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쓸쓸한 당신
박완서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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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9

질박한 한 폭의 수묵화같은 중년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작품들이었다.

나도 어느새 인생의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는 연극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있음을 작품을

읽으며 더욱 절실히 느끼면서, 작품 속에 묘사되어 있는 인물들을 보며 또 다른 나를

보는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너무나도 자기 비하의 연민일까?

 

단어 하나하나가 던져주는 의미는 불꽃같이 타오르던 정열을 소유하였던 내가 어느새

노년의 초입에 들어선 또 다른 나를 보는 것 같아 명치끝이 아려옴을 느낀다.

글을 읽으며 나만의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속일 수 없이 다가오는 세월의 무게를 느껴

본다.

 

대학 초년생 때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에세이를 통해 본 작품의 작가인 박 완서

선생을 처음 접했었다. 이 작품을 읽는 지금은 그때 작가에 대해 가졌던 경외심 보다는,

박완서라는 한 여자 중견 작가가 남편과 아들을 졸지에 가슴에 묻어 두어야 했던

기구한 사연을 간직한 사람이며, 초로의 손자를 둔 노인 - 나의 독서일기를 쓸 당시에는 살아계셨는데 그 일기를 손보는 지금 이 싯점에는 작가님께서도 고인(故人)이 되셨다 -

이 되었다는 사실이, 세월이 나를 더욱 침울하게 하는데, 이는 작품의 제목과 작가가

겪은 인생 역정이 대비되어 작가를 일류 작가로 여기게 하기 보다는 가슴 아프고 한

많은 할머니로 비춰지게 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작품을 읽으며 책 제목에서 보여주고 있는 주체인 '당신'은 누구일까?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소설 속의 '당신'이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라는 결론을 얻어냈다.

우리라는, 당신 !

보다 나은 가족들의 내일과 안락한 삶을 위해, 치열한 삶의 전쟁터에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기름기 빠진 푸석한 몸을 내던지는 우리들의 당신들은, 결혼이라는 현실의 관습

을 통해 형성된 가족과 식구들을 위해, 결혼 전에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 그런 인생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미소로 자신들의 가슴 속에

응어리를 감춘 채 살아가고 있다.

휘어진 등뼈 위로 흐르는 '당신'들의 땀방울과 회한은 어느새 자신들의 꿈 대신 키워온

자식들의 성장 모습으로부터 위안을 받으려고 하나 경우와 상황에 따라 자식들로부터

냉대와 질시 심지어는 배반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불행이라 여기지 않고 모든 것을

'행복'이라는 단어로만 이해하려고 한다. 자식에게 자신의 몸까지도 새끼들에게 먹이로

아낌없이 내던져 주는 '염낭거미처럼 말이다.

뼈 마디마디마다 맺힌 고통은 당신들의 분신들이 있기에 아픈 줄도, 괴로운 줄도 모르고 한 평생을 우리들의 당신들은 살아가고 있다.

 

작품 속의 모든 주인공들 - 일부를 제외하고는 - 은 인생의 최종 역에 도착하기 전,

인생 길에서 우리 주위에서 만나볼 수 있는 그런 소탈하고 서민 냄새 물씬 나는 그런

당신들이 주인공들이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조그만한 것에 감동하고, 삐지고, 싸우고 등등 쉽게 접할 수 있는

작품 속의 당신들을 통해 중년의 외로움과 고민 그리고 다가오는 인생의 마지막을 맞는

모습을 여러 형태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중 한 명의 주인공으로 나의 미래의 모습이 그려질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의 자식들과 친구들에게 비쳐 질 수도 있으나 바라는

모습은 늙음이 추해지지 않고 아름답게 그려지기만을 이 작품을 읽으며 생각해 본다.

 

어느날 귀밑터리부터 찾아올 나의 황혼의 친구에게 추하지 않은 모습으로 또 젊은날의

사랑이 그리 허무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이야기해 줄 수 있게 늙어 갔으면 좋겠고,

낙엽지는 가을날의 공원길을 걷는 뒷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졌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작품에 대한 변을 대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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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3 - 아우스터리츠의 태양
막스 갈로 지음, 임헌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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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7

 

근세사의 한 획을 긋고 있는 인간 나폴레옹, 군인 나폴레옹에 관한 진솔한 작품이었다.

작품이 나폴레옹의 신화적 측면을 그렇게 강조하지 않았었더라면 정말로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그런 스케일 있는 작품이었다.

 

본 작품 전반에 걸쳐 느낀 개인적인 감흥 몇 가지를 요약해 보면

 

첫째,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언론을 이용할 줄 아는 장군이었다.

