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이란? 法醫學, Forensic Medicine
인간의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들의 인과관계를 밝혀냄으로써 법운영과 인권 옹호에 이바지하는 학문이다. 법의학은 입법, 사법, 행정에 모두 적용되며 그 중 사법의 형사상 문제에 가장 많이 활용된다. 변사자에 대한 검안, 부검 등을 통해 살인이나 상해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제공해 범인 색출, 죄의 유무 판정, 형량의 정도 등을 결정하는 데에 응용된다. 법의학은 법 운영에 결정적인 자료를 제출하는 학문이므로 전문적인  지식과 숙련된 경험이 필수적이다. - P3

검시(檢屍, postmortem examination)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의 목적으로 변사체 및  현장을 조사하는 것을 검시(檢視)라 하고, 검시에 입회하거나 감정을 의뢰받아 의사가 사망을 확인하고, 시체에 대해 조사하는 것을 검시(檢屍)라고 한다. 검시에는 검안과 부검이 있다. - P4

검안(檢案, postmortem inspection)
시체를 훼손하지 않고 의학적으로 검사하는  일이다. 검안 의사는 검시에 입회하거나 또는입회하지 않은 경우라도 검안의 목적과 시체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이해하고, 자세한 외표  검사로 얻은 정보를 이용해 사망의 원인, 손상의 정도, 질병의 유무, 중독의 여부를 결정한다. 가능하다면 사망의 기전과 사망의 종류를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 P4

부검(剖檢, autopsy, necropsy)
시체를 해부해 검사로 사인 등을 알아내려는  것이다. 부검 과정에서 시체가 훼손되며 법적규제를 받는다. 부검은 목적에 따라 계통부검,  병리부검, 행정부검, 사법부검으로 나뉜다. - P4

해부(解剖, dissection)
시체를 절개해 관찰하고 장기나 조직을 적출하거나 채취하는 행위 자체를 의미한다. 일본의 영향으로 해부와 부검을 혼용하는 경향이 있다. - P4

안락사
‘편안한 죽음‘을 의미한다. 가치중립적인 단어로 용도에 따라 자발적 안락사, 조력사망, 연명의료 중단 등 다양한 형태로 쓰인다. - P4

존엄사
사전적 의미는 인간이 최소한의 품위와 가치를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불치, 난치의 환자가 품위 있게 죽기를 바랄 경우 치명적 의약품을 제공해 환자 스스로 고통 없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자살 원조행위, 또는 식물인간 상태와 같이 환자에게 의식이 없고 생명이 단지 인공심폐기로 연장되고 있는 경우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생명 연장 장치를 중단하는 행위 등으로 해석한다. 즉 중의적 맥락이 있는 용어다. - P4

가사(假死)
외견상으로 호흡과 맥박이 멈춰 죽은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상태다. - P4

뇌사
뇌의 기능이 완전히 정지해 회복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서 뇌의 기능이란 사고와  판단을 주관하는 대뇌피질과 맥박, 호흡 등 기본적인 생명 활동을 주관하는 뇌관의 기능을  포함한다. - P5

식물인간
인간에게는 운동, 감각, 정신 작용의 동물성 기능과 소화 흡수, 호흡, 배설, 혈액순환의 식물성기능이있다. 이중 동물성 기능이 정지되고 식물성 기능만 가능한 상태의 환자를 식물인간이라고 한다. 인공호흡기를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뇌사와는 구분된다. - P5

줄기세포
크게 배아 줄기세포와 성체 줄기세포로 나뉜다. 배아 줄기세포는 여러 종류의 신체 조직으로 분화할수 있어 활용 범위가 넓지만, 생명의 씨앗인 배아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성체 줄기세포는 특정  조직으로만 분화할 수 있어 제한적이지만, 윤리 논쟁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 P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렇다 할 경쟁자도 없어 그의 권좌는 반석 위에 놓인 듯 보였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라면정 통성 문제였다. 아버지를 몰아내고 형제들을 죽여 가며 등극했다는 건 - P13

창덕궁 대조전
창덕궁 내 중궁전으로 왕비가 기거하며 공적  활동을 하던 곳인데, 대조전의 첫 주인인 원경왕후 민씨는 이곳에서 조금도 행복하지 못했다. 현재의 건물은 1919년 경복궁에 있던 교태전을 헐어 이전한 건물이다. - P46

성산포 앞바다
태종의 처남들로 태종이 왕이 되는 데 큰 공을  세운 민무구와 민무질 형제는 태종의 왕권강화정책의 희생양이 되어 제주에 유배되었다가 자진 명령을 받고 죽는다. - P78

