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의 마지막 수업 - 나를 만든 세계문학고전 독법
구본형.박미옥.정재엽 지음 / 생각정원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속에서 말하는 책 가운데서 제가 본 적 있는 것은 네 권뿐입니다. 한두 권 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한 권은 조금 본 적 있고, 한 권은 책보다는 그냥 아는 이야기니까요. 이렇게 해서라도 더 안다고 말하고 싶은가 봅니다. 책 이야기가 있는 책을 볼 때는 제가 본 책이 거의 없을 때가 더 많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제가 그런 책을 자주 만나본 것은 아니군요. 사람마다 좋아하는 책이 다르기도 하지요. 여기에서는 고전만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를 만드는 세계문학고전 읽는 법’이라는 말도 있군요. 여기에 나오는 책은 EBS 라디오 <고전읽기>에서 읽어주기도 했습니다. 전에 저도 방송을 들었습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은 것은 아니고 들을 수 있을 때 들었습니다. 그래서 구본형 님이 방송을 그만두었을 때 조금 아쉬웠습니다. 언젠가 건강해지면 다시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날은 오지 않겠군요. 방송을 그만두기 전에 잠깐 쉬었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때 구본형 님이 암수술을 했던가 봅니다. 라디오 방송에서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는 분은 아니지만 라디오 방송을 들어서 구본형 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렇잖아요.

 

구본형 님이 라디오 방송을 하던 것을 들은 지 한해 넘게 지나서 그때 구본형 님이 어땠는지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단 하나 생각나는 것은 그렇게 몸이 안 좋았는데도 하고 싶은 일이 아직 많다고 한 거예요. 세상을 떠나서 하고 싶은 거 못하게 되어서 아쉽겠구나 했습니다. 하지만 사는 동안 즐거웠을 거예요. 긴 시간은 아니더라도 구본형 님이 하고 싶은 것을 했으니까요. 저는 별로 못 만났는데 책도 많이 남기셨지요. 그렇게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석가의 마지막 가르침이 나옵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의지해라. 또한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에 의지해라. 모든 것은 덧없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해라(자등명법등명 自燈明法燈明). (403쪽)’ 좋은 말 같기도 하면서 고개가 갸우뚱하기도 합니다. 자신을 의지하고 진리를 의지하라고 해서. 나쁜 말은 아니지만 조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자신도 의심하고 진리도 의심해야 하니까요. 모든 것은 덧없는데 왜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해야 할까 잠깐 생각했습니다. 덧없이 사라지니까 오늘을 잘 살아야 하는 거겠지요. 얼마전에는 ‘적당히 사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쪽이 더 좋아요. 뭐든 뜨거운 마음으로 해도 좋겠지만, 힘 빼고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그래도 열심히 하는 사람 보면 부럽습니다. 저는 그렇게 못하니까요. 구본형 님도 뜨거운 마음으로 살다가 갔겠지요.

 

몇 해 동안 책을 보면서 고전은 거의 안 보았습니다. 제가 좀 삐딱해요. 남들이 해야 해 하면 하기 싫어요. 인문도 마찬가집니다. 그런 말이 없었으면 편하게 보았을지도 모르는데. 제가 앞에서 본 적 있다고 한 책은 고전을 보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기 전이에요. 어쩌면 그때도 그런 말이 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지금 나오는 책이라고 해서 고전보다 못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전이 있어서 여전히 책이 나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전을 보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요. 오래전 사람과 지금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달라도 꿈꾸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살아가는 것은 같잖아요. 오래전 책을 보고 ‘그때도 이랬어’ 하지요. 그리스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지금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을 만한 겁니다. 실제 책뿐 아니고 여러가지로 나오기도 했군요. 그런데 정해진 운명은 바뀌지 않을까요. 오이디푸스와 부모가 운명을 바꾸기 위해 한 일은 다시 그 운명으로 이끌었잖아요. 피했기 때문일지도. 나중에 오이디푸스는 운명을 피하지 않고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태어났다고 합니다. 자기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것을 안 오이디푸스가 자기 눈을 찌르고 어둠에 갇혔을 때, 오이디푸스는 새롭게 인간의 본질을 이해했답니다. 저도 잘 모르고 이런 말을 했군요. 말을 꺼냈는데 어떻게 이어야 할지 몰라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을 때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기도 할 것 같아요. 이 책 속에 나오는 것만 보기보다는 전체를 보면 좀더 알 수 있을지도. 언제 볼지 모르겠군요.

 

제가 본 것 가운데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도 있습니다. 그저 읽었고 제대로 알지는 못했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지 받는 게 아니라고 하네요. 자신을 모두 내주는 게 진정한 사랑이라는군요. 서로 주고받는 것도 좋겠지만 주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낀다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준만큼 받으려고 하지 않는 게 좋겠지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말할 때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베르테르가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것은 실제 죽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죽지만 죽은 게 아니라니, 이런 생각을 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에서는 몸을 버리고 영혼이 자유로워졌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것과 조금 다르게 생각한 것 같아요. 좋아하는 사람과 이뤄지지 않아서 괴로운 자신은 죽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자신으로 바뀌는 것은 아닐까였을지도. 지금의 자신을 버리고 다시 태어나는 거죠(이것은 오이디푸스가 그랬다고 했군요). 예전에는 베르테르가 사랑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안 좋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문학으로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죽을 만큼 누군가를 좋아해 본 사람 부럽군요.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가면 더 좋겠습니다. 사랑하라는 말을 쉽게도 하던데, 이때 주는 사랑을 하라는 말도 덧붙이면 낫겠습니다. 두 사람이 마음이 맞아서 서로 좋아하면 좋겠지만, 언제나 일이 그렇게 잘 돌아가지는 않거든요. 지금 생각하니 꼭 이성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아니군요. 자연을, 세상을 사랑하는 것도 좋은 일이에요.

