹감으로 인해 책을 쉽게 잡지 못하고 멀리하고

있는 것이라는 정말 쓸데 없는 결론을 내 본 적이 있다. -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

, ‘망각으로 인해 자신의 기억력에 한계를 느끼다 보니 선뜻 내가 읽은 책이다라고

이야기하지도 못할 바에 차라리 처음부터 책을 읽지 말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서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베스트 셀러를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전에

신중히 선택해서 읽었는데 평소에 책 근처에도 가지 않던 책과는 거리가 있게 살아온

어떤 인간이 갑자기 그 책을 읽었다며 나타나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때

정작 훨씬 전에 읽었던 장본인은 그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를 않아 당혹감을 넘어서

나는 왜 책을 읽었고,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을까? 하는 좌절감에서 쉽게 독서에 뛰어

들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내가 그렇다 -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읽고 느낀 작품에 대한 독후감(서평)

을 쓰자는 것이었다.

약간의 자랑질(?)을 하면 나는 30여 년 동안 천 여 권의 작품을 접하고 약 900권 분량의

독후감(서평)을 어떤 형태로든 남겼고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으며 일부는 독서 관련

웹싸이트에도 올려서 여러 사람들이 참고하게 하고 있다.

나는 어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작품을 읽고 느낀대로 평을 하고

있는데 내가 만든 그것은 한편으로는 독후감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서평혹은

단순한 작품 요약집수준으로, 또 어떤 것은 작가의 고뇌의 산물로 만든 명문장 만을

정리하고 다듬은 단순한 '요약집' 형태로도 분류될 수 있는 말 그대로 내 맘대로 글을

쓰고, 소회를 정리해 놓고 있다.

 

나는 무조건 책을 읽었다.

그냥 책이 좋고, 문학이 좋고, 글 쓰기를 좋아해서였다.

아마 내 기억으로 제일 먼저 접했던 작품이 김주영 선생의 객주로 기억되고 작품에

매료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병주 선생의 내일 없는 그날이라는 작품을 접하며

독서의 장을 열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때의 감흥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원칙을 세웠다.

반드시 독후감을 쓰자는 것 추후에는 서평의 형식이 강해졌지만 - 이었고 원칙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으며 그 원칙은 이제 독서가 완료된 뒤에 해당 작품을 어떤

형태로든 정리하지 않으면 다음 작품으로 도저히 넘어가지 못하는 버릇으로까지

연계되어 버렸다.

그래서 한때는 독후감을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인해 또 스스로 선택한

작품의 저급함과 출판사의 마케팅 능력에 속아 작품 같지도 않은 작품을 선택했다는

나의 짧은 선택의 안목으로 인해 마음을 크게 다쳐 거의 몇 개월간 책과 서평을 외면한

채 괴로운 나날을 보낸 적도 많았었다.

그때 심각한 고민의 결과, 단순한 독후감이나 서평에 한정하지 말고, 작품을 접하며

내가 느낀 그대로 출판사가, 작가의 관점이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지적질(?)할 게 있으면

그대로 지적하자는 다짐을 한 후부터 과거에는 그런 마음이 들어도 내가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우려반, 소심한 반으로 인해 글을 쓰지 못했다.

특히 외국작품으로 인한 스트레스(작가와 출판사는 밝히고 싶지 않다 얼음창고‘, ’불륜

등과 같은)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 과거의 그런 압박에서

벗어났고 마음 편히 작품을 접하고 있는데 요즈음 책 읽은 후 3주 안에 작품에 대한

독후감혹은 서평나름대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독후감이나 서평은 왜 쓰고, 써야만 할까?

단순히 작품 내용과 관계된 내용만 쓰면 절대 하수. 좀 써 본 사람들은 느낄 것이다.

그런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을 돌아보고, 발전된 모습의 자화상도 그려보면서 항상

반성을 하게 되는 자아성찰의 시간을 많이 갖게 되는데 그런 자세가 독서 프로.

독서의 프로가 되기 위해 서평을 쓰자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자세를

견지해 보려는 노력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다.

'서평' 이야기하다 '독서 프로' 이야기까지 너무 먼 거리를 온 것 같아 여기서 줄이고

 

독서를 하기에 앞서 읽는 것 못지 않게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면,

나의 경우 과거 어느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한창 일할 때에는 1주차에는 업무와

관련된 작품, 2주차에는 역사, 3주차에는 베스트 셀러라고 소개되는 작품 그리고

4주차에는 불멸의 고전 혹은 과거 내가 한번쯤 읽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작품을 선정해

읽었다. (지금은 상당히 다른 기준으로 선택하지만)

 

작품을 접하면 제일 먼저 서문이랄까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작가의 심정(?)을 다룬

글들을  찬찬히 읽고, 추천의 글도 자세히 읽으며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배경이나

이유를 정확히 기억해 두고 읽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나의 관점과 작가의 관점을 맞추기

위함이다. 군대용어로 사격의 클리크 조정을 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읽기 시작하는데 읽을 때 준비해야 할 점과 주의점이 있다

 

1. 반드시 메모지와 필기구를 옆에 두되 그것이 없으면 읽지를 마라

   , 차량이동 중에 읽을 때에는 포스트잇을 최대한 활용하여 주요 사항에 대해

   표시를 많이 해 놓고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해당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시 읽는다.

