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영혼들은 쉬지 않는다 시가 내게로 왔다 5
김용택 엮고 씀 / 마음산책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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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00쪽 남짓되는 얇은 동시 모음집입니다.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 선생님이 최근 동시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사시다가 가장 아름다운 동시 47편을 택하시고 간략하게 몇 줄을 적어 놓은 책입니다.

표지의 사진은 달동네 사진을 많이 찍으셨던 김기찬 선생님의 작품인데 정말 예쁜 사진이예요.처음엔 책의 본문에도 사진과 동시를 같이 실어놓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본문은 그냥 전형적인 시집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뭐 그점이 조금 아쉬울 뿐 정말 좋은 동시집이예요.

그럼 김용택 선생님이 '제일 아름다운 동시'로 뽑은 글을 옮기며 짧은 리뷰를 마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이준관-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꽃밭이 내 집이었지.

내가 강아지처럼 가앙가앙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

마당이 내 집이었지.

내가 송아지처럼 겅중겅중 뛰어다녔을 때

푸른 들판이 내 집이었지.

내가 잡자리처럼 은빛 날개를 가졌을 때

파란 하늘이 내 집이었지.

 

내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내 집은 많았지.

나를 키워 준 집은 차암 많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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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 신개정판 생각나무 ART 7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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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맨 앞에는 독자들의 반문이 나오는데 재미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이 과연 미술을 참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글쓴이는 미술의 속 깊은 원리를 터득하겠다거나 무언가 배우고 익히려는 자는 이 책을 덮으시라고 운을 떼고는 자기는 동서양의 미술계에 흩어진 좁쌀같은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라고 한다.

좁쌀같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먼저 작가들의 덜 알려진 과거에서 끄집어낸 얘기. 다음은 작품 속에 담긴 미스터리. 또는 미술이 거래되는 시장판 이야기 등등. 그러니까 인상파니 초현실주의니 뭐니 이론적으로 무슨 틀을 만들고 미술을 보지말고 생활 속에서 상식 속에서 찬찬히 바라보자는 정도의 이야기가 되겠다.

"자, 이제 독자들이 미술을 데리고 한번 놀아볼 때다. 놀되 기왕이면 도타운 정분을 쌓고, 그 정분이 사랑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9쪽)

책을 다 읽은 지금 글쓴이의 바램은 반은 채워졌고 반은 허풍처럼 느껴진다. 전에는 이름도  미처 듣지 못한 작가들과 그림들을 친근하게 느끼게 된 점에서 조금은 놀은 느낌이지만, 그렇다고 한걸음 나가 깊이 보여준 무언가가 있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니다. 예를 들어 국내 작가나 비평가들의 좁쌀같은 이야기에도 구체적인 비판이나 미스테리의 추적이 없으며, 외국 작가들이나 풍조에도 듣기 좋은 비유말고 깊고 넓은 시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이렇게 비판하는 것은 가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두에서 밝혔듯 작가는 그저 좁쌀같은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연구하지 말고 놀자고 했지 않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노닐며 헤매더라도 발은 디디고 놀아야 될거 아닌가? 디디고 설 곳이란 구체적인 지적과 깊이 있는 감상 그리고 진한 감동의 전달일 수 밖에 없다. 그런 공감이 성공적으로 전해질 때 독자는 미지의 세계로 주체적인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과정이 생략된 깨달음의 운운은 조금 허황되다. 

지은이의 오류는 이런 것이다. 자신은 항상 노는 판이니까 무언중에 이미 구축해놓은 기반이 있다. 그는 전망대처럼 높고 넓직한 그 기반 위에서 놀고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도 마음껏 보고싶은대로 보시고 놀다가시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은이가 즐기라는 전망은 보이지않고 다만 가십이 넘쳐나는 잡지처럼 보이는 것이다. 지은이 역시 미술계를 연예계처럼 소개하자는 것이 원래 목적은 아닐 터이다.  이러고 보면 유홍준 선생의 문화 유적 답사기 시리즈나 오주석 선생의 [한국의 미]가 역시 좋은 책이며 일본 사람의 [명화를 보는 눈]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지만 이런 책은 독자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이 책은 정말 좋은 그림들이 두 세 페이지에 한장씩 담겨있다. 지은이인 손철주 선생님의 입담과 정보의 바다 인터넷의 검색을 아우르고 이전에 보았던 몇권 책들을 아울러 산보하듯이 조금씩 골치아플 때마다 읽는다면 이 책은 또다른 재미를 안겨다 줄것이다.