창덕궁 전경
태종이 즉위하여 지은 궁궐. 태종 5년(1405년)에 완공되었으나 궁궐의 모습이 갖춰진 건돈화문이 건립된 태종 12년이 되어서였다. 임진왜란 때 정궁인 경복궁이 소실되고 조선말기에 복구될 때까지 약 300여 년 간 본궁의 구실을 하였다. - P132

초기 태종 정권을 구성한 핵심인사들 면면을  보면 동북면출신 무장들과 종친들을 제외하고는 공교롭게도 거의가 역성혁명에 반대했던 인물들이다. - P148

인정전 용상
세자란 장차 이 자리에 앉을 것으로 예고된 존재. 그러나 태종의 장자인 세자 양녕대군은 계속된 비행 끝에 폐세자됨으로써 앉아보지 못하고 셋째인 충녕이 대신 이 자리의 주인이 된다. - P154

과거에 급제할것도 아닌데 꼭 이렇게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까?
도발적인 세자의질문에 대한 권근의 답변이 근 사하다.
보통 사람이야 한 가지 재주만 있어도 출세할  수 있지만. 임금은 공부하지 않고선 정치를 잘할 수 없고 정치를 잘못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 P157

‘임금의 아들이라면 누군들 임금이 되지 못하겠습니까?‘ 라고 했습지요.
지금 대군께서 학문을 좋아하시니 제 마음이  기쁩니다. - P168

충녕은 학문을 좋아하고 정치의 원칙을 알아,  건의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합당하고 보통사람의 생각을 뛰어 넘는다. 풍채도 좋고 행동과 예절도 반듯하며, 술도 적당히 마실 줄 안다. - P189

나는 충녕대군을세자로 삼겠노라!
신들이 생각하는
‘어진 이‘가 바로 그 분이옵니다. - P189

세자는 우리 주상전하의아들! 굳이 사양했으나윤허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군주의 차림을 하셨으니 되돌릴 수 없습니다. - P196

충녕대군이 조선의 제4대 임금으로 등극하니  이가 곧 세종대왕이다.
세자가 된 지 고작 두어 달밖에 안 된 1418년 8월 10일이었다. - P197

세자의 자리에 있던 기간이 워낙 짧아서 제대로 된 군왕 교육은 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가 누구보다 준비된 임금이었음을 세상은 곧 알게 된다. - P1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화대교
옛 강화 나루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강화대교.
야사에 의하면 고려 왕조를 이끌었던 왕씨들이 이곳 강화 앞 바다에 수장되었다고 한다. - P8

그 제자의 제자의 ・・・・・・ 제자들이...
힘을 길러 장차 조선의 주인이 될 줄은 길재 자신도 몰랐으리라.
士사林림 - P25

그의 색깔을 보여주는익숙한 시조 한 수.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P25

비슷한 색깔의 시조 또 한 수.
운곡 원천석의 시조다.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쳐시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 P26

끝끝내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니,
뒷날 이들을 일러
‘두문동 72현‘이라했다. - P28

종묘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왕가의 사당.
종묘는 사직단과 더불어 조선 왕조의 기틀과  근원을 상징한다. - P62

시경(詩經) 주아(周雅) 편에 있는
‘이미 술에 취하고 덕에 배불렀어라.
임금이시여, 만년토록 큰 복(景福)을 누리소서‘ 의 시구 중 ‘경복‘을 따서 경복궁이라 부르기를 청하옵니다. - P87

개국의 주역 정도전은 종종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나라를 세운건 유방이 아니라 장자방이야!
나라를 세운 건 태조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이다.
나는 조선의 장자방! - P88

천하제패에 성공한 유방은 건국의 일등공신들을 제거하기 시작했고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를 다 잡았으니 사냥개를 삶겠다. 이거지?
말이 많다. - P89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조선 초기의 세계 지도. 당시 중화적 세계관을  반영해 중국과 조선을 과장되게 그렸다.
이러한 지도 제작은 조선 왕조의 국가적 권위와 왕권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 P104

표문이란 황제에게올리는 글이고,
전문은 황태자에게올리는 글이다. - P117

광화문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 앞 거리가 1차 왕자의  난의 주요 무대가 되었다. - P142

