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 인터뷰 특강 시리즈 3
김동광, 정희진, 박노자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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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권한 책을 생각해 보니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와 이 책 [..거짓말]이다. [끌리는...]은 사람에게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식의 선입견에 입각한 처세술 책이고 이 책 [..거짓말]은 우리를 둘러싼 거짓말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보는 책이다. 이렇게 스타일이 다른 책이 나의 마음을 끌었다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만큼 세상은 다 믿을 수도 없고 다 안 믿을 수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적 통념을 거스를 수도 없으나 내심 믿겨지지도 않는 복잡한 인생을 살고 있다. 무지에서 나서 오해 속에 살다가 미지의 세계로 흩어져 가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거짓말]이 어떤 책인지 생각해 보면 사회적 통념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퍼런 비판이 그나마 경쾌하게 들리는 것은 사회자 오지혜씨의 핵심을 찌르는 진행과 말수좋은 강연자의 폭넓고 솔직한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읽다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고 '그래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거야.'랄지 '이게 이런거 였나?'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참 좋은 강의를 지면에 옮겨준 걸 감사하게 생각하게 된다. 오랜만에 괜찮은 강의를 듣게 되니 감개무량하다.

그 동안 책을 소개하거나 빌려줘서 내가 들은 이야기는 세 가지다. "좋은 책 소개 해줘서 고맙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뭐 다 생각하던 건데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잘 읽었는데 특히 과학에 대한 거짓말이나한국사의 거짓말 같은 것은 어렵드라구요. 남자의 거짓말도 무슨 얘기하는 지 모르겠구요."난 생각한다. 재미이상의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무덤덤함의 이유는 무엇인가? 어렵다는 것은 낯설다는 것인가 편협하다는 것인가? 등등...

사실 이런 강연이나 대담을 글로 옮겨놓은 책은 사람을 열어준다. 논문같은 꽉 죄는 논리가 아니라 서로간의 만남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일반 책이 지식에 대한 나열과 설득에 기울어져 있다면 이런 책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소개에 더 치중하므로 당연히 더 인간다운 느낌이 든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내 삶에 더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 이런 강의형, 대담형 책들이다. 물론 안 맞는다고 생각된다면 과감히 집어던지게도 되지만 이 책은 정말 읽을 수록 끌리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스스로가 많이 변했음을 느낄수가 있었는데 어느새 딴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혜신 선생이 왜 중년 남자들의 심리를 연구하게 되었는지의 대목에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떠올렸다. 정혜신 선생은 정신과 의사가 된 후에야 성실한 장사꾼으로만 알던 자신의 아버지, 즉 일요일이면 소파에 길게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았던 한 중년 남자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미처 손을 쓰지 못한 상태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고 한다. [모리와...]에서도 그런 아버지가 등장한다. 아무런 말도 없이 가로등 밑에서 신문만 읽었던 아버지.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모리는 "아버지, 왜 그렇게 말이 없으셨어요?"라고 절규하지 않았던가? 그게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우울증! 이 말에서 한 중년 남자는 무기력한 남자에서 사회적 피해자가 되어 애처롭게 서 있게 된다. 모리의 아버지는 너무도 짙은 어둠 속에서 자신을 방치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새벽에 이렇게 서평을 올리는 나의 그림자와 모리의 아버지의 그림자는 맞닿아있는 것이다. 나 자신의 어둠을 잠시 생각하다가 우울증이라는 것이 그 어둠인가에 생각이 미쳤다. 우울증에 따른 항우울제의 복용이 이 어둠을 흩어줄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이 우울증이란 것도 사회적 통념, 전문적인 언어로부터 빚어진 또다른 환상의 종착역일 뿐일까?  

