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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말 - 나를 향해 쓴 글이 당신을 움직이기를 ㅣ 이어령의 말 1
이어령 지음 / 세계사 / 2025년 2월
평점 :
추천 권유도 5
이런 작품을 마주하게 되면 다른 이들은 어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해당
출판사의 낮은 안목과 독자를 낮추어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별로 좋지 - 나의
경우는 저자를 워낙 좋아해 어쩔 수 없이 작품을 구매했지만 - 않으며 진정으로 고인
께서 이런 작품 구상에 동의했을까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작품을 엮으신 분들은 나름 의미가 있고 내용적으로 훌륭
하다고 판단되는 고인의 역대 작품 중 괄목할만한 ‘엑기스 문구’, ‘시대와 역사를 꿰뚫는
불후의 명문구’만을 선별, 조합해 놓았다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이러한 행위는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한다.
즉, 엑기스 문구가 어떤 상황과 여건 속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집필되고 표현되었는
지를 원전의 전후 문맥 속에서 저자의 의도가 완전히 파악되지 않은 상태로 해당
문구를 마주한다는 것은 마치 조용필의 ‘허공’이라는 노래를 ‘애국가 멜로디’에 맞추어
부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즉, 전후 문맥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안 된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문구라 할지라도
열거된 여러 문구를 한다는 것은 해당 문구가 지녔을 특정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해당
문구를 읽는 독자들이 그것을 단순한 활자 이상의 의미로 밖에는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 주장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특정 문구 하나를 놓고 전후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들여다 보아라 내가 왜 왜 이렇게 주장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당나귀 귀 빼고, 꼬리 자르고, 몸뚱이만 갖다 놓고 당나귀라로고 외치는 형국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차라리 저자가 던지는 한 두 개의 화두를 선정해 현재를 살아가는 후세들에게 저자의
관점에서 꿈과 희망, 비전을 제시하고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작품을 만들었다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돌아가는 세태를 너무도 잘 표현한 문구가 있어 여기에 옮겨 보았는데, 하나는 .
‘역사적 현실로 볼 때 목적이 수단을 지배한 일보다는, 거꾸로 수단이 목적을 결정짓는
일이 허다했음을 우리는 보아왔다. 말하자면 나쁜 수단을 사용하면 그 목적 자체도
변질돼버리고 만다는 이야기다. 수단은 목적을 상실케 한다. 어떤 전쟁 치고 그 목적이
나빴던 때는 없다. 살생이 목적이 아니라 평화가 목적이라고 한다. 그들은 인간의
자유와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총검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P109 / 총)
또 하나는 이런 글도 있었다.
‘입법은 미래의 시간을 다룬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위해서 법을 만들고 예산을 심의
한다. 그러므로 의회 안에서 전개되는 그 심의의 언술은 추정과 예견 글이고 설득의
언어들로 이루어진다. 앞을 내다봐야 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과거의 규범만 가지고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P 97 / 법)
결론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수준 낮은 잡종들에게 일침을 가해 주고 싶은
이런 것이었다.
물품이 낮은 것은 쓸 데가 있어도 인품이 낮은 것은 버릴 수도 없다. (P257 / 인품)
그래도 내가 희망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고 오늘도 노력하는 것은 283쪽의 ‘사람’에 대한 것으로
[위급한 순간에 부딪히면 누구든지 “사람 살려!”라고 소리를 지를 것입니다. 경향이
없는 상황에서 누구나 할 것 없이 “나 살려” 하지 않고 “사람 살려”라고 외친다.
그 극한 상황에서 자기도 모르게 믿고 있었던 것은 자기가 아니고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 사람은 꼭 살려주어야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냥 못 본 체하고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살려달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이라는 말 속에는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것....
이 절박한 위험을 누군가가 도와주어야만 할 존재라는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
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위급한 경우를 당했을 대 ‘사람’이라는 소리를 크게
외쳤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 속에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믿고 있는 정신이 스며 있고
배어 있다는 방증인 것입니다]
우리의 석학께서는 이렇게 이야기하셨는데, 뭐 느끼시는 게 없습니까?
선거를 앞둔 요즘 우리 아들들이 이야기합니다.
‘요즘 전과자 아니면 출세를 못하는 세상인데 아버진 세상에 내 놓을 작은 전과도
없으시냐고?’
어떤 집 아버지는 ‘방화 미수’에 그친 것 갖고 잘난 체 하며 세상을 자신이 구한 것처럼
터진 입이라고 온갖 주접을 떨면서 폼 잡고 위풍당당 잘 살고 있다고 하면서....
나는 전과 없이 살아온 내 자신이, 세월이 이렇게 원망스럽기가 처음입니다.
늦은 나이이긴 하지만 전과를 만들어 볼까 합니다. 나이가 많아 법이 최대한 선처해
주는 수준으로 말입니다.