다시 책 맨 앞의 글을 보니 "아는 만큼 보고, 보는 만큼 안다는 것. 옛 독자는 알 것이고, 새 독자는 볼 것이다."라는 이 책의 모토가 눈에 띈다. 기존의 무거운 지식을 비우면 새로운 기분과 생각이 들 것이다. . 그렇게 새롭게 태어난 사람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을 비우고 털털 털어버려야 한다. (우리가 뭐 이 책 읽고 외워서 시험칠 것도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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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사 밀라노의 뱀파이어 - [초특가판]
앤 고어사드 감독, 마틴 캠프 외 출연 / 기타 (DVD)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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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사 밀라노는 묘한 매력을 가진 배우이다. 후배뻘인 안젤리나 졸리나 제시카 알바가 장악하고 있는 '세계 10대 섹시스타' 같은 챠트에 아직도 소피 마르소, 모니카 벨루치와 더불어 오르내리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배우다. 그러면 이 배우를 어떤 영화에서 만날 수 있을까?

바로 이 영화이다. 만약 알리사 밀라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지나가서는 안되는 영화가 이 영화이다. 아마도 [야성녀 아이비2 Poison Ivy 2]와 이 영화가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영화라고 생각된다. 이 아름다운 배우도 이젠 속절없이 마흔을 바라보고 있다니 참으로 애석하다. 시간이 가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미녀가 출현한 영화의 종착역은 인생무상이 아닐까 ?  

참고로 내가 생각하는 여배우들의 가장 빛나는 영화는 이런 거다. 제인 마치 [연인] 피비 케이츠 [파라다이스] 브룩 쉴즈 [블루 라군] 소피 마르소 [유 콜 잇 러브] [구름 저편에] 귀네스 팰트로 [위대한 유산] 오천련 [천장지구] 제시카 알바 [슬리핑 딕셔너리] (조금 예외는 실비아 크리스텔 [ 차털리 부인의 사랑] 모니카 벨루치의 [말레나]정도 이겠다.!)...

이러고 보면 나는 사춘기의 첫사랑을 연상케 하는 앳된 소녀를 좋아한다는 걸  알 수가 있다. 그렇다. 적어도 나에겐 소녀란 영원한 노스텔지어인 것이다. 소녀는 사랑의 시작이었고 그 시작은 너무도 강렬한 것이어서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상흔으로 남은 갈증이다. 그러나 이런 열망이란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만약 당신이 이런 어리석은 고백에 동의하신다면 마지막으로 권하고 싶은 영화는 마유 오자와 주연의 [소녀]이다. 장선우 감독의 유명한 영화 [거짓말]과도 비슷한 소재이지만 이 영화의 진행은 조금은 다른 어떤 곳이다. 또, 이 영화는 아마도 강혜정, 박해일의 [연애의 목적]과 정반대되는 곳에 있는 영화일 듯 싶다. 눙쳐 말하면 동양화를 그릴때 먹이 번져가듯 마음에 스멀스멀 무언가가 퍼져가는 참으로 애틋한 사랑영화였다. 삶에서 이렇듯 운명처럼 닥치는 사랑이란 과연 있는 것일까?

배암발 : 본 영화를 굳이 길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이 영화는 알리사에서 시작되어 알리사로 끝나는 전형적인 성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와 뱀파이어를 결합했다는 것이 조금은 참신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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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 밥
토드 홉킨스 외 지음, 신윤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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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이상한 책이다. 그냥 윤리적인 이야기이리라 또는 경영의 노하우를 드라마를 통해 전달해주는 이야기리라 생각하지만 조금은 다른 책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은 기독교 전도용 책자이다. 174쪽을 보면 청소부 밥이 로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완전히 전도사님의 이야기이다.

"...자네는 기독교인일세. 직원들은 자네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있고. 만약 자네가 코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돈을 위해 직원들을 부린다면, 아무도 자네가 믿는 그 신을 믿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

"자네가 지금 하는 일이라는 것은, 단지 수단에 불과한 거라네. 자네는 그 수단을 이용해 하나님께서 자네에게 주신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것이지."

