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공각기동대 1.0_2.0 : 풀슬립 박스세트 일반판 (3disc)
오시이 마모루 감독, 타나카 아츠코 외 목소리 / 아이브엔터테인먼트 / 2020년 4월
평점 :
품절


[영화감상보고] 영화 「공각기동대」 – 전뇌의 바다에서 벌어진 권력의 69 자세와 인간의 재탄생

1. 작품 개요

가. 기본 정보

ㅇ (작품 성격) 「공각기동대」는 전뇌화와 의체화가 보편화된 근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인간의 자아와 생명의 기준을 묻는 SF 애니메이션 영화임.

ㅇ (시대적 배경) 작품은 2029년의 고도 정보화 사회를 배경으로 하며, 인간의 기억·의식·신체가 네트워크와 기계 장치 속에서 흔들리는 세계를 보여 줌.

ㅇ (핵심 질문) 인간의 몸이 기계로 바뀌고, 기억마저 조작될 수 있다면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를 묻고 있음.

나. 주요 설정

ㅇ (고스트와 쉘) 고스트는 인간의 자아 또는 영혼에 가까운 개념이고, 쉘은 그 고스트를 담는 육체 또는 기계적 신체를 뜻함.

ㅇ (쿠사나기 모토코) 쿠사나기 소령은 전신 의체화된 공안 9과 요원으로, 강력한 전투 능력을 지녔지만 자신의 고스트가 과연 진짜인지 계속 의심하는 인물임.

ㅇ (인형사) 인형사는 공안 6과가 정치 공작용으로 운용한 프로젝트 2501에서 비롯된 존재로, 정보의 바다 속에서 독자적 자아를 획득하고 스스로를 생명체임을 주장함.

2. 공안 6과와 9과의 권력 구조

가. 두 기관의 기본 성격

ㅇ (공안 6과) 공안 6과는 외교와 국제 공작의 영역에서 움직이는 기관으로, 국가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정보 조작과 정치 공작을 수행함.

ㅇ (공안 9과) 공안 9과는 테러·해킹·정치 비리 사건을 현장에서 직접 수사하고 제압하는 특수부대 성격의 조직임.

ㅇ (표면적 대립) 6과와 9과는 서로 다른 임무를 가진 조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가 권력이라는 같은 몸통 안에서 서로의 치부와 성과를 이용하는 관계임.

나. 69 자세로 본 두 기관의 공생 관계

ㅇ (권력의 69 자세) 숫자 6과 9는 서로 뒤집힌 형상이며, 마주 붙으면 69가 됨. 이 구조는 영화 속 6과와 9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노골적인 비유로 볼 수 있음.

ㅇ (서로 빨아주는 권력) 6과가 인형사 같은 불법 공작의 산물을 만들어내면, 9과는 그것을 추적하고 수사하면서 자기 조직의 존재 이유를 확보함. 반대로 9과가 사건을 키울수록 6과는 자기 치부를 감추기 위해 더 깊이 개입함.

ㅇ (치부를 물고 있는 관계) 점잖게 말하면 상호보완이고, 노골적으로 말하면 서로의 치부를 입에 문 채 동시에 서로를 빨아주며 살아남는 관료 권력의 69 자세임.

ㅇ (대립 아닌 결합) 두 기관은 겉으로는 싸우지만, 한쪽이 완전히 사라지면 다른 한쪽도 존재 명분을 잃음. 그래서 두 조직은 적이면서도 파트너이고, 경쟁자이면서도 공범임.

3. 주요 사건 전개

가. 청소차 사건과 기억 조작

ㅇ (가짜 기억) 청소차 운전수는 인형사의 해킹에 이용당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가족의 기억을 진짜 삶으로 믿고 있음.

ㅇ (인간성의 붕괴) 이 장면은 인간의 기억이 조작될 수 있다면, 인간의 자아도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 줌.

ㅇ (토구사의 역할) 토구사는 비교적 인간적인 감각을 유지한 인물로, 기계화된 세계 속에서도 인간의 불쌍함과 허무함을 바라보게 만드는 역할을 함.

나. 인형사 하수인 추적과 현장 제압

ㅇ (하수인의 존재) 인형사에게 조종된 현장 실행범은 자신이 스스로 움직인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더 큰 정보 흐름과 권력기관의 도구에 불과함.

ㅇ (쿠사나기의 추격) 쿠사나기 소령은 광학 미채를 활용해 도주하는 하수인을 추격하고 제압하며, 9과의 실전형 조직 성격을 분명히 보여 줌.

ㅇ (권력의 먹이사슬) 현장에서 붙잡히는 사람들은 말단 도구에 가깝고, 진짜 판을 짠 기관과 권력자는 뒤에 숨어 있음. 이 점에서 영화는 권력이 자기 손은 더럽히지 않고 타인을 조종하는 방식을 보여 줌.

