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대방이 도움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때론 그들이 원하지 않는 도움을 주곤 합니다. 그러나 우린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서로를 사랑할 순 있습니다."

"그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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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mi Cuori Appassionati
차분한 열정적인 마음

피렌체의 두오모?
땀을 흘리며 몇백 계단을 오르면, 거기에 기다리고 있을 피렌체의 아름다운 중세 거리 풍경에는 연인들의 마음을하나로 묶어 주는 미덕이 있다고 했어……. 갑자기 아오이와의 약속이 생각났다. 때로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어린 시절의 부끄러운 실수라도 되듯이 기억 속에 밀폐시켜 두고 싶었던 오랜 약속 만날 것을 믿고 있으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오이의 서른 살 생일날, 피렌체의 두오모

개찰구를 뚫고 들어서자, 국제특급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햇살을 받아 강철의 차체는 둔탁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유럽횡단철도의 웅장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 P256

나는 레일 앞쪽을 바라보았다. 
이 열차가 나를 데리고 가는 그곳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새로운 백 년을 살아갈 것을 맹세하면서. - P256

"새로운 백 년."
크게 심호흡을 하고 유럽 국제특급의 트랩에 오른발을 올렸다. - P256

일본의 연인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결말은 두 권의 책을 모두 읽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랑 이야기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두 남녀 작가,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가 2년여에 걸쳐 실제로 연애하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이 릴레이 러브스토리는 양억관, 김난주 부부 번역가의 손끝을 통해 다시 한번 아름답게 거듭났습니다.

아쿠다가와상 수상작가 츠지 히토나리와 여자 무라카미 하루 평가에쿠니가오리가 2년여에 걸쳐 실제로 연애하듯 써내려간 릴레이 러브스토리 BIU & Rosso

마치 편지를 주고받는 듯한 연재였다. 나는 에쿠니 씨가 원고를 보내오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기다렸다. 멋진 글이 오면 나도 투지를 불타했다. 아오이 흔들리는 감정을 묘사한 글을 받아보고, 쥰세이에게 열정을 기울었다 혼자서 쓰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약에 고민도 하고, 고통도 받았지만, 그 이상으로 이공동 작업은 자극적이고 의미가 있었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연재를 하고 싶었다.
-츠지 히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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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베르따 멘추
그녀는 1990년 유네스코 평화교육상, 1991년프랑스 자유인권옹호위원회상을 받은 데 이어 마침내 1992년 10월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노벨평화위원회 프란시스 쎄예르스타트 위원장은 그녀에게 평화상을 수여한 이유에 관해 이렇게말한다. "가장 잔인한 탄압과 박해를 받은 가정에서 태어났음에도 그녀는 사회 및 정치 활동을 함에 있어서 항상 투쟁의 최종목표가 평화라는 점을 잊지 않아왔으며(…) 사회적 정의와 인종·문화 간 화합을위해 노력한 공로"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멘추는 사사로운 원한을 뛰어넘어 오로지 인디오의 권리와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위해헌신하는 투사이며 선구자다. - P155

사실 그 시절 라틴아메리카에 매력을 느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삶의 사표로 삼았던 체 게바라 말고도 네루다나 리베라 같은 기라성같은 사회참여형 지성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칠레에서 네루다의 발자취를 더듬었고, 볼리비아에서 체 게바라의 길을 밟아봤으며, 베네수엘라에서는 볼리바르의 생애를 추적해봤고, 오늘은 리베라를 벽화로 만났다. 이것만으로도 이 땅 라틴아메리카를 찾아온 보람이며, 또한 생에서 흔치 않은 행운이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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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저 자신에게 왕이라는 직함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그보다는 차라리 해방자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기억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해방자라는 칭호야말로동료 시민들이 인간에게 부여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칭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P55