그는 전쟁에서 적이 유리해 지거나 아군이 불리한 정보를 흘리지 않기 위해 적절하게

언론을 통제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전쟁터에서의 유리한 심리상태 및

적에게 우월성을 보이기 위해 자기의 측근인 내무장관에게 불리 기사방지를 지시하는

대목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는 역으로 당시 프랑스의 높은 언론 수준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인데, 작품 배경이 되는 시기가 19세기 임에도 언론의 자유가 얼마나 크게

활성화되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 작품이었다.

 

둘째는 권력에 대한 맛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현실이라고 말해야 될지 아니면 권력의 속성이라고 말해야할 지 잘은 모르겠으나 동생이

황제니깐 식구들도 황제가 되어가는 대목이 종종 나오는데,

이런 대목에서 황제인 나폴레옹이 식구들을 우쭐거리지 못하도록 자제시키는 대목이 간혹

나오고 있는데 이제까지 출판된 역사서나 인물서와는 좀 색다른 느낌을 준 내용이었으며

- 이것으로 인해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샀는지는 모르겠으나 - 우리들의 위정자들 자녀들이

한 번쯤 읽고 느껴야 될 사항이 아닌가 여겨졌다.

 

셋째는 부하들을 적절히 할용하지 못하고 중차대한 일을 앞에 놓고는 대부분을 자신의

능력과 판단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전쟁에서의 key word'전략과 전술' 등이 있겠으나 전쟁은 어쨌든 사람이 하는 것으로

전투에 직접 참여하는 부하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용병술'이 무엇보다 중요한 항목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나폴레옹은 이러한 점이 약했다고 생각되어진다.

그가 러시아 정벌에 실패하고 돌아와 독백처럼 '나는 부하들을 복종시키게만 했다'라는

대목에서 그가 부하들을 잘 활용치 못하고 얼마나 독선적이었고 얼마나 가혹하게 부하들을

다루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 대목이었다.

 

넷째는 군인으로서, 황제로서 역사를 사건을 꿰뚤어 보는 '통찰력'은 있었으나 인간 혹은

황제로서의 '인간성'은 그리 썩 좋은 인물이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실제 나폴레옹은 전쟁 감각이 상당히 탁월하였던 것 같다. 이것이 지나치고 독선으로 흘러

끝내는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부하들의 이탈로 연결되고 패전으로 이어져 그는 재기의

발판을 잃어버리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나폴레옹, 그는 분명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인물이기는 하나 자기 자신만의 능력과

독선만을 믿고 자신과 운명을 같이 할 만한 변변한 부하 하나 양성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그들로부터 버림을 받는 신세가 되었으며 끝내는 자신의 몰락을 몰락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점이 나타나고 있는데 역시 구제가 어려운 인물이었다고 여겨진다.

 

결론적으로 '그는 군인으로서, 황제로서 모두 실패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청년기 시절에는 자신의 고향인 '코르시카'의 독립을 위해, 프랑스 군인이 된 이후에

는 새로운 조국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노력을 했으나, 독선과 독단 그리고 아집에 의해

이루어진 영광이었기에 그가 혼자가 되었을 때 어느 누구도 그에 편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친 형제조차도 말이다.

 

우리는 역사책이나 기타의 책에서 나폴레옹이 속병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또 이

작품에서 간혹 표현이 되고 있기도 하지만 마지막에는 유배된 섬의 '고온다습한 날씨와

불결한 환경으로 인한 간염'으로 사망하지 않았나 보여진다고 필자는 이야기한다.

나폴레옹 그는 엘바섬 뿐만이 아니라 세인트헬레나에 유배된 6년여 동안 부인의 편지는

고사하고 아들에 대한 소식도 그의 측근의 배반으로 인하여 한 통도 받지 못한다.

그의 측근들은 그렇게 철저히 그를 배반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군인으로서의 나폴레옹이나 군주, 황제로서의 나폴레옹은 실패한 인물이었다고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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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한 교육없다
이자혜 / 문예당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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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8

  

민족사의 격동기(한일합방 후 해방, 6.25전쟁)때 짧게나마 같이 했던 아버지와의

- 이수성 전총리의 아버지, 이충영씨는 일제시대에 판사를 지내셨다 - 추억을 더듬으며

또 그런 아버지를 그리며 살아가는 한 가족을 통해 그 속에 배어있는 아이들의 가정

교육을 통해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이며 또 어떻게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인지를,

웃어른을 어떻게 공경하는 것인지를, 형제 간의 우애,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간적인 도리

등을 작은 사례를 통해서 현대인들, 자녀를 가진 오늘날의 부모들에게 교육시키고 있다

하겠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하였는데 그 중 가장 크게 동감하였던

것은 '일기작성'이었다.

