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 - 교토의 역사 “오늘의 교토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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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세번째가 나왔습니다(나오고 시간이 조금 흘렀군요). 이번과 다음은 교토라고 합니다. 교토는 일본 역사에서 일천년 동안 수도였습니다. 그래서 두권으로 나누고 여기에서는 교토의 사찰과 신사를 답사하고 다음에는 일본미의 알맹이를 보여주는 교토 명소를 간다고 합니다. 일본편 첫번째, 두번째는 보고 어떻게든 썼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쓰면 좋을까 했습니다. 앞에 나온 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왜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건지 모르겠군요. 역사 때문일까요. 첫번째, 두번째에는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 이야기가 좀 많이 나왔습니다. 규슈에서는 조선시대 사람들까지 나왔으니까요. 거기에서는 일본 속 한국문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그것은 이제 일본사람이 만든 일본문화라고 했지요. 이번에는 그런 느낌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어디에든 사람이 살고 있다 해도 수도와 지방은 조금 다르겠지요. 교토에는 5세기 후반에 신라에서 궁월군이 많은 사람과 건너가서 살았다고 합니다. 백제 사람이 많이 간 것은 6세기였군요. 비슷한 때 세 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거군요. 나라마다 자리를 잡은 곳이 달랐습니다. 신라계 하타씨는 가쓰라강가 습지, 고구려계 야사카씨는 히가시야마 산자락, 백제계 아야씨는 아스카 들판에. 본래 살던 나라와 비슷한 곳을 찾아낸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이 헤이안시대에 들어가면서 나라 중심은 교토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도 잘 모르는데 언젠가 일본 역사를 조금 알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습니다. 제가 일본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게 된 건 만화영화(애니메이션)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나온 게 실제 역사와 같다고 할 수 없겠지만, 헤이안시대, 센고쿠시대, 에도시대, 메이지, 다이쇼, 쇼와, 이런 말 들은 건 만화영화에서예요. 다이쇼와 쇼와는 조금 다를까요. 그런데 가마쿠라, 무로마치라는 말도 있더군요. 여기에도 헤이안시대 다음에 가마쿠라, 무로마치라고 나옵니다. 시대를 나누는 것은 어떻게 되는 건지. 쇼군이 어디에 정부를 만드느냐에 따라 다른가봅니다. 메이지는 잘 모르겠고 다이쇼, 쇼와, 헤이세이는 천황과 관계있다고 들은 것 같아요. 이것은 시대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에도시대 말은 막부말기라고도 하죠. 일본만화에서 많이 다루는 때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있었던 때와 막부말기인 듯합니다. 어쩌면 다른 때도 있을 텐데 지금 생각나는 것은 없군요. 세키가하라 싸움은 언제인지. 막부말기는 신선조, 무엇보다 이게 생각나는군요. 신선조 반대편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사카모토 료마도. 하지만 사카모토 료마를 죽인 건 본래는 동료였던 사람들입니다. 이때는 일본 역사에 이름이 남은 사람이 많이 있군요(어느 때든 사람은 많았군요). 저는 잘 모르지만. 일본에 사무라이라고 하는 무사가 오래전부터 있었나 했는데 무사시대가 된 것은 무로마치시대 때부터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에도시대가 끝나갈 때는 무사가 할 일이 없어졌어요. 만화영화를 보고 대충 알게 된 일본 역사니 제대로 알고 싶기도 하겠지요. 오다 노부나가보다 앞에 사람들이 나온 것도 본 것 같은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신라에서 교토 가쓰라강가 습지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모두 하타씨라고 했어요. 하타라고 읽지만 중국 진(秦)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것 때문에 일본에서는 중국 진시황 후손으로 알고 있었답니다. 하타씨(진하승)는 일본 국보 제1호 목조미륵반가사유상(신라에서 보내준 것)이 있는 광륭사를 처음으로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씨사(집안 절)였는데 쇼토쿠 태자가 자신한테 존귀한 불상이 있는데 그것을 누가 모실거냐고 하니 진하승(하타노 가와카쓰)이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하타씨는 토목 · 제방 · 양잠 · 베짜기 · 제철 · 제도 · 목공 기술로 일본이 국가를 만드는 데 이바지했습니다. 거기에서도 고대 교토의 가장 큰 공로자였습니다. 하타씨가 자리잡은 곳은 습지였는데 제방을 쌓아서 농지로 만들었습니다. 하타씨는 우즈마사 지역을 벗어나 교토 전역으로 널리 퍼져갔습니다. 우즈마사는 교토 서쪽입니다. 여기에는 누에 신사, 오사케 신사, 헤비즈카(뱀무덤)가 남아있습니다. 유홍준은 그동안 헤비즈카에 못 가 봤는데 이 책을 쓰려고 겨우 찾아갔답니다. 택시기사가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일본 사람은 직업의 귀천 없이 자신이 할 일을 한다고. 일본사람이 개인주의라고 하는데 일할 때는 또 다른 듯합니다. 친해지면 우리나라 사람과 다르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일본에는 마쓰리(잔치)가 많습니다. 교토에는 헤이안신궁 지다이마쓰리, 가모 신사 아오이 마쓰리, 그리고 야사카 신사 기온마쓰리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나오지 않은 작은 마쓰리가 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야사카, 기온이라는 말 들어본 것 같은데 어디에서 들었는지 모르겠군요(모르면서 들어봤다고 말하다니). 야사카는 고구려계 도래인입니다. ‘나츠메 우인장’에 나온 적 있는 야사카는 여기에서 말하는 야사카와 같을지. 세 마쓰리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은 기온마쓰리입니다. 한달 동안 하니까요. 본래는 어령회였다고 합니다. 어령은 원령을 제어한다는 뜻이랍니다. 마쓰리는 기원보다 원령한테 저주, 벌을 받지 않기 위한 일이군요. 하지만 큰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는 게 아닐까요. 저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사실 저는 일본사람과 우리나라 사람 다른 점 잘 모르겠어요. 이것은 일본소설과 드라마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재미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일본 드라마를 보다보면 가끔 우리나라 연기자와 닮아보이는 사람도 있더군요. 누가 누구와 닮았는지 말하기 어렵지만(일본사람 이름 모르고, 우리나라 사람도 아는 사람 별로 없군요). 그렇게 가끔 우리나라 사람과 닮은 사람이 보이는 것은 아주 오래전에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 간 사람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 이제는 일본사람이죠. 우리나라와 일본 더 가깝게 생각하면 좋을 텐데 좀 어려울까요.

