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어.

지금 당장 날 보러 오지 않으면 헤어질 거야.

차 안에 나나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평상시와 다른 소리로 울고 있었다. 왜 그럴까 싶어 조수석을 쳐다보며 이동 장에 왼손을 뻗은 순간, 엄청난 충격이 일어 앞 유리를 봤다.

"유전인데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그런고로 나는 이만 자러 갈게."
가즈키는 그렇게 말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거실을 나갔다.
그런고로는 무슨, 저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

"네, 그렇습니다. 갑자기 이런 전화를 드리면 의심스러울 수도 있지요. 일단 제가 이 전화를 끊을테니, 아게오서 대표번호로 전화를 주십시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금방 나옵니다. 그다음에 교통과 사와다를 찾으시면 됩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니가 틀림없습니다. 이제……… 천을 덮어주십시오.

"그만둬."
마사키의 말에 구미가 놀란 듯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무심코 거친 말투가 튀어나왔다.
"보지 않는 게 좋아."

"봉지 얼음 두 봉을 사셨습니다."

"차가 없던데, 어떻게 된 일이니?"
그 후 차로 오케가와역까지 가서 유료 주차장에 세운 뒤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아아......."

자신이 들이받은 것은 사람이 아니다. 만약 사람이었다면 이 시간까지 발견되지 않을 리가 없다.
뉴스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뉴스에 보도되지 않았으면 이 불안한 마음에서 당장 벗어날수 있다.

P화면에 갑자기 아버지 얼굴이 나타나 질겁하여 리모컨을 떨어뜨렸다.
교육평론가인 아버지가 해설을 맡은 시사 정보 프로그램이었다.

이어서 바뀐 화면을 보고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도롯가에 정차한 순찰차 영상과 함께 ‘차에 200미터끌려가, 여성 사망‘이라는 자막이 나왔다.

이대로 자수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이대로 양심의 가책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항상 TV에서 엄격한 발언을 하는 아버지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탄받을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앞둔 누나는 파혼을 당할지도 모른다.

전화를 끊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얼른 손잡이를 붙잡았다.
경찰이 어떻게 그 차에 도달한 걸까. 헤드라이트도 사이드미러도 깨지지 않은 덕에 현장에는 그차를 특정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터였다.

전후에 태어난 신지로는 그전까지는 전쟁은 과거의 일이라고만 인식했다. 그런데 노리와의 이야기를 듣고 전쟁이 없는 생활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어 다툼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노리와와 마찬가지로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결론에 도달해 자신이 맡은 교사라는 직업에 열정을 기울이게 되었다.

얼굴을 마주하기만 해도 기분이 우울해질 텐데 사무실에서 단둘이 있어야 하다니.

"뺑소니 사건을 일으켜서 체포되었어. 어젯밤부터 뉴스에 나오던데."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사야마 씨도 그런 농담을 하네요."
"농담 아니야!"

"그날 밤에 구보도 껴서 마가키랑 술을 마셨는데, 녀석은 꽤 취한 상태였어…………. 도대체 운전은 왜한 거야. 바보 같은 녀석…………."

"당신에게는 접견 등 금지 결정이 내려져 있습니다."

"경찰한테 말했는데요■■■■….‘
"기소될 때까지는 당신이 경찰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저희가 알 길이 없거든요."
그렇구나, 하고 두 사람의 이름과 선술집 이름을 댔다.

"집행유예・・・・・・."
"교도소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다만 경찰과 검찰은 당신이 사람을 친 것을 인식하고 그대로 도주했다고 주장하기 위해 증거를 확보할 겁니다. 법원이 그것을 어떻게 판단할지에 달렸지요."

"혐의를 부인하는 피고인에게 보석이 인정된 케이스는 매우 드물거든요."
사람을 쳤다는 인식이 없다고 말하는 한 보석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걸까.

이런 짐승은 무조건 사형이지.

음주 운전으로 사람을 친 데다 200미터나 끌고 가서 죽이고 도망가다니 말도 안 된다.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구역질이 난다.
공부는 잘했을지 몰라도 인간성은 유치원생 수준. 아니, 그렇게 말하면 유치원생한테 실례인가.

인터넷의 글은 쇼타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까지 겨냥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누나의 이름과 직장명..
이 노출되고 쇼타와 함께 살고 있던 가족에 대한 온갖 욕설이 난무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은 무시무시했다.

