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톡, 파트너 - P490

2대 건문제(1398~1402)를 쿠데타를 통해서 전복하고 3대영락제(1402~1424)가 제위를 차지했다. 내정에서는 홍무제의 방침을 거의 대부분 계승하면서 황권을 강화하였다. 권력에대한 황제의 강한 의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건문제가영락제의 정변으로 축출됐을 때 건문제의 스승 방효유는 끝까지 항거하다가 능지처참당했고, 그의 가족, 친구, 제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847명이 몰살당했다.(브룩, 183~184) 영락제는 방효유의 친족, 외족, 처족을 비롯한 구족 그리고 여기에 더해 문인, 동지, 그의 서적을 탐독한 인사들을 모두 숙청하고, 집안 여성들은 노비나 첩, 기녀로 보냈다. ‘십족을 멸한 엄청난 사건이었다. - P503

나는 이곳 사람들보다 노래를 못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이들이 하는 노래는 목구멍에서 끄집어내는툴툴거리는 소음인데, 개 짖는 소리와 비슷하지만 개 소리보다도 더 짐승 같다.
(Graham-Campbell, 81~83) - P550

그러므로 바이킹이라는 말은 자기 민족의 정체성이 아니라 특유의 삶의 방식을가리키는 말이었다. 꼭 북유럽 출신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떠돌아다니며 약탈 공격을 하거나 혹은 다른 지배자의 용병 역할을 하는 등 삶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적 방식을 사용하는 인간들‘을 뜻한다. 따라서 북유럽 내에서도 일부 용맹한 모험가들만 바이킹일 뿐이다. 해외로 떠나지 않고 고향에 남은사람들은 농사와 목축에 전념했으며, 이들은 바이킹과는 거리가 멀었다. - P552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는 어릴 때 날이면 날마다 청어가 올라와 불평을 하자 그의 아버지가 "청어에 대해 함부로말하지 말아라. 청어가 없었다면 우리 유대인도 살아남지 못했어" 하고 말했던 사실을 소개한다.(민츠, 21~22) - P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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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무속신앙에서 동자는 생명의 상징이었다. 육지의 무덤에 문인과 군인권력을 상징하는 문관과 무관을 세워놓고 살아생전의 권력을 죽어서도 재현하는 풍경과 달리 제주도 무덤은동자가 지킨다. 제주도 동자석은 제주의 혼이 깃든 돌 미학의 압권이다.
- P217

바람처럼 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표징 동자석 - P214

비승비속의 마을로 간돌미륵 - P217

돌하르방은 조선시대 신 전통 - P220

제주도 마스코트와 홍보책자 겉옷도 으레 돌하르방이 점령하기 마련이다. 고리바쵸프가 제주도에서 30억 달러 원조 약속을 거머쥐고 모스크바로 되돌아 갈때, 비행기에 동승한 주인공도 돌하르방이었다. 이래저래 국제 명물이 되었다.
제주에서는 꿀단지조차도 돌하르방 모양새다. - P220

하르방은 할아버지라는 뜻이므로 돌하르방은 ‘돌 할아버지‘다. 조선시대, 아니면 고려시대, 그것도 아니면 삼국시대에 만들어졌을까. 정답은 일반상식을 뒤엎는다. 돌하르방의 공식화는 물과 수 십년 안짝, 해방 이전만 해도 돌하르방이란 말은 없었다. 1971년 8월 20일, 제주도 문화재위원회에서 민속자료제2호로 지정할 때 ‘돌하르방을 갑론을박 끝에 문화재 공식명칭으로 쓰면서부터다. - P220

문화적 풍향계인 마을상징물 돌탑 - P224

색이 다르고 질감이 다르면 돌챙이의 손맛도 다르다 - P230

판에 박은 가짜문화에서 전통의 법고창신으로 - P233

테우리의 섬
조랑말은 아무나 키우는 게 아니다. - P237

목호들은 말을 대단히 소중하게 여겼으며 심지어 말의 걸음걸이나 식사까지도 조절하면서 다루었다. 목호들은 양마법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몽골말의 순종을 보존하기위해 과하마와의 상란(亂)을 금지했다. 원나라가 물러난 뒤에 제주도의 말은 모두 왜소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양마법을 잘 몰랐기 때문이며, 멤찮은 말이라면 모두 육지로 공출해갔으며, 심지어 과하마와 상란한 결과에서 초래된 일이다.
- 이익, 《성호사설》 - P237

