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지혜 1 (보급판 문고본) 지혜의 마당 1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박민수 옮김 / 아침나라(둥지)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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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8

 

태초에 인간이 창조되어 살아오면서 자연과 환경으로부터 수많은 도전을 받고 좌절과 극복의

과정을 거치며 자연 앞에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스스로를 발견함과 동시에 스스로 나약함을

발견하였고 또 타인과 무리를 이루어 살면서 힘만으로는 상대를 제압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

하면서 한없이 좌절했을 것이다.

어느 시기가 되자 인간들은 그런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도전을 했을 것이고 또 대항해서 싸워

이기기도, 지기도 하면서 새로운 사고가 싹 텄을 것이다.

아마도 사고의 내용은 이런 것 즉, ‘살더라도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는 없을까?’ 였을

것이며 그것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철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하였을 것이다.

철학의 탄생은 인간 스스로가 자신을 돌아보게 함은 물론 자아에 눈을 뜨게 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며 나아가서는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고 또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가에

대해 고민을 본격적으로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종전과 달리 자신의 생에 대한 자각하게 되었고, 자신에게 펼쳐지는 세상에 대해

수동적으로 대해 오던 것을 능동적으로 대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러한 행위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반복되면서 '세상을 보는 지혜'라는 것이 탄생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만들어진 '세상을 보는 지혜'라는 것은 어느 한 편에 국한된 것이 아닌 대인관계

적인 측면, 세속적인 측면, 경제적 측면 등 인간이 살아가며 접하는 전 분야를 망라해서 사고하고

정리되면서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인생의 방향타로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 나의 논리가 너무 비약적인지 모르겠지만 -

 

여기에 모은 글들은 읽다 보면 읽는 이들로 하여금 다시 한 번 눈길을 붙잡는 대목도 있는 반면,

대개는 어째서 이런 글들이 세상을 보는 지혜가 되는지 또 자기 성찰의 가치 있는 명언이 되는지

읽는 이들로 하여금 어떠한 감흥이나 동감을 불러일으키지 못 할 정도의 저급한 내용의 글도

상당수 있다고 보여진다.

그것은 아마도 세상을 보는 지혜라는 것이 고매한 인격자들의 신선놀음에서 탄생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의 생활에서 체득된 이야기여서일 것이다. 작품으로부터 각박하고도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자신의 부족한 감정을 메우는 재료를 많이 얻었으면 한다.

그리고 마음의 안위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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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귀환 - 희망을 부르면, 희망은 내게 온다
차동엽 지음 / 위즈앤비즈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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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9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부 몰상식한 내용만 갖고 이야기를 해 본다면 정말

우리에게는 희망은 고사하고 절망만이 넘쳐나는 사회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특히 하라는 일은 안하고 멀쩡한 대리운전 기사나 두들겨 패는 몰상식한 사회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극히 희망스럽지 못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여기서는 개인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할 [희망]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고 혼란스런 행동을

보일지라도 사회 구성원 각자는 자기만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키워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자께서 결론적인 외침으로 말씀하시고 계시는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 마라 그리고 희망을 외부에 걸지 마라. 우리 자신이 희망이다

라는 문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사회 구성원 각자에 대해 어떠한 마음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지적하신 좋은 말씀이 아닌가 생각하는 바이다나 역시 이 문구를 보는 순간 내 안의

불 덩어리같은 그 무엇인가가 올라 오는듯한 큰 느낌을 받았다.

이와 더불어 나를 더욱 벅차게 하면서 가슴 설레게 한 문구는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목사님이

항상 외치고 계시는 바라봄의 법칙을 갖고 세상과 마주하라 는 말씀이었다.

바라봄의 효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신부님께서는

1) 자주 바라보고 2) 선명하게 바라보고 3) 계속 바라보라

그러면 [희망]은 정말로 말하는대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약한 인간이기에 아무리 강건한 마음과 육체를 가졌다 하더라도 간간이 밀려 들어오는

불안감은 어쩔 수 없는 장애 요소인데, 저자께서는 이런 불안이 엄습할 때, 불안에서 도망치려고

만 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불안을 이용해 자신의 도약과 발전을 꾀하는 기회로 삼을 것을 주문

하고 계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희망 보다는 절망이 먼저 찾아 올 때 자포자기하지 말고 자신 스스로 또 하나의

넘어야 할 운명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맞부딛혀 처절히 싸울 것을 주문하고 계신데 나는 전적

으로 동의하는 내용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저자께서는 맷집을 키울 것을 이야기하고 계시다.