 

2. 문학 작품이나 상황 설정이 복잡한 경우 초반에 등장하는 주요인물, 관계성, 상황

   등에 대해 세세히 기록하라

   (나의 경우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라는 작품을 읽을 때는 A4용지가 3매 소요

    되었던 사실이 있다)

 

3. 중요한 문구라고 판단될 경우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색깔있는 얇은 포스트잇을

   3등분하여 해당 페이지에 잘라놓은 포스트을 붙여둔다.

   이때 주의점이 있다.

   독후감이나 서평의 총론적인 글의 소재를 표기할 때는 포스트잇을 책의 가로

   붙이고 기타는 세로로 붙이는 센스가 중요하다.

 

4. 책 읽기를 마친 후 포스트잇된 부분만 다시 한 번 정독하며 읽은 내용을 다시

   기억한다

 

5. 독후감이나 서평을 쓸 때는 포스트 잇이 붙여진 부분에 집중해서 글을 작성한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가로로 된 부분은 서평의 서문이나 도입부, 가로 포스트잇은

   본론을 이야기할 때 소재로 사용하라

 

6. 책을 읽는 과정에 기타의 방법으로 뉴스나 사설 혹은 각종 잡지를 접하게 될 때

   현재 자신이 읽고 있는 내용과 주제가 비슷한 경우에는 반드시 별도로 기록해

   놓았다가 해당 작품에 대한 서평을 기록할 때 응용 소재로 활용한다.

 

7. 마지막이 중요한데 책 읽기와 서평 정리가 끝난 뒤 가까운 시일내에 타인과의 대화

   속에 직전에 읽었던 문구 중 마음에 드는 문구나 표현을 한 번 써 보는 것이다.

   그러면 완전한 자기의 책으로 다가 설 것이고 서평 역시 살아 숨쉼을 느낄 것이다.

   나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글을 써 왔고 지금도 실천 중에 있다.

 

부수적인 글 쓰기 능력이나 어휘력의 증가, 이해력의 상승 등과 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당초 그런 것은 내가 쓰는 '독후감'이나 '서평'의 최종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만의 글을 작성하다 보면 글 쓰는 재미도 재미려니와 쓰고 난 뒤

자신의 글을 혼자 읽는 재미와 함께 글 쓸 때의 상쾌함이란 이루 말할 길이 없다.

자신의 책 선정의 확고한 기준점이 없을 때 출판사의 꾐에 빠지거나 작가의 명성에

기대어 작품을 함부로 선정해 읽게 되기 쉬운데 그러면 자칫 독서의 즐거움 보다는 

기분만 상할 수 있으니 자신만의 작품 선택 원칙을 선정해 작품을 고른다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의 경우는 사설이나 컬럼 등에서 저자들이 권하는 작품이 있으면 반드시 메모를 해

두었다 작품 소개 코너에서 확인 후 작품을 선정해 읽고 있는데 나름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독서가 콩나물 키우듯 하루 아침에 자신의 내적 성장을 이루게 해 줄 것이라 믿지 말라

뿐만 아니라 책 몇 권 남 보다 더 읽고 남보다 책 읽은 소감을 기록해 놓았다고 자신의

인격과 교양이 하루 아침에 쑥쑥 자란다는 생각도 버려야 할 자세다.

 

나폴레옹히틀러도 전부 독서광이었고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십 수년 전으로

기억되는데 세계에서 국민이 독서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일본이었다고 알고 있다.

그렇게 독서를 많이 한 사람들이 오늘날 전 세계인으로부터 추앙받고 존경받고 있는

가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국내적으로 적용해 보아도 우리의 여의도에 계시는 위정자들 역시 배울만큼

배우고 알만한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연일 머리채만 안 잡았지 저급한 싸움놀이에 빠져

있는 것도 역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책도 많이 읽고, 교양이 있다고 여겨지는 그들이 왜 그리 되었을까?

내가 볼 때 그들은 단순히 책만 읽었지 독후감이나 서평을 통해 스스로를 반성하거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고민다운 고민을 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가 그런 부류들과 같이 되지 않으려며 단순히 책만 읽어서는 안 된다.

항상 읽고 기록하고, 느끼고,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매 순간순간 다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럴 경우 우리가 행하는 독서서평(독후감)‘은 우리 자신에게 언젠가

크나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또 언젠가 그렇게 영향받은 우리의 DNA가 새로운

우리 사회를 새롭게 만드는 확실한 촉매제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건방지게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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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도전 -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존한 사람 조지 뮬러 전기
아더 피어슨 지음, 유재덕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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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3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존한 사람, 인간 조지 뮬러에 관한 전기로 그는 죽기 전까지

10,024명의 고아들에게 사랑을 전한 기독교계에서는 신화적인 인물로 그의 행적이

인정받는 이유는 그렇게 많은 고아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전적으로 하나님

께만 의지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의 인물 됨됨이를 몇 단어로 표현하라면 아마도 진실’, ‘믿음’,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그런 인물이다.

