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6 다음으로 우리들이 불균형이라고 이름 붙인 문명 속의 분업 현상이 비창조적 다수자의 생활에 미치는 효과를 고찰할 일이 남았다. 은퇴로부터 시작해서 또 다시 한패의 대중과 섞이는 창조자를 기다리고 있는 사회 문제는, 창조자가 평균 수준의 많은 사람들을 자신이 도달한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인가의 문제이지만, 창조자는 이 일에 착수하자마자, 일반 대중의 대부분이 감정·의지·정신·체력의 전부를 들여 그런 높은 수준에 서서 생활할 수가 없다는 현실에 부닥친다. 그런 경우 창조자는 자칫하면 지름길을 택하게 된다. 전인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단념하고, 어느 것이든 하나의 능력만을 그 높은 수준까지 올려놓는 수단에 호소할 마음을 잃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인간에게 불균형한 발달을 강요하게 된다. 좀 더 쉽게 그런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기계 기술면에서인데, 그것은 모든 문화 요소 가운데서 기계적 재능만큼은 다른 것에서 분리시키기 쉽고, 또 전달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 P375
377-8 헬라스 사회는 ‘바나우시아‘의 위험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는데, 다른 사회의 제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유컨대 유대교의 안식일과 그리스도교의 일요일은, 적어도 7일 중 하루만은 그 창조주를 기억에 떠올리고 완전한 인간 영혼으로서의 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그 사회적 기능이다. 6일간 생계를 위한 직업에 전적으로 종사하고, 마차를 끄는 말처럼 옆도 보지 않고 계속 일해 온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휴식일이다. 또 영국에서는 산업주의의 출현과 함께 조직적인 경기가 시작되었고, 각종 스포츠가 왕성해졌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런 스포츠는 산업주의하의 분업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전문화에 대항한 의식적인 노력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스포츠를 통해 생활을 산업주의에 합치하도록 조절하려는 이 기획은, 산업주의의 정신과 리듬이 스포츠 그 자체에 침입해서 오히려 해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반쯤은 실패로 돌아갔다. 오늘날의 서유럽사회에는 공업 기술보다도 한층 더 전문화되고 엄청난 보수를 받는 직업적 운동가가 있어서, 놀랄 만한 극치의 ‘바나우시아‘적 표본을 제공한다. 이 연구의 저자가 방문한 일이 있는 아메리카의 두 대학 구내에서 본 2개의 축구 경기장을 기억한다. 하나는 주야 겸용으로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축구 선수를 길러 낼 수 있도록 조명 장치가 비치되어 있었다. 또 다른 하나에는 날씨에 관계없이 연습할 수 있도록 지붕이 있었다. 그것은 세계에서도 가장 큰 지붕으로 그것을 만드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든 모양이다. 주위에는 기진했거나 부상당한 전사를 수용하는 침대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이 2개의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인원은 전 학생 중 불과 얼마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또, 학생들은 시합에 출전하기 전에 그들의 형 뻘이 되는 청년들이 1918년에 참호로 들어갈 때에 느낀 것과 큰 차이 없는 불안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이들 앵글로 색슨의 축구는 결코 유희가 아니었던 것이다. - P377
382 창조성의 응보는 두 가지 다른 방법으로 사회적 쇠퇴를 야기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전의 도전에 대한 응전에 성공한 자를 제외함으로써 다음 도전부터는 창조자 자격을 갖춘 인간의 수를 감소시킨다. 또 한편으로는 이처럼 이전 세대에 창조자의 역할을 한 사람들이 창조자의 자격을 잃음으로써 이전의 창조자는 새로운 도전에 현재 응전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반대 운동의 선두에 서게 된다. 더구나, 이들 지난날의 창조자는 이전에 창조력을 발휘했었다는 이유 때문에, 그들과 새로운 창조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 속해 있는 사회의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긴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이미 그들은 사회를 전진시키는 일에 쓸모가 없다. 