그러고 보니 특별한 저자의 약력이 눈에 들어온다. 토드 홉킨스는 플로리다 주 펜서콜라 기독 실업인회 회장이고, 레이 힐버트는 남성 선교사역단체의 지부장이다.

2. 이 책이 기독교 서적이라는 것을 간파했을 때 청소부 밥의 여섯가지 지침이 모두 기독교 신앙을 바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고 우리가 바랬던 류가 아닌 무언가 기묘한 조언들이라고 투덜거리는 것을 멈추게 될것이다.

이 책은 '기독교인이 자신의 신앙 생활과 일상의 업무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신앙을 품으면서도 세속에서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책이다.

3. 나는 언젠가 여호와 증인인 사촌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과 동떨어진 일반 교회를 다닐 수 있느냐? 목사님의 말을 들을 때 하나님과 더 멀어지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불교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고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불교는 깨달음의 모든 문에 대한 헌신을 인정하기 때문에 자신의 인연이 기독교에 있다면 기독교인으로 개종하고 헌신하는 것을 축복해준다.자신의 마음을 울리는 참된 소리에 귀기울이고 사랑의 심정으로 떠나가는 사람을 누가 막을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를 잘못 인도하는 목사님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악마라거나, 잘못된 장소인 교회나 헛된 직책인 목사 면허를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아마도 그가 참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 뿐이다. 그는 진실한 헌신을 하지못하고있고 자신만의 교만한 자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상황은 누구에게나 어떤 종교인에게나 생기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기독교나 불교라는 거대한 종교권력에게 비판이 집중될 필요가 있을 뿐인 것이다."  

4. 그 때 내가 그에게 권한 것이 이런 말이었다. "투덜대지 말고 기도하라."

그런데 공교롭게도 [청소부 밥]에는 똑같은 조언이 실려있다. 밥은 직장과 가정일에 끼어 샌드위치가 된 로저에게 기도를 통해 근원과 만나 새롭게 문제를 푸는 삶을 살라고 조언한다.

"...지금 자네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과 그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걸세. 회사 문제나 가정 문제 모두 마찬가지지. 문제의 근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네.

아무리 노력해봤자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다가 힘만 더 들게 되지. 그러니 제일 먼저 필요한 건 문제를 올바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는 거라네. 그런 다음에는 그 문제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취하는 거지. 바로 이 순간에 지혜가 필요한 것이고...."

5. 솔직히 나는 이 책이 좋은 책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만약 당신이 기독교인 비스무리한 사람이고 일과 가정에 짓눌린 가장이라면 한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은 청소부 밥의 조언에 따라 기도라는 것을 해보고 있다. 그는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고 그게 마음을 울린 것이다.

"어려울 것 없네. 가장 친한 친구와 끊임없이 대화한다고 생각하면 돼."

사실 기도란 결국 자신의 근원과 대화하는 것, 참선 수행이나 명상의 다른 말이다. 누구나 쉽게 뛰어들수 있는 소박하지만 파워풀한 문제해결 방식인 것이다. 나는 기도를 권한 이 책에 감사한다. 나는 일상에서 언제 어디서나 근원과 마주하는 기도의 새로움과 힘에 놀라게 된다.

6. 공부 잘 못하는 나란 인간은 [청소부 밥]을 성룡의 영화 [취권]을 연상하며 읽었다.밥은 자신의 회사를 운영했던 유능한 사람이었지만 아내를 잃고 나서 청소부가 되었다. 청소부는  세상을 깨끗하게 하는 직업이지만 비천한 직업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라. 예수는 비천한 목수였으며 제자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었다. 그의 제자들이 예수를 시골 목수라고만  생각했다면 기독교는 생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여하튼, 나는 청소부 밥을 보며 , 망나니 성룡을 노숙자나 다름없는 알콜 중독자 소화자가 거두고 훌륭한 무도인으로 키워내는 영화가 자꾸 떠올랐다. 

