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우리는 이런 과거 시험의 전통을 언제 잃어버린 걸까요? 바로 식민지 시기입니다. 우리나라는 운이 없게도 식민지 시절에 근대 교육이 정착됐습니다. 식민 교육의 특징이 뭘까요? 당시 일본인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조선을 통치하고 있는데, 조선인들에게도 무언가 가르치기는 해야겠지요. 그런데 조선인들이 교육을 받은 결과 자기의 생각, 자기의 사상, 자기의 아이디어, 이런 것을 발전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큰일 날 일입니다.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가장 위험한 일이지요. 그래서 일본은 조선 사람들에게 ‘정답’이 이미 존재하는 것만 가르칩니다. 정답이 이미 존재하는 것만 물어보고요. 우리가 그런 교육을 100년쯤 지속해 온 겁니다. 해방 이후에 미국으로부터 사지선다의 객관식 시험 형식이 수입되면서 이것이 더욱 심해지지요. - P26

그럼 본격적으로 4차 산업 혁명 이야기를 해 보죠. 요즘 모두들 알파고와 4차 산업 혁명 이야기를 해 대서 저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해 달라는 요청이 종종 들어옵니다. 그러면 저는 우선 4차 산업 혁명을 지나치게 ‘기술’ 수준에서 이해하려 하지 말라고 말씀드려요. 그냥 몇 가지 들은 풍월, 그러니까 인공 지능과 사물 인터넷과 빅 데이터 등등이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정도로 알면 됩니다. 왜냐고요? 기술이 어떤 방향과 속도로 진화할지는 어차피 전문가들도 잘 예측하지 못하거든요. - P60

저는 복지가 많을수록 좋다는 식의 담론에 대해 상당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요. 복지는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그 모든 것이 똑같이 중요할까요? 우선순위가 있을 거예요. 그럼 가장 중요한 복지는 뭘까요? 저는 세 가지라고 보는데 첫 번째가 고용 보험이에요. 내가 회사에서 잘리거나, 회사가 망해서 실직 상태가 되어도 상당 기간 생활비가 보장된다면 여유 있게 이것저것 알아보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도 있지요. 특히 새로운 직업을 위해 뭔가를 배울 기회를 갖는 것은 산업의 수준을 높이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복지는 최저 생계 보장입니다. 우리나라엔 가난한 노인들이 엄청 많아요. 노인 빈곤율이 40%가 넘는데, 오이시디(OECD)에서 2위를 압도적인 차이로 따돌리는 1위입니다. 세 번째가 보육인데 이건 우리나라 출산율이 1.1에서 1.2 사이, 사실상 전 세계 꼴찌임을 감안하면 정말 중요합니다. - P65

스웨덴은 대학 진학률,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 후 1~2년 안에 대학에 가는 비율이 한국의 절반을 좀 넘는 수준인데, 성인 중에서 대학 교육을 이수한 사람의 비율은 한국하고 비슷해요. 좀 오래된 통계이긴 하지만 2006년 기준으로 스웨덴 30대(30~39세) 전체 인구 중 13%가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40대 이상 인구 중 3%가 대학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한참 뒤에 재교육 차원에서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대학을 꼭 고등학교를 나온 뒤에 바로 가야 할까요? 유럽 나라들처럼 직장 생활을 먼저 하다가, 혹은 전공을 바꾸고 싶을 때 대학을 다니면 안 되는 걸까요? - P66

자기 주도 학습은 네 단계로 되어 있어요. 학습의 목표 설정, 수단 선택, 실행, 평가. 이 네 가지를 모두 자기 주도적으로 하는 게 바로 자기 주도 학습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대부분 목표 설정을 자신이 하지 않았어요. ‘중간고사 100점’이라는 목표를 갖고 달리는 것은 자기 주도 학습이 아닙니다. 자기 관리 학습이지요.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엄마 관리 학습’보다는 훨씬 좋아요. 그리고 자기 관리 학습도 쉽지 않아요. 자기 관리 학습을 정의해 보자면 ‘자기 성찰을 통한 체계적 복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도 쉬운 건 아니죠. 하지만 자기 관리 학습은 ‘목표 설정’이 빠져 있다는 점에서 ‘자기 주도 학습’과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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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는 용기가 필요한 거다.

아버지의 나직한 말이 금간 허공에 새겨졌다. 나는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신을 속일 순 없는 거다.

