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혁명을 앞당기기도 하고 망치기도 한다!" 옳은 말이었다. 이 민족의 혁명을 담당할 전체 당을 놓고 보자면 그는 한낱 미미한 존재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조직이란 그런 미미한 개인의 힘을 모아 각 개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남로당에 입당한 이래로 그는 계속 앞만 쳐다보며 달려왔다. 어떻게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삼 년을 한걸음에 휙 지나쳐온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이전의 전 생애를 다 합친 것보다도 더 중요한 사건들이 너무나 많아 그 삼 년이 까마득한 옛날 같기도 했다. 혁명이란 어쩌면 삶의 농축액이나 엑기스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때 그렇게 짓궂게 자신을 놀려대던 동지들의 장난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자신이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상하리만치 순수했음도. 한창 나이에 젊은 여자와 며칠 밤을 보내면서도 여자 때문에 가슴 졸이기보다는 맡은 임무에 가슴 졸이던 그 시절은 얼마나 인간적이고 아름다웠는지…….
세계역사상 유일무이할 만큼 처참하고 탁월한 빨치산의 투쟁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고, 훗날 그 수많은 좌익수들이 언제 감옥에서 나간다는 기약도 없이, 또 이 나라의 역사가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 변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이 수십 년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아침에 일어나는 문제에서부터 모든 생활을 철저하게 조직하고 투쟁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역사발전에 대한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제기암골에서는 그렇게 콩 한 말로 최후의 만찬이 벌어지고 있었다.
산등성이에서 휘영청 달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열심히 콩을 씹어 먹고 있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도당도, 전남 유격대도 전멸되었다. 자, 어디로 갈 것인가! 건너편 산 능선에서는 국군이 순찰을 하며 보초를 불러대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죽음 앞에서 괜스레 화가 치밀었다. 그들에겐 죽지 못해 사는 것보다 싸우다 죽더라도 그들이 바라는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그 자신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였다면 빨치산은 단 한 사람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목숨을 버려서라도 기필코 이루어야 할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위해 헤아릴 수 없는 동지들이 피지도 못한 청춘을 스스로의 선택으로 거두어들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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