7. 한걸음 떨어져 생각해보면, 사장인 로저의 착한 성품과 청소부에게 배우는 겸손한 태도야 말로 경영의 난국을 타파한 시작이었다. 그리고 깨달음에 대한 진지한 추구와 실천이야말로 난국의 극복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거야말로 우리의 삶의 이야기고 우리의 신앙이 가야할 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교만과 아집의 자리에서 내려와 근원과 대화하는 것!- 이거야말로 모든 참된 이야기의 시작이리라.

**** 배암발 : 외부 블로거이신 건이아빠님의 '의혹의 [청소부 밥]'이란 글이 재미있습니다. 저는 이글을 쓰고 나서야 읽어보게 되었는데 솔직하신 글이 무척 즐겁네요.

저도 이런 류의 책을 머리 식힐 겸 종종 읽는 편인데, 그저 '좋은 얘기야'라고 읽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도 건이아빠님처럼 '도대체 이 책을 좋다고 하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나?'하는 의혹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읽었고 제가 처한 이런 저런 상황을 다시 볼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좋았습니다. 여섯가지 지침이 내적인 맥락이 통합되어 있지 못하고 달그락 거리는 것도 조금은 재미있게 느껴지고, 오히려 작가의 진정성을 담고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되네요.  

여하튼 이런 류의 책이야말로 비판적인 독서가 필요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참고로 공병호 선생의 책[10년 법칙]에 대한 저의 리뷰가 그런 생각으로 쓴 대표적인 글입니다. 힘들여 쓴 글이라서 한번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 배암발2 : 밥 아저씨의 6개의 지침은 성서의 가르침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지쳤을 때는 충전하라'는 '안식일을 지켜라'가 되며, '투덜거리지 말고 기도하라.''소비하지 말고 투자하라'는 '하나님을 섬겨라'가 되고, '가족은 축복이다' '배운 것을 후대에 전달하라'는 것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 가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여하튼 이 책 [청소부 밥]은 미국의 기독교인들이 현실에서 겪게되는 일상적 갈등을, 로저라는 가상의 인물이 신앙으로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신앙과 직업에서 모두 성공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기독교를 이런 식으로 변용해서 세속화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네요. 거창하게 말하면 21세기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윤리]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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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 [할인행사]
피터 위어 감독, 에단 호크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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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는 1990년 작품으로 로빈 윌리엄스와 에단 호크의 20년전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생각보다 오래된 이 영화는 아직도 좋은 영화를 꼽을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제목부터 이상하게 삐걱거린다. 죽은 시인의 사회? 이게 과연 무슨 말인가? 영화 제목부터가 이해가 안되는데 이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꼽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얼 이해하고 있는걸까?  

2. 나는 '죽은 시인'이라는 단어에서 종종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라는 책 제목이 떠오른다. 책의 내용은 이미 죽은 경제학자의 시각이 혼돈스런 경제현상의 핵심을 포착하는데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죽은 시인의 인생에 대한 통찰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만큼 강렬한 것인지도 모른다.또 [어린 왕자]의 맨 앞부분이 떠오른다. 생 떽쥐베리는 어른이 되기위해 지리와 법률 등 삶의 기술을 배웠지만 그렇게 영위하던 삶은 결국 모래사막을 지나는 비행기처럼 막막해져서는 결국 불시착하고 말았다고 고백했었다.

삶의 아름다움과 진실을 전해주는 시를 더이상 읽지 않는 세상, 오로지 우수한 성적과 출세가도만이 교육의 전부인 세상에서 시인들은 차갑게 죽은 과거의 인간일 뿐이다. 이미 죽은 시인을 되살려 만난다는 것은 나의 존재의 심연과 만난다는 것이며 경직된 교육현장에 저항하는 것이 될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 갇힌 나를 벗어나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나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 - 이것이 'Dead Poet's Society'의 교육혁명인 것이다. 

따라서 Dead Poet's Society는 '죽은 시인의 사회'라고 번역되어서는 안되었다. '시인이 전해주는 삶의 진실에 귀기울이는 비밀 결사'라는 의미를 담는 '죽은 시인을 만나는 모임'정도가 낫지 않았을까? 

