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 a True Story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1
페르디난 트 폰쉬라크 지음, 김희상 옮김 / 갤리온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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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이라는 게 무슨 의미를 가질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형벌을 내릴까? 변론에서 나는 처벌을 내려야 할 이유를 찾으려 시도했다. 이론은 차고 넘쳐난다. 형벌은 충격을 주어 경각심을 갖게 만든다는 게 그 하나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론도 있다. 또 형벌은 범인에게 다시 같은 범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한다거나, 부정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는다. 법이란 이런 이론들을 종합하고 통일한 것이라야 한다. 다만, 페너의 경우에 들어맞는 이론은 없다. 그 어떤 것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페너가 다시 살인을 하는 일이 있을까? 범행이 부당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부당함의 무게를 무엇으로 잴 것인가? 이를테면 누가 페너에게 죗값을 물을 것인가? 그를 처벌한다고 해서 정의가 바로 섰다고 믿을 사람이 누구인가?
-pp.24~25

검사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다만, 사건의 핵심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정작 중요한 것은 피고가 그런 행위를 택한 동기였다. 칼레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리나를 구하는 것이었지, 시신을 훼손하려는 게 아니었다. 나는 "사랑에서 비롯된 자기 방어적인 행위"였음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리고 연방 대법원의 판례를 제시했다. 사랑을 지키려는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을 너그럽게 받아들인 판례는 칼레의 손을 들어주었다. 검사는 눈을 치켜떴지만, 이내 체념한 듯 서류철을 닫았다.
-pp.131~132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지켜보기란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자본주의 사회의 변호사는 고객의 편을 들 수밖에 없다. 물론 최선은 진실을 아는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정확한 정황만 알고 있어도 혹 억울한 판결을 당할 수 있는 의뢰인을 보호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된다. 의뢰인이 정말 무죄일까 하는 의문은 중요한 게 아니다. 변호사의 1차적인 임무는 의뢰인의 변호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p.161

공소장이 접수되면 법원은 공판을 허락할 것인지 심사한다. 판사는 석방보다 유죄 판결의 확률이 높을 경우, 재판 절차를 개시한다. 적어도 교과서에는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자신이 내린 판결이 상급 법원에 의해 뒤집히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판사는 없다. 그래서 판사는 피고가 석방되는 게 마땅하다고 보는 경우에도 심리를 개시한다. 정 재판이 필요 없다고 보는 경우에 판사는 검찰과 사전에 의견을 조율한다. 검찰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실히 해 두려는 것이다.
-p.258

형사재판에서는 검사가 먼저 논고를 펼친다.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독일에서 검사는 당파적 입장을 취해서는 안 된다. 검사는 어디까지나 중립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검사는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그래야 피고의 부담을 덜어 주는 상황도 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래서 독일 검사에게 승소냐 패소냐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검사는 법을 지키는 데 충실하면 그만이다. 검사에게 그 이상을 요구할 경우, 권력은 부패한다는 것을 역사로부터 익히 배웠기 때문에 이런 법체계가 생겨났다. 그래서 검사는 오로지 법과 정의에만 봉사한다. 적어도 이론적으로 보자면 말이다. 수사를 하는 동안에는 이런 태도가 일반적으로 지켜진다.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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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봤어? - 내일을 바꾸기 위해 오늘 꼭 알아야 할 우리 시대의 지식
노회찬.유시민.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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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수-또한 가난한 교회,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라는 개혁 코드가 아주 중요합니다. 니체가 말했듯 "어떤 사람이 개혁가라면 그 사람을 더욱 좋은 사람으로 포장해놓고, 그러나 그 개혁적 성향은 죽이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교황도 개인적인 성품을 부각해 그분의 개혁 이미지를 가리려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것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pp.40~41 교황과 미래의 지도자

김종대-군사전문가로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과연 저 군대가 전쟁할 수 있는가, 제대로 저 군대가 싸움을 할 수 있는가`입니다. 저는 회의적입니다. 한국 징병제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전방에 근무하는 일선 전투원들의 생명 가치가 총체적으로 경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먹고, 입고, 자는 문제부터 개인 장구류까지 보면 제가 군대 생활을 하던 25년 전하고 거의 변한 게 없습니다. 그 사이에 사회는 바뀌었어요. 1가구 1자녀 시대이고요. 이제 한 자녀는 집안의 전 재산이기 때문에, 자식 하나가 죽으면 대여섯 식구가 애통해합니다. 옛날과 생명의 가치가 달라요.
-p.52 구시대적 안보의 한계