 

작품을 읽는 내내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와 나의 마음을 크게

붙잡았는데, 오늘 주일 설교 말씀을 듣던 중 시편 685절의 말씀을 읽으면서 왜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68:5)

 

믿어지지 않겠지만 기독인들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그의 진술이 있는데, 조지 뮬러

주님께서 자신의 기도 5만 번에 응답하셨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3만 번

기도하는 바로 그 순간이나 당일에 응답받았음을 고백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기도하면서 마음에 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더욱 자주, 열심히, 자세하게

내려 놓았으며 공급자가 되시는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바라본 인물로 그는 주님을

믿었고, 믿었기 때문에 기도했으며 그리고 기도했기에 기대했고, 기대했기에 응답받았

음을 인정하고 있다.

결국 그는 믿는 사람은 복되고 주님이 말씀하신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직접

실천적인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세상에 보여 줄 사명으로 고아원을 운영하였는데,

그 운영 방식이나 경비 조달의 방식이 참으로 특이했었다. 모든 고아원 운영이 그랬듯

그는 언제나 경제적으로 쪼들렸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아닌 그 누구에게도 자신

이 처한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처음에는 고아원 운영에 관한 연례 보고

류를 통한 고아원 운영 자금을 모금하였으나 이 마저도 일반인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중단하였으며, 교회에 헌금 봉투에 금액이나 이름을 쓰느 것도 교인들

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여 자율적인 헌금 방식으로 운영하였고, 교인들이

내는 헌금도 타당하지 않은 금액이나 헌금은 절대 받아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은 알고, 지켜보고, 보상해 주시고 모든 고아의 아버지라는 신념

속에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고 기댄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죠지 뮬러라는 ‘5만번의 기도의 주인공을 처음 접한 건 아마도 2~3년 전 쯤 일 것이다잊고 지낼만하면 툭 튀어나와 나의 심약하기 그지 없는 종교생활에 일침을 가하고

는 해 양심이 찔리고는 했는데 오늘 이렇게 접하고 나니 당초에 내가 기대하고 접하기

를 원했던 그런 류의 전기 작품집은 아니었으나 작품을 통해 진정한 기독인이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종교적 관점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작품이었다.

 

작품을 읽으며 새롭게 느낀 사항은

* 주님의 의도가 담긴 말씀을 이용해서 그분이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확실한 근거를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할 근거로 바꾸어놓은 그런 기도가 중요하다.

(주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15:26)

(여인)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15:27)

타인들이 읽을 때 혹은 기독인이라 할지라도 이 문구를 읽을 때 어떤 느낌으로 다가

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저자가 작품에서 강조하려는 사항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나도 앞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뚜렷한 논리와 진실된 마음 그리고 확실

한 기도 목표를 설정하여 십자가 앞으로 나갈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찌 되었던 솔직히 이런 작품류는 평신도가 읽기 보다는 목회를 하시는 분이나 그런

마음 자세를 갖고 계신는 분들이 읽을 때 더욱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

했다. 어쨌든 작품을 통해 알게 된 죠지 뮬러의 신앙적 자세  

 

- 그가 하나님을 믿으며 얻은 교훈

   1)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안전한 지침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기도를 믿어라

   2) 앞길이 줄곧 불확실하면 계속해서 기다려라

 

- 하나님은 우리를 기도하게 하려고 일을 지연시키기도 하고, 우리의 생각을 억제하고

  자기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도록 기도 응답을 미룰 때가 있다.

  

- 기독교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고, 그리고 우리 안에 생명이 있어야 한다.

  

- 기도하면서 습관적으로 성경을 자세히 읽고 깨달은 것을 순종으로 표현해야 한다.

  

-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28:13)

  

- 꾸준히 지속하는 기도는 기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절대 멈추면 안 된다.

  사실 기쁨이 덜할수록 기도는 더 필요하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중단하는 것은 기도의

  습관과 기도의 정신을 재개하고 회복하는 일을 더 어렵게 할 뿐이다.

-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사에 따라서 모든 성도를 통해 역사하시느

  무한한 자유를 갖고 있다.

 

- 하나님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녀가 넘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흔들리는 것까지

  막아주신.

  

- 무슨 일을 시작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이 분명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성도의 기본도리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살피고 지도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은총과 경건함 속에서 성장하게 하는 위대한 비결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생각을 표현하고 마음과 뜻을 계시 하신다.

  

- 알 수 없는 길과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 앞에 펼쳐지면 이따금 주님이 다루시던

  방식을 뒤돌아보고 격려를 받아라.

  

- 하나님의 자비를 인정하고 감사를 잊지 않는 사람, 악하거나 의심스러운 행동을

  즉시 그만두는 사람, 비교적 작은 것이라도 곧장 고백하고 단념하는 사람은 분명히

  그리스도처럼 성장할 수 있다.

  

-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면,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시고 기도를 들어주신다.

  

- 하나님은 자신 앞에 우리의 명분과 직접 약속한 말씀을 제시하는 것을 좋아 하신다.

 

- 호소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할 때 우리는 그분의 자비는 물론, 진실함과

  성실과 공의를 근거로 약속의 성취를 주장할 수 있다.

 

- 모든 기도는 믿음으로 바칠 때만 효과를 발휘한다.

  , 우리는 축복을 기대하고,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과 시간과 형태에

  따라 응답받을 준비가 된 믿음을 유지해햐 한다.

 

- 기도와 감사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언제나 함께 가고, 서로 돕는다.

