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만고역적 난일이 대문예를 쫓아당나라로 망명하자 그의 아우 난이와 난삼은 죽음을 각오했다. 그러나 대무예는 난이와 난삼의충절을 알고 오히려 품계를 높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대무예는 친정하면서신라의 공격을 걱정하여 난이와 난삼을 방어군 통수로명했다.난이를 태령남위 대장군으로 삼고, 난삼에게는 보령남위 대장군을 제수하여 남쪽지경을 맡겼다.

머지않아 남쪽에서 당나라의 사주를 받은 신라군이 쳐들어올 것이다. 결코 창검궁시로 싸우려 하지 말고 꾀로써 싸우되, 하늘과 땅의기운을 이용해라. 산하가 얼어붙고, 교통할 수 없을 만큼 눈이 쌓일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설마와 설피를 마련하고, 양식과 땔감도넉넉히 마련하여, 얼어 죽거나 동상 걸리는 군사가 없게 하라

따뜻한 남쪽에 살던 사람은 북풍한설과강추위를 견디지 못한다. 천기가 우리 편이거늘 어찌 백만 대군을 두려워하겠는가. 우리가도망가는 척 적을 깊은 산으로 끌고가면, 창검을 쓰지 않고 눈보라와 모진 바람만으로 적을 섬멸할 수 있다."대장군의 훈유는 금세장수들의 머리를 조아리게 했다.

우리가 적의 교병계에 말려든 것이 아니냐? "김윤중은 아우 김윤문에게 물었다. 교병계란 적을 교만하게 만드는 계책을 말한다

김윤문은 목청을 높였지만 낯빛은 밝지않았다. 그 또한 천하를 호령하는 장수였으니 어찌 천문을 모르겠는가. 일관 최관문도그믐무렵에 위성, 실성, 벽성 앞에 많은 별이 벽을 쌓고, 그 속에 붉은 기운이 있으니만사를 근심해야 한다고 일렀다. "태백성의 장군성을떠밀어 물러나게 한것도 흉조입니다. 이는 눈과 바람과 함께뒹구는 형상이어서 조심해야 합니다."

신라 군사들은 얼어죽은 전우의 옷을 벗겨 입고, 죽은 군마의 고기를 저몄으며, 털 그슬린 억센 말가죽까지 씹어 삼켰다. 살아남기위한 몸부림은 처절했다

몇날 며칠을 무작정 남쪽으로 내려와 진을 쳤는데, 돌연 발해군이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예상 못한 공격이었다. 군영은 힘없이무너지고, 군사들은 오금도 못 펴고도망갔다. 천지를 호령하던 신라 제일 명장이요, 사해에 이름 떨친 김유신 손자인 김윤중과김윤문은 목숨을 건지려고 경황없이 도주했다.

정신을 차려 남은 군사를 점고한 김윤중은 절망에 찬 소리로 울부짖었다. "아! 하늘도 무심하고 땅도 저주했구나!

이제 발해는 북방의 강자가 아니라 드넓은 당나라와 당당히 맞서는 대국이 되었습니다." 동상에 걸려 한 쪽 다리를 절룩거리는장수취생복이 김윤중 에게 자탄의 소리를 했다.

왕모중은 대문예가 마지막으로 조국에게 진 빚을 갚는 방법도 일러주었었다.당나라 군사를 이끌고 나가되 발해군과은밀히 내통하여참패당한 후 장렬하게 전사하라고 했다. 그때는 설마 발해가 강성대국인 당나라를 공격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대문예는 심사가 편치않았다. 마음도 뒤숭숭하고 동족 앞에 창궁검시를 내밀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전하, 예부터 이기면 제왕이요, 지면 역적이라고 했나이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이기면 제왕이요, 져도 역적이 되지 않나이다.
발해군을 무찌르고 승세를 몰아 아예 도성까지 깨뜨려야 하옵니다. 그런 연후에 무도한 황제를 문죄하여 황위에 오르셔야 하옵니다. 이미 병들어 죽은 임아의 자식이요, 천하역신이 된 임청은 이번 전쟁을 통해 재기를꿈꾸고 있었다

결코 발해군을 이길 수 없나이다. 대세가 기울었나이다. 평로선봉 오승자는 황명을 받아 마도산(산해관 부근) 일대에 급히돌을 쌓고있사옵니다. 그 길이가 얼마나되는지 아시옵니까?

무려 남북으로 4백 리를 돌방책을 쌓는것은 방어만 하겠다는 뜻이옵니다. 당나라는 결코 발해의 내지를 침범하지 못하옵니다.
하물며 어찌 천통성까지 달려가겠사옵니까?

