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1-2 신화를 만들어 낸 고대인들도 잘 알고 있었듯이 사람은 대지의 자녀인 동시에 하늘의 자녀이기도 하다. 지구에서 살아오는 동안 인류는 못된 진화적 습성을 많이 길러왔다. 호전성, 그릇된 관습,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이방인에 대한 이유 없는 적개심같이 오랫동안 유전돼 온 못된 요소들은 인류의 생존 자체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남을 측은히 여길 줄 아는 좋은 천성도 갖고 있다. 우리는 자식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자식의 자식도 아낀다. 역사에서 무언가를 배우려 노력하고 지적인 것을 향한 불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다. 이것들은 인류에게 영원한 생존과 번성을 확실히 약속할 도구요 방편이 될 것이다. 못된 습성과 좋은 천성 중에서 어느 쪽이 우리 마음을 지배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특히 미래를 보는 우리의 눈이 지구에 고착돼 있다거나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마음이 지구의 어느 한 지역에만 묶여 있다면 결국 저 못된 습성이 사랑의 마음과 이성의 예지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광막한 코스모스의 바다 속에 감춰진 새로운 세상과 가능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외계 문명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우리는 아직 갖고 있지 않다. 우리와 같은 문명의 운명은 결국 화해할 줄 모르는 증오심 때문에 자기 파괴의 몰락으로 치닫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 하지만 우주에서 내려다본 지구에는 국경선이 없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쥐면 부서질 것만 같은 창백한 푸른 점일 뿐이다. 지구는 극단적 형태의 민족 우월주의, 우스꽝스러운 종교적 광신, 맹목적이고 유치한 국가주의 등이 발붙일 곳이 결코 아니다. 별들의 요새와 보루에서 내려다본 지구는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작디 작은 푸른 반점일 뿐이다. 이렇게 여행은 시야를 활짝 열어 준다. - P631

632-3 우주에는 생명이 전혀 서식한 적이 없는 세상이 있다. 우주적 재앙의 표적이 되어 새까맣게 타 버린 불모의 세상들이 우주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우리는 행운아이다.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고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문명의 미래와 하나의 종으로서 인류의 생존 문제가 우리 두 손에 달려 있다. 우리가 지구의 입장을 대변해 주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그렇게 해 주겠는가? 인류의 생존 문제를 우리 자신이 걱정하지 않는다면 우리 대신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단 말인가? - P632

633-4 인류는 현재 위대한 모험을 앞두고 있다. 이 모험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우리가 지금 감행하려는 모험은 바다에서 태어난 생명이 뭍으로 진출한 사건이나, 유인원이 나무 위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땅으로 내려오기로 한 결정 등에 버금갈 만한 위대하고 중요한 사건으로 인류사에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지구의 온갖 족쇄에서 벗어나려고 끙끙거리고 있다. 인류는 이미 지구의 속박에서 일시적 해방을 맛보기도 했다. 우리는 자신의 사고방식에 내재된 원시성을 잘 길들이며 우리의 원시적 두뇌가 내리는 일방적 지시와 대결함으로써 지구가 사람에게 걸어 놓은 정신적 족쇄에서 탈출하려 하고 있다. 또 인류는 다른 행성들로의 여행을 감행하는 한편, 외계에서 올지도 모르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육체적 족쇄로부터 탈출을 꾀하고 있다. 정신적 해방과 육체적 탈출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전자 없이 후자의 실현이 있을 수 없고 후자의 가능성을 전제하지 않은 전자의 성공 또한 상상할 수 없다. 전자와 후자는 서로에게 필요조건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전쟁 수행에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인간은 상호 불신이란 최면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하나의 종으로서의 인류에 대한 염려 같은 것은 아예 할 줄 모른다. 상호 불신의 망령은 우리로 하여금 지구도 하나의 행성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케 하여, 모든 국가를 죽음을 향해 서둘러 행진케 할 뿐이다. 우리가 지구에서 저지르고 있는 일들은 너무나 무서운 결과를 불러올 짓거리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초래될 문제의 심각성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무슨 일을 하든 심사숙고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 일을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으며 거기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핵전쟁을 두려워한다. 그렇지만 핵기술을 보유한 국가들은 단 한 나라도 빠짐없이 핵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누구나 핵전쟁이 미친 짓이라고 알고 있지만 국가는 국가대로 핵전쟁의 필요성에 대한 그럴듯한 구실을 갖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음울한 인과의 고리를 보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 독일인들이 핵폭탄을 만들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독일보다 먼저 만들어야 했다. 미국이 갖고 있으니 (구)소련도 핵폭탄을 가져야만 했고, 그 다음에는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의 나라들이 가져야 했다. 아마 20세기가 끝날 즈음에는 수많은 국가가 핵폭탄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핵폭탄은 만들기 쉽다. 핵분열 물질은 원자로에서 쉽게 훔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핵폭탄 제조 기술은 거의 가내 공업의 범주에 들었다. - P633

