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 지금까지 많은 걸 언급하면서 매우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빼놓았다. 과학은 관찰을 통해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심판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아이디어는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과학의 급속한 발전과 진보는 인류로 하여금 끊임없이 검증된 아이디어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아이디어가 어떻게 탄생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중세 시대에는 사람들이 ‘많은 관찰을 수행하다 보면 그 관찰 결과 자체가 법칙을 제안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법칙을 찾아낼 수 없다. 실제로 우리는 그보다 좀 더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우리가 다루어야 할 다음 문제가 바로 ‘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 문제다. 사실 어디서 나오든지 나오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 모든 아이디어는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 어떤 아이디어가 옳은지 그른지 검증하는 과학적 절차는 그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든 다 똑같다. 관찰을 통해 예측한 값과 측정된 값을 비교해서 검증할 뿐이다. 그래서 과학에선 아이디어가 어디서 비롯됐는지에 대해 사실 별 관심이 없다. - P34
36 물리학 분야에서는 지금까지 쌓아 온 관찰 데이터들이 너무 많아서, 이 모든 관찰 결과들을 잘 설명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지금까지 한 번도 제안되지 않았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누구한테서 나왔든 어디서 나왔든지 간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제안되면 이를 환영하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논쟁을 걸려고 하진 않는다. 다른 과학 분야에서는 물리학만큼 관찰 데이터들이 많지 않아서 물리학의 초창기처럼 논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진실을 판단할 독립적인 방법이 존재한다면 사람들 간에 굳이 논쟁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 P36
36-7 놀랍게도 과학자들은 아이디어 자체에만 관심을 가질 뿐,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의 과거 경력이나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아이디어를 들어보고, 그것이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판단되고, 시도해 볼 수 있으며, 지금까지의 생각들과는 확실히 다르고, 또 지금까지의 관찰 데이터들과 명백히 상반되지 않는다면, 과학자들은 기꺼이 아이디어를 테스트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일 것이다.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연구했는지, 아니면 왜 이 사람이 이런 아이디어를 제안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나오든 달라질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어쩌면 아이디어의 실질적인 근원은 ‘미지의 세계‘이다. 우리는 그걸 인간 두뇌의 상상력, 혹은 창조적 상상력이라 부르지만, 이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마치 ‘움프‘처럼. - P36
37-8 나는 사람들이 ‘과학에는 상상력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고 믿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 사실 과학에는 예술가의 상상력과는 다른, 아주 재미있는 종류의 상상력이 존재한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을 떠올려야 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관찰 결과들을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지금까지 제안된 다른 아이디어와는 매우 다른 것이어야 하며, 검증 가능할 만큼 구체적이고 정확해야 한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상상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검증할 수 있는 규칙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도 일종의 기적에 가깝다. 아무런 실마리도 없는 상황에서 ‘중력이 거리의 역제곱에 비례한다‘는 규칙을 찾는 일이 어떤 것인지 상상해 보라. 그것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우리가 ‘만유인력의 법칙‘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이 법칙을 통해 우리는 아직 시도하지 않은 수많은 실험들에 대해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다. - P37
38-9 자연을 묘사하는 규칙들은 매우 수학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관찰이 가설을 심판한다‘는 과학의 원리에 기반한 것은 아니며, 모든 과학이 수학적일 필요도 없다. 단지, 적어도 물리학에서는, 규칙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면 현상을 좀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자연의 법칙은 왜 정교하게 수학적으로 기술될 수 있는가 또한 아직 풀지 못한 미스테리이다. - P38
39 자, 이제 가장 중요한 대목에 다다른 것 같다. 과학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관찰을 통해 검증된 규칙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관찰이 잘못된 규칙을 도출할 수 있는가? 제대로 성실하게 검증만 했다면 어떻게 틀릴 수 있단 말인가? 왜 물리학자들은 항상 법칙들을 바꿔야만 할까? 이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내 대답을 먼저 들려드리자면, 규칙은 관찰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틀릴 수 있으며, 관찰이라는 실험 과정은 항상 부정확하다는 것이다. 규칙은 그저 추측된 법칙이며 외삽의 결과일 뿐, 관찰에 잘 부합된다고 해서 반드시 그 규칙이 성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관찰이라는 그물망에 걸러지지 않은채 "꽤 쓸만한 추측"으로 남아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물망의 코가 예전에 쓰던 것보다 점점 작아지면 - 다시 말해 관찰의 정확도가 점점 더 높아지면 - 때론 그 규칙도 그물망에 걸러지게 될 수도 있다. 규칙은 그저 추측일 뿐이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외삽인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추측을 하는 것이다. - P39
41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우리가 경험해 보지 않은 상황에서도 우리가 추측한 대로 일이 벌어지게 될 거라는 원리, 그것뿐이다. 지식이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만 얘기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 알려 주는 원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재미있다. 이를 얻기 위해 우리에겐 그저 무모한 짓이라도 시도할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 P41
