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발해 도성에는 기이한 소문이나돌았다. 황제 대무예가 중병이 들어 태사 신승이 황제를 모시고 약수가 좋은 태백산으로떠났다는 소문이었다. 그리하여 황자 대의신이 황궁을 지키고 조정 대소사를 대내상 손재가 맡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임신(732)년 9월 초닷새, 발해군은 백암성과 비사성에서 동시에 군사를 일으켰다
발해 황제 대무예가 직접 이끄는 육로군은 백암성에서 진발하여 요하를 건너 영주들이치고, 수군대장군 장문휴가 이끄는 해로군은비사성과 박작구에서 출병하여 등주로 짓쳐들기로 했다
선봉장을 자청한 양소화의 지휘선에는 얼마 전 위준의 비장이었던공이거를 비롯 고장숙, 임명필, 두충호, 기세진, 주나견이 군선을 지휘했다.
본대를 이끄는 장문휴 대장군은 군사 고징우를 상석에 모시고, 크기는 작지만 가장빠른 군선에 올라 형형색색의 깃발을 흔들어군선의 속도를 조절했다.
봉상루는 여염사람들이 출입할 수 없는 기방이었다. 오래전부터 소문난 집이었지만 지난해에 발해 여인 전수랑이 맡으면서부터명성이 더욱 자자했다. 미색이 뛰어난 기녀들이 어찌나 요염한지 뭇 사족과 장수들이 줄을 섰다.
전수랑은 가끔 대소 관료와 장졸들에게연석을 베풀고 푼돈을 챙겨주어 후덕한 주인으로 평판이 높았다. 명절이나 생일이 되면고객에게 물선을 꼭 챙겨주었고, 먼 길을 간다면 노자도 아끼지 않았다. 그 덕에전수랑의 일이라면 등주에서 통하지 않거나 풀리지않는 게 없었다. 소문에는 이풍장이 뒷돈을 댄다고 하였다.
발해군의 기습이었다. 관문을 통과한 군선에서 쏟아져 나온 군사들은 불화살을 쏘아 지휘 장수 없는 수성군의 기선을 제압했다. 뒤따라 밀어닥친 군선에서도 군사와군마들이 마치 용이 불을 토하듯 쏟아져 나왔다.
적의 기세로 보아 전투가 시작되면 당나라 군사들은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을 게 뻔했다.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공격을 받아 얼이빠진데다 미처 병장기를 갖추지 못한 병사가 태반이었다. 사방에는 아직도 기세 좋게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그러나 당군은불을 끌만한 여유도 없었다.
한나절 만에 등주성을 평정한 장문휴는군마와 병장기를 챙기고 관고를 열어 발해군사들을 푸짐하게 호궤했다. 선봉에 서서적을놀라게 한 양소화에게는 귀덕장군이제수되었다.
"황상께서 영주를 치고 장성을 넘어 장안으로 진공할 것 같소?" "그렇지 않고서야 폐하께서 친정하실 리만무지요." "이번에 친정하는것은 언제든지 발해가당나라를 쳐 장안을 수중에 넣을 수 있다는걸 보여주려는 것이오."
123/29우리의 국력과 군사력은 아직 당나라를깨뜨리고 복속시키기에 부족하오. 그럼에도 우리가 정복전에 나선 것은 당나라를 놀라게 하여다시는 우리 지경을 넘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오. 또한 흑수의 무리가 기신을 못 하게 하고, 돌궐과 거란에도 경고해두려는 것이오. 수하 장졸들에게는 계속장안까지 진격하는 것으로 하시오
언젠가는 신라가 발해를 공격할 것이오. 그때 당나라가 신라와 연합하여 우리를공격하면 누란의 위기가 되지 않겠소? 우리가늦가을에 당나라를 침공한 것은 의도가 있었소. 다급한 나머지 신라에 원군을청할 텐데, 이미 겨울이 깊어질 것이오. 설사 신라가당나라의 요청을 받아들여도 남쪽 사람들은 북방의 모진 추위를 견딜 수없소
백제가 뱃길을 막아 당나라에 조공할길이 끊겼으니, 하루속히 백제를 쳐서 당나라에 조공할 길을 열어 달라는 김춘추의 간청은 천추만대에 비웃음을 살 것이오. 당나라의 음험한 뜻을 신라가 미처 깨닫지 못했으니 자손만대의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란말이오?
자고로 천리란 소소해서 응보가 분명하니 신라 또한 경천동지할 것이오. 발해가당나라를 침공했다는 소리에 신라의 군신들이 감히발해를 넘볼 생각이나 하겠소이까?
친정길에 오른 황제 대무예는 피를 나눈 아우 대문예를 생각했다. 외숙 임아와육촌지간인 대정곤과 대사달의 모습도 선명히떠올랐다. 스승 신재용은 그들이 반액지구의 상이니 유념하라고 이른 적이 있었다. 반액지구란 겨드랑이 밑에서 모반하는 적을가리키는 것으로, 기르던 짐승이은혜를 잊고 주인을 물어뜯는 형상이었다.그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실감나지 않았는데, 친정하는길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그들의 배반은 황제에게 견디기 어려운고통과 치욕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있었기에 당나라를 침공할 명분을 얻은 터라, 어찌 보면전화위복이었는지 모른다. 그들이당나라로 도망간 걸 빌미로 대무예는 중원을 공격할 명분을 쌓았다. 그런 참에 장자대도리행이급사하여 시신으로 돌아왔으니, 대무예는 비탄을 안으로 삼키며 하늘이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라 생각했었다.