  

- 가장 커다란 시험은 가장 완벽한 축복이라는 열매를 맺고, 때에 따라서는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을 가져오기도 한다.

  

- 기도의 응답이 늦어져도 목적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끈질긴 자세를 시험하거나 우리를 다루시는 주님의 방식에

  주목하는 다른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전혀 응답이 없어도 간구하게 하신다.

 

- 진심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누구나 우리의 방법이나 시간, 혹은 우리가 직접 표현한

  바람이 아니라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잘 이해하는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에 하나님

  이 응답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 우리는 특권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지 않아서 회수되고, 행동에 옮기지 않아서

  확신을 어둡게 하는 위험을 겪게 된다.

 

- 믿음은 선행을 계속하다가 어떤 낙심과 단절을 겪어도 평안과 꿋꿋함을 유지하게

  하는 비결이다.

  

- 하나님 앞에서 침묵하는 습관을 기르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걱정을 벗어나게 된다.

  부단히 성경을 읽으면 말씀의 전체적인 교휸을 깨우치고, 다양하면서도 서로 연결된

  하나님의 생각이 드러나고, 그리고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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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 맞은 새 인조대왕
김인숙 지음 / 서경문화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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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8

 

조선의 역사를 마주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왕으로 등극하신 27분들의 등극 과정과

등극 이후의 삶이 평탄했는지 아니면 고난의 연속이었는지를 놓고 생각해 볼 때,

역대 왕들 누구도 편안하게 왕권에 다가선 분이나 등극한 이후의 그들의 삶이 순탄했던

왕들은 별로 없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정치, 외교적인 사안은 그만두고서라도 그런 왕들을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이 요즘도

간혹 문제화되고 있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촉발시킨 사건에 대한 처리

방향 촉구에 대한 민심의 아우성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 작금의 세상은 인터넷의 발달로 별별 희한한 사건을 갖고 청원을 넣고 있으니 아마도

  과거의 왕들보다 지금의 집권자들이 사회가 더욱 다변화되어 벌어지는 양상도 많아서

  과거의 그 어떤 집권자들 보다 더 골치 아플 것이다 -

, 과거 속의 지배자들은 모든 사건 상황에 대해 일일이 결재하고, 처리 방향을

지시했을 터이니 그런 사건들을 대하기가 정말 불편했을 것이다.

세종성종대를 조선 역사상 가장 태평한 시대의 사례로 간혹 이야기하고는 있으나

사회 내부적으로는 여러 문제가 많았었음을 역사는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데, 특히 사회

지도층의 성문란으로 인한 골치 아픈 사건이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났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세종의 며느리 동성애 사건과 성종대에 장안을 들었다 놓은 유감동‘,

어을우동의 성추문 사건이 대표적인 사건이라 한다.

특히, ’어을우동사건은 장안에 연루되지 않은 사대부가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일일이

이를 조사해 처리하여야만 했을 왕들은 하루라도 편한 날이 없는 왕의 자리였을 것으로

생각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께서는 한글까지 창제하셨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조선의 역대 왕 중에 누가 가장 힘들었고, 고생스러웠느냐를 놓고 이야기해

보면 판단 기준을 어디에 놓는지에 따라 내려지는 평가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지만

내가 읽고, 느꼈던 범위 안에서 단연 으뜸인 곤혹스러운 왕의 소임을 다한 분을

꼽으라면 아마도 청 태종앞에서 이마를 찌어가며 굴육을 당한 인조대왕 만큼

치욕스럽고, 힘들었던 왕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해군의 패륜적인 행위(어머니인 인목대비에 대한 폐서인 추진과 영창대군 살해)

대한 명분으로 정권을 찬탈하기는 하였으나 등극 과정의 정당성 결여로 인해 재임 기간

내내 시비를 거는 인간들과 하루가 멀다하고 궁궐 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주술적인 저주

행위와 계비와 정비 사이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안 좋은 일에 시달렸음은 물론

종국에는 중국의 양 대국 사이에 끼어서 굴욕적 항복과 세자에게 밀릴 수 있다는

불안감, 불안한 정국으로 인한 피난 등으로 인한 모습은 암담함 그 자체였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재임 기간 내내 인조대왕을 압박했거나 왕을 힘들게 했던 사항을 간략히 살펴보면

- 다른 여타의 왕들도 어느 정도 이런 문제는 있었지만 그래도 인조대왕보다는 덜

  했던 것으로 나는 분석하고 싶다 -

1) 왕권의 정통성 확립을 위해 아버지 정원군에 대한 추증 문제로 신하들과의 날 선

    대립

2) 반정에 대한 부담을 떨치기 위한 인목대비, 정명공주와 그의 사위에 대한 불신

3) 청나라의 압박과 조선 출신 통역관들의 안하무인격 횡포로 인한 스트레스

4)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궁궐 내 저주사건과 잦은 병치레로 인한 스트레스

5) 왕과 세자의 혼사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왕의 권위에 대한 추락과 도전

6) 작품에서는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송시열과 치열하게 다투었을 예송문제

 

등으로 나는 분석해 보았다.

하여간 골치아픈 시절을 보낸 왕이라는 게 나의 소감이다.

