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만고역적 난일이 대문예를 쫓아당나라로 망명하자 그의 아우 난이와 난삼은 죽음을 각오했다. 그러나 대무예는 난이와 난삼의충절을 알고 오히려 품계를 높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대무예는 친정하면서신라의 공격을 걱정하여 난이와 난삼을 방어군 통수로명했다.난이를 태령남위 대장군으로 삼고, 난삼에게는 보령남위 대장군을 제수하여 남쪽지경을 맡겼다.

머지않아 남쪽에서 당나라의 사주를 받은 신라군이 쳐들어올 것이다. 결코 창검궁시로 싸우려 하지 말고 꾀로써 싸우되, 하늘과 땅의기운을 이용해라. 산하가 얼어붙고, 교통할 수 없을 만큼 눈이 쌓일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설마와 설피를 마련하고, 양식과 땔감도넉넉히 마련하여, 얼어 죽거나 동상 걸리는 군사가 없게 하라

따뜻한 남쪽에 살던 사람은 북풍한설과강추위를 견디지 못한다. 천기가 우리 편이거늘 어찌 백만 대군을 두려워하겠는가. 우리가도망가는 척 적을 깊은 산으로 끌고가면, 창검을 쓰지 않고 눈보라와 모진 바람만으로 적을 섬멸할 수 있다."대장군의 훈유는 금세장수들의 머리를 조아리게 했다.

우리가 적의 교병계에 말려든 것이 아니냐? "김윤중은 아우 김윤문에게 물었다. 교병계란 적을 교만하게 만드는 계책을 말한다

김윤문은 목청을 높였지만 낯빛은 밝지않았다. 그 또한 천하를 호령하는 장수였으니 어찌 천문을 모르겠는가. 일관 최관문도그믐무렵에 위성, 실성, 벽성 앞에 많은 별이 벽을 쌓고, 그 속에 붉은 기운이 있으니만사를 근심해야 한다고 일렀다. "태백성의 장군성을떠밀어 물러나게 한것도 흉조입니다. 이는 눈과 바람과 함께뒹구는 형상이어서 조심해야 합니다."

신라 군사들은 얼어죽은 전우의 옷을 벗겨 입고, 죽은 군마의 고기를 저몄으며, 털 그슬린 억센 말가죽까지 씹어 삼켰다. 살아남기위한 몸부림은 처절했다

몇날 며칠을 무작정 남쪽으로 내려와 진을 쳤는데, 돌연 발해군이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예상 못한 공격이었다. 군영은 힘없이무너지고, 군사들은 오금도 못 펴고도망갔다. 천지를 호령하던 신라 제일 명장이요, 사해에 이름 떨친 김유신 손자인 김윤중과김윤문은 목숨을 건지려고 경황없이 도주했다.

정신을 차려 남은 군사를 점고한 김윤중은 절망에 찬 소리로 울부짖었다. "아! 하늘도 무심하고 땅도 저주했구나!

이제 발해는 북방의 강자가 아니라 드넓은 당나라와 당당히 맞서는 대국이 되었습니다." 동상에 걸려 한 쪽 다리를 절룩거리는장수취생복이 김윤중 에게 자탄의 소리를 했다.

왕모중은 대문예가 마지막으로 조국에게 진 빚을 갚는 방법도 일러주었었다.당나라 군사를 이끌고 나가되 발해군과은밀히 내통하여참패당한 후 장렬하게 전사하라고 했다. 그때는 설마 발해가 강성대국인 당나라를 공격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대문예는 심사가 편치않았다. 마음도 뒤숭숭하고 동족 앞에 창궁검시를 내밀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전하, 예부터 이기면 제왕이요, 지면 역적이라고 했나이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이기면 제왕이요, 져도 역적이 되지 않나이다.
발해군을 무찌르고 승세를 몰아 아예 도성까지 깨뜨려야 하옵니다. 그런 연후에 무도한 황제를 문죄하여 황위에 오르셔야 하옵니다. 이미 병들어 죽은 임아의 자식이요, 천하역신이 된 임청은 이번 전쟁을 통해 재기를꿈꾸고 있었다

결코 발해군을 이길 수 없나이다. 대세가 기울었나이다. 평로선봉 오승자는 황명을 받아 마도산(산해관 부근) 일대에 급히돌을 쌓고있사옵니다. 그 길이가 얼마나되는지 아시옵니까?

