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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죽이기
강준만 / 개마고원 / 1995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는데 10년이 걸렸다. 오랫동안 먼지만 뒤집어쓰다가 어제 그제 밤을 새워 읽었다. 95년 이 책이 나왔을 당시 [김대중 죽이기]라는 제목이 읽는 걸 방해했던 것 같다. 난 전라도 사람이지만 그다지 전라도에 충성하는 사람도 아니고 하물며 김대중씨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더구나 아니다.
그러면 왜 이 책을 읽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그건 아마도 어렸을 적부터 너무 많이 이름을 들은 유명한사람에 대한 반감이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친구들도 어른들도 김대중씨에 대해 이야기할때는 희망과 구원의 이름으로 그를 불렀던 것 같다.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에 대해 다가가기가 꺼려졌다는 것이 변명이 될까?
나는 그런데 휘달리지 않고 평온하게 살고 싶었다. 나는 정치란 혼탁한 무엇이어서 바라보고 있을수록 전염병처럼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그런 내가 박정희에 대한 책을 몇권 읽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나의 평온이란 자신의 해체이후에 오는 맑은 인식인데, 최소한의 사회 문화적인 배경을 알지 않고서는 자신의 해체란 요원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최근의 독서로, 박정희나 김대중 같은 다소 멀어보이는 인물들이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의 기층이 되어 나를 좌지우지하는 힘을 지닌 살아있는 실체였음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권위주의나 공포를 조장하는 언론 플레이, 외형 위주의 학계, 지역 감정 등등 아무리 멀리하려 해도 이미 내가 되어버린 무엇은 그들과 함께 온것이다. 이런 우상들이 상식을 가장하고 나를 뒤흔들고 있는 한 나는 멀쩡한 정신의 나일수가 없으리라.
특히 이 책의 먼지를 털게 만들었던 계기는 최근에 [21세기에는 바꿔야할 거짓말]을 읽은 후였다. 정혜신씨의 강연이 좋아서 [남자 VS 남자]를 읽게 되었는데 "뭐야! 과연 이렇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사람을 평가해도 되는거야!"하는 반감이 일었다.(내가 받은 반감은 [남자 VS 남자]의 리뷰에 옮겨놓았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보시기 바란다.)
또 '어떻게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제대로 된 평가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의 삶이란게 결국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고, 결국 사람에 대한 평가라는 것이 그 모든 일들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면 제대로된 사람 평가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기술이 아닌가?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 하물며 만나지도 못하고 주변 자료와 당대의 기록을 토대로 누군가를 평가해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 것인가? 따라서, 평전을 쓰거나 인물평을 한다는 것은 남다른 노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성공적인 평전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내가 읽은 평전 중 [전태일 평전]과 [정신 분석 혁명]을 제외하고 그럴싸한 평전을 본적은 별로 없다. 게다가 그 둘 중 [전태일 평전]은 낭만적인 숭배감을 안고 읽었던 책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 조금더 배우고 싶다면 평전에서 배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하나의 텍스트가 아니라 여러 텍스트를 통해 다가간다면 중층적인 인물의 구조와 시각의 구조에 다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강준만과 정혜신, 조영래와 정혜신 하는 식으로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며 어떻게 평가를 내리는지 비교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런 비교가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반추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고 어쩌면 평가를 내리는 방식에 변화가 올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바로 뇌리를 스친 책이 강준만씨의 이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생각했던 성실한 인물 평전이 아니었다. 반면 나의 삶을 반추하자는 목적에는 성공한 셈이 되었다. 우선 저자가 밝히는 이 책의 핵심 테마는 다음과 같다. (334쪽)
"내가 이 책에서 다룬 김대중은 엄밀히 말하자면 '후광 김대중'이라기보다는 '김대중과 같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꼭 호남에서만 나오라는 법은 없다. 그 사람은 진보적인 정치인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고 장애인일 수도 있다. 집단적 편견과 음모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김대중과 같은 희생양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집단적 편견과 음모가 그것을 바로 잡는 데에 기여해야 할 언론과 지식인에 의해 주도되고 확산되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테마였던 것이다."