 

고전도 중요하지만 저는 어떤 책에서든 무엇인가 하나라도 배운다면 좋다고 봅니다. 책에 나온 거라 해도 모두 옳지는 않습니다. 그런 것도 잘 가려낼 수 있어야겠지요. 저도 아직 멀었습니다. 마음을 닦는다는 생각으로 책을 보려고도 하는데 쉽지 않네요. 마음을 닦는다고 해서 종교를 갖거나 명상책을 보아야 하는 건 아니죠. 제가 아직 고전을 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지는 않았군요. 언젠가 우연히 보는 날도 있겠지요. 책을 보고 생각하고 실천하고 살면 좋을 텐데, 실천은 잘 못하고 있습니다. 큰 일은 못해도 작은 일은 해야겠습니다. 좀더 넓은 마음으로 보기. 제 마음은 여전히 좁습니다. 앞에 넣으려다 넣지 못한 말, ‘나 자신을 좋아하기’도. 다른 것은 몰라도 《그리스 로마 신화》는 보고 싶기도 합니다. 예전에 한번 본 적 있는데 잊어버렸습니다. 신화는 한번이 아니고 여러번 보는 게 좋겠지요. 우리나라 신화 《삼국유사》도요.

 

 

 

*그냥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죽는 것은 실제 죽음이라기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자신이 죽는 것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위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된다고 했지만, 그렇게까지 안 되고 그만 좋아하는 거죠. 그것 또한 죽음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소설에서는 실제 죽지만, 현실에서는 다르게 보아도 괜찮지 않을지. 그런데 그때 사람들이 베르테르를 따라하기도 했다죠. 괴테 자신은 오래 살고 젊은 사람은 죽게 만들다니, 그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다른 것은 말하지 않고 베르테르가 죽은 일만 말하다니. 예전에 한번 읽어보기는 했는데 잘 생각나지 않아서예요.

 

 

 

희선

 

 

 

 

☆―

 

“교육은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행동하지 않을 때 행동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121쪽)

 

 

지나고 나면 삶은 꿈같은 것이다. 삶에는 정해진 아무런 목적이 없다. 삶의 목적이 단 하나 있다면 삶 자체다. 여행의 목적이 목적지에 닿는 것이 아니라 여행 자체인 것과 같다. 하지만 삶이 현실만으로 만들어졌다고 여기지 말자. 현실에 갇히면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32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솔린 생활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 제목을 보고 다음에 작가 이름을 보았을 때는 ‘처음 보는 이름이네’ 했어. 그러고서 나중에 한번 볼까 했지. 다음에 이 책을 보았을 때는 작가 이름을 알아보았어. 예전에 책 몇권 보았는데 한동안 못 보아서 잠깐 잊어버렸던 거였어. 이사카 고타로는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작가거든. 그런데 예전에 어떤 책을 내가 제대로 못 본 적이 있어. 그 뒤로 잘 안 보다가 다시 보게 되었는데 아주 다르더라구. 이 작가 글 쓰는 게 한가지는 아닌가봐. 그렇다고 내가 나중에 본 쪽을 좋아하는 건 아니야. 아주 좋아하지 않아도 그냥 책을 보기도 하잖아. 이사카 고타로 책이 나한테는 그런 것 가운데 하나야. 이것은 내가 그런 것이지 모두 그렇게 여기지는 않을 거야. 이사카 고타로가 쓴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 나도 아주 싫어하는 건 아니야. 그러고 보니 얼마전에도 오랜만에 만나 본 작가 책이 있었다. 뒤에서 옮긴이 말을 보니 이 책 작가가 오랜만에 쓴 거래. 센다이가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2011년에 일본에서 큰지진이 있었잖아. 작가가 지진이 일어난 지역(센다이)에서 살았던가봐. 그때는 바로 무엇인가를 쓸 수 없었대. 내가 같은 일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아주 조금은 그 마음 알아. 자연 앞에 우리는 정말 작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사는 게 덧없어지는. 그래도 사람은 살아있으면 울고 웃어. 작가는 사람들을 웃게 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이 글을 썼대.

 

앞에서 센다이를 말했잖아. 이사카 고타로가 쓰는 소설 공간 배경은 센다이일 때가 많아. 모두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몇권은 센다이였어. 그리고 음악이야기도 나와. 전에는 비틀즈 음악이 나왔는데, 지금 생각나는 것은 이것뿐이지만 다른 사람 음악도 나왔을 것 같아. 이번에도 당연히 나와. 나는 잘 모르는 사람으로 프랭크 자파야. 프랭크 자파 노래만 듣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인 호소미 씨는 자파가 하는 노래 노랫말을 인용한 말을 자주 해. 그게 참 괜찮은 말이야. 호소미 씨가 타고 다니는 차를 다른 차들이 자파라고 해. 이런, 이야기하는 차례가 조금 바뀌었다. 어쩔 수 없지.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게 누군지 알아. 차야. 일본 마쓰다에서 나오는 데미오로 색은 풀색이야. 그래서인지 책 껍데기를 벗기면 풀색이 나와. 풀색 데미오는 모치즈키 집안 차야. 모치즈키 집안은 엄마 이쿠코, 큰아들 요시오, 딸 마도카, 그리고 막내 도루 이렇게 네식구야. 아빠는 막내 도루가 태어나고 차 사고로 죽었대. 도루는 초등학교 5학년인데 이 나이 때 아이들과는 다르게 어른스러워. 아는 것도 많아.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아빠가 없어서가 아닐까 싶었어. 아빠 없는 아이가 모두 어른스러운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프랭크 자파만 듣는 호소미 씨는 모치즈키 집 이웃이야. 그래서 차인 데미오와 자파는 친해. 데미오는 ‘데미’라고도 해.

