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센산 주원료인 투구꽃에는스코폴라민, 히오시아민 등의알칼로이드가 함유되어 있다.
적정량을 넘으면 독이 되지만 잘만 사용하면통각을 마비시키는 마취약이 될 수도 있다. - P120

빅토리아 여왕의 무통분만 성공을 도운 마취약,
클로로폼 - P124

아산화질소와 에테르 이후새로운 마취약으로 클로로폼이 등장하여인화성이 강한 위험한 에테르 대신 사용되었다. - P125

의사는 면허를 취득하면 내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등을 개원할 수 있지만 일본에서마취과는 후생노동성의 자격심사에 별도로 합격해야 한다. 마취과는 고도의 특수한 기술과 감각을 갖추어야 하는 전문직이기 때문이다. - P128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다양한 의약품 중에서 우리 인류에게 가장 크게 이바지한 약물은무엇일까? 아마도 마취약이 아닐까? - P128

산욕열은 현재는 ‘분만 종료 24시간 이후 산욕 10일이내에 2일 이상 38℃ 이상의 발열이 지속하는 경우‘라고 정의한다. 산욕열은 태반 박리, 출산으로 생긴 상처 등으로 세균이 침입해발생한다. - P134

산욕열 유행이 정점에 달했던
1772년에는 임신부 다섯 명 중 한 명이
이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상황은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졌고,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산욕열의 원인은 여전히 불분명했다. - P139

이후 의료 현장의 위생환경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때까지 인류는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활약을 기다려야 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역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며 의료 개혁에 헌신했다. 그리고 그녀의 개혁은 현실로 이루어지며 값진 결실을 보았다. 어느 시대에나 세계를 바꾸는 원동력은 정확한 데이터와 그 데이터를 뒷받침하는 의지의 힘이 아닐까? - P142

매독은 지위 고하를 따지지 않았기에왕과 장군, 귀족에서부터 일반 시민에까지 널리 퍼졌다.
한때는 파리 시민의 3분의 1이 매독에 걸릴 정도였으니.
성병이라고 얕잡아볼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 P153

당시에는 수은으로 매독을 치료하는 요법이 널리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중금속에는 살균 효과가 있어 수은 요법도 나름대로효과는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수은의 독성이 너무 강했다. 환자들은 수은 연고를 바르거나 수은 증기를 흡입했고, 그 결과 심부전과 탈수, 질식 등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운 좋게 살아남아도 간과 신장에 장애를 입고 빈혈등의 부작용을 안고 힘들게 살아가야 했다. - P159

근대 제약 연구 방식을 확립한 에를리히와 시가 기요시의 업적은 영원히 기념해야 할 과학사의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 P163

이 606번째 비소 화합물 살바르산은 ‘구세주‘를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 ‘살바토르(Salvator)‘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1910년 살바르산은 훼히스트(Hoechst AG, 현 Sanofi S.A)에서 발매되어 말 그대로 수많은매독 환자를 죽음의 늪에서 건져 올린 구세주로 자리매김했다. - P164

1,0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제1차 세계대전을 불러온 두 발의 총성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사라예보 거리를 달리던 한 대의 자동차가 돌아야 할 모퉁이를 딱 한 번놓치며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열아홉 살의 세르비아인 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Gavrilo Princip)는 우연히 나타난 차량에 타고 있던 두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본 순간, 바람처럼 달려가 번개처럼 잽싸게자동차에 타고 있던 두 사람에게 한 발씩 총탄을 발사했다. 각각 목과 배를 관통당한 두 사람은 몇십분 후 숨을 거두었다. 희생자는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아내인 조피였다. - P169

습기가 많고 위생 상태가 불량한 참호는 갖가지 병원균의 온상이었다. 이질, 발진티푸스, 콜레라 외에도 이가 매개인 참호열(Trench Fever) 등이 병사들 사이에 창궐했다. 전투가 시작되면 빗발처럼 쏟아지는 포탄으로 부상병이 속출했고, 흙으로 쌓은 참호가 무너지며 병사들은 흙모래 범벅이 되기 일쑤였다. 이때 상처에 들어간 토사는 끔찍한 감염증의 원인이 되었다. 토양 속에는 혐기성 세균이라 부르는 공기가 없는 환경에서만 살 수 있는 세균이 있고, 이세균이 상처 부위로 들어가 병을 일으켰다. - P172