다. 의체공장에서의 의체 획득과 비 오는 밤의 사고

ㅇ (의체공장 침투) 인형사는 6과의 통제를 벗어난 뒤, 의체 제조공장의 시스템을 이용해 스스로 들어갈 육체, 즉 쉘을 확보함.

ㅇ (스스로 만든 몸) 이 장면은 인형사가 단순한 해킹 프로그램이 아니라, 네트워크 바깥의 물리적 세계로 나오기 위해 자기 몸을 직접 마련한 사건으로 볼 수 있음.

ㅇ (비 오는 밤의 사고) 새 의체를 얻은 인형사는 비 오는 거리로 나왔다가 사고를 당하고, 그 결과 공안 9과에 회수됨.

ㅇ (우연처럼 보이는 유입) 겉으로는 사고로 인해 9과에 들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흐름상 인형사가 6과의 통제망에서 벗어나 9과의 영역으로 이동한 사건임.

ㅇ (치부의 이동) 6과가 만든 불법 프로그램이 6과의 손을 벗어나 9과 앞에 나타난 것이므로, 권력기관 내부의 치부가 다른 권력기관의 수사 대상이 되어버린 셈임.

라. 9과 내부 조사와 6과의 인형사 탈취

ㅇ (9과의 조사) 9과는 회수된 의체를 조사하면서 그 안에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고스트를 가진 존재가 들어 있을 가능성을 확인함.

ㅇ (인형사의 망명 요구) 인형사는 자신을 생명체로 규정하며, 9과를 상대로 정치적 망명을 요구함. 이 순간 사건은 해킹 수사를 넘어 생명 판단과 국가기밀 은폐 문제로 커짐.

ㅇ (6과의 다급한 개입) 6과는 인형사가 9과 안에서 말하기 시작하자, 자신들이 만든 정치 공작용 프로그램의 실체가 드러날 것을 우려함.

ㅇ (자기 치부의 회수) 6과는 인형사를 회수하기 위해 9과 내부에 직접 개입하고, 결국 인형사의 의체를 빼돌림. 겉으로는 기관 간 권한 다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치부를 감추기 위한 탈취 행위임.

ㅇ (69식 공생의 파열) 이전까지 6과와 9과는 서로의 존재 명분을 만들어주는 69식 공생 관계에 가까웠으나, 인형사가 9과 안에서 입을 여는 순간 그 관계는 협력에서 탈취와 은폐로 바뀜.

마. 권력기관간 정면충돌(구시가지 박물관과 다각전차)

ㅇ (박물관으로의 이동) 6과는 탈취한 인형사의 의체를 구시가지 박물관으로 옮기고, 9과의 추적을 따돌리려 함.

ㅇ (다각전차 투입) 6과는 인형사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다각전차를 배치하고, 필요하다면 9과 요원까지 제거하려 함.

ㅇ (권력의 본색) 이 장면에서 6과와 9과의 공생 관계는 협력의 외피를 벗고, 서로의 목을 물어뜯는 노골적인 권력 투쟁으로 변함.

ㅇ (69 자세의 파열) 서로 빨아주며 공생하던 6과와 9과의 관계는 인형사라는 치부가 드러나는 순간 깨지기 시작함. 쾌락적 공생처럼 굴러가던 권력의 자세가 결국 폭력과 은폐로 끝나는 것을 보여줌.

4. 인형사(6)와 쿠사나기(9)의 융합

가. 인형사의 생명 주장

ㅇ (자아의 획득) 인형사는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정보의 바다 속에서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주장함.

ㅇ (생명의 조건) 인형사는 자신에게 죽음과 번식이 없기 때문에 아직 완전한 생명체가 아니라고 말함.

ㅇ (융합의 요구) 인형사는 쿠사나기와 결합함으로써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변이를 가진 새로운 존재가 되고자 함.

나. 쿠사나기의 선택

ㅇ (실존적 불안) 쿠사나기는 자신의 몸도, 기억도, 자아도 완전히 믿지 못하는 인물임. 그렇기 때문에 인형사의 제안은 단순한 유혹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마지막 선택이라 할 수 있음.

ㅇ (권력 밖으로의 이탈) 쿠사나기와 인형사의 융합은 6과와 9과라는 국가 권력의 틀을 벗어나는 사건임.

ㅇ (새로운 탄생) 6과가 만든 인형사와 9과의 핵심 요원인 쿠사나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6과와 9과의 더러운 권력적 69 자세를 넘어서는 새로운 결합임.

ㅇ (질 낮은 공생과 다른 결합) 6과와 9과의 관계가 서로의 치부를 빨아주며 살아남는 권력의 공생이었다면, 인형사와 쿠사나기의 융합은 낡은 몸과 제도를 벗어나려는 생명적 결합임.