 

차가 말을 해서 사람들만 있을 때 이야기는 거의 안 나와. 차도 사람들이 자기가 들을 수 있게 해주기를 바라. 차는 달려야 차 노릇을 하는 거잖아. 어떤 차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있기도 해. 그래서 모르는 차가 가까이 오면 말을 해. 가만히 있는 차는 차들이 알고 있는 소문을 몰라. 차와 자전거는 말이 안 통해. 그런데 기차하고는 말이 통하는 듯해. 자전거는 차보다 못하다 생각하고 기차는 차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해. 재미있지. 차가 사람과 말을 해도 재미있겠지만 차가 사람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 듯해. 이런 생각도 들었어. 차를 나쁜 일에 쓰면 차가 슬퍼하겠다는. 실제로 여기에서도 그랬어. 차에 주인이 아닌 나쁜 사람이 탔을 때 그 차는 다른 차한테 도와달라는 말을 했거든. 하지만 차 스스로 다른 차를 도와줄 수는 없어. 알고도 아무것도 못하는 마음은 그리 좋지 않을 듯해. 그래도 차는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어.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하고 쉽게 이야기하지 않지만, 차들은 처음 보아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어. 어쩌면 그렇게 만나는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 옆집에 살거나 같은 곳에 가지 않는 한 여러번 만나기는 어렵잖아.

 

어쩌다 보니 차 이야기만 했네. 그것도 많이 못했지만. 이 이야기에는 커다란 일 하나에서 두갈래 더 나뉘어. 두번째는 첫번째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지만 세번째는 조금 다르기도 해. 하지만 아주 관계없지 않기도 해. 다시 생각해보니 샛길이 하나 더 있었던 것 같아. 가장 큰 이야기는 일을 그만둔 여배우 아라키 미도리와 애인 니와가 기자한테 쫓기다 차 사고로 죽은 일이야. 이 이야기가 모치즈키 집안과 어떻게 관계가 있느냐구. 아라키 미도리는 집안이 대단하고, 배우를 하다가 결혼하고는 일을 그만두었거든. 그런데 사람들 관심이 즐어들지 않았어. 아라키 미도리가 차 사고가 나기 전에 모치즈키 요시오가 운전하는 데미오에 탔어. 요시오가 차를 운전할 때 차 안에는 막내 도루도 타고 있었어. 잡지를 보면서 도루와 요시오는 아라키 미도리 이야기를 했거든. 엄청난 우연이지. 아라키 미도리가 애인과 함께 차 사고로 죽은 것은 다이애나 비 일을 생각하고 쓴 거래. 지금도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 어딘가에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하잖아. 그것은 정말 소문이겠지. 여기에서는 아라키 미도리가 살아있다는 소문이 차들 사이에 퍼져. 이 이야기는 사회문제를 나타내고 있기도 해. 미디어라고 해야겠다. 그러고 보니 전에 본 이 작가 책에도 그런 게 나왔어. 어떤 사람을 범인이라고 방송에서 말하니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믿고 그 사람을 범인으로 믿었어. 그래서 그 사람은 이리저리 달아나야 했지. 나는 연예인이 어떻게 사는지 별로 관심없는데, 그 사람들 이야기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은가봐. 그리고 가끔은 없는 이야기도 지어내고. 그런 일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구나. 이름과 얼굴이 잘 알려졌다 해도 그 사람들도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는데.

 

모치즈키 집안 막내 도루가 어른스럽다고 했잖아. 그것 때문에 도루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어. 모든 아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고 도루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패거리가 있었어. 그 아이들이 도루를 괴롭히려 해도 도루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는데 다른 아이를 끌어들여서 도루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세 아이들이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방법은 아주 비겁했어. 다른 사람 약점을 잡아서 그것을 놀리는 거였어. 그리고 못난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서 인터넷에 올린다고 했어. 어쩐지 그 아이들 어른 흉내를 내는 것 같았어. 실제로도 그런 아이들 있을지도 모르겠어. 누군가 자신을 괴롭히면 괴롭겠지만 거기에 지지 않아야 해. 무슨 말을 해도 아무렇지 않아 하면 괴롭히던 사람은 재미없어져서 그만둘거야. 도루는 아이들을 겁먹게 했어. 조금 거짓말을 섞었지만. 사람한테는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어. 아무리 특종을 바라는 기자한테도 착한 마음이 있었어. 하지만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그런 사람은 언제까지고 달라지지 않겠지. 아니 바뀌는 사람도 있을거야. 나는 그렇게 믿고 싶어. ‘남은 이야기’는 십년 뒤야. 풀색 데미오가 언젠가는 자신이 모치즈키 집안 사람들과 헤어지겠구나 했을 때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한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어. 그 부분 좋았어. 차뿐 아니라 어떤 물건에든 마음이 깃들어 있을지도 몰라. 그런 것을 함부로 버리지 않았으면 해. 끝까지 소중하게 쓰면 차도 다른 물건도 기뻐하지 않을까.

 

 

 

희선

 

 

 

 

☆―

 

“프랭크 자파는 이렇게 말했어. ‘사람들이 하는 생각의 구십구 퍼센트는 실패한다.’ 좋은 말 아니냐?”