"너만 그런 게 아니야. 여기는 망령이 자주 나오거든. 숨기는 것이 있으면 취조받을 때 순순히 털어놓는 게 좋을 거다."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모르는 것이나 고민거리가 있으면 아버지는 늘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주었다. 그런 아버지를 신뢰하고 존경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아버지의 해답이 필요한 순간이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고 싶었다.

그렇다.
그랬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가 사람을 치었다는 것을………….

‘저희 가족은 어머니가 피고인에게 살해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등 뒤로 증오의 시선을 느끼며 쇼타는 서둘러 법정을 나갔다.

"해야 할 일이 있다."

아니, 살아야 한다.

판결의 다음 날부터 14일 이내에 항소하지 않은 쇼타는 징역 4년 10개월의 형이 확정되었다.

항소하면 변호사 비용이 더 들 테니 더 이상 부모님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다.
그리고 항소한다 한들 구치소 감방에 갇혀 지내는 생활에는 변함이 없을 테고, 승산이 희박하다는것은 교도소에 갈 날이 미뤄지기만 할 뿐이라는 뜻이리라.

‘신입자 대기실‘ 팻말이 걸린 방에 들어갔다.

"들어가."
안으로 들어가니 다다미 세 장 크기의 방이었다. 좁지만 화장실과 세면대가 달려 있다.

"신입 교육을 일주일쯤 받은 뒤에 잡거감방‘으로 옮길 거다."
교도관이 그렇게 말하고 문을 닫았다. 자물쇠를 채우는 메마른 소리가 귀에 울렸다.

"다시는 오지 마라."

교도소에 들어오기 전과, 들어와서 한동안은 하루라도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사회로 나가는 것이 현실이 되자 지레 겁이 나서 일부러 징벌을 받을 만한 일을 벌인 것이다.

체크인을 할 때 어머니는 결혼 전의 구성을 댔다. 쇼타는 걱정하는 마음으로 어머니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저희 가족은 어머니가 피고인에게 살해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도저히 피해자 유족을 만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감방 동료 중에는 교도관의 눈을 피해 자위행위를 하는 자도 있었지만 쇼타는 그런 욕구에 휩싸인적이 없다. 교도소에서 지내는 동안 한 번도 사정하지 않았고, 지금 이 수영복 화보를 봐도 아무 감흥이 없는 자신을 보며 동물로서 필요한 기능이 그 사건으로 인해 결여된 것이 아닌가 하고 약간 불안해졌다.

편의점 점원의 담백한 인사가 아닌, 인력사무소 직원의 업무 지시가 아닌, 수상쩍은 중년 남자불평과 잔소리가 아닌,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이 못 견디게 외로운 마음을 누군가 채워주었으좋겠다.

누군가와 어울리고 싶다……………

과거의 친구를 잃었다 해도, 원하면 누군가와 어울릴 수 있다. 마에조노나 이 순간 자신을 다정하게 치유해주는 여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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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원구, 원뿔, 원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 폴 세잔 - P307

성 삼위일체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그림 중 하나로 손꼽을 만합니다. 왜냐하면 이 그림을 원근법이 적용된 최초의 본격적인 그림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마사초의 이 그림 덕분에 미술에서 원근법이 실현가능한 기법이 되었죠. - P308

맞아요. 그러고 보니 비슷한 시기에 조선에서도 피렌체만큼 중요한일이 일어났습니다. 1446년에 우리 고유의 문자, 훈민정음이 반포되었으니까요. 15세기는 지역을 불문하고 중요한 문화 발전이 일어났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일단 그림을 마저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할까요? - P310

그런데 더 아래쪽, 제대 아래 무덤을 보세요. 해골이 누워 있습니다. 그 바로 위에 "나도 한때 당신이었다"라고 적혀 있는데, 이 그림을 보고 있는 당신도 언젠가 나처럼 죽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거죠. - P311

해골 근처에 그런 말이 적혀 있어서인지 좀 으스스한데요. - P311

죽음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죽음을 준비하라는 당시 종교의 가르침을 담은 겁니다. 일종의 종교적 경구인 셈이지요. - P311

원근법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정말 대단했군요.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원근법은 우리 눈이 입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착시를 만들어내는 기법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소실점을기준으로 공간을 재구성하는 기법이지요. - P311

