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화 - 꽃을 사르는 불
이경민 지음 / 노블마인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사진은 빌려온 것, 그래서 손은 다른 사람 손

 

 

 

지금 시대에 일어나는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우리가 모르는 조선시대 이야기도 재미있다. 그런데 그런 책 많이 못 보았다. 조선시대 하면 ‘조선왕조 500년’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드라마에서는 왕과 그 둘레 사람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다. 예전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왕권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이 말이다. 드라마 <대장금>은 수라간 궁녀에서 내의원(내의녀)이 되는 이야기지만 여기에도 왕을 사이에 둔 다툼이 있었다. 궁 사람들의 힘 싸움도. 조선시대에도 서민이 살았을 텐데 그런 사람들보다 궁 사람 이야기가 더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알고 싶으면 찾아서 보아야 하는데 그러지는 않는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었다. 조선시대는 어느 때보다 오래 이어져 왔다고, 그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는. 이 말을 들었을 때도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그게 정말 대단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500년 동안 신분제도가 있었으니 말이다. 양반이야 좋았겠지만 양반이 아닌 사람은 그리 좋지 않았을 테니까. 평민도 있었겠지만 사회는 양반을 주체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신분제도가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구나. 오래 이어져 온 조선왕조는 무너지고 왕이라는 신분은 아주 없어졌다. 이것은 조금 아쉽기도 하다. 이름뿐이어도 왕이 있는 것도 괜찮을 테니까.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왕이 사라진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 무엇인가를 해서가 아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해서 일어난 일이다. 그렇기에 아쉽다. 우리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나서 지금 시대가 왔다면 좋았을 텐데. 조선시대에도 무엇인가를 하려고 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나도 잘 모르는 말을 했다. 그냥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다. 역사책에는 몇 사람의 이름밖에 없지만, 우리나라를 이끌어온 것은 이름 모르는 백성이다. 백성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나라가 있는 거다. 그런 사람들 삶을 알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왕과 궁과 그 둘레 사람들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니다. 조선 과학수대라고 해서 <별순검>이라는 것도 했다. 예전에 재미있게 보았다. 책이 아닌 드라마만 말하다니. 이 책에는 조선시대 소방서 수성금화사의 소방관 멸화군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말했지만 수성금화사가 지금의 소방서라고만 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불은 지금도 무섭지만 조선시대 때는 더 무섭지 않았을까. 제대로 된 연장도 없이 불을 끄려 한 멸화군에도 죽은 사람이 많았을 것 같다. 그리고 불에 덴 상처가 언제나 사라지지 않았겠지. 이 책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것 때문이다. 왕권을 둘러싸고 궁에서 일어나는 힘 싸움이 아니라는 것. 그렇다고 그게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크게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한성에서는 까닭을 알 수 없는 불이 난 지 한달 이상이 지났다. 범인으로 보이는 빠른 발을 잡지만 다시 불이 난다. 호림은 답교놀이가 있던 날 모르고 빠른 발을 달아나게 해주어서 방화범으로 몰려서 한성부에 잡혀간다. 그것을 수성금화사 별제 의준이 빼내준다. 의준은 호림한테 멸화군 두령이 되어 연쇄살인방화범을 찾으라고 한다. 불을 껐을 때 인두로 지진 시체가 나왔다. 그래서 연쇄살인방화라 한 거다. 호림은 조사를 해나가다 십년 전 한성에서 일어난 큰불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지금과 십년 전 사건, 이어져 있을까. 이런 애매한 말을 하다니. 작가는 조선왕조실록에서 한성에서 일어난 큰불의 범인을 처형하고 끝낸 일에 의문을 갖고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실제 일어난 일과 상상한 일이 함께 나오는 거다. 전에도 말한 적 있는데 어딘가에서 본 글 한줄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부럽다. 무엇이든 그냥 보기보다 의문을 갖고 생각해보면 좋겠지. 나도 잘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아주 가끔 생각한다. 생각만으로 끝내지 않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는데.

 

여기 나오는 주요 인물 넷은 호림, 채령, 의준, 자란이다. 호림과 의준은 위에서 조금 말하였고, 채령은 궁녀고, 자란은 기생이다. 책을 읽다 보니 조선시대 사람은 어른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그렇게 오래 살지 못했을 테니(오래 산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은 나이를 먹어도 어른 같지 않은 사람이 많다. 나 또한 그렇다. 힘 있는 사람들 싸움에 힘든 것은 힘 없는 사람들이다. 그 안에는 죄까지 뒤집어쓰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일이 옛날에만 있었을까.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네 사람뿐 아니라 호림이 멸화군 두령이 되어서 사람들과 지내는 모습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궁녀인 채령을 만나는 일은 두 사람 사이가 어떻게 될지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되면 의준과 자란도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아주 아니라고 하지는 않겠다. 마음은 있지만 기생이기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조선시대는 여자가 살아가기 어려운 때였다. 그래서 궁녀나 기생이 되는 사람이 많았을 거다. 이것은 내가 잘 모르고 하는 말인가.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궁녀가 되고 어쩔 수 없이 기생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살기 위해서 말이다.

