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도시가 된다 위대한 도시들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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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K. 제미신의 신간이 나왔다. N. K. 제미신의 새로운 판타지 2부작 ‘위대한 도시들' 시리즈는 일종의 어반 판타지(도시 판타지)인데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 및 설정을 배경으로 삼는 판타지 소설로 완전한 허구의 세계관을 만들어 배경으로 삼는 하이 판타지였던 전작 '부서진 대지'과 다른 매력이 있는 판타지 소설이다. ‘위대한 도시들' 시리즈는 대도시에는 생명이 있고 도시를 지키는 신이 존재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하였다. 주배경이 되는 도시가 뉴욕이 된 이유는 N. K. 제미신이 제일 잘 아는 지역이 뉴욕이기도 하겠지만 뉴욕에는 다양한 인종, 계층, 성적지향점, 삶의 배경 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복합적으로 모여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일본, 중국처럼 아시아 지역에 있는 도시였다면 이렇게 다양한 인종이 등장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위대한 도시들 시리즈의 문을 여는 '우리는 도시가 된다'를 읽으며 흑인, 네이티브 아메리칸(미국 원주민), 아시아인, 혼혈은 물론 타지역에서 왔지만 온전히 뉴욕같은 사람이 도시를 지키는 신으로 선택되어지는 과정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도시와 연결되어있고 특정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은 굳이 그 도시나 그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설정은 뉴욕이라는 지역이 가진 특이성과 특수성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 다양성을 가진 세계이며 도시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 같았다. 게다가 그 누구도 백인이 아니고 그 누구도 이성애자로 설정하지 않았다는 점은 N. K. 제미신이 가지고 있는 뉴욕이라는 이미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N. K. 제미신은 뉴욕은 백인의 도시가 아니고 뉴욕은 이성애자의 도시가 아닌 뉴욕이라는 지역 자체가 전인류적이고 그 누구에게도 폐쇄적이지 않은 도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시아인 남성이라는 설정을 가진 홍콩의 화신이나 역시 남성(인종 및 성정체성 모름)으로 설정된 상파울로의 화신과는 다르게 뉴욕의 지역적 특성은 다양성이 있으며 뉴욕의 화신 역시 흑인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적'으로 나타난 모습은 정말 혐오로 뭉쳐있는 사람이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이 남성으로 태어나서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하는 남성연대나 차별과 편견으로 사람을 대하는 누군가의 모습과 닮아있어서 소름이 돋았다. 아마 N. K. 제미신 역시 평소에 이런 사람을 많이 만나왔고 타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가진 사람이 다양성을 죽이며 다양성이 죽은 뉴욕은 살아있는 뉴욕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이런 설정을 넣은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N. K. 제미신의 전작 부서진 대지 시리즈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 였지만 이 작가는 일상적으로 표현되는 혐오와 차별을 아주 잘 잡아서 소설에 녹여내는 재능이 있다. 그 일상적인 혐오와 차별표현을 자주 만나왔기에 어떤 마음으로 N. K. 제미신이 이런 묘사를 소설에 녹이는지 공감한다.

