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주기 아깝다는 심리는 남녀 관계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애정이 식었는데도 관계를 끊지 못한 채 엉거주춤하게 현상을 유지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게 바로 ‘현상 유지 편향‘이다. 물론 전형적인 예는 아니기에, 이제 현상 유지 편향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기로 하자. - P88

미국 심리학자 해들리 아크스는 1985년 심리 테스트를 통해 개인적인 결정에서 매몰 비용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50퍼센트나 된다고 지적했다. 그 후 심리학계의 연구에선 개인보다는 집단이 매몰 비용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남녀 관계도 그렇지만, 정치적 지지도 감정이 투자되는 일이기 때문에 열성 지지자들은 지지를 철회해야 마땅한 사태가 전개된다고 해도 지지를 철회하기는커녕 더욱 광신적인 지지를 보낼 수 있다. 그간 쏟은 노력과 정열이 아깝고 억울해서다.
그간 투자된 감정은 ‘권력 감정‘일 수 있다. 막스 베버의 정의에 따르면, 권력 감정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의식,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력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식,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신경의 줄 하나를 손에 쥐고 있다는 감정" 이라고 한다. 특정 정치인의 팬클럽 회원들은 자신이 아무런 반대급부를 기대하지 않고 순수하게 이타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지지 대상과의 동일시 효과를 통해 자신도 권력 감정을 대리경험하면서 권력 중독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자신의 고귀한 감정을 투자한 이성과 결별할 때, 그 감정 투자에 대한 보상 욕구로 화병을 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일방적인 이별 통보에 격분한 나머지 보복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수가 매년 약 1만 명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그 오랜 세월 자신의 감정을 한껏 고양시켜준 것에 대해 배신을 저지르고 떠나는 연인에게 감사하는 사람도 있다. 감사까지 할 일이야 아니지만, 화병을 앓거나 보복을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감정에 매달리는 것도 아름다운 일은 아니다. 떠나보낼 땐 보내주어야 한다. "안녕, 내 사랑!" 하면서 말이다. - P99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매우 어렵게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문제에 대한 당신 기분은 어떤가?"라고 묻는다면, 훨씬 쉽다고 생각하고 답을 내놓을 것이다. 물론 후자의 문답이 감정 휴리스틱이다. 박재성은 "경제 이슈를 둘러싼 논의는 이제 대중의 이해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감정 휴리스틱을 환기하고 이로써 대중의 판단과 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는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는데, 사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논의에서 가장 필요한 게 바로 그런 노력이다. 기존 경제 논의는 자꾸 "그 문제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대중을 경제적 논의에서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냉정한 소비자를 바랄 기업은 없을 것이기에, 광고엔 감정 휴리스틱이 철철 흘러넘치기 마련이다. 새로움을 강조하는 ‘뉴‘, 자연적인 느낌을 주는 ‘내추럴‘, 남다른 가치를 지녔다는 느낌을 주는 ‘프리미엄‘이나 ‘골드‘, 의미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느낌을 주는 ‘웰빙‘ 등이 그렇다. 미국의 한 은행은 다른 은행보다 한 시간 빠르게 온라인 서비스를 실시하면서 "당신은 좀더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라는 홍보 슬로건을 내걸었는데, 이 또한 전형적인 감정 휴리스틱으로 볼 수 있다.
감정 휴리스틱은 한국 특유의 정 문화와 연결지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상진은 정은 사회적 인간관계에서 관여된 사람들 사이에 애착과 친밀감을 만들어주는 사회관계적 원자재라고 정의한다. 서양의 사회관계를 개인주의적이라고 할 때 한국의 그것은 관계주의적이며, 한국인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규정하며,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정치적 판단이 감정 휴리스틱에 의해 지배될 가능성을 높여준다. 주변 사람들에게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을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라. 나름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답을 하려고 애는 쓰겠지만, 핵심은 그냥 "마음에 안 든다"는 감정 휴리스틱이다. 강양구가 잘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을 지지할 때 ‘좋고‘ ‘싫고‘의 문제로 접근합니다. 그러고 나서 좋은 이유, 싫은 이유를 덧붙이지요. 이게 진실 아닐까요?"
어떤 이슈에 대한 정치적 지지 여부도 다를 바 없다. 한국인들의 정치적 당파성은 관계 중심주의이기 때문에 자신과 별 관계가 없는 공적 이슈에 대해선 자기 생각을 갖기보다는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정치 세력이나 정치인의 노선과 방침을 그대로 따르는 경향이 농후하게 나타난다. 즉, 정치적 지지의 성격이 연예인 팬클럽의 연예인 지지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정치는 쇼 비즈니스와 같다Politics is just like show business"라고 말한 건 탁견이다. - P109