이런게 나이일지 모르지만 갈수록 비판을 하더라도 속이 편하질 않다.비판을 듣더라도 후련하지만도 않다. 비판 저편에 꿈틀대는 삶의 중층성에서 오는 아지랭이같은 모호함 속에서 허덕인다. 그러다보니 이런 책조차 이렇게 읽게 된다. 이런 모호함 속에서 헤엄을 치다보면 반짝이는 무인도에 가 닿게 될까? 구체적인 사실과 절절한 체험이 몽돌처럼 깔려있는 반짝이는 백사장으로 닿게 될까?  그나 저나 이렇게 즐비한 사회적 통념의 파도 속에서 물고기밥 신세는 되지 않을 것인가? 아마도 나는 내 상념의 무게로 가라앉아 다시는 떠오르지 못할 것이다.^^

정말 꼭 권하고 싶은 책이지만 때로 잠시 상상력으로 잠수도 하시면서 읽어보시길 바란다. 우린 삶의 재판관이라기 보다는 여행자가 아닌가? 통념이란 깨뜨려야할 장애이기도 하지만 걸터앉아 조망하는 삶의 경치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이게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네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우린 좀 더 이 길을 가야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이 길을 가겠다.

*** 참고 : 정혜신 선생님의 '사람에 대한 거짓말'  요약***

1. 주로 중년 남성의 심리를 연구한 까닭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

2. 사람을 어떻게 알수 있느냐에 대한 해답은 없다. 오히려 어떻게 보면 안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3. 사람을 이렇게 보면 위험하다.

(1) 개별성의 성급한 일반화 :  개개인을 개별성을 가진 사람으로 보아야 하지만, 개인적인 것에 너무 집중해서 지나치게 보편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예) 내 아버지의 개인적인 문제를 모든 남자가 그렇다고 볼 수 없다. 

(2) 단순한 유형화 : 과학적 훈련과 이론을 통해 사람을 유형화 할 수는 있지만, 유형화는 사람의 실체가 드러날 수 없어 위험하다. 예) 세상사람을 친노와 반노로 나누는 신문은 사람을 너무 단순하게 나누는 것이다. 혈액형에 따른 사람분류 역시 사람을 너무 단순화하므로 폭력적이다.

(3) 특정한 역할성격에의 고착 : 사람은 맡고 있는 역할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 그 중 어느 한 모습으로 그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무리다.  예) 전두환은 광주시민에게는 학살자이지만 손녀에게는 좋은 할아버지일 수 있다.

 유명한 사람을 특정한 사회적 역할에 고착하여 보게되면 심리적 장벽이 생겨 과대하게 평가하게 되어 위험하다. 예) 이건희를 과대평가하는 삼성직원은 지나치게 몰입해서 객관성있는 평가를 못 한 것이다.

(4) 원칙적으로 사람은 다양한 역할을 살며 실체는 모호하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명확히 판정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사람이 모호한 것을 참지 못하고 친숙한 것에 매달리면 선입견만 강화시키게 된다.  

4.사람이 거짓을 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심리 코드는 나르시즘이다.

(1) 나르시즘은 자기 자신에게만 지나치게 몰입하고 그 외에는 관심이 없다. 자신은 모든 사건의 주연 배우로 칭송받아야 한다. 따라서 주인공이 되기위해서 아무 거리낌없이 거짓말을 하게 된다.

(2) 나르시즘이 강한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문제의 근원이나 책임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고 여기므로, 모든 책임을 남에게 전가한다.

(3)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므로 자신과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을 항상 희생시키고 착취하고 이용한다. 즉, 나르시즘은 희생양을 만든다. 대체로 희생양은 에너지가 약한 사람들, 모든 일을 자기 탓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대표적으로는 부모자식관계에서 자식이다.

(4) 나르시즘은 치료하기 힘들다. 따라서 어떻게 나르시즘의 희생양이 되지 않느냐를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대체로 모든 일을 자기 탓으로 여기고 무력해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성향을 인식하고 경계해서 나르시즘의 공격에 대해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

5.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모든 인간은 완벽하게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러니까 쫄지말고 열어놓고 보자. 불완전하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 여러가지로 다양하게 생각한다면, 거짓을 피할 수 있다.