그 말은 여전히 우스꽝스러웠다. ‘속인다’는 동사와 ‘자신을’이라는 목적어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속일 수 ‘없다’고 했겠지만, 감히 그 두 단어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나는 그에게 의심을 품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그 두 단어를 그렇게 자신의 내면에서 연결했고, 이음새조차도 깨끗이 봉해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말을 나에게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약한 구역질이 치밀어올랐으나, 그것이 유난히 따가운 가을 햇볕 때문인지, 졸음결에 먹은 점심 때문인지, 금간 안경알 너머로 보이는 부서진 세계 때문인지 나는 아무래도 확신할 수 없었다. - P67

외가의 선산까지 나는 영정을 들고 갔다. 햇빛이 좋은 날이었다. 외삼촌의 관 위로 흙삽이 부어졌을 때 아버지는 눈가에 번쩍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나는 마치 낯선 이물질을 보듯 그 눈물을 올려다보았다. 눈물 역시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임을 그때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놀랄 필요는 없었다. 이미 내 유년은 끝난 지 오래였다. - P74

그러나, (나를) 가리려 한다면 무엇 때문에 작품을 제작하는 것인가? 침묵하면 그만 아닌가. 손을 멈추고 있으면 그만 아닌가. 보여주면서도 집요하게 숨기고자 한다는 것은 어떤 모순인가. - P90

아무리 위대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이들도 언젠가는 병이나 죽음, 혹은 이익과 체면이 걸린 사소한 문제 앞에서 치명적인 약한 면들을 드러내고 만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어. 안쓰러워 보일 만큼 속물적이던 이들도 어느 순간에 이르러 자신만의 고귀한 면모를 드러내는 걸 목격하기도 했지. - P96

오랜 버릇대로, 나는 반사적으로 중립적인 대답을 했다.

"글쎄."

L의 눈의 광채가 실망의 빛과 함께 사그라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좀더 성의 있는 대답을 해야 했다. 나는 입술을 열고,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마 아니겠지."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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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깃들자 우리는 모두 밤새도록 빗장이 걸리는 옥사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에서 우리의 옥사로 돌아오는 일은 내겐 언제나 괴로운 일이었다. 옥사는 유지로 만든 양초가 희미하게 비추고 있고, 숨막힐 듯한 무거운 냄새로 가득 찬, 길고 좁고 후텁지근한 방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내가 이곳에서 10여 년을 살아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평상 위에 나의 몫이란 세 장의 판자뿐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나의 모든 공간이었다. 이 방 안의 평상에만도 30명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겨울에는 일찍 빗장을 지르는 까닭에 모두들 잠들 때까지 네 시간이나 기다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웅성거리는 시끄러운 소리와 웃음, 욕설, 쇠사슬소리, 악취와 그을음, 삭발한 머리들과 낙인 찍힌 얼굴들, 남루한 의복, 이 모든 것이 욕설과 혹평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렇다, 인간은 불멸이다!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존재이며, 나는 이것이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 P25

더욱이 여기에는 어떤 표면적인 겸손, 말하자면, 관등상의 어떤 조용한 달관 같은 것이 배어 있었다. <파멸한 민초인 우리들은.> 그들은 말했다. <자유의 세상에서 살 수 없으니, 이제 푸른 거리는 그만 하고, 줄이나 잘 서세>, <어머니와 아버지 말씀 듣지 않았으니, 이제 북가죽소리나 들으세>, <금실 잣기가 싫다더니, 이제 망치로 돌이나 깨야 하는구나>. 모두들 이따금씩 교훈이나 일상적인 속담과 경구의 형식을 빌어 이렇게 말하곤 했지만, 결코 심각한 생각에서 말하는 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은 단지 말뿐이었다. 과연 그들 중의 한 명이라도 자기의 죄를 마음속 깊이 새기는 사람이 있었을까? 만일 유형수가 아닌 어떤 다른 사람에게 죄수들의 범죄를 비난하도록 해본다면(비록 러시아적인 정신에서 죄수를 비난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죄수들의 욕설은 끝이 없을 것이다. 그들 모두는 얼마나 욕설의 명수들인지! - P31

