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 경제 분야에서 개혁을 말하는 중심에 재벌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박근혜나 안철수나 문재인이나 경제민주화를 말하고 특히 재벌규제/제한/개혁을 표방하는 것만큼은 똑같다. 이런 상황을 두고 '재벌때리기'라는 말도 나온다. 1원 1표의 시장원리를 1인 1표의 정치로 제약하고자 할 때 경제민주화의 목표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완화하는 것만은 아닐텐데, 유독 재벌의 영업을 제한하고, 재벌의 초과이익을 공유하자고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재벌의 지대한 사회적 공헌에도 불구하고 부자에 대한 박탈감이 그들에 대한 적대적인 여론을 형성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대기업 중심의 시장독점이 독점자본주의적 경향을 드러내면서 빈부격차를 확대하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인가?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대기업 중심의 주주자본주의에 우호적인 집단은 부유한 기득권 계층 및 자본인 반면, 부정적인 집단은 일군의 개혁적 경제학자 및 사회정책담당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자본력을 통해 시장지배적 지위를 구축하고 이를 남용하는 재벌/대기업이 사회적 후생수준을 저해하고 빈부격차를 심화시켜 한 사회의 경제적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그런 까닭으로 대기업의 사회적 영향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개혁진영에서 나오고 있는데, 그와중에 정승일과 장하준의 주장이 눈길을 끈다.

  장하준은 2005년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한국경제의 문제는 대기업이 아니라 IMF이후 주주자본주의의 경향이 심화되어 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2012년 장하준,정승일,이종태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도 같은 주장이 심화되고 있는데, 이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주장하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주장하는 기존의 개혁세력의 입장과 어긋나는 부분이다. 현재 한국에서 개혁진영 내부의 논쟁으로 알려져 있는 이같은 대립은 정태인이 처음 제안하여 촉발된 프레시안의 '한국경제 성격논쟁'(http://www.pressian.com/article/ttag_article_list.asp?Tag_String=%C7%D1%B1%B9%B0%E6%C1%A6+%BC%BA%B0%DD%B3%ED%C0%EF)에서 첨예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국에서 꽤 오랜기간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비롯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해온 진보적인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재벌로 지칭되는)대기업의 영향력(권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인 경제구조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 온 장하준이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  대기업이 누릴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국가의 산업정책과 연계하여 고용을 창출하고 혁신의 압박을 높이자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IMF이후 급격히 주주자본주의화되고 있는 한국경제가 단기적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성장동력을 잠식당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재벌이 누려온 역사적 특혜에 대한 언급도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재벌은 한국사회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한국기업'이므로 한국경제를 위해 적절히 이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공저자인 정승일도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꾸준히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한국의 소위 '개혁적' 경제학자들을 비판한다.

  나는 장하준, 정승일의 진단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개혁실천연대(경실련), 경제개혁연대 등을 통해 주주자본주의의 헤게모니 내에서 재벌의 권력은 견제되어왔으나,(김상조의 진단처럼 그 효과가 미미했다 할지라도) 자본자유화는 외환은행 론스타 인수 사건이나 소버린의 적대적 M&A시도 같은 결과만 초래했을 뿐이다. 여기에는 90년대 중반 이후 국가주도의 산업정책보다는 시장주도의 혁신, 자본자유화를 비롯한 개방경제의 심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의 노출과 같은 배경이 있다. 지금과 같은 재벌의 소극적인 경제활동은 재벌개혁이 미진했던 탓이 아니라 너무 잘, 그것도 시장주의적인 방식으로 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에는 한국경제사를 생각할 때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결국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한국 재벌의 경영권 위기문제가 대두되었고,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한국경제를 대외경제여건에 취약한 구조로 만들지 않았던가.