시선이 모이는 점: 소실점 
여기서 소실점은 시선이 모이는 점을 말합니다. 예를들어성삼위일체 속에 있는 건축물의 모서리를 전부 연결해보세요. 십자가 바로 아래에서 한 점으로 모이는데, 여기가 바로 소실점이에요. 그리고 이 소실점이 보는 이의 눈 위치입니다. - P312

마사초라는 이름은 ‘어리숙한 토마스‘라는 의미입니다. 아마 마사초는 이름 그대로 온화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을 겁니다. 성삼위일체를 그렸을 때 마사초는 겨우 20대 중반에 불과했습니다. 앞날이 창창한 천재적인 젊은이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1428년에 닥친 흑사병으로 이른 죽음을 맞았습니다. - P313

원근법이 이론화되다 
원근법 발명의 역사를 따라가다보면 브루넬레스키와 마사초 말고도 ‘나도 원근법 발명에 참여했어‘라고 주장할 만한 사람을 한 명더 만나게 됩니다. 이 사람 덕분에 원근법이 회화의 기법으로 확실히 자리 잡게 되지요. 바로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입니다. - P317

알베르티는 보통 특출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다양한 방면에서 천재성을 드러냈기 때문에 ‘르네상스맨‘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지요. 르네상스맨이란 다재다능한 천재를 가리키는 말로 요즘도 여러 방면으로재주가 많은 사람을 그렇게 부르곤 합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르네상스 맨이라고 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먼저 떠올릴 거예요. 하지만 시작은 알베르티였다고 봐야 합니다. - P318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원근법 발명 초기에 화가들이 보여준 열광에 관한 일화는 정말 끝도 없습니다. 파올로 우첼로라는 화가는 몇 날 며칠 밤을 새서 원근법 작도만 내내 했다고 합니다. 부인이 이제 그만 자라고 채근하자 "아 너무도 아름답다, 원근법이여!" 하고 외쳤다고 하죠. - P327

잘 보셨네요. 왼쪽 천사를 그린조수가 누군지 눈치채셨지요?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이 그림을 그릴 때 대략 21세 정도였을 겁니다. 다만 베로키오가 붓을 꺾었다는 바사리의 글은 레오나르도의 천재성을 강조하기 위한 과장입니다. 베로키오는 이후에도 그림을 계속 그렸어요. 뿐만 아니라 레오나르도는 많은 것을 스승한테서 배웠던 것 같습니다.
베로키오, 예수 세례도(부분), 1476년경, 우피치 미술관 베로키오의 조수가 왼쪽 천사를 그렸다. - P335

모든 천재들도 학생이었다  - P336

세계의 중심으로서의 인간 
르네상스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했던 시대였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아래 드로잉은 이런 시대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어요.
이렇게 신체를 원과 정사각형 안에 배치시키는 방식을 ‘비트루비우스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최초로 제시했기 때문이에요. - P341

화가들도 이런 그림을 그렸습니다. 다만 다른 화가들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인간은 세계의 중심이며 만물의 척도‘라는 개념을훨씬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요. - P342

원근법은 정말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기법이네요.
알베르티는 "그림은 세계로 열린 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르네상스 이전에도 그림은 여전히 세계로 열린 창이긴 했습니다.
다만 르네상스 이전의 창에는 유리에 먼지가 많이 끼어 있어 불투명했습니다.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나서야 먼지가 닦여 맑은 창이되었지요. - P344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정부 
그림 속에 이런 모습을 담은 건 이들이 거리에 실제로 있어서이기도 했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어요. 브루니는 피렌체 찬가』에피렌체 사람 중 부자는 자신의 부에 의해 보호를 받지만가난한 사람들은 정부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고 썼습니다. 부자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지만 사회적 약자들은 그런 힘이 없기 때문에정부가 그 약자들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의미죠. 브루니는 이런 정부의 보호 시스템 덕분에 피렌체가 강한 국가가 되었다고 자랑합니다. - P348

얼마나 오래 머리를 자르지 않았는지 긴 머리가 온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허리띠도 자세히 보면 머리카락으로 두르고 있어요. 얼굴을 보면 야윌 대로 야위었고 치아도 몇 개 빠져 있습니다. 여기서막달레나 마리아는 두 손을 조심스럽게 모아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참하고 거친 모습까지도 솔직하게잡아내려 했던 미술이 바로 15세기 피렌체의 미술이었습니다. - P352