롤프 도벨리가 "가용성 편향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라"고 했듯이, 가용성 편향은 공적 영역에서 동질적인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현상의 위험을 경고하는 데에 유용하다.
미국의 노동운동 지도자 앤디 스턴은 민주당 정치인들의 전형적 이미지를 "볼보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비싼 커피를 홀짝이고, 고급 포도주를 마시고, 동북부에 살고, 하버드대학이나 예일대학을 나온 리버럴"로 규정한다. 이들이 입으로는 보통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들의 주변 환경이 그들에게 끼치는 영향, 즉 가용성 편향이 문제라는 뜻이다.
사실 민주당은 정치 참여에서부터 정치자금에 이르기까지 부자 유권자들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어서 사실상 그들에게 발목이 잡힌 상태이기 때문에 경제정책상 좌클릭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가난한 사람들마저 공화당에 표를 던진 이유에 대해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2004년 ‘민주당의 여피화‘를 지적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 정치인들은 수사적 진보성을 전투적으로 드러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실천으로 연결되기는 어려우며, 따라서 정치적 불신과 혐오를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
가용성 편향은 우리말로 "노는 물이 어떻다"는 식의 표현을 원용하자면, ‘물 편향‘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비슷한 사람들이 끼리끼리 어울리는 물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의 사정을 헤아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소득 수준에 따른 거주지의 분리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몰려 사는 경향이 가속화되면서 사회적 소통 · 통합과 관련된 중요한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 P116

정박 효과는 법정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정은주는 「판사를 좌지우지하는 검사: 초깃값에 의존하는 ‘정박 효과‘」라는 글에서 "판사에게 나타나는 휴리스틱으로는 ‘정박 효과‘가 대표적이다. 정박 효과란 사람들이 수치화된 값을 추정할 때 초깃값에 의존하는 현상이다. 집값을 추정할 때 공시지가를 고려하는 식이다. 문제는 얼토당토않은 초깃값도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라며 박광배 충남대학교 교수(심리학)가 2004년 2월 형사재판을 맡은 판사 15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이런 내용이다.
우선 판사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법정형이 5년 이상인 형법상 강간치상 사건을 동일하게 제시했다. 첫째 그룹에는 검사 구형을 2년으로, 두 번째 그룹에는 검사 구형을 10년으로 하고 세 번째 그룹에는 검사 구형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연구 결과, 검사가 10년을 구형하거나 구형하지 않은 경우에는 양형 평균이 57.2개월과 57.5개월로 비슷했다. 하지만 검사 구형 2년 그룹의 평균은 42.5개월로 큰 차이를 보였다. 검사의 2년 구형은 법적으로 불가능할 정도로 낮은데도 판사의 양형 판단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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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8-02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롤프 도벨리가 말한 가용성 편향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라는 말이 와닿게 느껴졌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심리학자 매슈 리버먼은 페스팅거의 실험을 동아시아인들에게 했을 때 아시아인이 미국인보다 합리화를 훨씬 적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시아인들은 모순을 받아들이는 문화적 환경 속에서 컸기 때문으로 분석되었다.
어떤 식으로든 흡연을 정당화하려는 흡연자는 자신의 인지 부조화를 줄이기 위해 4가지 자기암시 수법을 쓴다. 첫째, 매우 즐기기 때문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 둘째, 유전자가 좋아 나는 괜찮을 것이다. 셋째, 인생을 살면서 모든 위험을 다 피해가면서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넷째, 금연하면 체중이 늘거나 스트레스가 심해져 건강에 오히려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왜 사람마다 인지 부조화에 대응하는 방식이 다른가? 왜 어떤 사람은 전혀 다른 사태가 벌어졌을 때 이성적으로 발을 빼는데, 어떤 사람은 계속 매달리는가? 페스팅거의 제자인 심리학자 엘리엇 애런슨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저는 정직한 성찰을 통해 부조화 문제에 대응하는 사람은 성격이 원만하고 높은 자기 존중감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반대로 아주 낮은 자기 존중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투자한 것이 별것 아니라 여기고 스스로 바보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 설명에 따른다면, 광신도들은 아주 높은 자기 존중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자신이 투자한 것이 별것 아니라 여기고 스스로 바보라고 생각하는 걸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씻을 수 없는 모욕이 된다.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 사회에는 심리적 부조화를 줄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누구든 자신은 예외일 거라고 믿고 싶겠지만, 예외는 없다. 단지 자신의 인지 부조화를 줄이려는 분야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 P65