 

우리나라도 어느 지역이 나오는 소설이 있겠지요. 교토가 나오는 소설은 더 있을 테지만, 여기에서는 오사라기 지로의 《귀향》,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고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을 말했습니다(제가 읽어본 소설에도 교토가 배경인 게 있을 텐데 바로 생각나지 않는군요). 교토에도 벚꽃과 단풍을 볼 수 있는 곳이 많더군요. 인화사 오층탑 맞은편 벚꽃은 4월 20일에 핀답니다. 벚꽃을 못 봤을 때 그곳에 가면 볼 수 있겠군요(교토에 사는 사람이라면). 일본이 일제시대 때 일은 아직도 모르는 척하는데 에조족(이누이족)한테 한 일은 1200년 만에 사과했다고 하더군요. 오래 걸렸군요. 에조 정벌을 하게 된 사람은 백제계 도래인 후손 사카노우에노였답니다. 그런 일을 하게 되다니 했습니다. 천황이 시키니 했을 테죠. 그래도 그때 에조족 두 족장 아테루이와 모레는 싸우지 않기로 했어요. 하지만 두 족장을 죽였습니다. 그 사과를 1200년이 지나서 한 거예요. 우리나라에도 진심으로 사과하는 때가 왔으면 좋겠군요. 하지만 너무 늦으면 안 될 텐데요. 교토에 가면 꼭 한번 가 봐야 하는 곳은 청수사(기요미즈데라)라고 합니다.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이 멋지답니다. 이 청수사를 처음으로 세운 사람은 앞에서 말한 백제계 도래인 후손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예요. 청수사에는 청수무대라는 게 있어요. 그곳을 올려다보는 사진은 있는데 거기에서 내려다보는 사진은 없더군요. 내려다보는 것도 좋을 텐데요. 높은 곳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기분이 좀 이상해지지만, 물속을 바라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지요.

 

다른 소설에서 비와호수 본 적 있어요(《고양이 탐정 쇼타로의 모험》(시바타 요시키)에 나옵니다. 세권은 교토가 배경이고 네권째에서는 도쿄로 이사합니다. 쇼타로와 함께 사는 사람이. 앞에서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지금 말했군요). 저는 그게 그렇게 크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비와호수 바다 같더군요. 사진은 한장밖에 없지만. 최징이 지은 연력사에 가면서 담았더군요. 최징과 공해는 일본 불교의 두 산맥을 이룬 연력사와 동사를 지었습니다. 이때 일본 불교는 당나라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말은 왜 꺼냈을까요.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는데. 연력사는 히에이산에 있어요. 겨울에는 안 가는 게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홍준은 겨울에 갔습니다. 원인 스님과 인연이 있는 장보고 기념탑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못 찾았습니다. 고산사는 우리나라 산사가 떠오르게 한답니다. 여기에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초상이 있어요. 그냥 생각나는 것만 조금 말했군요. 이렇게 말해도 책을 보는 것과는 다르고, 책을 보는 것과 실제 가 보는 것은 더 다르겠지요. 이 책을 보고 교토에 가면 훨씬 좋을 듯합니다. 어디에나 옛날 사람이 남긴 게 있겠지요(터만 남은 곳도 있지만). 교토에는 그게 더 많이 남아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 책에서는 늘 역사를 빼놓지 않지만, 이번에는 교토 역사를 더 말해서인지 지금 교토에서 이런저런 시대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멋지지 않나요. 유물이 우리를 지난날로 데려다주는 것. 이런 경험은 어디에서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우리나라에서 유물을 보러가려면 조금 멀 것 같습니다(가 본 적 없지만 경주는 좀 다를지도). 교토는 사람과 가까운 곳에 유물이 있을 것 같아요. 옛날과 지금이 함께 있는 곳이죠.

 

이 말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우리 문화유산 잘 가꾸고 지켜갔으면 좋겠습니다.

 

 

 

*나츠메 우인장 3권에서

 

토코 아주머니 심부름으로 그라탕 접시를 사러 벼룩시장에 간 나츠메는 나뭇가지만 있는 그림을 받아옵니다. 그 그림을 방에 걸어둔 며칠 동안 나츠메가 자고 일어나면 방에 꽃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인가 해서 나츠메는 밤에 안 자고 기다렸습니다. 그것은 요괴가 한 일이었습니다. 요괴 이름은 미야로 미야는 그림속에 있는 야사카를 위해 꽃을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림속 나무 뒤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미야와 야사카는 벚꽃이 피었을 때 만났습니다. 야사카는 몸이 별로 좋지 않아 늘 책만 보았습니다. 그런 야사카를 미야가 벚꽃 사이에서 보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둘은 벚꽃이 피어 있는 동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로 모습을 보고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고, 미야는 벚꽃속에 몸을 숨기고 야사카한테 말을 했습니다. 미야와 야사카는 벚꽃이 필 때만 만났습니다. 미야는 야사카가 자신이 요괴라는 것을 알면 싫어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어느 봄부터 야사카가 나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미야는 야사카를 찾아다니다 요괴가 그린 그림속에서 야사카를 찾아냈습니다. 미야는 그 그림을 들고 여행을 다녔습니다. 야사카는 자신이 자유로워지면 여기저기 다니고 싶다고 했거든요(집안을 이어야 해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미야는 그 바람을 이루어주고 싶었습니다. 또한 언젠가 야사카가 그림속에서 나와서 자신과 이야기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미야가 그림을 가지고 다닌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림에 요력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나츠메 방에 걸어둔 그림은 떨어지지 않고 나중에는 나뭇가지가 그림 밖으로 뻗어나왔습니다. 그림이 나츠메 힘을 빨아들이는 듯 나츠메 몸이 안 좋아졌습니다. 미야가 그림을 태우려고 하자 나츠메는 그림을 떼어낼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시간이 가도 그림은 떨어지지 않고 나츠메 몸은 더 안 좋아져서 미야는 그림을 태우기로 마음먹습니다. 그전에 나뭇가지에 벚꽃을 그렸습니다. 나츠메와 야옹선생도 같이 거들었습니다. 정말 벚꽃이 활짝 핀 듯했습니다. 나츠메는 미야와 야사카가 만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림은 벽에서 떨어졌습니다.

 

 

  

 

 

나츠메 우인장에 나온 이야기는 대충 이렇습니다. 나츠메는 미야가 요괴라는 것을 야사카한테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보고 자기 자신을 생각했습니다. 나츠메도 함께 사는 아주머니와 아저씨한테 자신이 요괴를 볼 수 있다고 말하지 못했거든요. 그것 때문에 자신을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보다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예요. 언젠가 그 말을 할 날이 올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을 테지만, 사실은 이 책 본 다음에 <나츠메 우인장> 17권 봤습니다. 그 책 보고 쓴 것을 먼저 올리면서 앞뒤가 바뀌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누가 다 기억할까 싶더군요. 다른 사람은 기억하지 못해도 그 말을 쓴 저는 기억하죠. 그때 예전에 나온 것을 찾아봤다고 했는데, 바로 이거예요. 예전에 쓴 것을 그대로 쓸까 하다가 그것을 읽어보고 다시 정리했습니다.

 

 

 

희선

 

 

 

 

☆―

 

어떤 사람은 나면서부터 알고, 어떤 사람은 배워서 알고, 어떤 사람은 애써서 안다. (……)그러나 이루어지면 매한가지다.  (35쪽)

 

 

꽃은 화려해도 지고 마나니

우리 삶이 누구인들 영원하리.

