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브리오 기담 이즈미 로안 시리즈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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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기 위해서

우린 여행을 떠나네

 

좋아서 하는 밴드 <길을 잃기 위해서>에서

 

 

 

길을 잘 잃는 사람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원피스>에 나오는 조로다. 조로는 바로 앞으로 가면 될 것을 뒤로 돌아서 간다. 길을 잘 잃는 사람을 길치라고 하는데 이것은 방향을 잘 모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길을 익혀서 다니는 거 아닐까. 처음 간 길은 누구나 모를 거다. 하지만 아무리 같은 길을 가도 그 길을 익히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처음 가는 길도 잘 간다. 알아서 가는 게 아니고 그냥 가는 거다. 하지만 그랬을 때 다른 일은 거의 없었다. 뭔가 다른 일이 있었다면 길을 나서는 게 즐거웠을 텐데. 어딘가 멀리에 가는 일도 없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기담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책인데 왜 길을 잃는 말을 할까 하겠다. 기담은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다. 괴담이 아니다. 별차이 없을까. 기담에 무서운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니까. 사람이 이상한 일을 겪으려면 어때야 할까. 지금 생각하니 어느 때든 이상한 일은 일어날 수 있겠구나. 그래도 더 쉽게 이상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때는 어딘가에 가다가 길을 잃었을 때다.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서도 늦은 밤 산속에서 길을 잃고 구미호를 만나지 않는가.

 

작가 이름이 야마시로 아사코여서 처음 보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본래 이름은 아다치 히로타카로 오츠이치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나카타 에이이치라는 이름으로도 쓴다고 한다. 이름을 세 가지나 쓰다니. 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읽어본 것은 오츠이치라는 이름으로 쓴 글이다. 오츠이치라는 것을 알고 책을 보니 그 느낌이 나기도 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작가가 싫어할까,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이것과 조금 비슷한 것은 《평면견》(오츠이치 소설)이 아닐까 싶다. 오츠이치 소설 안 쓰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보게 되어서 반가웠다. 어떤 이야기에서 남자아이는 세상에 자신만 남고 모든 사람이 사라지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런 느낌 어떨까, 무서울 듯하다. 이런 일 길을 잘못 들었을 때도 겪을 수 있지 않을까. 막다른 길에 들어간 순간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누군가 자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다. 그러면 오싹할 듯. 책속에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냥 내가 생각한 거다. 오싹한 느낌이 들고 그다음도 있어야 하는데 생각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이야기도 좋지만 조금 이상한 이야기도 좋다(무서운 이야기하고는 다르다). 여기에는 그런 이야기 아홉가지가 담겨 있다. 말을 하는 사람은 ‘나’로 미미히코다(일본말로 귀耳는 미미みみ다. 이 말과 상관있을까. 미미히코는 듣기보다 이상한 일을 겪는다. 미야베 미유키 소설에 이것과 비슷한 말이 나오는데). 미미히코는 여행 안내서를 쓰는 이즈미 로안 짐꾼을 해서 돈을 번다. 미미히코는 노름을 좋아한다. 이즈미 로안과 길 떠나는 일을 그만두려 해도 노름빚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이즈미 로안과 길을 떠나면 늘 엉뚱한 곳에 가고 이상한 일을 겪어서 짐꾼이 오래 남아있지 않았다. 미미히코만은 이즈미 로안을 떠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미미히코가 노름빚 때문에 이즈미 로안 짐꾼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친구여서가 아닐까. 미미히코는 이즈미 로안을 친구라고 생각한다. 이즈미 로안은 어떨까, 비슷하지 않을까. 미미히코가 죽은 사람이 나오는 온천에 들어갔을 때 이즈미 로안은 미미히코를 불러서 거기에서 나오게 했다. 다른 이야기는 안 하고 미미히코와 이즈미 로안이 친구라는 말만 하다니(아직 더 쓸 테지만). 이렇게 쓰다보니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길을 함께 떠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지도를 보고 똑바로 길을 가도 이즈미 로안을 따라가면 아주 다른 곳으로 간다. 산을 올라갔는데 바다가 나오기도 하고 오래 걸려야 하는 곳에 반나절 만에 이르기도 한다. 미미히코가 이즈미 로안과 함께 길을 잃고 겪는 이상한 일이 거의고 두번째(라피스 라줄리 환상, 이 이야기에서는 살아가는 기쁨을 말한다)와 여덟번째, 아홉번째(“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는 다른 사람이 겪는 일이다. 엠브리오는 무엇일까, 이것은 사람 태아를 말하는 거다. 미미히코는 사람 태아를 우연히 주워서 잠시 돌본다. 식구가 없던 미미히코가 아버지가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인가(옮긴이가 이런 말을). 미미히코는 노름빚 때문에 태아를 끝까지 돌보지 못하고 아이가 없는 부부한테 맡긴다. 시간이 흘러서 미미히코는 여자아이를 만난다. 태아가 사람이 된 거다. 여자아이는 태아였을 때 일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미미히코는 그것은 꿈이라고 말하고 그 자리를 떠난다. 미미히코는 태아를 끝까지 돌보지 못한 미안함을 느꼈을까.

