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 미션

제1장
하늘이 명령한 것을 본성이라 하고,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하며, 그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 한다.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가 없으니, 떠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삼가며, 다른 사람이 듣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한다.
(잘못하는 일이) 은밀한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고, 세미한 곳에서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하고, 드러나더라도 모두 적절한 정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 중이라는 것은 천하의 가장 큰 근본이고, 화라는 것은 천하에 두루 통하는 도리이다.
중화(中和)를 지극히 하면 하늘과 땅이 바르게 되며, 만물이 제대로 생기고 자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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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민음사 사서四書
동양고전연구회 역주 / 민음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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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무려 2,500  전에 쓰였다. 그럼에도 많이 읽힌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古典)이라   있다. 고전이 고전이라 불리는 이유는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속에서 로운 가치를 찾아내 때문 것이다.  역시,  여름 논어를 읽으며 어렵지 않게 보석 같은 가치를 발견할  있었다. 최근 심리학계에서 널리 회자되는 ‘성장형 마인드셋(Growth Mindset)’ 통하는 가르침이 바로 그것이다.  글에서는 『논어 정신과 성장형 마인드셋을 비교하여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논어 평가해보고자 한다.

 

 지난 학기,  전공 과목 마지막 강의 있는 날이었다. 교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영상이 있다며, 강의  슬라이드 5 남짓한 TED 강연   보여주셨다. 성장형 마인드셋을 가진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높았다는  강연의 요지였다. 강연자인 펜실베니아대 심리학과 앤젤라  덕워스(Angela Lee Duckworth)교수의 말을 빌리면, 성장형 마인드셋이란 ‘학습 능력은 타고나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서 바뀔  있다 믿음을 가리킨다. ‘학습 능력이 타고나거나 고정되어 있다 ‘고정형 마인드셋(Fixed Mindset)’ 대비되는 태도다. 이는 비단 학습 능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어떤 상태나 상황에 있건간에 사람은 항상 현재보다  나아질  다는 뜻까지도 내포한다.

 

 『논어 마지막 페이지 넘길 때까지,  머릿속에 성장형 마인드셋이 계속 맴돌았다.  까닭을 소개하기에 앞서, 다음의 『논어  보자.

 

1-1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그것을 때에 맞게 익혀 나가면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않겠는가?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움을 품지 않으면 군자답지 않겠는가?”

_「학이(學而)」

 

 『논어  편인 「학이(學而)」 소개글에 따르면, ‘선진(先秦) 시대 일반적인 저작 관례에 의하면  책에서 제일 중요한 내용이  편에 배열되었다.’(p21)   편의 주제인 ‘배움[]’ 『논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는 것을   있다. 실제로 공자는 호학지사(好學之士) 알려져 왔으며(p21), 그가 묻고 배우는 것을 통한 자기 발전을 중시하였음은 『논어곳곳에서 확인할  있다.

 

7-2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묵묵히 기억하며, 배우되 싫증 내지 않고, 남을 가르침에 지치지 않는 일들이라면 내게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

_「술이(述而)」

 

7-21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 사람이 길을 걸을때는 반드시 여기  스승이 있으니,  가운데 좋은 점은 골라서 따르고 좋지 않은 점은 가려내어  잘못을 고친다.”

_「술이(述而)」

 

15-30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 이것이 잘못이다.”

_「위령공(衛靈公)」

 

 이처럼 공자는 스스로 항시 배우고 익혀 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했고, 제자들에게도 이같이 가르쳤다. 이에 비추어  , 그는 인간의 품성이 태어날 때부터 전적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상이 기본적으로 성장형 마인드셋과 통한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누구나 학습 통해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있다는 이러한 인간에 대한 기대를 이어받아, 후에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하는 성선설을 기초  유학의 기본 이론을 확립하게 된다. 이는  주어진 선한 바탕을 힘써 기르면 누구나 선하게   있다는 의미,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가능성 느껴진. 이러한 인간 이해는 무척 낙관적이기에, 제법 근사하다.

 

 다만,  가지 불명확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 『논어에서는 군자를 소인과 구별하여 이야기하는데, 과연  군자다움과 소인다움 타고나는 것인, 아니면 소인도 부단한 배움을 통하여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있는 것인? 학습을 강조하는 장도 있는 한편, 타고난 성품의 차이를 인정하는 듯한 장들도 일부 찾을  있다.