1939년 스웨덴의 카롤린스카 연구소(Karolinska Institutet)는 이 기적의 약을 창조한 게르하르트 도마크에게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여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의 업적을 생각하면 이의를 제기하기힘든 수상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연구진을 조직하고 설폰아마이드기를 접목한 결정적인 제안을 내놓은 회를라인에게도 공동 수상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P180

20세기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 페니실린의 탄생
‘세계사를 바꾼 약‘을 소개하는 이 책에 드디어 대스타가 등장할차례가 되었다. 이번 장의 주인공은 바로 페니실린이다. 페니실린은 그야말로 인류 역사를 바꾼 가장 중요한 약 중 하나라고 할 수있다. 이 약을 손에 넣기 전과 후로 인류의 생활상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20세기 초반, 아주 먼 옛날이라기보다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한 번 감염되면 그저 회복되기를 하늘에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던 갖가지 질병이 페니실린이 출현한후 마법처럼 치유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약에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해도 무리가아닐 정도다. - P187

플레밍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포도상구균을 배양하려고했던 샬레 중 하나에 어디선가 푸른곰팡이 포자가 날아 들어와 번식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플레밍은 푸른곰팡이가 자란 주변에 포도상구균이 자라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순간, 그의 뇌리에 리조팀을 발견한 순간의 기억이 새록새록되살아났다. ‘푸른곰팡이가 모종의 항균물질을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하고 플레밍은 직감했다.
"만약 리조팀을 발견한 경험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 발견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배지를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 P191

1942년 영국과 미국에서 페니실린 연구는
‘국가 기밀‘로 지정되었다. 이후 투입된 연구 자금은
총 2,400만 달러, 전쟁 중 과학 연구로 원폭 개발에 들어간
‘맨해튼 프로젝트‘에 버금가는 액수다. - P198

플레밍은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1945년에 플레밍은 플로리, 체인과 공동으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았다. 양산연구를 시작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페니실린은 세계사를 다시 쓰는큰손으로 자리매김했다. - P199

항생물질 남용이 내성균 출현의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항생물질의 80퍼센트가 가축 등의 동물에 사용된다. 질병예방, 성장 촉진 등의 이유지만 효과는 장담할 수 없다. ‘저렴한 약이니 일단 먹이고 보자‘며 항생제를 오남용하는 습관은 이윽고 우리 자신의 목을 조여오는 올가미가 될 것이다.
인류가 오랫동안 그려온 20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겨우 손이 닿는 곳까지 접근한 ‘질병 없는 세계‘라는 꿈은 신기루처럼 다시 사라질 수도 있다. 우리가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 서 있음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때가 왔다. - P205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약, 아스피린

여태까지 인류는 수만종류의약을 만들어내고 이용해왔다. 또한,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약이 등장하고있다. 전문가들조차 쏟아져 나오는 신약을 모조리 파악하는 건 불가능한 시대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약 중에서 딱 한 종류의 약만선택해 먹을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약을 선택하겠는가? 감기약이냐, 항생제냐, 그도 아니면 소화제냐,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답을 모르겠다. - P209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달래주는 건 아스피린밖에 없다"
유럽에서도 아스피린은 인기를 독차지했다.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달래주는 건 아스피린밖에 없다"라고 말하며 창작의 동반자로 삼았다. 아스피린이 출시되고 몇 년 후 바이엘은 "아스피린의 인기가 하늘을 찔러 이 약을 능가할 약은 없다"라고 자랑스럽게 광고했다. 물론 아스피린에도 가슴 아픈 역사가 숨어 있다. 고향 독일에서 특허 취득에 실패하며 쓰라린 경험을 한 것이었다. - P214

1819년 살리실산이라는 물질이 만들어졌고,
이 물질에도 진통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사실 버드나무에 들어 있는 살리실산은우리 몸속으로 들어와 탁월한 효능을 발휘한다. - P215