덧없는 삶의 깊은 산을 오늘도 넘어가노니

헛된 꿈 꾸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으리라.  -이로하 노래, 186쪽

 

 

일본에선 오래된 전문 상점을 노포(老舗)라고 쓰고 ‘시니세’라 읽는데, 그냥 오래된 것이 아니라 한자리에서 4대, 5대를 이어가며 집안 전통을 이어가는 전문 상점을 말한다. 단팥죽 장사를 해도 남한테 꿀릴 것 없이 당당히 살아가는 일본사람 생활 자세는 부럽고 배울 만하다.

 

모두가 그 전문성을 높이 사고 장하게 생각해준다. 이거 해서 돈 벌면 때려치우고 딴것 하겠다는 자세나, 내 자식은 큰돈 되지 않는 이런 일을 시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는 전통이 지켜지지 않는다. 전문인의 자부심, 장인정신을 존중하는 자세가 낳은 전통이다. 그것이 바로 현대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킨 정신 원동력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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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브리오 기담 이즈미 로안 시리즈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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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기 위해서

우린 여행을 떠나네

 

좋아서 하는 밴드 <길을 잃기 위해서>에서

 

 

 

길을 잘 잃는 사람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원피스>에 나오는 조로다. 조로는 바로 앞으로 가면 될 것을 뒤로 돌아서 간다. 길을 잘 잃는 사람을 길치라고 하는데 이것은 방향을 잘 모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길을 익혀서 다니는 거 아닐까. 처음 간 길은 누구나 모를 거다. 하지만 아무리 같은 길을 가도 그 길을 익히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처음 가는 길도 잘 간다. 알아서 가는 게 아니고 그냥 가는 거다. 하지만 그랬을 때 다른 일은 거의 없었다. 뭔가 다른 일이 있었다면 길을 나서는 게 즐거웠을 텐데. 어딘가 멀리에 가는 일도 없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기담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책인데 왜 길을 잃는 말을 할까 하겠다. 기담은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다. 괴담이 아니다. 별차이 없을까. 기담에 무서운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니까. 사람이 이상한 일을 겪으려면 어때야 할까. 지금 생각하니 어느 때든 이상한 일은 일어날 수 있겠구나. 그래도 더 쉽게 이상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때는 어딘가에 가다가 길을 잃었을 때다.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서도 늦은 밤 산속에서 길을 잃고 구미호를 만나지 않는가.

 

작가 이름이 야마시로 아사코여서 처음 보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본래 이름은 아다치 히로타카로 오츠이치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나카타 에이이치라는 이름으로도 쓴다고 한다. 이름을 세 가지나 쓰다니. 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읽어본 것은 오츠이치라는 이름으로 쓴 글이다. 오츠이치라는 것을 알고 책을 보니 그 느낌이 나기도 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작가가 싫어할까,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이것과 조금 비슷한 것은 《평면견》(오츠이치 소설)이 아닐까 싶다. 오츠이치 소설 안 쓰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보게 되어서 반가웠다. 어떤 이야기에서 남자아이는 세상에 자신만 남고 모든 사람이 사라지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런 느낌 어떨까, 무서울 듯하다. 이런 일 길을 잘못 들었을 때도 겪을 수 있지 않을까. 막다른 길에 들어간 순간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누군가 자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다. 그러면 오싹할 듯. 책속에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냥 내가 생각한 거다. 오싹한 느낌이 들고 그다음도 있어야 하는데 생각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이야기도 좋지만 조금 이상한 이야기도 좋다(무서운 이야기하고는 다르다). 여기에는 그런 이야기 아홉가지가 담겨 있다. 말을 하는 사람은 ‘나’로 미미히코다(일본말로 귀耳는 미미みみ다. 이 말과 상관있을까. 미미히코는 듣기보다 이상한 일을 겪는다. 미야베 미유키 소설에 이것과 비슷한 말이 나오는데). 미미히코는 여행 안내서를 쓰는 이즈미 로안 짐꾼을 해서 돈을 번다. 미미히코는 노름을 좋아한다. 이즈미 로안과 길 떠나는 일을 그만두려 해도 노름빚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이즈미 로안과 길을 떠나면 늘 엉뚱한 곳에 가고 이상한 일을 겪어서 짐꾼이 오래 남아있지 않았다. 미미히코만은 이즈미 로안을 떠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미미히코가 노름빚 때문에 이즈미 로안 짐꾼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친구여서가 아닐까. 미미히코는 이즈미 로안을 친구라고 생각한다. 이즈미 로안은 어떨까, 비슷하지 않을까. 미미히코가 죽은 사람이 나오는 온천에 들어갔을 때 이즈미 로안은 미미히코를 불러서 거기에서 나오게 했다. 다른 이야기는 안 하고 미미히코와 이즈미 로안이 친구라는 말만 하다니(아직 더 쓸 테지만). 이렇게 쓰다보니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길을 함께 떠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지도를 보고 똑바로 길을 가도 이즈미 로안을 따라가면 아주 다른 곳으로 간다. 산을 올라갔는데 바다가 나오기도 하고 오래 걸려야 하는 곳에 반나절 만에 이르기도 한다. 미미히코가 이즈미 로안과 함께 길을 잃고 겪는 이상한 일이 거의고 두번째(라피스 라줄리 환상, 이 이야기에서는 살아가는 기쁨을 말한다)와 여덟번째, 아홉번째(“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는 다른 사람이 겪는 일이다. 엠브리오는 무엇일까, 이것은 사람 태아를 말하는 거다. 미미히코는 사람 태아를 우연히 주워서 잠시 돌본다. 식구가 없던 미미히코가 아버지가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인가(옮긴이가 이런 말을). 미미히코는 노름빚 때문에 태아를 끝까지 돌보지 못하고 아이가 없는 부부한테 맡긴다. 시간이 흘러서 미미히코는 여자아이를 만난다. 태아가 사람이 된 거다. 여자아이는 태아였을 때 일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미미히코는 그것은 꿈이라고 말하고 그 자리를 떠난다. 미미히코는 태아를 끝까지 돌보지 못한 미안함을 느꼈을까.

 

마지막 이야기 <“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는 이즈미 로안의 어린시절 이야기다. 어린 이즈미 로안이 길을 잃고 간 곳간에서 만난 여자는 그 집에서 구박받고 살았다. 여자는 이즈미 로안한테 글을 배운다. 그런데 그 일을 집안 사람한테 들켜서 맞았다. 이즈미 로안은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나타나서 여자한테 그곳을 떠나자고 한다. 여자는 이즈미 로안을 따라서 그 집을 떠난다. 그날 여자는 이즈미 로안과 여러 곳을 다니고 보았다. 그러다 이즈미 로안과 떨어졌다. 여자는 그곳에서 착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우연히 여자는 책방에서 이즈미 로안이 쓴 여행 안내서 《도중여경》을 본다. 미미히코가 여자한테 그 책을 쓴 이즈미 로안 이야기를 해주자 여자는 오래전에 만난 남자아이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이즈미 로안을 다시 만났을까. 이즈미 로안이 왜 길을 잃는 체질이 되었는지 말 안 했다. 덴구(텐구)과 관계있다고 한다.