 

마지막 이야기 <“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는 이즈미 로안의 어린시절 이야기다. 어린 이즈미 로안이 길을 잃고 간 곳간에서 만난 여자는 그 집에서 구박받고 살았다. 여자는 이즈미 로안한테 글을 배운다. 그런데 그 일을 집안 사람한테 들켜서 맞았다. 이즈미 로안은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나타나서 여자한테 그곳을 떠나자고 한다. 여자는 이즈미 로안을 따라서 그 집을 떠난다. 그날 여자는 이즈미 로안과 여러 곳을 다니고 보았다. 그러다 이즈미 로안과 떨어졌다. 여자는 그곳에서 착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우연히 여자는 책방에서 이즈미 로안이 쓴 여행 안내서 《도중여경》을 본다. 미미히코가 여자한테 그 책을 쓴 이즈미 로안 이야기를 해주자 여자는 오래전에 만난 남자아이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이즈미 로안을 다시 만났을까. 이즈미 로안이 왜 길을 잃는 체질이 되었는지 말 안 했다. 덴구(텐구)과 관계있다고 한다.

 

이즈미 로안은 길을 잃는다기보다 자기도 모르게 공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듯하다(그곳은 보통 사람이 쉽게 갈 수 없는 다른 세계 같기도 하다). 얼핏 보면 멋진 일이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서 무서울 것 같기도 하다. 미미히코는 이즈미 로안을 따라가다 모든 게 사람 얼굴로 보이는 마을(이곳에서 미미히코는 자신을 따르던 닭을 잡아먹는다. 쓴웃음이 나는 이야기다. 사람은 언제 이성을 잃을지 알 수 없으니까.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온천,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는 마을에 갔다. 그런 곳은 두번 다시 갈 수 없다. 그래도 미미히코처럼 우리도 이즈미 로안과 길을 잃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즈미 로안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 데려다 줄 거다. 길을 떠나는 것은 길을 잃기 위해서기도 하다.

 

 

 

어디론가 떠나기 생각보다 쉬워요

이것은 언제든 어디에서든 할 수 있어요

바로 책 속으로 떠나기예요

자, 준비됐습니까

저기 이즈미 로안이 보이네요

 

 

 

이즈미 로안이 말했다.

 

“지금 여기에서 잘 살 수 있겠어?”

 

“네,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그럴까 해요.”

 

산길로 들어간 이즈미 로안 모습은 곧 보이지 않았다.

 

 

 

희선

 

 

 

 

☆―

 

“전 마을에 친구가 하나도 없어요. 다들 무섭다고 말을 안 하거든요. 그래서 누나를 만나러 여기 오는 게 즐거워요.”

 

“네게도 언젠가 친구가 생길 거야. 그래, 함께 길을 잃어주는 친구 정도는.”

 

“그럴까요.”

 

“분명 그럴거야.”  (303쪽)

 

 

“글자 쓰는 연습은 안 해도 돼. 읽을 줄만 알면 돼. 책을 읽을 줄 알면 충분해. 내가 글자를 쓸 줄 알아봤자 뭐에 써먹겠어?”

 

소년이 대답했다.

 

“안 돼요, 누나. 언젠가 누나가 누군가한테 편지를 보내고 싶을 때 곤란하잖아요. 글을 쓴다는 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걸 누군가한테 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글도 쓸 줄 알아야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걸 누군가한테 전한다?

 

<“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에서, 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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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3 1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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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4 02: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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