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대교
옛 강화 나루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강화대교.
야사에 의하면 고려 왕조를 이끌었던 왕씨들이 이곳 강화 앞 바다에 수장되었다고 한다. - P8

그 제자의 제자의 ・・・・・・ 제자들이...
힘을 길러 장차 조선의 주인이 될 줄은 길재 자신도 몰랐으리라.
士사林림 - P25

그의 색깔을 보여주는익숙한 시조 한 수.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P25

비슷한 색깔의 시조 또 한 수.
운곡 원천석의 시조다.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쳐시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 P26

끝끝내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니,
뒷날 이들을 일러
‘두문동 72현‘이라했다. - P28

종묘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왕가의 사당.
종묘는 사직단과 더불어 조선 왕조의 기틀과  근원을 상징한다. - P62

시경(詩經) 주아(周雅) 편에 있는
‘이미 술에 취하고 덕에 배불렀어라.
임금이시여, 만년토록 큰 복(景福)을 누리소서‘ 의 시구 중 ‘경복‘을 따서 경복궁이라 부르기를 청하옵니다. - P87

개국의 주역 정도전은 종종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나라를 세운건 유방이 아니라 장자방이야!
나라를 세운 건 태조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이다.
나는 조선의 장자방! - P88

천하제패에 성공한 유방은 건국의 일등공신들을 제거하기 시작했고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를 다 잡았으니 사냥개를 삶겠다. 이거지?
말이 많다. - P89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조선 초기의 세계 지도. 당시 중화적 세계관을  반영해 중국과 조선을 과장되게 그렸다.
이러한 지도 제작은 조선 왕조의 국가적 권위와 왕권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 P104

표문이란 황제에게올리는 글이고,
전문은 황태자에게올리는 글이다. - P117

광화문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 앞 거리가 1차 왕자의  난의 주요 무대가 되었다. - P142

자조(自嘲) -정도전

조심하고 조심하여
공력을 다하여 살면서
책속에 담긴 성현의 말씀
거스르지 않았다네

삼십 년 긴 세월
고난 속에 쌓아온 일
송현방 정자 한잔 술에
그만 헛일이 되었구나. - P160

조선을 세운 이는 조선조 내내 역적으로 지탄받고, 목숨 바쳐 조선 건국을 막으려 했던 이는충신으로 숭배되었으니, 역사는 종종 이런 아이러니를 연출하곤 한다. - P162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 평가 또한 달라지는 법이다.
조선 말 대원군에 의해 정도전은 마침내 신원되고,
정도전의 훈작을 회복시켜주고 시호도내려주라. - P162

오늘날에 와서는 탁월한 혁명가로,
당대 최고의 사상가이자 개혁 정치가로 재조명되고 있다. 좋겠네. 한턱 내,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에는 정도전을 기리는 문헌사란 이름의 사당이 있다. - P162

근정전
경복궁의 정전으로 역대 국왕의 즉위식이나 대례 등을 거행하던 곳이다. 이방원은 1,2차 왕자의 난을 거치며 드디어 이곳에서 왕으로 즉위한다. - P170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에서 최강의 적수들과 싸워가며 지존의 자리에 올라선정치투쟁의 달인, 태종 이방원!

군주로서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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