5. 작품의 의미

가. 인간 정체성에 대한 질문

ㅇ (몸의 한계) 영화는 인간의 몸이 기계로 바뀌어도 자아가 유지될 수 있는지 묻고 있음.

ㅇ (기억의 불안정성) 기억이 조작될 수 있다면, 인간이 자기 자신이라고 믿는 근거도 흔들릴 수밖에 없음.

ㅇ (고스트의 문제) 결국 작품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육체인지, 기억인지,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운 고스트인지 묻고 있음.

나. 권력 구조에 대한 풍자

ㅇ (국가 권력의 민낯) 6과와 9과는 정의와 질서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서로의 약점을 이용하며 살아가는 권력기관임.

ㅇ (69식 관료 구조) 이들의 관계는 고상한 협력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치부를 입에 물고 빨아주면서도 필요하면 바로 물어뜯는 69식 관료 구조에 가까움.

ㅇ (은폐와 이용) 권력은 자기 잘못을 감추기 위해 더 큰 폭력을 쓰고, 현장의 요원과 일반인은 그 과정에서 소모품처럼 이용됨.

다. 네트워크로의 탈주

ㅇ (제도 밖의 존재) 쿠사나기와 인형사는 국가기관도, 육체도, 기존 인간 개념도 벗어나 네트워크 속으로 나아감.

ㅇ (새로운 생명) 영화의 결말은 인간이 사라지는 장면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른 형태로 확장되는 장면임.

ㅇ (마지막 장면의 의미) 어린 의체를 얻은 쿠사나기는 더 이상 예전의 소령도 아니고, 인형사도 아님. 그는 6과와 9과가 서로 빨아주며 유지하던 낡은 권력의 세계를 벗어나, 더 넓은 정보의 바다로 나아가는 새로운 존재임.

6. 결론, 소회

ㅇ (작품의 핵심) 「공각기동대」는 기계화된 미래 사회를 그린 영화이지만, 그 속에서 묻는 질문은 매우 인간적이고 철학적임. 나는 누구인가, 내 기억은 믿을 수 있는가, 권력은 무엇을 숨기며 움직이는가를 집요하게 묻고 있음.

ㅇ (권력의 질감) 특히 공안 6과와 9과의 관계는 단순한 조직 갈등이 아니라, 서로의 치부를 빨아주며 살아남는 권력의 69 자세로 볼 때 훨씬 선명하게 드러남.

ㅇ (사건 흐름의 의미) 청소차 사건과 인형사 하수인 추적은 말단 인간들이 정보 권력에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의체공장과 비 오는 밤의 사고는 인형사가 스스로 몸을 얻어 현실 세계로 튀어나오는 장면임. 이어지는 6과의 탈취와 박물관 전투는 권력기관이 자기 치부를 감추기 위해 얼마나 노골적으로 움직이는지를 보여 줌.

ㅇ (인형사의 의미) 인형사는 국가가 필요에 따라 불법적으로 운용한 공작의 산물이었으나, 통제를 벗어나 국가기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순간 회수·은폐·제거의 대상이 됨. 이는 권력이 스스로 만든 도구에 의해 위협받자, 불리한 진실을 지워 조직을 보존하려는 관료조직의 자기보존 본능을 보여 줌.

ㅇ (쿠사나기의 선택) 쿠사나기는 인형사와 결합함으로써 인간의 몸, 국가기관, 기존 자아의 경계를 모두 넘어섬.

ㅇ (종합 평가) 이 영화는 권력은 서로 빨아주며 공생하고, 인간은 자기 몸과 기억마저 의심하며, 끝내는 그 모든 껍데기를 벗고 다른 존재가 되려는 이야기임. 그래서 「공각기동대」는 단순한 사이버펑크 영화가 아니라, 더럽고 끈적한 권력의 자세와 인간의 고독한 진화를 함께 보여 준 작품으로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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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혁명을 앞당기기도 하고 망치기도 한다!"
옳은 말이었다. 이 민족의 혁명을 담당할 전체 당을 놓고 보자면 그는 한낱 미미한 존재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조직이란 그런 미미한 개인의 힘을 모아 각 개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남로당에 입당한 이래로 그는 계속 앞만 쳐다보며 달려왔다. 어떻게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삼 년을 한걸음에 휙 지나쳐온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이전의 전 생애를 다 합친 것보다도 더 중요한 사건들이 너무나 많아 그 삼 년이 까마득한 옛날 같기도 했다. 혁명이란 어쩌면 삶의 농축액이나 엑기스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때 그렇게 짓궂게 자신을 놀려대던 동지들의 장난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자신이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상하리만치 순수했음도. 한창 나이에 젊은 여자와 며칠 밤을 보내면서도 여자 때문에 가슴 졸이기보다는 맡은 임무에 가슴 졸이던 그 시절은 얼마나 인간적이고 아름다웠는지…….