진중권-그러니까 귀족인 거예요. 사고 방식이 전근대적이잖아요. 자본주의적 계약은 자본이 있는 사람과 노동력이 있는 사람이 인격적으로 자유롭게 계약을 체결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게 아니라, 노동력을 샀다는 이유로 상대의 인격까지 산 것처럼 모독을 했어요. 그런 의식은 전근대적이고 헌법 이전의 현상이죠.
-p.89 땅콩과 실세

노회찬-수면 위에 드러난 걸 보면 서로 다른 빙산의 봉우리처럼 보이나, 이 두 사건은 물 밑에서는 연결돼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제대로 대접 못 받고 차별받거나 인간 이하의 처분을 받는 것, 이게 두 사건을 관통하는 맥인 거죠. 다만 하나는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자극적으로 보였던 거고요. 우리는 더 심각한 문제에는 오히려 타성화돼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정리해고와 같은 큰 문제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경제 성장을 위해서 감수해야 하는 일처럼 흘러가고 있어요. 조현아 씨 사건으로 흥분한 언론 중 적지 않은 매체에서 쌍용차 정리해고는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외쳤거든요.
-p.91 땅콩과 실세

유시민-우리가 어떻게 된 건가요? 우리 가치관이 말입니다. 서류에 사인해서 수백 개의 가정을 파탄 속에 몰아넣는 것이, 항공기에서 땅콩 서비스 제대로 안 했다고 욕하고 소리 지르고 책자로 꼭꼭 찔러서 손등에 상처 내는 것에 비하면 수백 배, 수천 배 끔찍한 짓이에요. 그런데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는 끔찍한 일에 대해서는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든 그러려니 하고, 조현아 씨 일 같은 상대적으로 작은 사건에 대해서는 엄청 흥분하는 것이 저는 좀 슬펐어요.
-p.91 땅콩과 실세

박홍순-본래 내 편이어야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더 기대치가 크고, 반대로 배신감도 더 크기 마련이죠. 반면, 옛날 나치를 보면 실업자들을 위한 정책을 파시즘 국가가 펴잖아요. 물론 그 내용은 기만적이지만, 어찌 됐든 그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선전한다는 거죠. 박정희 정권 때 했던 토목 산업이 바로 나치가 했던 거잖아요? 아우토반을 비롯해 독일 전국을 고속도로망으로 뚫는 작업 등이 대표적이죠. 그걸 통해 발생하는 일시적인 고용을 내세우면서, 마치 자신들이 실업자 구제에 가장 적극적인 세력인 것처럼 보이고자 했던 거죠. 한국도 비슷해요. 박정희 대통령이 고속도로를 뚫고,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을 뚫으면서 고용을 창출했다, 이런 왜곡된 상식이 우익을 키우고 있죠. 정작 자기들을 길거리로 내몬, 실업의 가장 중요한 책임자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특징이죠.
-p.161 극우와 일베

노회찬-복지의 부담을 분산시키는 것도 피료하죠. 바로 재정 문제인데요,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의 대상 범위가 좁은 건 돈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재원을 확보하려면 세금을 확 걷어야죠. 물론 저는 세금을 더 걷는 걸 찬성하지만, 세금을 더 걷어서 복지를 확대하는 게 유일한 해법은 아니에요. 왜냐면 복지는 일종의 2차 분배잖아요. 그러면 1차 분배에서 개선할 점은 개선해서 복지 수요 자체를 줄여야 하는 거죠. 예를 들어 최저임금을 올리는 건 1차 분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동자를 해고해서 실업자로 만든 다음에, 실업 수당을 2배로 주겠다, 기초연금을 올리겠다고 하는 조치는 1차 분배의 잘못을 2차 분배로 메꾸는 거죠. 이렇게 되면 2차 분배의 가랑이가 찢어집니다.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해서도 1차 분배에 대한 노력이 절실합니다.
-p.313 기초연금과 의료민영화

노회찬-저는 여기서 교훈을 하나 얻었어요. 앞으로 여야 어느 당이든 더 많은 복지를 약속할 거예요. 그래서 어느 게 진짜이고 가짜인지 정확하게 감별해야 한다는 거죠. 일단 더 많은 복지만 약속하면 가짜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좋은 노동, 제대로 된 고용과 함께 복지를 이야기할 때 건강한 해법이 나올 수 있습니다.
-p.315 기초연금과 의료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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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어른 - 나만의 잉여로움을 위한 1인용 에세이
이영희 지음 / 스윙밴드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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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상대방이 가진 것에 끌려 시작된다면 우정은 상대방의 결핍을 알아보며 시작된다. 그래서 때론 사랑보다 우정이 더 어렵다. 가진 것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지만, 가지지 못한 것에 마음을 내주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
사랑 역시 그 종착점은 우정이라, 상대의 결핍까지 받아들일 수 있다면 지속되지만, 그러지 않으면 끝날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p.115