에이즈 치료제 개발자가 노벨상을 못 받은 이유
지금까지 역사의 흐름을 크게 바꾼 의약품을 소개했다. 이 중 몇몇 과학자는 과학계 최고의 영예라는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으며 이름을 빛냈다. 설파제를 개발한 게르하르트 도마크는 1939년에, 페니실린을 발견하고 실용화하는 데 성공한 플레밍과 플로리,
체인은 1945년에 각각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또한 1952년에는 결핵 치료제인 스트렙토마이신을 발견한 왁스먼이, 1957년에는 항히스타민제를 개발한 보베가 각각 받았다.
위에 언급한 대로, 이후 ‘의약품 개발에 공헌하는 학문상의 발견‘ 등 간접적인 수상은 더러 있었지만 의약 개발자가 직접 상을받는 예는 무슨 이유에선지 자취를 감추었다. - P225

에이즈의 원인이 되는 HIV(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의 기원은 아직도 완전히 해명되지 않았다. 아무튼, 최근까지 이루어진 연구에따르면 1920년대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인 킨샤사에서 출현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인류가 이 병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지한때는 1981년이 되어서였다. - P228

에이즈로 고통받는 환자들은 값비싼 약값 탓에신약을 쓸 엄두도 내지 못한다.
분노한 미쓰야 박사는 더 나은 신약을적절한 가격에 세상에 내놓겠다는 강수를 두었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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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독과 약을 기록하기 위해문자와 점토, 종이 등의기록 수단을 발명한 것처럼 보인다."
후나야마 신지 일본 약과대학 교수 - P5

만약 그때 그 약이 없었더라면
"역사에 만약은 없다."
누가 처음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살면서 한두 번 이 말을 들어보거나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갑자기 의문이 생긴다. 역사에서 ‘만약‘을 허용하면 안 되는 걸까? ‘만약‘이라는 가정은 순도 백 퍼센트의 역사라는 물을 더럽히는 불순물 같은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동체의 기억에남아 있고 기록으로 보존된, 돌이킬 수 없는 사실로서의 ‘역사‘를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소중히 여기는 자세는 물론 필요하다.  - P8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역사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한발 더 나아가 ‘그때 만약 이랬더라면?‘ 하는 식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도 좋다고 본다. 인간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만약‘은 역사를 훼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좀 더 풍성하고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는 활력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 P8

"만약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세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의 만약‘ 중에서 가장 유명한 파스칼의 말이다. 이 짧은 한문장은 세월을 뛰어넘어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 P9

원숭이와 곤충도 약을 사용한다고?
현재 일본인의 평균수명은 83세 (2015년 기준 남성 80.75세, 여성86.99세 -옮긴이)를 넘어섰다. 
오늘날 마흔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백 년 전만 해도 사정은 전혀 달랐다. 당시의 일본인 평균수명은 오늘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정도로 짧았다(참고로, 1921~1925년 평균수명은 남성 42.06세, 여성 43.20세였다). 신생아 예닐곱 명 중 한 명은 세 살이 되기도 전에 요람에서 곧바로 무덤으로 직행하던 참혹한 시대였다. - P19

예를 들어,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BC 4000년경부터 3000년경 기간 동안 점토판에 550종이나 되는 의약품 목록을빼곡히 기록해 놓았다. 그 의약품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다 보면 누구나 자기 눈을 의심하게 될 정도다. 소똥과 말똥, 썩은 고기와 기름, 불에 태운 양털, 돼지의 귀지 등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약은커녕쓰레기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온갖 더러운 물질들이 버젓이 기록되어 있다. - P24

그들은 질병이란 악마가 몸속에 침투하여만들어내는 나쁜 현상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몸속 악마를 쫓아내려면악취를 풍기는 동물의 똥이나 오줌, 썩은 고기, 심지어 돼지의 귀지 같은 악마가 싫어하는더러운 물질을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다. - P26

11세기 스코틀랜드 왕을 모델로 한 작품이자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에는 뱀고기와 도마뱀 눈알, 상어 위장 등을 가마솥에 넣고 부글부글 끓여만든 ‘미약‘이 등장한다. - P27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나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놀랍게도, 보일의 법칙을 정립해 ‘화학의 아버지‘라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불린 로버트 보일 (1627~1691)은 질병 치료에 ‘벌레, 말똥, 인분, 시신의 두개골에서 자란  이끼를 섞은 물질‘ 등을사용할 것을 권했다. - P27

