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이주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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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 7

 

작품을 잘 못 골라 괜히 남의 싸움에 끼어들었다

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지만 작품을 다 읽은 지금은 절대 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그냥 역사를 즐겨 읽는 애사가(愛史家)’일 뿐이다. 하지만 해당 작품을 읽다 보니

그냥 역사를 좋아해서만 될 일이 아님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좀 힘들더라도 역사를

자주 접하려는 노력을 기우림과 동시에 이왕이면 좀 더 시간을 할애해 내가 그동안

알고 있고 배웠던 내용과 상반되는 내용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려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도 역사를 바르게 보려는 노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품은 조선의 왕세자로서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과정을 기록한 사도세자

부인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이 진정으로 당시 벌어졌던 상황에 대해 어떤 개인적

감정에 치우침 없이 정확한 사실을 기록하였느냐 하는 것과 율곡 이이 선생께서 주창

하시고 강조하셨던 십만 양병설이 실제 존재한 말씀이냐는 것에 대한 진위 여부

따지고 있는 논쟁을 기반으로 우리 역사학계의 문제점과 각종 학설을 좌지우지하는

단체와 개인의 편향된 역사관에 대해 논박하고 있다.

아래 언급하겠지만 나만의 경우인지 아니면 다른 이들도 그런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역사 작품을 읽다보면 조선 역사 속에 주자학’, ‘북벌’,‘송시열’, ‘식민사관’, ‘노론

사관을 뜻하는 단어가 태평성대한 시절이나 나라가 혼미한 상태나 부지불식간 자주

나타나고 있는데 정말 짜증스러울 정도로 반복되고 있어 역사를 사랑하고 역사서를

조금 읽은 사람이라면 그런 단어로 인해 답답한 심정을 이루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을

것인데 작품을 통해 그 이유가 되는 단초를 확인할 수 있어 그동안 그런 단어들로 인해

책을 읽을 당시 나의 갑갑한 심정을 치료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노론 사관이니 식민 사관이라는 해당 단어를 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대해 왔던 게 사실이었지만 작품을 통해 이제는 그런 단어가 다르게 다가왔음은

물론이고 앞으로는 좀 더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고, 느끼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는 그런 귀중한 시간이었다.     

특히, 작품 후반부에 이성무 선생의 주장에 절대 동의하는 바이며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개인적 시간 투자에 의한 역사 공부도 하지 않고 학교에서 배운 설익은 역사 지식으로

우리 역사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내뱉는 설익은 지식으로 인해 자칫 우리의 소중한

역사가 낮은 수준의 인간들로 인해 폄하되어 자학적 역사관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또

누구든지 역사와 관련된 기본적인 학습 없이, 피상적인 역사 지식으로 친구따라 강남 가듯 우리의 역사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품 속에 나와 있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여러 주장 중 가장 내 생각과 일치

하는 몇가지 주장내지는 설()을 추려보면

 

1) 신영복 선생은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는 관점이 중요하며 지엽말단의 사실을

   아는 것은 사회와 인간에 대한 성찰과 모색을 위한 부부일 뿐이다.

   무엇이든 본질, 핵심이 중요하다.(P 134)

 

2) 비주류의 시각을 통해 주류의 해석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검증하면 새로운 차원의

   감동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주류 역사학자들의 연구가 얼마나 왜곡되고

   피상적인드러내고 과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현재에 대한 통찰을 추구해야

   한다.

   조선시대 주변 문화에 대한 관심은 지금 현실의 소외된 계층, 민초의 삶과 가치를

   밝히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과거에 이러저러했다는 사실의 나열

   과 왜곡된 역사관은 대중의 엄격한 검증에 의해 걸러질 것이다.