한라산 목동 테우리 - P238

카우보이 모자와 정동벌립 - P243

육식파와 미식파의 대결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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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만델
콜라(촐라)의 영토라는 의미 - P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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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수를 저장했다가 쓰고, 해안마을에서는 통물을 이용했다. 용천수는 일부가 어승생, 영실 같은 산악지대에서도 용출되지만 제주 마을이 해변가에 집중된 이유도 알고보면 물 때문이다.  - P150

제주도에서 물은 성지의 물이며 신들의 좌정처가 된다. 풍수신앙에서 말하는 생수가 있는 물혈(穴)이기도 하다. - P150

용천수를 가능케 하는 곶자왈은 그 자체로 거대 물탱크다. 마을사람들은 용천수가 솟는 샘을 물통이라 부른다. 물통은 나름의 관리시스템을 지닌다. - P150

빗물 저장 방식 중에 춤이 재미있다. 머리카락처럼 엮은 띠를 뒤뜰나무에 묶어 항아리로 빗물이 흘러내리도록 한 장치인데 괌을 여행하다가 원주민 차모로족이 동일 방식으로 쓰고 있어 놀라웠던 적이 있다. 세계 대부분의 화산섬은 물문제를 안고 있다. 차모로족이나 옛 탐라인이나 춤은 선사 고대 이래의 오랜 풍습이었을 것이다. - P151

손쉽게 넓은 땅을 확보하려는 탐욕은 계속된다. 시애틀 추장의 말대로 먼데서 들리던 포크레인 소리가 차츰 가까워지고 곳곳에서 숲이 절단난다. 성스러운 숲이 인간의 냄새로 꽉찰 때 더 이상 잔목숲을 찾을 수 없으리라. - P153

이쯤에서 숲의 멸망이 결국 인류 문명의 멸망으로 이어졌다는, 존 펄린의 숲의 서사시 서문에 덧붙인 레스터 브라운(월드워치연구소 소장)의 문명사적 경고 - P153

잠녀의 섬
해녀 한명이 사라지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다. - P161

고기 그물에 걸려 있는 친구를 발견했다. 정신 없이 친구를 업고 묻까지 헤엄쳐 와서물을 토하게 한 후 도로로 올라가 차를 세워서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잠수에게 생활의 터전을 제공하는 바다는 그녀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비정한 바다이기도 하다. 어제까지 같이 웃고 같이 일하던 친구를 한 순간에 빼앗아가 버리는 것이다.
- 《바다를 건넌 조선의 해녀들》 - P151

본디는 해녀가 아니라 잠녀 잠수
하도리 해녀박물관을 들어서면 벽면에 해녀를 둘러싼 속담들을 써놓았다. 속담을 찬찬히 읽어보면 해녀들의 강인한 생활력과 투혼이 엿보인다. - P162

해녀의 잠수굿에서는 반드시 사람을 일일이 호칭하는 ‘열명‘을 행한다. 굿하는 도중에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호명된 사람이 물질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게끔 신에게 기원한다. 김녕리 잠수굿을 연구한 강소전에 의하면, ‘열명이야말로 잠수굿을 주최하는 주민들이 누구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치‘라고 했다. - P170

바다가 집이요, 배 밑창이 칠성판‘이란 노래가 실감난다. 그렇게 억척같이 돈을 모아 살림을 키웠으니 위대한 어머니, 장한 딸이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은, 그 위대함을 예찬하면서 해녀 노동에 대한일상적 착취를 감추려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 P173

분노의 불길이 높아져 급기야 관용차를 대파했으며 긴급 출동한 경찰과 충돌하기에 이른다. 그 장거는 지금까지 해녀의 역사로 남았다. 해녀 항쟁은 세계에 유래 없는 것으로 세계해양사 및 여성운동사, 사회운동사 등의 서술에서 일맥을 당당하게 차지해야 한다. - P177