그들은 ‘노 젓는 손을 쉬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노 젓는 손을 쉬는‘ 태도는 창조성의 응보에 굴복하는 수동적인 형식이라고 해도 좋으나, 이 심적 상태가 소극적이라고 해서 도덕적으로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에 대해 멍청하게 속수무책으로 수동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과거에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이며, 과거에 심취하는 이러한 태도는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상 숭배는 창조자가 아니라 피창조물에 대한 숭배로서, 지적·도덕적으로 맹목적인 숭배라고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382
390-1 새로운 땅이 풍작을 가져오는 일이 많은 데에는 적극적인 이유 외에 소극적인 이유가 있다. 즉 새로운 땅은 이미 유해무익한 것이 된 씻을 수 없는 전통이나 지난 기억의 악몽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회적 현상, 앞서 연구에서 사회적 쇠퇴와 해체의 현저한 징후로 지적된 바 있는 현상ㅡ창조적 소수자가 지배적 소수자로 타락하는 경향ㅡ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 확실히 창조적 소수자가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타락한다고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창조자는 창조성이 있다는 바로 그 사실에 의해 이 방향으로 이끌리기 쉬운 것이다. 창조적 능력이 처음에 발동될 때에는 하나의 도전을 훌륭히 극복하는 응전이 나타나지만, 다음에는 재능을 모두 발휘한 이 인간에게 감당할 수 없는 더 큰 새로운 도전이 나타난다. - P390
399-400 사실 왕이 신으로서 숭배를 받으려면, 교육받은 학자 계급(비서진)의 존재가 필요조건이 된다. 그러한 뒷받침이 없으면 왕은 대좌 위에 조상인 양 앉아 있을 수 없다. 이처럼 이집트 사회의 학자들은 국왕의 배후 세력이며, 한 술 더 떠서 시간적으로는 국왕보다 앞선 시대까지 떠맡아야 하는 것이었다. 학자들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으며, 또 자신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이를 이용하며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였다"(<마태> 23:4) 학자들이 땀 흘리며 일하는 일반 국민들의 운명에서 면제되는 특권을 받고 있던 일이, 이집트 사회의 모든 시대를 통해 관료 계급이 자기를 예찬하는 주제가 되었다. 이짐트 사회의 동란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1000년 후에 ‘신왕국‘의 학생이 습자 연습용으로 옮겨 쓴 몇 종류의 사본 형태로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는 「두아우프의 교훈」이라는 책 속에서도 싫증날 정도로 그 점이 강조되어 있다. 이 책은 ‘케티의 아들 두아우프가, 그의 아들 페피가 대관 자제들 사이에 끼어 서기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유학 길에 오를 때 쓴 글‘로서, 이 교훈 속에서 야심적인 아버지가 청운의 뜻을 품고 한 훈계의 요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나는 매 맞는 자를 보았다. 맞는 자를. 너는 오로지 책에만 마음을 쏟기 바란다. 나는 강제 노동에서 면제된 자를 보았다. 봐라, 책보다 뛰어난 것은 없다. ······글을 쓰는 직업은 흙을 파는 것보다 힘이 든다. ······ 석공은 모든 종류의 단단한 돌에서 일을 찾아야 한다. 일을 끝마치고 나면 팔은 힘이 빠지고 녹초가 되어 버린다. ······ 들일을 하는······ 자, 그도 품삯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피로해진다. ······ 작업장의 직공은 어떤 여자보다도 불행하다. 그의 두 다리는 배에 붙어 숨도 쉴 수 없다. ······ 또 어부의 생활에 대해 말하마. 그는 악어가 득실거리는 강물 위에서 일하고 있지 않느냐? ······봐라, 학자[라는 직업]를 제외하고는 지휘자 없는 직업은 없으니, 학자야말로 지휘자인 것이다······" 이집트 사회의 ‘학자 정치‘와 비슷한 것으로서, 동아시아 세계에도 선행 중국 사회의 말기에 이어받은 만다린(중국의 관리계급) 계급이 존재한다. 유학자들은 붓을 잡는 일 이외의 모든 일에 손을 사용할 수 없도록 손톱을 길게 기름으로써, 노역에 괴로워하는 몇 백만이라는 민중의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 손가락 하나 움직이려 들지 않는 냉혹한 태도를 과시했다. 그래서 동아시아 사회 역사의 모든 변천을 거치며, 이집트 사회의 같은 계층과 마찬가지로 끈기 있게 그 압제적인 지위를 유지해 왔다. 서유럽 문명의 충격도 그들을 그 지위에서 물러나게 할 수는 없었고, 유교 고전의 시험은 없지만 시카고대학이나 런던대학 정경학부의 졸업증서를 자랑하며 옛날 그대로 효과적으로 농민들을 위압하고 있다.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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