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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평점 :
품절
김초엽 소설에서 내가 처음 만난 건 《지구 끝 온실》이다. 그건 김초엽 첫번째 장편소설이다. 2019년에 처음 나온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못 봤다. 제목은 참 멋지구나(전에도 한 말). 그 소설집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이 봤을 것 같다. 언젠가 나도 볼지 안 볼지 잘 모르겠다. 이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도 쉽지 않았다. 내가 그렇지 뭐. 평소에 과학소설 잘 안 본다. 어쩌다 한번 봤구나. 그런 것도 가끔 보고 이 지구가 아닌 우주를 생각하면 좋을 텐데. 과학소설이라고 해서 꼭 먼 앞날이나 우주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여기 실린 소설도 그렇구나.
이 책 《방금 떠나온 세계》를 보면서 난 잠깐 다른 세계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거야말로 현실 지금에서 달아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른 세계로 가는 건 내가 아니고 그저 내 생각일 뿐이다. 책을 보고 글을 쓰는 것도 그것과 다르지 않겠다. <최후의 라이오니>를 보니 복제 인간으로 장기이식수술을 받는 이야기가 나오는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 《나를 보내지 마》가 생각나기도 했다. <최후의 라이오니>에서 3420ED에 살았던 사람은 불멸하는 사람으로 자기 복제한테 자의식을 옮기고 살았다. 이런 거 비슷하지 않나. 복제인간도 자의식이 있을 텐데. 바이러스로 3420ED 사람은 죽음을 알게 된다. 라이오니는 모자란 점이 있던 복제인간으로 사라질 뻔했는데 기계 도움으로 살게 된다. 사람이 죽고 떠나기로 해서 라이오니는 거기에 살기 힘들어진다. 라이오니는 그곳을 떠나면서 기계들이 터널을 빠져나갈 방법을 알아서 돌아오겠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이곳에 온 건 로몬이었다. 그 로몬 오리지널이 라이오니였다. 라이오니면서 라이오니가 아닌. 라이오니를 믿고 기다린 기계 셀을 보니 사람과 기계의 우정도 생각났다.
두번째 소설 <마리의 춤>에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이 나온다. 그게 마리구나. 시지각이상증이라 한다. 그런 마리가 춤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소라가 가르친다. 어느 날 마리는 춤 발표회를 한다고 한다. 마리를 테러리스트처럼 말하는데, 사람은 다른 사람이 느끼는 걸 똑같이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 보이는 사람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모른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춤 못 출 거 없지 않나. 사람은 사고가 나고 팔이나 다리를 자르면 팔이나 다리가 없는데도 아픔을 느낀다. <로라>에서는 그것과 반대되는 걸 느꼈다. 있는 걸 없다고 느꼈다. 자기 몸에 팔이나 다리 다른 곳이 없다고 느끼기도 할까. 로라는 조금 달랐다. 로라는 어릴 때 차 사고가 난 뒤 자신한테 세번째 팔이 있다고 여겼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구나. 로라를 좋아하는 진은 그런 로라를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끝내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괜찮을지.
지금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말을 해서 살아 남았다는 말을 본 듯하다. <숨 그림자>에서는 지구에 살던 인류가 다른 행성으로 가고 말이 아닌 호흡으로 입자를 읽었다. 그 말은 누구나 조금 보면 알기도 했다. 그런 거 보니 그곳엔 비밀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만 해도 그게 나타날지도 모르니. 거기 사람은 아주아주 오래전 인류인 조안을 살리고 단희는 조안과 시간이 걸려도 말하려 했다. 다른 나라 말을 쓰는 사람도 서로 말하고 알아듣는 데 시간이 걸리겠다. 달라도 소통하려는 게 생각났다. <오래된 협약>을 보니 인류가 지구를 파괴하지 않아야 할 텐데 했다. 인류는 지구와 협약하지 않고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구나. 그런 인류 때문에 지구는 괴롭겠다. 인류가 살아 남으려면 지구도 있어야 한다.
여섯번째 소설 <인지 공간>은 젊은작가상작품집에서 만났다. 그러고 보니 김초엽 소설에서 가장 처음 본 소설이구나. 난 이걸 보고 공동체도 중요하지만 개인도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진리가 다 진리는 아니다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캐빈 방정식>에는 시간을 다르게 느끼는 사람이 나온다. 뇌에 문제가 생기면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할까. 현지는 언니 현화와 더는 같은 시간을 느끼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아타까워하면서도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어쩌면 지금까지 현지는 언니 현화가 본래대로 돌아온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다르다고 틀린 건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자기 세계가 더 넓어질 거다. 이건 누구한테나 해당하겠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