634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블록 버스터라고 불리는 초대형 고성능 폭탄이 위력을 발휘했다. TNT 폭약 20톤으로 만들어진 초대형 고성능 폭탄 하나가 대도시의 구역block 하나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을 가졌다. - P634

635-6 핵폭탄이 폭발하면서 생기는 충격파는 투하 지점에서 수 킬로미터 밖에 있는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한순간에 뭉개 버린다. 핵폭발에 동반되는 불기둥, 감마선 그리고 중성자에 노출되는 즉시 사람의 육체는 내부 속속들이 아주 철저하게 구워진다. 미국은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을 끝낼 수 있었다. 이 핵 공격에서 살아남은 한 여학생이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술해 놓았다.

지옥의 밑바닥 같은 암흑 속에서 엄마를 부르는 학우들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교각 옆에 파놓은 큰 물통 안에는 온몸이 빨갛게 구워진 갓난아기를 한 어머니가 자신의 머리 위로 높이 쳐들고 힘겹게 흐느끼고 있었다. 또 다른 어머니는 화상을 입은 자신의 젖을 아이 입에 물리면서 서럽게 소리 내어 울었다. 물통 안에 있는 학생들은 머리만을 물 위로 내민 채, 두 손을 애원하듯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며 부모를 찾아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옆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거기에는 성한 이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짝 그슬려 곱슬곱슬 뒤말린 흰 머리카락은 온통 재로 뒤덮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 세상에 사는 존재가 아니었다. - P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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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제 다른 분야의 아이디어를 다룰 때 가져야 할 네 번째 태도를 말할 차례가 됐다. 그것은 ‘무엇이 가능한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설명이 좀 더 그럴듯한지‘, ‘무엇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비행접시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점을 논박할 수는 없다. 그런 주장을 반복해봤자 영양가 있는 논쟁이 되기 어렵다. 화성인들의 침략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 아닌지, 지금 추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정말 비행접시인지, 타당성이 있긴 한 건지, 정말 그럴듯한 설명인지 판단을 해야 한다. 그런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그냥 가능성이 있는지 생각할 때보다 더 많은 실제 데이터를 기초로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평범한 개인은 그저 가능성이 있기만 한 사건들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많은 사건들 중에서 굉장히 많은 수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인식하지 못한다. 가능한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일들은 너무나 다양하고 많아서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대부분의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것은 물리 법칙의 일반적인 원리이기도 하다. 누가 무엇을 생각해 내었든, 그건 대개 틀린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오랜 물리학의 역사에서 올바른 이론은 겨우 5개에서 10개 정도에 불과하며, 그것이 진정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다. 제기된 모든 이론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것이 사실일 가능성은 언제나 매우 낮다. 나중에 가서 알게 되겠지만. - P108

126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세상은 아주 흥미로울 것이다. 사람들이 비행기에 타게 될 때 보험에 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보험 회사 직원들은 점성술의 법칙에 따라 사람들의 보험료를 바꾸는 데 아주 관심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점성술사들이 가면 안 좋다는 날에 간 사람들이 더 잘못될 가능성이 높은지 테스트해 본 적이 없다. 오늘이 장사하기에 좋은 날인지 나쁜 날인지 하는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그럼 도대체 뭐를 해 본 거지? - P126