  장하준 집단이 비판하는 개혁적 경제학자들의 경제민주화 담론에도 일리가 있다. 어쨌거나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여 사회통합을 마련함으로써 복지국가 모델을 추구하는 주장의 정당성을 의심하진 않는다. 그러나 장하준 그룹이 반복하여 세차게 비판하고 있듯이, 개혁세력의 경제학자들도 결국 '시장주의자'이다. 특히 금융시장에서의 자유주의는 한국의 중요한 기반이 되는 산업부문을 투기자본에 노출시켜 생산성을 저하시킬 위험이 있는데, 시장주의자들은 환율과 금리를 자유화하는 등 국내의 자본시장을 개방하고자 하는데만 주력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경제민주화는 완전경쟁시장을 이상적 모델로 하는 중소기업중심의 경제로, 생산의 이해관계자(주주, 경영자, 노동자, 하청업체 등)를 세력화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라기보다는 시장규율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무책임한 주장이라는 비판도 빠지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까지 가열찬 비판은 '허수아비 때리기'라는 비판을 역으로 받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개혁적 경제학자들이 다 시장주의자는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장하준 집단의 비판은 자신들의 논지를 벼리기 위해 가장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그들의 비판이 특히 정운찬이나 유종일, 이한구 같은 사람들에 집중되어있다는 일각의 견해도 있다.) 그런 까닭으로 나는 장하준 집단의 취지를 이해하여 그 주장을 받아들이는 한편으로 정태인이나 김상조의 주장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편이다. 정승일이나 장하준이 얼굴이 벌게져가지고 개혁세력의 재벌개혁을 비판하는 모습을 볼 때, 그들의 비판에는 국민경제에 대한 거시적 우려가 깊이 새겨져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논의가 그 이상으로 나아가 비약이 생기기도 하고 정태인 같은 이에게 격한 비판을 토해내기도 하지만,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은 확실히 '보편적 복지국가의 선구축과 산업정책을 통한 대기업의 규모의 이익 선용'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장하준 집단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의 세력화라든가 초과이익공유제의 취지에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지금처럼 한국의 자본시장이 개방되어 있는 상황에서 재벌의 영향력을 약화시킨다는 것은 빈부격차와 실업을 해결하려다가 경영권을 위협함으로써 장기적인 성장동력을 갉아먹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한국과 같은 노동배제적 자본주의에서 자본과 노동의 타협과정에서는 자본의 힘이 보다 많이 반영되는 경향이 있다. 장하준 그룹의 '대기업과의 사회적 대타협'주장이 어딘가 빈약해보이는 이유다. 그렇지만 장하준 집단에게는 주주자본주의화된 산업정책이 폐기되고 대기업이 투자를 꺼리면서 저성장시대에 돌입하는 것만큼은 안된다는, 그러니까 어느정도 네거티브적인 판단이 강한 것 같다. 오지 않은 미래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예상되는 최악을 막기 위한 판단같은 느낌이 든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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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ohlum/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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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무엇일까? 그건 한순간의 일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과정이다. ...(중략)

시간은 흘러가고 슬픔은 지속된다.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中

 

시간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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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 - 빌헬름 라이히 - 목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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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잠에서 깨어나 습관대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접했다. 여전히 반쯤은 잠에 취해 침대에 누워 있던 나를 사로잡은 것은 슬픔도 분노도 절망의 감정도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싸늘하고 단순한 명제에 가까웠다. 네가 하는 일이 너를 죽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은 삼류영화에 등장할것 같은 낭만적이며 비현실적인 문장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낭만적이며 비현실적인 명제가 돌연 현실 그자체가 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아니 차라리 영화같다고 치부하며 외면하던 현실이 방문을 부수고 들이닥친 것에 가까웠다. 나는 그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웃을까 했다. 그럴수밖에 없었던 것이 객관화를 하기 불가능할만큼 그녀가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와 나는 둘 다 여자였고, 부유하지 않았고, 글을 쓰는 창작자였다. 같은 학교를 다녔고 같은 수업을 들었다. 방에서 나온 나는 어머니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다. ‘너도 이집에서 나가면 똑같이 될지도 몰라.’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었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사실이었다. 정말이지 우리는 너무 가까이 있었다.

 

2

십대 중반에서 이십대 초반 극단적으로 돈이 없었다. 사소한 감기에 걸려도 아픈게 문제가 아니라 진료비가 문제였고 생리가 다가오면 생리통이 걱정이 아니라 생리대를 살 돈이 걱정이었다. 돈을 벌고 싶어도 열여섯살 고등학교 중퇴생이 할 수 있는 일은 뻔했다. 뻔한 모든 일을 닥치는대로 했다. 시간당 천삼백원을 받고 식당 사장에게 성희롱을 당하며 일한적도 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아니 더 악화되었다. 왕복 네시간이 걸리는 통학시간과 많은 과제와 빡빡한 수업내용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지하철 차비를 치르면 점심을 굶어야 하고 점심을 먹으면 지하철에 무단승차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모든게 돈이었다. 연애는 커녕 친구를 만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국립학교라 학비가 쌌고 학비를 대주고 밥을 주는 부모가 있었고 잠을 잘 방이 있었고 글을 쓸 컴퓨터가 있었다. 그런 최소한의 물적 기반이 없었다면 나는 에이포 열몇장씩 하는 긴 글을 무작정 써댈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런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나아지게 된 것은 소설가로 데뷔를 하고 난 뒤였다. 난 무엇보다도 내가 돈을 벌게 된 것에 그러니까 내가 앞으로 굶어죽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 사실에 기뻐했다. 소설가 타이틀을 얻었다는 사실보다 상금을 탔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더 중요했다. 육체노동으로 돈을 버는 것에 비하면 글을 쓰는 것은 쉬웠으니까. 확실히 숯불갈비집에서 열두시간동안 서빙을 하거나 화장품 공장에서 하루 아홉시간씩 화장품 뚜껑을 끼우는 것에 비하면 하루에 원고지 백장을 쓰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내가 쓰고 싶은 걸 쓰는 거니까. 그리고 모두가 회피하는 단순노동과는 달리 소설이 잘팔리면 선망의 눈길을 받거나 유력일간지와 인터뷰를 하거나 사회명사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3

