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라는 질문이 죽은 사회는 토론 문화가 죽은 사회, 논리의 추구, 합리성의 추구가 죽은 사회다. 키케로라는 로마의 공화주의자이자 정치가가 2,000년 전에 반어법으로 사용한 "논리로 안 되면 인신을 공격하라!"가 오늘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는 이유다.

인문사회과학은 인간에 대한 물음, 사회에 대한 물음의 학문으로 정답이 없고 사유와 논리가 중요하다는 말을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해왔다. 사회, 역사, 지리, 경제, 정치, 윤리, 철학, 언어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신민을 길러내던 학교가 시민을 길러내는 학교로 탈바꿈하는 대신 고객을 상대하는 학원이 되었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적지 않은 학생들이 교실에서 거리낌 없이 잠잘 수 있게 된 배경이다.

신민이 타율성으로 복종하는 존재라면, 시민은 자율성을 가진 주체적인 존재다. 자율성을 형성하지 못한 채 고객이 되었으니 ‘제멋대로’ 하는 것이다.

올바른 교육이라면 ① 그 교과목을 학습해야 하는목표 ②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학습 과정 ③ 그 과정을 통해 목적에 얼마나 다가갔는지에 대한 평가의 세부분에서 통일성을 이루어야 한다.

학이불사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게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우리가 안고 있는 모순은 계급 모순, 분단 모순, 지역 모순, 젠더, 생태 문제등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복합적이다. 모순이 워낙 첨예한 탓도 있겠지만, 활동양태나 주장들도 온유하지 못하고 거칠다. 각자가 자기만의 래디컬을 주장하게 되면 결국 모두 극단주의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 우리 모두에게 겸손함이 필요하다. 의지로 회의하는 자아가 되어 나부터 변화하고 성숙하자. 나도수시로 설득된다는 조건 아래 내 가족과 이웃과 동료를 설득해야 한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에서 벗어나도록! 일거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묘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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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사람>은 로댕이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지옥문>의 한 부분이었다. 문에는 지옥으로 들어가는 인간 군상의 고통과 죽음의 상들이 펼쳐져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중세와 결별하고 근대를 알리는 변곡점이었다.

중세의 인간관은 성서에 나와 있듯이 "하느님에 의해 하느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다"는 창조론에 입각해 있었는데, 그것이 무너지자 의문을 품었던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존재로 근대의 인간관을 말했다.

유럽의 아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첫째가 ‘엄마’, 둘째가 ‘왜?’였다. 아이가 엄마에게 ‘왜?’를 묻는 것은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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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폭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대신 폭력의 주체가 되고, 구성원들 사이에 "당신은 몸을 소유한다"의 명제가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지 못한 사회에서 힘은 폭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최소한의 상식’이라는 법에 호소하지만, 이 땅에서 법은 오랫동안 표트르 크로폿킨의 말처럼 ‘힘센 자의 권리’에 가까웠다.

고객 신분일 때는 이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판매원의 친절이나 환대는 자발성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밥벌이가 강요한 것이므로 그 친절과 환대는 다른 자리에서 폭력의 양상으로 전화될 수 있다.

"억압된 것은 되돌아온다"고 했다. 폭력은 즉각적이든 지연되든 연쇄반응처럼 폭력을 낳는다.

하베아스 코르푸스(habeas corpus). 라틴어로 "당신은 몸을 소유한다"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은 인권의 역사상 획기적인 인신보호령(1679년, 영국)으로 자리 잡혔다.

폭력은 "남이 당신에게 행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당신 또한 남에게 행하지 말라" "남이 당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당신도 남에게 해주어라"라는 황금률을 어긴 행위다. 이 황금률을 지켜야 한다.

얻는 게 아무것도 없으면 머릿속이 차라리 비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생각한다(=나는 회의한다)"가 없는 채 지배 세력이 선별한 생각(=고집)을 정답으로 주입받았기 때문에,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갖고 있음에도 회의할 줄 모르고 그것을 막무가내로 고집하는, 완성된 존재처럼 살아가는 것, 이것이 한국의 대다수 피지배 대중이 보여주고 있는 서글픈 자화상이다.

남을 설득하려고 해본 사람은 안다. 설득되지 않는다는 점을. 완성 단계에 이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설득하기는 어렵고 선동하기가 쉬운 사회다.

설득이 남의 기존 생각을 수정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선동은 남이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강화, 증폭시키는 일이다.

어빙 재니스 교수에 따르면 집단사고는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고 하는 사고의 경향"을 말한다.

집단사고는 낙관론으로 집단의 눈을 멀게 하는 현상으로서 외부를 향해서는 비합리적인 행동을 취하게 이끈다고 한다.

