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의 회복을 꿈꿨던 운동이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중세가 신과 종교의 세계라면, 르네상스는 인간, 그리고 인간성을 회복하는 현실적인 세계를 꿈꿨다고 할 수 있습니다. - P71

 출판이 세계를 바꾸다 
여기서 또 하나, 유럽지성사의 대변혁이 일어납니다. 바로 15세기중엽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한 것이지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사건입니다. 인쇄업이 번영을 누리게 되면서 책의 시대가 열리거든요. - P75

그리고 바로 이 시점에 종교개혁의 불길이 타오르게 됩니다. 1517 년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게 되거든요. 이때부터 유럽 역사의 바퀴는 한층 더 빠르게 돌게 됩니다. - P76

16세기 교황은 가톨릭교회의 최고 권위자로 족벌정치를 기반으로 가문의 세력을 확장했고
교황을 배출한 가문들은 로마 도심에 재건축
사업을 추진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강력한 힘을 기반으로 교황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한편 16세기 유럽은 인쇄 혁명과 인문주의자들의 활동으로 큰 변화를 맞는다. 미술에서도 사색하는 인간상이 나타나고 신플라톤주의 철학이 반영된 작품이 제작된다. - P93

인간의 몸에서 신의 은총을 볼 수 있다.
신은 바로 이 속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P94

로마는 미켈란젤로의 도시라고 칭할 수 있을만큼 도시 곳곳에서 그의 대표작을 만날수 있다. 이중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는 미켈란젤로의 대표작이다. 미켈란젤로의 예술세계는 그리스·로마 예술의 영향을 받았고 인문주의 사상이 반영됐다. - P139

이제 그가 죽었으니
그와 함께 자연 또한 죽을까 두려워 하노라
-추기경 벰보가 남긴 라파엘로 묘비명 - P140

브라만테는 재능있고 성격도 좋은 라파엘로를 교황 율리오 2세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했을 겁니다. 이렇게 해서 교황을 중심에 놓고미켈란젤로와 브라만테, 그리고 라파엘로까지 3명의 작가가 경쟁구도를 형성하게 된 거죠. - P147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비슷비슷한 법이죠. 바티칸에 세기의 명작이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어쩌면 율리오 2세의 노련한 조직 경영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대결 구도는 결국율리오 2세의 용인술을 바탕으로 나왔기 때문이죠. - P147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는 교황의 취향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를 바라보는 교회의 시각도 담겼다고 볼 수있어요. 이는 그리스·로마 철학자들을 이교도로 배척할 대상이 아니라, 이들 역시 기독교의 영광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본다는 뜻이죠. - P173

기독교 세계는 그리스·로마의 철학도 아우를  수 있을 만큼 위대하며, 이런 관용적 인식 아래 고전 철학의 존재를 용인한다는 것이지요.결국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은 인문주의적 취향을 가진 교황의 그림이면서 동시에 당시 로마 교황청이 인문주의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174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의 경쟁자로 동시대 거장들의 화법을 모방하고 융합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그는 교황의 신임을 받아 교황궁 4개의 방에 벽화를 도맡아그렸다. 그중 아테네 학당은 그리스·로마 철학을 포용하고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수용하는 가톨릭교회의 자신감을 보여준다. - P197

라파엘로의 죽음. → 하이 르네상스의 종말로 불릴 만큼 미술사의 분기점이 됨. - P197

현재가 과거와 다르길 바란다면 과거를 공부하라. -스피노자 - P198

16세기 하이 르네상스 시기에 로마에서 대작들이 나오자, 이제 르네상스인들은 고대로마의 문화유산을 재발견하고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한다. 고전 건축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발전시킨 과정에서 고전을 뛰어넘으려는 르네상스인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 P233

팔라초 이탈리아어로 궁전을 의미. 왕족이나 귀족 등이 사는 저택을 지칭. - P233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신부 마르틴 루터는 당시 로마 교황청의 면벌부 판매 등을 지적한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 교회 대문에 게시한다. 이 반박문은 유럽 전역에 들불처럼 빠르게 번졌고 알프스 너머의 교황청을  진노케 한다. 루터가 불을 지핀 종교개혁의 거대한 물살은 유럽을 두 조각 내놓고 근세의 막을 걷어 올린다. 그로부터 500여 년이 지난 지금 비텐베르크는 폭풍이 지나간 후의 바다처럼 잔잔하기만 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 성 교회, 독일 비텐베르크 - P238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로서 나이를 한 살씩 더 먹는 것뿐이다.
-탈무드 중 - P240

미술의 역사는 500년 전 이탈리아에서 크게  변화했습니다. 정확하게는 1510년경 로마가 
주무대였어요. 여기서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  같은 재능 넘치는 작가들이 놀라운 미술을 선 보였고 덕분에 미술은 새로운 활력을 얻었죠.
그런데 같은 시기 북유럽의 미술은 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어요. 뭔가 명확하기보다는  내성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어찌 보면 여전히 중세의 상상력이 지배하는 세계였습니다. - P2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성 베드로 대성당, 1506~1626년, 바티칸 시국 
1506년에 시작한 대성당의 재건축은 120년이걸렸다. 지금 우리가 아는 성 베드로대성당과 바티칸의 모습은 1667년 베르니니가 성 베드로 대성당에 이어진 광장을 만들면서 완성되었다. - P33