(2) 자기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이 자기를 알 수 있는 것은 항상 누구와의 관계에서다. 늘 그 관계를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책이나 영화를 보더라도 자신을 그 관계 속에 넣어서, 즉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식으로 자꾸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면 나르시즘에서 자유로와 질수 있다.

(3) 한 인간을 개별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 성숙한 인간이 갖는 시각이고, 스스로도 누구와의 관계에서나 그런 개별적인 관계로 환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4) 자신이 교사이고, 집에서는 남편이자 아빠이며, 밖에서는 농구팀원이라고 하면 유연하게 여러가지 모습을 사는 것이 좋다. 즉, 아내와 자식을 학생 다루듯 하면 안된다.

6. 강의 총평 : 강의에는 짧은 발제문이 있었을 것 같다.  반면 발제문이 안 실린 이 책은 재미는 있지만 논리적 흐름이 빈약해서 어수선한 느낌이다.논리적인 설명이 필요한 부분인데도 재미있는 예를 들고 휙 넘어가기 예사이다.  예를 들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인 나르시즘에 대한 이해조차 본강의만으로는 쉽지 않다. 청중의 질문을 통해 겨우겨우 감을 잡게 된다. 또한 전반의 '사람을 단순하게 유형화하는 위험성'과 후반의 '사람이 거짓을 행하는 기본 코드는 나르시즘'이라는 것은 개념상 거리감이 있다. 도대체 두 주제는 내적으로 어떻게 이어지는가? 사람은 모호하니까 찬찬히 보자. 그런데 그중에서 거짓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체로 나르시즘을 깔고 있다. 이런 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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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연못 2006-11-09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족을 달면, 정혜신 선생님은 왜 '모든 인간은 완벽하게 불완전한 존재이다'라는 식으로 오버를 하시는지 모르겠다. 그냥 '불완전한 존재이다'라고 하면 될 것을 '완벽하게'라는 말을 붙여 뭐 대단한 걸 발견한 사람인양 치장을 한다. 내 생각으로는, 이런게 다 자신의 이야기만은 옳다라는 식의 강한 자의식때문이다.그래서 정작 궁금한 왜 그런지는 설명하지 않고 인상깊은 사건 위주로 훨훨 날아다니시는가 보다. 자신의 만족을 위한 강의인 것이다. 청중과의 문답을 보면"그게 아니고 이겁니다."식의 답변이 많다. 참 단단한 껍질을 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대중 죽이기
강준만 / 개마고원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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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는데 10년이 걸렸다. 오랫동안 먼지만 뒤집어쓰다가 어제 그제 밤을 새워 읽었다. 95년 이 책이 나왔을 당시 [김대중 죽이기]라는 제목이 읽는 걸 방해했던 것 같다. 난 전라도 사람이지만 그다지 전라도에 충성하는 사람도 아니고 하물며 김대중씨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더구나 아니다.

그러면 왜 이 책을 읽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그건 아마도 어렸을 적부터 너무 많이 이름을 들은 유명한사람에 대한 반감이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친구들도 어른들도 김대중씨에 대해 이야기할때는 희망과 구원의 이름으로 그를 불렀던 것 같다.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에 대해 다가가기가 꺼려졌다는 것이 변명이 될까?

나는 그런데 휘달리지 않고 평온하게 살고 싶었다. 나는 정치란 혼탁한 무엇이어서 바라보고 있을수록 전염병처럼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그런 내가 박정희에 대한 책을 몇권 읽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나의 평온이란 자신의 해체이후에 오는 맑은 인식인데, 최소한의 사회 문화적인 배경을 알지 않고서는 자신의 해체란 요원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최근의 독서로, 박정희나 김대중 같은 다소 멀어보이는 인물들이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의 기층이 되어 나를 좌지우지하는 힘을 지닌 살아있는 실체였음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권위주의나 공포를 조장하는 언론 플레이, 외형 위주의 학계, 지역 감정 등등 아무리 멀리하려 해도 이미 내가 되어버린 무엇은 그들과 함께 온것이다. 이런 우상들이 상식을 가장하고 나를 뒤흔들고 있는 한 나는 멀쩡한 정신의 나일수가 없으리라.