이미 말했지만, 몇 해가 흐르는 동안에 나는 이러한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조그마한 참회의 징후나, 자신의 죄에 대한 고통스러운 생각들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오히려 그들의 대부분이 마음속으로 자기가 완전히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사실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허세, 악질적인 예들, 대담성, 잘못된 수치감이 그 원인이긴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누가 이 파멸해 가는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을 헤아려 그들에게 숨겨져 있는 모든 세상의 비밀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몇 해 동안에 누군가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들 내부의 고독과 고통을 증명할 수 있는 어떤 특징을 포착하고 이해하고 눈치챘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것은 결코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렇다, 범죄라는 것은 이미 준비되고 주어진 관점에서 본다면, 이해할 수가 없을 듯싶다. 범죄의 철학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좀 어려운 것이다. 물론, 감옥이나 강제 노동과 같은 제도가 범죄자를 교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단지 범죄자를 벌하고, 평온한 사회를 향후에 있을 죄인의 음모로부터 안전하게 할 뿐이다. 감옥의 죄수에게 가장 힘든 강제 노동은 오히려 증오와 금지된 향락에 대한 욕망과 무서운 경솔함을 부추기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리고 단호히 확신컨대, 그 유명한 독방 제도도 단지 위선적이고 기만적이며 표면적인 목적만을 달성할 뿐이다. 이 제도는 사람에게서 생명의 즙을 짜내고 영혼을 소진케 하여 영혼을 나약하고 놀라게 만든 다음, 반쯤 미치광이가 된 바싹 마른 미라를 교화와 참회의 본보기로 보여 주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사회에 대항했던 죄수는 사회를 증오하고, 거의 언제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며, 잘못한 것은 사회라고 여긴다. 더욱이 그는 이미 사회로부터 형벌을 받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자신은 거의 정화되었고 빚을 갚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마침내 죄수가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판단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렇듯 모든 가능한 관점에도 불구하고 사람이면 누구나, 어느 곳에서나 항상 모든 가능한 법률에 따라, 세상의 태초에서부터 두말할 것도 없는 범죄로 간주되며, 인간이 인간으로 남아 있을 그때까지도 그렇게 간주될 수 있는 범죄가 존재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것이다. 가장 무섭고 가장 자연에 거스른 행위와 가장 터무니없는 살인에 관한 이야기를, 어린애처럼 천진한 웃음을 지으며 참지 못해 말하는 것을 들었던 곳은 감옥뿐이다. - P35

돈과 담배는 괴혈병과 그 밖의 다른 질병으로부터 죄수들을 구해주었다. 일도 그들을 범죄로부터 구해 주었다. 일이 없었다면, 죄수들은 유리병 속의 거미처럼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었을지도 모른다. - P39

나는 감옥에서, 몸집은 아주 거대하지만 어떻게 그가 감옥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얌전하고, 조용하며, 온화한 한 죄수를 알고 있었다. 그는 감옥에 들어와 사는 동안 내내 한번도 남과 다툰 적이 없을 만큼 악의가 없고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서부의 국경에서 밀수를 하다가 잡혀 왔는데, 여기서도 참지를 못하고 술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그는 몇 차례나 징벌을 당했고, 그가 또 얼마나 매를 무서워했는지! 사실 술을 몰래 들여오는 일 자체는 그에게 하찮은 수입을 올려 줄 따름이었고, 이를 통해 부자가 되는 것은 오로지 극단 주인일 뿐이었다. 이 기인은 예술을 위한 예술을 사랑했던 것이다. 그는 아낙네들처럼 울기를 잘 했고, 벌을 받고 난 뒤에는 수차례나 밀매를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또 맹세했다. 용기를 내서 그는 한 달 내내 자기를 이겨 내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자제를 하지 못하고 마는 것이었다……. 이 사람 덕분에 감옥에서도 술은 궁핍하지 않았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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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호흡을 하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를 유지하려 애썼다.
"좋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지내게 됐으니까, 서로에 대해 좀 더 알아보는 게 어떨까요."
그때 그 얼굴에 떠오른 표정에 어쩐지 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는 똑바로 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고 턱이 약한 경련으로 씰룩거렸다.
"그냥…… 다른 사람과 같이 보내기에는 굉장히 긴 시간이라서요. 하루 종일이니까." 내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혹시, 하시고 싶은 일이나, 좋아하시는 걸 좀 말씀해주시면 제가……."
이번엔 정적이 고통스러웠다. 찔끔찔끔 기어드는 내 목소리가 귓전에 들리고 두 손을 어디 둬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트리나의, 그 애 특유의 자신만만한 태도는 공중으로 휘발되어 사라져버렸다. - P57

처음 2주 동안 나는 월 트레이너를 아주 가까이서 찬찬히 살펴보았다. 옛날의 자신과 한 군데도 닮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작정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밝은 갈색 머리카락은 엉망으로 흐트러진 장발로 방치하고 수염도 턱을 다 덮을 정도로 무성하게 자라도록 내버려두었다. 육체적 피로, 아니면 꾸준한 심신의 불편(네이선은 그 몸이 편할 날은 거의 없다고 했다) 탓인지 회색 눈가에는 잔주름이 져 있었다. 눈에는 세상에서 늘 몇 걸음 떨어져 살아가는 사람 특유의 공허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가끔 그게 방어기제 때문일까 생각했다. 그가 삶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 일을 겪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고 믿는 길밖에 없지 않을까 하고. - P64