고 자부하면서 "세상에는 가장 멍청한 바보가 세명 있습니다. 첫번째는 예수 그리스도, 두번째는 돈끼호떼, 그리고 바로 나 볼리바르입니다"라고 자신을 우직하게 원칙만을 고수하면서 봉공멸사(奉公私)한
‘멍청한 바보‘에 빗댄다. 볼리바르, 그는 멍청한 바보였기에 해방자가될 수 있었으며, 해방자였기에 멍청한 바보와 같은 짓을 감히 할 수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위인은 자신을 낮추고, 자신에 대해 엄격한 사람이다. - P56

씨몬 호세 안또니오 데 라 싼띠시마 뜨리니다드 데 볼리바르 뽄떼이 빨라시오스 블랑꼬(Simón José Antonio de la Santisima Trinidad de BolivarPonte y Palacios Blanco)라는 긴 이름을 가진 볼리바르 - P56

"우리는 인디오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럽인도 아니다. 우리는 원주민과 스페인 사람 사이의 중간인종이다" - P62

"당신들이 나에게 준이 120만페소 외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서 페루에 있는 전체 노예들을 매입해 자유로이 풀어주고 싶소. 만일 한 나라가 국민으로 하여금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이 나라를 도와 독립을 쟁취한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소"라고 말하면서 그 돈으로 노예들을사서 해방시켰다고 하는 일화는 유명하다. - P64

전쟁터를 떠돌아다녔고, 다른 한편으로는 라틴아메리카 헌법의기초를 세웠으나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 원인을 볼리바르는 스스로 "혁명을 위해 몸
바치는 동안 배울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술회한다. 인간 볼리바르의 솔직성이다. 
만년에 그는 자주 이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생애 마지막으로 자신의 묘비명을 구술한 글 
속에는 "아메리카는 이제 통치가 불가능하다. 
(・・・) 마치 혁명에 몸을 내던진 사람이 바다를 경작하는 것처럼"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현실에 대한 좌절과 실의, 그리고 고뇌의 표출이다. 한 끄리오요 지성인의 한계라고 말해두자. 자신을 더이상 지탱하지 못한 볼리바르는 1830년 12월 17일, 조용히, 그러나 쓸쓸하게 향년 47세로 한생을 마감한다.  - P67

입관을 준비하던 프랑스 주치의는 고인이 입고 있던 셔츠(유일한 셔츠)가 심하게 해져 있었다고 회상한다. 해진 셔츠 하나만을 남기고 라틴아메리카와 ‘결혼‘한 풍운아는 돌아오지 못할 먼 길로 떠났다. 슬픔에 잠긴 라틴아메리카는 이제 제2해방자의 강림을 기다려야만 했다. - P67

더러는 이 ‘멍청한 바보‘ ‘해방자‘의 한평생 행적을 볼리바르주의‘로 묶어보려고 하지만 신통치 않아 보인다. 볼리바르는 20년 동안불굴의 투지로 암울한 식민통치에서 베네수엘라와 페루, 콜롬비아, 에콰도르, 볼리비아, 파나마 등 여섯 나라를 해방시킨 강성(强性)의 사건창조적 위인일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는 방황하기도 하고, 명예와 돈을 초개처럼 버리며, 노예를 해방하고, 헐벗은산에 나무를 심게 하며, 하나밖에 없는 해진 셔츠를 입고 이승과 작별하는 연성(軟性)의 고매한 인도주의자다. 이 두 성품을 올곧게 갈무리하고 조화시킬 때만이 영생하는 볼리바르의 초상을 재현할 수 있을것이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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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짐없이 렌즈에 담았다.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얻는다"라는 신조를 굳건히 간직한 채세계를 누비고 있는 이 ‘보헤미안‘
에게는 어디를 가나 무엇이든 렌즈에 담아내는 것이 최대의 바람이고 보람이다. - P276

근간에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한마디가 금과옥조처럼 회자인구 되지만, ‘보이기만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얻는 것‘이 있어야지. 떠나면서 방명록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남미 고대문명의 한 단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흥미진지하고 유익한 이 박물관에 축하를 드린다.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정수일, 2012년 7월 4일." - P276