특히 이 책의 먼지를 털게 만들었던 계기는 최근에 [21세기에는 바꿔야할 거짓말]을 읽은 후였다. 정혜신씨의 강연이 좋아서 [남자 VS 남자]를 읽게 되었는데 "뭐야! 과연 이렇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사람을 평가해도 되는거야!"하는 반감이 일었다.(내가 받은 반감은 [남자 VS 남자]의 리뷰에 옮겨놓았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보시기 바란다.) 

또 '어떻게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제대로 된 평가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의 삶이란게 결국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고, 결국 사람에 대한 평가라는 것이 그 모든 일들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면 제대로된 사람 평가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기술이 아닌가?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 하물며 만나지도 못하고 주변 자료와 당대의 기록을 토대로 누군가를 평가해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 것인가? 따라서, 평전을 쓰거나 인물평을 한다는 것은 남다른 노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성공적인 평전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내가 읽은 평전 중 [전태일 평전]과 [정신 분석 혁명]을 제외하고 그럴싸한 평전을 본적은 별로 없다. 게다가 그 둘 중 [전태일 평전]은 낭만적인 숭배감을 안고 읽었던 책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 조금더 배우고 싶다면 평전에서 배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하나의 텍스트가 아니라 여러 텍스트를 통해 다가간다면 중층적인 인물의 구조와 시각의 구조에 다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강준만과 정혜신, 조영래와 정혜신 하는 식으로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며 어떻게 평가를 내리는지 비교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런 비교가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반추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고 어쩌면 평가를 내리는 방식에 변화가 올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바로 뇌리를 스친 책이 강준만씨의 이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생각했던 성실한 인물 평전이 아니었다. 반면 나의 삶을 반추하자는 목적에는 성공한 셈이 되었다. 우선 저자가 밝히는 이 책의 핵심 테마는 다음과 같다. (334쪽)

"내가 이 책에서 다룬 김대중은 엄밀히 말하자면 '후광 김대중'이라기보다는 '김대중과 같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꼭 호남에서만 나오라는 법은 없다. 그 사람은 진보적인 정치인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고 장애인일 수도 있다. 집단적 편견과 음모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김대중과 같은 희생양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집단적 편견과 음모가 그것을 바로 잡는 데에 기여해야 할 언론과 지식인에 의해 주도되고 확산되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테마였던 것이다."

뜻 밖에 이 책은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을 보여주는 창문인 언론과 지식인이 혼탁해서 왜곡된 이미지만을 반복해서 보여준다고 이야기 한다. 기회주의자랄지 대통령병 환자랄지 지역주의에 영합한 자랄지 하는 이미지 말이다. 조선일보를 축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왜곡은 결과적으로 언론의 배를 불리고 친언론 지식인의 입지를 단단하게 할 뿐아니라 끝내 참다운 민주화로의 길을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런데 눈에 무언가 지저분한 색깔이 칠해져 있고 수정체가 우글쭈굴 굴곡이 일어났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누가 잘생겼는지 누가 못났는지 제대로 가릴 재주가 있겠는가? 우리의 대 사회적인 눈이 언론임을 생각할때 왜곡된 언론과 지식인들의 비평은 너무도 아찔한 현실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에 대한 책인데도 김대중이 핵심이 아닌 이 책의 끄트머리에 저자는 이런 간곡한 말씀을 적어놓았다.(335쪽)

"나는 독자들이 나의 '김대중론'에 동의하지 않아도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과 지식인에 대한 문제의식은 가져달라! 정말이지 이대론 안 된다. 언론과 지식인은 정치를 '감독'하는 권한을 행사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 비단 정치뿐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선 '감독자'들이 너무 큰 횡포를 저지르고 있다. 우리는 '비판에 대한 비판'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

