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수를 저장했다가 쓰고, 해안마을에서는 통물을 이용했다. 용천수는 일부가 어승생, 영실 같은 산악지대에서도 용출되지만 제주 마을이 해변가에 집중된 이유도 알고보면 물 때문이다.  - P150

제주도에서 물은 성지의 물이며 신들의 좌정처가 된다. 풍수신앙에서 말하는 생수가 있는 물혈(穴)이기도 하다. - P150

용천수를 가능케 하는 곶자왈은 그 자체로 거대 물탱크다. 마을사람들은 용천수가 솟는 샘을 물통이라 부른다. 물통은 나름의 관리시스템을 지닌다. - P150

빗물 저장 방식 중에 춤이 재미있다. 머리카락처럼 엮은 띠를 뒤뜰나무에 묶어 항아리로 빗물이 흘러내리도록 한 장치인데 괌을 여행하다가 원주민 차모로족이 동일 방식으로 쓰고 있어 놀라웠던 적이 있다. 세계 대부분의 화산섬은 물문제를 안고 있다. 차모로족이나 옛 탐라인이나 춤은 선사 고대 이래의 오랜 풍습이었을 것이다. - P151

손쉽게 넓은 땅을 확보하려는 탐욕은 계속된다. 시애틀 추장의 말대로 먼데서 들리던 포크레인 소리가 차츰 가까워지고 곳곳에서 숲이 절단난다. 성스러운 숲이 인간의 냄새로 꽉찰 때 더 이상 잔목숲을 찾을 수 없으리라. - P153

이쯤에서 숲의 멸망이 결국 인류 문명의 멸망으로 이어졌다는, 존 펄린의 숲의 서사시 서문에 덧붙인 레스터 브라운(월드워치연구소 소장)의 문명사적 경고 - P153

잠녀의 섬
해녀 한명이 사라지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다. - P161

고기 그물에 걸려 있는 친구를 발견했다. 정신 없이 친구를 업고 묻까지 헤엄쳐 와서물을 토하게 한 후 도로로 올라가 차를 세워서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잠수에게 생활의 터전을 제공하는 바다는 그녀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비정한 바다이기도 하다. 어제까지 같이 웃고 같이 일하던 친구를 한 순간에 빼앗아가 버리는 것이다.
- 《바다를 건넌 조선의 해녀들》 - P151

본디는 해녀가 아니라 잠녀 잠수
하도리 해녀박물관을 들어서면 벽면에 해녀를 둘러싼 속담들을 써놓았다. 속담을 찬찬히 읽어보면 해녀들의 강인한 생활력과 투혼이 엿보인다. - P162

해녀의 잠수굿에서는 반드시 사람을 일일이 호칭하는 ‘열명‘을 행한다. 굿하는 도중에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호명된 사람이 물질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게끔 신에게 기원한다. 김녕리 잠수굿을 연구한 강소전에 의하면, ‘열명이야말로 잠수굿을 주최하는 주민들이 누구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치‘라고 했다. - P170

바다가 집이요, 배 밑창이 칠성판‘이란 노래가 실감난다. 그렇게 억척같이 돈을 모아 살림을 키웠으니 위대한 어머니, 장한 딸이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은, 그 위대함을 예찬하면서 해녀 노동에 대한일상적 착취를 감추려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 P173

분노의 불길이 높아져 급기야 관용차를 대파했으며 긴급 출동한 경찰과 충돌하기에 이른다. 그 장거는 지금까지 해녀의 역사로 남았다. 해녀 항쟁은 세계에 유래 없는 것으로 세계해양사 및 여성운동사, 사회운동사 등의 서술에서 일맥을 당당하게 차지해야 한다. - P177

해녀들의 휴게소, 불턱 - P177

불턱은 제주여성을 강하게 만들어내는 교육장이다. 한 마을의 여성들이 집단으로 몰려다니면서 험한 물질을 하고, 휴식시간에는 불턱모여 수다도 떨면서 온갖 세상의 소문을 수집 평가하는 공개 포럼이 일상적으로 열렸다. 한 두해도 아니고 일생을 함께 하면서 불턱에서 쌓아올린 여성만의 공동체적 의식이야말로 제주 여성이 길러지는 기반이다. - P179