자조(自嘲) -정도전

조심하고 조심하여
공력을 다하여 살면서
책속에 담긴 성현의 말씀
거스르지 않았다네

삼십 년 긴 세월
고난 속에 쌓아온 일
송현방 정자 한잔 술에
그만 헛일이 되었구나. - P160

조선을 세운 이는 조선조 내내 역적으로 지탄받고, 목숨 바쳐 조선 건국을 막으려 했던 이는충신으로 숭배되었으니, 역사는 종종 이런 아이러니를 연출하곤 한다. - P162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 평가 또한 달라지는 법이다.
조선 말 대원군에 의해 정도전은 마침내 신원되고,
정도전의 훈작을 회복시켜주고 시호도내려주라. - P162

오늘날에 와서는 탁월한 혁명가로,
당대 최고의 사상가이자 개혁 정치가로 재조명되고 있다. 좋겠네. 한턱 내,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에는 정도전을 기리는 문헌사란 이름의 사당이 있다. - P162

근정전
경복궁의 정전으로 역대 국왕의 즉위식이나 대례 등을 거행하던 곳이다. 이방원은 1,2차 왕자의 난을 거치며 드디어 이곳에서 왕으로 즉위한다. - P170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에서 최강의 적수들과 싸워가며 지존의 자리에 올라선정치투쟁의 달인, 태종 이방원!

군주로서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 P2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려는 원이 빼앗아 쌍성총관부를 두고 통치해 오던 동북면 지역을 되찾기로 하였다. - P25

아들 성계와 함께 개경으로 가서 벼슬을 하게  된다. 원에 투항했던 반역자 집안에서 왕이 직접 하사한 집에 사는 공신의 가문으로 거듭난  것이다. - P26

태조대왕께서 삼한을 통일하시어 세운 이 나라고려이거늘, 네 놈들이 뭐길래 감히 이 나라의 보위를 멋대로 좌지우지한단 말이냐? - P31

적이야 무찔러버리면 그만이지만 동료들로부터 고립되면 여간 곤란한게 아님을 뼈아프게  경험한 덕이다. 그렇게 전투와는 다른 정치적 처신법을 배워갔다. - P52

심양 근교
1370년 동북면 원수 이성계는 동녕부를 정벌하기 위해 요동의 중심지(현재의 중국 선양 근교)까지 공격하여 성을 빼앗았다. - P10

도담삼봉
충북 단양에 있는 3개의 바위섬. 정도전이 이곳 중앙봉에 정자를 짓고 경치를 즐겼다고 해서 그의 호를 ‘삼봉‘으로 했다. - P54

집을 옮기다 -정도전

오년에 세 번 집을 옮겼는데
올해에 다시 옮겨야 한다.
들은 넓은데 초막은 자그마하고
산은 길고 길지만 고목은 성글어라.

밭 가는 농부는 서로 성을 물어오건만
옛 친구는 편지마저 끊어버렸다.
천지가 나를 능히 용납해주리니
표표히 가는 대로 내맡겨두자. - P106

위화도
평북 의주에 있는 압록강 하류의 섬. 최영의 요동정벌론에 따라 출병한 이성계는 이곳 위화도에서 회군을 결심한다.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는 조선 창업의 기반을 마련했다. - P110

최영! 영웅 중의 영웅이지 허나......
주욱...
우선 너무늙은데다귀족 출신.
천지개벽을도모할 사람은못 되지.
어찌됐건이인임과한 부류아닌가?! - P115

이성계!
전공도 백성들의 청송도제일 높건만 권력의 주변에머물고 있는 사람. 강력한 자기만의 무장력을 갖춘 변방출신의 비주류라...
일단 코드는맞을 듯 한데.
과연 그가더불어 꿈을 이룰만한 인물인지... - P117

엄정한 군기에 절도 있는 움직임,
이 군대로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 P119

선죽교
고려 태조 왕건이 개성의 시가지를 정비할 때  만들어진 다리. 원래 이름은 ‘선지교‘ 였는데,  정몽주가 살해당한 후 그 자리에서 대나무가  자랐다고 해서 ‘선죽교‘라 불리게 됐다. - P146

만월대
개성의 송악산 기슭에 위치한 고려의 궁궐터.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불타버리고, 지금은 주춧돌과 계단만 남아 있다. - P184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1392년 4월 개경 선죽교. 그의 나이 56세였다. - P1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5~16세기에도 대부분의 유럽 사람은 과학  지식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았어요. 자연과학이나 의학이 발전하면서 물리적인 자연 현상과 인체에 대한 지식이 많이 늘어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설화나 전설, 때론 민간신앙에 의지했죠. - P260