해녀들의 휴게소, 불턱 - P177

불턱은 제주여성을 강하게 만들어내는 교육장이다. 한 마을의 여성들이 집단으로 몰려다니면서 험한 물질을 하고, 휴식시간에는 불턱모여 수다도 떨면서 온갖 세상의 소문을 수집 평가하는 공개 포럼이 일상적으로 열렸다. 한 두해도 아니고 일생을 함께 하면서 불턱에서 쌓아올린 여성만의 공동체적 의식이야말로 제주 여성이 길러지는 기반이다. - P179

해녀는 살아있는 해양문화박물관 - P179

제주해녀에게도 우리식의 ‘바다의 서사시‘를 헌정할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녀들이야말로 인류문화사에 남을 ‘바다의 장인‘, ‘자연의장인‘ 이기 때문이다.
- P189

흑조의 섬
쿠로시오가 가져온
자연과 문명의 선물들 - P191

옛 사람이 생각한 바다 개념은 더 넓은 의미에서 여전히 우리 주위에 남아있다. 바다는 우리 모두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육지 간의 무역은 반드시 바다를 건너야만 가능하다. 육지 위로 부는 바람 조차도 그 넓은 바다 위에서 자라났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신비스러운 과거에 바다는 모든 생명의 희미한 기원을포함하고 있었고, 결국에는 많은 변환 끝에 같은 생명의 죽은 껍질을 받아 들인다. 모든 것은 영원히 흐르는 시간의 강처럼 결국에는 바다, 즉 대양의 강인 오케아노스로돌아가기 때문이다."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우리를 둘러싼 바다》 - P191

폰페이 무태장어에서 천지연 무태장어까지 - P193

태평양민족지 적도의 침묵 (2007)을 펴낸 적이 있다. 조사를 위해 미크로네시아 폰페이섬(Ponpei)에 머물렀는데 거기서 서귀포 천지연에 살고 있는 무태장어와 똑같이 생긴 놈을 만났다.
폰페이는 화산섬이기 때문에 산이 높고 계곡이 깊다.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하구에는 으레 장어가 살고 있다. 원주민은 뱀장어를 먹지 않는다. - P193

서귀포 천지연에 서식하는 무태장어는 적도 뱀장어와 같은 열대성 물고기다.
서귀포는 일본 나가사키와 함께 무태장어가 살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다. 난류따라 북상해 오기 때문에 천지연에 웅크린 무태장어가 서해나 동해로 올라오는경우는 없다. - P194

적도에서 만난 똑같은 무태장어를 제주도까지 밀어붙인 힘은 두말할 것 없이 쿠로시오의 힘이다.
- P194

쿠로시오 난류니 대마 난류니 하는 학술용어는 모두 일본이 국제학회에 보고하여 인정받은 명칭이다. 학술명칭으로 전 세계가 쓰나미를 씀과 같은 이치다. 
- P194

쿠로시오 원류는 북적도(赤道) 해류다. 
타이완 동측에서 오키나와 열도, 아마미 제도로 북상하여 가고시마(鹿兒島) 아래에서 동한난류와 갈라진다. 
아랫가닥은 동측으로 향하여 시코쿠(四國)로 향하며, 
윗 가닥은 제주도와 남해안은 물론이고 서해 · 동해에도 영향을 미친다. 동아시아 앞바다의 대륙붕을 따라 북쪽으로 휘어져 올라간 쿠로시오 해류는 오호츠크해와 베링해로 쏟아져 나오는 거대한 오야시오 한류와 만나 대륙에서 멀어진다. - P194

다네가시마 바닷가 모래밭에서 문주란을 만났다. 동일한 문주란이 제주도까지 흘러와서 뿌리를 내렸다. 해류는 이처럼 조총 같은 문명이나 문주란 같은 생물체를 부지런히 실어보낸 것이다. 
- P195

온난하며 습기를 머금은 이들 쿠로시오야 말로 남방으로부터의 문명교류 루트이자 배를 떠밀어 내는 동력의 근원이었다. 바람이 대양 횡단의 동력이라면, 해류는 또다른 동력이었다. - P195

쿠로시오가 흘러 흘러 만들어낸 바닷길
세상에는 길도 많다. 길은 육지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 P195