 

17-3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오직 상지(上知) 하우(下愚)만이 바뀌지 않는다.”

_「양화(陽貨)」

 

9-21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싹이 돋았으나 이삭이 패지 못하는 것이 있고, 이삭은 팼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있도다.”

_「자한(子罕)」

 

 17-3에서 공자는 가장 뛰어난 [上知] 가장 어리석은 [下愚] 바뀌지 않음을 말한다. 가장 어리석은 자에게는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말로도 들린다. 9-21 특정 단계에서  이상 인격적 발전이 없는 사람을 묘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공자에게 있어 인격적으로 최고로 치는 사람은 군자 또는 성인이라 불리는, 도덕적으로 완전한 존재다. 만약 군자와 소인의 성품이 저마다 타고나는 것이라면, 학습의 의미는 다소 퇴색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나는 타고난 성품 차이를 강조하는  공자의 본뜻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간의 가능성은 우리가 쉽게  한계를 파악할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옹야(雍也)」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선생님께서 자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군자다운 유자가 되어야지, 소인 같은 유자는 되지 마라.”(6-12)’ 여기서 유자는 오늘날의 지식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노력 여하에 따라 군자다운 지식인이  수도, 소인 같은 지식인이  수도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설령 타고난 성품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하더라, 인간은 스스로를 포기하면 밑도 끝도 없이 타락할  있음을 생각해본다, 주어진 조건하에서 노력하는  또한 충분한 의의가 있다.

 

 이상, 성장형 마인드셋 연관지어 배움이라는 논어 핵심 가치를 평가해 보았다. 앞서 논어 여러 장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성장형 마인드셋 동아시아 문화권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숙한 믿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수양과 도덕 실천을 통해 인간의 이상적 경지인 천인합일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 유학의 기본 정신이다. 완전한 인간을 상정해두고 애써 그에 다다르고자 하니, 성장형 마인드셋이 자연스레 탑재될 수밖에 없었 것이 아닐까. 실제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대표되는 동아시아의 높은 교육열 역시, 이러한 유학의 기본 사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나를 꿈꿀수 있도록 하는, 배움을 통한 인간의 발전 가능성을 긍정하는 공자의 사상은 현대에도 무척 희망적이고 낙관적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논어 지혜를 받아들여 타인을 원망하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나은 나를 꿈꾸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  평화로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서평이 쌓여갈수록 나의 필력 또한 점차 향상될 것임을 믿는다.)


(2019년 8월 2일 오전 07:59 최종 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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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9-23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논어가 민음사에서도 나온 게 있는 줄 몰랐습니다.
구입한 지 오래되니 책이 누렇게 변색되고 글자가 작아서 논어를 새로운 책으로 구입하여 다시 한 번 읽을 생각이었습니다. 좋은 정보 얻어 갑니다.

베텔게우스 2019-09-24 19:00   좋아요 1 | URL
네. 저는 이 책으로 처음 논어를 접했는데, 구성이 깔끔해서 보기 좋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교수신문 선정 최고의 논어 번역본으로 뽑혔다고도 하고요. 그래서 민음사 논어를 읽어보셔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거라 생각합니다.ㅎㅎ 좋은 하루 되세요~
 
인문학 명강 동양고전 - 대한민국 대표 인문학자들이 들려주는 인문학 명강 시리즈 1
강신주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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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모든 책을 자기계발서로 받아들이는  같다. 독서를   책에서 익혀 실생활에서 써먹을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중점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서 태도의 장점으로는, 대부분의 문장을 꼼꼼히 읽고 숙고함으로써  내용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하다 것 있다. 그러나, 이는 뒤집어 생각해보면, 저자와 작품에 대한 동정적 이해에 그칠  있다는 말도 된다. , 책에 대한 나의 태도와 의견을 부각하지 않고 저자의 논의를 그대로 받아들일 때가 많으며, 설령 전개상 다소 미흡한 부분일지라도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러이러한 내용이었을 거야하며 나름대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수용 태도로는 작품에 대한 적절한 비평이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  내용에 대한 무조건적 수용이, 작가, 그리고 작품과의 진정한 소통 방법은 아닐 것이다. 이러니 내가 서평을 쓰기 어려울 수밖에. 나는 아직도 입시를 위한 주입식 학습에 익숙하여서, 일반 독서에도 그런 독서 방식을 은연중에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이다.


