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아내는 방에 놓여 있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내 그림자와 함께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
무서운 일 아닌가? 없을 때는 찾게 되고 있을 때는 서로 무관심한 관계, 즉 가구와 같은 관계라면 말이다.
(주 : 도종환「가구」) - P86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맥락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 규칙을 따른다. 바로 이들이 우리가 하루하루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언어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외국인들을 만날 때는 그래도 상황은 좋은 편이다. 우리는 외국인들이 그들만의 삶의 규칙에 따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같은 언어나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 발생하기 쉽다. 겉으로는 유사해 보이지만 그들은 지역, 가족, 학교, 전공 등등에 의해 나의 문맥과는 일치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욕쟁이 할머니의 식당에서 느끼기 쉬운 불쾌감이나 거부감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이 어떤 삶의 문맥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섬세하게 읽어내야 한다. 자신의 문맥에 따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재단하는 순간, 오해와 갈등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 P104

표면적으로 피의자의 입장에서 검사는 비인간적으로, 그리고 변호사는 인간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검사는 피의자가 100퍼센트 자유롭게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면, 변호사는 피의자가 다른 원인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하려고 한다. 간단히 말해 검사는 피의자가 자유로운 사람이었다고, 변호사는 피의자가 부자유스러운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재판은 범죄 행위에 대해 피의자가 어느 정도 자유로웠는지를 따지는 행위인 셈이다. 만약 자유의 정도가 결정된다면, 피의자는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재판정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항상 자유와 책임의 관계를 따진다. 그래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칸트의 후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는 인간의 윤리적 행위는 인간이 자유로울 때에만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던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 P121

과거 사람들은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국가에서든 조화를 최고의 이념으로 생각했다.그렇지만 어느 경우든 조화라는 이념은 구성원들이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지 않는다면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자신의 가정이 화목하다고 뿌듯해하는 여인이 있다고 하자. 그렇지만 이것은 그녀만의 착각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실제로는 그녀가 가족들의 욕망에 자신을 맞추고 있거나, 아니면 가족들이 그녀의 욕망에 맞추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조화의 이념 속에서는 타자와 차이에 대한 경험이 발생할 수 없다. - P127

만약 타자와 마주쳤을 때 기쁨을 느낀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될까? 당연히 우리는 그와의 만남을 지속하려고 할 것이다. 그와 만났을 때 발생하는 기쁨과 유쾌함 때문이다. 반대로 타자가 슬픔을 준다면 우리는 어떨까? 아마 그를 떠나려고 할 것이다. 자신에게 고통과 우울함을 주는 타자와 같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피노자도 기쁨이나 슬픔에 빠져 있는 인간의 행동 양식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던 것이다.
정신은 신체의 활동 능력을 증대시키거나 촉진시키는 것을 가능한 한 생각하고자 한다. 반면 정신은 신체의 활동 능력을 감소시키거나 방해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그런 것의 존재를 배제하는 사물을 가능한 한 생각하게 한다.
-『에티카』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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