그것은 바로 누구나 실패한다, 이번에 실패했다, 기회는 계속 있다는 생각만이 자신만의 맷집을

키우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시는 데 정말 동감 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나처럼 소심한 사람은

어떤 일을 하다 잘 안 되는 일이 발생하거나 당초 생각했던 목표가 어그러질 경우 극도로 자책

하는 그런 스타일인데 이 말씀을 통해 나만의 맷집을 어떤 방법으로 길러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바라봄의 법칙맷집 키우기와 더불어서 중요한 요소를 한 가지 더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무엇을 하든, 어떤 일이 벌어지던 간에 우리는 승자의 자세를 견지

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고 계시다.

, “성공의 집을 지으려면 반드시 성공의 설계도 곧 성공자로서의 자아 이미지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는 강조를 하고 계신데 절대적으로 공감가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살아 오면서 더 정확히 이야기한다면 최근에 느낀 사항 중 하나가 나는 인간에게 기회는 누구나

동일하게 찾아옴을 살아가면서 상당히 많이 느끼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나 정몽구 회장, 박 대통령, 안철수, 송대관 심지어는 김정은도, 시진핑도 그들이

알게 모르게 국면 전환이나 자신에게 벌어지는 여러 상황을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기회가 과거에도 있었을 것이고 지금도 그들의 주변에 찾아와 아마도 맴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절대적인 기회나 희망으로 판단한 사람은 대기업 총수로 혹은 대통령

되었지만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사람은 연일 미사일이나 쏘고 지랄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의 모든 삶을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한

분명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고 그 기회를 활용하는 방법에 따라 그 결과는 천양지차로 나타날

것이라고 나는 오늘도 믿고 살아간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기회가 행운으로 바뀌는 것은 오직 준비를 하는 자에게만 찾아

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격주마다 동문 축구대회에 나가 운동을 한다.

내 나이 50대 중반, 축구회 멤버는 20대 중반부터 내 나이까지 다양한 나이대가 분포하는데 내가

우리 축구회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후배들은 시합때면 항시 센터포드에 위치시켜 준다.

- 민첩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수비수로 세웠다가는 패배가 뻔하기 때문이다 -

전 후반 각각 30분씩 뛰지만 골이 내게 전달되는 것은 시합 도중 1~2번 밖에 없다.

왜냐하면 내게 볼을 주면 헛발질에, 볼을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시합을 뛸 때마다 패스를 해 주지 않는 후배들을 무척 원망을 했었다.

"뛰라고 하면서 왜 패스는 안 해 주는 것이야“, ”지들은 뭐 잘한다고...“ 등등등 하지만 이런

불만이 높아갈 수록 후배들은 더욱 더 패스를 해 주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우리 편이 볼을 패스해 주지 않을 때라도 항시 볼이 오는 것을 예상하고 나름대로 공격의

흐름에 대한 연구도 하고, 준비도 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은 하지 않고 마냥 우리 편이 내게

공을 패스하지 않는다는 것만을 갖고 불평만 하고 경기도 슬슬 뛰다보니 느닺없이 볼이 오면

상대에게 공을 뺐기거나 헛발질에 엄한 똥 볼을 차고는 하는데 같은 편 어느 누가 내게 볼을

패스해 주겠는가.