 

“글쎄 그다지…… 좋은 말 같지는 않은데.”

 

“호소미 씨는 아침 조례 시간에 자주 아이들한테 말하는 모양이야. ‘잘 들어라. 사람들이 하는 짓 가운데 구십구 퍼센트는 실패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든 망설이거나 창피해할 필요 없다. 실패하는 게 보통이니까 말이다!’ 고 말이야.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것은 그런 거야.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인명사고는 절대 일으켜서는 안 될 일이지.”  (24쪽)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풀색 데미오가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어서 찾아보았지만 괜찮은 사진이 없었다. 그래도 하나 찾았다. 하지만 이 책 속에 나온 것과 같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책에 나오는 풀색 데미오는 좀더 전에 나온 것 같으니까.

 

언제 나오든 차 모양은 거의 같지 않을까. 파랑이 멋지게 보여서 밑에 풀색 데미오를 붙였다. 그러고 보니 다른 차는 만났지만 같은 데미오는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데미오끼리 이야기하는 것도 나왔으면 재미있었을 텐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05-10 0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1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멸화 - 꽃을 사르는 불
이경민 지음 / 노블마인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사진은 빌려온 것, 그래서 손은 다른 사람 손

 

 

 

지금 시대에 일어나는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우리가 모르는 조선시대 이야기도 재미있다. 그런데 그런 책 많이 못 보았다. 조선시대 하면 ‘조선왕조 500년’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드라마에서는 왕과 그 둘레 사람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다. 예전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왕권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이 말이다. 드라마 <대장금>은 수라간 궁녀에서 내의원(내의녀)이 되는 이야기지만 여기에도 왕을 사이에 둔 다툼이 있었다. 궁 사람들의 힘 싸움도. 조선시대에도 서민이 살았을 텐데 그런 사람들보다 궁 사람 이야기가 더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알고 싶으면 찾아서 보아야 하는데 그러지는 않는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었다. 조선시대는 어느 때보다 오래 이어져 왔다고, 그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는. 이 말을 들었을 때도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그게 정말 대단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500년 동안 신분제도가 있었으니 말이다. 양반이야 좋았겠지만 양반이 아닌 사람은 그리 좋지 않았을 테니까. 평민도 있었겠지만 사회는 양반을 주체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신분제도가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구나. 오래 이어져 온 조선왕조는 무너지고 왕이라는 신분은 아주 없어졌다. 이것은 조금 아쉽기도 하다. 이름뿐이어도 왕이 있는 것도 괜찮을 테니까.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왕이 사라진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 무엇인가를 해서가 아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해서 일어난 일이다. 그렇기에 아쉽다. 우리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나서 지금 시대가 왔다면 좋았을 텐데. 조선시대에도 무엇인가를 하려고 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나도 잘 모르는 말을 했다. 그냥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다. 역사책에는 몇 사람의 이름밖에 없지만, 우리나라를 이끌어온 것은 이름 모르는 백성이다. 백성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나라가 있는 거다. 그런 사람들 삶을 알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왕과 궁과 그 둘레 사람들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니다. 조선 과학수대라고 해서 <별순검>이라는 것도 했다. 예전에 재미있게 보았다. 책이 아닌 드라마만 말하다니. 이 책에는 조선시대 소방서 수성금화사의 소방관 멸화군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말했지만 수성금화사가 지금의 소방서라고만 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불은 지금도 무섭지만 조선시대 때는 더 무섭지 않았을까. 제대로 된 연장도 없이 불을 끄려 한 멸화군에도 죽은 사람이 많았을 것 같다. 그리고 불에 덴 상처가 언제나 사라지지 않았겠지. 이 책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것 때문이다. 왕권을 둘러싸고 궁에서 일어나는 힘 싸움이 아니라는 것. 그렇다고 그게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크게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한성에서는 까닭을 알 수 없는 불이 난 지 한달 이상이 지났다. 범인으로 보이는 빠른 발을 잡지만 다시 불이 난다. 호림은 답교놀이가 있던 날 모르고 빠른 발을 달아나게 해주어서 방화범으로 몰려서 한성부에 잡혀간다. 그것을 수성금화사 별제 의준이 빼내준다. 의준은 호림한테 멸화군 두령이 되어 연쇄살인방화범을 찾으라고 한다. 불을 껐을 때 인두로 지진 시체가 나왔다. 그래서 연쇄살인방화라 한 거다. 호림은 조사를 해나가다 십년 전 한성에서 일어난 큰불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지금과 십년 전 사건, 이어져 있을까. 이런 애매한 말을 하다니. 작가는 조선왕조실록에서 한성에서 일어난 큰불의 범인을 처형하고 끝낸 일에 의문을 갖고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실제 일어난 일과 상상한 일이 함께 나오는 거다. 전에도 말한 적 있는데 어딘가에서 본 글 한줄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부럽다. 무엇이든 그냥 보기보다 의문을 갖고 생각해보면 좋겠지. 나도 잘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아주 가끔 생각한다. 생각만으로 끝내지 않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는데.