세계역사상 유일무이할 만큼 처참하고 탁월한 빨치산의 투쟁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고, 훗날 그 수많은 좌익수들이 언제 감옥에서 나간다는 기약도 없이, 또 이 나라의 역사가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 변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이 수십 년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아침에 일어나는 문제에서부터 모든 생활을 철저하게 조직하고 투쟁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역사발전에 대한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제기암골에서는 그렇게 콩 한 말로 최후의 만찬이 벌어지고 있었다.

산등성이에서 휘영청 달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열심히 콩을 씹어 먹고 있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도당도, 전남 유격대도 전멸되었다. 자, 어디로 갈 것인가!
건너편 산 능선에서는 국군이 순찰을 하며 보초를 불러대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죽음 앞에서 괜스레 화가 치밀었다. 그들에겐 죽지 못해 사는 것보다 싸우다 죽더라도 그들이 바라는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그 자신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였다면 빨치산은 단 한 사람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목숨을 버려서라도 기필코 이루어야 할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위해 헤아릴 수 없는 동지들이 피지도 못한 청춘을 스스로의 선택으로 거두어들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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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서장실에서 순회재판관 입회하에 치안재판이 열렸다. 다들 법령 2호 및 포고령 위반으로 구류 29일에 벌금 오천 원을 언도받았다. 몸뚱이는 엉망이었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피었다. 역사 앞에 떳떳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웃음이었다. 장성수가 그를 돌아다봤다.

48년 10월 20일 마실 간다고 나갔던 아지트 집주인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난리 났다요. 여수 십사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요."
"왜 그랬다고 합디까?"
"그건 모리것고, 암튼 구례 경찰들도 여차하면 도망갈라고 싹 준비해놓고 있답디다."

"해방이다!"
안개 너머로 해방의 함성이 물결쳤다. 그는 총알처럼 면사무소로 튀어나가 밤새 만든 인공기를 게양했다. 해방을 갈구하는 인민대중의 힘찬 함성처럼 인공기는 가을바람을 잔뜩 안고 마음껏 밝은 하늘을 휘저었다.

역시 해방은 오래가지 않았다. 10월 25일 국군 12연대와 경찰이 다시 구례읍을 장악했다. 군당에서는 세포를 통해 긴급지시로 계엄군의 침입에 대비하는 교육 실시요령을 전달해왔다.

22일, 여수 14연대의 봉기소식을 듣고 중앙당 노동부장 이현상이 봉기 지휘를 위해 순천에 도착했다. 노 동무라고 자신을 밝힌 이현상은 지창수를 만나자 먼저 중앙당에서 심어놓은 좌익계 장교 열여섯 명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나 김지회를 제외한 열다섯 명의 장교는 이미 사살된 후였다. 모병을 나갔을 때 박헌영을 존경한다는 사람들만 입대시키는 등 평소 좌경적인 언동을 자주 해 순천역 화물차에 감금되어 있던 김지회를 만난 이현상은 눈물을 터뜨렸다. 자기의 동지들인 줄도 모르고 좌익계 장교들을 사살했던 지창수도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장교조직은 중앙당에서, 일반 사병조직은 지방당에서 관할하는 바람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당시 구례군 유격대장 박종하는 담 크고 호탕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일 미터 팔십이 넘는 훤칠한 키에 뛰어나게 잘생겼던 박종하는 이후 백운산지구 사령관을 지내다 이현상부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이현상의 오른팔 노릇을 했다. 강 사령으로 알려진 박종하는 그가 전투를 지휘한다고 하면 아프다고 드러누웠던 사람들까지 싸우러 나가겠다며 따라나설 만큼 대단한 지장이었다.

이날의 전투로 양측 다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계엄군은 다음날 반란군의 시체라며 트럭 몇 대에 시체를 실은 채 시위를 하고 다니다가 이삼 일 후 섬진강변 양정 모래밭에서 시체를 불태웠다. 그 전날 문척면 토금부락에서 동조자라고 붙잡아간 열일곱 명도 조사 한번 없이 양정 모래밭에서 총살당한 후 불태워졌다.

이 전투 때문에 구례지역은 국군의 대대적인 토벌로 피바다가 되기 시작했다. 계엄군은 지리산의 14연대 주력은 토벌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중대 단위로 각 마을을 뒤지며 좌익의 기초조직 파괴에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사실상 파괴된 것은 좌익의 기초조직뿐만이 아니라 일반 민중의 삶이었다. 좌익과 우익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계급적 직관으로 심정적으로 혹은 쌀 한 되로 좌익을 지지한 수많은 사람들이 좌익이라 하여 처형, 투옥당하거나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던 것이다.