127 그렇다. 그래도 어쩌면 점성술이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옳지 않음을 지적하는 정보는 정말 많다. 사물들이 어떻게 작동하고, 사람들은 어떤 존재이고, 세상은 또 무엇인지, 별들은 무엇이고, 여러분이 쳐다보고 있는 행성들은 무엇인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회전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우리는 아주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다음 이천 년 동안 그 별들이 어디에 있을지 하늘을 쳐다보지 않고도 정확히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점성술사들의 말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알수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거 믿지 말자! 그게 옳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순전히 말도 안 되는 넌센스nonsense일 뿐이다. 그걸 믿는 것이 정당하던 유일한 시기는 별들과 이 세상과 나머지 것들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뿐이었다. 점성술이 사실이라면 진짜로 존재하는 다른 현상들을 감안했을 때 정말 놀라운 일일 것이며 실질적인 실험, 실제 시험을 통해 누군가가 이를 증명하고, 이를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을 택해서 시험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 말을 들어 봤자 배울게 하나도 없다. - P127

127-8 덧붙이자면, 과학의 초창기에는 이와 비슷한 실험들을 실제로 했었다. 꽤 흥미로운 일이었는데, 마치 이런 실험을 통해서 산소를 발견했던 것처럼 선교사들은 배가 난파됐을 때 바다에 빠져 죽을 가능성이 더 낮은지 측정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바보같이 들리겠지만 – 이를 시험하는 데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보같이 들리는 것일 게다 – 선교사들처럼 착하고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들이 탄 배가 난파될 가능성이 더 낮은지, 그리고 선교를 하러 먼 나라로 떠나갈 때 그들이 탄 난파선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물에 빠져 죽을 가능성이 더 낮은지 측정해 보았던 것이다. 결과는 ‘선교사라고 해서 크게 차이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많은 사람들이 기도로 난파 확률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게 됐다. - P127

129 나는 신앙 요법이 진실인지 알고 싶다. 이를 위해 면밀히 조사를 해 봐야 한다. 모든 사람은 알 권리가 있다. 그리스도의 치료 능력을 믿음으로써 상처를 입게 되는 사람이 더 많은지 도움을 얻게 되는 사람이 더 많은지, 혹은 신앙 요법으로 인해 치료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은지 상처를 입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지 따져봐야 한다. 어느 쪽이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조사를 해 봐야 답을 알 수 있다. 조사 없이 사람들이 믿도록 내버려 두면 위험하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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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6 다음으로 우리들이 불균형이라고 이름 붙인 문명 속의 분업 현상이 비창조적 다수자의 생활에 미치는 효과를 고찰할 일이 남았다.
은퇴로부터 시작해서 또 다시 한패의 대중과 섞이는 창조자를 기다리고 있는 사회 문제는, 창조자가 평균 수준의 많은 사람들을 자신이 도달한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인가의 문제이지만, 창조자는 이 일에 착수하자마자, 일반 대중의 대부분이 감정·의지·정신·체력의 전부를 들여 그런 높은 수준에 서서 생활할 수가 없다는 현실에 부닥친다. 그런 경우 창조자는 자칫하면 지름길을 택하게 된다. 전인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단념하고, 어느 것이든 하나의 능력만을 그 높은 수준까지 올려놓는 수단에 호소할 마음을 잃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인간에게 불균형한 발달을 강요하게 된다. 좀 더 쉽게 그런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기계 기술면에서인데, 그것은 모든 문화 요소 가운데서 기계적 재능만큼은 다른 것에서 분리시키기 쉽고, 또 전달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 P375