69, 71 해병대 출신의 엄청난 자부심도 그들이 받은 혹독한 훈련에서 비롯된다. 해병은 전원이 지원병인데, 3.5~5 대 1의 지원율은 보통이고 학기 말, 학기 초엔 10 대 1까지 치솟는다. 합격자의 47퍼센트가 두 번 이상 지원자다. 게다가 아무나 해병대 훈련을 통과할 수 없다는 믿음은 "우리는 다르다"는 엘리트 의식을 낳고, 이게 기반이 되어 전역 후에도 끈끈한 전우애를 유지한다. 해병대 출신들의 유난스러운 단결력에 대해 한양대학교 교수 정기인은 "엄청난 기합과 지옥 훈련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스스로 엘리트 의식을 가지며, 이러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타 집단이 이해할 수 없는 고도의 동질감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자신이 큰 고생을 했거나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은 일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심리적 현상을 ‘노력 정당화 효과‘라고 한다. 그 심리적 메커니즘은 앞에서 살펴본 ‘인지 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게 어떻게 해서 얻은 자격인데……" 하는 생각이 자신의 소속 집단에 대한 과대평가는 물론 집착에 가까운 애정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중략)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간혹 과도한 탐욕과 오만의 포로가 되는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서비스를 하는 감정 노동자들에게 폭력이나 폭언을 하는 스캔들이 자주 일어나는 것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 P69

여러 연구 결과, 소비자는 조립 등과 같은 참여를 통해 자기 취향과 의지를 많이 반영해 만든 제품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가리켜 ‘이케아 효과‘라고 한다. 앞에서 살펴 본 ‘노력 정당화 효과‘의 일종이다.
이와 관련, ‘이케아 효과‘라는 말을 만든 듀크대학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미국 주부들이 가사에 투입하는 노동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1950년대에 인스턴트 케이크 믹스가 출시되자, 처음에는 주부들이 썩 내켜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왜 그랬을까? 인스턴트 케이크 믹스의 도입으로 손쉽게 케이크를 만들 수 있게 되면 주부들의 노동력과 요리 기술이 평가절하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제조 업체들은 주부가 계란을 집어넣어야 케이크가 완성되도록 인스턴트 케이크 믹스의 조리법을 바꾸었으며, 그 결과 인스턴트 케이크 믹스가 더 널리 보급되었다. - P75

그러나 이케아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기업도 있는데,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애플이다.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통제욕과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콘텐츠,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제품의 모든 측면을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통합된 엔드투엔드end-to-end 방식을 선호했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제품과 호환이 되지 않는 컴퓨터를 만들었다.
애플의 엔드투엔드 방식은 ‘애플 생태계‘라는 말까지 낳게 했다. 아이폰 · 아이패드 같은 하드웨어와 이를 작동시키는 운영체제iOS, 보고 즐기는 콘텐츠, 기기를 사고파는 오프라인 매장(애플 스토어)과 애플리케이션(앱)을 거래하는 앱스토어를 통틀어 생태계로 칭한 것이다. 세계에서 애플만 유일하게 이런 생태계 전체를 갖고 있다. 기기를 만들어 애플 스토어에서 팔고, 아이튠즈에서는 음악을, 앱스토어에서는 앱을 판매한다. 이렇게 하드웨어 · 소프트웨어의 생산에서 소비까지 전 과정을 틀어쥐고 있는 데서 애플의 시장 장악력이 나온다는 게 경영학자들의 분석이다.
그런데 엔드투엔드 방식이 가진 문제점은 사용자들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사용자들에게 권한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이크 데이지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애플 제품의 사용자들은 자기 뜻대로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없고, 애플이 통제하는 애플의 서버로부터 다운로드를 받아야 한다"며 모든 프로그램은 "애플의 통제와 검열을 받는다"고 비판했다. 또 하버드대학 법대 교수 조너선 지트레인은 「왜 나는 아이패드를 사지 않으려고 하는가」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매우 사려 깊고 멋진 디자인이다. 하지만 또한 사용자에 대한 명백한 멸시가 포함되어 있다. 아이들에게 아이패드를 사주는 것은, 이 세상이 자신의 것이며 스스로가 분해해 재조립해야 할 대상임을 깨닫게 해주는 방법이 될 수 없다. 그보다는 배터리를 바꿔 끼우는 단순한 일조차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일깨워주는 수단이 된다."
반면 잡스는 통합적인 접근법을 정의正義의 문제로 간주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하는 이유는 통제광이라서가 아닙니다. 훌륭한 제품을 만들고 싶어서, 사용자들을 배려해서, 남들처럼 쓰레기 같은 제품을 내놓기보다는 사용자 경험 전반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엔드투엔드 방식에 대한 비판은 사회적인 반면, 잡스의 반론은 종교적이다. 과연 소비자들은 어떤 걸 더 원할까. 이케아 효과에 빗대 말하자면, 사용자 경험 전반을 통제해 책임을 지고 싶다는 잡스의 생각은 ‘애플 효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소비자의 기질과 취향에 따라 이케아 효과를 원하기도 하고 애플 효과를 원하기도 한다고 보는 게 옳겠다. - P76