경기를 하면서 나는 나의 저질 체력, 똥 볼, 미숙한 상황 판단 등등에 대한 나의 실수를 철저히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역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30분씩 4쿼터를 뛸 때 우리 편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던지 간에 언젠가는 꼭 한번은 공이 내게

올 것이다. 그 때를 대비해서라도 열심히 뛰어 다니고 소리도 치면서 언젠가 불시에 날아 올지

모르는 공을 생각하며 그 순간에 맞는 다음 상황을 연구하며 뛰어 다녀보자. 비록 공이 내게 오지

않아 시합이 끝날 때까지 공 한 번 차보지 못하고 축구시합이 끝난다 해도 내가 뛰어 다닌만큼 내 체력이 증가된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긍정적인 생각과 어거지 희망을 세워 놓고 시합을 하다 보니 정말로 내게 기회가 왔고 나는

멋지게 골로 연결시킬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이제는 그래도 자주는 아니지만 패스가 자주 되고

있다.

나는 내 스스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내게 패스를 안 해 주는 후배들을 원망을 했고 준비가 안

되었는데 나만 몰랐던 것이었으며 그 모든 것을 세상과 환경 그리고 주변 탓으로 돌렸던 것이다.

나는 축구를 통해, 바라봄의 법칙과 맷집 그리고 승리의 모습을 그리면서 나름대로의 희망을

보았던 것이다.

 

퇴직을 하고 이제 길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뚜렷한 수입원이 없어 약간의 걱정은 되지만 위에서 언급한 나만의 바라봄의 법칙과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맷집 그리고 승자의 모습을 그리며 오늘도 뛰고 있다.

과거의 나는 대기업 소속 직원이었기 때문에 영원한 그것도 강력한 이었지만 지금은

한 없이 나약한 이 아니라 도 안 되는 로서의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나는 꿈이 있고

희망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행복하다.

오늘도 출근하는 아내가 나를 바라 보며 웃으며 이야기해 주었다.

당신 요새처럼 행복한 모습으로 사는 모습은 최근에 본 적이 없네요. 저도 힘나요

대기업 다닐 때의 3분의 1도 아닌 5분의 1의 임금을 받고 살고 있지만 나는 행복을, 희망을

그리고 삶의 즐거움을 일상에서 찾고 있기 때문에 마냥 행복하게 살고 있다.

솔직히 조만간 금전적인 문제가 나의 생활을 압박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무릎을 꿇거나 나만의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자의 그 말씀처럼 나는 그 때가 되면 분명 그 무엇인가를 붙잡고 즉,

사소한 것 하나라도 붙잡고 이것이 희망이다

라고 일갈하면서 나의 생활을 활기차게 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두 손 벌려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오로지 내가 개척해 나가야 한다.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를 생각하면서 오늘도 열심히 뛸 것이다.

다시 한 번 희망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의미에서 영국의 정치가이자 작가인 조지프 에디슨이

한 말을 음미해 보고자 한다.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끈기를 죽마고우로, 경험을 현명한 조언자로, 신중을 형님으로, 희망을

 수호신으로 삼으라.“

 

나는 이런데......

제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은 어떤 희망을 부여잡고 살고 계십니까?

 

 

작품 속에서 언급되는 명 문구들

- 인간은 끊임없이 희망을 품는 존재.(에른스트 불호르)

- 절망을 치유하는 명약은 희망 뿐이다.

-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라틴어 경구, Spero, Spera)

- 청춘의 조건은 나이가 아니라 열정이다. 청춘의 다른 이름은 가능성이다.

- 화내도 하루, 웃어도 하루.(어느 일본 사찰의 푯말)

- 나에게는 아직도 비장의 무기가 남아 있다. 그것은 희망이다.(세인트 헬레나의 나폴레옹)

- 희망은 실패와 좌절에 직면하여 우리가 딛고 일어설 최후의 보루이다.

-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이 포기하는 그 순간자신이 성공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 왔는지 깨닫지 못한다.(토머스 에디슨)

-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키에르키고르)

- 인간은 영혼이 슬프면 병균에 의해 죽는 것보다 더 빨리 훨씬 더 빨리 죽게 된다.(존 스타인 백)

-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에는 핑계가 보인다.(필리핀 속담)

- 희망은 모든 인간의 행위 속에 들어 있는 신적인 힘이다.(에른스트 블로흐)

- 꿈꾸는 것이 가능하다면 꿈을 실현하는 것도 가능하다.(월트 디즈니)

- 같은 말은 2만번 이상 반복해서 말하면 그것은 현실이 된다.(미국 인디언 속담)

- 신은 기다릴 수 있는 자에게 모든 것을 준다.(서양 격언)

- 실패란 보다 현명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다(헨리 포드)

- 위험(danger)에 한 치 모자라는 게 화(anger)이다.