377-8 헬라스 사회는 ‘바나우시아‘의 위험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는데, 다른 사회의 제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유컨대 유대교의 안식일과 그리스도교의 일요일은, 적어도 7일 중 하루만은 그 창조주를 기억에 떠올리고 완전한 인간 영혼으로서의 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그 사회적 기능이다. 6일간 생계를 위한 직업에 전적으로 종사하고, 마차를 끄는 말처럼 옆도 보지 않고 계속 일해 온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휴식일이다. 또 영국에서는 산업주의의 출현과 함께 조직적인 경기가 시작되었고, 각종 스포츠가 왕성해졌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런 스포츠는 산업주의하의 분업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전문화에 대항한 의식적인 노력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스포츠를 통해 생활을 산업주의에 합치하도록 조절하려는 이 기획은, 산업주의의 정신과 리듬이 스포츠 그 자체에 침입해서 오히려 해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반쯤은 실패로 돌아갔다. 오늘날의 서유럽사회에는 공업 기술보다도 한층 더 전문화되고 엄청난 보수를 받는 직업적 운동가가 있어서, 놀랄 만한 극치의 ‘바나우시아‘적 표본을 제공한다. 이 연구의 저자가 방문한 일이 있는 아메리카의 두 대학 구내에서 본 2개의 축구 경기장을 기억한다. 하나는 주야 겸용으로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축구 선수를 길러 낼 수 있도록 조명 장치가 비치되어 있었다. 또 다른 하나에는 날씨에 관계없이 연습할 수 있도록 지붕이 있었다. 그것은 세계에서도 가장 큰 지붕으로 그것을 만드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든 모양이다. 주위에는 기진했거나 부상당한 전사를 수용하는 침대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이 2개의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인원은 전 학생 중 불과 얼마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또, 학생들은 시합에 출전하기 전에 그들의 형 뻘이 되는 청년들이 1918년에 참호로 들어갈 때에 느낀 것과 큰 차이 없는 불안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이들 앵글로 색슨의 축구는 결코 유희가 아니었던 것이다. - P377

382
창조성의 응보는 두 가지 다른 방법으로 사회적 쇠퇴를 야기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전의 도전에 대한 응전에 성공한 자를 제외함으로써 다음 도전부터는 창조자 자격을 갖춘 인간의 수를 감소시킨다. 또 한편으로는 이처럼 이전 세대에 창조자의 역할을 한 사람들이 창조자의 자격을 잃음으로써 이전의 창조자는 새로운 도전에 현재 응전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반대 운동의 선두에 서게 된다.
더구나, 이들 지난날의 창조자는 이전에 창조력을 발휘했었다는 이유 때문에, 그들과 새로운 창조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 속해 있는 사회의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긴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이미 그들은 사회를 전진시키는 일에 쓸모가 없다. 그들은 ‘노 젓는 손을 쉬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노 젓는 손을 쉬는‘ 태도는 창조성의 응보에 굴복하는 수동적인 형식이라고 해도 좋으나, 이 심적 상태가 소극적이라고 해서 도덕적으로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에 대해 멍청하게 속수무책으로 수동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과거에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이며, 과거에 심취하는 이러한 태도는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상 숭배는 창조자가 아니라 피창조물에 대한 숭배로서, 지적·도덕적으로 맹목적인 숭배라고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382

390-1
새로운 땅이 풍작을 가져오는 일이 많은 데에는 적극적인 이유 외에 소극적인 이유가 있다. 즉 새로운 땅은 이미 유해무익한 것이 된 씻을 수 없는 전통이나 지난 기억의 악몽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회적 현상, 앞서 연구에서 사회적 쇠퇴와 해체의 현저한 징후로 지적된 바 있는 현상ㅡ창조적 소수자가 지배적 소수자로 타락하는 경향ㅡ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 확실히 창조적 소수자가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타락한다고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창조자는 창조성이 있다는 바로 그 사실에 의해 이 방향으로 이끌리기 쉬운 것이다. 창조적 능력이 처음에 발동될 때에는 하나의 도전을 훌륭히 극복하는 응전이 나타나지만, 다음에는 재능을 모두 발휘한 이 인간에게 감당할 수 없는 더 큰 새로운 도전이 나타난다. - P390