 

나는 '일기작성'이 사람을 바르고 옳게 자라게 한다는 큰 뜻이 있어 나의 아이들에게 

강조한 것이 아니라 나의 경험상 즉, 대학시절 및 군 시절 - 훈련소 시절 '수양록'이라는 것을, 회사에 입사해서 연수원 시절에도 수양록 비슷한 것을 작성했었던 기억이 있다 -

에 어떤 목적을 갖고 쓰지는 않았지만 간간이 써 본 일기를 지금 읽어보니 유치하기

그지 없으나 글 쓸 당시를 생각해 보니, 글을 쓴다는 것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요, 시간의 흐른 뒤 자신이 당시 어떤 생각과 느낌으로 글을 썼을까를 돌아본다면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스스로에게 큰 도움이될 것 같다는 점에 이끌려 또 성장 후 

아이들에게 큰 추억의 하나를 만들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일기 쓰기를

아이들에게 강조하였는데,

이 책에 나오는 이수성 전 총리의 부모님께서도 나와 같이 일기 작성을 자녀들에게

강조하였다는 점이 점이 이 전 총리의 부모들과는 비록 다른 관점에서 일기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계시기는 하지만 공통되는 부분이 있어 기분이 매우 좋았다.

 

비록 어린이들이 쓰는 일기의 대부분은 개발새발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지만 그네들이 일기를 쓰는 동안에는 어린 소견으로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리라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일은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일기를 쓰지 않아도 되는

나이 - 그 때가 되면 자기들이 스스로 쓰겠지만 - 가 될 때까지 시켜볼까 한다.

최근에는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을 읽고 난

지금 반드시 매일 일기 작성을 강조하고 생활을 반성시키는 일을 공부에 우선해 시켜야

하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누구나, 어느 가정이나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나 추억이 있기 마련인데 작품도

역시 가정부의 실수로 척추가 부러진 여동생(지혜)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언급이 안

되고 있으나 이야기 후반부에 진지하게 서술하고 있는 여동생에 대한 이야기 대목에서는 이수성 전 총리의 부모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 나오게 하고 있다.

나라면 그럴 수 있겠는가, 나였다면 가정부를 가만히 두었겠는가 라는 점에 생각이

미치자 머리가 저절로 수그러 들었다. 아무튼 이 집안은 잘 될 수 밖에 없는 집안이었다.

 

부모들이 그 시대 어느 가정보다 많이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서 그 집은 잘 될 수

밖에 없는 조건들로만 이루어져 있었으며 또 그것에 만족치 않고 자식들 모두가 부단히

노력했다는 점이 오늘날 되는 집안의 대명사 추앙받게 한 조건이 되지 않았겠나

여겨진다.

아버지는 납북되어 자식들에게 변변한 것 한 가지 남겨 놓으시지 않으셨지만 자식들에

물질적 재산보다도 더 큰 '아버지라는 자리'가 어떤 자리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를

알려주셔서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자식들에게 평생의 도움이 되는 무엇인가를 남기기 위해 오늘도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남보다 어차피 뛰어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출발을 했다면 나만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뛰어나고 가진 자들이 이룰 수 없는 분야를 갈고 닦아 나만의 색깔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자세가 아닐까?

주어진 삶, 주어진 시간 속에 개인들이 거두게 되는 뜻 깊은 결실은, 순간에 충실하고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미소를 짓는 것이지, 순간의 절망을 연속된 삶 속에 대비

시켜 이내 자포자기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쉽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내 기억으로는 이 작품을 지난 2001년도 읽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작금 다시 여기에 독후감으로 올리는 이유는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사랑만한 교육이 진정 없기에 모든 이들이 읽어 보았으면'

해서 이곳에 올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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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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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관점으로는 작가인 양귀자씨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랑의 유형 중에서

극명하게 대비되는 3가지 종류의 사랑을 제시하여 각각의 사랑이 담고 있는 뜻

,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이며 또 어떻게 추구되는 것인지, 주어지는 것인지, 만들어가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 작품이었다고 판단되는데,

 

작품이 시작되는 시간적 배경을 '만우절'로 삼은 이유는 진실과 거짓, 모두가 진실처럼

공존하는 만우절은 거짓이 거짓으로 평가되지 않고 거짓이 진실과 동일한 수준의 의미성을

갖는 날이 주는 상징도 있지만, 인간들은 저마다 '행복이라는 포장'속에 숨겨진 각자의

불행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밖에 없는 번화가 쇼윈도에 진열된 상품처럼, 행복으로

위장한 채 살아가는 삶은 그 자체가 '작은 모순'이며, 그러한 모순된 삶이 펼쳐지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사회는 '큰 모순'이라는 의미성을 부여키 위해 만우절로 시간적 배경을

선택하였다고 판단한다.