"인문학이 자칫 개인의 덕성 함양으로 흐를 수 있는데, 이것은 원래 인문학이 추구했던 정신에 위배됩니다. 문학, 역사, 철학으로 구성되는 인문학은 탁월한 개인을 만들기 위한 처세의 방편이 아닙니다. 인문학적 성찰의 결과를 시민과 함께 나눈다는 것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시도입니다. 인문학은 학문적으로 깊이 심화되어야 하지만, 또 이러한 심화된 인문학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확산되어야 합니다."(p10)


 위 문장이 나의 태도를 지적하는 것만 같다. 그러나 이 또한 무조건적 수용? 주체적 수용과의 차이점은 뭘까? 고민..!

일찍이 북송시대의 대大철인 장횡거張橫渠는 진정한 학문의 성격을 이렇게 규정하였습니다.
"천지를 위하여 마음을 세우고, 인류를 위하여 도의를 확립하고, 옛 성인을 위하여 성현의 학문을 계승하고, 만세를 위하여 태평을 연다." - P6

인문학이 자칫 개인의 덕성 함양으로 흐를 수 있는데, 이것은 원래 인문학이 추구했던 정신에 위배됩니다. 문학, 역사, 철학으로 구성되는 인문학은 탁월한 개인을 만들기 위한 처세의 방편이 아닙니다. 인문학적 성찰의 결과를 시민과 함께 나눈다는 것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시도입니다. 인문학은 학문적으로 깊이 심화되어야 하지만, 또 이러한 심화된 인문학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확산되어야 합니다. - P10

공자는 사람과의 연대에 대한 꿈, 사람은 배움을 통해서 끊임없이 바뀔 수 있다는 변화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전쟁보다는 평화의 공동체를 일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동아시아를 형성하는 데 큰 보탬이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공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나 싶습니다. - P69

오늘날 우리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편리하고 풍성한 삶을 살지만 의미 있는 삶, 향기로운 삶, 멋있는 삶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몸보다도 마음이 삶의 방향을 잡아 주고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마음이 편안하며 의미 있고 향기로운 삶을 살게 해 주는 학문이 성학입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기계공학 등의 학문은 이름만 들어도 무엇을 공부하는 학문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성학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성학은 성인이 되는 학문입니다. 성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거나 과학적으로 이해한다고 해서 우리가 성인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퇴계 이황은 『성학십도』를 통해 어떻게 해야 성인이 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고자 했습니다. - P92

공자孔子에게는 ‘네 가지‘가 없었습니다. 이를 "자절사子絶四"라 합니다. 네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는 ‘의意‘입니다. 사족partial인 욕망이나 트라우마가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필必‘입니다. 의지로 미친듯이 돌진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세 번째는 ‘고固‘입니다. 반복되는 경향이나 패턴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아我‘, 즉 자아나 성격이 없었습니다.
사적인 욕망 혹은 충동이 생기면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데, 그것이 계속 반복되면 패턴이 됩니다. 이때 독특한 반응과 충동의 구조가 생기는데 이를 우리는 성격이라고 합니다. 공자는 사람들의 반응과 충동이 오염되어 있다고 본 겁니다. 그런데 다들 반응이나 충동이 오염되어 있다는 걸 잘 모릅니다. 특히나 18세기 이후 근대 산업사회에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부르짖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구현시켜 주겠다, 이것을 프롬은 ‘위대한 약속the Great Promise‘이라 불렀습니다. - P136