 

여기 나오는 주요 인물 넷은 호림, 채령, 의준, 자란이다. 호림과 의준은 위에서 조금 말하였고, 채령은 궁녀고, 자란은 기생이다. 책을 읽다 보니 조선시대 사람은 어른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그렇게 오래 살지 못했을 테니(오래 산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은 나이를 먹어도 어른 같지 않은 사람이 많다. 나 또한 그렇다. 힘 있는 사람들 싸움에 힘든 것은 힘 없는 사람들이다. 그 안에는 죄까지 뒤집어쓰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일이 옛날에만 있었을까.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네 사람뿐 아니라 호림이 멸화군 두령이 되어서 사람들과 지내는 모습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궁녀인 채령을 만나는 일은 두 사람 사이가 어떻게 될지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되면 의준과 자란도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아주 아니라고 하지는 않겠다. 마음은 있지만 기생이기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조선시대는 여자가 살아가기 어려운 때였다. 그래서 궁녀나 기생이 되는 사람이 많았을 거다. 이것은 내가 잘 모르고 하는 말인가.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궁녀가 되고 어쩔 수 없이 기생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살기 위해서 말이다.

 

잘 알기 어려운 게 하나 있다. 그것은 어떤 사람 마음이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벌인 사람 마음이다. 이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마쓰모토 세이초 소설 《모래그릇》에서 보았다. ‘모래그릇’에서는 자신의 지난날(아버지에 대한 일)이 세상에 드러나는 게 무서워서 사람을 죽였다. 이 소설에 나온 사람도 비슷해 보인다(똑같은 일은 아니다). 떨쳐내고 지워버리고 싶은 지난날이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역사와도 같구나. 이 말 전에도 생각했다. 어머니가 십년 전에 당한 일 때문에 복수를 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것은 아닌 것 같다. 어머니를 생각했다면 힘들게 살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테니까. 내가 잘 못 본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람한테 위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마음은 없어 보였다. 다른 사람이 십년 전에 일어난 일을 숨기려고 하는 것에 자기 일도 숨기려고 한 것 같다. 어쩌면  마음속 어둠이 사라지기보다 자꾸 커져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를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알고 싶기도 하다. 그 사람이 좀 뜻밖의 사람이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을 때 앞에서 왜 그런 일을 했을까 했다. 그것은 단지 계획 가운데 하나였을까.

 

다른 사람은 눈여겨보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인데, 나쁜 일에 아이를 끌어들인 일은 안 좋게 보였다. 그 아이는 자기 때문에 사람이 죽었는데 다른 감정이 없었다. 아니 그 아이 마음이 어떤지 나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그 아이를 보는 것만 나왔다. 열너서 살이면 생각이 있을 텐데, 시키는 일을 그냥 하는 듯했다. 자기가 하는 일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몰랐던 걸까. 나중에는 호림과 채령이 아이를 거둔다. 다른 것보다 그 아이에 대해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건지도. 호림과 채령이 그 아이를 거둔 것은 십년 전 자신들이 생각나서일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보다 더 나쁜 사람도 많이 있다. 아이는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겠지. 한성에 큰불이 났을 때 아이들은 부모를 잃기도 했다. 성저십리에서 살던 아이들이다. 호림, 채령, 의준, 자란 네 사람의 공통점은 그곳에서 살았다는 거다. 저마다 상처가 있다. 어릴 때 모습이 좀더 나왔다면 좋았을 테지만 지금 모습도 보여주어야 해서 그랬는지 얼마 나오지 않았다. 내가 잘 모르는 거고 그 정도가 적당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과 지난날을 왔다갔다하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성저십리는 성에서 십리 떨어져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보아도 이 책이 어떤지 잘 모를 것 같다. 이 책이 보고 싶어지게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쓴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한번도 없는 듯하다. 어떻게 쓰면 그 책을 읽어보고 싶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소개를 잘 못했지만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우리나라 작가가 쓴 소설이니까.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나올지 기대하는 것도 괜찮겠다. 어쩐지 무언가 받고 쓰는 듯한 느낌이다. 받은 것은 작가 사인이 들어간 책이다. 첫 책을 그렇게 받게 되어서 기뻤다. 앞으로 잘돼서 이름이 많은 사람한테 알려진다면 좋겠다.

 

 

 

희선

 

 

 

 

☆―

 

“병판 대감 말로는 신료들 사이에서 한양에 이토록 수상쩍은 화제가 나는 이유는 다 터의 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는구나. 목멱산의 형세는 불꽃과도 같다지. 경복궁 연못에 청동으로 만든 용을 넣어 목멱산의 화기를 누르려 해보았지만 타고난 기를 바꿀 수는 없었으니, 머지않아 큰불이 날 것이라고들 한다. 빠른 발이 죽은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도 있지.”  (49쪽)

 

 

“동향?”

 

“경우회의 ‘경’자가 개경을 뜻하는 거랍디다. 거기서 나고 자라왔는데 선대 임금께서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한꺼번에 다 내려온 거요. 아 나고 자란 고향이니 얼마나 그립겠어? 그래서 그렇게 모임이나 만들어서 철철이 나들이도 가고 연회도 열고, 기생집도 가고…….”

 

“개경이라고?”  (190쪽)

 

 

“처음에 화재는 시전 쪽에서 주로 일어났습니다. 시선을 끌고, 민들의 불안감을 끌어올리는 데 더할 나위 없는 곳이죠. 그리고 그 후, 본격적으로 경우회 대신들이 살해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범인은 양쪽 모두에게 한이 있는 자입니다.”  (235쪽)

 

-어쩌면 이것 때문에 일을 벌인 건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亂反射 (朝日文庫) (文庫)
누쿠이 도쿠로 / 朝日新聞出版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반사

 

 

 

“겐타는 이제 없어.” 혼잣말을 하니, 미쓰에는 바다 멀리를 꼼짝 않고 바라보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599쪽)

 