399-400
사실 왕이 신으로서 숭배를 받으려면, 교육받은 학자 계급(비서진)의 존재가 필요조건이 된다. 그러한 뒷받침이 없으면 왕은 대좌 위에 조상인 양 앉아 있을 수 없다. 이처럼 이집트 사회의 학자들은 국왕의 배후 세력이며, 한 술 더 떠서 시간적으로는 국왕보다 앞선 시대까지 떠맡아야 하는 것이었다. 학자들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으며, 또 자신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이를 이용하며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였다"(<마태> 23:4) 학자들이 땀 흘리며 일하는 일반 국민들의 운명에서 면제되는 특권을 받고 있던 일이, 이집트 사회의 모든 시대를 통해 관료 계급이 자기를 예찬하는 주제가 되었다. 이짐트 사회의 동란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1000년 후에 ‘신왕국‘의 학생이 습자 연습용으로 옮겨 쓴 몇 종류의 사본 형태로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는 「두아우프의 교훈」이라는 책 속에서도 싫증날 정도로 그 점이 강조되어 있다. 이 책은 ‘케티의 아들 두아우프가, 그의 아들 페피가 대관 자제들 사이에 끼어 서기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유학 길에 오를 때 쓴 글‘로서, 이 교훈 속에서 야심적인 아버지가 청운의 뜻을 품고 한 훈계의 요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나는 매 맞는 자를 보았다. 맞는 자를. 너는 오로지 책에만 마음을 쏟기 바란다. 나는 강제 노동에서 면제된 자를 보았다. 봐라, 책보다 뛰어난 것은 없다. ······글을 쓰는 직업은 흙을 파는 것보다 힘이 든다. ······ 석공은 모든 종류의 단단한 돌에서 일을 찾아야 한다. 일을 끝마치고 나면 팔은 힘이 빠지고 녹초가 되어 버린다. ······ 들일을 하는······ 자, 그도 품삯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피로해진다. ······ 작업장의 직공은 어떤 여자보다도 불행하다. 그의 두 다리는 배에 붙어 숨도 쉴 수 없다. ······ 또 어부의 생활에 대해 말하마. 그는 악어가 득실거리는 강물 위에서 일하고 있지 않느냐? ······봐라, 학자[라는 직업]를 제외하고는 지휘자 없는 직업은 없으니, 학자야말로 지휘자인 것이다······"
이집트 사회의 ‘학자 정치‘와 비슷한 것으로서, 동아시아 세계에도 선행 중국 사회의 말기에 이어받은 만다린(중국의 관리계급) 계급이 존재한다. 유학자들은 붓을 잡는 일 이외의 모든 일에 손을 사용할 수 없도록 손톱을 길게 기름으로써, 노역에 괴로워하는 몇 백만이라는 민중의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 손가락 하나 움직이려 들지 않는 냉혹한 태도를 과시했다. 그래서 동아시아 사회 역사의 모든 변천을 거치며, 이집트 사회의 같은 계층과 마찬가지로 끈기 있게 그 압제적인 지위를 유지해 왔다. 서유럽 문명의 충격도 그들을 그 지위에서 물러나게 할 수는 없었고, 유교 고전의 시험은 없지만 시카고대학이나 런던대학 정경학부의 졸업증서를 자랑하며 옛날 그대로 효과적으로 농민들을 위압하고 있다.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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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 반대로 그들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유익한 정보를 담고 있다면 그 메시지가 인류에게 주는 효과는 참으로 놀랄 만할 것일 게다. 그들의 메시지는 과학과 기술, 미술과 음악, 정치와 윤리 그리고 철학과 종교와 관련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어 인간의 통찰력을 크게 키워 줄 것이다. 그들의 메시지는 우리를 우리의 고질적 편협성에서 근본적으로 탈피하게 할 수 있는 결정적 정보를 담고 있을 것이다. 아, 그 이외에도 얼마나 많은 새로운 보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 P621