해녀는 살아있는 해양문화박물관 - P179

제주해녀에게도 우리식의 ‘바다의 서사시‘를 헌정할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녀들이야말로 인류문화사에 남을 ‘바다의 장인‘, ‘자연의장인‘ 이기 때문이다.
- P189

흑조의 섬
쿠로시오가 가져온
자연과 문명의 선물들 - P191

옛 사람이 생각한 바다 개념은 더 넓은 의미에서 여전히 우리 주위에 남아있다. 바다는 우리 모두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육지 간의 무역은 반드시 바다를 건너야만 가능하다. 육지 위로 부는 바람 조차도 그 넓은 바다 위에서 자라났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신비스러운 과거에 바다는 모든 생명의 희미한 기원을포함하고 있었고, 결국에는 많은 변환 끝에 같은 생명의 죽은 껍질을 받아 들인다. 모든 것은 영원히 흐르는 시간의 강처럼 결국에는 바다, 즉 대양의 강인 오케아노스로돌아가기 때문이다."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우리를 둘러싼 바다》 - P191

폰페이 무태장어에서 천지연 무태장어까지 - P193

태평양민족지 적도의 침묵 (2007)을 펴낸 적이 있다. 조사를 위해 미크로네시아 폰페이섬(Ponpei)에 머물렀는데 거기서 서귀포 천지연에 살고 있는 무태장어와 똑같이 생긴 놈을 만났다.
폰페이는 화산섬이기 때문에 산이 높고 계곡이 깊다.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하구에는 으레 장어가 살고 있다. 원주민은 뱀장어를 먹지 않는다. - P193

서귀포 천지연에 서식하는 무태장어는 적도 뱀장어와 같은 열대성 물고기다.
서귀포는 일본 나가사키와 함께 무태장어가 살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다. 난류따라 북상해 오기 때문에 천지연에 웅크린 무태장어가 서해나 동해로 올라오는경우는 없다. - P194

적도에서 만난 똑같은 무태장어를 제주도까지 밀어붙인 힘은 두말할 것 없이 쿠로시오의 힘이다.
- P194

쿠로시오 난류니 대마 난류니 하는 학술용어는 모두 일본이 국제학회에 보고하여 인정받은 명칭이다. 학술명칭으로 전 세계가 쓰나미를 씀과 같은 이치다. 
- P194

쿠로시오 원류는 북적도(赤道) 해류다. 
타이완 동측에서 오키나와 열도, 아마미 제도로 북상하여 가고시마(鹿兒島) 아래에서 동한난류와 갈라진다. 
아랫가닥은 동측으로 향하여 시코쿠(四國)로 향하며, 
윗 가닥은 제주도와 남해안은 물론이고 서해 · 동해에도 영향을 미친다. 동아시아 앞바다의 대륙붕을 따라 북쪽으로 휘어져 올라간 쿠로시오 해류는 오호츠크해와 베링해로 쏟아져 나오는 거대한 오야시오 한류와 만나 대륙에서 멀어진다. - P194

다네가시마 바닷가 모래밭에서 문주란을 만났다. 동일한 문주란이 제주도까지 흘러와서 뿌리를 내렸다. 해류는 이처럼 조총 같은 문명이나 문주란 같은 생물체를 부지런히 실어보낸 것이다. 
- P195

온난하며 습기를 머금은 이들 쿠로시오야 말로 남방으로부터의 문명교류 루트이자 배를 떠밀어 내는 동력의 근원이었다. 바람이 대양 횡단의 동력이라면, 해류는 또다른 동력이었다. - P195

쿠로시오가 흘러 흘러 만들어낸 바닷길
세상에는 길도 많다. 길은 육지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 P195

제주도에 막중한 영향을 미친 쿠로시오가 가져온 자연과 문명의 선물을 쿠로시오 로드‘라 명명해본다. - P197

로드1. 문주란과 선인장
제주도 곳곳에서 드러나는 쿠로시오 흔적 중의 하나가 문주란이다. - P197

로드2. 방어와 고래, 거북이, 각저귀
모슬포는 방어로 유명하다. 해마다 12월이면 모슬포항에서는 방어축제가 한창이다. 쿠로시오를 따라서 올라온 방어가 한 달여 동안 엄청나게 잡히기 때문이다. 방어는 봄부터 여름까지는 북쪽으로, 가을에서 겨울에는 남쪽으로 남북회유를 거듭한다.  - P198