 

이즈미 로안은 길을 잃는다기보다 자기도 모르게 공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듯하다(그곳은 보통 사람이 쉽게 갈 수 없는 다른 세계 같기도 하다). 얼핏 보면 멋진 일이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서 무서울 것 같기도 하다. 미미히코는 이즈미 로안을 따라가다 모든 게 사람 얼굴로 보이는 마을(이곳에서 미미히코는 자신을 따르던 닭을 잡아먹는다. 쓴웃음이 나는 이야기다. 사람은 언제 이성을 잃을지 알 수 없으니까.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온천,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는 마을에 갔다. 그런 곳은 두번 다시 갈 수 없다. 그래도 미미히코처럼 우리도 이즈미 로안과 길을 잃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즈미 로안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 데려다 줄 거다. 길을 떠나는 것은 길을 잃기 위해서기도 하다.

 

 

 

어디론가 떠나기 생각보다 쉬워요

이것은 언제든 어디에서든 할 수 있어요

바로 책 속으로 떠나기예요

자, 준비됐습니까

저기 이즈미 로안이 보이네요

 

 

 

이즈미 로안이 말했다.

 

“지금 여기에서 잘 살 수 있겠어?”

 

“네,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그럴까 해요.”

 

산길로 들어간 이즈미 로안 모습은 곧 보이지 않았다.

 

 

 

희선

 

 

 

 

☆―

 

“전 마을에 친구가 하나도 없어요. 다들 무섭다고 말을 안 하거든요. 그래서 누나를 만나러 여기 오는 게 즐거워요.”

 

“네게도 언젠가 친구가 생길 거야. 그래, 함께 길을 잃어주는 친구 정도는.”

 

“그럴까요.”

 

“분명 그럴거야.”  (303쪽)

 

 

“글자 쓰는 연습은 안 해도 돼. 읽을 줄만 알면 돼. 책을 읽을 줄 알면 충분해. 내가 글자를 쓸 줄 알아봤자 뭐에 써먹겠어?”

 

소년이 대답했다.

 

“안 돼요, 누나. 언젠가 누나가 누군가한테 편지를 보내고 싶을 때 곤란하잖아요. 글을 쓴다는 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걸 누군가한테 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글도 쓸 줄 알아야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걸 누군가한테 전한다?

 

<“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에서, 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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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3 1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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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4 02: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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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츠메 우인장 17

  미도리카와 유키

  白泉社  2014년 01월 04일

 

 

 

 

 

 

 

 

 

 

 

 

 

여름에는 나츠메(夏目)를 만나야 한다. 별로 재미없는 말을. 겨울(2014, 1)에 나온 책을 이제야 보았다. 책을 보고 시간이 흘러도 얼마 본 게 얼마 안 되어서 예전보다 느려졌나 했다. 그런데 다 보고 나니 그렇게 느려진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얼마전에 ‘나츠메 우인장’에 나왔던 것을 찾아보려고 예전에 보고 쓴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니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왜냐하면 너무 못 써서다. 그때 왜 그렇게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고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만화를 본 다음에는 어떻게 쓰면 좋을까. 다른 책 보고 쓰는 것도 어렵고 만화 보고 쓰기도 어렵고. 나도 이것을 보고 나츠메가 어떤가를 말하는 게 좋을까. 나는 처음부터 봐왔으니 나츠메가 어떤지 알지만 나츠메가 대체 뭐하는 애야,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말이다. 지금까지(처음 빼고) 말 안 했으니 잠깐 말해도 괜찮겠지. 나츠메는 고등학생이다. 맨 처음에 이런 말을, 2학년 된 거 아닌가 했는데 아직 1학년이다. 아니 이상하다, 전에 2학년 된 것 같은데 이건 언제 이야기일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해야겠다. 나츠메는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요괴를 볼 수 있다. 부모님은 일찍 세상을 떠나서 나츠메는 여러 친척집을 옮겨다녔다. 그러다 아버지쪽 먼 친척인 후지와라 부부 집에서 살게 되었다. 할머니 레이코가 남긴 요괴 이름이 쓰여 있는 ‘우인장’ 때문에 야옹 선생과 이런저런 요괴를 만났다. 그전까지는 나츠메가 요괴를 안 좋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 괜찮아졌다. 나츠메는 우인장에 있는 이름을 요괴한테 돌려준다. 이름을 돌려받기 위해 나츠메를 찾아오는 요괴도 있지만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오는 요괴도 있다(우인장을 노리고 찾아오는 요괴도 있다. 우인장이 있으면 요괴를 부릴 수 있다. 요괴 이름이 적힌 종이는 요괴 목숨이기도 하다. 종이를 찢거나 태우면 요괴가 죽을 수 있다. 곧 우인장은 요괴 목숨 다발이다. 나쁜 뜻을 가진 사람이나 요괴가 그것을 가지면 안 되겠지). 나츠메는 요괴가 보이고 말을 나누게 되어서 우는 요괴를 보면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말도 하다보니 길어졌다(별로 길지 않은가). 이번에는 우인장과 관계있는 일은 나오지 않는다.

 

요괴가 사람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때도 있지만 사람과 같은 모습일 때도 있다. 나츠메는 우연히 남자가 떨어뜨린 봉투를 주워주고 자기 학교에 같이 간다. 남자 이름은 아오이다. 아오이는 어릴 때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학교에서 나오는 친구 니시무라가 나츠메한테 ‘혼자서 뭐해’ 하는 말을 듣고, 나츠메는 자기와 함께 있는 게 요괴라는 걸 알았다. 결국 이렇게 쓰는구나. 아오이는 예전에 여자아이를 숲에서 만났다. 이런 이야기 전에도 있었다. 이 작가(미도리카와 유키)가 그린 《반딧불이 숲으로》다. 그냥 생각나서. 아오이가 만난 여자아이 이름은 소노카와 가오루다. 가오루는 숲에서 나무 위에 혼자 있는 아오이를 만나고 오랫동안 숲에 다녔다. 중학생이 되고도. 아오이는 가오루와 자신이 다른 시간을 살아야 한다는 걸 알고 가오루 앞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왜 지금 만나러 온 거냐면, 가오루가 결혼한다고 초대장을 보내서다. 아오이는 가오루를 잊으려고 했지만 아주 잊지 못했다. 둘은 만나고 어떻게 됐을까. 바로 이 말로 넘어갔다. 말하면 안 되는 건 아니겠지(전에는 더 자세하게 말해놓고 이제와서 이런 말을). 가오루가 결혼한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었다. 가오루는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다(아오이가 가오루가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했을 때 정말 그럴까 했다. 어떤 때는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서 사람이 죽었을 때도 있었다). 결혼한다고 한 것은 아오이를 잡기 위한 덫이었다. 아오이와 함께 있고 싶어서. 아오이는 가오루를 다시 만나고 가오루 곁에 있기로 한다. 사람과 요괴 사는 세계가 다르지만 만나버리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나츠메는 둘이 만나고 그렇게 돼서 기뻐했다.