전하, 낚시꾼은 고기를 낚기 위해 미끼를 꿰옵니다. 전하는 미끼일 뿐이옵니다.

처음에 당제의 명을 받아 군사를 거느리고 출병할 때만 해도 대문예는 잔뜩 꿈에 부풀었다. 발해군을 무찌르고 추격하여 발해 도성을함락한 뒤에 황위에 오를 생각이었다. 그러나 평로선봉 오승자가 마도산 일대에 장벽을 쌓고, 흑수와 실위의 군사들을충원하여방어전을 서두르고 있다는 걸 안순간, 그 꿈이 무참히 깨졌다. 물론 북방에거란이 준동하고 돌궐도 기회만 엿보고 있지만, 당나라는끝까지 발해 땅을 짓밟고징치할 뜻은 없는 듯했다

쓰러진 적장의 투구가 저만치 나뒹굴었다. 적장의 얼굴을 확인한 덕숭은 비명을지를 뻔했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바로 몇년 전까지만해도 발해의 삼사삼공의 반열에 올라 있던 사도 난일이었다. 그의 앞가슴에 비단으로 싼 서찰이 비죽이 나와 있었다.

서찰을 받아 읽은 대일하는 난일의 시신을 후방으로 보내 정중히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게 했다. 난일은 당나라 군사들의수효와배치는 물론, 장수들의 관등과 특징, 병장기의 성능과 치중대의 군물, 유주의원군과 마도산 일대에 진을 친 군사들을 무찌를 계책을세세하게 적어 보냈다.

또 한 통은 황제에게 보내는 사죄문이었다. 눈물겨운 것은, 반역의 무리임에도가솔을 징벌하지 않고 오히려 사급을 내려, 죽을 때까지편히 살게 해 준 은덕에 대한보답으로 목숨을 바친다는 글이었다.

"역적 대문예를 잡아라!"군사들 또한 목청껏 소리 높였다. 발해군사들은 대문예가 당나라 군사를 이끌고발해군과 대적하는 것에분노했다. 분노처럼 훌륭한 무기가 또 어디 있겠는가.

"천만 군사가 모두 천자의 것임을 어찌모르시오? 천자의 어의를 어지럽혔으니 어찌 문죄하지 않을 수 있겠소이까. 근신하시오."
대문예는 가슴을 쳐야 했다. 분한 생각같아서는 오승자와 공주필을 단칼에 베고군사를 이끌고 나가 싸우고 싶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역적 대문예가 당나라로 망명하자 장군으로 제수하고 징치하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잘못이요, 무진년에는장안에 유학중인 황자께서 병사했으나 진상을 세세히 알리지 아니했음이 두 번째 잘못이옵니다. 흑수의 무리가 당나라에서 말을 팔아무기를 사게 한 것이 세 번째잘못이며, 흑수 도독부를 설치하고 발해의배후를 압박했으니, 이 또한 네 번째 잘못이옵니다."

사신을 돌려보낸 대무예는 즉시 회군할것을 명하니, 때는 계유(733)년 정월 그믐이 다 되었고, 몸소 친정하여 군사를 이끈지 어언다섯 달이나 되었다. 이 다섯 달은황제에게 무려 50년이나 된 듯했다. 국운을 건 승부수였다.

대무예는 당나라를 굴복시키기 위해 수륙양면으로 공격했다. 수군이 먼저 등주를함락한 뒤 서북쪽으로 진격하고, 뒤이어 친정군이서쪽을 차례로 함락하자, 당나라는양로군의 목표가 낙양과 장안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발해의 셈속이 잘 맞아떨어졌다.

이번 전쟁을 통해 발해는 고구려의 전성기에 견줄 만한 군사 강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당나라의 간담을 서늘케 한 것은당나라 조정에서 징발한 군사의 규모가말해주었다.

"전장이 수습되기도 전에 북방에서 돌궐이 준동하고 내지에서 거란이 공격하면, 당나라는 우리를 겨눌 여유가 없사옵니다.
개국황제께옵서, 천문령 대첩을 이루시고 동모산에서 개기창업을 하실 때도, 돌궐과 거란이 요서에 준동하여 울타리가되었사옵니다."

"믿음직스러운가?" "마진풍은 민첩하고 의기가 있어서 중임을 맡기기 적절하며, 임자기는 풍류가무에뛰어나고 칼부림에 능하며,
진채무는 재주가 많고 임기응변이 뛰어나며 지세에 밝습니다.

세상에 살아 있는 것 가운데 존귀하지않은 것이 어디 있소이까? 이곳에는 예부터 독사가 많아 아까운 생령들이 많이 죽었소. 이사람은 살 길을 찾았소.

