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역사연구에서 '조직론'은 잘 다뤄지지 않는데 말이 나온 김에 여기서 그걸 짚고 넘어가자. 어느 조직에서건 진급 또는 승급이 늦어지는 인사적체 현상이 일어나면 그 조직은 목숨을 걸고 성장을 추구하게 된다. 그래야 인사적체 현상이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장을 요구하는 내부 인사압력은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무모하거나 대담한 일이 바로 인사 문제 때문에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조직 전문가인 사카이야 다이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출병이라는 어리석은 사업에 손을 대고 그걸 7년간이나 지속시킨 것도 바로 그런 '인사 압력 신드롬'에 따른 성장 지향의 분위기가 조직 전체를 뒤덮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았다.

  사카이야 다이치는 인사 압력 아래에서 사업 확대를 추구하게 되면 처음부터 '무엇인가를 한다'는 전제하에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기 때문에 큰 위험이 따른다고 말한다. 실무의 세계에서는 '현실적'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그 '현실적'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는 '목적을 달성하기 쉬운' 것을 말하지 '착수하기 쉬운'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 이런 식의 구분이 되지 않고 착수하기 쉬운 쪽을 골라 놓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참모들은 바보도 악인도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성장에 길들여졌던 그들에게,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환경에 직면했음을 인정하고 성장지향을 악으로 보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파시즘을 '이성의 몰락'으로 간주한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도 파시즘이 등장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로 능력 있고 정력적인 많은 사람들이 권력욕을 표출할 출구를 찾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예전에는 작은 국가들이 있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정치권력을 부여했고 작은 사업들이 있어 보다 많은 경제권력을 제공했는데 그런 출구가 좁아지면서 야심을 가진 사람들이 파괴적으로 되어버린 결과 파시즘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전 사회 차원의 '인사 압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강준만,「한국 근대사 산책」1권, 149-150쪽.



  마치 우리나라의 현실을 은유하는 것 같은 구절이다. 2012년의 우리나라는 현재 성장지향의 분위기가 나라 전체를 뒤덮고 있지만 실업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유능한 인재들이 자신의 적성을 소득(=돈)으로 왜곡해가며 취업하고 취집하는 2012년의 대한민국. 학력인플레와 공무원제일주의가 파시즘의 징후로 지적되는 이유다. 19세기에 유럽에서 지배적이었던 낭만주의 사조가 팽창적 제국주의와 국내외에서 공존했다. 정치한 분석은 아니지만, 21세기의 한국에서도 역사성을 잊은 각종 판타지들(좋은 대학, 돈, 사랑, 여행에 대한 온갖 로망들)은 국제적으로 '한류'나 '자랑스런 한국인' 같은 개념으로 표상되는 국가적 팽창주의의 경향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이렇게만 말하면 물론 분석이라기보다 비약이다. 그래도, 느낌이나마.)

  강준만의 서술은 조직론의 관점에서 파시즘의 역학을 드러내고 있고, 그것이 정확히 오늘의 한국에도 유효한 관점인 듯하다. 전사회적 인사적체, 그에따른 실업난은 한국의 국제적 팽창주의(ex. 한글/한류와 같은 문화의 수출)를 낳으면서 파시즘의 징후를  드러내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만약 유한한 세계가 끝나는 경계 너머 어떤 '진정한 현실'이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 자체가 이데올로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ttp://www.kcbl.or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장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있어보이는 한 경제학자는 기업에도 국가가 있다고 말한다. 다국적/초국적기업 시대에도 기업의 '출신'은 분명 특정 국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혹자는(예컨대 시장주의자) 그를 '국가주의자'라고 부른다. 물론 그 뉘앙스는 비판적이다. 세계화 시대의 경제가 국가의 경계에 갇혀서 되겠느냐는 말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꾸준히 개혁 세력을 비판해온 장하준은 올해 초정승일, 이종태(이하 장하준 그룹)와「무엇을 선택할 것인가(2012)」를 출간했다. 그들은  한국경제의 주주자본주의적 재편에 반대하는 근거로 그것이 국내자본을 외국자본에 인수될 위험에 쉽게 노출시킨다는 점을 든다. 시장주의자들은 이 반시장주의자들을 몰아붙인다. 기업의 운명을 시장의 경쟁메커니즘에 맡기지 않는 것은 '가격이 결정되는 방식'을 배운 경제학자의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비효율적 기업이 포함된 산업부문을 구조조정하는데 외국자본의 영향력까지 이용한다면 해당부문은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구조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하준 그룹은 자본의 국적을 주장하며, 외국자본은 단기차익실현에만 관심이 있을 뿐 기업을 장기적으로 경영하고 존속시키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반박한다. 론스타의 2003년 외환은행 인수 사건이나 SK-소버린 사태가 그 증거다.