나의 이십대와 삼십대는 도망침의 반복이었다. 두 군데의 대학을 다녔고, 네 곳의 회사를 거쳤다. 사표를 쓰고 호기롭게 외국으로 떠났다가 어깨를 움츠리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 과정 중 어떤 것은 도피였고 어떤 것은 도전이라 믿었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정확히 모른 채 어디로든 탈출하려 애썼다. 그렇게 헤매고 다니며 마주한 시간들이, 감정들이, 기억들이 다 내 속에 쌓여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p.164

원작소설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왓슨은 셜록의 모든 것을 100퍼센트 받아들여주는 사람이다. 그의 절대적인 믿음과 지지는 "고기능성 소시오패스"라고 스스로를 자조하던 외톨이 셜록을 인간적 매력까지 갖춘 완벽한 천재로 만들어준다. 왓슨이야 물론 셜록의 사랑 속에서 뛰어난 의사이자 현명한 판단력을 소유한 `볼매남`으로 진화하고.
이런 드라마는 현실에선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낭만적이다. 더 마음이 뭉클하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 관계의 희박한 가능성을 깨닫고, 그러기에 좋은 관계를 맺고 지켜가기 위한 노력을 더욱 값지게 여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하고 유일한 존재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 아닐까.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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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번호로 mms가 도착했다.

"할머님 색칠공부 하신거예요 보시고 답장주세요"




얼마전 할머니께 전화가 왔었다.

'보훈청에서 참전 용사들 치매 예방한다고 색칠하는 걸 줬는데, 해보니 재미가 있더라. 그림이 좀 복잡하고 예쁜 거 있으면 구해다오' 하고.

요새 핫한 컬러테라피가 그 시골까지 가는구나~하고 신기한 마음에, 이것저것 주문을 해드렸었다. 제일 유명했던 비밀의 정원과, 마법의 숲, 정교한 패턴이 많은 것처럼 보였던 크리에이티브 테라피 컬러링북까지 해서 세 권. 













배송 쩌는 알라딘답게 원통 그 시골에도 익일배송이 되더라.

원통에는 문방구에 12색 색연필밖에 없다고 하시길래 36색 색연필도 같이 주문해드렸다.

나중에 가서 할머니 완성하신 거 봐야지 했었는데, 주기적으로 오는 보훈청 도우미분이 감사하게도 사진을 찍어 보내주신 것이었다.


할머니가 완성하신 걸 보니 진짜 할머니 센스가 어디 안간다 싶다. 전화드렸을 때 "너무 복잡해서 할머니는 못하겠다~ 그래도 이쁘구나" 하시더니 당연하게도 겸양이었어!! 배신감이 든다 ㅠㅠ 할머니는 색감이 뛰어나신데 왜 난 7세 수준에서 색감이 멈춰있는가...



스무 살이 넘어서부터, 할머니 댁에 간간히 놀러가면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해주시기 시작했다. 그전엔 옛날 얘기를 잘 안해주셨는데 이제는 내가 이해할만한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셔서 그런가, 자주 이야기를 해주신다. 듣다보면 정말 입이 딱 벌어질만한 이야기들이다. 빠워한 신여성이셨음.

1. 일제시대 북쪽에서 공장장 딸내미로 태어나 온갖 호사를 다 누리면서 학창시절을 보내셨다. 공장장이었던 아버지한테 밤에 놀러오던 손님들이 독립운동가였다는 클리셰같은 이야기는 덤.

2. 유치원때는 일본인 유치원을 다녔는데, 거기에 러시아인 친구도 있었다고.

3. 어린이 합창단을 했었고, 해방 후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 숨어지내다가(아버지가 자본가라서?) 북한 라디오 방송국 합창단 활동을 하셨다. 다시 방송국으로 가게 된 일화도 정말 신기했다. 고등학교때 소풍을 등대로 갔는데, 돌아다니다가 등대 옆 방송국에 우연히 들어갔더니 예전에 합창단을 맡았던 사람과 조우해서 '너 다시 합창단 해라'해서 하게 되셨다고. 

4. 한국전쟁때 해병대 행정/보급쪽으로 복무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6~70년대 장교로 근무하셨는데 할머니가 꽂아주셨다는 식으로 얘기하시기도 했다. 우스개소리인지 진짠지는 모르겠지만.

이외에도 아빠한테 건너 들은거라 정확하지 않지만 서울대 가정교육과인가, 그쪽으로 입학하셨는데 결혼하는 바람에 그만두셨다고.