『철학 이야기』라는 책을 쓴 윌 듀랜트Will Durant는 평생에 걸쳐서 초인적 노력으로, 문명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는 철학을 ‘지혜, 혹은 깨달음의 추구‘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지혜는 살아가는 기술이며 그 최종 목표는 행복이라고 말했습니다. 거기 이르는 길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있는 게 아니고 오직 자기 덕성을, 자신을 완성시키는 곳에 있다고 단언합니다. 사회적으로 무엇을 얻고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는 모든 조건이 다 있다 하더라도 자기 내면의 덕성을 기르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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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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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모를 만나보고 싶다. 물론 나에게도 모모는 기쁘게 자신의 시간을 써서 이야기를 들어 줄 것이다. 나도 이런 모모와 같이, 남들에게 기쁘게 나의 시간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기쁨과 슬픔을 서로 나누는 데 시간을 쏟으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바쁘다는 건 뭘까? 누구를 위해서 나는 이렇게 바쁜 것일까? 왜 나는 바빠야만 하는가? 바쁘면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없다. 나는 모모에게서 여유로움을 배웠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사랑할 수 있는 여유가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모모에게 감사하다.


199 "운명의 시간이 뭔데요?"
모모가 묻자 호라 박사가 설명했다.
" 음, 이 세상의 운행에는 이따금 특별한 순간이 있단다. 그 순간이 오면, 저 하늘 가장 먼 곳에 있는 별까지 이 세상 모든 사물과 존재들이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미쳐서, 이제껏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애석하게도 인간들은 대개 그 순간을 이용할 줄 몰라. 그래서 운명의 시간은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지나가 버릴 때가 많단다 허나 그 시간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아주 위대한 일이 이 세상에 벌어지지." - P199

208 모모는 계속해서 안경 속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얼굴이 잿빛이에요?"
호라 박사가 대답했다.
"죽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 가기 때문이지. 너도 알다시피 그들은 인간의 일생을 먹고 산단다. 허나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말 그대로 죽은 시간이 되는 게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 있지." - P208

217 "그럼 시간 도둑들이 사람들한테서 더 이상 시간을 훔쳐 가지 못하도록 조정하실 수는 없나요?"
"그럴 순 없어.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는 문제는 전적으로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니까. 또 자기 시간을 지키는 것도 사람들 몫이지. 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나누어 줄 뿐이다."
모모는 홀을 빙 둘러보고 물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시계들을 갖고 계신 거예요? 한 사람마다 한 개씩요. 그렇죠?"
"아니야, 모모. 이 시계들은 그저 취미로 모은 것들이야. 이 시계들은 사람들이 저마다 가슴 속에 갖고 있는 것을 엉성하게 모사한 것에 지나지 않아.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장님에게 무지개의 고운 빛깔이 보이지 않고, 귀머거리에게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같지. 허나 슬프게도 이 세상에는 쿵쿵 뛰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눈 멀고 귀 먹은 가슴들이 수두룩하단다." - P217

281 기기는 기진맥진해서 손으로 눈을 쓸어내리며 짤막하게 씁쓸한 웃음을 웃었다.
"보다시피 나는 이 꼴이 되었단다. 아무리 원해도 다시 돌아갈 수가 없어. 난 끝장이 났어. ‘기기는 기기인 거야!‘ 모모, 이 말 생각나니? 하지만 기기는 기기로 남아 있지 못했단다. 모모, 얘기 하나 해 줄까?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건 꿈이 이루어지는 거야. 적어도 나처럼 되면 그렇지. 나는 더 이상 꿈꿀 게 없거든. 아마 너희들한테서도 다시는 꿈꾸는 걸 배울 수 없을 거야. 난 이 세상 모든 것에 신물이 났어.
그는 우울한 표정으로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 P281

283 모모는 진심으로 기기를 도와 주고 싶었고, 그랬기 때문에 정말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기기의 말대로 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기기는 다시 기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모모 자신이 이미 모모가 아니라면 기기를 절대 도울 수 없다는 것을. 모모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모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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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철학과 위진현학 노장총서 12
정세근 지음 / 예문서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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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진현학시대의 두 주인공을 꼽으라면 왕필(王弼, 226-249)과 곽상(郭象, 252-312)이라 하겠다. 왕필과 곽상은 명교(제도)파다. 왕필은 명교(제도)가 자연(본성)에 바탕을 둔다고 하였고, 곽상은 명교가 곧 자연이라고 보았다. 위진현학에 대해 공부하면서 문득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에서 읽었던 ‘유전자 결정주의’가 떠올랐다. 유전자는 곧 위에서 말한 본성의 의미에 가깝다. 즉 곽상은 자크 모노식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비록 다른 시대 다른 공간이었지만, 동양철학에서도 서양과 유사한 자유의지에 대한 사상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나는 왕필과 곽상의 각각의 입장이 곧 의지론과 결정론을 대표한다고 본다. 사실상, 동양에는 자유의지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그렇기에 이는 외형적으로 ‘제도와 본성의 관계‘에 대한 논의로 전개되었다.