이렇게 이성과 감성이 부조화를 이룬 이 시대를 가리켜 ‘몸은 어른인데 머리는 아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상업이나  도시 생활이 발달한 이탈리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예요. 이처럼 유럽의 이성과 감성의 부조화 상태는 당시에 유행하는 종말론과 맞물려 절정에 다다르게 됩니다. - P260

그는 늙은 뱀이며 악마이며 사탄인 그 용을 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끝없이 깊은 구렁에 던져 가둔 다음 그 위에다 봉인을 하여 천년이 끝나기까지는 나라들을 현혹시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탄은그 뒤에 잠시 동안 풀려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2~3절에는 이처럼 봉인 당한 악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사람들은 서기 1000년을 이 악마가 풀려나는 날이라고 생각하며 두려워했습니다. 서기 1000년이 지나고도 종말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15세기 무렵, 이 종말론이 다시 한번 유럽 사회에 퍼지기 시작해요. - P261

여기서 15세기나 16세기 유럽을 설명하는 가장 강렬한 서술 체계를 살펴보려 합니다. 이 시대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해석은 크게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JacobBurckhardt의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의 해석입니다. - P268

먼저 부르크하르트 해석부터 소개하겠습니다. 그는 1860년에『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출간하는데요. 이 책은 지금까지도 르네상스 시기를 정의내리는 데 큰 영향을 끼칩니다.
부르크하르트는 이 책에서 1500년도 전후를  인간의 대발견 시기라고 얘기해요. 일반적으로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이 시기를 근대의 여명이자 새로운 이성이 폭발하는 시대로 본 거죠. 그는 르네상스를 인간과 세계를 발견하고  개성 넘치는 인간이 등장한 시기로 정의합니다. 부르크하르트가 제시한 키워드들은 대체로 오늘날까지 르네상스에 대한 주류적인 해석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 P269

하위징아의 생각은 확연히 다릅니다. 하위징아는 1919년에 펴낸『중세의 가을』에서 르네상스가 중세의 다른 모습에 지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네덜란드 출신 연구자답게 알프스 이북  지역인 네덜란드·독일·프랑스를 중심으로 르네상스 시대를 해석해요. 주 무대를 이탈리아로 한정한 부르크하르트와 큰 차이를 보이죠.  하위징아는 르네상스를 어둠, 맹목적 신앙, 마법 등 중세적 상상력이 남아 있는 시기로 정의합니다. 우리가 보스의 그림을 통해 느낀 북유럽 감성과비슷하지요. - P269

참고로 최근에 나온 연구들을 보면 후자, 즉 중세의 연장이라는 해석이 조금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경우 죽기 직전까지 중세에 대한 거대한 연구들을 엮어냈는데 여기서 그는 르네상스를 중세의 틀 안에서 바라봅니다. 움베르토 에코 같은 현대 이탈리아 학자조차도 르네상스를 중세의 연장으로 본다는 사실은 주목할만 하지요. 사실 대개 16세기를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인해 빛과 이성을 향해 나아가는 희망의 시대로 이야기하지만, 실상 이 시기는 마녀사냥이 벌어진 무시무시한 암흑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 P270

심지어 레오 10세 시기독일 지역의 면벌부 판매 책임자인 수도자 테첼은 "당신이 돈을 궤짝에 넣는 순간, 당신은 천국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집니다"라는 말을 퍼뜨리고 다녔습니다. 어찌 보면 얄팍한 이야기인데 신앙심 강한 북유럽 사람들은 이 말에 넘어가고 맙니다. 실제로  구름처럼 몰려들어 면벌부를 사 갔으니까요.
더욱이 독일 게르만 민족에게는 돈으로 자신의 잘못을 보상하는 법적 전통도 있던 터라 이러한 면벌부 구매가 마냥 낯선 개념은 아니었습니다. - P279

카톨릭 교회의 권위에 눌려 있을 때, 시골 작은 마을의 수도사 한 명이 대범하게 반기를 듭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점으로 유럽에 종교개혁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이와  관련된 미술 이야기는 곧 바로 다음장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P280

16세기 북유럽은 로마와 달리 여전히 중세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독실한 종교적 믿음이면에는 종말과 죽음에 대한 공포와 설화 혹은 미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이는 미술에서도 기괴하고 신비스러운 특성으로 나타났다. - P281

죄를 인식하는 것이 구원의 시작이다.
마르틴 루터- - P282

루터가 쓴 글의 원래 제목은
 <대사능력 천명에 대한 반박 Disputatio pro declaratione virtutis indulgentiarum> 입니다. - P285

