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이라는 게 무슨 의미를 가질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형벌을 내릴까? 변론에서 나는 처벌을 내려야 할 이유를 찾으려 시도했다. 이론은 차고 넘쳐난다. 형벌은 충격을 주어 경각심을 갖게 만든다는 게 그 하나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론도 있다. 또 형벌은 범인에게 다시 같은 범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한다거나, 부정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는다. 법이란 이런 이론들을 종합하고 통일한 것이라야 한다. 다만, 페너의 경우에 들어맞는 이론은 없다. 그 어떤 것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페너가 다시 살인을 하는 일이 있을까? 범행이 부당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부당함의 무게를 무엇으로 잴 것인가? 이를테면 누가 페너에게 죗값을 물을 것인가? 그를 처벌한다고 해서 정의가 바로 섰다고 믿을 사람이 누구인가? -pp.24~25
검사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다만, 사건의 핵심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정작 중요한 것은 피고가 그런 행위를 택한 동기였다. 칼레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리나를 구하는 것이었지, 시신을 훼손하려는 게 아니었다. 나는 "사랑에서 비롯된 자기 방어적인 행위"였음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리고 연방 대법원의 판례를 제시했다. 사랑을 지키려는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을 너그럽게 받아들인 판례는 칼레의 손을 들어주었다. 검사는 눈을 치켜떴지만, 이내 체념한 듯 서류철을 닫았다. -pp.131~132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지켜보기란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자본주의 사회의 변호사는 고객의 편을 들 수밖에 없다. 물론 최선은 진실을 아는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정확한 정황만 알고 있어도 혹 억울한 판결을 당할 수 있는 의뢰인을 보호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된다. 의뢰인이 정말 무죄일까 하는 의문은 중요한 게 아니다. 변호사의 1차적인 임무는 의뢰인의 변호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p.161
공소장이 접수되면 법원은 공판을 허락할 것인지 심사한다. 판사는 석방보다 유죄 판결의 확률이 높을 경우, 재판 절차를 개시한다. 적어도 교과서에는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자신이 내린 판결이 상급 법원에 의해 뒤집히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판사는 없다. 그래서 판사는 피고가 석방되는 게 마땅하다고 보는 경우에도 심리를 개시한다. 정 재판이 필요 없다고 보는 경우에 판사는 검찰과 사전에 의견을 조율한다. 검찰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실히 해 두려는 것이다. -p.258
형사재판에서는 검사가 먼저 논고를 펼친다.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독일에서 검사는 당파적 입장을 취해서는 안 된다. 검사는 어디까지나 중립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검사는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그래야 피고의 부담을 덜어 주는 상황도 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래서 독일 검사에게 승소냐 패소냐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검사는 법을 지키는 데 충실하면 그만이다. 검사에게 그 이상을 요구할 경우, 권력은 부패한다는 것을 역사로부터 익히 배웠기 때문에 이런 법체계가 생겨났다. 그래서 검사는 오로지 법과 정의에만 봉사한다. 적어도 이론적으로 보자면 말이다. 수사를 하는 동안에는 이런 태도가 일반적으로 지켜진다.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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