이것은 독기를 빨아내는 흡독석으로 크기가 비록 대추만 하고 보잘것없어 보여도독을 빨아내는 데에는 신효하오

촌장은 신석정 손에 흡독석 두 개를 쥐여주며 훗날 요긴하게 쓸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행이 발해 사람들이라는 것을알면서도기꺼이 보살펴주는 당나라 촌장과 마을 사람들의 정성에 대흠무는 많은 생각을 했다. 원한 맺힌 나라일지언정 여염백성들끼리는 무슨원한이 쌓였겠는가.

우리는 부모 죽인 원수라도 독사에 물렸으면 일단 살리는 게 사람의 도리라고 배웠소. 옥 귀한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으리오만,
귀하기로서니 어찌 사람 목숨과 바꾸겠소. 보석이 없어서 당장 죽는 자가 있거든 그 사람에게나 주시오

"눈빛으로 정을 통해 이미 내 것인데 급할 게 무엇이겠는고." "데려가겠다는 뜻이옵니까?" "저만한 미인을 얻기도 어렵겠지만흑수변방의 수령 하나 얻는 것은 수만 군사를얻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전하, 천하가 엎드리겠사옵니다.""흑수 수령 아사리를밀정으로 삼고, 옥소지를 훌륭한 세작으로 삼겠다."

"전하, 천하를 다스리려면 통곡할 줄도, 눈물 흘릴 줄도 아셔야 하옵니다. 백성이굶주리면 같이 통곡하고, 백성이 아프면 같이 눈물흘릴 수 있는 군주가 정녕 군주이옵니다."신석정이 애써 눈물을 감추려는 대흠무를 이렇게 위로했다.

여인은 숨 가쁜 소리로 응대했다. 사내의손길은 꽃잎을 한 잎씩 따내어 입에 물듯했고, 여인의 손길은 단단한 박달나무로 제몸을아프게 때리듯 했다. 삼라만상의 변화가 음양의 조화에서 비롯된다고 했으니, 양은 음을 얻음으로써 화육을 이루고 음은 양을얻음으로써 비로소 생성하며, 이렇게 화합하고 상통하면 천하를 얻은 듯 기쁨을 누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듯여인은 몸을 떨며 비명을 질렀다. 가쁜 숨소리도 메아리처럼 흩어졌다

이에 대무예는 기꺼이 대흠무를 태자로 책립했으니 때는 을해(735)년 여름이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려면 온돌방만 한게 없사옵니다. 지화룡(방고래)을 팔 때부터 아래 윗목이 고루 따듯하게 구들을앉혀야 하옵니다."

대흠무는 손재간 좋은 장수 양상소에게는 활과 쇠뇌와 화살을 만들게 하고, 그의동생 양경소에게는 창과 방패, 북과 징 같은 전구를만들게 했다. 양경소는 철기와유기로 농구나 가구를 만드는 대장간 책임도 맡았다.

약재를 팔거나 진맥하고 침놓는 의자가상주하는 약전과, 선비들의 책상을 만들어파는 곳을 궁 가까이 둔 것은 뜻이 깊었다.

사족과 벼슬아치들이 아픈 백성들을 눈여겨 보게 조처한 것이다. 난이가 의술을 관장하고 말의 병을 다스리는 마의는난삼이관장하기로 했다.

"매일 누워 자는 궁궐 지붕에 저리 무서운 걸 두고 어찌 잠이 오겠는고?"대흠무는 지붕의 마루 끝에 얹는 망와를가리키며 물었다. "그옛날 중원의 황제와 싸웠던 우리 민족의 거한이었던 치우의 얼굴인데, 상 귀신처럼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으며, 천하 용맹하기에악독한 귀신도 범접하지 못하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무렵 발해 도성에는 기이한 소문이나돌았다. 황제 대무예가 중병이 들어 태사 신승이 황제를 모시고 약수가 좋은 태백산으로떠났다는 소문이었다. 그리하여 황자 대의신이 황궁을 지키고 조정 대소사를 대내상 손재가 맡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임신(732)년 9월 초닷새, 발해군은 백암성과 비사성에서 동시에 군사를 일으켰다

발해 황제 대무예가 직접 이끄는 육로군은 백암성에서 진발하여 요하를 건너 영주들이치고, 수군대장군 장문휴가 이끄는 해로군은비사성과 박작구에서 출병하여 등주로 짓쳐들기로 했다

선봉장을 자청한 양소화의 지휘선에는 얼마 전 위준의 비장이었던공이거를 비롯 고장숙, 임명필, 두충호, 기세진, 주나견이 군선을 지휘했다.

