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울고싶다
머물 곳은 없는데
흐를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아서
한없이 쓸쓸하다

차라리 사랑이 고여들어
고인 물만큼, 고요하게 살고싶다.

다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소모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용히 머무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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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전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삶을 낭만화할 수 있다.


빈곤의 시대가 낭만을 시대정신으로 내세울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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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네가 설레지는 않지만

여전히

아직도

고민스럽다


차라리 울고싶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이


차라리

가끔씩 멀리서 들려왔으면.


바라보는 것도

멀어지는 것도

이젠 내몫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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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란 모든 이들이 그들의 실수에 붙이는 이름이다.


- O. Wil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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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 않고 잘 잤다.(응?)

  그런데 막상 깨고보니 몸에서 열이 나고 으슬으슬한 게 면역반응이 오나보다. 1년 내내 좋은 몸상태를 유지하더라도 그 리듬이 망가지는 건 한 순간이다. 그러니까 건강은 평생과업이라고, 어제 건강했다고 오늘도 건강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늘의 건강은 오늘의 몫이며, 내일의 건강은 오늘과 내일의 몫이다. 어쨌든 아까는 옷을 다 껴입고도 으슬으슬 춥더니 지금은 그래도 열이 좀 내렸다. 엊저녁에 먹은 음식물찌꺼기가 제법 소화가 다 되었나보다.

  다시 경제학을 보자. 일반균형이론까지 오는 데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제 외부효과 단원에서 최적오염수준을 결정하는 방법까지 봤다. 그런데 문제를 풀 수가 없다. 최적오염수준을 결정하는 방법도 기업의 이윤극대화 조건과 마찬가지로 MR=MC인데, 이것이 사회적 한계편익=사회적 한계비용이라는 식으로 둔갑한다.

  오염수준을 q라고 할 때, 경제학적으로는 q를 무조건 0으로 만드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환경오염이 유발하는 두 종류의 비용을 유발한다. 하나는 환경오염 자체가 유발하는 비용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오염수준을 감축시키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다. 전자는 q가 증가함에 따라 우상향하고(이건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후자는 q가 증가함에 따라 감소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후자다. 왕규호 미시경제학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이준구 미시경제학에서는 전자를 1종 비용, 후자를 2종 비용으로 놓고 각각 우하향하는, 그리고 우상향하는 곡선을 그려서 두 곡선의 합이 최저가 되는 점에서 최적오염수준을 결정한다. 그런데.

  환경오염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과, 환경오염수준을 감축시키는 비용을 같은 가로축에 놓아도 되는 건가? 최소한 q가 증가함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은 q의 증가방향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더라도 q를 감축시켜감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은 q의 증가방향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주어진 설명대로라면, 최적오염수준 q*가 결정되는 경우 환경오염은 q만큼 발생하고 q만큼 감축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오염수준은 달라진 게 없지 않은가?

  모르겠다. 더 고민해봐야겠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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