실제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책을 읽으면서 서울이라는 도시에 화신이 나타난다면, 각 지역을 대표하는 신이 있다면 어떤 사람일지 상상해보았다. 뉴욕의 브루클린, 퀸즈, 저지시티, 맨해튼, 스태튼아일랜드, 브롱크스처럼 서울을 지역으로 나눈다면 한국에서 나눈 지자체로 나뉠지 아니면 홍대나 종로, 강남, 여의도 같은 특정 지역으로 나뉠지 잘 모르겠다. 각 자치구의 화신에게 등을 돌린 스태튼 아일랜드같은 곳은 아마 여의도가 되지 않을까 싶고 맨해튼 같은 곳은 강남이 브루클린은 홍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여의도를 대표하는 화신은 국회위원 아니면 상당히 이중적인 성격이 있는 정치인, 홍대라면 예술가, 종로라면 길에서 생활하는 누군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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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끄는 짐승들 - 동물해방과 장애해방
수나우라 테일러 지음, 이마즈 유리.장한길 옮김 / 오월의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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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동물과 인간동물, 장애와 비장애. 그 경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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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끄는 짐승들 - 동물해방과 장애해방
수나우라 테일러 지음, 이마즈 유리.장한길 옮김 / 오월의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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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끄는 짐승들'을 거의 3개월 동안 읽었다. 중간에 다른 책을 읽어야 해서 '짐을 끄는 짐승들'을 읽지 못 한 것도 있지만 사실 핑계였다. '짐을 끄는 짐승들'을 읽으면서 감정이 소용돌이쳤기에 책을 한번에 끝까지 읽는 것이 불편했다. 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책을 잠시 덮어두고 다른 일을 하거나 다른 책을 읽었다. '짐을 끄는 짐승들'을 읽으면서 불편한 감정이 매 순간마다 불쑥불쑥 치밀어 올랐던 이유는 장애인 당사자이자 장애해방운동가이자 비건인 수나우라 테일러의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공감하거나 수나우라 테일러가 마주쳤던 그 순간과 장면이 어떤 모습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비건 당사자이면서 비건 당사자인 친구가 여럿 존재하며,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 당사자 여러 명, 그 중 몇 명은 친하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장애해방운동과 동물해방운동에 동시에 소속되어 있기에 그 어느 공간에서조차 당연한 소외를 겪어왔다. 한국 특성상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이 제일 쉽게 접근 가능한 식당은 고깃집이나 횟집이었기에 장애인 당사자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면 그 어떤 동물도 먹지 않음에도 고깃집과 횟집에서 식사를 해결하거나 굶어야 했고, 동물해방운동에서 연이 되어 만났던 누군가 장애혐오발언을 할 때 그 발언이 혐오발언임을 인지시키느라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시키기도 했다. 혐오나 차별발언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동물 중 어떤 인간동물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에 대한 혐오발언을 너무나 쉽게 내뱉는' 모습에 진절머리 날 때도 많았다. 수나우라 테일러가 동물해방운동에 기꺼이 참여하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느낀 감정을 오롯이 알 수 있다고 쓰는 것 자체가 교만일 수 있지만 왜 이런 글을 썼는지 본능적인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수나우라 테일러는 동물해방운동가로서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에 동의하지만 장애인 당사자로서 피터 싱어가 쓴 장애 차별적인 글에 대해서 적나라게 비판을 하였다. 인상깊었던 부분은 수나우라 테일러가 피터 싱어와의 만남을 회고하며 쓴 내용인데 거기서 피터 싱어는 수나우라 테일러에게 모든 장애를 없애고 비장애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2달러짜리 알약이 있다면 먹을 것이냐는 질문에 수나우라 테일러는 장애인 당사자로 살아가는 것이 더 좋다며 '먹지 않겠다.'는 대답을 한다. 그 이유로 '이 세계를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장애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장애인도 많다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내놓는다. 우리는 각자 다른 성정체성, 각자 다른 인종, 각자 다른 키와 몸무게와 언어를 가지고 살아가며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각자의 소수성은 '이 세계를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그 누구도 키가 작은 사람에게 키가 클 수 있는 2달러짜리 약을 먹을거냐고 묻지 않고, 그 누구도 동아시아 사람에게 남미나 아프리카 아니면 유럽 사람으로 몸와 외모를 바꿀 수 있는 2달러짜리 약을 먹을거냐고 묻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한다면 그 질문은 '인종차별적 질문'이라고 말을 할 것이다. 피터 싱어가 수나우라 테일러에게 한 질문도 장애차별적인 질문이다. 피터 싱어는 '장애가 없음'이 '장애가 있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차별주의자인 것이다. 피터 싱어가 비인간동물과 인간동물 그 사이에 존재하는 차별과 경계를 넘는 종차별반대론자이지만 장애와 비장애 그 사이 존재하는 차별과 경계를 보지 못하는 장애차별주의자인 것이다. 피터 싱어가 종차별반대론자이자 장애차별주의자라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인간의 삶을 존중하면서 동물을 삶을 존중하지 못 하거나 이성애자의 삶은 존중하면서 이성애자가 아닌 다른 성적지향을 가진 존재의 삶을 존중하지 못 하거나 특정 인종이나 계급의 삶만을 존중하는 차별주의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불편했던 이유는 사회 내부의 다양한 차별과 경계를 넘나드는 것의 문제를 오직 하나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그 시선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차별과 경계를 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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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디
코트니 서머스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시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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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이디는 2019년 12월에 출간되었다. 스페인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직후에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을 하다 어느 순간 이 책의 존재에 대해서 잊어버렸다가 얼마 전 다시 생각이 났다. 동네 도서관에 세이디가 없길래 희망도서 신청을 하고 빌려읽었다. 재미있다거나 몰입을 해서 짧은 시간동안 순식간에 읽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약간의 감정이입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세이디는 개인적 원한을 법적인 처벌이 아닌 사적 영역에서의 복수를 선택한 한 여성의 복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문장 이후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스포를 당하고 싶지 않다면 이 문장까지 읽기를 바란다.