  따라서 우리는 타인의 행동이 나로 하여금 화나게 하도록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 성공하는 데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은 15% 밖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나머지 85%

  인간 관계였다.(카네기 공대 성공자 설문 조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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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2
김만중 지음, 송성욱 옮김 / 민음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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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9

 

작품을 읽는 내내 나는 왜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늦게 접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후회를

하면서 읽고 또 읽었다

솔직히 이 작품을 읽기가 싫었다.

더 솔직히 이야기한다면 수 년 전부터 심각하게 이 작품을 읽을까 말까를 심각히 고민하였는데

그 이유는 혹시 고리타분하고 쓸데없는 한문체로 작품이 구성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난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현실감이 떨어지는 구성으로 나의 문학적 소양이 낮아지지나 않을까

하는 선입견으로 인해 의도적으로 작품을 외면해 왔는데 나의 그런 노파심이 잘못되도 크게

잘못되었음을 작품 몇 장 넘기지 못하고 확인하게 되었다.

오히려 아주 재미나고 흥미로운 작품이었으며 어떻게 이런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다 읽고난 지금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결론적으로 나는 문학을 사랑하고, 고전을 좋아하는 모든 이들이 한번은 꼭 읽어 보아야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작품을 책 빌려주는 곳에서 빌려서 읽지 말고 꼭 구매해서 두고두고 읽기를 강력히 권하고자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어렸을 적 나와 내 주변의 독서 환경을 생각해 보니 친구 집에 놀러가면

꼭 책장에 꽂혀 있던 외국의 명저인 소공녀, 장발잔과 로빈스크로스의 모험 등은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오늘도 살아 숨 쉬고 있지만 이런 우리의 고전은 전혀 기억에 없는 것은 고사하고

학창시절 시험 대비해서 저자와 내용만 공부한 일천한 기억 밖에 없는 점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작품을 읽으며 우리의 고전에 대한 관심을 더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굳히는 그런

계기가 되었다.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작품의 주제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고전에 대한 일천한 지식도

없는 내가 작품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가치는 물론이거니와 전체 고전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논하지 않는 대신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싶고, 확인해 보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해당 작품을 한 번 읽어 보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저는 여기에 작품과 관련 있는 별다른 이야기를 축약하거나 별도의 개인적인 의견을

기록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는 독자들과 저자인 김만중 그리고 출판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며

대신에 이런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꼭 작품을 구매해서 읽어 봅시다라고 말입니다.

막연히 이렇게 강조를 하는 것보다 등장하는 주요 인물 몇 몇의 이름을 올려 여러분의 궁금증을 자아내고자 합니다.

주인공 양처사, 그의 두 부인인 난양공주, 영양공주와 여섯 첩인 계섬월, 가춘운 등과 이야기의

중심에서 일을 꾸미는 태후와 왕 그리고 그의 또 다른 아들 월왕, 주변인들인 정거사, 심지연,

백충거 등 이들이 작품에서 펼치는 이야기는 단순한 고전으로서의 이야기가 아닌 부부의 도,

군신의 예, 청춘 남녀의 기본, 부모에 대한 공경심 등 이 모두 그려지고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읽으십시오. 커피 두 잔 값이면 아주 훌륭한 작품을 손에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작품에서 가끔씩 예화로 들고 있는 고사 속 주인공들의 내용을 아는 사람은 정말로 고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데 나는 50% 정도는 알겠더라구요...

잘난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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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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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필력은 아무리 노력해도 작가의 근처에도 못갈 것같아 우울하다

특히, 저자께서 작품 초반에 언급하고 계신

나는 성인의 글을 아무리 읽어도 글 따로 마음 따로, 마음 따로 몸 따로

라는 표현에 생각까지 따로가 되다보니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백 만 번 스스로 만든 졸렬한

문장력에 대해 안위를 하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부족한 것은 부족한 것이다 보니 오늘

나는 아주 우울하다.