손실 회피 편향은 조직 관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공무원이나 회사원에 대해 너무도 쉽게 ‘복지부동‘이라거나 ‘무사안일‘이라는 비판을 하지만, 역지사지를 해볼 필요가 있다. 혼자서 의사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구조를 가진 조직에선 직원들이 위험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위험을 감수해 잘해내면 보너스를 조금 더 받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일자리를 빼앗길 정도라면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려고 들겠는가? 이와 관련, 롤프 도벨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느 회사에서든 거의 모든 경우에 출세를 위협하는 요소가 성공 가능성을 능가한다. 그러므로 이제 회사의 상관으로서 직원들에게 위험을 감수하려는 자세가 부족하다고 하소연해온 사람이 있다면, 마침내 그 이유를 알았을 것이다. 바로 손실 회피 편향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바꿀 수 없다. 나쁜 것이 좋은 것보다 더 강하다. 우리는 긍정적인 일보다 부정적인 일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거리를 가다 보면 친절한 얼굴들보다 불친절한 얼굴들이 눈에 더 빨리 띈다. 나쁜 태도는 좋은 태도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물론 예외는 있는데, 우리 자신에 관한 일일 때가 그렇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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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말하는 적에 대한 사랑도 [교환]경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돌려주기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주라는 요구는 성스러운 경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신이 보상해주기를 기대하기 떄문입니다. "잘 돌려주는 사람들에게만 무엇인가를 빌려주면서 그대들은 왜 보상을 기대합니까? 빌려주면서 돌려주기를 요구하는 것은 신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도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대들은 적도 사랑해야 합니다! 좋은 일을 하십시오! 그리고 돌려받기를 기대하지 말고 빌려주십시오! 그러면 그대들은 충분한 보상을 받습니다. [...] 선사하십시오. 그렇다면 신이 그대들에게 선사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은 그대들이 다 들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많이 선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넉넉한 기준을 사용하십시오. 신은 그대들에게 동일한 기준을 사용할 것입니다."(「누가복음」6장 32-38절) 그와 반대로 선불교에는 더 높은 차원의 경제를 재건할 신과 같은 판관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전혀 경제[가계]적으로 계산하지 않은 채 주고 나누어 줍니다[용서해줍니다]. 가계를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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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 정도의 민감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이 없다고 확신할 때도 대부분 속임수를 쓰거나, 규칙을 어기거나,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이런 어린이들은 도덕적인 딜레마에 직면했을 때 사회적으로 만족할 만한 해답을 제시했다(코찬스카 & 톰프슨, 1998).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은 대체로 양심적이고 모든 일에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주변에 대해 예민하게 느끼고, 불안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 P39

민감한 사람들은 남에게 고통이나 불편을 주는 걸 극도로 싫어하고 피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덜 민감한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이것은 민감한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나는 남들의 무신경한 말 때문에 상처 받는 민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왔다. 그들은 남들도 그들처럼 인간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신경을 쓸 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민감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의 태도에 충격을 받지 않도록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민감한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 반응이 느리고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그들은 논쟁에서 대부분 패배하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뒤늦게 자기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 게 옳았는지 깨닫고 후회한다.
민감한 사람들이 항상 양심적이고, 주의 깊고, 공감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그들도 과도한 자극을 받거나 당황하면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을 할 수 있고, 때로는 굉장히 까다로운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 P41

누구보다 풍부한 내면의 삶
높은 민감성을 가진 사람들은 풍요롭고 이상적인 삶, 창의적인 내면세계,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지루하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이 내게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 타인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으므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충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많은 활동을 하며 분주한 삶을 살던 사람이 실직하거나 은퇴하면 위기에 빠지는 사례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민감한 사람들은 그것을 새롭게 발견한 자유로 받아들이고 환영한다. 그 시간을 자신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기회로 삼고, 삶을 더 느린 속도로 즐기며 살아간다.