루터는 바로 이성경 말씀을 근거로 가톨릭을 
비판했습니다. 성경만이 믿음과 실천에 있어서 오류가 없는 유일한 규칙이라고 내세웠지요. 그걸 라틴어로는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라고 합니다. ‘오직 성경‘이란뜻으로 성경만이 유일한 근거일 뿐 성경에 없는 관습은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루터의 초상에서도 성경을 강조하고 있는거죠. 이런 루터의 판화가 그의 글과 함께 전 유럽에 퍼졌습니다. - P290

아래의 그림은 페테르 플뢰트너Peter Flötner라는 판화가의 작품입니다. 판화 속에 등장하는 이 용병은 원래 조각가였다고 하는데요. 판화 안에는 ‘이 사람은 원래 아주 성공한 조각가였는데 주문이 없어서 조각을 포기하고 용병이 되었다‘라는 글이 쓰여 있습니다. 교회가 더는 미술을 요구하지 않게 되자 작품 수요가 급격히 감소해 화가들이 새로운 생계를 찾은 것이죠. - P299

그렇습니다. 여기서 큐피드가 안대를 벗어버리면서 눈을 뜨고 있는 점을 눈여겨봐야 해요.  아래 보티첼리가 그린 큐피드와 비교해 보세요. 사실 15세기까지만 해도 이렇게 큐피드는 늘 안대로 눈을 가린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눈을 가린 큐피드는 사랑의 맹목적성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운명을 예측불허의 세계로 그립니다. - P327

그러나 크라나흐의 그림 속 큐피드는 자기 손으로 안대를 벗고 있습니다. 이는 몽매함을 벗어나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이제는 세계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 스스로 이끌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거죠. - P327

가톨릭교회에 정면으로 맞선 종교개혁은 미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기존 가톨릭교회의 종교미술은 우상숭배라며 위축되었지만, 신교에서는 교리 전파를 위해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면서 새로운 미술의 역할이 부각됐다. - P329

로마는 불에 탔고 교황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황량한 폐허 위에서 로마는 다시 꿈을 꾼다.
영원한 가톨릭 제국의 꿈을!
완벽한 이성을 추구하던 시대에서 불안하고 격정적인 감성의 시대로.
16세기 이탈리아반도에서 펼쳐지는다양한 미술의 풍경들은 새로운 시대를예고한다.
- 카피톨리노광장, 이탈리아 로마- - P334

번갯불을 일으키려는 자는
반드시 구름에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 P336

종교개혁, 로마의 약탈이 가져온 여파로 인해  교황과 가톨릭교회는 위기에 빠진다.
그에 따른 혼란과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신교에 대항하는 가톨릭교회의 반종교개혁으로 종교미술은 검열의 대상이 된다. - P388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다.
- 알랭 드 보통, 「불안」 중 - P391

매너라고하면 예의범절을 이야기하지만, 대문자 M을 사용한 매너리즘은 격식에 너무 빠지게 된다는 뜻이죠. 신선한 것 없이 같은 요소를반복할 때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말하잖아요.
미술에서도 매너리즘은 이와 비슷한 의미로 뭔가 새롭게 창작하기보다 기존 미술을 흉내 내거나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결국  앞 세대의 혁신을반복하고 있는 거죠. - P421

여기서 앞 세대는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가 활동한 시대를 말합니다. 1510년을 전후로 이들이 이룩한 하이 르네상스 시대의 업적을 후대 미술가들이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나오는 미술 경향을 매너리즘이라고 하죠. 이런 의미의 매너리즘은 1520년부터 1600년까지 최대 80년의 시기를 가리키는 미술 용어가 됩니다. - P421

16세기 피렌체 미술은 사회적, 정치적 환경에  영향을 받아 변화한다. 특히 메디치가문이 절대 권력을 쥐면서 피렌체 공화국이 폐지되고  공국으로 전환된다. 일련의 혼란 속에서, 하이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중간 과도기인 매너리즘  미술이 등장한다. - P463

베네치아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잊지 말기를. 모든 축제의 기쁨, 대지의 향연이여!
-바이런 - P464

인생은 연극이다, 테아트로 올림피코  - P534

16세기의 베네치아는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도 피렌체나 로마와는 또 다른 형식으로 르네상스 미술의 흐름을 이어간다. 베네치아의 후기 르네상스 미술은 티치아노의 회화부터 팔라디오의 건축물까지 다양하게 전개된다. - P5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