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읽어요
김하정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평점 :
가끔가다 유튜브에서 농인(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을 부르는 언어 중 하나)이 청각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상을 볼 때가 있다. 아마 그 중에 몇 편은 하개월이었을 것이다. 내가 본 모든 영상에 대한 기억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다보니 몇 개의 에피소드가 기억이 났다. 어떤 것은 한국 드라마/영화 중 청각장애가 있는 캐릭터가 나오는 것에 대해서 농인 당사자가 이야기 하는 것도 있었지만, 어떤 것은 농인의 바로 앞에서 차별적인 시선과 언어로 이야기하고 그것이 매우 불편했다는 내용이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청각장애가 있는 캐릭터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배우, 작가, 연출이 청각장애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일상생활에서 농인을 만난 경험이 부재하다 보니 '영상을 잘 만드려고 노력을 했지만 비현실적이다.'라는 반응도 많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할많하않'의 심정으로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하지만 농인의 바로 앞에서 '얼굴은 예쁜데 장애가 있어서 불쌍하다.' 등의 표현을 하는 사람의 뇌에서는 뉴런이 어떻게 작동을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농인의 얼굴에서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빡침'을 느꼈다.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하고 장애인인권단체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지만 농인 당사자를 잘 안다고 말 할수도 없고 친하다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주변에 친한 사람은 농인 당사자가 아니라 '수어통역사'이며, 중학교 1학년 때 배웠던 짧은 수어로 농인 분과 가끔 의사소통을 하기는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수어는 인사와 나의 이름 그리고 간단한 감정표현 정도라 어떤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할 수는 없었다. 가끔가다 집회에서 낯이 익은 농인 몇 분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농인 차별에 대한 에피소드는 주로 '수어통역사'가 통역해준 음성언어로 들을 수 있었다.
수어와 구어로 표현된 영상이 아닌 책으로서 나온 농인의 이야기는 '좋았다'고 표현하고 싶다. 농인의 직접 발언으로 나온 일상생활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 이런 충격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인공와우(보청기)를 착용하며 일반학교를 다녔을 때부터 성인이 되고 최근까지의 일을 글로써 읽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한국의 시스템'에 대해서 화가 났고 어떤 부분에서는 '뇌에 개념과 상식이라고는 1도 없는' 사람 때문에 화가 났다. 학생이 의무교육을 받고 있는 틀 안에서 의무교육을 제대로 이수할 수 있도록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정당한 편의시설을 제공하지 않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뇌에 개념과 상식이라고는 1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바꾸어야할 지 알 수가 없어서 짜증이 나기도 했다. 의무교육을 받을 때 농인이 필요한 수어/문자통역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는 부분은 어떻게든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수어/문자통역에 대한 부분뿐만 아니라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한 점자/음성통역,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이 의무교육을 받을 때 정당한 지원에 대한 부분은 한국의 의무교육에서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지만 법과 제도를 바꾸고 계속 정부를 압박한다면 더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믿는다.(믿고 싶다.)
근데 장애유무와 상관 없이 성추행에 대한 것이나 장애 자체를 가지고 차별을 하는 인간에 대한 사례는 '단전에서부터 밀려오는 짜증'때문에 너무나 화가 났다. 농인이며 여성인 사람에게 '팬티를 벗어주면 명절선물을 주겠다.'고 말하는 인간한테 '너는 이 새끼야. 명절 선물을 니 팬티랑 바꿀래?'라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 일을 직접 당한 하개월에게 그 딴 발언을 한 당사자가 누군지 알려달라고 해서 찾아가 얼굴을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얇디얇은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하개월의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고 내가 '농인의 삶을 안다, 이해한다.'고 절대 말할 수 없다. 다만 농인의 표정에서 그리고 글에서 느껴진 '깊은 빡침'을 기억하고 싶다. 최소한 나부터 그러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