*** 참고: 김대중에 대한 왜곡된 판단을 강요하는 문제적 지식인 명단(괄호 안은 책 페이지)****

(1) 백기완(54,민중 운동가) 이태호(64, 김대중 전 비서)

(2) 조윤형(109,전 국회 부의장) 이상우(132, 정치평론가) 이해찬(137, 전 교육부총리),손호철(146, 서강대 교수)

(3) 이영석(181, 정치평론가)김대중(192, 조선일보 주필) , 백상창(199, 월간조선)진덕규(202, 이화여대 교수), 유근일(204, 조선일보) 김윤환, 김용태, 최병렬,주돈식(이상 조선일보 출신 정치계 인사) 박찬종, 김동길

(4) 김상기(250,미국 남일리노이대)박재창(251, 숙명여대 교수)김호진(252, 고려대 교수) 송복(252, 연세대 교수) 김상철(253, 변호사)손학규(268) 손호철(271, 서강대 교수) 장기표(278) 김정남(280,재야운동가) 정관용(283, 재야 운동가) 이종오(286, 계명대 교수)공영복(290, 서울대 교수) 한상진(292, 서울대 교수) 김용옥(299) 장명국(304, 노동 운동가) 길승흠(306, 서울대 교수) 백상창(307) 한완상(325, 서울대 교수) 정호용, 김윤환, 김종필, 박태준, 김기춘, 김상협, 노재봉(330, 전총리)

(5) 공성진(338, 한양대 교수)이기택(354)******************

끝으로 이 책을 보며 느꼈던 것을 적어 보겠다. 

첫째, 양비론이 결국 기득권에 이익이 될 뿐이라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이 양비론을 통해 고고한 척 하는 와중에 현실의 고통과 지식인의 책무는 사라져 버린다. 현실은 선택이고 이상에 부합하는 현실에 맞는 차선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좋은 조언이었다.

둘째, 전문가를 빙자한 사기꾼에 속지말자는 것이었다. 사기꾼을 감별하는 기준은 논리와 원칙의 일관성과, 삶과 이론의 일치성이리라. 결국 나와 남에 대해 이중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것이다.

세째, 자신의 눈과 생각을 의심하되 흙속에도 진주가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를 둘러싼 언론의 이야기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응시하면 거꾸로 우리를 혼란케 했던 흔한 뉴우스조차 새로운 사실과 깊이로 나를 이끌어줄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이란게 결국 일상과 평범 속에서 성숙해야 한다는 생각을 확인하였다. 강준만씨도 이렇게 신문과 잡지를 꾸준히 읽는 것만으로도 모든 걸 담아내고 있지 않는가? 그것도 그 누구도 해주지 못한 구체적인 사실과 생동감을 가지고 말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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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 In The Green Cafe
이슬기 연주 / 미디어신나라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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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메탈만 10년 듣다가 귀가 밤새 울고 편두통에 시달려 몇 달간 음악을 듣지 못한 적이 있었다. 친구도 없던 난 음악이 없어 너무 적적했다. 말할 수 없이 외로웠다. 하루종일 산을 뛰어 다닌 적도 있으니까... 계곡의 물소리가 아름답게 들릴때 쯤 어렵게 듣게 된게 재즈다.

조동익의 [풍경] 웨스 몽고메리의 [Old Folk]짐홀의 [Ukali]... 다른 이의 귀를 아프게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심정을 정직하게 드러내 오히려 더 큰 소리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고 몇 년이 지나 재즈가 아프리카의 토속 음악을 뿌리로 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갑자기 국악이 듣고 싶어졌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피부에서 나오는 흙내음 같은 절절한 음악을 듣고 싶어졌다. 오래된 고목나무에서 울려나오는 신음같은 소릴 듣고 싶어졌다.