제주도에 막중한 영향을 미친 쿠로시오가 가져온 자연과 문명의 선물을 쿠로시오 로드‘라 명명해본다. - P197

로드1. 문주란과 선인장
제주도 곳곳에서 드러나는 쿠로시오 흔적 중의 하나가 문주란이다. - P197

로드2. 방어와 고래, 거북이, 각저귀
모슬포는 방어로 유명하다. 해마다 12월이면 모슬포항에서는 방어축제가 한창이다. 쿠로시오를 따라서 올라온 방어가 한 달여 동안 엄청나게 잡히기 때문이다. 방어는 봄부터 여름까지는 북쪽으로, 가을에서 겨울에는 남쪽으로 남북회유를 거듭한다.  - P198

로드3. 돼지와 검정쉐
돼지고기도 남방문화다. 혹자는 순대를 예로 들어 몽골지배기에 몽골문화에서 왔다고도 하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오래된 도시의붓(Ubud)에서 돼지창자에 돼지피를 버무려 넣은 순대를 먹어본 적이 있다. 오키나와의 돼지고기를 얹어주는 국수와 제주도 국수, 나아가 돼지국물에 모자반을 넣고 끓인 몸국,똥돼지로 지칭되는 돗통시문화 전체가 남방문화의 소산이다. - P202

제주도도 돼지고기 문화권이다. 제주사람이 즐겨 먹는 돔베국수와 오키나와 국수에 똑같이 돼지고기가 올라간다. 미크로네시아에서 부터 북마리아나 제도, 오키나와 제도, 그리고 제주도에 이르는 광대한 태평양문화권이 돼지고기문화권이다. 환태평양에 드넓게 퍼져있던 돼지고기문화의 강력한 보루 중의 하나가 제주도인 것이다. - P202

돼지와 더불어 검정쉐(흑우)도 중요하다. 검정가 사라져서 종축장의 번식용만 정책적으로 사육되고 있으나 예전에는 검정쉐가 제주도에서 상당수 있었다. 검정쉐국가적 제사에 쓰던 의례용이기도 했다. 검정는 두말할 것 없이 남방의 소다. 쿠로시오 난류의 지류인 대마난류의 영향권인일본 서부 오키(被) 제도에도 흑우가 특산물이다. 이 역시 쿠로시오 문화의 한가닥이다. - P202

로드4. 해녀
제주문화를 상징하는 해녀도 원래 쿠로시오 문화다. - P204

로드5. 뱀신앙
제주도 뱀신앙도 남쪽에서 왔다. 제주에서는 뱀을 조상신, 당신, 일반신으로 두루 모신다. 뱀신은 안칠성, 밧칠성 등으로 모셔진다. 김정은 이런 기록을남겼다. - P204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는 
《탐라기행》에서 ‘고대에는 고대의 다이너미즘이 있었다‘고 명료하게 정리했다. 일본 극우주의자의 칭송을 받는 국민작가인지라불편하기는 하지만, 그의 이 지적은 경청할만하다고 본다. 제주 해녀가 일본 해녀에게 잠수어법을 가르쳤다는 식의 문화전파론적 우월적 발언보다, 아시아인상호 간에 고대적 마음의 넓이를 좀 더 많이 가질 수 없는 것일까라는, 저자의 질문법에 동의한다. - P204

쿠로시오 로드에 하나 더 추가할 것은 인종의 전파다. 두말할 것 없이 제주도민은 북방계열로 알려진다. 그러나 남방으로부터 오지 않았으리란 보장도 없다. 한국인 DNA 분석에서 북방계, 남방계가 혼재된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 P206

한국인의 지역 및 역사 인식은 주로 북방 사고의 틀에 종속되어 있다. - P209

더군다나 타이완과 오키나와를 예로 든다면, 이들 섬은쿠로시오 해류권의 아열대성 해양문화를 공통분모로 갖고 있다. 제주도 역시 이들 쿠로시오 해류의 영향권이다. 쿠로시오 해류권역이라 했을 때, 이는 국민국가 차원이 아니라 타이완, 남중국, 오키나와, 일본 남서부는 물론이고 필리핀 등서태평양 일원의 해류권역을 포괄한다. - P211

제주도는 쿠로시오 문화권의 북방한계선이다. 제주문화는 전통적으로 한반도 본토의 북방문화, 남쪽 오키나와와 일본의 아마미오시마 등에서 올라오는 남방문화가 결합된 상태다. 우리들 북방적 사고에 남방의 사고를 결합한다면, 제주도가 전혀 새롭게 보이지 않을까. - P211