본대를 이끄는 장문휴 대장군은 군사 고징우를 상석에 모시고, 크기는 작지만 가장빠른 군선에 올라 형형색색의 깃발을 흔들어군선의 속도를 조절했다.

봉상루는 여염사람들이 출입할 수 없는 기방이었다. 오래전부터 소문난 집이었지만 지난해에 발해 여인 전수랑이 맡으면서부터명성이 더욱 자자했다. 미색이 뛰어난 기녀들이 어찌나 요염한지 뭇 사족과 장수들이 줄을 섰다.

전수랑은 가끔 대소 관료와 장졸들에게연석을 베풀고 푼돈을 챙겨주어 후덕한 주인으로 평판이 높았다. 명절이나 생일이 되면고객에게 물선을 꼭 챙겨주었고, 먼 길을 간다면 노자도 아끼지 않았다. 그 덕에전수랑의 일이라면 등주에서 통하지 않거나 풀리지않는 게 없었다. 소문에는 이풍장이 뒷돈을 댄다고 하였다.

발해군의 기습이었다. 관문을 통과한 군선에서 쏟아져 나온 군사들은 불화살을 쏘아 지휘 장수 없는 수성군의 기선을 제압했다.
뒤따라 밀어닥친 군선에서도 군사와군마들이 마치 용이 불을 토하듯 쏟아져 나왔다.

적의 기세로 보아 전투가 시작되면 당나라 군사들은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을 게 뻔했다.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공격을 받아 얼이빠진데다 미처 병장기를 갖추지 못한 병사가 태반이었다. 사방에는 아직도 기세 좋게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그러나 당군은불을 끌만한 여유도 없었다.

한나절 만에 등주성을 평정한 장문휴는군마와 병장기를 챙기고 관고를 열어 발해군사들을 푸짐하게 호궤했다. 선봉에 서서적을놀라게 한 양소화에게는 귀덕장군이제수되었다.

"황상께서 영주를 치고 장성을 넘어 장안으로 진공할 것 같소?" "그렇지 않고서야 폐하께서 친정하실 리만무지요." "이번에 친정하는것은 언제든지 발해가당나라를 쳐 장안을 수중에 넣을 수 있다는걸 보여주려는 것이오."

123/29우리의 국력과 군사력은 아직 당나라를깨뜨리고 복속시키기에 부족하오. 그럼에도 우리가 정복전에 나선 것은 당나라를 놀라게 하여다시는 우리 지경을 넘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오. 또한 흑수의 무리가 기신을 못 하게 하고, 돌궐과 거란에도 경고해두려는 것이오. 수하 장졸들에게는 계속장안까지 진격하는 것으로 하시오

언젠가는 신라가 발해를 공격할 것이오. 그때 당나라가 신라와 연합하여 우리를공격하면 누란의 위기가 되지 않겠소? 우리가늦가을에 당나라를 침공한 것은 의도가 있었소. 다급한 나머지 신라에 원군을청할 텐데, 이미 겨울이 깊어질 것이오. 설사 신라가당나라의 요청을 받아들여도 남쪽 사람들은 북방의 모진 추위를 견딜 수없소

백제가 뱃길을 막아 당나라에 조공할길이 끊겼으니, 하루속히 백제를 쳐서 당나라에 조공할 길을 열어 달라는 김춘추의 간청은 천추만대에 비웃음을 살 것이오. 당나라의 음험한 뜻을 신라가 미처 깨닫지 못했으니 자손만대의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란말이오?

자고로 천리란 소소해서 응보가 분명하니 신라 또한 경천동지할 것이오. 발해가당나라를 침공했다는 소리에 신라의 군신들이 감히발해를 넘볼 생각이나 하겠소이까?

친정길에 오른 황제 대무예는 피를 나눈 아우 대문예를 생각했다. 외숙 임아와육촌지간인 대정곤과 대사달의 모습도 선명히떠올랐다. 스승 신재용은 그들이 반액지구의 상이니 유념하라고 이른 적이 있었다. 반액지구란 겨드랑이 밑에서 모반하는 적을가리키는 것으로, 기르던 짐승이은혜를 잊고 주인을 물어뜯는 형상이었다.그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실감나지 않았는데, 친정하는길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그들의 배반은 황제에게 견디기 어려운고통과 치욕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있었기에 당나라를 침공할 명분을 얻은 터라, 어찌 보면전화위복이었는지 모른다. 그들이당나라로 도망간 걸 빌미로 대무예는 중원을 공격할 명분을 쌓았다. 그런 참에 장자대도리행이급사하여 시신으로 돌아왔으니, 대무예는 비탄을 안으로 삼키며 하늘이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라 생각했었다.