무려 남북으로 4백 리를 돌방책을 쌓는것은 방어만 하겠다는 뜻이옵니다. 당나라는 결코 발해의 내지를 침범하지 못하옵니다.
하물며 어찌 천통성까지 달려가겠사옵니까?

전하, 낚시꾼은 고기를 낚기 위해 미끼를 꿰옵니다. 전하는 미끼일 뿐이옵니다.

처음에 당제의 명을 받아 군사를 거느리고 출병할 때만 해도 대문예는 잔뜩 꿈에 부풀었다. 발해군을 무찌르고 추격하여 발해 도성을함락한 뒤에 황위에 오를 생각이었다. 그러나 평로선봉 오승자가 마도산 일대에 장벽을 쌓고, 흑수와 실위의 군사들을충원하여방어전을 서두르고 있다는 걸 안순간, 그 꿈이 무참히 깨졌다. 물론 북방에거란이 준동하고 돌궐도 기회만 엿보고 있지만, 당나라는끝까지 발해 땅을 짓밟고징치할 뜻은 없는 듯했다

쓰러진 적장의 투구가 저만치 나뒹굴었다. 적장의 얼굴을 확인한 덕숭은 비명을지를 뻔했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바로 몇년 전까지만해도 발해의 삼사삼공의 반열에 올라 있던 사도 난일이었다. 그의 앞가슴에 비단으로 싼 서찰이 비죽이 나와 있었다.

서찰을 받아 읽은 대일하는 난일의 시신을 후방으로 보내 정중히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게 했다. 난일은 당나라 군사들의수효와배치는 물론, 장수들의 관등과 특징, 병장기의 성능과 치중대의 군물, 유주의원군과 마도산 일대에 진을 친 군사들을 무찌를 계책을세세하게 적어 보냈다.

또 한 통은 황제에게 보내는 사죄문이었다. 눈물겨운 것은, 반역의 무리임에도가솔을 징벌하지 않고 오히려 사급을 내려, 죽을 때까지편히 살게 해 준 은덕에 대한보답으로 목숨을 바친다는 글이었다.

"역적 대문예를 잡아라!"군사들 또한 목청껏 소리 높였다. 발해군사들은 대문예가 당나라 군사를 이끌고발해군과 대적하는 것에분노했다. 분노처럼 훌륭한 무기가 또 어디 있겠는가.

"천만 군사가 모두 천자의 것임을 어찌모르시오? 천자의 어의를 어지럽혔으니 어찌 문죄하지 않을 수 있겠소이까. 근신하시오."
대문예는 가슴을 쳐야 했다. 분한 생각같아서는 오승자와 공주필을 단칼에 베고군사를 이끌고 나가 싸우고 싶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역적 대문예가 당나라로 망명하자 장군으로 제수하고 징치하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잘못이요, 무진년에는장안에 유학중인 황자께서 병사했으나 진상을 세세히 알리지 아니했음이 두 번째 잘못이옵니다. 흑수의 무리가 당나라에서 말을 팔아무기를 사게 한 것이 세 번째잘못이며, 흑수 도독부를 설치하고 발해의배후를 압박했으니, 이 또한 네 번째 잘못이옵니다."

사신을 돌려보낸 대무예는 즉시 회군할것을 명하니, 때는 계유(733)년 정월 그믐이 다 되었고, 몸소 친정하여 군사를 이끈지 어언다섯 달이나 되었다. 이 다섯 달은황제에게 무려 50년이나 된 듯했다. 국운을 건 승부수였다.

대무예는 당나라를 굴복시키기 위해 수륙양면으로 공격했다. 수군이 먼저 등주를함락한 뒤 서북쪽으로 진격하고, 뒤이어 친정군이서쪽을 차례로 함락하자, 당나라는양로군의 목표가 낙양과 장안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발해의 셈속이 잘 맞아떨어졌다.

이번 전쟁을 통해 발해는 고구려의 전성기에 견줄 만한 군사 강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당나라의 간담을 서늘케 한 것은당나라 조정에서 징발한 군사의 규모가말해주었다.

"전장이 수습되기도 전에 북방에서 돌궐이 준동하고 내지에서 거란이 공격하면, 당나라는 우리를 겨눌 여유가 없사옵니다.
개국황제께옵서, 천문령 대첩을 이루시고 동모산에서 개기창업을 하실 때도, 돌궐과 거란이 요서에 준동하여 울타리가되었사옵니다."

