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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와 함께한 나날들 - 안나 도스토옙스카야의 회고록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도스토옙스카야 지음, 최호정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18년 7월
평점 :
러시아 작가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표도르 미하일리비치 도스토옙스키인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일지. 도스토옙스키뿐 아니라 톨스토이 소설은 다 못 봤다. 아니 톨스토이가 쓴 단편소설은 한번 봤다. 이 책 《도스토옙스키와 함께한 나날들》을 보고서야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가 같은 시대 작가라는 걸 안 것 같다. 톨스토이가 도스토옙스키보다 일곱살 적었다. 다른 나라 작가 그것도 19세기 작가가 언제 태어났는지 잘 모른다. 나만 그럴지도. 작가한테 관심 가진 사람은 그 작가가 언제 태어났는지 정도는 기억하겠다. 나한테 표도르 마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는 가까이 하기 어려운 작가다. 그냥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언젠가 《카라마조프 씨의 형제들》을 보려다 그만뒀다. 앞부분만 잘 넘기면 재미있을지도 모를 텐데. 그걸 넘기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조금 아쉽구나.
내가 아는 도스토옙스키는 도박으로 빚이 많아서 소설을 썼다는 거다. 그건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거였다. 도스토옙스키가 도박빚이 있기는 했겠지만, 도스토옙스키는 갑자기 형이 죽고 형네 식구와 형 빚을 떠안았다. 첫번째 부인 아들인 파벨 알렉산드로비치하고도 함께 살았다. 그런 걸 보면 도스토옙스키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내가 그동안 도스토옙스키한테 가진 인상은 나쁜 사람이었던가. 나쁜 사람이라기보다 도박을 즐기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가 도박을 한 건 빚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빚을 갚으려고 도박을 한 게 버릇이 되고 거기에 빠져버린 거지. 도스토옙스키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도박꾼》을 썼다고 한다. 여기에서 도스토옙스키는 도박하는 사람 편을 들어주는가 보다.
도스토옙스키는 형수나 의붓아들뿐 아니라 동생한테도 돈을 주었다. 자기도 돈이 없어서 쪼들리는데, 돈이 들어오면 다른 사람한테 돈을 주었다. 이때 러시아에는 할 일이 별로 없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이 살기 어려웠으니 자기 형제한테 손을 벌렸을 거 아닌가. 난 아무리 돈이 없어도 형제한테 달라고는 안 할 텐데. 내가 돈이 없다 해도 아주 굶지 않아서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보면 그때 러시아가 어땠는지 알지도 모르겠다. 도스토옙스키는 빚 때문에 자신이 잡지에 글을 실어 달라고 해서 원고료를 얼마 받지 못했다.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는 도스토옙스키보다 돈을 많이 받았다. 그래도 도스토옙스키가 글을, 소설을 썼다는 건 도스토옙스키 자신은 소설을 써야 한다 생각해서겠지.
두번째 부인 안나 그리고리예브나는 도스토옙스키가 악덕 출판업자와 계악하고 소설을 써야 해서 만났다. 이때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쓰기가 힘들었다. 간질 발작으로 눈을 다친 것 같았다. 안나는 속기를 배우고 그 일을 하려 했다. 안나가 작가인 도스토옙스키를 알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그저 그랬던 것 같다. 안나보다 나이도 많았으니. 이때는 마흔살만 넘어도 노인이라 했나 보다. 도스토옙스키는 거의 한달이 되어서야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이름을 외웠다. 안나와 도스토옙스키는 시간이 흐르고서야 이야기를 했다. 만나고 얼마 안 됐을 때는 말하기 어렵기는 하겠다. 이때 도스토옙스키가 구술한 게 《도박꾼》이다. 안나는 속기로 받아적고 다음 날 잘 적어왔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구술을 다 마치고 내일부터 안나를 만나지 못하느냐고 하고 안나 집에 초대해달라고 한다. 안나는 다음날 다다음날 며칠은 다른 약속이 있다면서 나중에 오라고 했다.
누군가는 첫눈에 반한다고도 하지만. 한달 정도도 빠르지 않을까. 도스토옙스키는 안나 집에 찾아가고 안나한테 청혼한다. 그 다음부터 거의 날마다 도스토옙스키는 안나 집에 간다. 바로 결혼하든가 하지 석달이나 기다려야 하다니 했다.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나 보다. 옛날이니. 형수와 의붓아들은 도스토옙스키가 결혼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안나와 도스토옙스키가 결혼하고는 두 사람이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었다. 친척이 도스토옙스키 집에 자꾸 찾아와서. 도스토옙스키는 다른 나라에서 석달 지내다 오려고 했는데, 그 시간은 네 해나 길어진다. 잠깐 떠나려던 게 그렇게 길어지다니. 다른 나라에 살 때 첫째딸을 잃었다. 그때 참 마음 아팠겠다.
안나는 도스토옙스키가 도박에 빠지고 돈을 잃어도 크게 뭐라 하지 않았다. 안나는 도스토옙스키가 도박으로 돈을 잃는 걸 알면서도 기분을 바꾸라는 뜻으로 그걸 하고 오라고 한다. 그러고 나면 도스토옙스키는 다시 소설을 썼다. 도박으로는 돈을 따지 못한다는 걸 알고. 도스토옙스키는 글을 쓰고 고치고 싶어하기도 했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걸 아쉽게 여겼다. 안나와 도스토옙스키가 함께 산 시간은 열네해인데, 열세해째에 빚을 모두 갚았다. 빚을 다 갚았으니 앞으로는 여유 있게 글을 써도 됐을 텐데.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 씨의 형제들》 2부를 쓸 계획이 있었던가 보다. 그걸 못 쓰고 죽다니. 도스토옙스키가 스스로 회고록을 썼다 해도 괜찮았을 텐데. 이런 거 아쉬워하면 뭐 하나. 도스토옙스키 소설 하나도 안 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조금 우습구나.
그때 러시아 사람은 작가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했나 보다. 지금도 그런가. 도스토옙스키가 죽자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장례행렬도 길었다. 안나와 딸은 도스토옙스키 장례식에 못 들어갈 뻔했다. 그런 일까지 있었다니.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가 알기는 했지만 한번도 만나지 못했단다. 같은 시대에 사니 한번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언제부터 만우절은 있었을까. 도스토옙스키는 만우절에 안나한테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 거 재미있지 않나. 도스토옙스키가 안나와 가장 가깝고 남편이어서 좋은 점을 더 말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싶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