로드3. 돼지와 검정쉐
돼지고기도 남방문화다. 혹자는 순대를 예로 들어 몽골지배기에 몽골문화에서 왔다고도 하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오래된 도시의붓(Ubud)에서 돼지창자에 돼지피를 버무려 넣은 순대를 먹어본 적이 있다. 오키나와의 돼지고기를 얹어주는 국수와 제주도 국수, 나아가 돼지국물에 모자반을 넣고 끓인 몸국,똥돼지로 지칭되는 돗통시문화 전체가 남방문화의 소산이다. - P202

제주도도 돼지고기 문화권이다. 제주사람이 즐겨 먹는 돔베국수와 오키나와 국수에 똑같이 돼지고기가 올라간다. 미크로네시아에서 부터 북마리아나 제도, 오키나와 제도, 그리고 제주도에 이르는 광대한 태평양문화권이 돼지고기문화권이다. 환태평양에 드넓게 퍼져있던 돼지고기문화의 강력한 보루 중의 하나가 제주도인 것이다. - P202

돼지와 더불어 검정쉐(흑우)도 중요하다. 검정가 사라져서 종축장의 번식용만 정책적으로 사육되고 있으나 예전에는 검정쉐가 제주도에서 상당수 있었다. 검정쉐국가적 제사에 쓰던 의례용이기도 했다. 검정는 두말할 것 없이 남방의 소다. 쿠로시오 난류의 지류인 대마난류의 영향권인일본 서부 오키(被) 제도에도 흑우가 특산물이다. 이 역시 쿠로시오 문화의 한가닥이다. - P202

로드4. 해녀
제주문화를 상징하는 해녀도 원래 쿠로시오 문화다. - P204

로드5. 뱀신앙
제주도 뱀신앙도 남쪽에서 왔다. 제주에서는 뱀을 조상신, 당신, 일반신으로 두루 모신다. 뱀신은 안칠성, 밧칠성 등으로 모셔진다. 김정은 이런 기록을남겼다. - P204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는 
《탐라기행》에서 ‘고대에는 고대의 다이너미즘이 있었다‘고 명료하게 정리했다. 일본 극우주의자의 칭송을 받는 국민작가인지라불편하기는 하지만, 그의 이 지적은 경청할만하다고 본다. 제주 해녀가 일본 해녀에게 잠수어법을 가르쳤다는 식의 문화전파론적 우월적 발언보다, 아시아인상호 간에 고대적 마음의 넓이를 좀 더 많이 가질 수 없는 것일까라는, 저자의 질문법에 동의한다. - P204

쿠로시오 로드에 하나 더 추가할 것은 인종의 전파다. 두말할 것 없이 제주도민은 북방계열로 알려진다. 그러나 남방으로부터 오지 않았으리란 보장도 없다. 한국인 DNA 분석에서 북방계, 남방계가 혼재된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 P206

한국인의 지역 및 역사 인식은 주로 북방 사고의 틀에 종속되어 있다. - P209

더군다나 타이완과 오키나와를 예로 든다면, 이들 섬은쿠로시오 해류권의 아열대성 해양문화를 공통분모로 갖고 있다. 제주도 역시 이들 쿠로시오 해류의 영향권이다. 쿠로시오 해류권역이라 했을 때, 이는 국민국가 차원이 아니라 타이완, 남중국, 오키나와, 일본 남서부는 물론이고 필리핀 등서태평양 일원의 해류권역을 포괄한다. - P211

제주도는 쿠로시오 문화권의 북방한계선이다. 제주문화는 전통적으로 한반도 본토의 북방문화, 남쪽 오키나와와 일본의 아마미오시마 등에서 올라오는 남방문화가 결합된 상태다. 우리들 북방적 사고에 남방의 사고를 결합한다면, 제주도가 전혀 새롭게 보이지 않을까. - P211

돌챙이의 섬
제주의 혼이 깃든
미학의 압권은 돌문화 - P213

옹중석(石)은 제주읍의 성 동서남(東西南) 삼문(門)  밖에 있었고, 영조 30년에 목사 김몽규(金夢奎)가  창건했으나, 삼문이 헐림으로 인해, 2좌는 관덕정 앞에, 2좌는 삼성사입구로 옮겼다.
담수계(淡水), 《증보탐라지(誌)》 - P213

바람처럼 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표징 동자석
육지에 석수쟁이가 있다면 제주에는 돌챙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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