  장하준 그룹은 '자본의 국적성'을 기업이 성장과정에서 소속된 국가공동체의 경제정책에 영향을 받는 과정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예컨대 현대나 삼성은 발전국가의 특혜적 지원 속에 성장) 오늘날 초국적기업들은 그들의 초창기 성장과정을 돌아본다면 역사적으로 무역 이전의 국가공동체에 책임이 있다는 논리다. 여기서 국가는 영리활동의 공간적/역사적/제도적 배경이다.


  '국가브랜드'라는 비가격변수를 추가적으로 고려하면, 시장에서의 경쟁은 단순히 가격에 의존하지만은 않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일본기업이 보다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에도 불구하고 Made in Japan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것에 대한 다국적 소비자들의 선호에서 비롯하는 편익이 생산요소로서 일본인의 노동을 고용하는 비용보다 크기 때문이다. 일본정부의 입장에서는 자국민을 고용하는 것이 자본유출(소득이전)이 적어 내수진작에 효율적이기 때문에 정책당국으로서도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한다든가 법인세 감면과 같은 세제혜택을 통해 국적(과 같은 소속감/정체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세수증대의 측면에서도 자국기업의 국제적 성장이 일본정부에게 도움이 된다.

 

  세계화 시대라며 모든 나라가 외국 기업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으로 자국의 산업을 지원하는 보호무역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이중적 현실의 이면에는 이같은 사정이 있다. 그렇기때문에 흔히 무역/자본자유화로 대표되는 세계화는 산업경쟁력이 세계적인 수준에 있는 나라들이 타국의 소비시장을 점유하려는 의도에서 주장하곤 하는 것이다. 세계화론자들은 비교우위론을 제시하며 무역의 윈-윈을 말하지만, 그것은 생산물시장에 국한될 뿐 생산요소시장의 개방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미국이 노동시장을 개방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던가?) 무역/자본자유화를 가능케하는 FTA를 주장하는 선진국의 관료들을 시장주의들이라 보기 어려운 이유다. 개도국의 관료들이 선진국이 제안하는 방식의 FTA를 주장할 경우 그건 정말 시장주의적 신념에서 비롯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들이 정말 비교우위론에 근거한다면, 무역 상대국에 노동시장의 개방을 요구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산업기반이 튼튼한 국가의 상대적으로 산업기반이 취약한 국가와의 자유무역은 (산업강국 기업의 이윤기반이 되는 소비시장을 넓힌다는 의미에서)곧 보호무역인 셈이다. 한 쪽에게만 자유무역이 곧 보호무역의 되는 기울어진 세계화는 충격적이지만, 진실에 가깝다. 개발도상국의 관료들이 강대국의 관료들에 비해 무역외교에 신중해야하는 이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민사주의는 말 그대로 '민주사회주의'의 약자이며

민주적인 체제 안에서 사회주의를 실현시켰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회주의를 민주주의를 통해 실현시키겠다는 뜻인 사민주의와 비슷해보이는데요.

 

사민주의가 '유혈폭력'으로는 사회주의를 실현시킬 수 없다는 판단에서 태어난 것이라면

민사주의는 공산주의의 이념을 수용하되, 공산주의가 지닌 태생적 모순점을 비판하면서 태어난 것입니다.