 인간은 사회 제도를 만들고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이를 꿀벌에 비유하자면, 꿀벌이 육각형 벌집을 짓고 그 곳에서 살아가는 것과 인간이 제도를 만드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보는 것이 곽상식의 관점이다. 곽상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곧 본성이라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꿀벌의 육각형 집은 자연물이라고 말하지만, 인간이 만든 각종 도구나 상품들을 우리는 흔히 인공물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말한다면,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만, ‘제도는 자연에 근본을 둔다‘라고 하는 명교에 대한 왕필의 입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꿀벌 비유는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에서 빌려 온 것이다).

 한편, 내가 제도와 본성에 관한 논의를 자유의지에 대한 논의로 보는 까닭은 각 입장에서의 인간의 역할 차이와 관련이 있다. 만일 곽상이 제도를 보는 관점에서처럼 ‘제도가 곧 본성‘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주체적 의지가 개입할 여지는 없기 때문이다. 반면 왕필의 주장대로 ‘제도는 (인위이지만) 자연에 근본해야 한다‘라는 당위적 명제를 받아들인다면 이상을 추구하는 인간의 노력을 그의 의지로 볼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여러 철학사상을 자꾸 접하다 보니, 철학의 거대한 흐름 중 하나는 ‘의지론이냐, 결정론이냐’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접한 철학들은 위 기준에 의해 두 가지로 분류가 가능했던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22 철학의 주제라는 것이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몇천 년이 지나도 사람의 본질이 바뀌지 않듯이 현학의 문제도 이천 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타당하다. 그것이 바로 이를 테면 ‘제도와 본성’에 관한 논의와 같은 것이다. 과연 우리는 본성적으로 제도를 만들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본성은 제도 속에서 희생되지는 않는가 하는 것이다. 제도를 완전히 벗어난 순전한 인간 본성의 발휘와 합리적인 제도의 수립을 위한 본성의 억제는 모순되지 않는가를 우리는 묻는다. 제도는 철저히 전체를 위한 구상이고 본성은 분명히 개인을 위한 설정이다. 전체와 부분, 집단과 개인 사이의 알맞은 장치의 고안은 이와 같은 철학적 토론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고민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 P22

168 그런데 이 모습을 곽상은 "작은놈이 큰 것을 바라니 자기를 잃는다"라고 풀이함으로써 ‘큰놈은 큰 데서, 작은놈은 작은 데서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분명 장자의 뜻은 우물보다 큰 바다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곽상은 ‘우물 속에서 뛰노는 즐거움’과 ‘바다의 큰 즐거움’을 같이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투라면 우물 안 개구리의 뜻은 ‘좁은 소견을 지닌 자’가 아니라 ‘분수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자’가 되고 만 169 다. 이른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마는 것이다. - P168

173 한마디로 대소와 생사를 초월하는 소요야말로 참 소요라는 주장이다. 곽상의 이론구조는 사실상 매우 간단하다.

(가) 전체의 세계가 있다.(一)
(나) 상대성으로는 전체를 볼 수 없다.(待)
(다) 그런 세계는 한쪽에 불과하다.(方)
174 (라) 따라서 전체를 하나로 할 수 있어야 한다.(齊)
(마) 그것이 바로 소요이다.(遊)
(바) 그때서야 자기의 본성이 펼쳐진다.(性)