622 그러나 정말로 어려운 문제는 해독이 아니라 외계 생명을 탐색하는 연구에 예산을 배정해 달라고 미국 의회나 (구)소련의 중앙 위원회를 설득하는 일이다. 문명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과학자들이 비과학자들을 설득하여 외계 생명의 탐색 사업에 필요한 재정 지원을 얻어 내기가 불가능한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사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내부에만 투자하고, 통념이 사회를 철저하게 지배하여 별 세계의 탐색 같은 것은 아예 생각도 할 수도 없는 사회이다. 다른 하나는 외계 문명과 접촉해 보고 싶다는 희망을 꿈꿀 수 있으며, 또 시민 전체가 위대한 이 꿈을 공유하여 외계 문명과의 만남을 위한 대규모의 연구가 실행될 수 있는 사회이다. - P622

622-3 외계 문명의 탐색이야말로 실패해도 성공하는 사업이다. 인류사에서 절대 밑지지 않는 사업은 흔하지 않다. 우리가 외계로부터 오는 신호를 잡기 위해서 수백만 개에 이르는 별들을 모두 조직적으로 철저하게 조사했지만 아무런 신호도 검출할 수 없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은하에서 문명의 발생이란 것이 참으로 드문 현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우주에서 우리의 존재에 대하여 적어도 하나의 확고부동한 척도가 마련되는 셈이다. 따라서 지구 생명의 고귀함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그렇다면 사람 한 명 한 명이 개체로서 반드시 존중돼야 할 존재가 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인류의 전 역사를 통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외계 문명이 발견된다면 인류사와 지구 행성의 의미는 그 근본에서부터 변혁을 겪게 될 것이다. - P622

629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 가고 노예 제도의 야만성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별 세계의 비밀을 캔다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까?
- 몽테뉴에 따르면 아낙시만드로스가 피타고라스에게 던진 힐문이라고 한다. - P629

629 지구 도처에서 끔찍한 음모를 꾸미고 끝없는 바다를 정복한다고 법석을 떨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가 그런 짓을 하면 할수록 지구의 모습은 바깥 세상의 천체들에 비해서 더욱더 초라해 보일 뿐이다. 제왕과 왕자 들은 반성할지어다. 그대들은 하나의 점에 불과한 그래서 어쩌면 불쌍해 보이기조차 하는 보잘것없는 한구석의 주인이 되고자 그렇게도 많은 인명을 희생시켜야만 하는가?
-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천상계의 발견』, 1690년경 - P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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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5 미국 정부는 ‘정부를 만들 줄 알거나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가정 하에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다시 말해 통치를 어떻게 하면 되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도 통치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쪽에선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끊임없이 시도되고 무용지물로 판명 난 아이디어들은 다른 쪽에서 계속 폐기되도록 허락받은 시스템이어야 한다. 현재 우리가 발명해 낸 ‘미국 정부‘는 바로 그런 시스템이다. 미국 헌법을 기초한 사람들은 ‘의심의 가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살던 시절에도 불확실성에 대한 인정을 통해 가능성과 잠재력, 새로운 생각에 대한 열린 태도의 가치를 존중할 만큼 과학은 이미 충분히 발전해 있었다. 우리의 과학이 불확실하다고 믿는다는 것은 언젠가 다른 방법이 가능하리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가능성을 열어두면 언젠가 새로운 기회를 제공받게 된다. 의심과 토론은 진보를 위한 필수조건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 정부는 매우 혁신적이고 현대적이며 과학적인 시스템이다. 모든 게 썩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상원의원들은 그들의 주에 댐을 건설하겠다며 환심성 공약으로 표를 사고, 토론은 감정적인 싸움판이 되기 일쑤이며, 전방위적인 로비는 소수 의견이 받아들여질 기회를 앗아가지만 말이다. 이처럼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긴 해도, 나는 미국 정부가 (영국 정부를 제외하고는 현재 지구상에 있는 정부들 중 가장 만족스러우며 가장 현대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그다지 좋은 정부라는 생각은 안들지만.
소련은 퇴보하는 국가다. 아, 분명히 ‘기술적으로는‘ 앞서 있다. 지난 강연에서 과학과 기술의 차이점에 대해 묘사한 적이 있었는데, 불행히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억압하는 시스템 하에서도 기술적 진보는 방해받지 않는 것 같다. 히틀러의 시대에도 새로운 과학은 발전하지 못했지만 로켓은 만들어졌으며, 소련에서도 마찬가지다. 유감스럽게도, 과학의 응용이라 할 수 있는 기술의 발달은 자유가 없어도 진행될 수 있는 게 사실인 것 같다. 내가 소련을 ‘퇴보하는 국가‘ 라고 단언한 이유는 그들이 정부의 권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직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권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앵글로–색슨의 위대한 발견이다. 물론 그들이 그걸 처음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기나긴 투쟁의 역사 속에서 그것을 쟁취했다. 소련에선 사상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다. "아니에요. 그 사람들도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는 얘기를 주고받던데요."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만, 일정한 형태로만 가능하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이용해야 한다. 우리도 이 자리에서 반스탈린주의를 논해 보면 어떨까? 스탈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조목조목 따져 보면 어떨까? 소련 정부가 직면하게 될 위험이 어떤 것들이 될지 얘기해 볼까? 소련 내부에서 현재 비판하고 있는 스탈린주의의 모순과 현재 그들 사회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행태들 사이에 유사점은 없는지 지적해 볼까? 음, 그래, 그래, 이제 됐어 됐어・・・.
자, 나도 잠시 흥분했었다. 지금 보았듯이 이건 순전히 감정적인 문제이다. 이 문제는 좀 더 과학적인 방식으로 다뤄야지, 이런 식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 내가 굉장히 합리적이고, 과학적 논증을 하듯 ‘선입견 없는 태도‘로 이 문제를 대하기 전까지 여러분은 내 말에 별 확신을 가지지 못할 테니까. - P72