또한 사민주의가 수단만 민주적 선거인만큼, 그 결과에 있어서 공산주의 이념 실현을 위한 자본주의 비판과 대대적인 내부개혁이 목적입니다.

어쨌거나 절대적인 목적만큼은 일반 공산주의자들과 다를 바가 없죠.

반면 민사주의는 민주주의 입법 테두리 안에서 현실에 맞게 사회주의를 적용하고 또 자본주의를 수정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민사주의는 좌파면서도 공산주의 비판으로 인해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절대 공산주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이념이 아닙니다.

따라서 사민주의 입장에서는 민사주의가 반동분자 내지는 자본가들과 타협한 변절자들로 보일 수가 있겠고 민사주의 입장에서는 사민주의가 현실불가능한 꿈을 좇는 인생 부정적으로 사는 개꿈쟁이들로 보일 수가 있겠죠.

 

요즘에는 민사주의가 사민주의자들 중에서 온건파 내지는 개량 우파의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사민주의 역시 오늘날에는 수많은 개량형이 있어서 최종 목적이 프롤레타리아 1당 독재 내지는 자본주의 타파인 순혈 사민주의는 거의 몰락했습니다. 그래서 그 의미가 민사주의와 중복되기도 합니다.

출처: http://cafe.naver.com/iblueeyes/24108

 

신정완,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와 한국사회에서의 착근가능성' 中

 

노동자계급의 현실적 이해관계와 평균적 정서에 따라 진화해온 질박한 이념

 

"사민주의 이념 속에는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요소가 혼재되어 있는 관계로, 사민주의는 그 주요 경쟁이념인 자유주의나 맑스주의에 비해 이념적 완결성과 체계성이 약하다. 실제로 사민주의 우파의 이념은 자유주의 좌파의 이념과 크게 구별되지 않고, 사민주의 좌파의 이념은 맑스주의의 이념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민주의는 근대 사회의 지배이념으로 기능해온 자유주의가 보유한 두터운 지성의 퇴적물을 갖고 있지 못하며, 인류 역사의 발전과정과 전망을 일관된 논리로 설명하는 맑스주의가 보여주는 이념적 체계성과 선명성을 보이지 못한다. 그러나 사민주의 이념의 이러한 혼성적 성격과 비체계적 성격은 사민주의 운동에 유연성을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 또한 어떤 사회이념이라는 것이 비록 비교적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결국 근본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렇게 불완전한 사회이념의 논리를 극한까지 추구할 때 초래될 수 있는 거대한 실패나 비극의 위험을 피하게 해주는 측면도 있다. 사민주의 이념은 주로 노동자계급의 절박한 현실적 이해관계와 평균적 정서를 반영하여 형성되고 진화해온 이념으로서, 정교하게 조직된 지적 구성물이라기보다는 경험에 기초한 양식(良識)에 가까운 질박한 이념이다"

 

생태주의, 여성주의에 대한 사민주의의 친화성

 

" 사민주의는 생태주의등 탈근대적 이념과는 이념적 뿌리와 주 관심사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근본주의적 생태주의와는 철학을 달리하지만, 생태주의 등 탈근대적 이념을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이들의 주장을 상당 정도 겸허하게 수용할 수 있다. 실제로 서구의 사민주의 정당들은 자유주의 정당들에 비해 생태적 가치를 더 중시해왔으며, 독일이나 스웨덴에서처럼 생태주의 정당들과 연립정부를 수립하거나 정책연합을 형성한 경우도 많다. 또 사민주의는 극단적 페미니즘과는 잘 어울리지 않겠지만 각국의 사민주의 세력은 거의 모두 여권신장에 노력해왔다. 특히 사민주의 세력의 주 관심사인 복지국가의 발전은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개선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안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관련하여 가장 앞선 사회들로 정평이 나 있는 북유럽 사회들은 모두 사민주의 이념이 강력하게 뿌리내린 사회들이다"

 

출처: http://cafe.naver.com/sdnet/377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2016-05-11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