천고만난 끝에 장성 계선까지 진출해도 한순간 역공을 당해 오히려 천리장성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반드시 이겨야 하는전쟁이었다. 대무예가 몸소 친정을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전군은 크게 다섯으로 나누어전, 후, 좌, 우, 중군으로 편성하여 대일하를 당토격군대총관으로 삼고, 양호를 부총관에 명했다. 전위주장에 고공두, 부장에문수겸, 후위 주장에 홍청국, 부장에 다극조를 임명했다. 박연표와 모경본이 좌군을맡고, 대도진과 진적채가우군을 거느렸다.중군은 대일하가 직접 이끌되, 황제 대무예는 따로 친위대를 거느리고 발해 군사를 통할했다.

황제를 호위하는 대장군 여시말과 흔적진, 알윤금, 연검토, 김시몽, 감신극은 발해의 칠성이라는 별호가 붙은 장수들로 고황제때부터 출중한 무술로 총애받던 무장들이었다. 황제를 보위하기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는 장수들이었다.

친위대 외에 별동대를 두었으니 황자 대흠무가 직접 이끄는 부대였다. 열여섯 살밖에 안 되었지만, 그 늠름한 자태와 헌걸찬기상은널리 알려져 있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도량이 넉넉하여 품평이 좋았다. 대도리행이 죽자 대무예는 둘째 황자 대의신보다 셋째인대흠무를 더 총애하였다. 이번당나라 정복전에 대흠무를 대동한 것도 마음속에 숨겨 놓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보라! 동명성왕께서 강에 이르러 말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치자 물고기와 자라들이 나타나 다리를 놓아주었듯, 어둠 속에서하늘이 번개로 갈 길을 밝혀주시지 않느냐? 강을 건너면 천하가 모두 너희들 것이다. 가자! 발해의 혼이여, 일어서라!힘을 내어전진하라."

한이 서린 영주성이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 20만 명이나 되는 고구려 유민들을압송하여 당나라 내지에 흩어놓을 때, 가장많은고구려인들을 묶어 두었던 곳이다. 고구려인들은 노비가 아니면 황무지를 개간하는 노역으로 기근을 넘겼고, 온갖 학대와수모를견뎠으며, 무수한 여인들이 노리개로 전락했다

일세의 영걸 대중상과 대조영, 분기탱천한 고구려 유민들이 봉기한 곳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영주는 중원 세력이고구려를 침공하는전진기지였다. 수나라때부터 수많은 침략으로 고구려인들을 무수히 죽인 악독한 전쟁의 발원지가 아니던가. 그 처절한 비명이아직도 어디선가들릴 듯했다.

대무예는 어렵지 않게 영주성을 점령하자 도주하는 적을 추격했다. 적의 도주로는평주 쪽일 수밖에 없었다. 평주로 도망치던당군은급히 달려온 원군과 함께 강과 산을끼고 진을 쳤다. 함부로 공격할 수 없을 만큼 군사의 수효가 많았으며, 그 중에는 병법에 능한장수와 책사들도 있었다

산등성이에 오른 대무예는 적진을 두루살피며 태사 신승의 선견지명을 다시 한번떠올렸다. 이번 정복전에는 장성 계선까지만공격하는 게 현명하다 했다. 더 서진하기에는 군사의 수효나 보급해야 할 양초,각종 병장기와 수레가 부족하다는 것이다.요하를건너면서부터 수차 적을 깨뜨렸건만, 어디서 불러 모았는지 적군의 수효는줄지 않았다.

당군은 고구려를 깨뜨릴 때도, 돌궐과 거란을 굴복시킬 때도 인해전술이었다. 장성을 넘어 장안으로 진격하면 당나라는 대군을동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나라 사직의 운명이 걸렸으니 사력을 다할 것이었다.

당나라 군사들은 여지없이 죽임을 당하거나, 항복하거나 강물로 뛰어 들었다. 처참한 패배였다. 천문령 대첩 이후 실로 34년 만에당나라 군사들을 무참히 쳐부순 쾌거였다. 당나라의 요충지를 거침없이 공격하여 성을 빼앗고, 무섭게 진격하는 통쾌함은 천문령전투와 비견되었다

나라 잃은지 30년 만에 영주에서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세웠도다. 그리고 다시 34년 만에 선조들을 능멸했던 땅 영주를 토평했노라.
이제 천기를 받아 조상들을 짓밟았던 당나라를 정복하겠다. 아직도 영주에고구려 후손들이 있으니 관고를 열어 널리베풀도록 하라. 원하는 자들은 발해 땅으로데려가되 넉넉히 농사지을 땅을 나누어 주어라.