그뿐만이 아니다. 18세기 초, 영국 런던의 『약전』(의약품의 품질 규격서)에는 사형수의 두개골이 ‘의약품‘으로 버젓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그러고 보면, ‘쓰레기 약‘의 전통은 인류역사 속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살아남았던 모양이다. - P27

그중에서도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의약품은 『서유기』 등에도 나오는 ‘금단‘이라 불리는 불로불사약이다. - P29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백방으로 사람을 보내어 찾게 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졌다. 천하를 제뜻대로 주무를 수 있는 최고 권력자가 마지막으로 탐한 대상은 결국 ‘영원한 생명‘이었던 셈이다. - P29

그들은 수은을 연고로 만들어 살갗에 바르거나증기로 찌는 방식으로 흡입했다.
그 밖에도 그들은 염화수은 수용액을 먹는 등다양한 방식으로 몸속에 수은을 투여했다. - P32

이렇듯 위험하기 짝이 없는 치료법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셀 수없이 많다. 세계적인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와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이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로 그들의 직접적 사인이 바로 매독 치료에 사용한 수은 중독이라는 주장이 단순한 주장을 넘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P33

대중에 잘 알려진 용어로 ‘플라세보 효과(Placebo effect)‘라는 것이있다. 효과가 전혀 없는 엉터리 약을 질병 치료에 잘 듣는다고 착각하고 믿어버리는 심리 및 습성을 일컫는 용어다. - P34

대항해 시대에 바다사나이들이풍랑이나 해적보다 두려워한 것은?
"비타민C가 의약품인 줄 아셨어요?"
이 질문에 "그럼요, 당연히 알고 있었죠!"라고 대답하는 사람은뜻밖에도 많지 않다. 대다수 사람이 질문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못하고 눈만 멀뚱멀뚱 뜬 채 바라보거나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정말이냐고 되묻는다. - P39

대항해 시대에 뱃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질병은 페스트도 결핵도 아니었다. 오늘날에는 그 이름조차 듣기 힘든 ‘괴혈병‘이라는 질병이었다. 이 무서운 병에 걸린 사람은 심각한 피로에 시달리며 차츰 쇠약해졌다. 손가락으로 살갗을 누르면 쑥 들어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을 정도로 탄력을 상실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입에서는 쉴 새 없이 피가흘렀고, 병든 닭처럼 시름시름 앓다가 천천히 죽어갔다. - P41

괴혈병이 만든 비극을 영원히 종식시킨 영웅,
제임스 린드
18세기 후반, 괴혈병이 만든 비극을 영원히 끝낸 영웅이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린드(James Lind, 1716~1794), 영국 해군 소속군의관이었다. 린드는 어떻게 그토록 무시무시한 질병인 괴혈병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1747년 제임스 린드는 효과적인 괴혈병 치료법을 찾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1. 열두 명의 괴혈병 환자를 같은 장소에 모아놓고 매일 같은 식단을 제공한다.
2. 환자를 두 명씩 여섯 조로 나누어, 각각의 조에 사과 과즙과 황산염 용액, 식초, 바닷물, 마늘 등으로 만든 반죽과 오렌지 두 개, 레몬한 개를 먹인다. - P46

영국이 19세기에 거의 모든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고전 세계를 주름잡으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군림할 수 있었던 데에는 괴혈병 정복‘이라는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 P50

‘인간은 당류와 단백질 등의 주요 영양소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특정 미량화합물이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20세기초에 인류가 발견한 두 가지 사실이다. 비타민은 이 미량화합물 중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런 터라, 비타민을 찾는 일이 20세기 초반생화학에 부여된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 - P52

1937년, 노벨상 위원회는 결국 센트죄르지에게 ‘비타민C 발견‘
공적을 인정하여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여했다. 그러나 논란은끊이지 않았다. 당시 노벨상 위원회가 유럽인에게 가산점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미국에서는킹을 비타민C 최초 발견자로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비타민B1의 최초 발견자로 스즈키 우메타로 박사를 꼽는 일본인이 많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 P54