통상 마주앉음은 믿음과 공유, 소통과 격려에서이다. 그 마주앉음이 위인과일 때, 그 의미는 배(倍)가 된다. 여기 그러한 마주앉음이 있다. 2012년 7월 4일, 칠레 발빠라이소 언덕 위 빠블로 네루다의 고택에서다. 네루다는 칠레 중부의 포도주 산지인 자그마한 마을 빠랄(Parral)에서 자갈을 실어나르는 기차의 기관사였던 아버지와 교사인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 P279

약 한시간 동안의 참관을 마치고 방명록에 이런 글을 남겼다. "라틴아메리카의 영혼을 불사른 네루다를 기리며.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정수일, 2012년 7월 4일." - P281

와서 거리의 피를 보라,
와서 보라
거리에 뿌려진 피를,
와서 피를 보라
거리에 뿌려진! - P285

네루다는 결코 문약(文)한 시인이 아니라, 시대의 소명을 한몸으로 받아 안고 불평등한 사회불의를 고발하고 무도한 권력자들에 대항하는, ‘피를 부르는 저항의 시인, 민중의 시인이었으며 한 시대의횃불이었다. - P290

빠블로 네루다는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에서 자신의 한 평생을 이렇게 함축했다. "고통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빵도 맛보고 피도 맛보았다. 시인이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 P291

"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하고 찬란한 도시로 진군하리라." - P292

체 게바라의 길을 찾아서
‘체 게바라의 길‘은 우리 시대의 가장 완벽한 인물이며 표상인 체게바라의 삶을 죽음으로, 죽음을 영생으로 승화시킨길이며, 만민이 우러러 따르는 길이다. - P434

이 길을 찾아가는 데는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의 두 갈래 길이 있다. 
넓은 의미의 길은 볼리비아 땅 어디에서나 게바라가 생을 마감한 라이게라(La Higuera) 마을까지 가는 길일 것이고,
좁은 의미의 길은 바예그란데(Vallegrande) 에서 라이라 마을까지의 52km(읍 중심에서는 60km) 길이다. 이 52km 길은 게바라의 유구가헬리콥터로 운구된 길로, 흔히들 말하는 ‘체 게바라의 길‘이다. - P434

체 게바라의 길

이 길은
어둠 가셔내고
해돋이 맞이하는 길

이 길은
가시덤불 걷어내고
강강술래 하는 길 - P446

우리 함께
걷고 걸으며
넓혀가자 다져가자

그대의 한 길벗으로부터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정수일
2012년 7월 17일 - P448

간호사 쑤사나가 ‘눈을 뜬 채로영면한 체 게바라는 예수처럼 강직한 눈빛과 수염, 장발을 하고 있었다‘라고 회고한 것이 훗날 그를 예수와 같은 반열의 성인으로 신봉하게 되는 진원(源)이 되었다. - P462

확언컨대, 체 게바라가 ‘소아(小我)‘의 일체를 버리고  그토록 활기차고 낙천적으로 ‘위공(爲公)‘의 길, 그래서 ‘영생의 길‘을 터놓은 것은 아버지 에르네스또가 말한 바와 같이 ‘진실에 대한 광적인 애정‘을 품고 ‘리얼리스트‘가  되어 몸소 살신성인했기 때문이다. 구경에 그는 다음과 같은 자신의 지조를 지켜냈다. - P463

물레방아를 향해 질주하는 돈끼호떼처럼
나는 녹슬지 않는 창을 가슴에 지닌 채,
자유를 얻는 그날까지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갈 것이다.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실천문학사 2000 - P463

방명록에 이런 글을 남기고 박물관 문을 나섰다. 
"사건창조적 인간‘ 위대한 체 게바라 동지의 세계변혁정신 영생불멸하리라! ― 그대를 표상으로 삼아온 한 동양인으로부터,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정수일,
2012년 7월 17일 오후." - P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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