 

잘 알기 어려운 게 하나 있다. 그것은 어떤 사람 마음이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벌인 사람 마음이다. 이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마쓰모토 세이초 소설 《모래그릇》에서 보았다. ‘모래그릇’에서는 자신의 지난날(아버지에 대한 일)이 세상에 드러나는 게 무서워서 사람을 죽였다. 이 소설에 나온 사람도 비슷해 보인다(똑같은 일은 아니다). 떨쳐내고 지워버리고 싶은 지난날이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역사와도 같구나. 이 말 전에도 생각했다. 어머니가 십년 전에 당한 일 때문에 복수를 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것은 아닌 것 같다. 어머니를 생각했다면 힘들게 살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테니까. 내가 잘 못 본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람한테 위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마음은 없어 보였다. 다른 사람이 십년 전에 일어난 일을 숨기려고 하는 것에 자기 일도 숨기려고 한 것 같다. 어쩌면  마음속 어둠이 사라지기보다 자꾸 커져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를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알고 싶기도 하다. 그 사람이 좀 뜻밖의 사람이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을 때 앞에서 왜 그런 일을 했을까 했다. 그것은 단지 계획 가운데 하나였을까.

 

다른 사람은 눈여겨보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인데, 나쁜 일에 아이를 끌어들인 일은 안 좋게 보였다. 그 아이는 자기 때문에 사람이 죽었는데 다른 감정이 없었다. 아니 그 아이 마음이 어떤지 나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그 아이를 보는 것만 나왔다. 열너서 살이면 생각이 있을 텐데, 시키는 일을 그냥 하는 듯했다. 자기가 하는 일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몰랐던 걸까. 나중에는 호림과 채령이 아이를 거둔다. 다른 것보다 그 아이에 대해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건지도. 호림과 채령이 그 아이를 거둔 것은 십년 전 자신들이 생각나서일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보다 더 나쁜 사람도 많이 있다. 아이는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겠지. 한성에 큰불이 났을 때 아이들은 부모를 잃기도 했다. 성저십리에서 살던 아이들이다. 호림, 채령, 의준, 자란 네 사람의 공통점은 그곳에서 살았다는 거다. 저마다 상처가 있다. 어릴 때 모습이 좀더 나왔다면 좋았을 테지만 지금 모습도 보여주어야 해서 그랬는지 얼마 나오지 않았다. 내가 잘 모르는 거고 그 정도가 적당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과 지난날을 왔다갔다하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성저십리는 성에서 십리 떨어져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보아도 이 책이 어떤지 잘 모를 것 같다. 이 책이 보고 싶어지게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쓴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한번도 없는 듯하다. 어떻게 쓰면 그 책을 읽어보고 싶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소개를 잘 못했지만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우리나라 작가가 쓴 소설이니까.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나올지 기대하는 것도 괜찮겠다. 어쩐지 무언가 받고 쓰는 듯한 느낌이다. 받은 것은 작가 사인이 들어간 책이다. 첫 책을 그렇게 받게 되어서 기뻤다. 앞으로 잘돼서 이름이 많은 사람한테 알려진다면 좋겠다.

 

 

 

희선

 

 

 

 

☆―

 

“병판 대감 말로는 신료들 사이에서 한양에 이토록 수상쩍은 화제가 나는 이유는 다 터의 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는구나. 목멱산의 형세는 불꽃과도 같다지. 경복궁 연못에 청동으로 만든 용을 넣어 목멱산의 화기를 누르려 해보았지만 타고난 기를 바꿀 수는 없었으니, 머지않아 큰불이 날 것이라고들 한다. 빠른 발이 죽은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도 있지.”  (49쪽)

 

 

“동향?”

 

“경우회의 ‘경’자가 개경을 뜻하는 거랍디다. 거기서 나고 자라왔는데 선대 임금께서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한꺼번에 다 내려온 거요. 아 나고 자란 고향이니 얼마나 그립겠어? 그래서 그렇게 모임이나 만들어서 철철이 나들이도 가고 연회도 열고, 기생집도 가고…….”

 

“개경이라고?”  (190쪽)

 

 

“처음에 화재는 시전 쪽에서 주로 일어났습니다. 시선을 끌고, 민들의 불안감을 끌어올리는 데 더할 나위 없는 곳이죠. 그리고 그 후, 본격적으로 경우회 대신들이 살해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범인은 양쪽 모두에게 한이 있는 자입니다.”  (235쪽)

 

-어쩌면 이것 때문에 일을 벌인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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