그제서야 조금은 들리게 된  김해숙 선생의 가야금 산조의 충격이란! 정말 한 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늘에서 꽃잎이 떨어지듯 가슴에 툭툭 내려앉는 가야금 가락! 보잘것없는 사람이 하늘과 만나는 시간이었다. 오토의 말대로 공포스러우면서도 미스테리한 체험이었다.

오늘 이슬기의 우아한 가야금과 곽윤찬의 아름다운 피아노가 듀엣을 이룬 이 음악을 듣고 있으려니 가슴에 무언가 스물스물 기어다니는 것 같다. 벅찬 감동과 더불어 드는 생각이란 좀더 분발하자는 터무니 없는 생각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들어보시라. 아름답고도 우아한 음악이다. 우리도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는 그런 생각이다. 그런데도 난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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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연못 2006-10-21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이 앨범은 재즈와 국악이 조화를 이룬 세련된 앨범입니다. 전통적인 음악이 아닌 요즘 음악입니다.귀에 거스리지 않고 순하게 넘어가는 경쾌한 음악이죠.

kleinsusun 2006-10-22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연못님의 리뷰를 읽고 들어봤어요. 정말....아름다워요.^^
덕분에 좋은 앨범 만났어요. 감사합니다. Thanks to!^^
 
남자 vs 남자 - 정혜신의 심리평전 1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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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유명인사 2명씩을 짝을 지어 비교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모색한 참신한 책이다. 참 재미있게 씌인 책이다. 글쓴이의 글솜씨는 대단해서 읽다보면 어느새 칼럼의 마지막에 다다르곤 했다.

이 책이 참신해 보이는 것은 유명인사를 짝짓는 방법부터 예사롭지 않다는 데 있다. 누가 김영삼 전대통령과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을 비교하려 했던가? 이건희와 조영남의 비교, 장세동과 전유성의 비교... 뒤이어 줄줄이 나오는 짝들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내용은 뒤로 갈수록 처음의 참신함을 잃고 구태의연한 병렬비교로 치닫는다. 읽어보면 매우 단순한 구조인데, 어울릴 성 싶지 않은 두 명의 짝 중에서, 정치가나 재벌인 전자를 미성숙한 인간으로 보고, 나중의 문화인사를 더 나은 대안으로 놓고 있다.

과연 원래 문화계 인사가 정치나 경제 인사들보다 더 성숙한 인간인건지, 아니면 저질의 정치 경제 인사와 고급의 문화계 인사를 병렬하는 꼼수에서 온 착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보면 전자는 유아기 중 구순기나 항문기에 있는 인사이고 후자는 남근기에 도달한 자유인이다. 나 역시 심정적으로 이런 병렬을 즐기는 축이지만, '이런 식의 얄팍한 병렬과 지리멸렬한 탐구야 말로 유치한 것 아닐까?'라는 의문이 강하게 든다. 

 예를 들어 김영삼(난 이 양반 정말 싫어한다.그러니 내가 이 분의 팬이어서 이런 글 쓴다고 생각 안하시길 빈다. 다만 나는 내가 싫어하는 인물일지라도 공정한 평가가 내려지길 바라는 사람일 뿐이다. ) 전 대통령이 부유한 선친 밑에서 왕자병 생활을 한 결과 병적인 자기중심병에 걸렸다는 평가를 생각해 보자. 정혜신 선생의 '거울보기 과정에 문제가 있어 나르시시즘 인격장애가 생겼다'는 현학적인 문체를 걷어내면, "김영삼이는 아버지가 부자라서 오냐 오냐 크다보니까 저만 잘난 줄 알아"라는 식의 포장마차 문제의식을 전혀 뛰어넘지 못한다. 완전 주간지 수준이다. 그에 이어지는 딴지일보의 김어준 총수는 대학교때 배낭여행 다니면서 여러 세상을 경험한 결과 자신에 대해 객관적인 인식을 가지게 된 존경스러운 젊은 총수라는 거다. 과연 그럴까? 오히려 저자는 너무나 섯부르게 설익은 결론을 제시한 것은 아닐까?

