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루소처럼 걷는 법 - 계속

- 자연과 동조하자는 루소의 생각을 기억하며 걸을 수 있기를.

루소의 유산은 어마어마하다. 축하카드, 할리우드의 최루성화, 하트 모양 이모티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솔직하게 털어놓는 자서전도 전부 루소가 남긴 유산이다. "나 실컷 울어야겠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 루소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상상력을 이용해봐"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 루소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한창 열띤논쟁을 벌이다 "이게 말이 안 돼도 상관없어. 난 그렇게 느끼니까"
라고 내뱉은 적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배우자가 "당신에게 좋을것"이라는 이유로 춥고 축축한 날 당신을 16킬로미터 트레킹에끌고 간 적이 있다면 루소에게 고마워하거나 저주를 퍼부을 수있다. 루소 덕분에 우리는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게 되었으며, 우리의 감정에 대해 다르게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 - P1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 루소처럼 걷는 법

- 루소의 철학은 다음 네 어절로 요약할 수 있다. 자연은 좋고 사회는 나쁘다.

루소의 철학은 다음 네 어절로 요약할 수 있다. 자연은 좋고 사회는 나쁘다. 루소는 "인간의 자연적 선함"을 믿었다. 자신의 저서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루소는 자연 상태에 있는 인간이 "노동도 언어도 없이, 거처도 바라는 것도 의사소통도 없이, 타인에 대한 욕구도, 마찬가지로 타인을 해치고자 하는 욕망도 없이 숲속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묘사한다. 비열하고, 옹졸하고, 앙심을 품고, 피해망상에 빠진 채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은 사회다. - P90

모두 훌륭한 산책자들이다. 하지만 루소만 한 사람은 없다. 루소는 하루에 30킬로미터 이상을 걷곤 했다. 한번은 제네바에서파리까지 480킬로미터를 걸은 적도 있었다. 제네바에서 파리까지 가는 데에는 2주가 걸렸다.
루소에게 걷기는 숨쉬기와 같았다. "나는 멈춰 있을 때에는 생각에 잠기지 못한다. 반드시 몸을 움직여야만 머리가 잘 돌아간다." 루소는 걸을 때 늘 지니고 다니던 게임용 카드에 크고 작은생각을 적었다. 루소가 걸어 다닌 첫 번째 철학자는 아니지만, 걷는 행위에 대해 이렇게 두루 철학적으로 사고한 철학자는 루소 이전에 없었다. - P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 질문을 살아내는 것.
마음의 대답에 도착하려면 인내심도 필요하지만 기꺼이 자신의 무지와 한자리에 앉으려는 자세도 필요하다.

괜찮은 챕터였다.

결과 2번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을지 모르지만,
그건 지나치게 성찰하는 삶도 마찬가지다.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행복하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곧 행복하지 않게 될 것이다"20 라는 말로 쾌락의 역설(헤도니즘의 역설 Paradoxof Hedonism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을 설명했다. 행복은 붙잡으려고 애쓸수록 우리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행복은 부산물이지,
절대 목표가 될 수 없다. 행복은 삶을 잘 살아낼 때 주어지는 뜻밖의 횡재 같은 것이다. - P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 ‘무엇을’, ‘왜’ 보다 ‘어떻게’라는 질문에 더 관심을 가졌던 소크라테스.

나는 주로 전자의 질문을 탐닉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문제는 너무 관념적으로 흘러가는 때가 많았다는 것. ‘어떻게’라는 질문의 가장 큰 장점은 실용성에 있다. 지금 여기 살고 있는 내가, 우리가 어떻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가. 그리고 이것이 바로 모든 철학의 핵심이다. 그렇기에 무엇을, 왜에 대해 탐구하고 엄청난 답변을 내놓은 사람들은 많지만 철학의 시초를 소크라테스라 부르는 것이다.

철학이 삶과 떨어지는 순간 그 생명력은 소실된다. 많은 반성을 하게 된다. 나의 철학이 살아 숨 쉴 수 있기를. 가정에서 학교에서 나의 모든 일상에서 살아 있는 철학을 하고 그 생생함을 학생들과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한다. 노력해야겠다.

“이 세상에 ‘소크라테스의 사상’같은 것은 없다. 소크라테스의 사고방식만이 있을 뿐이다.”

- 소크라테스의 방법론은 변증법, 엘렌쿠스, 귀납적 추론 등의 멋진 용어로 말할 수 있지만 단순한 용어로 말하자면 바로 대화다. 소크라테스에세 철학과 대화는 사실상 동의어였다. 그러나 이 대화는 수단이다. 어떤 수단? 바로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수단. 소크라테스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배웠다.

- 시리에게 ‘질문’의 의미와 사람에게 ‘질문’의 의미는 매우 다르다.
커다란 질문일수록 우리는 정보만 제공하는 답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윤리는 그 커다란 질문을 다루는 학문이니 단순한 정보 나열에는 어떠한 관심도 없을 수밖에. 사랑은 뭘까? 악은 왜 존재하는 거지? 이런 질문을 할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보가 아닌 보다 더 큰 것, 바로 의미다.