마지막 말을 보기까지 아흐레가 걸렸다. 일본말로 쓰인 소설을 보는 것은 이걸로 네권째다. 가끔 책을 보다가 잠깐 잘 때가 있는데, 그러면 그 책을 읽는 꿈을 꾸기도 한다. 이번에도 얼마 안 남았을 때 조금 잤더니 또 책을 읽는 꿈을 꾸었다. 재미있게도 꿈에서도 일본말로 쓰인 책을 보았다. 이 책을 보기 시작하고 이틀째가 되어도 아주 조금밖에 못 봐서, 그냥 다른 도서관(내가 늘 가는 도서관이 아닌)에서 우리말로 나온 이 책을 빌려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다행하게도 읽기 시작했으니 끝까지 보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다.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끝까지 보아서 기쁘다. 지금까지 본 것 가운데 가장 두껍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 2권을 합쳐도 이 책이 더 두껍다. 솔직히 말하면 아흐레에서 오래 책을 본 날은 며칠 안 된다. 이틀이나 사흘은 줄일 수 있었는데 왜 그러지 못했는지 아쉽다.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해도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앞으로 잘 하도록 해야겠다. 이런 마음을 늘 먹는데.

 

책 제목인 ‘난반사’는 빛이 울퉁불퉁한 면에서 사방으로 불규칙하게 반사하는 것이다. 이 말을 봐도 바로 뜻을 알기는 어렵다. 나만 그런 것인가. 이 책을 다 보고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작은 일(공중도덕을 어기는)이 어디에서 누구한테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고. 정확하게는 공중도덕을 어기는 일만은 아니다. 이 책을 거의 다 보아갈 때쯤 일본드라마 <사키>가 떠올랐다. 사키라는 여자는 만나는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이끈다. 처음에는 ‘저 여자 왜 저러지’ 했다.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 사람을 죽게 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인가 생각했는데, 사키가 남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한 것은 복수였다. 사키는 어릴 때 부모한테 버림받았다. 사키 부모가 일부러 사키를 버린 것은 아니다. 집안이 못 살게 되어서 어쩔 수 없이 그랬다. 어른이 된 사키는 엄마와 만나기로 했던가보다. 그런데 그날 엄마가 길에서 쓰러진다. 엄마를 실은 구급차가 병원에 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서 엄마는 죽고 만다. 구급차가 병원에 늦게 가게 만든 사람(남자)들이 있었다. 사키는 그 사람들을 모두 죽이려고 오랫동안 준비했다. 그런 이야기다. 실제 구급차가 빨리 병원에 가지 못해서 죽은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여기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하지만 책에 나오는 일은 더 복잡하게 여러 사람이 얽혀 있다.

 

만약에 가로수가 센 바람에 쓰러져서 거기에 깔려서 죽는다면 그 사람은 그저 운이 나쁜 걸까. 맨 앞에서 이것은 두 살 아이가 죽은 일을 둘러싼 이야기라고 하고, 아이는 많은 사람한테 죽임 당했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이야기는 -44부터 시작한다. 마지막이 0인가 했는데, 0이 지나고 다시 1부터 시작한다. 먼저 이런저런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그 사람들과 아이가 죽는 일은 대체 어떻게 이어질까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가야마 사토시가 집 쓰레기를 고속도로 휴게소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이 가장 먼저 나오는데, 이때 가야마는 다른 사람도 할지 모르고 이번 한번뿐이다 한다. 나중에 가야마가 그 일을 떠올리고 무척 괴로워하지만. 가야마는 죽은 아이 겐타 아빠다. 앞에서 말했듯이 겐타는 센 바람에 쓰러진 가로수에 머리를 맞고 죽는다. 가야마는 신문기자로 겐타가 왜 죽어야 했는지를 알아본다. 만약 가야마가 신문기자가 아니었다면 겐타의 죽음을 오래 슬퍼하기만 했을까, 아니면 그래도 아이가 죽게 된 까닭을 알아봤을까.

 

여러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가장 책임감을 느낀 사람은 다섯해마다 하는 나무 검사를 단 한그루 하지 않은 아다치 미치히로였다. 아다치 미치히로는 아들이 태어나고는 결벽증이 심해졌다. 그런데도 병원에 가지 않고 일을 했다. 아다치가 나무 검사를 하지 못한 것은 나무 밑에 개똥이 쌓여 있어서였다. 시청에서 일하는 고바야시 린타로는 나무 밑에 있는 개똥을 치워달라는 전화를 받고 갔지만, 그곳을 지나가던 아이들이 놀려서 제대로 치우지 않았다. 자기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해 공무원이 된 게 아니라면서. 겐타를 받아주지 않은 병원 의사 구메가와 하루아키. 구메가와는 소송 당하는 게 싫어서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겐타를 받지 않은 것은 구메가와가 내과의사로 치료를 제대로 할 수 없어서였지만, 환자가 많다는 핑계를 댔다. 그곳에 있던 사람은 거의 감기로 야간진료를 받으려 했다. 그렇게 밤에 감기 환자가 병원에 가득찬 까닭은 대학생 안자이 히로시 때문이었다. 안자이 히로시가 환자가 붐비는 낮이 아닌 사람이 적은 밤 시간에 병원에 간다는 말을 한사람한테 했는데 그게 널리 퍼졌다. 아다치가 가로수 검사를 하려고 할 때 방해한 사람들이 있었다. 길을 넓히는 공사 때문에 가로수를 벤다는 말을 들은 다루마 하나는 그 일을 반대했다. 사실 그 일을 하기로 한 까닭은 딸이 자신을 다시 봐주기를 바라서였다. 차 운전이 서툰 에노키다 가쓰코는 겐타가 사고가 난 날 차를 자기 집 차고에 넣다가 잘 안 되어서 차를 길에 버려두고 집에 들어가버린다. 그 일 때문에 겐타를 실은 구급차가 15분이나 멈추어 있었다. 가장 문제가 된 개똥을 그냥 놔두고 간 사람은 미스미 고조다. 그거라도 없었다면 아다치가 가로수 검사를 제대로 했을 텐데. 미스미 고조는 정년이 되어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일을 할 때는 미스미가 바빠서 식구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했고, 지금은 아내와 딸이 미스미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개를 키우게 되었다. 미스미 고조는 허리가 안 좋았다. 허리를 굽힐 수 없어서 개똥을 치우지 않고 나무 밑에 그대로 두었다. 그러고는 본래 개똥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거잖아 생각했다. 죄책감은 처음에만 조금 있었고 나중에는 그런 마음이 없어졌다.

