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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 [할인행사]
피터 위어 감독, 에단 호크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1. 이 영화는 1990년 작품으로 로빈 윌리엄스와 에단 호크의 20년전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생각보다 오래된 이 영화는 아직도 좋은 영화를 꼽을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제목부터 이상하게 삐걱거린다. 죽은 시인의 사회? 이게 과연 무슨 말인가? 영화 제목부터가 이해가 안되는데 이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꼽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얼 이해하고 있는걸까?
2. 나는 '죽은 시인'이라는 단어에서 종종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라는 책 제목이 떠오른다. 책의 내용은 이미 죽은 경제학자의 시각이 혼돈스런 경제현상의 핵심을 포착하는데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죽은 시인의 인생에 대한 통찰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만큼 강렬한 것인지도 모른다.또 [어린 왕자]의 맨 앞부분이 떠오른다. 생 떽쥐베리는 어른이 되기위해 지리와 법률 등 삶의 기술을 배웠지만 그렇게 영위하던 삶은 결국 모래사막을 지나는 비행기처럼 막막해져서는 결국 불시착하고 말았다고 고백했었다.
삶의 아름다움과 진실을 전해주는 시를 더이상 읽지 않는 세상, 오로지 우수한 성적과 출세가도만이 교육의 전부인 세상에서 시인들은 차갑게 죽은 과거의 인간일 뿐이다. 이미 죽은 시인을 되살려 만난다는 것은 나의 존재의 심연과 만난다는 것이며 경직된 교육현장에 저항하는 것이 될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 갇힌 나를 벗어나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나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 - 이것이 'Dead Poet's Society'의 교육혁명인 것이다.
따라서 Dead Poet's Society는 '죽은 시인의 사회'라고 번역되어서는 안되었다. '시인이 전해주는 삶의 진실에 귀기울이는 비밀 결사'라는 의미를 담는 '죽은 시인을 만나는 모임'정도가 낫지 않았을까?
3. 최근에 우연히 [청소부 밥]이라는 책을 읽다가 밥이 로저에게 시계를 선물하는 장면을 유심히 읽게 되었는데 문득 떠오른 단어가 '카르페 디엠'이었다. 그리고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선생이 학생들에게 들려준 말이라는 것도 떠올랐다. 누구는 '카르페 디엠'을 '현재를 즐겨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면 키팅은 도대체 무슨 의미로 이 말을 쓴 것일까? 잠시 영화로 들어가 보자. 다음은 키팅이 이미 죽은 졸업생들의 오래된 사진을 보여주면서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If You listen real close, you can hear them whisper their legacy to you. Go on! Lean in! You hear it!..... Carpe....Carpe.....Carpe Diem! .....Seize the day, boys!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나는 이 부분의 영어번역이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번역은 seize the day 이하의 부분을 '현재를 즐겨라. 특별한 인생을 살아라'라고 적어놓았다. 그러나 나는 '현재에 충실하라. (누구도 대신 살수없는) 너만의 삶을 살아라'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4. 카리페 디엠을 이야기하기 전에 키팅이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을 버는 천사에게]라는 시가 있다. 시의 내용은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거두어라. 시간이 지나면 지고 말지니.'라는 거다. 사실 장미의 이미지가 성적인 쾌락이라는 것과 겹치기 때문에 이 역시 '젊음을 즐겨라'라는 식으로 번역하기가 쉽지만 시를 인용하고 나서 키팅이 하는 이야기는 진지하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죽어 차가운 시체가 된다." 카르페 디엠은 향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생명의 유한성 속에서 애타게 추구해야만 하는 존재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카르페 디엠'도 로마의 시인 Horatium(호라티우스)의 시 Odes에서 나온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 원문이 이렇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오늘을 잡아라. 그리고 내일이란 말을 믿지 말라" 저절로 금강경의 구절이 연상되는 시구이다. 사람의 삶이란 것이 과거도 아니요, 미래도 아닌 현재를 살 수 밖에 없다는 뜻이리라 생각된다. 교육은 과거의 당위로 현재의 학생들을 얽어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요, 오래되었지만 살아있는 현실과 지금의 학생이 만나 교류하게 하는 것이다.
5. 끝으로 '죽은 시인의 사회'와 '카르페 디엠'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터져나오는 시가 있어 소개한다. 휘트먼의 시로 이 역시 영화 속에 나온다. 그렇다. 삶이란 생동하며 아름다워야 한다! 이게 죽었지만 살아있는 시인들이 살았지만 죽은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 오 나여! 오 나의 생명이여! 수없이 던지는 이 의문! / 믿음없는 자들로 이어지는 도시, 바보들로 넘쳐흐르는 도시! 아름다움은 어디서 찾을까? / 오 나여! 오 생명이여! / 대답은 한가지 네가 여기 있다는 것! 생명과 존재가 있다는 것! /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 네이버 지식인 검색의 2artes님의 글과 네이버 블로거 dlxmfnt님의 글을 참조했습니다. 물론 번역이나 의견은 대부분 제 생각입니다.
*** 이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특별한 농구 코치의 영화 [코치 카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는 시와 같은 인문학적인 접근만이 자신을 발견하는 유일한 통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은 영화 속의 지나친 인문학에 대한 강조가 오히려 부담스러웠던 관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려 합니다. '키팅은 국어 선생님이고 카터는 농구 코치다' 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