돌챙이의 섬
제주의 혼이 깃든
미학의 압권은 돌문화 - P213

옹중석(石)은 제주읍의 성 동서남(東西南) 삼문(門)  밖에 있었고, 영조 30년에 목사 김몽규(金夢奎)가  창건했으나, 삼문이 헐림으로 인해, 2좌는 관덕정 앞에, 2좌는 삼성사입구로 옮겼다.
담수계(淡水), 《증보탐라지(誌)》 - P213

바람처럼 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표징 동자석
육지에 석수쟁이가 있다면 제주에는 돌챙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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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정 노트 1. 임제
《남명소승》에 영실계곡에 당도하는 모습을 남겼는데 간이용 텐트가 없던 시절이라 장막을 지고 올라가 정상에 베이스캠프를 쳤던 것 같다. 오늘날의 영실코스로 등정한 것 같으며 존자암을 거쳐 갔다. - P54

등정 노트 2. 김상헌
나라의 공무로 출장 온 김상헌은 남사일록》에 이렇게 썼다.

오백장군 골짜기는 돌 봉우리가 다투어 빼어나 말 타고 갑옷을 입은 사람같기도 하고, 혹은 칼과 창을 잡고 깃발을 나부끼는 것 같기도 하며, 푸른 절벽 위에 줄을 지어 서 있어서 오백장군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이 이것이다.

오백장군은 앞의 영실계곡과 더불어 조선시대에도 대표적인 명승지였던 것같다. 김상헌은 ‘속세 바깥의 깨끗하고 기이한 취향이 많다"고 했다.
- P55

등정 노트 3, 김치
제주판관을 역임한 김치는 양력으로 5월 초순에 올랐으니 등산하기 딱 좋은절기였다.
- P55

등정 노트 4. 지그프리트 겐테
서양인 최초로 한라산을 등정한 백인은 1901년의 독일인 지그프리트 겐테(S. Genthe)다. 그가 서술한 놀라움의 한 대목.
드디어 정상이다. 사방으로 웅장하고 환상적 장관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섬을 지나 저 멀리 바다 너머로 끝없이 펼저지는 파노라마였다. 제주도 한라산처럼 형용할 수 없는 웅장하고 감동적인 광경을 제공하는 곳은 지상에 그렇게 흔하지 않을 것이다.
- P56

등정 노트 5. 정지용
시인 정지용은 아홉 편의 연작 산문시 "백록담"을 남겼다. 
한라산을 이처럼 아름답게 표현해낸 시도 드물 것이다. - P56

등정 노트 6. 그 밖의 사람들
김석익은 ‘토정 이지함이 세 번 한라산을 올랐으나 당시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기록했다. 육지 도인들이 불현듯 바다를 건너와 한라산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등정기록이 없다는 점이다. - P56

조선시대 한라산 등반이 유람적 성격이 강했다면 현대 등반은 일제강점기에도입되었다. 산을 정복함으로써 인간 영역을 넓히는 서구 알피니즘이 제국 일본의 프리즘을 통해 도입된 것. 알피니즘에는 당시 제국주의를 표방하던 세계 열강의 팽창주의가 숨겨져 있었다.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험준한 산을 정복함으로써 자국의 우수성을 만천하에 증명하려는 의도였다. 일제도 한반도 명산을 정복함으로써 식민지배의 정복사와 일치시키려는 통과의례로 삼고자 했으며, 한라산등반도 이의 행보에 발맞추어 이루어졌다. - P57

오름의 왕국 천의 얼굴
제주도 이해의 첩경은 오름이다.
- P59

일찍이 이형상은 《남환박물》에서 이렇게 썼다.
한라산은 한 가운데가 우뚝 솟아있고 여러 오름이 별처럼 여기 저기 벌리어있으니, 온 섬을 들어 이름을 붙인다면 연잎 위의 이슬 구슬의 형국이라 할 수있다. - P59

