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쇼펜하우어처럼 듣는 법

삶은 삶을 가장 덜 인식할 때 가장 행복하다.

세계는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다.

듣기는 연민의 행위, 사랑의 행위다. 귀를 빌려주는 것은 곧 마음을 빌려주는 것이다. 잘 듣는 것은 잘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기술이며,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습득 가능하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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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소로처럼 보는 법

내 주변에는 소로를 닮은 사람이 있다. 어딘가 답답하기도 하고 가끔은 지치게도 하는 사람인데, 소로의 예리한 눈을 가진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 아름다움을 보려 노력해야겠다.

거리를 두고, 시간을 두고, 여러 각도에서 훑어보기.
나만의 월든을 찾기에는 너무 정신 없는 삶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럴수록 더 찾아봐야지. 아름다움을 본 지 오래된 것 같다.

가끔 우리는 의미를 너무 빨리 창출한다. 어쩌면 머그컵처럼 보이는 저 물체는 완전히 다른 것일 수 있다. 물건과 사람을 너무 빨리 정의 내리면 그것들의 유일무이함을 보지 못할 위험이 있다. 소로는 그러한 경향을 경계했다. "보편 법칙을 너무 성급하게 끌어내지 말 것." 소로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특수한 사례를 더 명확하게 들여다볼 것." 눈앞에 보이는 것을 바로 규정하지 않고 기다리면 더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소로는 그 속도를 엉금엉금 기어가는 수준으로 낮추었다. 추측과 결론 사이의 틈, 보는 것과 본 것 사이의 틈을 최대한 길게 늘였다. 소로는 더 오래 머무르라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상기시킨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주 오랜 시간 들여다봐야만 볼 수있다."

조류학자는 공작새가 형형색색의 깃털을 뽐내는 생물학적 이유는 알아도 그 아름다움은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소로는 말한다. "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것을 멈출 때에야 나는 비로소 그 대상을 보기 시작한다." 피로에 지친 눈으로는 조금밖에 보지 못한다.
소로는 "순진무구한 눈‘을 연마했다. 어린아이가 느끼는 경이를 한 번도 잃지 않았다. 산딸기를 따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랠프 월도 에머슨은 소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소년이고, 언제까지나 나이 든 소년일 것이다." 소크라테스처럼 소로도 철저하게 의식적인 무지를 중요하게 여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유용한 무지를 전파하는 모임" 만들겠다고 했다.

소로처럼 천천히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각은 가장 속도가 빠른 감각, 예를 들어 미각보다 훨씬 빠른 감각이다. ‘음미하다‘와 비슷한 시각 관련 단어는 없다(어떤 대상에 시선이 머무른다‘라고 말할수는 있지만 이 표현에는 ‘음미한다‘ 같은 감각적인 느낌은 없다).
나는 보는 데 게으른 사람이다. 내 시선의 대상이 모든 일을 다해주길 바란다. 경치, 한번 나를 황홀하게 해봐. 제기랄, 아름다워지라고! 그 대상이, 예를 들면 알프스 산맥이나 모네의 그림이 내 말도 안 되는 기대에 못 미치면 나는 내가 아닌 그 대상을 탓한다.
소로는 다르게 생각했다. 아름다움에 익숙한 사람은 쓰레기장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지만, "흠잡기 선수는 낙원에서도 흠을 찾아낸다."

소로는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것을 "마음 검사"로 여겼다.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있는 게 아니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마음속에 있다. 자기 자신을 향상시키지 않고는 자신의 시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보는 것의 역학은 양쪽으로 작용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가 무엇을 보는지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무엇을 보는가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한다. 《베다》에서 말하듯, "당신이 보는 것이 곧 당신 자신이다."

정말이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나만의 월든인 이곳에서 더 명료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지만, 시각적 깨달음, 소로가 성취한 "단하나의 확장"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실망스럽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소로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말에서 위안을 얻는다.
보는 데는 시간뿐만 아니라 거리도 필요하다고, 소로가 내게 말한다. "무엇이든 제대로 보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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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시간을 사용해서 아이디어가 무르익도록 해야겠다.

베유는 내가 예루살렘에서 드러낸 일종의 계산적 조급함 외에다른 종류의 조급함도 경계했다. 불안에서 나오는 지적 조급함이다. 지적 조급함은 물에 빠진 사람이 칼이라도 붙잡으려 하는 것처럼 나쁜 아이디어라도 붙잡으려고 한다. 베유는 우리의 모든 실수가 "생각이 아이디어를 너무 성급하게 붙잡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며, 이렇게 일찍 차단되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원대한 아이디어를 낚아채려고 열심인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심리 상태를 본다. 그들은 원대한 아이디어가 자신을 그저 그런 사상가에서 선구자격 사상가로 바꿔주길 바란다. 그들은 아이디어를 숙고하는 것보다 포장하는 데 더 관심이 많고, 아이디어가 충분히 무르익기도 전에 세상에 내보낸다.
선구자격 사상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고되게 주의를 기울이고싶어 하지 않는다. 주의 기울이기의 고됨은 유도나 활쏘기가 고된 것과는 다르다. 그보다는 명상이나 양육이 고된 것과 비슷하다. 기차를 기다리는 것이 고된 것과도 비슷하다. 주의력은 뜨개질이나 펜싱처럼 우리가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주의력은 정신 상태이며, 방향성이다. 우리는 주의력을 학습하기보다는 주의력을 향해 나아간다.