성인과 거지의 구별이 사라지는 거죠. 실제로 성인과 거지라는 상반된 두 이미지가 모두 이 조각 속에 녹아 들어가 있다고볼 수 있습니다. - P354

1425년 피렌체는 대성당 위에 돔이 올라가고 있는 광경과 평면 위에 입체감을구현한 원근법이 적용된 그림의 등장과 마주하고 있었다. 원근법의 등장은 앞으로작가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해버렸을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까지도바꾸어놓았다. - P355

원근법 소실점을 기준으로 공간을 구성해 눈이 입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기법.
브루넬레스키가 발명하고 마사초가 최초로 본격적으로 그림에 적용해 성 삼위일체를그림. 알베르티가 회화론을 통해 이론화.
-참고 소실점: 시선이 모이게 되는 지점 = 눈의 위치 - P355

르네상스가 이룩한 업적은 작가들뿐만 아니라 후원자 가문과 긍정이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은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높은 안목을 갖추고 재능을 가진 작가들을 발굴해냈으며 고전적 취향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들이 머물렀던 도시에는 지금도 여전히 그 화려한 유산이 남아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곤차가 궁정, 이탈리아 만토바 - P360

예술만큼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예술만큼 확실하게 세상과 이어주는 것도 없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P362

앞서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이렇게 되물어 볼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나라에 천재 작가가 없는 이유는 그런 작가를 알아봐줄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닐까요? 어쩌면 재능 있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교육하는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어떤 경우든 단순히 작가만의 문제로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 P365

이렇게 작가들이 끊임없이 도전을 할 수 있는 환경을만들어줬던 이들을 후원자, 영어로 ‘패트론(patron)‘이라 부릅니다. - P365

후원자들과 작가들이 르네상스를 함께 만들었다고 봐야 하겠네요. - P365

메디치 가문의 정체 
르네상스의 미술 후원자는 작가들만큼 많고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가문은 역시 메디치 가문일 겁니다. 메디치 가문이주도한 역사적인 미술 프로젝트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게다가 중요한 작가들을 많이 발굴해서 후원했죠. 앞서 브루넬레스키나 도나텔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다빈치 그리고 미켈란젤로까지 모두메디치 가문과 인연을 맺으며 대가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 P366

메디치 가문은 상업으로 돈을 모은 집안입니다. 메디치 가문의 문장을 보면 집안의 내력이 담겨 있습니다. 문장에 있는 동그란 게 알약이에요. 메디치 (medici)라고 하면 왠지 익숙하지 않나요? 메디치라는 가문 이름이 메디신(medicine; 약)에서 온 거거든요. 원래 의사나 약재상 일을 했던것같습니다. - P367

ㅣ한번 쌓은 신용은 절대 배반하지 않는다  - P371

그렇죠. 프리마베라는 메디치 가문이 소유한 별장을 장식했던 그림입니다. 뒤에서 자세히 볼 비너스의 탄생과 나란히 걸려 있었던 걸로 추정됩니다. - P399

먼저 프리마베라라는 이름을 살펴봅시다. 프리마베라(primavera)는봄이란 뜻입니다. 오른쪽은 서풍의 신인 제피로스인데 클로리스라는 요정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바로옆 장면에서 클로리스는 꽃의 신 플로라로 변합니다. - P399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4~1485년, 우피치 미술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나오는 비너스의 탄생 이야기를 묘사했다. 비너스의 자세는 고대 조각에서 본뜬 것으로 추정된다. - P401

"요즘 우리나라 정치가 돌아가는 걸 보면 반세기가 지나가기도 전에 우리 집안은 쫓겨날 것 같네. 비록 우리 집안이 쫓겨나더라도 나의 미술품들은 여기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네." - P407

분명히 그 점을 고려했을 겁니다. 코지모의 예상대로 메디치 가문은 1494년 피렌체에서 추방당합니다. 하지만 피렌체 사람들은메디치 가문이 다스리던 시절에 점점 향수를 느꼈습니다. - P408

르네상스 미술의 후원자들은 단지 작품을 구입하는 것을 넘어서서 작가들이 재능을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상인 출신의 유력한 가문들은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미술을 이용했는데, 그들이 후원한 작품들에는 돈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드러난다.
한편 15세기 후반에는 현실과 거리가 먼궁정취향의 작품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 P409