김영삼이란 사람이 수십 년동안 수많은 사람과 일들을 겪은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20대의 김어준이가 배낭여행을 수십차례하며 겪었던 경험의 수십 배의 넓이와 강도라고 보아야 한다. 지역과 문화를 지리적으로 넘나드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철학자 칸트는 자신의 마을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인식의 차원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길을 걸었을 것이다.그렇다면 '같은 여행을 해도 누구는 이런 식의 의식이 형성되고 누구는 이런 식의 사고가 형성되었는가?' 라는 인식 형성의 계기나 구조를 포착해야 하지 않을까? 나같은 범인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정신 분석을 업으로 삼는 전문가로서 이런 정도의 깊이밖에 도달치 못하는 것이 한심스럽다. 이런 부모를 만나서 이런 유년기를 보냈으므로 이런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는 숙명론에 갇히고 마는한 그런 정신 분석학이란 것은 쥐뿔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보면 뭔가 달콤한 건 있는 데 그 이상의 시각이 없다. 결국 주간 잡지를 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남성 심리 전문가의 본격 심리 평전이라구?

김영삼과 김어준이란 짝을 지으면서 정혜신 선생이 노출한 헛점을 떠나, 다른 칼럼에 들어있는 짝들이 노출하는 또 다른 석연찮음의 예를 들어보자.이건희와 조영남이라는 짝에서 이건희의 열등감에 근거한 강박적 행동은 아직도 항문기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질타받는다. 그에 비해 조영남은 남근기에 도달한 자유인이라고 서술하면서 이건희는 간접적으로 또 한번 씹힌다. 그런데 책 중반을 넘어서서 봉두완과 이외수의 짝이 등장하는 데 '어라 이외수는 더 심하네.' 그런데도 지독한 강박증 환자인 이외수의 '얼음밥 정신'은 예술이라는 분야이라서 그런지 아주 갸륵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이런 ››을 놈의 이중잣대가 어디있는가? 경제 경영 역시 서예가의 일필휘지처럼 각고의 시간을 통해 빗어지는 판단력과 결단력의 예술일 수도 있지 않은가? 왜 누구는 비슷한 근거로 매도 당해야 하고 누구는 추앙되어야 하는가?

책을 읽는 처음엔 정혜신 선생과 강준만 선생을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강준만 선생이 무언가 작품을 내놓을때 정혜신 선생은 교묘한 짝퉁을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정혜신 선생의 글이 짝퉁인 이유는 객관적인 시선과 잘 정돈된 자료의 부족인 듯 하다. 스스로에 대한 해체가 빈약한 이런 식의 짜집기란 자신의 편협함과 편파성을 좋은 글솜씨로 가리고 있을 뿐, 봉두완의 양두구육 멘트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재미있게 읽게 되면서도 "정혜신 선생님! 공부 좀 더 하셔야 겠어요."라는 말이 자꾸 들꿇는다. 그 만큼 평가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정신의 성숙이란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고명하신 박사님도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흔들리고 계시지 않는가?

(제 이야기가 너무 편파적이라구요? 그렇지만 한 걸음만 떨어져서 바라보십시오. 정혜신 선생이 저지른 오류이상의 오류는 저지르지 않았다구 자부 합니다. 그만큼 사람이란 게 이리 보면 이렇구 저리 보면 저렇구 그렇지 않습니까? 다만 글쓰기의 기본은 지키자는 겁니다.즉, 이중 잣대의 오류만은 저지르지 말자는 겁니다. 그리고 어쩔수 없이 오류를 저지르게 되는 게 숙명이라면 그 사실만은 알고 있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책에 나오는 히브리 전설처럼 안먹으면 죽으니까 먹으면 미치는 곡식을 먹어야 되더라두 "우리는 지금 미쳐 있다"라는 고함에는 귀는 열어두어야 한다 이겁니다.적어두 지식인이라면 그래야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읽을만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면 다음 세 가지 이유에서 이다.