94 잘 알든 모르든 대답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고, 대답을 한 사람이 대답을 하지 못한 사람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대중들의 머릿속에 박혀 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엔 그 반대이기가 쉽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치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답을 제시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의 결과로, 정치적인 약속은 절대로 지켜질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내뱉어진 공약들이 지켜지지 못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 P94

94-5 그래서 결국 아무도 선거 공약을 믿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정치를 대체로 얕보게 되었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게 되었다. 결국 문제는 제일 첫 부분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건 엄밀한 분석의 결과는 아니니 ‘그럴 수도 있다‘는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대중이 답에 도달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을 찾으려는 대신, 스스로 답을 찾으려고 시도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P94

101-2 소위 진리인지 아닌지를 테스트하는 또 다른 방법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과학 분야에서 이미 많이 적용되어 왔으며 아마 다른 분야에도 어느 정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어떤 것이 정말로 진리라면 계속된 관찰을 통해 효율을 증가시키면 그 효과가 관찰 결과에 고스란히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방법이다. 점점 덜 분명해지는 것이 아니다. 즉 어떤 것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런데 유리에 수증기가 서려 잘 볼 수 없다면, 그 유리를 닦고 더 분명하게 관찰하면 거기에 존재하는 것을 더욱 명확하게 볼 수 있지 여전히 뿌옇게 보이진 않는다는 것이다. - P101

104-5 심적 텔레파시나 비슷한 종류의 현상들은 19세기 신비주의 심령론과 유사한 속임수에 기원을 두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편견은 어떤 것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결국엔 그 편견을 깨고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여기에 알맞은 재미있는 예는 바로 최면 현상이다. 최면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걸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될 때까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중략) 이렇게 시작된 최면 현상은 사람들이 많은 실험을 수행할 만큼 충분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상상이 갈 것이다. 운 좋게도 최면 현상은 수많은 편견을 이겨 내고 그 존재가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 사람들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들은 시작이 좀 이상하더라도, 충분한 연구가 진행된 후에는 상황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
비슷한 아이디어에서 나온 또 하나의 원리가 있는데, 그것은 묘사되는 효과가 일종의 영원성 또는 불변성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어떤 현상이 실험적으로 검증하기 힘든 경우라면 여러 관점에서 보았을 때 거의 같은 어떤 측면에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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