 

야옹 선생이 늘 하던 것과는 다른 연회(술 마시러 간다)에 간다면서 나츠메한테 함께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봤지만 나츠메는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학교에서 그 생각을 하다가 다른 연회는 어떨까 하다가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야옹 선생을 보고 따라갔다. 그런데 야옹 선생은 안 보이고 야옹 선생 닮은 돌이 있어서 나츠메는 그것을 주웠다. 그곳에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 있었다. 야옹 선생이 그 집으로 들어간 건가 하고 나츠메도 들어간다. 집 안에 들어가니 상처가 많은 요괴가 있었다. 나츠메는 그 요괴한테 괜찮으냐고 했다. 나츠메가 자기한테 손을 대자 그 요괴는 ‘이제 내가 술래다. 숨어’ 했다. 술래가 어쩌고 해서 나쁜 요괴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요괴들이 놀이(숨바꼭질)를 하는 곳에 나츠메가 끼어들고 만 거다. 야옹 선생이 집에 오지 않아서 나츠메는 히노에, 미스즈, 중급한테 도움을 받았다. 나츠메가 잠을 자면 그 집에 가 있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요괴가 하는 놀이는 며칠 동안 이어지는 거였다. 놀이에서 빠지려면 나츠메가 처음 만난 요괴(유즈루)를 찾아야 했다. 나츠메는 술래가 되어서 유즈루를 찾아서 자신이 숨바꼭질에서 빠지는 걸 허락해달라고 했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고 그렇게 해결됐다. 야옹 선생은 나중에 집에 돌아왔다. 나츠메는 잠깐 야옹 선생 닮은 돌이 야옹 선생인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은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다음에는 사람들은 배우로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 모르게 요괴를 물리치는 일을 하는 나토리 슈이치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야기가 나왔다. 고등학생인 나토리를 보니 나토리를 만났을 때 나츠메가 생각났다. 나토리가 그때 나츠메와 비슷해 보였다. 아주 똑같지 않지만. 나토리 집안은 본래 요괴를 쫓는 일을 했다. 그런데 요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태어나지 않아서 그 일을 그만두었다. 그만둔 건 그렇다 치고 요괴가 복수하러 올까봐 무서워했다. 요괴를 볼 수 있는 나토리가 태어난 것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나토리 때문에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닌가 하기도.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나토리는 친구가 없었다. 요괴를 물리치는 일을 하는 사람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토리는 그곳에 찾아간다. 나토리는 자기와 같은 사람과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거다. 이건 나츠메도 비슷했다. 나츠메는 야옹 선생을 먼저 만나서 요괴를 좀더 알게 되었다. 나토리가 모임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마토바 세이지다. 마토바 집안은 요괴를 물리치는 집안에서 첫번째였다. 마토바는 요력도 셌다. 나토리는 그럭저럭이었다, 보통인가. 나토리는 마토바와 있는 게 편하지 않았다. 그래도 함께 큰 요괴를 잡았다. 이렇게밖에 말을 못하다니. 마토바는 힘을 길러서 요괴를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토리는 모임에서 만난 다쿠마 말을 듣고, 자신도 누군가를 위해서 요괴를 물리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토리가 만난 건 마토바만이 아니었다. 좀더 쉽게 생각하면 마토바는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요괴를 잡아서 없애려 하고, 나토리는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주기 위해 요괴를 물리치려고 하는 거다. 나츠메는 사람도 요괴도 같다고 생각하고 둘 다 똑같이 대한다. 나츠메는 마토바하고도 나토리하고도 같지 않다. 마토바는 나츠메를 만나도 그대로지만, 나토리는 조금 달라졌다. 그것보다는 나츠메는 나츠메로 있어도 된다고 했구나. 고등학생 때 나토리는 요괴를 물리치는 일을 하다보면 무언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했는데, 그게 나츠메가 아닐까.

 

어쩐지 이번에는 나츠메를 조금밖에 못 본 것 같다. 나토리 이야기가 있어서구나. 지금까지 요괴와 사람이 만난 이야기가 있었지만 나중에는 헤어졌다. 사람이 죽거나, 요괴를 볼 수 없게 돼서. 요괴가 힘이 다한 적도 있다. 이번에는 헤어졌다 다시 만났다. 이런 이야기가 한번 나와서 좋구나. 그 둘도 언젠가 헤어지는 때가 찾아오겠지만 지금이 중요하다. 나츠메는 그때 우는 건 누굴까 했다. 남는 쪽이겠지. 아니, 꼭 운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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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방정식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6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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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고 바닷가에 가 본 적은 없다. 아니 내가 기억 못할 뿐 아주 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금도 바다가 가까이 있는 곳에서 살고 있는데 더 어렸을 때도 바다가 가까운 곳(남쪽)에서 살았다. 어렸을 때 바다에 간 일은 사진으로만 남았다. 하나 생각나는 게 있다. 비가 멀리에서 내리기 시작해서 내가 있는 곳까지 내리게 된 일이다. 얼마전에 횡단보도에서 하늘을 보니 어렸을 때 일이 생각났다. 내가 서울 고모 집에 갔던 때다. 그때 여름이었다. 여기에 나온 초등학교 5학년인 에사키 교헤이도 부모님이 일 때문에 다른 지방에 가게 되어 바닷가에서 여관을 하는 고모 집에 가게 되는데, 서울 고모 집에 갔을 때 혼자 다녔다. 길을 알고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랬다. 혼자 갔던 곳은 여의도다. 길을 몰라서 오래 걸었다. 다리도 건넜다(버스를 내린 곳이 다리 건너편이었다). 그렇게 간 곳은 MBC 방송국과 가까운 곳(사실 바로 앞)이다. 멀지 않은 곳에는 KBS 방송국도 있었고 자전거와 롤러스케이트를 빌려주는 곳도 있었다(언제 적 이야기). 지금 생각하니 그때 겁이 없었구나 싶다. 길도 모르는 곳을 혼자 다니다니. 차를 탄 것보다 오래 걸은 게 더 생각난다. 혼자 다니다 고모 집에 잘 돌아갔다. 다른 많은 일은 잊어버렸는데 그것은 잊어버리지 않다니 신기하다. 나중에 남산에 간 것도 생각났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만들어낸 사람 가운데는 경찰 가가 교이치로와 데이토 대학 물리학과 부교수 유가와 마나부가 있다. 가가 교이치로는 형사로 사건을 해결한다. 가가는 사람을 생각한다. 유가와는 물리학자인데, 경시청 수사 1과에 대학 때 친구 구사나기가 있다. 구사나기가 유가와한테 풀기 어려운 문제를 물어보고 해결해서 갈릴레오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책 《한여름의 방정식》은 갈릴레오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유가와가 나온 책을 본 지 좀 돼서 유가와가 예전에는 어땠는지 거의 잊어버렸다. 아니 그때는 제대로 못 봤을지도 모르겠다. 책보다 드라마로 조금 알게 되었다. 이 책을 보면서도 유가와가 나올 때는 유가와 역을 한 후쿠야먀 마사하루가 떠오르기도 했다(후쿠야마 마사하루는 료마도 했다).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내가 이름을 외우는 얼마 안 되는 일본 연기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가가 교이치로는 아베 히로시). 이 사람 이름은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편지》에 나온다. 왜 나왔는지 잊어버렸지만, 소설에 텔레비전 보는 게 나왔을지도. 드라마에서 본 유가와는 사람이 죽은 일과는 상관없이 어떤 일이 왜 일어났는지에 더 관심을 갖고 실험하는 데 마음을 썼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바뀌었다. 사람 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소설을 보아도 알 수 있을지 모를 텐데.