장안에 머물고 있는 신라왕의 시자 김사란에게 명하여 신라가 군사를 일으켜 발해를 공격하게 하옵소서. 신라 군사가 발해의 남쪽을치면 대무예가 황망히 퇴각할 것이옵니다

이융기는 임자(712) 년에 신라왕 김융기의 이름이 제 이름과 같다 하여 흥광으로개명하게 했다. 이융기는 이를 떠올리며 신라왕에게국서를 보냈다.

신라왕 김흥광은 고심 끝에 이융기의 청을 받아들여 김윤중과 김윤문에게 군사를이끌고 발해의 남쪽 경계를 공격하게 했다. 대총관김윤중은 서둘러 군사를 일으켜북쪽으로 진병했다. 벌써 옷을 뚫고 품속으로 파고드는 한파가 만만치 않았다.

양지쪽에 진을 치고 하룻밤을 자고나면얼어 죽은 군사가 여기저기서 버려졌다. 단단히 껴입고 충분히 불을 지폈지만, 어찌수많은군사들을 모두 살필 수 있으랴. 아무리 더운 밥을 먹이고 싶어도 밥은 솥에서푸자마자 잠깐 사이에 살얼음이 앉았다. 햇볕을쪼이면서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군사들에게 김윤중이 소리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에는 두 가지가 있다. 추서는 스스로가다듬어 자기의 선을 실행하는 것이고, 용서는 남을 다스리는 것이기에 남의잘못에관대해지는 것이다. 이를 어찌 같은 것이라할 수 있겠느냐? 결국 용서는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추서는 나를 받아들이는것이다. 너는 용서와 추서를 함께 해야 하니아침저녁으로 부처님께 빌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나라의 군권을 장악하고 황실 재정을 뒷받침하는 왕모중은 명실상부한 당나라의 2인자였다. 고구려 출신, 노예 신분으로 대국의 만인지상에 올라 하늘을 찌를 만한 세력을 가졌으니 누군들 부러워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왕모중의 권세를 질시의 눈으로 보는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환관의 무리였다. 모든 벼슬아치들은 환관들을 두려워했다. 황제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는 권세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죽을 때가 된 것 같소이다. 죽는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오. 죽어야 할 때아니 죽으려 하면 추악해지고 후세에 치욕이 됩니다

예부터 사람의 근심 가운데 가장 절실한 것은 죽음이요, 소중한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사는 것이라 했습니다. 살 길이 있는데 어찌 그길을 좇지 않습니까?" "내가 죽어야 여럿이 삽니다

당나라로 끌려온 고구려와 백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제 그 후손들이 수십만 명으로 불었습니다. 내가 대업을 이루어도 오래지않아 반드시 나를 제거할 것입니다. 거병에 실패하면 나만 죽이지 않고 고구려 후손들을 매섭게 징치할 것입니다.내가 어찌 그 죄를 씻을 수 있습니까?

오래지 않아 발해가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를 공격합니다. 작년에 거란의 가돌가한이 이진충의 동생이자 송막도독인 이소고를 참하고, 돌궐과 연합하여 당나라를 침공했습니다. 가돌은 능히 발해와도 연합할 것입니다. 당나라가 흑수와 화친하여 발해의 배후를노리고 있으니, 어찌 발해가 그냥 있겠습니까? 그때가 되면 필히 전하에게 부월을 내릴 것입니다.

황자 대도리행이 시신이 되어 돌아갔음에도 발해에서는 황제 대호아, 대림, 대랑아를 연달아 사신으로 보냈습니다. 사신 편에 당나라황제가 좋아하는 물선을 보낸 것도 당나라를 안심시키는 행위입니다. 또한 고제덕을 일본에 보낸 것은 장차 당나라를칠 때 신라가준동할 것을 예견하여 배후를 압박하기 위한 것입니다

발해 장정 세 명이면 호랑이도 때려잡는다는 풍문은 괜히 생긴 게 아닙니다. 당나라 군사들은 발해 군사들을 옛날부터 두려워합니다. 발해는 사신을 보낼 때마다 끊임없이 전하를 참해달라 요구합니다. 그것은 곧 전쟁을 하기 위해 명분을 쌓기 위함입니다.

고구려 종놈이 인신으로서는 더 오를수 없는 지위에 오른 왕모중은 고구려 피를뿌리며 죽겠습니다

그러나 양주에 당도하기 전에 왕모중의 목을 매달아 죽이라는 조서가내렸으니, 천하대국의 2인자는 그렇게 당당하게 사라졌다.
중원을 경략하려던 한 고구려인의 꿈이 일장춘몽으로 끝나 버렸다.