궁정신하는 뭐든지 태연하게 행동하도록 연습함으로써,
예술적 기교를 감추고 말과 행동이 꾸며냈거나 공들여 만드는것이라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
- 카스틸리오네, 궁정론 - P410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주인공 중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한인물들이 있습니다. 바로콘도티에로(Condottiero)라 불리는 용병대장들이죠. - P411

추측하건대 이런 벽화는 선전 효과를 의도했을 겁니다. 쉽게 말해
‘피렌체를 위해서 싸워주면 이렇게 거대한 기념물을 세워주니 피렌체로 오세요‘라고 실력 있는 용병대장들을 유혹하기 위한 거지요. - P414

한 가지만 꼽아보자면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라는 덕목을 들 수있습니다. 이 말은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것을 가리킵니다. 즉 카스틸리오네는 궁정 사람들의 행동은 너무 꾸민 듯해서는 안 되지만그렇다고 너무 안 꾸며도 안 된다고 주장한 겁니다. 모든 행동이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마치 꾸미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듯 해야 한다는 거죠. - P426

무기 제작 전문가, 발명가, 토목 공학자라고 소개하는 부분이 두드러지긴 합니다만 자기소개서 끝부분에 조각과 회화에 대해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 P440

 프랑스, 손을 내밀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 문화예술이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피렌체, 밀라노, 만토바 등 지금까지 살펴본 도시국가들끼리 힘의 균형이 얼추 맞으면서 잠시나마 평화로운 시기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 P450

방황하던 레오나르도의 손을 잡아준 사람은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1세였습니다. 프랑수아 1세는 안정된 후원을 약속했고, 레오나르도는 63세의 나이로 험준한 알프스 산맥을 넘었습니다. 무사히 프랑스에 도착해 프랑스 중부에 위치한 루아르 지역에 머물게 되었지요. - P452

용병대장 출신의 영주들은 단지 용맹할 뿐 아니라 높은 안목을 갖추고 예술을 후원했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로마 풍의 건축에 관심을 보였고, 우아하고 지적인 궁정 문화를만들었다. 이들의 후원을 받은 작가들은 궁정 생활의 단조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재미있는 시도들을 작품에서 선보였다. - P456

레오나르도다빈치
본래 피렌체에서 활동하다가 밀라노의 스포르차 가문의 궁정으로 자리를 옮김. 파격적인 실험 정신을 발휘했으나 안정적인 지원을 얻지 못하고 이후로 여러 도시를 떠돌아다님.
청동 기마상 스포르차 가문을 기념하는 7.3미터 높이의 청동 기마상을 계획했으나 실패로 돌아감.
최후의 만찬 새롭게 개발한 벽화용 물감이 얼마 지나지 않아 탈색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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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 아래 돔을 두다 크닉
브루넬레스키는 무게를 지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는데, 바깥쪽과 내부의 돔을 분리시킨 이중 돔을 쌓은 것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역시 굉장히 혁신적인 디자인이었죠. - P286

이런 이중 돔 구조 때문에 안쪽 돔과 바깥돔사이에 1미터 남짓한공간이 생겼습니다. 지금도 이 공간 사이로 난 계단을 통해 돔의맨 꼭대기까지 올라가볼 수 있어요. 아래사진처럼 말이죠.
참고로 돔 이곳저곳에 뚫려 있는 동그란 구멍은 전부이 공간을 위해낸 창이에요. 창을 통해 외벽과 내벽 사이에 있는 공간에도 빛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중으로 돔을 쌓고 거기에 창도 내야 했다니정말 힘들었을 겁니다. - P287

이 중에서도 브루넬레스키의 역할은 누구보다도 컸습니다. 새로운발상으로 중세 사람들이 던져놓고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한 새로운 ‘르네상스인‘이라고 할 수 있죠. 브루넬레스키의 거대한 건축적도전은 가히 대혁신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 P292

나지막한 건물들 사이에 30층 높이의 대성당이 우뚝 솟아 올라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거대한 돔은 마치 하늘에 떠있는 듯하고, 윤곽선은 가파르게 솟아올라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 P294

결국 브루넬레스키라는 천재를 발굴해냈으니 피렌체 사람들도 보는 눈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 P294