할머니의 책장을 보면 니체와 하루키의 책, 마리아 칼라스의 음반 같은 것들이 꽂혀 있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의 책장이라고 믿을 수 없을만큼 세련된 목록들로 가득차 있는데, 어릴 때는 잘 몰랐지만 이제는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이런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왜 반짝거렸던 할머니의 삶이, 결혼이라는 기점에서 뚝 하고 암전되어 버리는 걸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요새는 내가 좀 더 여성주의를 잘 이해하고 있었더라면, 혹은 역사나 문화인류학적 소양이 뛰어났더라면 할머니의 삶을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무척 가치있는 이야기일 것 같은데 나같은 머글밖에 모르고있어ㅠㅠ'하는 답답함. 나 말고 다른 인터뷰이가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정리해줬으면 하는 욕심. 뭐 이런 감정들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요원하고, 결국은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내 몫인 것 같다. 


사실, 친가 친척들의 관계가 소원하기도 했고, 나도 바쁘단 핑계로 명절날밖에 못찾아뵀었다. 그러니 이제사 찾아뵙는 건 좀 간질간질한 일이라 선뜻 마음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할머니의 삶에 대한 내 호기심(불경스러운 말일수도 있지만 정말 호기심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이 요사이 점점 커지고 있는 걸 느끼면서, 3월이 되기 전에 원통에 나 혼자 가서 하루이틀 묵으면서 할머니 이야기를 진득하게 듣기로 결심했다. 가는 길에 컬러링북도 몇권 더 사서 들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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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1-26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가 계셔서 아직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책도 주문해 드릴 수 있는 님이 부러워요.

AgalmA 2015-02-01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가 예술가시잖아요@@?
저 강원도 원통 알아요. 거기 앞강도 알고ㅎ...와, 거기도 예술가가 살고 있었어! 당연한 소리지만.
 
빈둥빈둥 당당하게 니트족으로 사는 법
파(pha) 지음, 한호정 옮김 / 동아시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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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년 반 가량 드문드문 백수로 지냈다. 나같은 사람이 보통의 `회사`에서 일하는 건 불가능하겠구나...하는 자포자기가 있던 차에 후배가 길을 제시해줬고, 작년엔 그걸 준비하면서 생활비도 마련할 겸 적당히 이런저런 일을 했다. 애인도 취직을 준비하며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했다. 둘 다 일하기도 했고 둘 다 쉬기도 했다. 한 사람만 일할 때도 있었다.
책을 읽다보니, 우리 둘 다 이 책이 말하는 니트의 범주에 들어가는 듯 하여 유쾌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든 일하기 싫어한다는 점에서 나는 진정 니트, 원하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는 점에서 애인은 부진정 니트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작년은 돈에 쪼들리긴 했지만 돌이켜 보면 즐겁게, 살만하게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책에서는 느슨한 네트워크를 통해 인간관계를 해결하는데, 나는 애인과의 단단한 유대감으로 돈 없이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물론 순간순간의 스트레스는 분명히 있었다. 일기에 돈때문에 생기는 갖은 짜증을 적어둔 걸 보면...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고, 지금을 버텼으니 앞으로 어려움이 닥쳐와도 함께 극복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이제 난 대학원에 가고, 애인은 포트폴리오가 쌓여 본격 구직활동을 시작한다. 당분간도 순탄하지는 않겠지만, 올해도 즐거우리라 감히 기대를 해본다.

일을 하는 사람이 늘 정해져 있을 필요는 없다. 그때그때 일을 할 여유가 있는 사람이 일을 하고 그때그때 지친 사람들이 쉰다.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지치면 쉬고, 쉬고 있던 사람이 잠시 뒤 일을 하러 나간다. 그것이 몇 개월이나 몇 년 단위로 교대로 이어질 수 있다면 한 사람이 일하는 것보다 노동 형태에 더 유연성이 발휘된다. -218p

만약 자연스럽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면, 그것은 정신이 균형을 잃고 무너졌거나 몸이 피곤한 것이니까 그럴 때는 될 수 있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면 된다. 회복하고 나서 여유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뭔가 하고 싶어질 것이다. -126p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다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게 돼 사회가 무너진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설마 모든 사람들이 "일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협박 때문에 일을 하고, 그것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강제나 처벌을 통해서만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한심한 것이다. -216p

단지 좀 더 큰 시점에서 바라봄으로써 같은 사회에 사는 타인들에게 좀 더 관대해졌으면 좋겠다. 니트족이 아닌 사람들이 니트족은 자신들과 전혀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니트족은 그냥 우리와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우리와 공통되는 것을 지닌 존재들이니까. -2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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