 

결벽증이 심해서 나무 검사를 하지 않은 아다치 미치히로만이 겐타를 죽게 한 일을 미안하다(이 말을 한다고 용서받을 수 없지만)는 말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내 잘못이 아니다고 했다. 가야마가 신문기자여서 더 그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일을 신문에 쓸까봐. 사실 가야마 아내인 미쓰에도 잘못을 했다. 어두운 밤에 선글라스를 쓰고 유모차를 밀고 갔으니까. 이런 말은 지나칠지도 모르겠지만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에서 눈을 떼면 안 된다. 센 바람이 불고 가로수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을 때 미쓰에는 눈을 감았다. 어쩌면 미쓰에도 그때 자신이 왜 그랬을까 하면서 슬퍼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규칙을 어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무렇지도 않지는 않겠다. 무엇인가 작은 일을 어길 때 잠깐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바로 잊어버리겠지. 많은 사람이 하는데 나 한사람 더한다고 무슨 일이야 있겠어 하는 생각은 안 된다. 그 일이 언제 어떤 일로 다른 사람한테 해를 입힐지 알 수 없다. 반대로 자기한테 돌아올 수도 있겠지. 다른 사람이 하더라도 나만은 안 해야겠다는 게 좋다.

 

책을 보면서는 이런저런 말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여러 사람이 한 일 때문에 아이가 죽게 되는 이야기를 잘 썼지만, 그저 잘 썼다고만 할 수 없다. 어떤 사고, 사건 뒤에는 여기 나온 것처럼 여러 사람이 관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면 끝이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만 괜찮으면 상관없다는 생각은 할 수 있는 한 하지 않기를 바란다.

 

 

 

희선

 

 

 

 

☆―

 

겐타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을 알아냈지만, 그 죄를 엄하게 따져서 밝힐 수 없다. 법이 아닌 도덕으로는 죄 있는 사람을 엄하게 따지고 나무랄 수 없다.  (506쪽)

 

 

 

 

 

 

 

 

 

 

 

 

 

 

책 두께를 보여주고 싶어서 이렇게 사진을 담았지만 별로 두꺼워 보이지 않는다 599쪽이다 문고라서 그렇다 사실 단행본으로 나온 것은 아직 한번도 사본 적 없다, 비싸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환한 달빛에 빛나는 벚꽃

한때뿐인 아름다움

스러져감은 자연스러운 일

슬퍼하지마

 

 

 

 

해마다 사월 십일이 넘어서 피던 벚꽃이 벌써 피어버렸다. 삼월에 그렇게 따듯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른 해보다 따듯했기 때문에 꽃이 빨리 피어버린 거겠지. 꽃이 피었다, 했는데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서 꽃잎이 떨어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는 비는 오지 않고, 바람만 조금 불었다. 그 바람에 꽃잎이 흩날렸을 테지.

 

 

 

 

 

멸화 - 꽃을 사르는 불, 이경민 (노블마인, 2014)

 

꽃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 책을 먼저 말하면 좋겠다. 우연히 나오게 된 것을 알게 되고 운이 좋아서 작가 사인이 들어간 책을 받았다. 곧 만나볼까 한다. 조선시대 소방관이 멸화군인가보다. 이런 것도 모르고 있다니(들어본 적 있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얼마전에 김진명 소설을 보면서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은 한성대화제의 미스터리를 밝히려는 이야기다. 한성대화제가 아주 큰불이었나보다. 말에 그렇게 나타나 있는데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다. 큰불을 내서 왕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도 있을까. 그런 음모도 있을지 모른다고 책소개에 쓰여 있다. 그리고 범인으로 잡혀 처형당한 사람들한테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도 알아본다고 한다.

 

 

 

 

 

 

“너무 오래 기다렸어. 이자가 깨어날 때까지.”

화마에 모든 것을 잃고 다시 불과 싸우는 남자, 호림

 

“믿어요. 난 당신을 믿고 있어.”

궁궐에 매인 몸으로 자유를 꿈꾸는 여자, 채령

 

“네가 죽어줘야 바람대로 되는 것이다.”

가슴속 불을 차가운 가면으로 가린 남자, 의준

 

“내가 원한 길이야. 나 스스로 원해서.”

스스로 휘황한 불꽃이 된 여자, 자란

 

-책 뒷면에 있는 말

 

 

 

 

 

 

 

다정한 호칭, 이은규 (문학동네, 2012)

 

오랜만에 문학동네에서 나온 시집을 샀는데 아주 많이 달라진 것을 알았다. 사실은 지난해 사고 며칠전에 한번 보았다. 샀을 때도 보고 시집이 예전보다 커졌네, 했다. 이렇게 나오게 된 지는 좀 된 것 같은데 내가 알고만 있었고 사지는 않아서 몰랐다. 이 시집은 한번 훑어보았다. 훑어보았다는 게 맞는 말이다. 그런데 처음 보았을 때 마음에 딱 드는 시가 없었다. 시인이 생각나는 시말도 있었다. 이상, 윤동주, 기형도 어쩌면 기형도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고흐가 떠오르는 한줄도 있었다. 다른 시인 이야기도 있는데 누군지 모르겠다. 나중에 다시 보면 처음 보았을 때보다 나을지,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드는 시를 찾으면 좋겠다. 그리고 잘은 아니더라도 무엇인가 쓸 수 있기를 바란다.