우선, 사람이란 사람일 뿐이라는 당연한 사실의 확인이다. 이건희도 사람이고 김영삼도 사람이다. 그들 보다 조영남이 전유성이 꿀릴 까닭이 없다. 더 나아가 우리같은 범인 역시 우리의 삶을 사는 한 더 없이 소중한 사람인 것이다.

둘째, 이 책은 인물 평전으로서는 부족하지만 심리학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책이다. 김영삼이 거울보기에 어긋낫기 때문에 인격장애를 겪고 있다고 볼게 아니라, 거울보기라는 개념이나 나르시시즘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을 김영삼의 독특한 모습에 빗대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풀어 썼다고 본다면 이 책은 매우 훌륭하다. 원래 이글이 신동아에 [남성탐구]라는 칼럼으로 씌여졌다곤 하지만 [유명인의 삶으로 비추어 본 알기쉬운 심리학 강의] 정도가 더 걸맞는 제목이 아닐까 싶다.

세째, 정혜신 선생이 자신의 지식에 갇혀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며 사람 읽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지식이란 고정된 시선을 야기한다는 느낌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되었다. 또한 현재의 심리학 연구나 정신 분석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좁은 개념의 테두리 속에서 사람을 재단하고 농간을 피우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이 이미 선점한 고지의 유용한 개념으로 상대방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은 유치하고 비겁하다. 지식이 사람위에 군림하는 것은 또 하나의 야만이 아닐까?

끝으로 굳이 이 책의 옥의 티 하나를 더 지적한다면 '남성' 탐구가 아니라 '남자' 탐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소한 사항이지만, 얄팍하고 선정적인 단어 구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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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연못 2006-10-11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정혜신 선생을 좋아하고 그 글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한겨레를 보다가 선생의 글을 보면 반갑다. 그렇다고 선생이 다 잘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게 내 생각이다.

하늘연못 2006-10-14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이 글에 공감하신다면 예전에 쓴 리뷰 중에 조영남 선생님의 책 [예수의 샅바를 잡다 ]를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이 리뷰를 쓰면서 생각했던 사람 읽기에 대한 나머지 의견이 적혀있다. 굳이 말한다면 사람 읽기의 중층성이다. 힘들게 썼던 리뷰니만큼 부끄럽지만 권하고 싶다.
 
추상한의학
임진석 엮음 / 대성의학사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명저이고 역저이다. 저자는 원전학 교수로, 본경소증이나 주굉의 활인서를 번역한 매우 뛰어난 학자인데, 임상가인 친구들과 10년에 걸쳐 사상의학 세미나를 한 뒤에 태음인에 국한해서 펼쳐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정말 이론과 실제가 겸비된,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실존적 고민이 응축된 명저이다.

1부 약물편과 2부 처방편을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다보면 부록 태음인이란 무엇인가로 화룡점정을 한다. 진정 한의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상식과 현실을 떠나지 않는 젊은이의 한의학이다. 그 동안 [추상 한의학]의 절판과 [통속한의학 원론]의 절판이 내내 안타까웠었다. 복사해서 나눠준것도 여러부이고 영풍이나 종로 등 대형서점을 샅샅이 뒤져서 몇권 찾아냈던 것도 너무도 훌륭한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재발간되니 정말 기쁘다. 일독을 권한다.

끝으로 이 책을 읽는데 특별한 사전지식이 없어도 된다. 이 책의 시작은 바로 이곳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음인에 국한 된다고 투덜거릴 필요도 없다. 저자의 말대로 태음인을 이해할 수 있다면, 소음인 소양인의 이해는 바로 코앞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음인의 병기가 바로 비만인의 병기임을 생각한다면 그 중요성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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