화산의 섬
세계 농업유산에 빛나는 돌담 - P65

땅은 평평하고 넓은 듯 하나 울퉁불퉁해서 멀리 바라보기가 어렵다. 비록 언덕의 능선이 있지만 어지러이 뒤섞여서 구분하기가 어렵고, 형세가 그물눈 같기도 하고 혹은어지러이 널려있는 분묘 같기도 하다. 돌을 쌓아 놓았지만 곱지도 않거니와 가지런하지도 않고 모두 닥딱한 광석처럼 거무튀튀하여 보기가 볼썽사납다.
- 《충암록(中錄)》 - P65

제주도 돌담은 과학적이기까지 하다. 치밀하게 쌓기는 하되 자세히 보면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틈새를 주지 않고 완벽하게 쌓으면 거친 바람에 돌담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람이 틈새로 빠져나가면 돌담은 끄떡없이 제자리를지킨다. 삶의 지혜다. 송악 같은 덩굴류가 돌을 든든하게 붙여주는 역할을 한다.
제주도민이 만들고 가꾸어온 민속지식의 힘이다. - P68

제주사람에게 돌담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시도 눈길에서 놓을 수 없는상징이다. 아예 ‘돌에서 왔다가 돌로 돌아가는 사람들‘ 이다. 돌 구들 위에서 태어나고 죽어서는 산담에 둘러싸인 작지왓자갈밭)의 묘 속에 묻힌다. 살림채 벽체가 돌이며, 울타리와 올레, 수시로 밟고 다니는 잇돌(디딤돌)이 모두 돌이다.
산길은 물론 밭길, 어장길도 돌밭이다. 그래서 제주사람은 짚신 아닌 질긴 칡신을 만들어 신었다. 그 돌담의 미학을 제대로 읽어낸다면 제주도의 아름다움을절반은 이해한 것으로 간주해도 좋다. - P70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할 돌담에 관해
하나, 집 안팎의 집담과 통담, 올레 - P70

둘, 밭을 둘러싼 밭담
가장 많은 담은 역시 밭담이다. 밭담은 우마 침범을 막고 화산토가 날리지 않게 치밀하게 쌓았다. - P71

셋, 신당을 둘러싼 당담 - P78

넷, 무덤을 둘러싼 산담 - P78

무덤은 산담으로 인해 고유의 영역을 보장받으며, 오름의 품안에서 영원의 잠을 청하는 망자의 집으로 비로소 완성된다. - P79

다섯, 목장을 둘러싼 잣담제주도 최대의 토목공사였던 잣담(혹은 잣성)도 중요하다. 잣성은 조선 초기부터 한라산지에 설치된 국영 목마장의 상하 경계다. - P82

여섯, 바다를 둘러싼 원담바다에도 돌담이 있다. 밀물 따라 들어온 고기가 썰물에 갇혀서 빠져나가지못하게 만든 돌담을 육지에서는 돌발로 부르며, 제주도에서는 원담(혹은 갯담)이라고 부른다. 원담 명칭은 지역에 따라서 다르다.
대정읍, 제주시: 원담, 조천, 구좌, 성산: 갯담 - P84

일곱, 용천수를 둘러싼 물통담 - P86

여덟, 섬 전체를 둘러싼 만리잣담
최대의 돌담은 만리잣담인 환해장성이다.
- P86

여자의 섬
정말 남자보다 여자가 많을까 - P92

제주는 아득히 먼 바다 가운데 있어서 수로로 9백여리고 파도가 사납기 때문에 공물실은 배와 장사하는 배가 끊임없이 오가는 가운데 표류하고 침몰함이 열에 다섯이나여섯 가량 됩니다. 제주사람으로서 앞서 가다 죽지 않으면 반드시 뒤에 가다 죽습니다. 그러므로 제주 경내에는 남자 무덤이 매우 드물고 마을에는 여자 많기가 남자의세 배입니다. 부모된 자가 딸을 낳으면 반드시 이 아이가 내게 효도를 잘 할 아이라고 말하고, 아들을 낳으면 이 아이는 내 자식이 아니고 고기밥‘이라고 말합니다.
최부, 《표해록》 - P92

태풍이 지나간 후 해녀들이 높은 파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바다에 나가 파도에 밀려온 해초를 목숨 걸고 ‘건져내고있다. 1980년대 중반 안덕면 사계리 해안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 사진) - P99