 

다정한 호칭은 무얼까,

지금 생각나는 건 이름.

 

 

 

 

 

 

 

 

붉은 까마귀, 마야 유타카 (북스토리, 2014)

 

아직까지 마야 유타카 소설은 만나보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책이 여러권 나온 사람인데 그렇게 되었다. 마야 유타가 소설에는 메르카토르 탐정이 나온다. 메르카토르라는 말로 알라딘에서 한번 찾아보니 지도를 그린 사람이 나왔다. 그때는 지도를 그린 사람으로 알았고, 다시 보니 지리학자였다. 그 메르카토르를 생각하고 이 이름을 쓴 것인지 그것은 나도 잘 모르겠다. 메르카토르가 여기에서는 짧게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카인과 아벨 형제가 나온다. 카인과 아벨은 성경(구약)에 나오는 이름인데, 인류가 가장 처음 저지른 형제 살인사건이 바로 카인이 아벨을 죽인 일이란다. 그런 이야기와는 별로 상관없을까. 카인은 동생 아벨이 죽임 당한 수수께끼를 풀려고 어떤 마을에 간다고 하는데 정말 수수께끼를 풀려고 가는 걸까. 읽어보면 알겠지. 형제와 자매는 세상에 나서 처음 경쟁하는 사이로,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가장 미워하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까마귀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나온다고 하니, 새가 사람을 공격해서 죽이는 영화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새>를 언제 보았지. 아주 옛날에 본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영화를 소개하는 방송에서 잠깐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 본래 제목은 그냥 ‘까마귀(鴉 갈가마귀)’다. 붉은 까마귀는 피를 뒤집어쓴 까마귀일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섭구나. 붉은 까마귀에서 붉은 것은 피가 아니고 저녁놀인가보다.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마크 펜더그라스트 (을유문화사, 2013)

Uncommon Grounds (2010)

 

이 책은 지난달에 도서관에서 보고, 언젠가 빌려다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마시는 건 인스턴트지만 그것도 커피는 커피니까. 예전에 아프리카 아이들이 커피와 초콜릿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을 해도 제대로 돈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지구촌에 그런 아이가 아프리카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별로 없다. 이 책을 보면 조금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재미있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책도 다 보고 정리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씨앗 편지, 에롤 브룸 (책과콩나무, 2010)

 

편지에 오늘이 나무를 심는 날이다, 썼더니 이 책이 생각났다. 다 쓰고 나니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병속에 담긴 편지》와 예전에 읽어본 《나무를 심은 사람》(장 지오노)을 합쳐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시에 사는 여자아이 안케는 학교에서 하는 행사 때 풀색 풍선에 씨앗을 매달아서 날려보냈다. 거기에는 편지도 있었다. 그것을 시골에 사는 남자아이 프레디가 받았다. 받았다기보다 땅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았을까. 그래도 그런 우연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표를 붙이고 주소를 제대로 써서 보낸 편지가 아니니까. 안케네 학교에서 답장을 받은 사람은 일곱뿐이었다. 처음에 프레디는 나무 씨앗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아빠가 심어보는 게 좋겠다고 해서 심은 거다. 프레디는 농장 언덕에 옮겨 심은 나무를 926그루까지 세고는 더 세지 못했다. 이 말을 보고 씨앗이 엄청나게 많았나보다 했다. 안케와 프레디는 그 뒤에 편지를 주고받는다. 그것도 아홉 해나. 그다음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언제나 좋지만은 않았다. 안케는 안케대로 프레디는 프레디대로 힘든 때가 있었다. 그래도 둘한테 편지가 힘이 되어주었다. 프레디가 심은 나무가 커다란 숲을 만들었지만 폭풍우가 치고 불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불이 난 일은 나무가 씨앗을 여기저기로 퍼뜨릴 수 있게 해주었다. 안 좋은 일이 나중에 좋은 일로 바뀐 거다. 그곳은 다시 멋진 숲이 되었다.

 

지금까지 나무를 심어본 적 없다. 기념 나무를 심기도 하던데 그런 나무 한그루쯤 있으면 좋겠다. 뜻깊은 일이 없어서.

 

 

 

 

 

봄꽃

 

함민복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

 

 

 

 

사월에는 지난달보다 책을 좀더 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기는 했지만 잘될지 모르겠다. 사실 보는 것은 괜찮지만 그다음이 문제다. 집중해서 잘 본다면 어렵지 않을까. 그것보다는 재미있게 보아야 할 말도 좀 생기는 듯하다. 아니 그때그때 다르다. 내가 잘 모르는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텐데 사람은 자기한테 익숙한 것만을 좋아한다. 자기도 잘 모르는 것을 보고 재미있게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자세가 좋은데.

 

이런 말하면 내가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벚꽃 냄새를 잘 모르겠다. 냄새가 나기는 하는 걸까. 그런데 얼마전에 벚꽃 냄새를 맡은 것도 같다, 달콤했다. 그게 맞는 걸까.

 

 

 

꽃은 피고 지고

사람은 오고 간다

 

 

 

희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04-10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10 0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