 

갈릴레오 시리즈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은 《성녀의 구제》다. 여기에 나오는 유가와는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다. 유가와가 어디에서 달라졌느냐 하면 《갈릴레오의 고뇌》에서다(이게 이 책 앞인 듯하다. 갈릴레오 시리즈는 더 나왔다). 두 권 다 읽어보고 시간이 흘러서 다 생각나지 않지만. ‘갈릴레오의 고뇌’에서 유가와는 사람 마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했던 것 같다. 소설 한권에서 사람이 달라져가기도 하는데 유가와는 여러 권이 나오면서 달라졌다. 유가와가 본래 아는 것은 많았지만 사람 마음은 거의 모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유가와가 구사나기와 연이 닿아 이런저런 사람을 보다가 조금씩 알게 된 게 아닌가 싶다. 과학자여서 그런지 본래 사람이 그런지 유가와는 보통사람이 갖는 욕심은 없다. 유가와는 세상에 넘쳐나는 수수께끼를 푸는 일을 즐길 뿐이다. 어쩌면 세상을 안 좋게 만드는 것은 과학자가 아니고 그 둘레에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과학자는 그저 알고 싶은 마음으로 이것저것 연구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하면 돈으로 바꿀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과학자는 돈벌이가 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아. 과학자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 어느 쪽이 인류한테 더 유익하냐는 거야. 유익하다고 판단되면 설사 자신한테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그 길을 가야 해. 물론 유익하면서 이득도 되면 완벽하겠지.”  (84쪽)

 

 

드라마에서 본 유가와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소설에서도 그런 말을 한 적 있을까). 그런데 여기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인 에사키 교헤이와 잘 지냈다. 드라마가 원작과 아주 똑같지 않기는 하다. 교헤이는 바닷가 마을(하리가우라)에서 여관을 하는 고모 집에 가는 기차 안에서 해저 금속 광물 자원 개발 설명회 자리에 참여하러가는 유가와와 만난다. 유가와는 교헤이 고모네가 하는 여관 로쿠간소에 머물기로 한다. 그날 그 여관에는 쓰카하라 마사쓰구라는 사람도 머물렀다. 그런데 다음날 쓰카하라는 제방에서 떨어져 죽은 모습으로 발견된다. 쓰카하라는 도쿄 경시청 수사1과 형사였던 사람이다. 현경에서는 사고로 처리하려고 했는데 도쿄에서 쓰카하라 후배가 와서 시체를 보고 사고가 아니라고 여겼다. 도쿄에서 조사하는 사람은 유가와 친구 구사나기와 우쓰미 가오루다. 지금 일과 열여섯 해 전에 일어난 일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드러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일을 알게 되는 건 아니다. 몇 사람만이 알고 묻힌다. 그게 좋은 걸까. 어떤 일은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바로잡아야 한다. 시간이 많이 흘러버리면 어렵다. 다른 사람을 위해 죄를 뒤집어쓰는 건 좋은 걸까. 죄를 지은 사람한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건 아닐까. 어떤 소설에서는 당신이 진짜 아버지라면 자식이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 맞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보다 자신이 죄를 뒤집어쓸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런 일은 형사한테 큰 죄책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죄를 짓고 죗값을 치르면(감옥에 갔다 오는) 그걸로 끝이다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무엇보다 무거운 죄는 사람을 죽인 일이다.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거다. 여기에도 있다. 바다를 지키고 살아가는 게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모든 게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게 옳을까 그를까, 잘 모르겠다. 하나를 덮으면 자꾸 덮어야 하는 게 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여기에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멋대로 생각한 거구나. 그렇게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한테 자기도 모르게 큰일을 저지르게 만들다니(이 말은 안 해야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오래전에 일어난 일은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그 일이 지금 자기 자리를 흔들 수도 있다고(미야베 미유키 소설 《진상》에도 그런 말이 나왔다). 사람 일이 언제나 문제없이 잘 흘러가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될 때도 있다. 살면서 엄청난 일은 저지르지 않는 게 좋겠다.

 

이 소설에서 재미있게 보이는 것은 유가와와 교헤이가 실험하는 거다. 교헤이는 유가와한테 왜 이 지역이 하리가우라인지 설명해준다. ‘하리’는 수정이라는 뜻으로, 해가 머리 위에 올라오면 바다 밑까지 비쳐서 바다에 색깔 있는 수정이 잠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이것을 보려면 배를 타고 바다 멀리까지 나가야 하는데 교헤이는 뱃멀미를 해서 볼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유가와는 교헤이한테 바닷속 수정을 보여주려고 한다(페트병 로켓으로). 유가와는 교헤이와 불꽃놀이를 하면서도 불꽃반응을 가르쳐준다. 마치 과학은 재미있는 거야, 하는 것 같았다. 교헤이는 이제 과학을 좋아할까. 이런저런 생각은 많이 할 것 같다. 여름에 있었던 일도. 교헤이한테 유가와를 만난 일은 도움이 됐을 거다. 앞으로도 답을 찾아가겠지.

 

 

 

희선

 

 

 

 

☆―

 

“이과를 싫어하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지. 모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는 언젠가 큰 잘못을 저지르게 돼.”  (89쪽)

 

 

“현대 과학으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많아. 하지만 과학 발전과 함께 언젠가는 그런 수수께끼도 풀리겠지. 그렇다면 과학에 한계라는 것이 있을까? 있다면 무엇이 한계를 만들어 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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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바로 사람 자신이야.”  (547쪽)

 

 

“어떤 문제라도 반드시 답은 있어.”

 

유가와는 교헤이를 똑바로 봤다.