사회운동의 세 가지 축으로 "조직하라, 학습하라, 설득하라(선전, 홍보하라)"를 꼽는데, 조합원이든 단체 회원이든 회의하는 자아가 아니므로 학습도 하지 않고 설득도 하지 않으니 남은 것은 ‘조직’뿐이다. 그리하여 노동조합이든 진보정치운동 조직체든 알량한 내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조직원을 동원하는 것이 운동의 주된 내용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한국의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운동이 성숙하거나 고양되지 못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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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 호러 × 제주 로컬은 재미있다
빗물 외 지음 / 빚은책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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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째 이야기 <곶>

이야기 자체는 나름 재밌다. 자연주의

제주~서귀포간 516도로공사에 얽힌 이야기
516도로는 제주 최초의 국도다.
11번국도, 제주도가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1131번 지방도로 강등.
1960년대 건설부 (이리)호남국토건설국 또는 이리, 부산, 영남국토 건설국으로 소속을 달리한 제주축항 사무소 에서 공사, 이후 제주축항사무소가(확실지않다) 제주지방국토관리청으로 승격해서 유지관리하다 2006년 제주도로 이관.

작가는 배경지식이 부족하다.
소설이라고 우기면 어쩔수 없다.
인터넷 검색이라도 해보시오

한국도로공사는 고속국도 건설 유지관리,
지방국토관리청은 일반국도 건설 유지관리

제주도엔 고속국도(유료도로)가 있었던 적이 없다. 그런데 웬 한국도로공사에서 제주~서귀포간 도로공사를 하는가?
한국도로공사는 1969년 설립되었다.
그런데, 이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69년 8월이다. 9년전부터 한국도로공사에서 제주~서귀포간 도로공사를 하고있단다.
그리고, 현장소장이 한국도로공사 배지를 차고있다? 감독이라면 모를까.

제주지방국토관리청은 1961년 10월 이리지방국토건설국 소속으로 설치된 제주축항사무소로 시작하였다. 제주축항사무소는 1962년 1월 부산지방국토건설국 제주축항사무소, 1962년 2월 영남지방국토건설국 제주축항사무소를 거쳐 1963년 9월 건설부 영남국토건설국 소속 제주축항사무소로 변경되었다. 이후 제주축항사무소는 1973년 12월 제주개발특별건설국으로 변경되었다가 1974년 6월 [지방건설관서직제]에 의해 제주특별건설국으로 기관명칭을 변경하였다. 제주특별건설국은 1975년 6월 제주지방국토관리청으로 승격되었다가 1979년 6월 [지방건설관서직제]에 의해 제주개발건설사무소로 변경되었다. 제주개발건설사무소는 1994년 12월 건설부 소속에서 건설교통부 소속으로 변경되었다가 2001년 7월 14일 [건설교통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에 의해 제주지방국토관리청으로 승격되었다. 제주지방국토관리청은 2006년 6월 폐지되었다. 주요업무는 제주개발사업의 조사·측량·설계 및 시행, 제주도안 국도의 유지 및 관리, 건설공사 품질관리 및 각종 공사 및 용역 관리 등에 관하 사무를 관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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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햄 매슬로라는 심리학자에 따르면 인간은 다섯 단계의 욕망을 가진다. 식욕과 성욕 등 생리적 욕망(1단계), 안전에 대한 욕망(2단계), 소속감과 애정 욕망(3단계), 권력과 명예 욕망(4단계), 마지막으로 자아실현의 욕망(5단계)으로 단계화되어 있고, 낮은 단계의 욕망이 충족되어야 높은 단계의 욕망을 추구한다고 한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고 서로 다른 만큼 다양한 결을 가진다.

인문학의 중요성은 다른 무엇보다 이 자유에의 의지를 되찾고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데 있다.

소박한 자유인은 거창하지 않은, 소박한 자아실현으로 만족할 줄 알며 특히 생존 조건을 소박한 수준에서 멈출 줄 아는 사람이다. 물질적 소유에서는 물론, 이웃과 연대하려는 열정에서 비롯된 자아실현에서조차 그것이 지나친 욕망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절제할 줄 아는 소박한 자유인, 이것이 고결함의 한 모습일 것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일생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자유여.

근대 공화국의 보편적 개념 규정이 "자유로운 시민들이(주체), 공동선을 목표로 하는 공동체로서(목표), 법의 권위가 지배하는(수단) 국가"

각 개인들의 자유로운 주체화와 사회 민주화는 줄탁동기(啐啄同機)의 줄탁의 관계라 할 수 있다. 병아리가 알 밖으로 나오기 위해 부리로 껍데기 안쪽을 쪼는 것이 ‘줄’이고, 어미 닭이 바깥에서 알을 쪼아 새끼의 부화를 도와주는 것이 ‘탁’이라고 할 때, 개인의 자유를 세우는 것은 줄, 사회 민주화는 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병아리가 껍데기 안쪽을 쪼는 줄이 어미 닭의 탁에 우선한다는 점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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