그래도 한 구석 굳이 위로할 명분을 찾는다면 일상 생활 속에서 접하는 여러 현상을 간단명료한

표현과 상징으로 쉽게 접근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작가께서는 심오한 철학적 해석과 현미경을

들이대고 관찰하는듯한 묘사로 인해 치열한 삶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

에게 작품이 약간은 버겁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작가는 참으로 생각이 많으신 것 같다 그래선 그런지 유전적이기도 하겠지만 흰머리가 다른

작가에 비해 유독 많으신 분으로 알고 있다. - 그런 반면에 나는 생각이 짧아서인지 머리 숱이

거의 없다 -

내가 단적으로 작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를 작품 속 문장에서 일부 발췌해 보면

 

“(서해) 이 섬을 드나드는 빛은 비스듬하다. 아침의 빛은 멀리서 오고 저녁의 빛은 느리게 물러

가서 하루의 시간은 헐겁고 느슨하다. 이 섬의 빛은 어둠과 대척을 이루지 않는다. 빛이 어둠을

몰아내지 않고 어둠이 빛을 걷어가지 않는다. 빛과 어둠은 지속되는 시간의 가루들을 서로

삼투시켜가면서 교차되는데, 그 흐름 속에 시간과 공간은 풀어져서 섞여 있다. 어둠에 포개지는

빛이 비스듬히 기울 때 풍경은 멀고 깊은 안쪽을 드러낸다. 빛은 공간에 가득 차지만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빈 것을 빈 것으로 채워가면서 명멸한다. 만조의 바다 위에 내리는 빛은 먼 수평선

쪽이 더 찬란한다. 그 먼 빛들의 나라로 들어가면 그 나라의 빛은 더 먼 나라에서 빛나고 있을

터이다”(63, ‘서해’)

 

나는 이 대목에서 저자의 글에 대한 내공(?)과 나의 문학적 자질의 기본이랄 수 있는 글쓰기 능력,

사고력의 졸렬함 그리고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저급함으로 인해 자칭 글쟁이로서의 위상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하고는 그냥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 없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라면을 끓이며]는 뭐랄까 우리 서민들의 삶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일용할 양식인 라면

얽힌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는 막연히 문학을 동경해 뭔가를 써보려 노력하는 어수룩한

작가로서의 관점과 필력을 어찌 갈고 닦아야 하는지를 보여 준 교과서적인 작품이었다고 생각

한다.

작가께서 표현한 가슴에 와 닿는 일부 문구를 살펴보면

- ‘무짠지는 새벽의 맛이고,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시원적인 맛이다.

- 추위와 시장기는 서로를 충동질해서 결핍의 고통을 극대화한다.

- 맛은 추억이나 결핍으로 존재한다. 시장기는 얼마나 많은 추억을 환기시키나

- ‘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인은 골수염처럼 뼛속에 사무친다.

- 라면 시장의 앞날은 소외된 군중 속에서 번창할 것이다.

 

그 밖에 [1,2] [] [목수] [] [목숨1,2] [] [서민] [여인]들의 이야기 역시 짧지만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봄직한 내용을 주제화하여 그 이면을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전개하고 있는데, 작품을 접하기 전 스스로의 삶을 단순 무채색으로

바라만 보던 관점에 덧칠을 시켜 준 작품으로 많은 생각을 던져 준 작품이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작품 [][시민]이라는 작품에서 찾아 보았다.

- 모든 밥에는 낚시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시 바늘을 함께 삼킨다.([])

- 지도자가 귀족의 명예심을 잃을 때 서민의 지옥은 시작된다.([시민])

이 두 문구는 아무리 읽어 보아도 이 보다 더 멋지며 핵심을 찌르는 듯한 문구를 문학 작품이나

에세이 등을 통해 접한 기억이 최근에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시민]이라는 작품에서 언급하신 문구는 현실의 관점에 대한 문학적 표현의 신천지를 열어

주시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 왔는데, 그보다 이런 문구는 나보다는 선거를 앞 둔 우리의 선량

대표들이 더 느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광야를 달리는 말]이라는 작품에서는 직업군인으로 한 평생을 사셨던 나의 부친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게 하였으며, 안전 불감증을 통렬히 질타하고 있는 [세월호]관련 이야기는 아무리

강조하고 질타를 해도 변하지 않는 기성세대의 반성을 촉구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언급하고 싶지 않아 나만이 느끼고 있는 작품에 대한 느낌은 꺼내지 않기로 다짐했다.