 

“하지만 답을 바로 찾아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 삶도 그래. 금세 답을 찾지 못하는 문제가 앞으로도 많이 생겨날 거야. 그때마다 고민하는 건 뜻있고 가치 있는 일이지. 하지만 조바심 낼 필요는 없어. 답을 찾아내려면 너 자신을 연마해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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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번 일에 답을 찾아낼 때까지 나는 너와 함께 같은 문제를 껴안고 앞으로도 고민할 거야. 잊지마, 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야.”  (548~549쪽)

 

 

 

 

 

                   

 

                   

 

페트병 로켓, 영화에 나온 것은 멋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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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시현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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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목소리가 가장 나중에 나이를 먹는다는 말이 있다. 성우가 하는 나이 든 사람 목소리는 맞다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모습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로 나이 든 사람을 나타내야 할 때도 있으니 성우가 내는 목소리가 실제와 달라도 어쩔 수 없겠다(라디오에서 들은 것을 생각해서, 성우는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목소리 연기를 하는데). 목소리만 나이를 늦게 먹는 것은 아니다. 글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글로는 그 사람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이 지금 몇 살인지 말하지 않는 한. 갑자기 우타노 쇼고 소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가 생각났다. 이 책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은 애거서 크치스티가 1950년 예순 살 때 쓰기 시작해서 열다섯 해 뒤 1965년 일흔다섯에 끝냈다. 읽을 때는 그냥 읽었는데 열다섯 해 걸려서 썼다 하니 엄청나다는 생각이 든다. 날마다 한두쪽씩 썼다고 한다. 이 책을 보고 생각한 것은 ‘나이를 잘 모르겠다’다. 지금에 맞는 우리말로 옮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글을 보고 그 사람 나이를 잘 모른다고 했는데 글을 많이 본 사람은 그것도 꿰뚫어볼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말을 했다.

 

애거서 크리스티 진짜 이름은 아주 길다. 애거서 마리 클라리사 밀러 크리스티 맬로원(Agatha Mary Clarissa Miller Christie Mallowan)이다. 이 이름 다 외우는 사람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사람이 부모의 성을 다 써서 자기 이름을 썼을 때 그 사람 아이 이름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 있다. 그렇게 쓰면 길어지지 않을까 하는. 애거서 크리스티 이름에는 어머니, 아버지, 첫번째 남편, 두번째 남편이 들어가 있다. 지금 영국사람 이름은 어떨까. 여전히 본래 이름은 길까. 미국과 일본은 결혼하면 성이 아예 바뀌니, 본래 성도 그대로 놔두는 게 좀더 나을지도(얼마전에 본 영국 소설에서는 이름 다음에 남편 성을 따랐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추리 소설 여왕’으로 온 세계에 이름이 잘 알려졌다. 언젠가도 이 말과 비슷한 말을 했는데(셜록 홈즈), 애거서 크리스티 이름은 알지만 책은 거의 못 봤다. 지금까지 한권인가 두권인가 본 것 같다. 거의 잊어버려서 그것을 봤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애거서 크리스티는 차 사고가 나고는 어딘가에 다니지 않고 글만 썼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은 대체 어디에서 들은 건지. 그 이야기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던 것 같다(누굴까). 애거서 크리스티는 어딘가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세계 곳곳을 다녔다.

 

사람은 어린시절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어린시절을 잘 보내야 평생 잘 살 수 있다가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사람마다 다른 거겠지. 그래도 어린시절을 즐겁게 보낸 사람이 모든 일을 긍정의 마음으로 볼 것 같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어린시절을 행복하게 보냈다. 언니와 오빠가 있고 아버지는 유쾌하고 어머니는 이야기를 잘해주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어릴 때 상상의 세계를 만들고 그곳에 사는 친구와 놀았다. 어렸을 때부터 상상력이 뛰어났다. 글도 일찍 깨쳐서 책도 빨리 보았다. 성탄과 생일에는 책을 달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 보면서 또 부러워했다. 책을 어릴 때부터 본 게.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본 게 아니니까. 그 탓이라고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제대로 못 보는 책도 있다. 아주 좋아하는 작가도 없다. 그냥 좋아하는 작가일 뿐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좋아하는 책을 여러번 보고 다른 책을 보았다. 나는 이런 경험도 없다. 같은 것을 여러번 본 것은 만화영화뿐이다. 아주 없지는 않구나.

 

옛날 영국은 집을 세 주고 다른 나라 호텔에서 사는 게 돈이 덜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유쾌했지만 돈 버는 일은 잘 못했다. 어머니가 영국에서 살 집 애슈필드를 세 주고 애거서 크리스티 식구들은 프랑스 남부 호텔에서 살았다. 프랑스에서 애거서 크리스티한테 프랑스말을 가르쳐줄 사람을 어머니가 찾았다. 애슈필드에서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친구를 거의 사귀지 않았는데 프랑스에서는 또래 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애슈필드는 빨강머리 앤에 나오는 초록지붕 집 같은 곳이다. 애슈필드가 훨씬 크지만. 아버지가 애거서 크리스티가 열한 살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애거서 크리스티 생활은 많이 바뀌었다. 아버지가 있을 때는 집에서 모임을 자주 가졌다. 그때 여러 사람이 집에 찾아왔다. 거기에는 작가도 있었다. 애슈필드를 팔아야 하나 했는데 팔지 않았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학교를 다니고 피아노와 성악을 배웠다. 성악가나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했는데 그쪽은 취미로만 남았다. 책은 늘 많이 읽었지만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나중에는 잘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일이든. 애거서 크리스티는 열일곱 살에 사교계에 나갔다. 영국은 이런 게 있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과는 약혼도 했는데 결혼은 아치 크리스티와 했다. 제1차 세계전쟁이 일어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전쟁 때문에 결혼해야겠다고 한 건 아닌지. 언제인지 몰라도 애거서 크리스티는 매지 언니한테 추리소설을 쓰겠다고 말했다.

 

전쟁 때 애거서 크리스티는 간호사 일을 했다. 그러다 약을 조제하는 곳으로 옮겼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조제실에서 일하다 추리소설을 쓸 생각을 했다. 처음 책을 내기로 한 곳에서는 돈을 아주 조금 주고 앞으로 다섯권을 더 쓰기로 계약했다. 이때 애거서 크리스티는 자신이 오랫동안 추리소설을 쓰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딸 로잘린드를 낳는다. 어머니가 집(애슈필드)을 지키기 힘들어하자 남편 아치가 애거서 크리스티한테 소설을 써서 어머니를 도와주면 어떠냐고 했다. 그런 말 때문이었는지 에르퀼 푸아로와 헤이스팅스 대위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부모가 아이한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빅토리아 후기 영국은 이런 생각은 없었던 듯하다. 아이는 거의 유모가 키웠다. 그래도 괜찮았던 것 같기는 하다. 딸은 유모와 언니, 어머니한테 맡겨두고 애거서 크리스티는 남편 일로 세계를 돌았다. 세계를 돌고 와서 자신이 전문작가가 될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아치는 골프에 빠졌다. 집을 샀는데 그 집은 액운이 끼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정말 그 집 탓이었을까. 애거서 크리스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애거서 크리스티가 슬픔에 빠져있을 때 남편은 다른 여자를 만났다. 그러고서 하는 말, “오래전에 말했잖아. 나는 아프거나 불행한 사람은 질색이라고. 나까지 아주 엉망이 돼.” (520쪽) 였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남편과 헤어진다. 그리고 혼자 바그다드로 떠난다.