그 무렵 발해도성에서는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골라 세작 조련을 시켜 당나라로은밀히 밀입시켰다. 수군장수 충무장군 양소화는휘하에 별동대를 두어 통솔했다. 옛날부터 거느렸던 여인들은 물론이고 군사가운데 무술에 능하고 예인기질이 있으며, 충성심이 강한자들만 가려 뽑아 만든 부대였다.

거란 사신에게는 칙지를 내려 태평한때에 군사를 일으켜 백성을 놀라게 하고 이웃과 화친을 깨뜨릴 수 없다고 하라. 천리장성 쪽으로 보냈던 군사들도 회군하라 일러라. 지금은 국력을 모아 도성을 축조하고 환도 채비를 해야 할 때이다

그래서 부러 연막을 쳤소이다. 낮에 짐이 했던 말이 당나라 도성으로 흘러 들어가 안심할 때가 되면 그때 진병하리다.

등주는 당나라 군사 요충지이자 교역의요지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시절에도 물류의 중심지였습니다. 장문휴와 양소화의선단이 기습하여 성을 함락하면, 요동 지역의 본대가 곧장 내주, 청주, 치주를치고 회하를 건너 장성 쪽으로 진격하여 장안을 놀라게할 것입니다. 때맞추어 거란과돌궐에 사람을 보내 하북으로 진병시키면, 제 아무리 대국이라도 미처 수미를 돌아보거나 상응할 수없습니다.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할 때도 장량이 이끄는 수군이 등주에서 발진하여 비사성을 함락했다. 소정방이 백제를 함락할 때도 등주에서 발진했고, 소정방이 평양성을 공격할 때도 등주에서 출병했다. 어디 그뿐인가. 수나라 시절에도 여러 차례 등주에서 출병하여 비사성과 평양성을 핍박했다. 고구려와 백제의 한을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징벌해야 할 곳이 바로 등주였다

사람이 만든 것은 사람이 부술 수 있고, 사람이 지키는 곳은 사람이 뚫고 지나갈 수있습니다. 안시성은 천험하지 않았으나 적을농락했고, 평양성은 장엄했으나 무너졌습니다. 우리 군사들은 능히 한을 씻어낼것입니다

짐이 도성을 비우면 북방의 흑수가 준동할 수 있으니 경은 짐을 대신하여 도성을지키시오. 이번 정복전에 육로는 태사가 군사를 맡고해로는 고징우가 등주도행군 군사를 맡을 것이오. 개미가 소리 없이 땅을파듯 은밀히 진행하시오

황제가 연막전술을 쓴 연유는 당나라를자유롭게 드나들면서 당나라의 서책으로 글을 닦은 자들이 많아 대문예처럼 당나라의 국세에경도된 선비와 벼슬아치들이 늘어갔기 때문이었다. 당나라는 발해 사신과수행원들을 극진히 접대하고 선물을 주어모화 관료나모화선비를 길렀다. 발해의 정세를 눈여겨봐야 하는 당나라는 그들과 은밀히 내통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홍신의 대발해 4 - 황자의 역심 김홍신의 대발해 4
김홍신 지음 / 아리샘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독서보고] 김홍신의 『대발해』 4-황자의 역심, 건국 이후의 황실 내 권력투쟁과 발해 체제 공고화의 과정

1. 대발해 4권 개요
가. 목적
ㅇ (핵심요약) 김홍신 저 대발해 4권, 흑수말갈 정벌, 황위 계승을 둘러싼 황실 내 권력투쟁, 당과의 외교전 및 대조영의 붕어와 대무예 즉위 과정 분석
나. 시대적 및 공간적 배경
ㅇ (시대적배경) 710년대 후반 대조영 후계 경쟁이 치열해지고, 흑수말갈의 준동과 요동 정세 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719년 대조영 승하 이후 대무예(무왕) 체제가 형성·공고화되는 전환기
ㅇ (공간적배경) 동모산 황도, 북방의 흑수말갈 대치선, 요동 및 마자수 요충지 박작구, 반란군의 퇴각로인 천문령 일대
다. 핵심요지
ㅇ (복합위기) 외부 생존 투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황자 간 권력 경쟁과 반란이 겹치며 대외·대내 과제를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국면에 진입함
ㅇ (체제공고화) 당의 외교적 폄하를 물리치고 고토를 완전히 회복하며, 거센 내부 시련을 겪으면서도 2대 무황 체제의 기반을 공고히 함