- 질문은 일방향이 아니다. 질문은 (최소) 양방향으로 움직인다. 질문은 의미를 구하고 또 전달한다. 적절한 때 친구에게 적절한 질문을 묻는 것은 연민과 사랑의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질문을 무기로 사용한다. 상대를 저격하고 자신을 저격한다. 질문으로 변명을 삼고, 나중에는 정당화한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진정한 창문은 눈이 아니라 질문이다. 볼테르가 말했듯,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대답이 아닌 질문을 보는 것이다. - p.54

- 좋은 철학은 느린 철학이다.

- 좋은 아빠.

- 아이의 질문이 성가신 것은 멍청한 질문이라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제대로 대답할 능력이 없어서다.

편협하고 수상쩍은 지식보다는 폭넓고 솔직한 무지가 더 나았다. - P49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동료 시민들이 조각상의 제작이나 민주주의의 실천 같은 면에서는 더 나아지려는 의지가 대단하면서, 왜 이런 종류의 질문에는 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지 이해할 수없었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아테네인들은 모든 것을 개선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 모든 것에 자기 자신은 포함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바로 그 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평생의 사명으로 삼았다.
이 결심이 철학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다. 이제 철학은 우주에 대해 불확실한 추측을 하는 학문이 아니다. 철학은 삶,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한 것이고, 어떻게 하면 이 삶을 최대한 잘 살아내느냐에 관한 것이다. 철학은 실용적이다. 필수적이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처음으로 철학을 하늘에서 끌어내려 마을에 정착시켰고, 철학을 사람들의 집 안으로 불러들였다."" - P50

우리는 종종 궁금해하는 것과 호기심을 같은 것으로 여긴다.
물론 두 가지 다 무관심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그 방식은서로 다르다. 궁금해하는 것은 호기심과 달리 본인과 매우 밀접하게 엮여 있다. 우리는 냉철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냉철하게질문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냉철하게 궁금해할 순 없다. 호기심은 가만히 있질 못하고 늘 눈앞에 나타나는 다른 반짝이는 대상을 쫓아가겠다며 위협한다. 궁금해하는 마음은 그렇지 않다. 그마음은 오래도록 머문다. 호기심이 한 손에 음료를 들고 안락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발을 올려둔 것이 바로 궁금해하는 마음이다. 궁금해하는 마음은 절대로 반짝이는 대상을 쫓지 않는다. 절대로 고양이를 죽이지 않은다. - P56

소크라테스가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한 데에는 좋은 뜻이 있었다. 바로 더 선명한 시야를 위해서였다. 소크라테스는 검안사였다. 사람들은 잘못된 도수의 안경을 쓰고 돌아다닌다. 이런 실수는 당연히 보는 방식과 보는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왜곡된 현실을 유일한 현실로 착각한다. 심지어 자신이 안 맞는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하루 종일 휘청거리며 가구에 부딪치고 사람들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내내 가구와 사람들을 탓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어리석고 불필요한 것으로 여겼다. - P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이쇼나곤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


- 나만의 렌즈 갖기
- 자그마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는 눈 다시 갖기
- 크게 생각하기보다 사소한 것을 생각해보고 바꾸기

누군가는 이 말에 반대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괴로운 것은 의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넘쳐나서라고 말이다. 소셜미디어덕분에 이제는 언제든지 모두가 모든 것에 자기 의견을 내보일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의견들은 친구들에게, ‘전문가‘들에게, 그리고 가장 교활한 알고리즘에 크게 영향받는다. 그 결과 우리는 희뿌연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의 신념은 종이처럼 얄팍하다. 당신은 새로 생긴 스시집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그저 사람들이 별점을 다섯 개 줬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타지마할은 정말로 아름다운가? 아니면 인스타그램 속 황홀해하는 사진들을 보고 타지마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 것인가? 세이 쇼나곤은 자기 렌즈가 투명하고 깨끗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생각이 온전히 자신만의 생각일 수 있도록 치열하게 노력했다. - P337

하지만 한 학자의 말처럼 철학자의 일이 "사물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면 쇼나곤은 확실히 철학자다. 쇼나곤은 우리에게 세상을, 자신의 세상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이것좀 봐. 정말 놀랍지 않니? 너무 작고 너무 아름다워. 만약 니체의 말처럼 철학자의 일이 "삶을 더욱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면, 쇼나곤은 철학자다. 쇼나곤의 글을 몇 시간 읽고 나면 색채가 더욱 선명해 보이고 음식은 더 맛있어진다. - P347

쇼나곤의 철학에 함축된 의미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정체성은 자기 주위에 무엇을 두기로 선택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주변에 무엇을 두느냐는 선택이다. 철학은 우리가 내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택을 겉으로 드러내 보인다. 어떤 것이 자신의 선택임을 깨닫는 것은 더 나은 선택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가 말했듯, "일하는 동안 곁에 두기 위해 처음으로 작은꽃을 꺾은 사람은 인생의 기쁨에 한 발짝 다가간 것이다" - P347

슬픔은 무척 무겁게 느껴지지만 어쩌면 그건 환상이다. 어쩌면 슬픔은 우리 생각보다 가벼울 수 있다. 어쩌면 꼭 용감무쌍한 행동이 필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삶에서 흔히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작은 것들의 위대한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할수도 있다. 어쩌면 구원은 보기보다 가까울 수 있다. 우리가 해야하는 건 그저 손을 뻗어서 문을 닫는 것뿐이다. - P3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