   지배층의 관점을 넘어 시대적 맥락을 백성의 시각에서 꿰뚫어야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이야기는 사물과 사건의 핵심을 부각한다.(P 150)

3) 주자학(朱子學)을 유일사상으로 보는 닫힌 세계관 때문에 나는 노론을 비판적으로

   본다. 지식인은 공동체가 처한 삶의 고통과 이해하고 개선하기 위해 대중과 더불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P 156)

 

4) 일제는 19108월 대한제국을 강점하고 그해 1076명의 한국인에게 작위와

   막대한 은사금을 내준다. 76명의 수혜자를 분석해 보면,

   하나는 이재완, 이재각, 이해창, 이해승 등 모두 왕실 인사이고 윤택영은 순종 비

   윤씨의 친정 아버지, 박영효는 철종의 사위다.

   둘째는 노론 일색이라는 것이다.

   76명 중 당파색을 알 수 있는 65명의 당적을 분석해 보면 남인은 없고, 북인이 2,

   소론이 6, 나머지 57명 모두가 노론이다.(P 157)

      

5) 일제는 식민 지배를 위해 조선의 붕당정치를 당쟁으로 격하라고 나라가 망한

   원인을 거기서 찾았다.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P 268)

 

6) 조선 후기 200년간의 당쟁을 한국사 전체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실상 나라가

   망할 때는 당쟁이 아니라 몇몇 노론 척신 가문의 일당 독재가 시행되고 있었다.

   오히려 당쟁의 배경이 되는 사림 정치의 틀이 살아 있어서 비판과 견제가 이루어

   졌다라면 난국 타개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망국의 직접적인 책임은 세도정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도정치가 곧 조선시대의

   정치 형태인 양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그렇다면 조선왕조는 벌써 망했어야

   했다. 조선왕조가 500년 이나 지속된 까닭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 1’ 200722- (P 300)

 

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저자께서 작품에서 반박하고 있는 대상 인물되시는 분들이

그렇게 형편 없고, 역사학자가 아닌 이야기꾼도 못 되는 인물이 지어낸 소설같은

이야기라고 일관되게 주장하시는 이덕일 선생이 집필하신 작품

누가 왕을 죽였는가?’, 사도세자의 고백’, 거칠 것이 없어라’, 조선의 왕을

말하다1,2’, 조선 왕 독살 사건’, 윤휴와 침묵의 제국’,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세상을 바꾼 여인들’, 왕과 나이덕일의 역사 평설 근대를 말하다’, 조선

이 버린 천재들을 모두 읽은 역사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작품을 모두 읽어보니 이덕일 선생의 반대론자들이 외치고 있는 나는 이덕일 선생과

전혀 일면식도, 피붙이도, 그 분 밑에서 공부를 배우지도 않은 엄연한 제3자다

어줍짢은 실력과 허술한 조사로 만든 작품이라고 강변하시는 점에 대해 저는 적극적으

로 동의할 수 없음을 우선 이야기드립니다.

 

그 이유는 각 작품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이 덕일 선생이 어줍잖은 실력으로 그런 여러

권의 작품을 썼을리도 만무하겠지만 만약 그렇게 했더라도 그 많은 작품 속에 나오는 각종 사실과 여러 이야기를 부실한 조사로 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저자께서는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던지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신

이덕일 선생에게 자신들의 관점만이 올바르다고 외치는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 대해

거품을 물어 가면서까지 장황한 이야기로 몰아붙이지 않아도 역사를 사랑하는 독자

이고 국민들이라면 저자의 주장에 크게 공감할 것이라 믿기 때문에 그런 분들이 뭐라 떠들던 간에 그냥 냅두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조만간 자신만의 시각이 맞다고 외치는 그런 학계나 단체도 전부 물갈이가 되면 자연

새로운 시각이 또 등장하면 저자의 주장과 작품이 새롭게 조명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좀 불편하더라도 지켜보는 게 좋을 듯하다고 생각합니다.

소 잡는데 쓸 도구를 닭 잡는데 써야 되겠습니까?

 

참고로 책방과 인터넷에서 역사와 관련된 읽을거리를 찾다가 저자께서 저급하다고

크게 일갈하신 여러분의 작품이 눈에 들어오길래 얼른 내려놓고 다른 쪽으로 걸어갔음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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