강인한 제주여성의 슬픈 역사 - P100

장가 조차 못가는 포작(作)은 누구일까. 포작은 《조선왕조실록》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때로는 포작간, 포작인, 포작한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포작은 제주도뿐 아니라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를 비롯해 황해도 등지로 숨어들어갔다. 포작은 고기잡이와 해산물 채취를 주업으로 남도 연안을 돌아다니며 살아가는 제주 출신 남자 어부다. 포작이 깊은 바다에서 전복을 잡아 진상하는 역할을 맡았다면, 해녀는 미역 등 해조류 채취에 전념했다. 포작과 잠녀가 부부로가족을 구성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 P101

내가 진심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근로가 미덕이라는 믿음이 현대사회에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행복과 번영에 이르는 길은 조직적으로일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버트란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 P103

대정에 귀양 온 김정희는 은혜의 빛이 여러 세대로 이어진다는 의미의 ‘은광연세(恩光世)‘ 라는 글로 뜻을 기렸다. 재물을 잘 쓰는 자는 밥 한 그릇으로도 굶주린 사람의 인명을 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썩은 흙과 같다. - P110

제주 근현대사가 빚어낸 성비 파괴도 ‘여자 많은 제주도신화‘를 창조하는데 기여를 했다. 그러한즉, 삼다라고 하여 여자 많음을 어찌 한가롭게 자랑만 할 수 있으랴.
- P115

귤의 섬
원한의 과일에서꿈의 과일로 - P117

행실을 삼가지 않는 무리가 스스로 해외임을 믿고 함부로 탐욕스럽게 빼앗고 백성을대할 때의 행동이 무리하매 섬백성이 원통한 마음을 펴지 못한다. 한번 서울에 가서 조금이라도 괴로운 사정을 위에 알리고자 하지만 수령이 자기의 악행이 알려짐을 싫어하여 물건을 가지고가는 자를 제외하고 섬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를 금하고 있다.
김상헌, 《남사록》 - P117

천년 이상 지속된 원초적 플랜테이션 - P118

제주도에서는 같은 민족이지만 이와 같은 원초적 플랜테이션이 근 천년 이상 지속되었다. 1894년에 이르러서야 감귤 진상이 해제되었음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한즉 아름다운 감귤에는 제주 사람의 보이지 않는 눈물이 배어 있으며, 감귤의 역사를 이해함은 곧바로 본토와 제주도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는 첩경이다. - P120

귤나무는 고통나무 - P120

박정희는 1961년 9월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자격으로 제주도를 방문해 서귀포의 감귤농원을 시찰했다. - P130

토종감 뷔페를 고대하며 - P131

2004년 1월 15일, 제주항에서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다. 한국 국적 킹스기호에 북한으로 보내는 감귤 2500톤을 선적했다. 제주도와 남북협력 제주도국민운동본부‘는 1998년 100톤을 보낸데 이어 해마다 감귤을 실어 보냈으며주로 파나마 선적을 이용했다. 아리랑공연 관람차 평양에 갔을 때, 그 귤을 먹어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너무 귀하고도 귀해 그만 배급받은 그 굴을 차마 먹지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끝내 썩히고 말았다고 한다. 귤나무를 구경도 못한 북녘에서 받아들이는 귤에 관한 태도는 남녘사람과 다르다. 과잉생산으로 남아돌아서 버려지는 감귤이 가난한 북한 사람들 식탁에서 편안하게공유될 날을 기다려본다. - P134

곶자왈과 숲의 섬
곶과 자왈이 숲을 이루다 - P135

인간의 눈에 침묵의 숲으로 다가올 뿐, 숲에서는 매일매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나무와 풀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거친 싸움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생이 안정적으로 갖추어진 숲에서는 일종의 휴전협정이 맺어져 있다. 비교적 안정적 조건에서 서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며(차마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리라!)숲의 공동체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펠릭스 (Felix R. Paturi), 숲 - P135

모든 숲 속의 빈터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 P136

생태환경의 허파
곶자왈은 ‘덩굴과 암석이 뒤섞인 어수선한 숲‘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시덤불과나무들이 혼재한 ‘곶‘과 토심이 얕은 황무지인 ‘자왈‘이 결합된 단어다. - P139

숲이 사라지면 물도 사라진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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