뜻 밖에 이 책은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을 보여주는 창문인 언론과 지식인이 혼탁해서 왜곡된 이미지만을 반복해서 보여준다고 이야기 한다. 기회주의자랄지 대통령병 환자랄지 지역주의에 영합한 자랄지 하는 이미지 말이다. 조선일보를 축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왜곡은 결과적으로 언론의 배를 불리고 친언론 지식인의 입지를 단단하게 할 뿐아니라 끝내 참다운 민주화로의 길을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런데 눈에 무언가 지저분한 색깔이 칠해져 있고 수정체가 우글쭈굴 굴곡이 일어났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누가 잘생겼는지 누가 못났는지 제대로 가릴 재주가 있겠는가? 우리의 대 사회적인 눈이 언론임을 생각할때 왜곡된 언론과 지식인들의 비평은 너무도 아찔한 현실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에 대한 책인데도 김대중이 핵심이 아닌 이 책의 끄트머리에 저자는 이런 간곡한 말씀을 적어놓았다.(335쪽)
"나는 독자들이 나의 '김대중론'에 동의하지 않아도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과 지식인에 대한 문제의식은 가져달라! 정말이지 이대론 안 된다. 언론과 지식인은 정치를 '감독'하는 권한을 행사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 비단 정치뿐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선 '감독자'들이 너무 큰 횡포를 저지르고 있다. 우리는 '비판에 대한 비판'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
*** 참고: 김대중에 대한 왜곡된 판단을 강요하는 문제적 지식인 명단(괄호 안은 책 페이지)****
(1) 백기완(54,민중 운동가) 이태호(64, 김대중 전 비서)
(2) 조윤형(109,전 국회 부의장) 이상우(132, 정치평론가) 이해찬(137, 전 교육부총리),손호철(146, 서강대 교수)
(3) 이영석(181, 정치평론가)김대중(192, 조선일보 주필) , 백상창(199, 월간조선)진덕규(202, 이화여대 교수), 유근일(204, 조선일보) 김윤환, 김용태, 최병렬,주돈식(이상 조선일보 출신 정치계 인사) 박찬종, 김동길
(4) 김상기(250,미국 남일리노이대)박재창(251, 숙명여대 교수)김호진(252, 고려대 교수) 송복(252, 연세대 교수) 김상철(253, 변호사)손학규(268) 손호철(271, 서강대 교수) 장기표(278) 김정남(280,재야운동가) 정관용(283, 재야 운동가) 이종오(286, 계명대 교수)공영복(290, 서울대 교수) 한상진(292, 서울대 교수) 김용옥(299) 장명국(304, 노동 운동가) 길승흠(306, 서울대 교수) 백상창(307) 한완상(325, 서울대 교수) 정호용, 김윤환, 김종필, 박태준, 김기춘, 김상협, 노재봉(330, 전총리)
(5) 공성진(338, 한양대 교수)이기택(354)******************
끝으로 이 책을 보며 느꼈던 것을 적어 보겠다.
첫째, 양비론이 결국 기득권에 이익이 될 뿐이라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이 양비론을 통해 고고한 척 하는 와중에 현실의 고통과 지식인의 책무는 사라져 버린다. 현실은 선택이고 이상에 부합하는 현실에 맞는 차선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좋은 조언이었다.
둘째, 전문가를 빙자한 사기꾼에 속지말자는 것이었다. 사기꾼을 감별하는 기준은 논리와 원칙의 일관성과, 삶과 이론의 일치성이리라. 결국 나와 남에 대해 이중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것이다.
세째, 자신의 눈과 생각을 의심하되 흙속에도 진주가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를 둘러싼 언론의 이야기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응시하면 거꾸로 우리를 혼란케 했던 흔한 뉴우스조차 새로운 사실과 깊이로 나를 이끌어줄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이란게 결국 일상과 평범 속에서 성숙해야 한다는 생각을 확인하였다. 강준만씨도 이렇게 신문과 잡지를 꾸준히 읽는 것만으로도 모든 걸 담아내고 있지 않는가? 그것도 그 누구도 해주지 못한 구체적인 사실과 생동감을 가지고 말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