로마는 고대 로마제국의 수도이자 기독교 세계의 중심지로 세계사에 큰 영향을 끼친도시이다. 하지만 중세 유럽인들은 고대 로마의 유적들을 방치했고, 14세기부터 교황이 로마를 비우면서 로마는 수도 기능을 잃고 황폐해진다. 15세기 초반 로마로 다시돌아온 교황은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로마를 최첨단 도시로 재건축한다. - P37

내가 발견한 로마는 진흙으로 되어 있었지만
내가 남기는 로마는 대리석으로 되어 있으리라
- 아우구스투스 - P38

권위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아서 그럴 텐데요.  이런 교황의 권위를 잘 보여주는 상징 중 하나가 바로 위에 있는 삼중관입니다. 지금은 공식적으로 삼중관을 쓰지 않지만 삼중관에 겹쳐 있는 세 개의 관은 모두 권한을 뜻합니다.  하나는 한 지역을 다스리는 군주로서의 세속권, 또 하나는 교회의 수장, 세 번째는 천국의  권리를 나타내는 천상권을 상징합니다. - P40

피에트로 페루지노,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주는 그리스도, 1481~1482년, 시스티나  예배당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천국의열쇠를 건네주고 있다. 그리스도 주변으로 12제자의 모습이보인다. 베드로는 예수가 지어준 이름으로 반석이라는 뜻이다. - P43

이 사죄권을 받은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 되었고, 베드로의 후계자인 지금의 교황까지 그 권한이 전해집니다. 그래서 교황의 문장에 사죄권을 상징하는 열쇠가 꼭 들어가는 것이죠. - P43

교황이 되려면 먼저 추기경이 돼야 합니다.  교황이 황제라면 추기경은 그 바로 아래의왕, 또는 왕자라고 이야기할 만큼 높은 지위이죠. 이 추기경단이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고 있으니 추기경단 중 한 명이 차기 교황이 되는 겁니다. - P45

15세기까지 추기경 수는 20~30명 정도로 많지 않아서 교회에서 추기경의 권위는 어마어마했죠. 16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수가 70명으로 늘어났고,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2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숫자가 늘었다 해도 한 나라의 추기경이라고 하면 웬만한 정치 지도자만큼 무게감이 있죠. - P45

교황은 일단 즉위하면 추기경단을 자기가 잘  아는 측근으로 많이 채웁니다. 자식이 없어서 후계자가 없다보니 조카들을 자신을 지지할 추기경으로 만들어 자신의 권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요. 이렇게 해서 교황은 주변에 우호적인 추기경을 많이 만들었죠. 여기에서 나온 말이 바로 네포티즘 nepotism, 즉 친족주의입니다.
조카를 뜻하는 영어 네퓨nephew와 어원이 같습니다. - P48

교황이 선종하면 추기경들이 모여서 콘클라베를 진행합니다. 콘클라베는 ‘열쇠로 잠근 방‘이라는 뜻으로, 추기경만 모여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의례인데요. 이때 선출 장소인 시스티나 예배당의 문을 걸어 잠그고, 추기경들은 차기 교황을 선출할때까지 밖으로 못 나오게 됩니다. - P51

에두아르트 슈보이저, 카노사의 하인리히,  1862년, 막시밀리아네움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파문한 교황에게 용서를 청하기 위해 맨발로 성문 앞에 서 있다. 뒤쪽 성 안에서 교황이 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황제권이 교황권에 패배했음을 상징하는 이 사건은 카노사의 굴욕이라 불린다. - P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아, 억지로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야!> - P1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 집, 이 숲, 이 공기가 싫어요. 이 끝없는
평정과 목적 없는 삶을 참을 수 없어요. 모든 
사람들이 무미건조해서 마치 물방울처럼 서로 
구별이 안 되는 이 고장 사람들을 참을 수 없어요! 이들은 전부 정이 많고 선량하지요. 왜냐하면 배부르고 걱정이 없으니까, 그래서 싸울 일도 없으니까……. 그러나 저는 일과 삶의필요로 인해 냉혹해진 사람들이 고뇌하며 사는 바로 그 커다랗고 습기 찬 집들이좋아요…………」 - P106

<아, 억지로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야!> - P1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집, 이 숲, 이 공기가 싫어요. 이 끝없는 평정과 목적 없는 삶을 참을 수 없어요. 모든 사람들이 무미건조해서 마치 물방울처럼 서로 구별이 안 되는 이 고장 사람들을 참을 수 없어요! 이들은 전부 정이 많고 선량하지요.
왜냐하면 배부르고 걱정이 없으니까, 그래서 싸울 일도 없으니까……. 그러나 저는 일과 삶의 필요로 인해 냉혹해진사람들이 고뇌하며 사는 바로 그 커다랗고 습기 찬 집들이좋아요…………」 - P1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