세이디가 자란 환경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 세이디와 세이디의 동생이 당한 모든 일에 대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가해자/피의자가 한 행동을 정당화시켜주지 않는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화가 났던 부분은 아직 13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세이디의 동생을 성추행하고 17살때부터 몇십년 동안 아동 성추행을 저질러온 가해자를 잡을 생각을 아무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이디가 가해자/피의자를 추적하면서 만난 한 여성은 그녀가 10살 때, 그리고 가해자가 17살 때 성추행을 당했다. 그 여성이 그 상황을 성추행으로 인식했는지 여부와 별개로 그 상황 자체가 아동성추행이며 범죄이다. 게다가 그 가해자는 세이디의 동생을 죽이고 나서도 다른 여성를 유혹해 그녀의 자녀를 성추행했다.

세이디가 자신의 동생이 당한 일에 대해 사적영역으로 복수를 한 부분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세이디의 선택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었다. 세이디가 자란 환경에서 아무도 법적으로 정책적으로 세이디와 세이디의 동생을 보호해주었다고 느끼지 못했기에 법적 처벌을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이디의 동생을 죽었을 때, 아니 성추행을 당하고 있던 그 시기에 사회복지 영역에서의 개입이나 경찰의 개입으로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분리조치 했더라면 세이디도 사적 영역에서의 복수가 아닌 다른 방법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저자 코트니 서머스가 세이디의 사적 영역 복수극으로 소설을 쓴 것도 제대로 된 사법절차가 발동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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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빌리언 달러 - 앞으로 10년, AI의 진짜 임팩트가 몰려온다
정두희 지음 / 청림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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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빌리언 달러를 읽으면서 든 생각을 AI, 인공지능, 메타버스, 사물인터넷을 알아야지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1조의 돈을 벌 수 있다.'는 관점을 넘어서 AI, 인공지능, 메타버스, 사물인터넷은 당연하다는 듯이 모든 세계에 침투할 것이다. 1990년에는 그 누구도 2007년에 스마트폰이 발견되어 모든 사람이 컴퓨터를 손 안에 들고다니고 어디에서든 인터넷을 상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30년 후에는 우리는 모든 기기가 사물인터넷으로 대체화된 메타버스 안에서 삶을 살게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렇게 되면 사회복지 또한 메타버스 내에서 이루어 질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시청각 장애인의 인터넷/메타버스 접근권이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의 실질적인 이동권보다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실물경제를 전공하고 실물경제를 더 잘 아는 사람이 이 책을 읽었다면 AI, 인공지능, 메타버스를 활용하여 실질적인 부를 어떻게 창조할 수 있는지를 고민할 것이고, 컴퓨터공학 전공자라면 앞으로 AI와 메타버스의 미래가 어떤 식으로 현실세계에 반영될 것인지 고민할 것이다. 사회복지 전공인 나의 관점으로는 단순이 AI와 메타버스가 현실세계를 대체하여 돈을 벌 수 있거나 미래화된 어떤 환경에서 소외된 사람을 혹은 AI/메타버스 내에서 이루어지는 사회복지현장이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 궁금하다. 사회복지관은 물론 사회복지현장은 이런 접근방법에 매우 대응이 느린 조직이다. 하지만 AI/메타버스에 적응이 느린 조직은 자멸할 수 밖에 없는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AI/메타버스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조직은 사회복지분야와 각종 인권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이다. 차별에 저항하는 모든 단체와 사회복지분야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그 누구보다 미래를 위해 대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이런 책을 읽으면서 적응할 준비를 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AI를 상담에 적용할 수도 있는 방법이라거나 아니면 메타버스 내에서의 캠페을 준비하는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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