우리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민감한 사람들 중에는 영감을 받을 때 즉각 그 일을 시행하라는, 외면할 수 없는 내면의 강렬한 요구로 느끼고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지만 때로는 그 일이 무거운 짐 같아요. 새로운 이미지가 떠오르면 최대한 빨리 그 이미지를 캔버스 위에 옮겨야 할 것 같은 강박을 느끼니까요."
- 리사, 30세

강렬한 영감을 느끼는 건 매우 소중한 경험이지만, 영감을 다루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된다. 높은 민감성을 가진 사람들은 강렬한 영감을 자주 느낀다. 그들 중에 여러 장르의 예술적인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밤 10시 이후에는 아예 영감의 근원을 차단하는 편이다. 한밤중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밤새 잠을 못 이루기 때문이다.
민감한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얇은 칸막이가 놓여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잠재의식의 재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그것을 창조적인 표현과 꿈으로 시각화할 수 있다. - P43

두 번째는 민감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전략이다. 그들은 말을 하거나 행동을 취하기 전에 자세히 관찰하고 깊이 생각한다. 당신은 아마도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몇 단계 앞서서 생각하는 습관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가 이렇게 말하면 나는 이렇게 말할 거야. 그리고 그가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면 나는 이렇게 행동할 거야‘라는 식으로. 그리고 당신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생길 수 있는 모든 결과를 머릿속으로 그려볼 것이다.
높은 민감성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긍정적인 가능성을 예상할 뿐 아니라 부정적인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할 수 있다. 당신은 어떤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그 상황의 세세한 부분을 미리 검토하고 준비한다. 이것은 당신이 실수할 위험을 미리 막아준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행동이 느리고 위험에 대해 걱정하느라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 P47

하루 종일 심리치료 훈련을 강행하고 나면, 내 에너지는 완전히 바닥을 드러낸다. 나는 예기치 못했던 사건이나 문제가 터졌을 때 끌어낼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모든 일을 주도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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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아내는 방에 놓여 있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내 그림자와 함께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
무서운 일 아닌가? 없을 때는 찾게 되고 있을 때는 서로 무관심한 관계, 즉 가구와 같은 관계라면 말이다.
(주 : 도종환「가구」) - P86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맥락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 규칙을 따른다. 바로 이들이 우리가 하루하루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언어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외국인들을 만날 때는 그래도 상황은 좋은 편이다. 우리는 외국인들이 그들만의 삶의 규칙에 따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같은 언어나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 발생하기 쉽다. 겉으로는 유사해 보이지만 그들은 지역, 가족, 학교, 전공 등등에 의해 나의 문맥과는 일치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욕쟁이 할머니의 식당에서 느끼기 쉬운 불쾌감이나 거부감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이 어떤 삶의 문맥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섬세하게 읽어내야 한다. 자신의 문맥에 따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재단하는 순간, 오해와 갈등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 P104

표면적으로 피의자의 입장에서 검사는 비인간적으로, 그리고 변호사는 인간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검사는 피의자가 100퍼센트 자유롭게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면, 변호사는 피의자가 다른 원인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하려고 한다. 간단히 말해 검사는 피의자가 자유로운 사람이었다고, 변호사는 피의자가 부자유스러운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재판은 범죄 행위에 대해 피의자가 어느 정도 자유로웠는지를 따지는 행위인 셈이다. 만약 자유의 정도가 결정된다면, 피의자는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재판정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항상 자유와 책임의 관계를 따진다. 그래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칸트의 후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는 인간의 윤리적 행위는 인간이 자유로울 때에만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던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 P121

과거 사람들은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국가에서든 조화를 최고의 이념으로 생각했다.그렇지만 어느 경우든 조화라는 이념은 구성원들이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지 않는다면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자신의 가정이 화목하다고 뿌듯해하는 여인이 있다고 하자. 그렇지만 이것은 그녀만의 착각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실제로는 그녀가 가족들의 욕망에 자신을 맞추고 있거나, 아니면 가족들이 그녀의 욕망에 맞추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조화의 이념 속에서는 타자와 차이에 대한 경험이 발생할 수 없다. - P127

만약 타자와 마주쳤을 때 기쁨을 느낀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될까? 당연히 우리는 그와의 만남을 지속하려고 할 것이다. 그와 만났을 때 발생하는 기쁨과 유쾌함 때문이다. 반대로 타자가 슬픔을 준다면 우리는 어떨까? 아마 그를 떠나려고 할 것이다. 자신에게 고통과 우울함을 주는 타자와 같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피노자도 기쁨이나 슬픔에 빠져 있는 인간의 행동 양식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던 것이다.
정신은 신체의 활동 능력을 증대시키거나 촉진시키는 것을 가능한 한 생각하고자 한다. 반면 정신은 신체의 활동 능력을 감소시키거나 방해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그런 것의 존재를 배제하는 사물을 가능한 한 생각하게 한다.
-『에티카』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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