3. 최근에 우연히 [청소부 밥]이라는 책을 읽다가 밥이 로저에게 시계를 선물하는 장면을 유심히 읽게 되었는데 문득 떠오른 단어가 '카르페 디엠'이었다. 그리고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선생이 학생들에게 들려준 말이라는 것도 떠올랐다. 누구는 '카르페 디엠'을 '현재를 즐겨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면 키팅은 도대체 무슨 의미로 이 말을 쓴 것일까? 잠시 영화로 들어가 보자. 다음은 키팅이 이미 죽은 졸업생들의 오래된 사진을 보여주면서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If You listen real close, you can hear them whisper their legacy to you. Go on! Lean in! You hear it!..... Carpe....Carpe.....Carpe Diem! .....Seize the day, boys!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나는 이 부분의 영어번역이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번역은 seize the day 이하의 부분을 '현재를 즐겨라. 특별한 인생을 살아라'라고 적어놓았다. 그러나 나는 '현재에 충실하라. (누구도 대신 살수없는) 너만의 삶을 살아라'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4. 카리페 디엠을 이야기하기 전에 키팅이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을 버는 천사에게]라는 시가 있다. 시의 내용은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거두어라. 시간이 지나면 지고 말지니.'라는 거다. 사실 장미의 이미지가 성적인 쾌락이라는 것과 겹치기 때문에 이 역시 '젊음을 즐겨라'라는 식으로 번역하기가 쉽지만 시를 인용하고 나서 키팅이 하는 이야기는 진지하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죽어 차가운 시체가 된다." 카르페 디엠은 향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생명의 유한성 속에서 애타게 추구해야만 하는 존재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카르페 디엠'도 로마의 시인 Horatium(호라티우스)의 시 Odes에서 나온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 원문이 이렇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오늘을 잡아라. 그리고 내일이란 말을 믿지 말라" 저절로 금강경의 구절이 연상되는 시구이다. 사람의 삶이란 것이 과거도 아니요, 미래도 아닌 현재를 살 수 밖에 없다는 뜻이리라 생각된다. 교육은 과거의 당위로 현재의 학생들을 얽어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요, 오래되었지만 살아있는 현실과 지금의 학생이 만나 교류하게 하는 것이다.

5. 끝으로 '죽은 시인의 사회'와 '카르페 디엠'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터져나오는 시가 있어 소개한다. 휘트먼의 시로 이 역시 영화 속에 나온다. 그렇다. 삶이란 생동하며 아름다워야 한다! 이게 죽었지만 살아있는 시인들이 살았지만 죽은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 오 나여! 오 나의 생명이여! 수없이 던지는 이 의문! /          믿음없는 자들로 이어지는 도시, 바보들로 넘쳐흐르는 도시! 아름다움은 어디서 찾을까? /          오 나여! 오 생명이여! /         대답은 한가지 네가 여기 있다는 것! 생명과 존재가 있다는 것! /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 네이버 지식인 검색의 2artes님의 글과 네이버 블로거 dlxmfnt님의 글을 참조했습니다. 물론 번역이나 의견은 대부분 제 생각입니다.

*** 이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특별한 농구 코치의 영화 [코치 카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는 시와 같은 인문학적인 접근만이 자신을 발견하는 유일한 통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은 영화 속의 지나친 인문학에 대한 강조가 오히려 부담스러웠던 관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려 합니다. '키팅은 국어 선생님이고 카터는 농구 코치다' 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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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은 시인의 사회
    from ego + ing 2007-11-10 15:48 
    얼마 전 고교 때 활동했던 문학동아리 선후배를 만났다.즐거워야 할 술자리가 즐겁지만은 않은 것은 동아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몇 년 전부터 술자리에서는 동아리 재건을 위한 방안이 논의됐고,이번에도 그랬다. 어떤 이들은 일어나서 재건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역설했고,어떤 이들은 앉아서 현실성이 없다며 공허함을 토로했다.하나의 술자리를 두고 형성되는 윗공기와 아랫공기의 온도 차는서울 생활의 출발점이었던 옥탑방의 겨울공기처럼가벼운 절망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egoing 2007-11-10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귀한 글 잘 봤습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이 결국 한편의 시라는 시의 내용이 다시 한번 와 닫내요. 저의 부족한 트랙백도 걸어봅니다.