 

남편과 헤어지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았을 거다. 어쩌면 남편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조금 생각했을지도.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결정을 내렸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바그다드에 갔을 때 고고학자 맥스 맬로원을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다른 생각은 없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도 해서 편하게 대했다. 맥스가 애거서 크리스티한테 결혼하자도 했을 때 애거서 크리스티는 나이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결국 결혼했다. 로잘린드도 엄마(애거서 크리스티)가 맥스와 결혼하면 괜찮겠다고 했다. 전쟁이 또 일어났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그때 글을 많이 썼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무척 무섭지 않았을까. 그런 일을 담담하게 말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다르게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애거서 크리스티는 어떤 형편에서든 희망을 품는다고 했다. 이런 마음 때문에 전쟁도 잘 이겨낸 것은 아닌지. 애거서 크리스티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서 사는 게 즐겁다고도 했다. 배우고 싶은 점이다. 나는 어떤 일이 일어나면 어쩌나 먼저 걱정할 때가 더 많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끝없이 꿈꾸기를 즐긴다는 말도 좋다.

 

살면서 사람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고 하는데, 애거서 크리스티가 오래전 기억을 불러내는 일은 조금 힘들었겠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는 시간 즐거웠을 것 같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좋았던 일을 더 잘 기억한다고 했다. 나는 좋은 때도 안 좋은 때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할 만한 일이 거의 없다. 이런 걸 생각하면 좀 쓸쓸하다. 이 책을 보다보니 이것을 영화로 만든다거나 소설로 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쓴 추리소설과 메리 웨스트매콧이란 이름으로 쓴 소설 언젠가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이렇게 생각해도 시간이 가면 다른 책을 먼저 볼지도 모르겠다. 추리소설 보기는 하는데 애거서 크리스티는 왜 못 봤을까. 워낙 많아서 무엇을 먼저 보면 좋을지 몰라서. 애거서 크리스티는 희곡도 썼다. 다른 사람이 각색해서 한 연극이 잘 안 되어서 자신이 각색했다. 이 자서전을 다 쓴 뒤에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쥐덫》은 오랫동안 공연했고, 1971년에는 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1976년 1월 12일 여든여섯에 세상을 떠났다. 자서전에서 애거서 크리스티가 죽는 모습을 보지 않아서 괜찮았는데, 이 책을 본 마지막 날에는 기분이 안 좋았다. 책 때문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쓰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지켜보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사람이 슬프게 살지 않았다 해도 나도 모르게 슬픔을 느낀다. 어쩌면 다른 사람 이야기를 보면서 나한테 올 앞날을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애거서 크리스티처럼 살아있는 기쁨을 느끼고 살고 싶다. 아니 그렇게 살아야겠다.

 

 

 

*더하는 말

 

애거서 크리스티 언니 매지는 이야기를 아주 잘했다. 별일 아닌 것도 매지가 말하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어머니는 이야기를 잘 지어냈다. 하지만 애거서 크리스티는 말을 그렇게 잘하지 못했다. 글 쓰는 게 더 나았다. 어머니가 갑자기 학교를 옮기라고 해도 애거서 크리스티는 그런 일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다니던 학교를 옮기면 싫을 것 같은데 애거서 크리스티는 무슨 일이든 아주 놀라지 않고 받아들였다. 어머니를 잘 알고 있어서 그랬을까. 첫번째 남편하고는 헤어졌지만 두번째 남편하고는 오래 잘 산 것 같다. 두번째 남편 때문에 고고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구나. 애거서 크리스티한테 딸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은 이 책을 보고 알았다.

 

지금까지 실제 살았던 사람 이야기(자서전, 전기, 평전)를 자주 만나보지 않았다.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책 읽을 때는 괜찮은데 이상하게 끝에 가서는 우울해진다. 그 사람의 죽음이 가까워져서일까. 책 한권을 보는 것은 늘 죽음을 만나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는데 다른 책을 볼 때는 그렇게 많이 느끼지 못했다. 내용 때문에 우울할 때도 있었지만.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책으로 만나서 기쁘지만 마지막에는 헤어져야 해서 슬픈 것일지도 모르겠다. 늘 이런 마음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또 이 세상에 무엇인가를 남긴 사람이나 작가가 이 세상을 살다간 이야기 보고 싶다. 다음에는 누구를 만날까.

 

 

 

희선

 

 

 

 

☆―

 

나는 삶을 사랑한다. 때로는 나락으로 떨어질 듯 절망하고, 날카로운 비참함에 온몸이 꿰이고, 슬픔에 몸서리치기도 했지만, ‘살아있다’는 것은 위대한 것임을 확신한다.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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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4-06-28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거서 크리스티 책을 어릴 때 많이 읽었습니다. 아직도 몇 권 가지고 있기도 하구요. 빨간색으로 나온 작은 문고판 소설들..그런데 꽤 읽기는 했는데, 그녀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는데, 희선님 덕분에 잘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꽤나 복잡한 삶을 살았군요. 저도 애거서 크리스티가 거의 집에서 글만 쓰는 타입인 줄 알았습니다(아마도 '미스 마플'을 연상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서전이나 평전이 끝에 가서 우울해진다고 하셨는데, 그런 것을 생각해보니 포와로를 죽였던 '커튼'같은 작품이 생각나는군요. 어렸을 때는 왜 죽이지 하고 이해를 못했는데, 지금와서 보니 그만큼 애거서 크리스티가 포와로를 사랑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나갈 일이 있는 토요일인데,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니 별로 나가고 싶지가 않군요. 즐거운 주말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희선 2014-06-29 02:44   좋아요 0 | URL
어릴 때 애거서 크리스티나 다른 추리소설 읽었다고 하면, 나는 어릴 때 뭐했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까운 곳에 책이 거의 없어서 그랬지만... 애거서 크리스티도 어렸을 때부터 책을 가까이 했잖아요 혼자 상상의 세계를 만든 것도 재미있죠 어쩌면 어릴 때는 누구나 그럴 때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른이 그러면 안 돼 할지도... 애거서 크리스티도 다른 사람은 별말 안 했는데 유모가 다른 사람한테 그런 이야기하는 걸 듣고 유모가 있는 곳에서는 그렇게 놀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서전, 평전 별로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그렇더군요 두꺼운 책을 다 봐가는 아쉬움인지, 긴 삶을 겨우 책 한권으로 보는 것 때문인지... 어쩌면 '이 사람은 이렇게 살다 갔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일지도 모르죠 사는 것 자체에 슬픔을 느끼는 것인지도... 애거서 크리스티가 만든 포와로가 죽는군요 그 사람을 좋아한 사람은 죽어서 참 아쉽겠습니다 가장 아쉬워한 사람은 애거서 크리스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주가 빨리 갑니다 유월도 다 가고 있습니다 비가 와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갑자기 많이 오면 안 좋으니까요 남은 주말, 남은 유월 잘 보내세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