이런 삶의 궤적은 내가 예술학교와 예술계의 지배적인 분위기에 위화감을 갖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나는 끝내 예술이 위대하다거나 고귀하다는 명제를 지지할 수가 없었다. 경제적 궁핍을 경험해본 나에게 그 명제는 너무 순진하게 느껴졌다. 아주 초기부터 창작에 필요한 물적기반을 확고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남들에 비하면 정말이지 운이 좋은 케이스여서 글을 쓰고 돈을 떼먹힌적도 없고 몇번의 지원금도 받을 수 있었고 비교적 ‘젊은’ ‘여자’라는 사실이 나의 궁핍함에 대한 사회적 비난의 강도를 약화시켜주었다. (물론 그것이 결국 나에게 더 커다란 제약으로 다가온다는 걸 안다)그래서 졸업하고 이년간 아슬아슬하게 전업작가의 길을걷고 있다. 하지만 내가 벌어들이는 돈은 내가 제대로 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다. 일년에 몇차례씩 말그대로 잔고가 0원으로 떨어지는 일이 벌어지고 앞으로 결혼을 하거나 애를 낳아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부모의 신세를 지고 있는 점이 스스로를 위축시킨다. 한가하게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라 뭘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운이 좋은 경우다. 그래서인가 가난의 지긋지긋함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은 타협할 생각이 없다. 그런데 이 말은 예술에 내 삶을 바치겠다는, 예술을 향한 낭만적인 도피로 오해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나는 위에 말한 것처럼 줄곧 정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현실이, 물적조건이 예술보다 힘이 세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예술학교 시절 내내 세련된 취향을 가진 동료 예술가지망생들에게 맞서 우스꽝스럽게 보일 정도로 지나치게 대중문화를 옹호했고 현대예술의 부르주아적인 성격에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 삶과 문학 사이에서 회의하다가 결국 문학을 떠나버리는 극단적 선택을 한 문학가들을 옹호했다. 난 도무지 예술을 긍정할수가 없었다. 그것은 내가 글따위 세상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걸 팔아먹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글이 아니라 좀 더 가치 있는 일, 예술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을 해서 살아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한편 바로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노동이 얼마나 고된지 스스로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더욱 나는 그런 일을 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한여름 숨막히는 돈까스집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때로 돌아갈까 공포에 휩싸이며 거기에서 멀어지려고 애를 쓰고, 또 한편으로는 돈까스집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노동을 한가하고 배부른 일이라면서 비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내 나는 극단적인 두 입장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이것 아니면 저것을 택하라고 스스로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이런 내 태도가 예술을 삶보다 위에 놓는 예술지상주의자들의 태도에 맞서 삶을 예술보다 위에 놓으며 예술을 폄하하는 일종의 반예술주의적 태도라는 걸, 결국 두 태도가 동전의 양면에 다름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은 지난 여름의 일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위에 적은 나의 고민을 두서없이 털어놓고 있었다. 친구는 화가였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던 친구가 말했다. 그런데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과 일을 하는 것이 같다고 생각해. 그 말을 듣고 나는 망치로 한대를 얻어맏은 느낌이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유치한 관념에 사로잡혀있었던가 깨닫고 부끄러웠다. 그렇다. 나는 은연중에 예술과 노동을 분리한 다음 우열을 정하여 편가르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글을 쓰는 것은 설거지를 하는 것에 비해 더 낫거나 더 못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낫다 저것이 낫다하는 건 결국 사람들에 의해,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나는 바보같이 사회가 나에게 강요하는 편견에 사로잡혀 갈팡질팡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게 되고 나서 나는 비로소 내가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버릴 수가 있었다. 그리고 삶에 절망하여 예술에 도피하는 태도와, 예술에 절망하여 예술을 떠나버리는 태도 모두가 똑같이 극도로 낭만적인 태도라는 것을 비로소 이해할 수가 있었다.