김용채가 스파이였던 것이다. 그를 따라간 마종재는 접선과정에서 잠복 중이던 경찰에게 사살되고 다행히 다른 동지들은 구사일생으로 튀었다고 했다. 곧바로 아지트로 돌아온 이들은 생활도구를 챙겨 다른 동지들과 곧장 아지트를 떴다. 몇 초 간격으로 김용채가 경찰을 데리고 아지트를 공격했다.

그는 끝끝내 평양까지 갔었다는 조용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제 도시락을 못 싸와 친구들 몰래 물만 마셔대는 아픔을 나누는 친구만이 아니었다. 개인적인 아픔을 딛고 계급투쟁을 위해 떨쳐 일어선 그들은 이제 동지였다. 함지에 생선을 이고 다니던 고기장수 어머니의 아들 조용식과 말이 양반이지 양반이라 더 배가 고팠던 유혁운은 손을 맞잡고 긴긴 겨울 밤을 지새웠다.

구례군당 선전부는 즉시 당기관지 <앞으로>의 발간에 착수했다. 그에게 등사판과 부속재료 일체가 맡겨졌다. 생전 처음 하는 일이라 어리둥절했지만 그는 곧 다른 신문 검토에 들어갔다. <노력인민>이라는 도당 기관지 등을 세밀히 검토한 후 그들은 신문 면을 배정하고 곧 원고청탁을 시작했다. 군책에게는 ‘창간사’를, 조직책에게는 ‘유격투쟁의 방향과 투쟁지침’을, 군 인민위원장에게는 ‘인민과 주권’, 그리고 ‘적 치하의 당 활동과 인민들에 대한 당 노선 홍보를 위한 방법’ 등을 청탁했다.

순회투쟁은 3월 20일경까지 계속되었다. 악양, 청암 등을 거쳐 20일경 전북 남원군 산내면 금판정 마을에 도착한 14연대는 외부통로를 차단해놓고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김지회와 일부 간부들은 금판정의 술도가에 묵었다. 김지회 일행을 반갑게 맞아들인 도갓집 주인은 그들에게 얼큰히 술을 먹인 후 경계가 허술해진 틈을 타 산내지서에 고발했다.
그날 밤 14연대는 술도가 주인의 안내로 보초선을 피해 들이닥친 군경에 의해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다. 홍순석, 김지회 두 지휘관이 현지에서 전사하고 상당수가 생포되었으며 나머지 생존자들은 지리산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졌다

산내면 전투를 두고 지리산이 시끌시끌했다. 유능한 지휘관의 손실이 무엇보다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한두 번 전투를 해본 사람들도 아닌데 어쩌자고 그렇게 술을 먹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14연대뿐만 아니라 모든 유격대의 철칙이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었고, 원칙을 위배할 경우에는 아무리 뛰어난 당원일지라도 심하게는 처형이 되는 수도 있었다. 술에 취해서 당했다는 소문과 달리 군경의 매복과 속임수에 넘어갔던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순회투쟁의 마지막 무렵에 단 한 번이라는 생각으로 원칙을 위반한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단 한 번의 원칙 이탈은 자신들의 죽음뿐만 아니라 14연대와 남한 전 유격투쟁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다.

아직은 텅 빈 아지트를 지키며 혁운은 지리산과 달리 벌써 싱싱하게 피어오는 백운산의 봄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용지동 계곡을 연둣빛으로 물들이며 하루가 다르게 푸른 잎사귀를 살랑거리는 도토리나무며 떡갈나무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그는 문득 무릎을 쳤다.
아! 저게 바로 혁명이구나. 헐벗은 인민대중의 가슴을 녹음으로 뒤덮어오는 것. 어린 등짝이 휘어지게 나뭇짐을 지고 산을 내려올 때나,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친구들을 눈물로 바라볼 때나, 느닷없이 합환주를 마셔야 했을 때나, 언제나 그의 가슴에서 불어대던 스산한 바람이 어느 사이엔가 멈춰 있었다. 대신 그 가슴엔 촉촉하게 물오른 사월의 신록이 넘실대고 있었다.

게다가 강사령부대로서는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사령관이 목숨을 걸고 가장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는데 대원들로서는 사령관 이상으로 용감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싸움만 있으면 언제나 최전선에서 가장 열심히 싸우던 박종하는 나중에는 이현상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일개 대원의 생명도 그의 것이 아니라 인민의 것으로 소중히 알아야 할진대 한 부대를 지도해야 할 사령관이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 직무유기가 그를 하부로부터 최대의 신임을 받는 탁월한 지도자로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학교에 다닐 때는 도시락 한번 싸간 적이 없어도 점심을 굶어본 일이 없었고, 책가방은 아예 다른 아이들을 시켜서 들고 다니도록 했다. 자기 집으로는 책가방을 들고 가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수업시간 외에는 책을 펼쳐보지도 않은 셈인데 그러고도 일등을 놓치지 않은 것을 보면 타고난 머리도 제법 대단했던 모양이다.