- 뜻밖의 기쁜 일이 닥쳐왔을 때는 그것을 훔친 물건이나 혹은 다시 빼앗기고 말 물건
처럼 여긴다. (중략) 슬픔른 대개가 다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당연히
자기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P 14 / 불안)
- 도마뱀을 천 배로 확대시켰다고 해서 악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갓난아이를 열 배로
확대시켰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재산을 배로 늘린다고 하여
행복이 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P 15 / 행복)
- 감사하는 행위, 그것은 벽에다 던지는 공처럼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P 17 / 감사)
- 남을 비방한다는 것은 그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일과 다름없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거지를 동정하지 비방하지는 않는다. (P 30 / 비방)
- 하늘에는 비가 내려야 아름다운 무지개가 뜬다고 했지만 인간의 마음에는 눈물이
흘러야 영혼의 무지개가 뜬다. (P 32 / 눈물)
-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도 근본적으로는 모든 것을 죽은 셈 치고 생각하는 삶의 계산법
이다. 죽은 셈 치면 어떤 불행한 일도 다행으로 보인다. (P 34 / 셈 치다)
- 영어의 ‘피플people'은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그것이 동사로 쓰일 때에는 사람만이
아니라 동시에 ’동물을 많이 살게 하다;, ‘서식하게 하다’라는 뜻도 된다. 동물이 살 수
있는 땅이 바로 살 수 있는 땅이다.
-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손에 망치를 들지 않는다고 해서, 고함치지 않는다고 해서
역사의 방관자라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이야말로 폭력이다. (P 69 / 지성)
- 기억은 술과도 같아서 시간 속에서 발효하고 변질된다. 기억이란 결국 시간이 낳은
또 하나의 사생아일 뿐이다. (P 77 / 기억)
- 거리를 측량하는 자는 여러 가지다. 인간과 인간의 거리는 정으로, 신과 인간의 거리는
믿음으로, 자연과 인간의 거리는 문명으로 그리고 나라와 나라와의 거리는 외교로
측량된다. 사물 간의 거리가 없어지면 인간 활동의 모든 것도 소멸되고 말 것이다.
(P 81 / 거리)
- 지식이 문명을 해결한다 해도 영적 존재인 인간의 마음은 절대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게 지혜입니다. 지혜가 문화를 낳고, 지식이 문명을 낳습니다.
우리는 지금 달나라까지 갈 수 있는 지식을 쌓았지만 지혜에 관한 것은 깜깜한
것이죠. (P103 / 지혜)
- 공포는 대상이 분명할 때 생기는 것이고 불안은 대상을 모를 때 생겨나는 것이다. (P113 / 민주주의)
- 적은 제거하는 데 그 궁극적 목적이 있지만 라이벌은 공존, 공영하는 데 그 최종의
목표가 있다.
- 정치는 말을 모는 것이 아니다. 말이 물을 마시도록 하는 힘이다. 정치, 그것은 인간의
본능까지도 버리는 현대의 신이다. 정치를 거꾸로 읽으면 치정이 된다고 말한
시인이 있었다. 정치가 거꾸로 되면 그야말로 치정 사건처럼 추문과 싸움과 파탄을
낳는다. 정치의 정(政)자에 정(正)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옆의 문(文)자는 손에 회초리를 든 모양은 본 뜬 것으로 ‘똑똑두드리다’,
‘치다’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정치의 정(政)은 채찍을 들어 올바르게
다스린다는 뜻을 갖는다. (P114 / 정치)
- 유럽의 개는 이제 도둑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독을 지킨다. (P142 / 개)
- 시인 랄프 에머슨은 잡초를 ‘가치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식물들’이라고 했다.
세상에 잡초란 존재하지 않아 아직 발견되지 않은 버추virtue, 즉 미덕이라는 겁니다.
뭔가 발견되지 않은 풀일 뿐이지 모든 만물은 제각기 생겨나서 언젠가는 인간에 의해
덕성이 밝혀지면 약초가 된다는 것이지요. (P148 / 잡초)
- 과학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며, 예술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합니다.
종교는 설명해서는 안 되는 것을 설명합니다. 종교적 현상은 체험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영성입니다. (P233 / 영성)
- 무언가를 결정할 때, 서양 아이들은 동전을 던지지만 아시아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를
한다. 앞이나 뒤나 그 단면만으로 결정하는 동전은 ‘실체’이며 ‘독백’이다.
하지만 상대의 손과 만났을 때 의미가 생기는 가위바위보는 ‘관계’이며 ‘대화’이다.
동전 던지기는 사물을 사용하므로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손을 사용해 승부를 내는
가위바위보는 말 그대로 상대가 없으면 할 수 없다. 따라서 동전 던질 때는 떨어져
굴러가는 사물의 움직임에 주목하지만, 가위바위보를 할 때에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P244 / 가위바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