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7 모든 문명이 예술 영역에 있어 독특한 양식을 갖는 일이 허락된다면 양식의 본질인 질적 독자성이 각 문명의 모든 부분과 기관, 제도, 활동 속에는 스며들지 않고 예술 영역에만 나타날 수 있는가를 조사해야만 한다. 이 방향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문명으로 말미암아 특히 중점을 두는 활동 분야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주장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헬라스 문명은 인간의 삶을 심미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는 뚜렷한 경향이 있다. 그것은 본래 심미적으로 미라는 것을 나타내는 그리스 어의 ‘카로스‘라는 형용사가 도덕적인 ‘선‘을 나타내는 데 구별 없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로 보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인도 문명과 그 ‘자식 문명‘인 힌두 문명은 주로 종교적인 견지에서 인생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분명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유럽 문명은 어떤가 하면, 서유럽 문명 자신의 경향 내지는 편향을 쉽게 발견한다. 말할 나위도 없이 그것은 기계 중시의 경향, 정교한 물적·사회적 ‘태엽 장치‘ㅡ자동차나 손목시계나 폭탄과 같은 물적 기관과, 의회 제도나 사회 보장 제도나 군사 동원 계획 같은 사회적 잠재력 기관ㅡ를 만들어 냄으로써 자연 과학의 여러 발견을 물질적인 목적에 응용하는 일에 관심과 노력과 재능을 집중하는 경향이다.
더구나 이 경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이상으로 예부터 볼 수 있는 것이다. 서유럽인들은 소위 ‘기계 시대‘의 훨씬 전부터 다른 문명의 교양있는 엘리트로부터 혐오해야 할 물질주의자로 인식되고 있었다. 역사가가 된 비잔틴의 왕녀 안나 콤네나는 11세기경의 우리 선조를 그렇게 보았고,서유럽 사회의 신예 무기였던 정교한 십자군의 석궁을 공포와 경멸이 뒤섞인 눈길로 보았다. 언제나 재빨리 살해 도구가 발명되는 일이 상례이지만, 이 석궁 역시 중세 서유럽 인의 기계 애용 경향을 누르고 먼저 발명되었다. 전쟁에 비해 매력이 뒤떨어지는 평화적 기술을 적용한 걸작인 ‘태엽 장치‘가 발명되기 수세기 전에 발명되었던 것이다.
근대에 서유럽에 있어 몇 사람의 저술가, 특히 슈펭글러가 이 이질적인 문명의 ‘특성‘이란 문제를 취급하고 있는데, 그 논의는 냉정한 진단을 일탈하여 마음대로 공상으로 달리고 있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분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충분히 확증되었지만, 만일 그와 마찬가지로 확실하면서 더 중요한 사실ㅡ그 인간의 생활과 제도에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다양성은 밑바닥에 숨어 있는 동일성을 해치는 일 없이, 그 표면을 덮고 있는 피상적인 현상이라는 사실ㅡ을 간과한다면 겉과 속의 비례 감각을 상실하여 혼돈의 위험에 빠질 것이다. - P306

310-1 세계 문명 쇠퇴의 내적 특징은 이미 앞서 정의하였다. 그것은 미개인 수준에서 어떤 종류의 초인간적 생활의 높이에 오르려는 대담한 계획의 실패인 것이며, 우리는 이 장거하고 더없이 거대해 보이는 계획을 실천하는 과정 중에 일어나는 위험을 갖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이를테면 우리는 그것을 동반자가 산정의 새로운 휴식 장소인 암반에 이르지도 못한 채 자신이 막 출발한 암반 위에 떨어져 추락사하거나 그 위에서의 죽음과 다름없는 보기 흉한 사태에 비유했다. 다시 쇠퇴의 특징을 비물질적인 면으로 설명하면, 이것은 창조적 개인이나 소수자의 정신에서 창조력이 박탈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창조력이 상실되면 이러한 사람들은 비창조적 대중의 정신을 감화시킬 수 있는 신통력을 빼앗겨 버린다. 창조가 행해지지 않는 곳에는 미메시스(모방)도 행해지지 않는다. 피리 부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은 이미 마력을 잃어 군중의 발을 춤추게 할 수 없다. 만약에 흥분하고 당황하여, 훈련 하사관 또는 노예 사역자로 변신하면, 이미 이제까지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으로 끌고 갈 수 없어진 민중을 완력으로 누르려고 한다면, 그것은 더욱 더 확실하고 재빠르게 자신의 의도를 번복하는 꼴이 된다. 추종자들은 신묘한 음악이 그쳤기에 춤추는 발이 무디어지고 정지하였을 뿐이었는데, 이번에는 회초리가 자극을 하니 추종자들은 적극적으로 반항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어떤 사회의 역사에 있어서도 창조적 소수자가 지배적 소수자로 타락하여 이미 거기에 합당치 않게 된 지위를 힘으로 유지하려고 들면 이 지배 요소는 성격이 변화되는 반면, 이미 지배자에 경복하여 지배자를 모방하지 않게 되고 예속 상태에 반항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분리라는 결과가 야기된다. 이 프롤레타리아는 자기 존재를 주장할 때 처음부터 두 개의 다른 부분으로 갈라진다. 표면은 온순하게 엎드려 있으나 내심으론 완강하게 반항하는 내적 프롤레타리아와 폭력으로 병합을 거부하는 국경 저쪽의 외적 프롤레타리아가 그것이다.
이상 고찰한 바에 따라 문명 쇠퇴 특징은 소수의 창조적 능력의 상실, 거기에 호응하는 다수의 미메시스(모방) 철회, 그 결과로 인한 사회 전체의 사회적 통일의 사일 등 세 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쇠퇴의 특징을 머리에 두면서 쇠퇴의 원인 탐구에 들어가기로 하자. 그러면 우리들이 연구하는 이 편의 나머지 전부를 쇠퇴의 원인탐구에 할애하게 되는 셈이다. - P310