 

작품을 통해 이전에 내가 읽고 동감을 표시했던 이덕일 선생이 쓴 작품 중에서 인조의

장자인 소현세자는 귀국 후 아버지 인조가 주도한 계획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논리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했는데, 본 작품에서는 독살설에 대한 반론을 저자께서

여러 정황을 근거로 제기하고 있는데 나름 그 의견에도 동의를 표하는 바이다.

독살(?)된 당사자가 아닌 이상 또 그런 역사의 현장에 있지 않은 이상 나름의 자료와

정황 등을 갖고 전개하는 그 모든 추측과 해석은 주장하는 사람 자유가 아닌가 생각

한다. 따라서 나는 그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어 둘 뿐이다.

 

참고로 본 작품은 스트레스로 병을 달고 살았던 인조대왕과 관련된 여러 약제 이야기가

많이 언급되고 있어 약간은 무료함도 주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나 저자의 여러 연구를

통해 얻은 산물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내용이 있는 작품이었다고 평하고 싶다.

 

   작품 속의 상식들

 

- ’경운궁은 임진왜란으로 조선이 고통과 시련을 겪던 조성된 임시궁궐

 

- 왕대비의 명과 경운궁에서의 즉위는 새 국왕으로서의 권위와 정치권력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중요한 열쇠

 

- 법궁(法宮) 왕이 거처하는 공식적인 궁궐 가운데 으뜸이 되는 궁궐

 

- 이궁(離宮) 부득이한 상황이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거처를 옮길 목적으로 지어진

  궁궐

   

- 인조반정이 일어난 당시 광해군은 의관 안국신의 집에 있다 잡혀왔다고 한다.

 

- 왕이 사용하는 인장은 용도에 따라 명칭이 달랐는데 모든 인장을 통칭하여 어보(御寶)

  불렀으며 그중에 전국보(傳國寶)‘는 중국 황제로부터 받아 사대문서에만 썼던

  대보(大寶)이고 왕이 공문서를 결재할 때 찍던 인장에 ()‘가 새겨져 있는

  계자인(啟字印)‘으로 바로 결재용 인장이다.

 

- 일반적으로 왕의 즉위 의례는 선왕의 임종장소이자 바로 빈전이 설치된 곳에서

  치룬다.

  세종의 경우 사가(영웅대군 사저)에서 임종하여 후임인 문종이 영웅대군 사저에서

  거행된 사실이 있다.

 

- 묘호(廟號)를 개정할 때 ()‘이 있는 분을 ()‘라 하고, ’()‘이 있는 분을

  ()‘이라 칭하였다

 

- 정청(庭請)은 국가의 매우 중대한 사안이 있을 때 대궐 뜰에 나아가 집단적으로 뜻을

  전달하는 강력한 의사표시다.

 

- 산호(山呼)란 산호만세(山呼萬歲)의 준말로 신하들이 두 손을 치켜들고 임금에게

  축하하고 축수하는 뜻으로 만세를 외치던 일.

 

- 사패(賜牌)란 국왕이 내리는 토지나 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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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정유재란 1597
허남린 외 지음, 국립진주박물관 엮음 / 푸른역사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추천권유도 5

 

정유재란은 분명 우리의 치욕적인 역사의 여러 줄기 중 그 의미가 남다른 한 줄기라는

점에 있어서는 틀림없는 사실이나 우리에게 있어 외침에 의한 능멸과 수치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평범한 전쟁

정도로만 인식되어 다각적인 연구나 깊이 있는 반성 없이 단순한 왜구들의 침탈수준

으로 이해되고, 전해져 내려오는 아픈 역사라는 것이 정유재란을 바라보는 현실적 시각

이 아닌가 생각하며 심지어는 개인적 생각으로 폄하되어 평가될 수 있지만 - ‘정유재란은 임진왜란 연장선상 위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세세히 알아도 좋고, 몰라도 그만

이라는 식으로 취급되고 있는 정유재란의 현주소이며 해당 전쟁을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우선 작품 제목만 보아도 나의 이런 주장이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께서 작품 제목을 처음 읽는 정유재란으로 제목을 선정하였는데,

이는 국민 대다수 혹은 역사를 연구하고 사랑하시는 많은 분들이 정유재란에 대해

기본적으로 어떤 시각을 갖고 있고, 평가해 왔는지를 작품 제목이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말해 저자께서 자신의 작품 제목을 선정할 때 불특정 독자들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시각과 수준을 염두에 두고 제목을 붙였을 것이기 때문에 저자가 붙인 작품 제목처럼

처음 읽는 정유재란이 내포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들

어떤 수준으로 정유재란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나만의

생각일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의 답변이 나왔으면 좋겠다.

 

일본에서는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분로쿠(文祿), 게이초(慶長)의 전쟁()’으로칭한다고 하는데 왜구들이 왜 그렇게 이름을 붙이고 있는지는 나중에 더 알아 보도록 하고,

나는 작품인 정유재란의 내막에 집중해 보고 나름의 느낌을 여기에 기록해 보고자 한다.