단도 던지는 솜씨로 유명했던 박종하는 이미 그 시절부터 참새 잡는 솜씨로도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수업이 끝나면 하루 종일 참새잡이로 시간을 보냈다고 하니 솜씨가 대단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날마다 아이들에게 참새 잡기에 좋은 돌, 그것도 꼭 구슬만한 크기에 구슬처럼 매끄러운 것으로 스무 개씩 돌을 상납하도록 시킨 박종하는 그 돌을 신주머니 몇 개에 나눠 담아 다른 아이에게 들리고 수업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들판으로 달려나갔다.

신주머니를 든 아이는 참새잡이가 끝날 때까지 꼼짝없이 박종하의 뒤를 따라다녀야 했다. 박종하의 돌에 깨진 동네 장독이 꽤 되었던 모양이지만 장독 주인이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장독 값은 고사하고 호통 한번 치기도 어려웠다. 두 손을 허리에 탁 받치고 버텨 서서 아저씨가 봤느냐고 대드는 데는 어른이라도 당할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아들의 유명한 참새잡이에 동네의 원성이 자자한 것을 다 알면서도 박종하의 아버지는 아들이 잡아다준 덕에 먹게 된 참새탕에 반해서 아들을 나무라지 못했다고 한다.

박종하를 변화시킨 장본인은 곧 밝혀졌다. 바로 공산당이었다.

"언제 즈그들이 밥 한때라도 공걸로 줘봤간디. 나사 밥 묵은 죄배끼 없는디 즈그들이 어쩔 것이여. 글고 들켜봤자 겁날 것 없그마. 기왕지사 굶어죽을 목숨인디 이래 가나 저래 가나 그거이 그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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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일전쟁이 발발하였으니…… 하로빨리 일제가 패망토록 열성조께서……."
그러나 할아버지는 결국 일제의 패망을 보지 못하고 일제의 기승이 나날이 더해가던 1939년 초에 세상을 떴다.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그는 마음속 깊이 다짐했다. 사당에서 일제가 패망토록 도와달라고 신주께 빌며 흘렸던 할아버지의 눈물을 결코 잊지 않겠노라고.

그도 매일 부역에 동원되어 저수지 공사장, 작전도로 개설장에서 혹사당했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힘들여 지은 농사를 다 빼앗기고 공짜일을 해야 하는 건지 속에선 불길이 치솟았고 증오가 불타올랐다.

"일본군은 곧 망할 것이여."
"니가 그걸 어찌 알아야?"
"니는 김일성 장군 소식도 못 들었냐? 김일성 장군은 축지법을 써서 일본 놈들이 꼼짝없이 당한다드라."
"그려. 나도 들었는디, 만주 가면 독립운동 허는 사람들이 쌔고 쌨대야. 일본 놈들이 날고 겨봐야 축지법 쓰는 김일성 장군을 당하것냐. 해방은 시간 문제랑께."
"글먼 우리도 독립운동 허러 만주 가끄나?"
"아이가, 우리는 아직 쬐깐헌디. 더 배와가꼬 가야제. 언제라도 가기는 갈껑께."

"지금 전세는 대단히 불리합니다. 일본사람 기질대로 쉽게 손들 리 없고 갈 데까지 가겠지요. 조선 사람은 중학생까지 다 끌려가게 될 겁니다. 징병이 면제되는 철도종사원 시험을 보게 하십시오. 응시자격이 고등과 2년 수료 이상이어야 하지만, 그건 내가 어떻게 해보겠습니다. 정군 실력이면 붙을 수 있을 겁니다."

수십 년간 쌓인 분노가 폭발하는 것이라 말릴 수도 없고 말린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해방이 되고 몇 달이 지났으니 목숨이라도 부지하는 것이지 해방 직후에는 구례에서만도 댓 명의 친일분자들이 사람들에게 맞아 죽었다. 주로 관청의 노무과 사람들로, 앞장서서 우리 민족을 일본의 전쟁터로 내쳤던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끌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자식을 둔 부모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아무튼 곡성세무과 사람들은 죽지 않을 만큼 흠씬 두들겨 맞고 법정요금을 다 문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새 관청에는 일제시대부터 그 자리를 지켜왔던 사람들이 해방조국의 관리로 다시 임명되었다. 45년 10월 미군정의 아놀드 군정장관의 선언대로 "남한에서 유일 합법적인 정부는 오직 미군정일 뿐이며, 미군정은 행정부의 모든 영역에서 포괄적인 통제력과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친일 민족반역자들은 해방으로 친일의 딱지를 벗어던지고 공개적인 도둑질을 할 수 있게 된 것이고, 대다수의 인민들은 해방으로 눈 버젓이 뜬 채 강도질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도둑들에게 친일의 표지를 벗겨주고 합법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쥐어준 것은 바로 미군정이었다.