천고만난 끝에 장성 계선까지 진출해도 한순간 역공을 당해 오히려 천리장성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반드시 이겨야 하는전쟁이었다. 대무예가 몸소 친정을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전군은 크게 다섯으로 나누어전, 후, 좌, 우, 중군으로 편성하여 대일하를 당토격군대총관으로 삼고, 양호를 부총관에 명했다. 전위주장에 고공두, 부장에문수겸, 후위 주장에 홍청국, 부장에 다극조를 임명했다. 박연표와 모경본이 좌군을맡고, 대도진과 진적채가우군을 거느렸다.중군은 대일하가 직접 이끌되, 황제 대무예는 따로 친위대를 거느리고 발해 군사를 통할했다.
황제를 호위하는 대장군 여시말과 흔적진, 알윤금, 연검토, 김시몽, 감신극은 발해의 칠성이라는 별호가 붙은 장수들로 고황제때부터 출중한 무술로 총애받던 무장들이었다. 황제를 보위하기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는 장수들이었다.
친위대 외에 별동대를 두었으니 황자 대흠무가 직접 이끄는 부대였다. 열여섯 살밖에 안 되었지만, 그 늠름한 자태와 헌걸찬기상은널리 알려져 있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도량이 넉넉하여 품평이 좋았다. 대도리행이 죽자 대무예는 둘째 황자 대의신보다 셋째인대흠무를 더 총애하였다. 이번당나라 정복전에 대흠무를 대동한 것도 마음속에 숨겨 놓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보라! 동명성왕께서 강에 이르러 말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치자 물고기와 자라들이 나타나 다리를 놓아주었듯, 어둠 속에서하늘이 번개로 갈 길을 밝혀주시지 않느냐? 강을 건너면 천하가 모두 너희들 것이다. 가자! 발해의 혼이여, 일어서라!힘을 내어전진하라."
한이 서린 영주성이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 20만 명이나 되는 고구려 유민들을압송하여 당나라 내지에 흩어놓을 때, 가장많은고구려인들을 묶어 두었던 곳이다. 고구려인들은 노비가 아니면 황무지를 개간하는 노역으로 기근을 넘겼고, 온갖 학대와수모를견뎠으며, 무수한 여인들이 노리개로 전락했다
일세의 영걸 대중상과 대조영, 분기탱천한 고구려 유민들이 봉기한 곳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영주는 중원 세력이고구려를 침공하는전진기지였다. 수나라때부터 수많은 침략으로 고구려인들을 무수히 죽인 악독한 전쟁의 발원지가 아니던가. 그 처절한 비명이아직도 어디선가들릴 듯했다.
대무예는 어렵지 않게 영주성을 점령하자 도주하는 적을 추격했다. 적의 도주로는평주 쪽일 수밖에 없었다. 평주로 도망치던당군은급히 달려온 원군과 함께 강과 산을끼고 진을 쳤다. 함부로 공격할 수 없을 만큼 군사의 수효가 많았으며, 그 중에는 병법에 능한장수와 책사들도 있었다
산등성이에 오른 대무예는 적진을 두루살피며 태사 신승의 선견지명을 다시 한번떠올렸다. 이번 정복전에는 장성 계선까지만공격하는 게 현명하다 했다. 더 서진하기에는 군사의 수효나 보급해야 할 양초,각종 병장기와 수레가 부족하다는 것이다.요하를건너면서부터 수차 적을 깨뜨렸건만, 어디서 불러 모았는지 적군의 수효는줄지 않았다.
당군은 고구려를 깨뜨릴 때도, 돌궐과 거란을 굴복시킬 때도 인해전술이었다. 장성을 넘어 장안으로 진격하면 당나라는 대군을동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나라 사직의 운명이 걸렸으니 사력을 다할 것이었다.
당나라 군사들은 여지없이 죽임을 당하거나, 항복하거나 강물로 뛰어 들었다. 처참한 패배였다. 천문령 대첩 이후 실로 34년 만에당나라 군사들을 무참히 쳐부순 쾌거였다. 당나라의 요충지를 거침없이 공격하여 성을 빼앗고, 무섭게 진격하는 통쾌함은 천문령전투와 비견되었다
나라 잃은지 30년 만에 영주에서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세웠도다. 그리고 다시 34년 만에 선조들을 능멸했던 땅 영주를 토평했노라. 이제 천기를 받아 조상들을 짓밟았던 당나라를 정복하겠다. 아직도 영주에고구려 후손들이 있으니 관고를 열어 널리베풀도록 하라. 원하는 자들은 발해 땅으로데려가되 넉넉히 농사지을 땅을 나누어 주어라.
장안에 머물고 있는 신라왕의 시자 김사란에게 명하여 신라가 군사를 일으켜 발해를 공격하게 하옵소서. 신라 군사가 발해의 남쪽을치면 대무예가 황망히 퇴각할 것이옵니다
이융기는 임자(712) 년에 신라왕 김융기의 이름이 제 이름과 같다 하여 흥광으로개명하게 했다. 이융기는 이를 떠올리며 신라왕에게국서를 보냈다.
신라왕 김흥광은 고심 끝에 이융기의 청을 받아들여 김윤중과 김윤문에게 군사를이끌고 발해의 남쪽 경계를 공격하게 했다. 대총관김윤중은 서둘러 군사를 일으켜북쪽으로 진병했다. 벌써 옷을 뚫고 품속으로 파고드는 한파가 만만치 않았다.
양지쪽에 진을 치고 하룻밤을 자고나면얼어 죽은 군사가 여기저기서 버려졌다. 단단히 껴입고 충분히 불을 지폈지만, 어찌수많은군사들을 모두 살필 수 있으랴. 아무리 더운 밥을 먹이고 싶어도 밥은 솥에서푸자마자 잠깐 사이에 살얼음이 앉았다. 햇볕을쪼이면서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군사들에게 김윤중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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