폴링은 1954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전 세계 화학자들을 이끌고 원자 및 수소폭탄 금지 운동에 열정적으로 나섰고, 그 헌신과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평생 노벨상을 두 번이나 단독으로 받은 일은 라이너스 폴링의사례가 그야말로 전무후무하다(폴링 이외에 노벨상을 두 번 받은 사례로마리 퀴리가 있지만, 퀴리는 첫 번째 노벨상을 남편인 피에르 퀴리와 함께 공동으로 받았고, 두 번째 노벨상을 단독으로 받았다. 옮긴이). 더욱 놀라운 것은, 라이너스 폴링은 또 한 번 노벨상을 받을 뻔한 절호의 기회를다른 학자에게 과감히 양보한 일이 있었다는 점이다. DNA 구조 결정 경쟁에서 정치적인 이유까지 얽히게 되면서 그는 제임스 왓슨(James Dewey Watson)과 프랜시스크릭 (Francis Harry Compton Crick)에 노벨상 수상의 기회를 양보했다. 이 통 큰 양보가 없었더라면 노벨 생리학·의학상도 그의 몫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원자역학, 화학, 생물학을 아우르는 폴링의 업적은 내로라하는 천재들이 즐비한 과학사에서도 찬란한 빛을 내뿜는다. - P56

비타민C의 속성이 밝혀지고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일반인에게 좀 더 원활히 보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비타민C가 괴혈병을 예방하기 위한 물질 이외에도매우 다양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 P57

결국, 비타민C로 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듯 폴링의 아내 에바는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자신도 전립선암으로 인생을 마감했다. 그렇기는 하나 폴링 자신은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논문을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했으니적어도 비타민C 다량 섭취가 몸에 그다지 큰 해가 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 P59

의학계에 의해 정식 이론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비타민C는수용성이 높아 필요이상으로 섭취해도 몸 밖으로 배출되기에 특별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건강식품회사들은 폴링을 지금도 신처럼 떠받들며, 광고에 보란 듯이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천재가 실천했던 건강 이론!"이라는 카피를활용하여 요란하게 홍보한다. - P60

삼도천(三途川: 불교에서 말하는 사람이 죽어서  저승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큰 내 -옮긴이)  강가를 거닐며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던 강희제의 목숨을 구한 특효약이 바로 이번 장의 주인공인 ‘퀴닌‘이다. 말라리아에서 회복한 강희제는 이후 서양 학문에 경도되었다. 그런터라, 그는 퀴닌을 바친 선교사들에게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웅장한 가톨릭 성당 짓는 일을 허가했다. 퀴닌의 놀라운 효능이 황제의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순간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 P67

말라리아는 현재진행형인 질병이다. 오늘날에도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매년 무려 3억~5억 명의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하는데, 이중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다. 이 수치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감소하는 추세지만, 지금도 에이즈 · 결핵과 함께 ‘세계 3대 감염병‘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말라리아는 실로 무서운 병이다. 지금까지 태어난 인류의 절반은 말라리아로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을 정도다. - P68

훈족의 위협으로부터
서로마제국을 구한 일등공신, 말라리아 - P69

그러나 퀴닌의 구조는 너무도 복잡해서 당시의 화학 수준으로는인공 합성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마침내 1942년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 적을 둔 젊은 학자가 이 어려운 과제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졌다. 2년여 동안 피땀 어린 노력 끝에 얻어낸 그의 눈부신 성공은 오늘날까지 전설처럼 전해진다. 사상 최초로 퀴닌 인공 합성에 성공한 이 학자의 이름은 로버트 우드워드(Robert Burns Woodward)로, 당시스물일곱 살의 풋풋한 청년이었다.
우드워드의 이름은 ‘콜타르에서 마법의 약을 만들어낸 젊은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뉴욕 타임스》 1면을 장식했다. - P80

고대 그리스 문학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오디세이아』에도 슬픔을 잊게 해주는 약이 등장한다.
"이 약을 섞은 술을 마신 자는 눈앞에서 가족이 죽어도 한나절은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위의 문장은 아편의도취작용을 묘사한 구절로 추측된다. 고대인들도 약의 힘을 빌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을 달랬던것일까? - P93

그 무렵, 순수한 모르핀 성분을 분리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1803년, 스무 살의 젊은 약제사였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제르튀르너(Friedrich Wilhelm Sertürner)는 아편에 산과 염기를 순차적으로 더해불순물을 제거하고 유효 성분만 결정으로 추출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그는 이 성분에 그리스신화의 잠의 신인 모르페우스에서 따와모르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P95