 

정유재란을 들여다보면 역사학자나 학도는 아니지만 약간의 관심은 있다면 왜구들은 군웅이 할거하던 혼란스런 자국 정치상황으로 인해 막부 세력들간 대치 국면의

돌파구로서 조선과의 전쟁을 획책하게 되고, 이 전쟁을 통해 막부들의 힘을 다른 방향과 모습으로 전환시키려는 암중모색이 심도 있게 논의되는데, 전쟁을 통해 당초 자신들이 얻으려던 목표 외에도 조선으로부터 막부통치에 이용 가치가 있는 반대급부겸 국내 세력간 힘의 대치 국면을 끝낼 수 있는 뭔가를 얻어내 국내 정치에 십분활용하고자 했고 나아가서는 궁지에 몰린 연이은 전쟁 부담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도가 저변에 깔려 있었던 전쟁이라는 것이 역사학자들이 이 전쟁을 바라보는 정설이 아닌가 생각한다.  

 

위와 같은 명분을 충족시키기 위해 왜구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그들의 야욕성을 그대로 들어낸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만인총코베기등으로 상징되는 살육과 신체 훼손, 약탈,

납치 등이 스스럼 없이 악날하게 자행되었던 전쟁으로 이전에 있었던 임진왜란과는 전쟁의 양상이 완전 다른 전쟁이었는데 당시 조선인들은 이유도 없이 수많은 양민들이 무참히 도륙되고 희생된 전쟁이 되어 버리고 만다.

이를 반증하는 또다른 증거가 바로 조선인 포로 숫자로서 임진왜란당시에 비해 10

정도 많았다는 점만 놓고 보아도 당시 전쟁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 일본인의 잔인/잔혹성은 별다른 설명이 없더라도 옛날부터 그들 민족의 잠재적 DNA

  자리잡고 있어 이런 현상이 벌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가장 확실한 예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인간을 실험의 도구로 사용한 ‘731부대 운영난징 대학살등으로 표현

  되는 그들의 잔혹상은 나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 하고 있다 -

 

전쟁 말기에 조선으로부터 철군의 명분을 찾던 일본은 조선에 강화의 조건으로

조선 항복의 증거로 왕자의 일본 방문을 요구했고

전라도를 비롯한 남부지방 4개성을 일본에 할애하면 조선의 왕자를 현지 통치자로

    보내 다스리도록 하겠으며 

위 사실이 어렵다면 위의 조건에 상응하는 공물을 보내 일본에 사죄할 것

등을 요구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웃긴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전쟁은 자기들이 일으키고 전쟁에 대한 책임 내지는 배상을 요구하는 작태는 적반하장

극치를 달리고 있는 모양새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조선은 일본에 사죄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기에 당시의 우리 위정자들은 일본과의 타협을 단호히 거부하며 그렇게 믿고 의지하는 대국인 명나라의 힘을 빌리면

왜적대한 복수가 가능하다고 굳게 믿는 한심스런 작태의 연속만 보여주고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요구조건이 번번이 거절되고 계속 무응답으로 조선이

일관하자, 자신들이 제시한 화평조건에 조선이 굴복할 때까지 응징하라는 공격 지침을 시달, 한반도 이남 특히, 전라도 지역을 망신창이로 만드나 이에 맞선 조선은 정규군은 물론 임진년과 달리 의병의 존재가 미미해 상당히 곤욕을 치룰 수 밖에 없는 속수무책이었다.

전쟁발발 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장수들에게 주인장(朱印狀)’이라는 명령서를 직접 하달하면서 일본의 전쟁에 관한 전략 방침을 내리고 있는데, 이 명령서에 전라도 전역에 대해서는 강력한 공격을, 충청도 등 전라도 외 지역에 대해선 가능한 한 공격하는 제한전을 명령하는데 이는 짧은 기간 동안 남부 지역에 대한 강력한 공격을 마친 후 뒤로 물러나 남해안 몇 곳에 왜구들의 성을 축성해 왜구의 일부 병력을 주둔시키고

나머지 군사는 일본으로 철군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도요토미가 죽고 전쟁의 명분을 잃으면서 철수와 동시에 전쟁은

막을 내린다.

 

이에 반해 우리 조선은 당시 국제 정세 판단에 어두워 자신도 건사하기 힘든 명나라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만 명나라의 정세 역시 날로 팽창하고 있던 청나라의 영향으로

일본의 침공에 대한 조선에 대한 안전망 구실을 조선의 의도대로 제공할 수 없는 상황

이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조선에서의 전쟁 지원이 곧 명나라 군비 증가로 연계돼 가득이나 어려운 국가 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듦과 동시에 각고의 노력 끝에 이루어 놓은 자신들의 경제적인 부를 빠른 속도로 소모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국력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만다.

 

정유재란전반을 검토해 보면 비록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치욕적인 임진왜란을

바로 몇 해 전 겪었으면서도 우리 선조들은 정말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오히려 적군을 앞에 두고 뭐가 진정한 적이지도 모른채 우리끼리 싸움만

하다 - 작금의 우리 정치 분위기와 사뭇 유사하다 -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있다가

정유재란터지고 나서야 외세(명나라)에만 매달리고 있는 처량한 존재였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더욱 암담함을 부채질한 것은 소위 우리를 돕기 위해 왔다는 놈들은 능력이 얼마나 부족하고, 우매했었는지를 그러면 다행인데 거기다 성질까지 지랄같았으며 전략적 부재 역시 심각해 초기 전투에서 얼마나 지리멸렬했는지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오히려 그나마 조선의 몇몇 장수가 아니었다면 왜구에 의해 쑥대밭이 되어가던 백척간

두의 조선이 그나마 간신히 지탱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유재란을 지금부터라도 단순히 커다란 전쟁의 연장선상으로 묶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폄하역사를 가벼이 보지 않도록 노력해야 우리의 조선은 선조들이 행했던 전철을 답습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작금 우리의 정세는 어떠한가?