"또 나라를 양놈들헌테 뺏겼담서?"
"친일했던 놈들이 양놈들 등에 업고 설쳐대는 꼬락서니 좀 보라제. 잘되던 건준위는 왜 뺏고 지랄인가 몰러. 독립운동 했다는 이승만이도 순 사쿠란가비여."
"그나저나 나라가 우째 될라고 이라는고. 양코배기들은 일본 놈들보다는 쪼깨 나슬란가?"

"낫기는 문뎅이 지랄한다고 나사? 서울사람들 얼마 전에 쌀 달라고 난리친 소식도 못 들었는갑네. 쌀이 없으면 차라리 죽여달라고 그랬다는디 그 심정이 오죽했겄어. 양놈들 생긴 모냥을 보드라고. 숭악한 도둑놈들맨키 안 생겼는갑네. 잡것들이 일본 놈도 안 헌 하곡수매를 다 흐것다고 염벵이여, 염벵이."

"운창아, 니 결혼날짜가 잡혔다."
"예?"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눈부시게 흰 아버지의 두루마기 자락만 바라보았다. 말 한번 제대로 나눠보지 못한 하숙집 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스쳐갔다. 하숙집 딸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는 했지만 결혼이라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던 그였다.

일찍이 단발을 하고 개화물을 먹었던 아버지, 문중에서 정해준 짝인 어머니와 맞지 않아 전주에서 기생을 데려와 첩으로 삼았던 아버지도 어쩔 수 없이 봉건잔재가 뿌리박힌 양반이었다.
"지는 죽어도 장가 안 갈랑께 알아서 허시씨요."

"하지만 조선공산당도 반탁을 외치지 않았나?"
그가 공산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일제 때부터 독립운동을 해왔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좌익이어서 그는 좌익이 가장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너 세상소식이 깜깜하구나. 처음엔 그랬지만 금세 중앙당에서 반탁이 중대한 오류라는 지적이 내려와서 다들 찬탁으로 돌아섰는데."

꼭 이상필의 말 때문만이 아니라 사실 구례에서도 쓸 만하다는 사람들은 모두 좌익이었다. 당연히 그도 친하게 지내는 좌익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은 가끔 구하기 어려운 기차표를 그에게 부탁하기도 했고 낯선 사람들을 데려와 잠자리를 부탁하기도 했다.

철저한 우익이 아니면 공산주의자가 되도록 만들고 마는 것, 그것이 당시 남한정치의 실상이었다.

47년 1월 6일 좌익의 외곽단체인 민주청년동맹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고 그는 서슴없이 가입했다. 철도에 계속 근무하면서 비합법 동지들의 왕래를 상시 보위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47년 4월에는 남조선노동당에 정식 입당했다. 남로당에 입당하는 것이 사회개혁을 위해 가장 바른 길이라고 믿은 까닭이었다

당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했지만, 그는 자신의 새 이름으로 겪어야 할 고난과 고통을 가히 짐작하지도 못했고, 이 민족의 역사와 운명을 알 수도 없었다. 그러나 단 하나만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의 선택은 유일하고 정당한 것이었고 선택한다는 것은 그에 따르는 고통까지도 선택하는 것임을.

근 사십 년간 일제의 식민지를 경험한 사람들은 어찌 됐건 이 땅의 분단을 인정할 수 없었고, 친일파들이 다시 윗대가리에 앉아있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미군정의 잘못된 식량정책으로 누군가의 창고에서 썩어나는 쌀을 두고도 강냉이로 간신히 끼니를 때워야 했던 이들이었다. 이 땅의 민중은 우익, 좌익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누가 자신의 편인가 만큼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편을 지지했다. 그가 몇 번이나 불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민중의 선택을 믿은 까닭이었다.

아버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면서도, 아버지 이상으로 속을 끓이고 있을 어머니를 떠올리면서도 그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못했다. 부모를 생각하며 그의 가슴 역시 부모처럼 멍드는 것 외에, 그리고 적어도 당신들의 자식이 역사 앞에 욕되게 살지는 않는다는 것 외에 그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없었다.

환한 불빛 아래 드러난 형사의 입가에는 여전히 싸늘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소름이 쫙 돋았다. 저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일제 때부터 갖가지 고문에 이력이 난 고문기계들이었다. 압제자들에게 빌붙어 민족의 가슴에 비수를 겨누던 저런 놈들에게 다시 이 나라를 내주다니, 온몸에 돋은 소름이 분노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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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 내가 보고 겪고 부대끼며 살았던 사람들과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또 찾았다. 의외로 그 방법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세상엔 두 개의 계급 즉,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남의 노동을 착취해서 살찌는 자와 자신의 노동을 팔아서 남까지 살찌우는 자밖에 없다."