이 새로운 화합물은 가래를 제거하는 진해 효과가 탁월한 데다출시 당시에는 중독성이 없다고 여겨졌다. 바이엘은 이 신약 샘플을 의사들에게 보내 뛰어난 효력을 광고했다. 그러나 광고 내용은사실이 아니었다. 실제로는 중독성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모르핀보다도 훨씬 강력해졌다. 아무튼, 이 신약이 바로 ‘헤로인‘이다.
헤로인은 ‘이 약을 먹으면 영웅적 (heroic)인 기분이 된다‘라고 해서붙여진 이름이다. - P106

1874년, 영국인 화학자 라이트가모르핀에 아세틸기(CH3CO)라는원자단을 결합한 물질을 개발했다.
이 신약이 바로 ‘헤로인‘이다. - P107

심지어 환자의 경동맥을 압박하여 실신시킨 뒤 수술을 진행하는 기상천외한 방법과 좀 더 극단적으로 둔기로 머리를 때려 기절시키는 엽기적인 방법까지 동원되었다.
게다가 그렇듯 위험천만한 방법을 사용하면서도 수술 중에 환자가깨어날 가능성이 컸으므로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진은 수술 내내가슴을 졸여야 했다. - P115

일시적으로 환자의 의식을 잃게 하여통각을 사라지게 하는 약을 찾기 위해인류는 먼 옛날부터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 P116

쓰센산 주원료인 투구꽃에는스코폴라민, 히오시아민 등의알칼로이드가 함유되어 있다.
적정량을 넘으면 독이 되지만 잘만 사용하면통각을 마비시키는 마취약이 될 수도 있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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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여지없이 흘러가고, 사람 마음도 변해 간다는 것을가토는 새삼스레 깨달았다. 또 그렇게 변하지 않고는 살아갈수 없는 경우도 있다. - P413

형사들은 뭐 때문에 나의 발자취를 쫓을까, 하고 마사야는생각했다. 그때 형사들은 그런 일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무의미한 일을 계속한다. 이세상은 그렇게 무의미함이 모이고 쌓여서 이루어졌다. -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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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야랑은 서로의 애정을 확인한다는 의미가 있지. 그래도 마사야가 욕망에 무릎 꿇는 건 원치 않아 섹스는 하더라도 사정을 추구하지 않는 남자였으면 좋겠어. 그렇게 되면 마사야는 한층 강해질 거야." - P224

"있잖아, 아오 씨 인간이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날 것 같아?"
또 뜬금없는 질문이다.
"나는 그런 거 믿지 않아요. 환생이니 전생이니 하는 거요."
"그런 뜻이 아니라, 일생에 몇 번이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지 묻는 거야. 예를 들어 결혼하면 인생이 바뀌잖아. 취직해도 마찬가지고. 그런 일이 대체 몇 번이나 있을까?"
"글쎄요………… 그런 의미라면 제 경우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도쿄로 올라와서 미용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가 처음거예요. 하지만 그 후로는 극적인 변화가 없었어요."
"그럼 슬슬 변화해야 할 때가 아닐까?" - P257

"환한 낮의 길을 걸으려고 해서는 안 돼."
미후유가 정색하고 말했다.
"우리는 밤길을 걸을 수밖에 없어. 설사 주위가 낮처럼 밝다해도 그건 진짜 낮이 아니야. 그런 건 이제 단념해야 해."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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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째 붙들고 있는 방대한 작품이 바야흐로책의 핵심을판가름 내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몇해전(계절도 딱 요맘때였다) 바로 이런 조마조마하고 긴장감 도는 국면에 들었던<황야의 이리》 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 P132

이와 같은가공의 인물(페터카멘친트, 크눌프, 데미안, 싯다르타, 하리할러등등)이 모습을 드러내는 창조적인 순간, 모든 것이 단박에 결정된다. - P133

나는 이러한 질문들을 밤새 곱씹었다. 그 대답이야 내가살아있는 한 모르는 바 아니니 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크눌프와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그리고 골트문트를 눈앞에 떠올리며, 그들의 아픔을 곱씹고 그 쓴잔을 다시금 맛보았다. 그들은 모두 형제요동류 동어반복이 아니며, 다만 질문하고 고뇌하는 사람들이요, 삶이 내게 안겨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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