간단하게 요약해 이야기한다면 싸드국면에서부터 시작되어 지금은 화웨이의 5G

문제와 '미중 무역마찰로 이어지는 고래 싸움에 등이 터져나가려고 하는 위기에

봉착해 있는데 그 중간에서 여기도 붙지 못하고 저기로도 붙지 못하는 아주아주 애매

모호 하기가 그지 없는 포지셔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럴때 일수록 창의적 혜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이지만 꼭 어렵지만은 않은

그런 시기로 해답은 의외로 쉬운 곳에서 찾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 답은

바로 우리 역사에서 얻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서애 유성룡 선생의 징비록과 과거 선조들이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오며 기록한 여러

문건들을 접하다 보면 또 중국에 연행사로 다녀온 선조들이 기록한 내용을 들추어

보면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는 사항은 우리의 살 길 내지는 우리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하던지 간에 북쪽의 인간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보다는 남쪽의 인간들하고 소통하며 화목하게 지내는 게 가장 좋은 길이라는 이야기를 연신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나는 아직도 이 점이 가장 궁금하며

본 작품을 손에서 놓는 그 순간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내 뇌리에 남아있지만

우리 선조들이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분석하고 썼을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는 무엇을 어찌해야 하겠는가?

우리의 선조들은 그 옛날 후손들이 겪을 어려움을 헤아려 나름의 해법을 제시해 주시고

계시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우리의 위정자들은 하루 빨리 심사

숙고하여 선조들의 혜안에서 그 답을 찾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 작품은 여러 학자들의 발표 논문을 엮은 관계로 단순한 정유재란과 관련된 정치사적

  이야기 중심이 아닌 주변 상황 즉 경제적, 국제적인 환경 등을 비롯한 정유재란

  당시 국내에 축조된 일본 왜성이야기 및 몇몇 전투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나

  내가 작품을 선택한 목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내용으로 판단하여 여기서 논하는

  것은 제외하였고, 산업과 무역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다루고 있으나 전쟁의 본질과

  영향에 대해 공부하려는 나의 목표와는 다른 시각이기 때문에 여기서 제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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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이주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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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 7

 

작품을 잘 못 골라 괜히 남의 싸움에 끼어들었다

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지만 작품을 다 읽은 지금은 절대 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그냥 역사를 즐겨 읽는 애사가(愛史家)’일 뿐이다. 하지만 해당 작품을 읽다 보니

그냥 역사를 좋아해서만 될 일이 아님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좀 힘들더라도 역사를

자주 접하려는 노력을 기우림과 동시에 이왕이면 좀 더 시간을 할애해 내가 그동안

알고 있고 배웠던 내용과 상반되는 내용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려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도 역사를 바르게 보려는 노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품은 조선의 왕세자로서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과정을 기록한 사도세자

부인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이 진정으로 당시 벌어졌던 상황에 대해 어떤 개인적

감정에 치우침 없이 정확한 사실을 기록하였느냐 하는 것과 율곡 이이 선생께서 주창

하시고 강조하셨던 십만 양병설이 실제 존재한 말씀이냐는 것에 대한 진위 여부

따지고 있는 논쟁을 기반으로 우리 역사학계의 문제점과 각종 학설을 좌지우지하는

단체와 개인의 편향된 역사관에 대해 논박하고 있다.

아래 언급하겠지만 나만의 경우인지 아니면 다른 이들도 그런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역사 작품을 읽다보면 조선 역사 속에 주자학’, ‘북벌’,‘송시열’, ‘식민사관’, ‘노론

사관을 뜻하는 단어가 태평성대한 시절이나 나라가 혼미한 상태나 부지불식간 자주

나타나고 있는데 정말 짜증스러울 정도로 반복되고 있어 역사를 사랑하고 역사서를

조금 읽은 사람이라면 그런 단어로 인해 답답한 심정을 이루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을

것인데 작품을 통해 그 이유가 되는 단초를 확인할 수 있어 그동안 그런 단어들로 인해

책을 읽을 당시 나의 갑갑한 심정을 치료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노론 사관이니 식민 사관이라는 해당 단어를 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대해 왔던 게 사실이었지만 작품을 통해 이제는 그런 단어가 다르게 다가왔음은

물론이고 앞으로는 좀 더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고, 느끼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는 그런 귀중한 시간이었다.     

특히, 작품 후반부에 이성무 선생의 주장에 절대 동의하는 바이며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개인적 시간 투자에 의한 역사 공부도 하지 않고 학교에서 배운 설익은 역사 지식으로

우리 역사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내뱉는 설익은 지식으로 인해 자칫 우리의 소중한

역사가 낮은 수준의 인간들로 인해 폄하되어 자학적 역사관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또

누구든지 역사와 관련된 기본적인 학습 없이, 피상적인 역사 지식으로 친구따라 강남 가듯 우리의 역사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품 속에 나와 있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여러 주장 중 가장 내 생각과 일치

하는 몇가지 주장내지는 설()을 추려보면

 

1) 신영복 선생은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는 관점이 중요하며 지엽말단의 사실을

   아는 것은 사회와 인간에 대한 성찰과 모색을 위한 부부일 뿐이다.

