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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 ㅣ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평점 :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는 명확한데 정답은 정해지지 않은 질문이 아닌가 싶다. 나 역시 사춘기가 지나도 골백번은 지났을 나이인데 아직도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원하는가?'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누군가 서른을 포기할 수도 그렇다고 안주 할 수도 없는 나이라고 했는데 너무 정확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엔 늦은 것 같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살아가기엔 아직도 남은 날들이 너무나 많은 나이. 또 다른 누군가는 20대엔 하고픈 일을 찾고, 30대엔 그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난 도대체 지금껏 뭘 했나 싶어 답답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정말 인간 수명이 늘어난만큼 철이 늦게 드는걸까?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친구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 '1984'나 '멋진 신세계'와 비견된다기에 기대감이 높았다. 게다가 처음 접하는 나라의 작가라니 더불어 흥분도 됐는데 세상에나 2058년이면 내 나이가 81세. 과연 그 날이 올까? 끔찍한 미래이긴 하다.
이야기는 이렇다. 외부 세계와 차단된 미래의 어느 곳. 그들은 자신들의 체재를 지속시키기 위해 외부와의 철저한 차단속에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날 한 소녀가 바다의 해안 방벽에 접근하게 되고, 지금까지 잘 유지되던 사회에 작은 파문이 일어난다. 그 사건의 중심엔 해안 방벽을 지키던 아담이 있다. (인류의 조상. 창세기에 등장하는 동일한 이름을 가진 아담이 말이다.) 그는 사회의 규율과 그동안 자신의 신념(?)을 어기면서까지 소녀를 구하고, 결국 감옥에 갇힌다. 그리고 감옥에서 로봇 아트와 만나 논쟁을 벌이게 되는 사건을 학술원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을 보는 아낙스가 주제로 삼으면서 학술원 심사단과의 면접상황이 번갈아가며 연결되는 구성으로 진행된다. 아담과 아트의 논쟁을 화면으로 보고난 후 심사단의 질문에 아낙스가 자신의 생각을 답하는 그런 방식으로 말이다.
솔직히 처음엔 그저 그랬다.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 아니였으니깐. 지금껏 인간같은 로봇, 로봇같은 인간의 이야기는 흔하게 접할 수 있었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양상은 달라진다. 치열하게 철학적 논쟁을 벌이는 아담과 아트.
먼저 아담은 말한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갖고 있더라도 결국 기계는 기계일 뿐이라고. 인간의 손에 의해 조립되어 만들어진 기계. 인간보다 월등한 지능을 가졌더라도 결국 인간과 같을 수 없다고. 왜냐하면 인간은 관념. 즉 저장된 프로그램에 의해 지식을 검색하고,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반응하고, 공감 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에 아트는 반박한다. 벌이나 나비같은 곤충도 지능을 가진 존재로 인정할 수 있느냐고? 그들은 조상이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갈 뿐 다른 것엔 관심조차 가지지 않지만 그에 비해 비록 기계일지라도 높은 지식과 수많은 정보를 조합 할 수 있는 로봇이 더 생명력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과연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솔직히 나는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 것 같다. 팔랑귀라 그런건지 그들의 말이 다 논리적이라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이 논쟁에서 아담이 승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단 한가지 이유. 인간이 기계보다 월등한 이유는 바로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것이였다. 감옥에 갇힌 아담은 포기하지 않고, 탈출을 꿈꾸고 먼 미래를 생각하지만 아트는 높은 지능과 사고를 가졌지만 그곳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꿈도 미래도 없이 그저 현재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들이 가장 다른 점은 그것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꿈을 가지는 것.
만약 아담이 떠내려온 소녀의 눈을 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자신이 배우고, 습득한 채로 소녀를 죽였다면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손가락만한 틈이 결국 제방을 무너뜨리듯 그들은 작은 변화조차 두려워한다. 그들은 체재 유지를 위해 (어떤 의미에서든) 변화(진화)를 거부한다.
아담이 죽으면서 아트에게 남긴 것. 결코 만족하지 않고, 발전된 삶을 꿈꾸는 것. 그것이 '원죄'라면 우리 모두는 그런 의미에서 아담과 같은 죄를 짓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아담은 인간으로 설정하면서 그 사회 구성원들은 인간이 아닌 유인원으로 설정했을까? 진화의 과정에선 인류와 같은 조상을 가졌지만 지금은 다른 유인원으로 말이다. 또한 아담(인간)이 문화와 문화를 이어주는 매개체(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빔')로 설정했는지도 궁금하다.
사회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한다. 하루가 다르게 생성하고, 소멸하는 많은 것들. 그것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되어 버려지는 현실. 하지만 사라진다고 해서 모두 잊혀지는 것도 아니고, 소중하지 않은 것도 아닌 것 같다.
고인 물은 작은 돌만으로도 탁해지지만 흐르는 물은 바위까지 깍아버릴 만큼의 힘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삶의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고, 중심을 잡는 일이 아닌가 싶다.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조작하고, 숨기는 사회는 결국 지속되지 못한다는 진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하찮게 생각하지 말고, 모든 사회 구성원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이 사회를 지속시키는 힘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에게도 이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이브가 선악과를 먹으며 인류가 시작되었듯 아담이 소녀의 눈을 보고 의식이 변했듯 어쩌면 돌연변이가 새로운 사회의 포문을 여는 '빔'이 아닐까 싶다. 내일을 생각하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삶은 지속될 것이고, 우리는 행복할 것 같다.
오랜만에 신선한 책을 읽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어 더없이 즐거운 책읽기였다. 이런게 바로 책읽는 즐거움이 아닐까 싶네. 행복한 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