브루넬레스키는 이제 영예롭게도 자신이 설계한 돔 아래에 묻혀 있습니다. 피렌체 대성당 지하에 말이죠. 그 앞에는 최고의 찬사가 적힌 비문이 세워집니다. 대성당의 박물관에는 데스마스크까지 전시되어 있습니다. 당시 피렌체 사람들은 브루넬레스키에게 국가가 할수 있는 최대의 예우를 표한 셈입니다. - P295

 수학적 질서를 공간에 구현해내다 
브루넬레스키의 이야기는 몸에서 끝이 아닙니다. 1420년부터 피렌체 정부는 본격적으로 도시 개발 사업을 벌입니다. 브루넬레스키는 당시 피렌체 대성당 돔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국가 최고의 건축가였기 때문에 다양한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일명 ‘오스페달레 델리 인노첸티‘라 알려진 국립 고아원의 설계도 이렇게 해서 맡겨졌지요. - P296

비밀리에 아이를 놓고 갈 수 있도록 세세하게 구성되었군요? - P298

브루넬레스키는 고전 건축물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수학적인 질서와 규칙성을 극대화한 건축물을 만들었습니다. ‘모듈‘로건물을 구성한 거죠. 여기서 모듈이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한 단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 P299

광장을 완성하는 데에 거의 200년이 걸린 거군요? 도시를 꾸미는데 있어 피렌체 사람들의 끈기는 정말 대단했네요. - P304

아름다운 도시를 가지려면 그 정도의 집념은 지녀야 하는 건가 봅니다. - P304

15세기 피렌체는 대성당 돔 공사와 원근법의 발명이라는 두 가지 변화를 맞이했다.
그 변화를 이끌어낸 건 브루넬레스키였다. 세례당청동문 프로젝트 경연에서 진브루넬레스키는 로마를 여행하고 돌아와 건축가로 변신해 르네상스로만 설명할 수있는 혁신들을 만들어냈다. - P305

브루넬레스키는 고전 건축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수학적인 질서와 규칙성을 극대화한형태로 피렌체 국립 고아원을 설계함. 엄격한 수학적 비례감 덕분에 경건하고 장엄한느낌이 생겨남.
모듈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기준.
예 기둥의 높이를 기준으로 설계한 피렌체 국립 고아원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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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다녀왔습니다" 하고 말하자 나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나나는 반년 전부터 기르고 있는 고양이다.

쇼타는 아직 대학 입학 선물을 받지 않았으니 그 대신이라고 설득해 결국 허락을 받아냈다. 참고로 7년 전에 같은 대학에 입학한 아쓰코는 50만 엔에 달하는 명품 백을 선물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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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죠, 앞서 브루니가 피렌체를 자유경쟁이 보장되는 도시라고 찬미했듯 실제로 피렌체는 경쟁을 통해 도시의 큰 프로젝트를담당할 작가를 정하기 시작해요. 덕분에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대결 중 하나인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의 결투가 벌어질 수 있었습니다. - P242

맞아요. 이스라엘 사람들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이삭은 아브라함이100세에 본 아들이었습니다. 얄궂게도 신은 아브라함에게 그 귀한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아브라함이 신의 명령에 순종해 아들을 죽이려는 찰나, 천사가 내려와 아브라함을 말립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대신 덤불에 뿔이 걸려 움직이지 못하던숫양을 제물로 바칠 수 있었죠. 결국 아브라함의 신앙심을 시험하려는 신의 계획이었던 겁니다. - P243

강렬한 게 인상에 깊게 남을 테니 아무래도 브루넬레스키가 경연에서 우승을 거머쥐었겠군요.
아닙니다. 승리한 건 기베르티였어요. 역사적으로는 브루넬레스키가 낸 안을 높이 평가합니다만 당시 시민평가위원회의 판단은 달랐던 거죠. 일반 시민의 경우 눈에 익은 친숙한 스타일을 선호하는경향도 있고요. - P248

브루넬레스키는 이 실패를 계기로 인생의 대전환을 맞이했습니다.
지금도 큰 시험에 떨어지면 훌쩍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죠? 세례당 청동문 경연에서 떨어진 브루넬레스키도 로마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 여행에 후배 조각가 도나텔로도 동행했다고 기록되어있어요. - P256

늘 이와 같은 훌륭한 조각을 보며 지나다닐 수 있었던 피렌체 사람들은 대단한 행운아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축적된 안목이 있었으니 피렌체에서 계속 르네상스의 거장들이 나올 수 있었겠지요. - P270