 

먼저 쌍둥이로 태어나 완전히 대비되는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와 이모의 삶을

제시하면서 두 사람의 삶 속에 숨겨진 사랑의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찾고, 찾은 해답을

부모들의 삶의 축소판인 성격의 두 남자와의 사랑을 통해 주인공이 찾고자 하는 진정한

사랑을, 자신의 동생이 펼치는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을 서술해 가면서 - 여성 보호본능을

이야기하는 참사랑과 행복에 대한 답을 구하려한 작품이 아니었나 평가하고 싶다.

 

잦은 아버지의 가출과 철없이 일을 저지르고 끝내는 감옥에 갇히고 마는 아들(안진모)

위해, 몸 보신용 뼈국과 닭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피곤한 삶과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과

평범한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각종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이모, 누가 보아도 진정

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이모였으나 이모는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치며, 누가 보아도

피곤하고 지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어머니는 어려운 일을 당할 적마다 책과 씨름하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주인공은 어머니와 같은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며 이모와 같은 삶을 동경한다.

그러나 자신의 애정문제에 있어서는 자신의 아버지와 이모부의 축소판 같은 남자 가운데에

아버지의 삶과 같은 남자에게 마음을 주나,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결정의 시기에

분명, 이모의 자살을 보면서 진정한 삶이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을 주인공은 이모부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남자를 선택한다.

이모의 삶 속에 내재된 모순과 어머니의 삶 속에 내재된 현실적인 모순점을 알면서

주인공은 이모와 같은 화려한 모순을 선택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동생 역시 비둘기 같은 애인 - 시작은 비록 부잣집 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사랑

같기는 하지만 - 을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지자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모순된 이별을 추진하지만 비둘기(여자)는 떠나지 못하고 남자 주위를 맴돈다.

 

작품은 일견 굉장히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나,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주제성이나 결혼에 이르는 과정에서 추구한 인생관내지 강조점은 작가의 명성을 더욱

공고히 해주는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작품과 작가에게 갖는 아쉬움이라고 한다면, 주인공의 결혼 생활까지를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함으로 전개시키면서 진정한 모순이 무엇인지, 또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

한다는 결혼생활을 통해 접하게 되는 모순에 대해 좀 더 전개시켰으면 어떨까 하는 크나큰 아쉬움이 들게 한 작품이었다.

 

양귀자씨와 한 번 차라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기분이 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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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한 열네 번의 인생 수업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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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6

 

스승은 영원하다'라는 명제로 이 작품을 평가하고 싶다.

 

1959년부터 1994년까지 미국의 명문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쳐 온

'모리 슈워츠' 라는 교수가 현대판 죽음의 병이라 불리우는 '루게릭병'에 걸려 죽어 가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제자를 위해, 강의실에서 다하지 못한 내용을 목전에 다다른

죽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병상에서 제자와의 대화로 인생의 가르침을 전해 주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다시 말해 죽어가는 사람(스승)이 살아남을 사람(제자)에게, 살아남을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인생의 지침에 대해 일깨워 주는 일종의 대화록이었다.

제자 역시 스승의 그런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듯 디트로이트에서부터 보스톤까지(미국

지리는 잘 모르지만 얼추 수 백 킬로는 떨어진 듯하다) 기쁜 마음으로 날아가 마지막

가는 스승의 인생 강의를 경청하며 스승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시한 내용이었다.

 

많은 부분은 교수 주변과 제자 주변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 약간은 산만하다고

느끼게 한 점이 없지 않았으나 스승의 어록을 나름대로 발췌하는 선에서 독후감을

대신하고자 한다.

 

-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운다.

- '가족'의 의미는 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거기 서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 타인에 대해 완벽한 책임감을 경험하고 싶으면 그리고 사랑하는 법과 가장 깊이

   서로 섞이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자식'이 있어야 한다.

 

- 우리의 문화는 인간들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그 문화가 제대로 된

   문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굳이 그것을 따르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 사랑을 '나눠주는 법''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 또한 사랑이야말로 유일하게 이성적인 행동이다.

 

- 자기의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 받쳐야 하며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헌신하고, 자신에게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하는데 헌신해야

   한다.

 

- 나이 드는 것은 단순한 쇠락이 아니고 그것은 성장이다.

   그것은 곧 죽게 되리라는 부정적인 사실 그 이상이다. 그것은 죽게 되리라는 점을

   이해하고 그 때문에 더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

 

- 인간 최고의 단점은 '근시안'이라는 것이다.

 

-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 인간 관계에는 일정한 공식이 없다. 양쪽이 공간을 넉넉히 가지면서 사랑이 넘치는

   방법으로 협상을 벌여야 하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책을 덮으며 외국의 이름도 처음듣는 어느 교수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 한 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을 때 나는 갑자기 돌아가신 여러분들의 유작들이 서점 한 귀퉁이에 쌓여 켜켜이 먼지를 뒤집어 쓰고 독자들의 외면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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