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요이를 지키기는커녕 야요이의 부축을 받으며 모치타로는 집으로 돌아왔다. 물터에서 다시 한번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이 나라의 그림 지도 위에 많은 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는, 그런 주사위 놀이였지요."

그 위에서 병의 신과 가뭄의 신이 주사위를 던진다. 나온 눈의 수만큼 나아가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되돌아가기도 한다.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 역신은.

어디로 갈 것인가, 가뭄의 신은.

도미지로도 그 무서운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다음 갈 곳을 정하고 있었다는 거로군요."

우울해하지 말자, 겁먹지 말자. 강해지자. 서로 격려하는 소녀와 소년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설날 노름의 마을은 몹시 북적거렸고 여관에는 신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긴 뒤에는 더 이상 노름을 하시면 안 됩니다. 부디 한 번만, 딱 한 번의 승부로 그만두십시오. 그리고 이 마을에는 두 번 다시 오지 마십시오."

눈꺼풀 안쪽에 하타마무라의 목화밭 위를 날아다니는 산제비를 떠올려 보았다. 마음이 따뜻하게 젖고, 아버지와 형, 누이의 웃음소리가 귓속에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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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그 커다란 등에가."

"맞아요, 그게 모치타로 씨의 누님을 저주한 여자의 현재 모습이에요."

――고약한 놈이라도 부끄러움을 안다면 사정을 봐주지 못할 것도 없지만 어쨌거나 업보가 깊어 큰일이로다.

당대 신관의 입장에서 보면 야요이는 조카딸에 해당한다. 오하타무라 마을에 있는 신관의 저택은 대촌장의 저택보다도 크고 격식 있는 번의 명문가와도 관계가 있다. 어쨌거나 대단한 신분이어서 정상적으로 살았다면 모치타로 따위와는 평생 제대로 얼굴을 마주할 일이 없는 여자라고 할까.

찬찬코
어린아이가 주로 입는 소매 없는 겉옷

도테라
보통의 기모노보다 크기가 크고 소매가 넓은 솜옷. 겨울 침구로도 사용된다

가이마키
솜을 넣은 잠옷

회지懷紙
품에 지니고 다니며 시를 적거나 휴지로 쓰던 종이

――열한 살 때 웃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그 후로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어요.

"제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기리지로는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쓸데없는 번민을 하지 않도록 부지런히 일하세요!

"이전보다 더 저를 부려 먹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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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 P38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 P38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 P38

내겐 아무 말없이
그이는 담배에 불을 붙였지
그이는 연기로 동그라미를 만들었지
그이는 재떨이에 재를 털었지
내겐 아무 말없이 - P40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 P42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 P44

소세양판서를 보내며
황진이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서리 맞은 들국화 노랗게 피었구나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 P48

사랑법
강은교

떠나고 싶은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 P70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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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물의 DNA가 동일한 알파벳으로 씌어 있다는 사실은 모든 종이 공통의 조상에서 유래했음을 입증하는 유전학의 증거다.  - P119

다윈은 염색체 DNA유전자 같은 것을 몰랐다. 그런데도 완벽하게 옳은 결론을 내렸으니 관찰과 추론의 힘은 얼마나 대단한가. 다윈이 말한대로, 생명은 단순한것에서 무한히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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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야바問屋場
에도 시대에 역참에서 인부나 말을 바꾸어 사람이나 짐을 수송하던 사무를 보던 곳

"서로 귀신 같은 모습으로 보여도 사이가 좋아지거나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런 말씀을 하시는 미시마야 님은 아직 진짜 외톨이가 된 적이 없으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강하게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도미지로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신들이 계시는 곳에서는 본래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신은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등에의 신이 계시는 땅에서 아흔아홉 마리의 등에에게 피를 빨린 자는 백 번째 등에로 모습을 바꾸게 돼요."

스스로 등에가 되어 저주하는 상대가 있는 곳에 모습을 나타낸다. 물이나 음식에 섞여 상대를 괴롭히고 굶주림과 갈증을 유발하여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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