피렌체는 1400년대에 이르러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본격화했다. 이 프로젝트는르네상스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눈부신 성과를 이룩했으며, 레오나르도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등과 같은 거장들이 나올 수 있었던 기반이 되어 주었다. - P271

오르산미켈레 외벽에 있는 14개의 제대마다 길드를 대표하는 성인 조각을 채워 넣는각 조각들에는 후원한 길드들의 단서가 들어가 있음. 여기에서프로젝트를 진행함.
-도 A타입과 B타입의 미술을 발견할 수 있음.
A타입 도나텔로: 거칠지만 힘찬 느낌. 몸이 잘 드러나며 건축적인 느낌을 줌.
참고 도나텔로, 성마르코, 1405~1417년
B타입 기베르티: 반듯하게 정리된 느낌. 우아한 옷자락. 몸이 잘 드러나지 않음.
참고 기베르티, 세례자 요한, 1411~1416년 - P271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에서 실패로 걸어가는 것이 성공이다.
- 윈스턴 처칠 - P272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점이 언제인가 하는 문제는 종종 논쟁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1300년을 기준으로 삼는 연구자가있는 반면, 1400년으로 잡는 연구자도 있죠. 일단 저는 1400년이라는 주장에 동의합니다. - P273

첫 번째 사건은 피렌체 대성당 위에 거대한 돔을 올린 겁니다. 위 사진을 한번 보시죠. 돔은 주변의 나지막한 건물들 사이에 마치 산처럼우뚝 솟아 있습니다. - P274

그런데 대성당에돔이 올라갈 때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바로 원근법의 등장입니다. 이때 나온 원근법은 20세기 추상미술이 등장하기 전까지 서양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 방식으로 자리 잡습니다. 두 사건 모두 1400 년대, 즉 15세기 피렌체에서벌어졌어요. 더욱 놀라운 것은 이걸 모두 한 사람이 해냈다는 거예요. - P275

혼자서 이런 일을 해냈다고요?
네, 바로 브루넬레스키죠, 브루넬레스키는 청동문 프로젝트 경연대회에서 기베르티에게 패해 방황을 거듭했던 그 사람입니다. 그러던 브루넬레스키가 이런 엄청난 변화의 주인공으로 거듭난다는게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 P275

인생 역전이군요. 드디어 브루넬레스키에게도 기회가 온 건가요?
당시 나이로 마흔 살이면 오늘날로 치면 여든 살 이상이라고 볼 수있거든요. 늦게 찾아온 기회치고는 엄청난 기회였어요. 지금부터이 브루넬레스키의 돔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해보려고 합니다. - P279

오늘날 피렌체 두오모 박물관에는 아래와 같은 나무 모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공모전에 제출했던 돔의 모델로 추정됩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이런 나무 모델과 함께 나무 프레임 없이도 돔을 올릴 수 있는 안을 내서 시민평가위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해요. - P281

여기저기서 자꾸 간섭이 들어오자 견디다 못한 브루넬레스키는 달걀을 가지고 와서 "이 달걀을 내가 한번 세워 보이겠다"고합니다. 사람들이 "달걀을 어떻게 세우겠냐?"고 반문했더니 달걀아래를 깨서 세웠다고 해요. 자기를 믿고 따라달라는 호소인 거죠. - P282

그게 콜럼버스가 아니라 브루넬레스키가 먼저였던 건가요? - P282

흔히 콜럼버스가 그런 식으로 달걀을 세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콜럼버스보다 브루넬레스키가 먼저예요. 그런데 사실 피렌체 정부의 불안감에도 근거는 있었습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아이디어를 남들에게 잘 드러내지 않았어요. 실제로 남긴 드로잉도 거의 없고요. - P282

아마 일찍부터 누군가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져갈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기베르티와 겨뤘던 청동문 프로젝트에서 패배한 트라우마가 오랫동안 작용했던듯도 싶고요. - P282

고대 로마의 돔에서 얻은 아이디어 
그런 아이디어를 혼자서 생각해낸 건가요? 대단한데요.
아마 로마의 판테온에서 영감을 얻었을 겁니다. 판테온은 돔 규모가 직경 43 미터로 피렌체 대성당의 돔과 거의 비슷합니다. - P283

과 닮았다고 해서 ‘물고기 뼈 쌓기‘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헤링본 테크닉(Herringbone technic)‘이라고 부릅니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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