2. 주요 내용 전개
가. 흑수말갈 정벌과 황자들의 경쟁
ㅇ (전공경쟁) 대무예는 기묘한 전술로 천금성을, 대문예는 영자성을 평정하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대권 경쟁의 기류를 형성함
ㅇ (조급함과유배) 대문예는 조급한 추격으로 위기를 자초한 데 이어, 사사란과의 부적절한 행실이 드러나 대조영이 이를 엄히 문제 삼아 결국 명산성에 유폐됨
나. 당의 정변과 고토 수복의 완성
ㅇ (당의격변) 대장군 이다조의 무측천 축출 후 이융기가 즉위하고, 고구려 후손 왕모중이 당의 실세로 부상하여 당에 숙위 중이던 대문예에게 역심의 씨앗을 심음
ㅇ (비사성수복) 당이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격하하자, 대조영은 이를 빌미로 비사성 반환을 요구하는 등 압박 외교를 전개하여 건국 17년 만에 옛 고구려 땅을 온전히 회복함
다. 대조영의 붕어와 2대 무황의 즉위
ㅇ (요동전선강화) 수나라와 당나라의 전통적인 침공로였던 통정진과 회원진을 점령하여 요동 방어선을 강화하고 적의 길목을 원천적으로 차단함
ㅇ (제왕의죽음) 대조영이 재위 22년 만에 붕어하고, 태자 대무예가 719년 황위에 올라 연호를 인안으로 선포함
라. 황실 내부의 암투와 충신의 희생
ㅇ (암살기도) 황궁에서 기예를 보이던 백제 유민 출신 기인들이 독침을 날려 대무예를 노리는 암살 기도가 발생함
ㅇ (충신의희생) 쏟아지는 독침을 온몸으로 막아낸 태사 신재용이 목숨을 잃고, 양소화(양만춘의 손녀)와 장문휴(장사무의 유복자)가 대무예를 보위함
마. 대문예의 반란
ㅇ (반란획책) 흑수를 치러 가던 대문예가 군령을 어기고 반기를 들며, 당에 원군을 요청하는 노골적인 모반을 일으킴
ㅇ (충신의결기) 태부 신승이 죽음을 무릅쓰고 대문예의 반란을 가로막으며, 백제 후손으로서 굳건한 기개를 보여줌
ㅇ (천문령퇴각) 조정의 즉각적인 토벌군 편성으로 반란 세력은 점차 밀려 과거 승리의 상징이었던 천문령 일대로 퇴각함

3. 권력 투쟁과 리더십 분석
가. 대조영의 제왕적 리더십과 유훈
ㅇ (자주성수호) 발해군왕이라는 당의 모욕에 타협하지 않고 전쟁을 불사하는 결단력으로 자주적 황제국의 위엄을 지킴
ㅇ (애민과검약) 상례를 검약하게 치르고 화장하라는 유훈을 통해 마지막까지 백성을 아끼는 애민 기조를 견지함
나. 대무예의 정치적 결단
ㅇ (정치적봉합) 암살 사건의 배후를 끝까지 추적할 경우 빚어질 대규모 숙청과 골육상잔의 위험을 막기 위해 대무예가 사태를 수습함

4. 역사적 함의 및 거시적 고찰
가. 창업에서 수성으로의 국가 체제 전환
ㅇ (위기의극복) 암살과 반란이라는 극단적 내부 위기를 겪으면서도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며, 건국 초기 불안정한 권력을 점차 안착시킴
나. 영토 회복을 통한 정통성의 확증
ㅇ (역사의계승) 비사성 수복을 통해 고구려 옛 강역 회복을 마무리함으로써 고구려 계승이 선언이 아닌 영토와 통치의 현실로 확인됨. 당의 발해군왕 격하에 맞서 비사성 반환을 관철하는 압박 외교를 전개하여 자주적 국가 위상을 확보하고, 발해의 정치적 정통성을 영토 회복의 성과로 재확인함
다. 권력욕의 폭주와 국가 리스크
ㅇ (자기파괴) 군공과 권력 욕망이 절제되지 못할 경우, 암살 기도와 내통, 반란으로 전환되어 국가 운영 역량을 소모시키고 내부 결속을 붕괴시킬 수 있음을 시사함

5. 종합 결론
가. 내부 시련의 극복과 융합
ㅇ (국가관완성) 대발해 4권은 대외 위기와 더불어 권력 승계와 암살, 반란이라는 내부 시련을 겪으며 발해가 왕권 체제를 다져가는 과정을 제시함
나. 새로운 시대의 서막
ㅇ (시대교체) 건국 황제 대조영의 붕어와 2대 무황 대무예의 즉위는 발해가 창업의 시대를 넘어 본격적인 통치와 계승의 시대로 진입했음을 상징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