하늘연못 2007-11-12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나뵈서 반갑습니다. 우연히 네이버 지식검색을 하다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특이한 제목이 영화 보기를 방해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춘기의 호기심을 가지고 글을 써 보았습니다.사실은 이것 저것 짜집기가 많아 내심 부끄러웠던 글이었습니다.
여하튼 리뷰 후에 영화에 대해서는 조금 더 나아간 것이 있어서, 요즘은 '죽은 시인의 사회'를 '죽은 시인과 함께 사는 모임' 또는 '(내 안의)시인을 다시 살리는 모임'으로 번역하고 싶습니다. 여하튼, 저는 제목이라는 뚜껑만을 열었을 뿐이고,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분이 영화자체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신다면 글도 술술 풀리고 그걸 읽는 사람의 세상살이도 술술 풀릴 것입니다. 그런 감동이 있는 글이 간절합니다.
저는 어색하게 훈수두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그렇지만 그 훈수는 우선은 저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바탕은 단지 호기심이었으니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설혹 누추하고 경멸스러운 글을 쓸 수도 있으나 진실하며 근원을 모색하는 글을 쓰자는 것이 제 바램입니다. 앞으로 자주 뵙겠습니다.

하늘연못 2007-11-12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동아리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아름다움 중의 하나는 자발적이고 개성적인 동아리가 처음 생길 때의 열정이나 설레임 같은 것이 느껴진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시작된 동아리도 시간이 가면 처음의 그 모닥불 같은 무엇이 사라지고 잿더미처럼 느껴지죠. 그렇다면 동아리의 생명은 사람 숫자나 모임의 정례성 이런 게 아니고 맨처음의 갈망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갈망이란 그 시간과 공간에서 움튼 것으로 영원한 것은 아니고 자꾸 변해가는 거 아닌가요? 따라서 이 세상에서 생로병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다른 삶으로의 전환을 꿈꾸는 거라고 생각됩니다.그래서 저도 선생님 말씀처럼 자연스러운 죽음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스런 죽음은 선생님 말씀대로 거름이 되겠지요.
다만 자연스러운 죽음이라는 것은 목을 비틀어 죽이는 것이 아니고 죽음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죽음이 서글퍼서 글을 쓰시는 그 모습조차도 죽음의 얼굴아닙니까? 죽음이 삶의 한 자리라면 그 죽음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감정은 반드시 서글픔이나 좌절감일 필요는 없습니다. (경직되고 좌절스런 상황에서조차 상상력을 발휘하고 꿈꾸고 세상을 꽃피게 하자는 것이 모든 문학 동아리의 이상이 아닙니까?) 서둘러서 염하고 파묻을것이 아니라 그런 좌절과 파멸의 순간에도 여유와 멋을 잊지 않는 것이 소중한 이의 죽음으로부터 가장 많이 유산을 물려받는 것이겠지요. "야! 우리 열심히 해왔는데 이제 흩어야 될거 같아! 떠나면 이제 더 못하니까 마지막 힘을 모아서 이런 거 어때?" 죽음의 자리는 화해의 자리도 축제의 자리도 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참고로 몇 달 후에 재개발로 닫게 되는 화양극장이 마지막으로 재건축을 해서 40년전의 모습으로 바꾸고 [더티 댄싱]을 마지막까지 상영하겠다고 했을 때 화양극장은 죽어도 제 가슴 속에 추억으로 간직되리라는 걸 알았답니다.)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동아리의 죽음이 아니고 마음 속의 갈망이며 그 불꽃을 어떻게 살려나갈 것이냐 어떻게 다른 불꽃으로 피워나가느냐는 것입니다. 불꽃이 있는 한 동아리는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동아리의 생명은 이름이나 조직이 아니라 열정으로 빚어낸 거니까요.
명목만 있는 잿더미같은 동아리는 오히려 불꽃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습니다. 불꽃이여 퍼져라. 그리고 언제 또 만나자! 잘은 모르지만 저는 이런 세상살이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이 되요.

egoing 2007-11-12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귀한 글 감사합니다. 슬퍼하는 것 또한 죽음의 한 모습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닫내요. 이번에 시전을 준비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것이 그런 의미의 축제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나설 수 있을텐데요. 문제는 누군가의 죽음은 여러사람의 문제라는 것이겠지요. 어떤 이는 죽음을 또 다른 시작으로 반길 수 있지만, 어떤 이는 그렇게 할 수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죽음의 다의성이란 그런점에서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죽음을 독점할 수 없기에.... 자주 뵙겠습니다. :)

