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9-60 좀 더 최근으로 오면서 책이, 특히 값이 싼 문고판 책이 대량으로 공급되기 시작했다. 평범한 식사 한 끼의 비용이면 로마 제국의 흥망, 종의 기원, 꿈의 해석 등 모든 사물의 본질과 정체를 깊이 사색할 수 있는 책을 사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책은 씨앗과 같다. 수세기 동안 싹을 틔우지 않은 채 동면하다가 어느 날 가장 척박한 토양에서도 갑자기 찬란한 꽃을 피워 내는 씨앗과 같은 존재가 책인 것이다. - P559
560 -1 책을 1주일에 한 권씩 뗄 수 있다면 한 사람이 평생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의 총수는 대략 수천 권에 이른다. 그렇지만 이것은 현대 도서관이 소장한 장서의 기껏해야 1,000분의 1에 불과한 작은 양이다.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는 몇 권을 읽는가보다 어떤 책을 읽는가에 달려 있다. 책에 기술할 수 있는 정보는 그 정보가 태어날 떄부터 완전히 확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며 새로운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정보의 내용 역시 점차 수정돼야 한다. 이것이 정보가 갖는 속성이다.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이 건립된 지 이미 2,300년의 긴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인류사에서 책이 없었다면, 다시 말해서 문자 기록이 없었다면 지나간 23세기가 얼마나 끔찍하고 길었을까? 100년을 4세대로 친다면 23세기는 거의 100세대에 해당하는 긴 기간이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정보가 입에서 입으로 말로만 전해졌다면 우리가 과거에 대해 대체 무엇을 알 수 있었을 것이며, 우리의 진보가 또 얼마나 느렸을까! 선대가 알아냈던 지식 중에서 어쩌다 얻어 들을 수 있었던 몇 마디의 이야기들만 후대에 전해졌을 것이다. 비록 전해졌다고 하더라도 그 정보의 정확도는 보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과거로부터 주어진 정보를 한때는 귀하게 여길지 모르겠으나, 같은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세대를 거쳐 반복해서 구전하는 동안에 점차 변질되게 마련이고, 결국에 가서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퇴색되거나, 아니면 우리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책은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해 준다. 책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조상의 지혜를 오늘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이렇게 해서 도서관은 인류가 이룩한 거대한 지식 체계와 위대한 통찰의 세계를 우리와 연결시켜 주는 고리의 구실을 한다. 도서관이 전해 주는 통찰과 지식은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이 자연으로부터 숱한 고생 끝에 힘들여 발굴해 낸 고귀한 보물이다. 그들은 지칠 줄 모르는 정열로 우리에게 큰 교훈과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고 하나의 종으로서의 인류가 고유의 지식 체계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런데 오늘날 공공 도서관의 설립과 유지는 거의 전적으로 대중의 기부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키워 온 문명이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냐는 우리 각자가 얼마나 충실하게 공공 도서관을 지원하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공공 도서관이 인류 문화 창달의 버팀목 역할을 해 왔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깊이 숙고해 봐야 한다. 지구 문명의 지속성 여부는 전적으로 공공 도서관에 제공하는 우리의 기부 규모에 달려 있는 것이다. - P560
561 행성 지구가 태어날 당시와 똑같은 상태에서 똑같은 물리적 특성을 가진 또 다른 지구가 은하수 은하 어디에선가 다시 만들어진다면 거기에도 우리 인류와 흡사한 어떤 생물이 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도 그럴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진화의 과정에서 우연이 휘두르는 폭력의 위력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주선 입자가 유전자 중에서 어떤 것을 때릴지 전혀 알 수 없으며, 그 결과로 나타나는 돌연변이 역시 제각각일 것이다. 진화의 초기에는 돌연변이의 작은 차이가 크게 문제될 바 아니지만 긴 진화의 과정을 통해 돌연변이의 작은 차이들이 누적된 결과는 엄청난 규모의 변화를 가져온다. 오래전에 생긴 사건일수록 그것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지대하기 마련이다. 역사와 마찬가지로 생물 현상에서도 우연이 결정적인 차이를 초래한다. - P561
567 기후 변동의 실제 원인이 무엇이었든 간에 인간 생존의 근본 문제는 천문학 내지 지질학적 우연성에 이렇게 민감하게 의존한다. - P567
567 인류의 조상이 나무에서 내려온 이후 직립 보행을 하게 됐으며 그 결과로 앞발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손으로 변했다. 그뿐만 아니라 두 눈이 훌륭한 쌍안경의 기능을 갖게 됐다. 즉 도구 제작의 선결 과제가 모두 해결된 셈이다. 큰 두뇌와 복잡한 의사를 서로 교환할 수 있는 능력의 장점을 이제 십분 발휘하게 됐다. 다른 동물들과 여타의 조건이 동일하다면 어리석은 머리보다 명석한 두뇌를 갖는 것이 살아가는 데 월등하게 유리하다. 지능이 높은 존재들은 문제를 남보다 더 잘 해결할 줄 알고, 더 오래 살 수 있으며 새끼도 더 많이 낳는다. 핵무기의 발명이 있기까지는 지성이야말로 생존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던 것이다. 핵무기의 출현 이후 지적 능력이라는 것을 이렇게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게 됐지만 말이다. - P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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