 

문제는 나 혼자 그것을 깨닫는 것으로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다시 나를 부끄럽고 도망치고 절망하게 만드는 현실에 부딪혔다. 중년의 여성청소부는 화장실에 숨어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고, 식당 점원은 커튼에 가려진 부엌입구에 선 채로 꾸역꾸역 어묵을 먹고 있었다. 퉁명스러운 유럽 공항의 상점점원들과 달리 한국의 공항의 점원들은 지나치게 친절했다. 주인이 감시하는 씨씨티비가 달린 편의점에서 일해본적이 있는 나는 언제나 점원들의 친절함이 불편했다. 나는 의문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누가 당당하게 탁자에 앉아 어묵탕을 먹는 나와 주방에 숨어 어묵을 먹는 저 사람을 같다고 보겠는가? 누가 이런 광경에서 우열을 읽어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의도와는 달리 끊임없이 분류되고 위치지어지고 있었다. 어떤 것은 천하고 어떤 것은 고귀하다. 어떤 것은 가치있는 일이고 어떤 것은 무가치한 일이다. 계속해서 우열을 가르는 사회구조가 존재하는 한 나 자신이 좀 더 선해지는 것과는 관계없이 차별적인 게임은 계속될 것이고 거기에 속해있는 나는 때와 장소에 따라 약자와 강자의 위치를 바꿔가며 누군가를 착취하거나 착취하며 부끄러워하거나 절망할수밖에 없을거라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4