다만, 그 작품을 통해 작가께서 통렬하게 비판한 한 대목을 이야기하란다면

- 중국 고대의 전국시대에 수많은 나라들이 멸망했다. 그 나라들은 대부분 반성하는 기능의 마비,

  무책임, 무방비 때문에 망했다.

 

중학교 시절이었다.

추운 겨울밤 형님들께서 출출하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게 라면을 끓여 올 것을 지시하여 라면

5개를 큰 냄비에 끓인 적이 있었다. - 3형제가 먹을 양이었다 -

당시 석유 곤로가 아닌 연탄 불에 라면을 끓였는데, 다년간 연탄불을 갈아 보았기 때문에 연탄불

특성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 나는 라면이 끓기를 기다렸음에도 기대만큼 라면이 끓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처음에는 라면을 3개만 넣었는데 잠에서 깬 막내 녀석이 - 도합 4명이 먹게 되었다 - 자기도 먹겠다고 큰 형에게 아양을 떠는 바람에 2개의 라면을 추가하는 바람에 라면 양이

5개로 늘었는데, 라면의 양이 늘었으니 당연히 물의 양도 늘려야 한다는 미친 생각에 이제 막

끓기 시작한 냄비에 물을 더 붓고 한 참을 기다린 후 냄비 두껑을 열어 보니 라면과 라면 국물은

온데 간데 없고 라면 대신 라면 떡냄비에 들어앉아 있었다.

그 날 라면을 잘못 끓인 벌칙으로 형들 앞에서 라면 5개를 혼자 다 먹어야 하는 기합을 받은 적이

있으며 그 날 이후 라면을 잘 끓일 때까지 겨울밤 내내 라면을 엄청 끓여서 형님들께 바친적이

있다.

 

또 하나는 나의 청소년 시절의 일정 부분은 라면을 빼 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먹었던 적이 있다.

특히, 공부하다 새벽에 끓여 먹던 라면의 맛은 지금도 머리 속에 아름다운 추억처럼 각인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님처럼 그 맛은 내 혓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도 라면 한 개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노란 양은냄비에 계란과 파 그리고

김치 국물을 약간 넣고 끓인 후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서 먹는 겨울밤의 라면 맛은 거의 환상에

가까운 맛을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먹은 라면의 폐해도 컸었다.

추운 겨울날 야심한 시각에 부엌에 쭈그려 앉아 라면을 먹고 책상에 앉으면 야속한 졸음 귀신이

꼭 따라 붙는다. 라면을 먹고 공부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잠자리에 그대로 들어가면 아침에

반드시 부작용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입 맛을 잃게 되어 그냥 학교에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나를 격려하는 모친의 목소리가 내 등 뒤에서 들려온다

셋째야 네가 밤새 공부를 열심히 해 입 맛이 없는가 보구나

라는 이야기에 가슴 뜨끔함을 느끼며 학교로 발길을 돌리면서 오늘은 라면 먹지말고 공부만하다

자야지 하지만 새벽 라면의 유혹은 그리 쉽사리 포기가 안 되는 그런 유혹이었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작품을 읽으며 라면과 얽힌 두 가지 이야기는 언제나 내 머리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라면만 바라보면 그 생각에 절로 나의 미소를 이끌어 낸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라면 비싼 라면이 나타나도 과거 부엌에 쪼그리고, 형들 앞에서 벌 받으며

먹던 라면만큼 맛있는 라면을 아직 발견하지 못해 아쉽다.

라면을 끓이며라는 작품을 읽으며 나는 이런 추억이 생각났는데, 이 작품을 읽으신 다른 분들은

어떤 생각이 났을까?