41 모든 과학 법칙과 모든 과학적 원리, 그리고 관찰을 통해 얻은 결론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들을 빼놓은 ‘단순 명제‘ 가 되기 십상이다. 그것은 어떤 법칙도 완벽히 정확하게 진술할 순 없기 때문이다. 실험자는 자신의 질량 법칙을 기술할 때 질량은 물체의 속도가 아주 높지 않다면 많이 변하지 않는다‘ 라고 법칙을 서술했어야 옳았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처럼 과학은 구체적인 규칙을 만들어서 관찰의 그물망을 통과하는지 알아보는 일종의 게임이다. 한 과학자는 ‘질량이 항상 불변한다‘ 라는 구체적인 규칙을 내놓았고 이 재미있는 가능성은 결국 틀린 것으로 판정되었지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진 않았다. 그저 불확실했을 뿐인데, 불확실하다고 해서 위험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무엇이든 구체적인 주장을 하되 확신을 하지는 않는 편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다. - P41
42 우리가 과학을 통해 얻어 낸 모든 결론들은 그저 반증되지 않고 아직까지 살아남아있는 ‘잠정적인 결론‘이며, 불확실함은 피할 수 없는 요소이다.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추측을 할 뿐이며, 완벽한 실험을 하진 못했기에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팽이가 회전할 때 질량이 늘어나는 효과가 너무 작기 때문에 "아, 아무런 차이가 안 나는구나."라고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올바른 법칙‘, 다시 말해 관찰이라는 정교한 그물망을 수없이 통과하고 끝내 살아남을 법칙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굉장한 지적 능력과 상상력,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만큼 혁명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상대성이론이다. 과학 분야에서 아주 작은 성과라도 얻기 위해서는 기존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는 혁명적인 사고방식이 요구된다. - P42
42-3 그러므로 과학자들은 의심과 불확실성을 다루는 데 익숙해 있다. 모든 과학적 지식은 불확실하다. 하지만 의심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과학 지식을 다루어 본 경험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나는 이것이 매우 가치있는 일이며 과학을 벗어나 다른 분야에서도 매우 유용한 것이라고 믿는다. 아직 아무도 풀지 못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조금 열어 놓아야 한다. 지금 옳다고 믿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지금 알고 있는 해답을 법칙이라 굳게 믿고 있으면, 영영 문제를 못 풀 수도 있다. - P42
43 만약 과학자가 어떤 문제에 대해 답을 모른다고 말한다면, 그는 정말 그 답을 모르는 것이다. 만약 그가 "해답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지만 짚이는 구석이 있기는 해." 라고 말한다면, 그는 아직 그 문제를 명확히 파악한 것은 아니다. 그가 설령 해답이 무엇인지 확신을 갖고 "이것이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이야. 내기를 해도 좋아." 라고 확신에 찬 말을 할 때에도 머릿속엔 여전히 조금의 의심이 남아 있다. 과학자의 머리에서 의심을 몰아낼 수는 없다. 하지만 과학이 진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무지함과 의심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오늘의 해답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기에 내일의 더 나은 해답을 찾아 새로운 탐색의 길을 제안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이 빠르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욱 정교한 관찰 방법이 개발되는 것뿐만 아니라,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새로운 가설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 P43
43-4 만약 새로운 길을 탐색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면, 또 만약 우리가 더 이상 의심하지 않거나 무지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진실이라 확신하고 있다면 그 어떤 것도 힘들여 검사해 볼 생각을 안 할 테니까. 지금 우리가 ‘과학적 지식‘이라 부르는 것들은 ‘확실한 정도가 제각기 다른 여러 진술들의 집합체‘ 라고 볼 수 있다. 그중 어떤 것들은 매우 불확실하며 또 거의 확실한 것들도 있긴 하겠지만, 그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완전히 확실하지는 않다. 과학자들은 이 점에 매우 익숙해 있다. 모르는 채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혹자는 "어떻게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갈 수가 있죠?"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도무지 이런 질문이 이해가 안 된다. 당신은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는가? 내 경우 대부분을 정확히 모르는 채로 살아왔다. 쉬운 일이다. 내가 진정 알고 싶은 것은 ‘우리가 어떻게 점점 알아가게 되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 P43
44-5 의심을 할 수 있는 자유는 과학에서 중요한 문제이며,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다고 나는 믿는다. 이 자유는 오랜 투쟁의 결과로 얻게 된 것이다. 의심할 수 있도록, 확신하지 않도록 허락받은 것 자체가 투쟁이었다. 나는 우리가 이 투쟁의 고귀함을 잊어버려 많은 가치를 잃게 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 나는 우리 자신의 무지함을 떳떳이 인정하는 철학과 자유로운 사고를 통해 얻어 낸 진보의 가치를 아는 과학자로서이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자유의 가치를 알리고, 의심이 결코 공포의 대상이 아니며, 인류의 새로운 잠재 능력을 가능케 하는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다음 세대들에게 가르쳐야 할 책임을 느낀다. 무엇이든 확실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개선의 여지는 언제든지 열려 있다. 나는 미래의 세대들에게 바로 이 자유를 요구하고 싶다. 과학에 있어 의심은 분명한 가치를 지닌다. ‘다른 분야에서도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마도 대답 없는 질문이 될 것이다. 다음 두 강연에서는 바로 이 점에 대해 좀 더 깊이 논의하면서, 다른 분야에서도 의심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의심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매우 가치 있는 것이란 점을 보여 주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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