인터넷에서 진행된 조영일과 김영하의 논쟁을 관심을 갖고 지켜 보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비평가와 예술가의 논쟁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계속되어온, 그리고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예술을 둘러싼 두가지 양립불가능한 입장간의 서로의 존재자체를 건 대립에 가까운 것이었다. 조영일의 입장은 예술을 사회적으로/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에 가깝고 김영하의 입장은 좀 더 예술의 순수성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어떤 입장을 취하건 사실 그건 각자의 문제이고 비난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위에서 썼듯이 예술을 둘러싼 두 입장이 양립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논쟁은 필연적이다. 그리고 나의 입장은 조영일에 더 가깝다. 그 이유는 첫째로 위에 적었듯이 예술을 과잉되게 옹호하는 것은 과잉되게 폄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실을 왜곡되게 바라보는 태도인데 나는 예술가라면 더욱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저렇게 예술의 순수성을 옹호하는 태도 자체가 하나의 입장에 불과한데 그것이 강력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어 이 시대의 예술과 예술가에게 오직 자신의 입장을 따르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문화예술영역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조를 예술을 오직 예술의 자리에 머물기를 강요하는, 예술을 끝없이 낭만화하는 현대의 예술적 경향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예술의 가치를 극단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의 기원은 독일의 낭만주의 운동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 독일의 상황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교육받은 일군의 젊은이들이 출현했지만 여러가지 여건으로 인해 현실사회에 진출할 통로가 차단되어 되어버린 당시 독일의 상황이 젊은이들을 절망하여 예술(문학)으로 도피하게 만들었다. 다른 모든 가능성이 차단되어 버렸으므로 그들은 더욱 더 예술을 향해 도피했고 예술을 낭만화하며 예술의 순수성을 옹호했다. 나는 같은 상황을 민주화 이후 환멸과 냉소가 지배적인 정서가 되어버린 한국의 구십년대 문학에서, 혹은 점점 더 귀여운 키치가 되거나 텅 비고 세련되어지기만 하는 당대 미술의 경향에서 발견한다. 예술이 오직 예술 자신만을 반복해서 호명하는 것은 그 예술이 속한 사회의 상황이 그만큼 막다른 곳에 닿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현실에서 가능성을 잃고 절망한 예술은 현실 저 너머로 눈을 돌린다. 사회적 자살자가 되어버린 예술가들은 현실과의 끈을 잃어버린다. 그들은 그들만의 아름답고 순수한, 따라서 더없이 자폐적이고 자멸적인 왕국으로 떠난다. 어쩌면 그것은 몹시 아름다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자멸과 절망을 향해 가는 지극히 아름다운 운동에 다름 아닌 무언가는 내가 예술에서 기대하고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술에 관한 순수주의적 입장은 예술에 대한 여러 입장 중 하나에 불과하다. 위대한 예술이 탄생하는 수많은 배경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많은 예술 작품들 중에 그 입장에 의해 탄생된 작품은 일부에 불과하다. 바흐는 왕과 교회를 위해서 작곡했다. 발자크와 도스토예프스키는 빚을 갚기 위해 썼다. 많은 위대한 화가들은 귀족과 부르주아의 청탁을 받고 그림을 그렸다. 소비에트 연합에서는 명백히 선동적 목적으로 위대한 영화가 만들어졌고, 반대로 미국에서는 명백히 상업적 목적으로 위대한 영화가 탄생했다. 물론 내가 예술가의 내밀한 예술혼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위대한 예술이란 예술가의 내밀한 예술혼과 예술가가 처한 현실상황 사이의 긴장에서 촉발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확히 초월적 욕망과 세속적 욕망의 경계에 위치한다. 예술이란 미학과 정치, 아름다움과 윤리,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과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예술을 만들어내고 싶은 욕망 사이의 투쟁의 장에 다름아니다. 이 양립불가능한 모순적인 욕망과 상황간의 투쟁을, 적대를, 긴장을 소거해버린 예술이 도착하게 되는 곳은 아마추어들의 소박한 자기위안이나 무미건조한 관제예술 혹은 더 없이 세련된 문화상품의 세계이다. 위에 적은 예들이 단지 그렇고 그런 국가나 자본의 꼭두각시 혹은 왕이나 교회의 선전물의 세계에서 위대한 예술의 세계로 도약한 것은 바로 예술가가 가진 현실적 제약조건과 본인의 예술적 야망 사이에서의 치열한 고민과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은 다른 모든 것에 대한 미적인 것의 무한한 승리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미적인 것과 다른 것들 사이의 처절한 투쟁의 실패의 기록에 가깝다. 그리고 예술은 그 실패를 발판삼아 자신의 가능성의 범위를 확장해나간다. 그것이 우리가 예술의 역사에서 발견하게 되는 유일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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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하는 것이 나를 죽일수도 있다는 절망적인 현실에 맞닥뜨린 우리 예술가들이 택해야 하는 길은 무엇인가. 예술로의 더 급진적인 도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쩔수 없이 종종 발생할 안타까운 희생에 대한 아름다운 애도인가? 더없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비명같이 탄생하게 될 예술의 가능성만이 남아있나? 우리에게 남은 길은 오직 그것뿐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또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예술을 둘러싼 오직 하나의 입장에 굴복하는 것이다. 여전히 다른 선택지들이 남아 있다. 그 중 하나는 삶과 예술 모두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지난 세기,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타오르는 예술혼 이전에 그 예술혼을 지속적으로 불태울 돈과 자기만의 방이라고 말한 적 있다. (물론 그것은 여성 예술가를 향해 쓴 것이지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우울하고 예민한 여성예술가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녀지만 이렇게 창작작업의 물적 기반에 대해서 냉철하게 인식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예술가는 별난 종족이 아니다. 다른 모든 인간들처럼 먹고 살 돈이 필요하다. 이런 필요에 대한 요구가 예술을 천박하게 만들지 않는다. 버지니아 울프는 노골적으로 액수까지 제시하며(500파운드) 글을 쓰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속물이었지만 동시에 위대한 소설가였다. 이 예를 우리에게 적용하면 이렇다. 국민소득이 이만불에 달한다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는 굶어죽을지도 모르는 이런 엉망진창인 이 사회에 대해 혹은 문화예술계의 말도 안되는 관행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고 투쟁한다고 해서 예술가들의 순수한 창작욕이 타락되거나 고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새로운 예술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지독한 절망만이 예술의 탄생요건은 아니다. 예술혼에 불타는 미친 예술가는 예술가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다른 예술은 가능하다. 패배가 아니라 승리에 대한, 환멸이 아니라 가능성에 대한 예술은 가능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실패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실패는 각자 골방에 갇혀 순수하고 자폐적으로 창작욕을 불태우는 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절대 패배하지 않는 자의식이 아니라, 오히려 자의식 전체를 뒤흔드는 투쟁이다. 그 투쟁은 예술 안과 예술 밖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 왜 우리는 예술과 삶 둘 중에 하나만 택해야 하는가? 이건 삶에 예술을 저당잡히라는, 장사꾼이 되어 예술을 팔아먹으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예술을 위해 삶을 희생하고, 혹은 살아남기 위해 예술혼을 팔아먹어야 하는 끔찍한 현실과 맞서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삶과 예술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왜 예술가는 지금 당장 나서면 안되는가? 왜 예술가는 오직 예술가여야 하는가? 우리들이 예술가이기 전에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예술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다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이런 소박한 진실에서, 그리고 이런 소박한 진실을 왜곡하는 것들과의 투쟁 속에서 위대한 예술이 탄생할 수 있음을 믿자. 내가 하는 것이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그것의 실현에 나서야 한다. 그것은 개인들 각자의 이미 패배가 정해진 외로운 싸움이 아니라 개인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연대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해내는 것 그것만이 죽은 그녀에게 살아있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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