하늘연못 2007-11-12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을 독점할 수 없으시다는 말씀이 정말 찡합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계절은 그렇게 와서 또 그렇게 가는 것일텐데 환절기에는 감기를 앓기도 하지 않는가?'하는 ....아마도 선생님 의견도 비슷하시리라 생각이 됩니다.저 역시 감기에 걸리지 않으면 좋겠지만, 우리의 삶이 그런 불편한 질환을 피할 수 없는 부분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기에, 중요한 것은 그러한 만남 속에서 새로운 통찰과 자기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애써 성급하게 약을 써서 증세만 잠복시키는 그런 인위적인 조치를 싫어합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죽음에 있어서도 온전히 그 일들을 겪어내는 것이 중요하고 그 과정에 다양한 모습들이 어우러지고 부대끼면서 새로움을 만들어내게 된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여하튼, '번뇌심이 보리심'이라는 말도 있지않습니까? 시전이 현상황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아내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상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례를 행한 것을 양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egoing 2007-11-12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무례라뇨. 이렇게 함께 고민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궁금한게 있는 데 오래된 미래는 라다크로부터 온 것인가요? ^^

하늘연못 2007-11-13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그런데 그 책을 아직 읽지는 못했어요.제목에서 묘한 여운을 느껴서 차용을 했어요. 저는 대학에 학생으로 15년 있었는데 결국 남기를 포기하고 나왔거든요.우스운 이야기지만 제가 막걸리와 농구를 좋아하는데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니까 잘 놀아서 좋긴 한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도대체 책을 읽는 것을 어디다 써먹나 또는 내가 책을 읽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서글픈 고민이 들었습니다.그렇다고 서둘러 또다른 패거리에 들기는 너무도 싫었습니다. 그 때 보던 책이 이수태 선생님 책입니다.
이름을 지을 당시 선생님의 [누룩 곰팡이의 노래]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삶이 보여주는 독서인의 삶이 감동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책이라는 이질적인 세계를 나의 일상을 발효시키는 곰팡이로 삼아 경직되어가는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위안을 했죠.
저는 독서인이란 다른 것이 아니고 홀로된 인간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물론 여러 길 중의 하나일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홀로되었기에 무엇이든 찾아나서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홀로됨의 초라함과 유한성이 궁극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고 차마 용기낼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열림과 트임의 경험이 독서인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추구하는 삶은 숙성되어 어느덧 새로운 미래로 변질되는, 일상 속에 살아가지만 언제나 새로움과 낯섬이 곰팡이처럼 그 안에 살고 있어서 미리 생각하지 않았던 차원과 세계로 들어서는 삶입니다.
이런 삶의 모습이 또다시 곰팡이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책읽는 내가 곰팡이다라는 느낌이 절실히 들더군요. 곰팡이란 놈은 조금 재미있는 녀석인데 어찌보면 냄새나고 구린 누구도 크게 생각하지 않는 존재이면서 그럼에도 녀석을 둘러싼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어요.(더 재미있는 것은 곰팡이가 특정한 숙성을 사명감처럼 안고 살지도 않는다는 것이죠. 발효의 모습은 아주 다양하니까요.^^)
여하튼 이래 저래 생각이 많았던 때에 지었던 이름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런게 고민이 아니라 아예 책읽을 겨를이 없다는 것이 문제죠.--대작을 못읽은지도 오래고 결국 영화리뷰를 올리면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혹시 만의 하나 이수태 선생님 책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논어의 발견]이라는 책 한 권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저도 궁금한 것이 있는데, egoing은 ego + ing입니까? easy + going입니까? 선문답은 아니고^^ 에고잉으로 읽어야 하는지 이고잉으로 읽어야하는지 궁금해서요.사실, 어제 저도 무슨 뜻인지 궁금했거든요.

egoing 2007-11-13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고잉이라고 사람들은 부르더라구요. ^^ 오래된 미래는 제가 아주 인상깊게 읽은 책입니다. 3번인가 본 것 같고요. 기회될 때마다 보려고 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하늘연못님이 저의 오래된 미래 중 하나일 것 같은 생각이 드내요. 제가 너무 시간을 많이 뺏은 것 같내요. 귀한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자주 들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