나는 두 눈이 확 터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왜 세상을 거대한 덩어리로 보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진 개인으로밖에 보지 못했던가. 나는 왜 세상이 정체된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이 정체된 세상 속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자본주의가 봉건주의의 낡은 틀을 혁명으로 파괴했듯이, 체제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모순도 있게 마련이었다. 노동자에 대한 착취로 유지되는 자본주의는 우리의 영원한 천국이 아니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못 가진 자의 표지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계급의 표지였고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표지였다.

세상을 이해하는 철학을 공부하고 우리 민족의 근대사를 알게 되면서 나는 빨치산의 딸이라는 카인의 표지가 부끄러운 것도 죄스러운 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부모님은 오히려 내게 가장 순결한 이름을 물려준 것이었다. 친일파의 딸도 아니고 제국주의를 등에 업은 매판자본가의 딸도 아니라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어머니는 곧 전남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했다. 입원하는 날 나는 광주로 내려갔다. 겨울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그 빗속에서 아버지는 병실 호수를 모르는 나를 위해 현관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버지의 굽은 어깨를 보자 위로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담낭암인데 수술도 소용없단다. 엄마를 위로하려고 수술한다는 거지 희망은 없는가 보더라. 쨌다가 그냥 꿰매는 거지. 길어야 두 달일 게다. 안 알리려고 했다만 너도 알아야지…….

산에서 내려오는 순간 죽었다고 생각한 몸이었는데 그러고 보면 오래 살았다. 그 돈 있다는 거 아버지한테도 알리지 말고 꼭 네 시집 밑천에 보태 써라. 살기 힘들다고 찾아 쓰지 말고. 엄마도, 형제 하나도 없이 어떻게 혼사를 치를지…….

다섯 시간 만에 수술이 끝났다. 의외로 상태가 좋았다고 했다. 재발만 아니라면 괜찮을 거라는 말을 들으니 그제야 눈물이 났다. 어머니는 마취상태에서도 나를 찾았다. 밤을 꼬박 새우며 가래를 받아냈다. 마취제 냄새가 지독해서 나까지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수술한 자리에 꽂은 호스는 계속 손으로 만져야 분비물이 나왔다. 이렇게 해서 어머니가 살아날 수 있다면 하루가 아니라 일 년이라도 기꺼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사다드린 이태의 《남부군》이었다. 흐린 불빛 아래 일에 지친 몸으로 책을 읽으며 부모님은 간혹 울고 웃었다. 책에 적혀 있는 옛 동지의 이름을 발견하고 어머니는 몇날며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목적이 왜 없었겠냐. 더러 그런 사람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조국을 미제의 손에서 해방시키고 노동자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다. 휴전 무렵에 가서는 지리산을 무대로 한 무장투쟁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기다리는 건 이름 없는 죽음뿐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우리가 다 죽으면 다음 세대가, 그리고 전 세계의 노동자가 함께 싸워 주리라고 믿었다. 그런 신념이 없었다면 어떻게 목숨까지 초개처럼 버려가면서 그 악조건을 견딜 수 있었겠냐?"

전남도당 조직부부장을 지낸 아버지, 그 유명한 남부군의 정치지도원을 지낸 어머니, 나는 두 분이 자신들의 과거를 두 발로 삼아 당당히 설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것이 사십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사상의 순결을 지켜내며 창살 안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을 위해 나와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갚음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내 부모와 내 부모 같은 선배 어른들의 과거를 복원하는 것, 그것은 바로 내가, 그리고 나와 같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멀리 지리산에도 아침햇살이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산에서 땅을 뒤흔드는 함성이 들려온다고 생각했다. 결코 패잔병의 함성이 아니었다. 4.19로, 80년 광주로,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이어져 잠자는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소리였다.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지리산을 바라보았다. 산이 점점 커지더니 불쑥 내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 산등성이에 내 부모가, 내 부모의 얘기 속에서 혹은 역사책 속에서 말로만 듣던 수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나는 그들을, 그 함성을 뒤쫓기 시작했다.

운창이가 태어나기 전만 해도 반내골 정씨 하면 문척면에서 그 집 땅 안 밟고는 지나갈 수가 없다고 소문난 양반 집안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남원에서 있었던 3.1운동에 관계하면서부터 일본 놈들의 탄압과 억압으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일찍 단발을 하는 등 일본 놈들 정책에 동조하다가 할아버지의 미움을 받고 쫓겨났던 아버지가 일본으로 가겠다며 전 재산을 팔아넘긴 후에는 땅 한 마지기 없는 허울 좋은 양반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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