"믿음직스러운가?" "마진풍은 민첩하고 의기가 있어서 중임을 맡기기 적절하며, 임자기는 풍류가무에뛰어나고 칼부림에 능하며,
진채무는 재주가 많고 임기응변이 뛰어나며 지세에 밝습니다.

세상에 살아 있는 것 가운데 존귀하지않은 것이 어디 있소이까? 이곳에는 예부터 독사가 많아 아까운 생령들이 많이 죽었소. 이사람은 살 길을 찾았소.

이것은 독기를 빨아내는 흡독석으로 크기가 비록 대추만 하고 보잘것없어 보여도독을 빨아내는 데에는 신효하오

촌장은 신석정 손에 흡독석 두 개를 쥐여주며 훗날 요긴하게 쓸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행이 발해 사람들이라는 것을알면서도기꺼이 보살펴주는 당나라 촌장과 마을 사람들의 정성에 대흠무는 많은 생각을 했다. 원한 맺힌 나라일지언정 여염백성들끼리는 무슨원한이 쌓였겠는가.

우리는 부모 죽인 원수라도 독사에 물렸으면 일단 살리는 게 사람의 도리라고 배웠소. 옥 귀한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으리오만,
귀하기로서니 어찌 사람 목숨과 바꾸겠소. 보석이 없어서 당장 죽는 자가 있거든 그 사람에게나 주시오

"눈빛으로 정을 통해 이미 내 것인데 급할 게 무엇이겠는고." "데려가겠다는 뜻이옵니까?" "저만한 미인을 얻기도 어렵겠지만흑수변방의 수령 하나 얻는 것은 수만 군사를얻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전하, 천하가 엎드리겠사옵니다.""흑수 수령 아사리를밀정으로 삼고, 옥소지를 훌륭한 세작으로 삼겠다."

"전하, 천하를 다스리려면 통곡할 줄도, 눈물 흘릴 줄도 아셔야 하옵니다. 백성이굶주리면 같이 통곡하고, 백성이 아프면 같이 눈물흘릴 수 있는 군주가 정녕 군주이옵니다."신석정이 애써 눈물을 감추려는 대흠무를 이렇게 위로했다.

여인은 숨 가쁜 소리로 응대했다. 사내의손길은 꽃잎을 한 잎씩 따내어 입에 물듯했고, 여인의 손길은 단단한 박달나무로 제몸을아프게 때리듯 했다. 삼라만상의 변화가 음양의 조화에서 비롯된다고 했으니, 양은 음을 얻음으로써 화육을 이루고 음은 양을얻음으로써 비로소 생성하며, 이렇게 화합하고 상통하면 천하를 얻은 듯 기쁨을 누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듯여인은 몸을 떨며 비명을 질렀다. 가쁜 숨소리도 메아리처럼 흩어졌다

이에 대무예는 기꺼이 대흠무를 태자로 책립했으니 때는 을해(735)년 여름이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려면 온돌방만 한게 없사옵니다. 지화룡(방고래)을 팔 때부터 아래 윗목이 고루 따듯하게 구들을앉혀야 하옵니다."

대흠무는 손재간 좋은 장수 양상소에게는 활과 쇠뇌와 화살을 만들게 하고, 그의동생 양경소에게는 창과 방패, 북과 징 같은 전구를만들게 했다. 양경소는 철기와유기로 농구나 가구를 만드는 대장간 책임도 맡았다.

약재를 팔거나 진맥하고 침놓는 의자가상주하는 약전과, 선비들의 책상을 만들어파는 곳을 궁 가까이 둔 것은 뜻이 깊었다.

사족과 벼슬아치들이 아픈 백성들을 눈여겨 보게 조처한 것이다. 난이가 의술을 관장하고 말의 병을 다스리는 마의는난삼이관장하기로 했다.

"매일 누워 자는 궁궐 지붕에 저리 무서운 걸 두고 어찌 잠이 오겠는고?"대흠무는 지붕의 마루 끝에 얹는 망와를가리키며 물었다. "그옛날 중원의 황제와 싸웠던 우리 민족의 거한이었던 치우의 얼굴인데, 상 귀신처럼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으며, 천하 용맹하기에악독한 귀신도 범접하지 못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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