발소리가 들리기에 나는 마치 방금 들어온 것처럼 땔감 바구니 위로 허리를 굽혔다. 복도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알리샤가 내 앞에 나타났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눈가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화장실 좀 쓸 수 있을까요?" 목 멘 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나는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말없이 화장실이 있는 쪽을 가리켜 보였다. 그녀가 내 얼굴을 매섭게 노려보는 걸로 봐서 아마 내 감정이 얼굴에다 드러난 모양이다. 감정을 숨기는 데는 항상 젬병이었다.
"그쪽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요."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난 노력했어요. 정말로 노력했다고요. 몇 달 동안이나. 하지만 그가 나를 밀쳐냈단 말이에요." 턱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격분한 얼굴이었다. "그이는 진심으로 내가 여기 있는 걸 싫어했어요. 아주 명확하게 의사를 표명했다고요."
그녀는 내가 무슨 말을 하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사실 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에요." 한참 있다가 내가 말했다.
우리 둘 다 서로를 마주보고 서 있었다.
"이봐요, 아무리 도와주고 싶어도 도움받기를 싫어하면 어쩔 수 없잖아요." 그리고 그녀는 가버렸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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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짝짓기가 일단 끝나고 나면 커플이 유지될 만한 명백한 필연성은 없다. 이는 확실히 대부분의 포유동물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동물행동학 연구가 전체적으로 보여주듯이 포유동물은 대부분 짝짓기 후에 재빨리 갈라진다. 대체로 함께 모여 살아가는 영장류의 경우에도 이성애가 사회조직의 밑바탕에 어떤 형태로건 실재한다고 보는 것은 당최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생물학적 생식은 이성애적이지만, 사회생활은 지배, 경쟁, 협력, 그리고 제법 엄밀한 기능성에 따라 훨씬 더 복잡한 방식으로 맺어지는 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다. 대개의 경우 이성애 커플은 집단의 조직을 위한 기본 세포가 아니고 새끼의 교육에 필요하지도 않다. 따라서 이성애는 동물사회를 일반적으로 지배하는 원리가 아님이 분명하다. 아마 발정기 동안 개체들을 하나의 성에서 다른 성 쪽으로 몰아가는 일종의 ‘본능‘이 있을 텐데, 물론 이 행동은 이성애적이다. 그러나 사실 이성애를 토대로 사회를 건설한 동물은 정확히 인간밖에 없다.

뵈브 당통은 우정을 친구보다 훨씬 더 존중한다. 이 점에서 그는 대중의 감탄을 받을 만하다. 그는 복음서를 걸고 자신의 마지막 날까지 기를 사랑하겠다고 맹세했다. 이 맹세는 무조건적이다. 달리 말하자면, 우정은 친구를 초월한다.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는 것과는 반대로, 사실은 남색이 언제나 교회가 규정한 주요 범죄이지는 않았다. 12세기까지 참회의 규정에는 남색이 그다지 언급되지 않았거나, 당시 이 행위에 대해 정해진 형벌은 매우 가벼운 것이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었고, 남색은 마땅히 화형에 처해야 할 죄악 중의 죄악은 아닐망정 주요한 침해로 간주되었다.

첫째, 서양에서 이성애 문화와 심지어 이성애에 대한 예찬은 12세기에 출현하는데, 이는 뒤비와 르고프 그리고 몇몇 다른 이가 막연하게 예감한 바이지만, 그들에게 이성애는 필시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은 이성애를 문제화하지 않았다.
둘째, 이성애 문화는 동성사회성의 문화를 대체하고, 다른 한편으로 기사들의 성적 관습이 무엇이건 그들의 수많은 저항을 야기하는데, 이 저항은 여러 세기가 지난 후에도 여전히 괄목할 만한 것으로 실재하게 된다.
셋째, 이 새로운 이성애 문화에서는 두 가지 현상, 즉 한편으로는 여성의 지위 향상과 다른 한편으로는 남색에 대한 정죄가 병존하면서 상관관계를 맺기 마련인데, 전자는 허울일 뿐이고 후자는 종교에서나 세속에서나 갈수록 더 비난받는다는 점에서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현실이 된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16세기에 궁정풍의 문학은 빈번히 패러디되었다. 이 경향의 대표적인 예는 <돈키호테>이다. 사랑의 책들로 인해 멍해지고 궁정풍의 몽상에 절은 이 늙은이는 상상의 애인, 매우 유명한 토보소의 둘치네아를 찾아 떠난다. 누구라도 이보다 이성애 문화에 더 충실한 주인공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야기의 활력은 기본적으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구성하는 남성 커플로부터 생겨나고, 많은 점에서 그들은 팡타그뤼엘과 파뉘르주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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