   무엇이든 본질, 핵심이 중요하다.(P 134)

 

2) 비주류의 시각을 통해 주류의 해석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검증하면 새로운 차원의

   감동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주류 역사학자들의 연구가 얼마나 왜곡되고

   피상적인드러내고 과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현재에 대한 통찰을 추구해야

   한다.

   조선시대 주변 문화에 대한 관심은 지금 현실의 소외된 계층, 민초의 삶과 가치를

   밝히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과거에 이러저러했다는 사실의 나열

   과 왜곡된 역사관은 대중의 엄격한 검증에 의해 걸러질 것이다.

   지배층의 관점을 넘어 시대적 맥락을 백성의 시각에서 꿰뚫어야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이야기는 사물과 사건의 핵심을 부각한다.(P 150)

3) 주자학(朱子學)을 유일사상으로 보는 닫힌 세계관 때문에 나는 노론을 비판적으로

   본다. 지식인은 공동체가 처한 삶의 고통과 이해하고 개선하기 위해 대중과 더불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P 156)

 

4) 일제는 19108월 대한제국을 강점하고 그해 1076명의 한국인에게 작위와

   막대한 은사금을 내준다. 76명의 수혜자를 분석해 보면,

   하나는 이재완, 이재각, 이해창, 이해승 등 모두 왕실 인사이고 윤택영은 순종 비

   윤씨의 친정 아버지, 박영효는 철종의 사위다.

   둘째는 노론 일색이라는 것이다.

   76명 중 당파색을 알 수 있는 65명의 당적을 분석해 보면 남인은 없고, 북인이 2,

   소론이 6, 나머지 57명 모두가 노론이다.(P 157)

      

5) 일제는 식민 지배를 위해 조선의 붕당정치를 당쟁으로 격하라고 나라가 망한

   원인을 거기서 찾았다.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P 268)

 

6) 조선 후기 200년간의 당쟁을 한국사 전체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실상 나라가

   망할 때는 당쟁이 아니라 몇몇 노론 척신 가문의 일당 독재가 시행되고 있었다.

   오히려 당쟁의 배경이 되는 사림 정치의 틀이 살아 있어서 비판과 견제가 이루어

   졌다라면 난국 타개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망국의 직접적인 책임은 세도정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도정치가 곧 조선시대의

   정치 형태인 양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그렇다면 조선왕조는 벌써 망했어야

   했다. 조선왕조가 500년 이나 지속된 까닭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 1’ 200722- (P 300)

 

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저자께서 작품에서 반박하고 있는 대상 인물되시는 분들이

그렇게 형편 없고, 역사학자가 아닌 이야기꾼도 못 되는 인물이 지어낸 소설같은

이야기라고 일관되게 주장하시는 이덕일 선생이 집필하신 작품

누가 왕을 죽였는가?’, 사도세자의 고백’, 거칠 것이 없어라’, 조선의 왕을

말하다1,2’, 조선 왕 독살 사건’, 윤휴와 침묵의 제국’,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세상을 바꾼 여인들’, 왕과 나이덕일의 역사 평설 근대를 말하다’, 조선

이 버린 천재들을 모두 읽은 역사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작품을 모두 읽어보니 이덕일 선생의 반대론자들이 외치고 있는 나는 이덕일 선생과

전혀 일면식도, 피붙이도, 그 분 밑에서 공부를 배우지도 않은 엄연한 제3자다

어줍짢은 실력과 허술한 조사로 만든 작품이라고 강변하시는 점에 대해 저는 적극적으

로 동의할 수 없음을 우선 이야기드립니다.

 

그 이유는 각 작품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이 덕일 선생이 어줍잖은 실력으로 그런 여러

권의 작품을 썼을리도 만무하겠지만 만약 그렇게 했더라도 그 많은 작품 속에 나오는 각종 사실과 여러 이야기를 부실한 조사로 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저자께서는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던지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신

이덕일 선생에게 자신들의 관점만이 올바르다고 외치는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 대해

거품을 물어 가면서까지 장황한 이야기로 몰아붙이지 않아도 역사를 사랑하는 독자

이고 국민들이라면 저자의 주장에 크게 공감할 것이라 믿기 때문에 그런 분들이 뭐라 떠들던 간에 그냥 냅두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조만간 자신만의 시각이 맞다고 외치는 그런 학계나 단체도 전부 물갈이가 되면 자연

새로운 시각이 또 등장하면 저자의 주장과 작품이 새롭게 조명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좀 불편하더라도 지켜보는 게 좋을 듯하다고 생각합니다.

소 잡는데 쓸 도구를 닭 잡는데 써야 되겠습니까?

 

참고로 책방과 인터넷에서 역사와 관련된 읽을거리를 찾다가 저자께서 저급하다고

크게 일갈하신 여러분의 작품이 눈에 들어오길래 얼른 내려놓고 다른 쪽으로 걸어갔음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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