아무튼 라면하면 누구나 즐겨찾는 간식이라는 생각보다는 웬지모를 정겨움과 함께 아스라한

옛 추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는 마법을 지닌 일용할 양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라면을 끓이며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며 살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배가 고파 라면을 끓였으며 나는 오로지 먹는 생각만 했으며 간혹 라면에 넣을 계란이 집에 없을

 때는 신경질을 낸 기억 밖에는 없다

라는 이야기 외에는 달리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 없다.

그러니 문장력이나 사고력이 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도 라면을 끓일 때는 그 어느 시간보다도 즐거웠으며 행복했었다는 기억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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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긴 아버지
한승원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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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그냥 가슴이 짠한 작품이었다.

주인공은 작품 속에서 작가에 의해 창작된 아버지가 아닌 바로 나의 아버지이자 우리 모두의

아버지의 또다른 모습이었다.

 

작품의 내용을 언급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내가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가뜩이나 척박한 우리 문학을 더욱 죽이는 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정말로 문학을 사랑하고 이 땅의 문학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를 원하는 독자라면

이런 작품 하나 정도는 구매해 읽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계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문화예술인들을 핍박했다는 인간들을 욕하기 이전에 이런 작품

하나 안 사는 우리의 문학을 아끼는 의식 수준에 대해 스스로 질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욕하고 때리는 사람만 나쁜 게 아니고 그런 사람을 보고도 못본척 하면서 안 말리고 야단치지

않은 사람이 더 나쁘듯 이런 작품 눈탱이로만 읽고 다 읽은 듯이 떠벌리는 사람들도 우리 문학을

죽이는 또다른 블랙리스트를 만들 개연성이 높은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작품을 덮으며 이제는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신 나의 부친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 근, 현대사의 격동기를 온 몸으로 살아 오셨던 나의 부친도 작품 속 주인공만큼 순탄하지는

않은 삶을 살아오신 것으로 나의 추억 속에 자리잡고 있다.

일제 해방 직전 일제 학병으로 징집되어 전선에 투입되기 직전 우리나라가 독립되면서 일본에서

귀국하셨는데, 부친은 당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에 전념하려다 얼마 안 있어 터진 한국전쟁

으로 또다시 전쟁터로 향하게 되신다.

종전 후에는 육군 장교로 중요 업무를 수행하셨지만 세월이 흘러 군에서 높은 위치에 오르신

어느 날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술이 고주망태가 되어 집에 들어오시고는 했었다.

그런 아버지를 미워하며 만취하신 아버지의 군화끈를 풀면서 나는 눈물 반, 콧물 반이 된 채

혼자말로

나는 어른이 되면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

는 다짐 아닌 다짐을 그 얼마나 했었는지 모른다.

시간이 흐른 지금 당시 부친께서 왜 그런 행동을 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 수도, 안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

당시 아버지의 만취 이유는 월남전에 참전하지 않으면 강제 예편될 수 있다는 부담감과 어린

자식 네 명만 남겨놓고 살아 돌아온다고 확신할 수 없는 월남으로 훌쩍 가버리면 아버지와 같이

살 수 없다는 어머니의 협박으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택한 아버지만의 현실 탈출

방법이었으며 고민 해소 방법이었음을 나중에 커서 알게 되었다.

- 모친께서는 남자의 앞길을 막는 행동으로 아버지를 월남전에 참전시키지 못하게 한 것을 평생

  두고 후회하셨다 -

아버지는 가족을 선택하셨고 그리고 예편을 하셨다.

고등학교 졸업장만 있으면 교련교사로 취직을 시켜준다는 이야기에도 전쟁으로 인해 변변한

학교 졸업장조차 없어 군 예편 후 돌아가실 때까지 실업자 생활을 하셨는데 그 때 아버지의

연세는 40대 초반(50대 중반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나 나의 부친에 대한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야기 혹은 글로써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내용에 관계없이 그것을 읽고, 듣는 타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경험하거나

직접 접한 사실이 아니기에 내용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나 공감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냥

단순한 어느 범부의 넋두리 정도로만 이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여기서 생략하고,

작품을 통해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해 느꼈을 감정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지금 살아계신

부모님들에게 전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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