주의를 기울이려 하지만 속도 때문에 불가능하다. 속도는 주의의 적이다. 역 바깥으로나온 뒤 갑작스레 쏟아지는 햇빛에 눈을 깜박거리며 방향 감각을 되찾으려고 고군분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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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단순히 집중하는 게 아니라 상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것은 나의 욕심을 버릴 때 가능하다.

모든 부주의는 이기심의 한 형태다.

그런 사람들은 이런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게 문제.
속상하다.

그 말이 나를 얼어붙게 했다. 그가 옳았다. 나는 그를 같은 인간이나 미래의 메시아가 아닌, 녹음 파일로만 여겼다. 내 자부심의먹잇감으로 바라건대 내게 좋은 평가를 가져다줄 이야깃거리로.
나는 그에게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고, 내 입장에서 우리 거래는 끝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나는 그 남자가 이것을전혀 거래로 여기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그의 관점에서 우리는대화를 나누며 서로 관심을 교환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인색하게 굴고 있었다. ... 네덜란드인 메시아의 말이 쓰라렸던 건 그때까지 내가 나의 주의력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두 눈을 고정하고 귀를 쫑긋 세운 채 강렬한 캐릭터를, 감정이 가득 담긴 녹음 파일을, 내 이야기에 청각적 질감을 더해줄 배경 음향을 세심히 신경 쓰고 있었다. 나는 집중하고 있었지만 관심을 기울이진 않았다. 나는 발견하기도 전에 내가 무엇을 찾는지 알았다. 나 자신의욕망에 몰두해 있었다. 그건 언제나 위험하다. - P237

모든 부주의는 이기심의 한 형태다. 우리는 그게 무엇이든 간에 자기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나머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보다 더 흥미롭고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들이 그토록 부주의한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억눌려 있고, 정체되어 있다. 관심은 우리 삶의 피다. 피는 잘 돌아야 한다. 관심을 썩히는 것은 곧 삶을 죽이는 것이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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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관심은 우리의 삶을 형성한다.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냐에 따라 나의 삶이 매순간 새롭게 채워진다. 결국, “관심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베유는 타인의 고통을 자기 고통처럼 느꼈다. 중국의 기근 소식을 듣고 눈물을 터뜨린 베유를 본 보부아르의 회상이 인상깊다. “전 세계에 맥박이 울리는 심장을 가진 그녀가 부러웠다.”

나는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나? 그냥 잠깐 인지하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무엇인가? 돌이켜보면 순수한 관심을 갖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심지어 나에게 관심을 갖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그러니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정말 힘들 수밖에.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일 수 있는 능력은 매우 희귀하고 갖기 어려운 능력이다. 그건 거의 기적에 가깝다. 아니, 그것이 바로 기적이다.”

그런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 필요한 질문으로 베유는 이 질문을 제시한다. ”지금 무슨 일을 겪고 계신가요?“

왜냐하면 베유에 따르면 이 질문은 고통받는 사람을 집합체의 단위로, 어떤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나와 똑같은 한 명의 인간으로 보게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고통들이 여러 매체속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시대이다. 그만큼 우리는 고통에 쉽게 무뎌진다. 그럴 때마다 마주하는 고통들에 저 질문을 던질 수 있기를. 조금씩 연습해봐야겠다.

그런데,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무뎌지지 않아야 되는 이유가 있나? 그런 마음이 든다면 우리가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건 나만큼 상대를 인격으로 대우하는 것과 동일한 말이기에 어쩌면 그런 질문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관심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어디에 관심을 기울이기로결정했느냐, 더 중요하게는 어떻게 관심을 기울이느냐가 곧 그 사람을 보여준다. 지난 삶을 돌아볼 때 어떤 기억이 표면 위로 떠오르는가? 어쩌면 결혼식처럼 커다란 사건일 수도 있고, 우체국의말도 안 되게 긴 줄에서 뒤에 선 사람과 나눈 뜻밖의 다정한 대화처럼 작은 사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은 가장 주의를 기울인 순간일 확률이 높다. 우리의 삶은 가장 열중한 순간들의 총합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베유는 "가장 큰 희열은 가장 온전하게주의를 기울였을 때 찾아온다"라고 말했다. - P222

가장 강렬하고 너그러운 형태의 관심에는 다른 이름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관심은 사랑이다. 사랑은 관심이다. 이 두 가지는같은 것이다. "불행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필요로 하는것은 다름 아닌 자신에게 관심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베유는말한다. 보답에 대한 기대 없이 타인에게 온전한 관심을 쏟을 때에만 우리는 이 "가장 희소하고 순수한 형태의 너그러움"을 베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나 연인에게서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이 그렇게나 괴로운 것이다. - P227

진정한 관심이라면 그저 타인의 존재를 인지하기만 하는 것이아니라 그 사람을 인정하고 공경해야 한다. 병원만큼 이런 관심이 꼭 필요한 곳은 없다. 과로하는 응급실 의사는 환자가 언제 고통을 느끼는지를 인지하고 그 원인을 찾아내 고통을 치료해주지만 절대 환자에게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환자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배신감을 느낀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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