대략적으로 곽상의 어휘에서 (가)에는 ‘아우름’이, (나)에는 ‘대소’, ‘생사’ 등이, (다)에는 ‘유무’가, (라)에는 ‘크게 통함’이 있고, (마)에는 ‘얻음’이, (바)에는 ‘몫’, ‘능력’ 등이 속한다. 결국 곽상이 바라는 세계는 그의 표현대로 ‘제일성’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러나 곽상의 이러한 해석은 문제가 많다.
첫쨰, 그는 「소요유」를 「제물론」으로 풀고 이다. 장자의 「제물론」은 이와 같은 제일성의 논의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이고, 「추수」는 이에 버금간다. 그런데 곽상이 벌이고 있는 「소요유」에 대한 해석에는 ‘소요’는 없고 ‘제물’만 있다.
둘째, 평등으로 자유를 억압한다. 평등한 세상이라고 해서 자유로운 개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곽상은 평등하기 위해서는 자유가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개성은 제일성 속에서 포기된다. 개체는 전체 속에서 함닉되고 말아, 독자적으로 설 자리가 없다.
셋째, 과연 무엇이 본성이란 말인가? 곽상은 본성에 대한 깊은 반성이 없다. 타고난 것이 모두 본성이라면,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 본성대로 한 일이라는 것인가? 임금은 임금의 본성을, 노예는 노예의 본성을 타고났다는 말인가? 성인은 성인의 본성을, 악인은 악인의 본성을 타고났다는 말인가? 이러한 주장에는 함양이나 공부, 나아가 학습이나 교육과 같은 용어가 개입될 여지가 조금도 없다.
175 ‘각자 자기가 타고난 마당(自得地場)에서 본성을 실현하면 된다’는 이러한 곽상의 주장은 도가판 결정론으로 본성이 바뀔 여지가 조금도 없다. 바꾸려고 하다가는 다칠 뿐이다. "본성은 각자의 몫이 있다. 똑똑한 사람은 똑똑함을 지켜 끝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음을 안고 죽음에 이르니, 어찌 그 성을 도중에 바꿀 수 있겠는가!"
이런 해석에 불만을 갖은 역대의 주석가들은 하나둘이 아니다. 현대 판본 가운데에서 가장 정치한 『장자집석』의 저자조차 곽상의 「소요유」 첫 주부터 "곽상(향수)의 주가 다하지 못했다"라고 밝히고 있을 정도이다. 특히, 위에서 말한 세 번째 논의는 불가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만일 인간의 본성이 곽상식이라면 수행이고 성불이고 아무것도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곽상이 주장하는 이른바 ‘적성설適性說’의 최대 난점이다. - P173

180 지둔이 곽상에게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만일 붕새와 참새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불가에서의 수행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중생인 참새는 부처인 붕새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른바 ‘성불’이라는 목적이 인간들에게 부여되고 있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적성이란 허울로 사람을 잣대질한다면, 부처는 부처의 적성이 있고, 보살은 보살의 적성이, 아라한은 아라한의 적성이 있을 뿐, 아귀와 수마에 빠져 사는 내가 부처가 될 길은 아득하다. 건달, 낭인, 한량 그리고 카사노바와 같은 바람둥이도 자신의 적성에 충실할 뿐이다. 슬프지만 적성설에 지독히 충실하다면, 2004년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도 지둔의 말처럼 적성일 뿐이다. 괜히 중국 고대의 임금과 도둑의 임금을 181 거들먹거릴 필요도 없다. - P180

214 그리고 현학은 절대의 자유와 절대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며, 더욱이 행복의 동산에서 낭만적 정신을 갈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풍우란은 그것을 바로 서구의 낭만적 정신과 빗댈 만한 중국의 ‘풍류風流’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중국철학의 짧은 이야기』에서는 『중국철학의 정신』 215 보다도 더욱 현학의 낭만성을 강조함으로써 현학자들의 ‘추상과 초월’이 부각된다. 심지어 그는 일시적인 충동이나 자극에 따라 살고, 금욕적 요소가 강하긴 하지만 성性(Sex)의 미화된 모습을 현학자들에게서 발견하기도 한다.
물론, 풍우란은 ‘신도가’를 향수나 곽상과 같은 ‘합리주의자’(The Rationalists)와 풍류를 즐기는 혜강이나 완적과 같은 ‘감각주의자’(The Sentimentalists)로 크게 나누고 있긴 하다. 그러나 그는 이성과 감성이라는 두 가지 상반되는 표준으로 위진의 사상가를 나누었다기보다는, 오히려 현학자들의 이성적인 모습을 선대의 명가와의 관련이나 제도에 대한 궁극적인 긍정 태도에서 간신히 발견하는 듯하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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