326-7 쇠퇴의 원인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다. 서유럽 문명 공유의 예술적 전통을 버림으로써 자기의 능력을 영양 실조와 불모의 상태에 빠뜨리고 다오메(서아프리카의 구 프랑스 식민지)나 베냉(서아프리카 기니 만에 면한 나라)의 이국적 원시적 예술에, 마치 그것이 광야에 내린 만나(<출애굽기> 16:14~36)이기나 한 것처럼 탐식함으로써 서유럽 인들은 모든 사람 앞에 스스로의 정신적 상속권을 포기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서유럽 문명의 전통적인 예술적 기술의 포기는 분명히 서유럽 문명에 일어난 어떤 종류의 정신적 쇠퇴의 결과이다. 그리고 이 정신적 쇠퇴의 원인을 그 결과의 하나인 현상 속에서 찾아 낼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이다.
투르크 인이 얼마 전에, 아라비아 문자를 폐하고 라틴 문자를 채용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와 그 일당은 이슬람 세계 내부에 있어서 철저히 서유럽화한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명의 전통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의 문명을 전해 온 문자를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더 오랜 옛날 죽어 가는 상태에 있던 문명의 전통적인 문자를 폐지했던 것ㅡ이를테면, 이집트에서 상형문자가 폐지되고 바빌로니아에서 설형문자가 폐지된 것ㅡ도 역시 같은 이유로 설명이 된다. 현재 중국과 일본에서도 한자를 폐지하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의 기술을 대체하는 흥미 깊은 예는 헬라스 문명의 건축 양식이 폐기되고 신식의 비잔틴 양식이 채용된 예이다. 이 경우 바야흐로 숨을 거두려 하고 있는 사회의 건축가들은 비교적 간단한 원 주위에 대륜(고대 건축의 중방의 최하부)을 얹는 구조를 그만두고 십자형 건물의 상부에 원형 돔을 얹는 매우 곤란한 방식의 실험을 시도했다. 따라서 기술적 능력의 퇴보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위해 비잔틴 건축 하기아소피아 성당의 구조상의 여러 문제를 훌륭히 해결한 이오니아의 건축가들이 고전 그리스식의 사원을 세우는 것이 전제 군주의 뜻이며 그들 자신의 뜻이었는데도 그리스 양식의 사원을 세울 능력이 없어서 짓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유스티니아누스와 그의 건축가들이 새로운 비잔틴 양식을 채용한 것은 구양식이 이미 사멸하여 썩어 없어져 가는 과거의 잔해와의 연상을 불러일으키므로 그들의 기호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조사 결과는 전통적인 예술 양식의 포기는 그 양식과 결부되어 있는 문명이 훨씬 이전부터 쇠퇴하여 이제 해체의 도상에 있음을 보이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기술이 쓰이지 않게 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쇠퇴의 결과이지 원인은 아닌 것이다. - P326

340-1 헬라스 사회 이외의 어느 사회를 조사해 보아도, 문명 쇠퇴의 원인은 외래 세력의 침입이라는 사실로써 추측할 수 있는 인간적 환경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는 면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도 무방하다. 외적이 이룩한 일은 기껏해야 막 숨을 거두려는 자살자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일이었다. 외래 세력의 침입이 무력에 의한 공격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 공격을 받은 문명이 역사의 최종 단계, 즉 죽음의 순간에 있을 때 외에는 파괴적이 아니라 분명히 자극적인 정도일 뿐이다. - P340

344-5 지도자의 임무는 그의 동료로 하여금 따라오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 전체를, 인류를 초월한 저편에 있는 목표를 향해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원시적이며 보편적인 모방의 능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모방은 일종의 사회적 훈련이다. 이 세상의 소리 같지 않은 영묘한 오르페우스의 하프 선율이 들리지 않는 둔한 귀에도 훈병계 하사관의 호령은 잘 들린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람이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의 소리를 흉내내면, 그때까지 멈춰 서 있던 대중은 갑자기 기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처럼 대중을 유인하여 따르도록 시키는 운동으로 대중을 따라오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은 질러가지 않으면 지도자를 따라갈 수가 없으므로 파멸에 이르는 넓은 지름길 위에 몰려서야 비로소 대오를 정비하여 행진하는 여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파멸의 길을 걸어야만 한다면, 이런 식의 추구가 흔히 불행한 결과로 끝난다고 해도 놀랄 것이 못 되리라. 또한 모방의 능력을 이용하는 방법과는 별도로 모방을 실제로 이행하는 데는 하나의 약점이 숨어 있다. 왜냐하면 모방은 일종의 훈련 과정일 뿐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상황이 적용되지 않은 비창조적 모방은 인간 생활과 운동의 기계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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