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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시간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월
평점 :
요즘 인터넷 기사를 보면 별일이 다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죽게 내버려두고, 의붓아버지가 아이를 때리고 죽게 하고, 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하고 오빠가 동생을 성폭행하는. 범죄 미스터리 소설을 볼 때만 해도 그런 일은 소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생각했습니다. 아니 현실에서 일어난다 해도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했네요. 그러고 보니 제가 이런 소설을 알고 본 게 열해가 넘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시간 차이는 있지만,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이 한국에서 일어난다는 말을 봤어요. 그게 정말 그렇게 된 것도 같습니다. 소설이 다 허구가 아니기는 하군요. 세상은 예전보다 더 어두워진 것 같네요. 코로나19 뒤로 더.
어쩌면 제가 세상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설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로나19 뒤로 인터넷 기사를 보게 됐어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되려나 싶어서. 그게 버릇이 돼서 지금도 여러 기사를 보기도 합니다. 기사만 보고 진짜 일어난 일인지 알 수 없기는 하겠습니다. 아이가 죽거나 아빠나 오빠한테 성폭력 당한 건 사실이겠지요. 그런 일은 예전에도 있었을 텐데. 아무 준비 없이 갑자기 아이를 낳은 사람은 부모가 어때야 한다는 걸 깨닫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잘 모릅니다. 부모가 어때야 한다 정해진 건 없을지도. 그래도 부모가 아이한테 주어야 할 게 있지요. 바로 사랑. 모정이나 부정은 처음부터 생기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아이를 기르면서 갖게 되는 마음이 아닐지.
이 소설 《도덕의 시간》은 재일교포 오승호(고 가쓰히로)가 쓰고 2015년에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오승호 소설은 몇달 전에 한권 봤군요. 그때 소설을 봐서 이번에 이걸 본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옮긴 사람은 좋게 썼는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도덕’을 생각하기는 했습니다. 그런 건 언제 배웠을까 생각해봤어요. 공중도덕이라는 것도 있군요.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는 멈추고 풀색일 때는 건너기. 이건 교통규범이네요. 공중도덕으로 말한다면 횡단보도로 건너야 한다. 길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 공중도덕은 누가 안 봐도 지켜야 하지만, 사람은 누가 안 보면 그걸 어기지요. 저는 잘 지키려고 하지만 가끔 횡단보도가 아닌 데서 길을 건너기도 합니다. 이런 말을 하다니 창피하네요. 그런 건 초등학생 때 배웠을지 집에서 배웠을지. 어쩌면 텔레비전을 보고 그래야 하나 했을지도. 언제 배웠는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지켜야 할 건 지키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도덕은 남이 안 볼 때 하는 작은 잘못이 아니군요. 그것도 도덕이다 해야 할지. 양심, 정의. 열세해 전 한 초등학교에서 교육계 권위자가 학생과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 사람을 죽인 범인 무카이 하루토는 죄를 인정하고 15년형을 받습니다. 무카이는 왜 스승을 죽였는지 말하지 않고 그저 “도덕 문제입니다”는 말만 했어요. 지금 나루카와 시에서는 경범죄가 일어나고 거기에서 ‘생물 시간을 시작합니다’, ‘체육 시간을 시작합니다’는 낙서가 나왔습니다. 도예가가 죽은 집에도 ‘도덕 시간을 시작합니다. 죽인 사람은 누구?’하는 글이 쓰여 있었어요. 두 가지 일은 상관없어 보이면서 상관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도덕’이라는 말 때문이겠지요. 두 가지 일이 일어난 시간은 다르지만 거기에는 형편없는 부모가 있기도 했습니다. 두 가지 일이 아니고 세 가지라 해야겠네요.
사람이 언제나 착하게 살까요. 그렇지 않기도 하지요. 절대 선 절대 악은 없다고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놓인 처지에 따라 바뀌기도 합니다. 바뀌지 않고 자기 마음을 지키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사는 건 힘든 일입니다. 저는 힘들다 해도 그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그렇게 사는 사람이 더 많다고 믿고 싶어요. 자신이 생각하는 게 다 옳다고 여기면 안 되기도 합니다. 저마다의 사정도 본다면 좋겠습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